우리가 오늘날 흔히 '추리 소설'이라고 부르는 장르는 저 유명한 천재 에드가 앨런 포우의 '발명품'이다. 1841년 포우는 <모르그 가의 살인>이라는 단편을 발표하였다. 이 짤막한 단편 소설에는 추리 소설이 갖고 있어야 할 모든 요소가 들어 있다. 그리고 이 후에 나온 추리 소설들은 모두 <모르그 가의 살인>을 변주한 작품들에 지나지 않는다.
이견이 없을 수 없는 지나치게 거친 주장이긴 하지만 예전부터 여러번 밝혀왔던 개인적인 견해다. 오거스트 뒤팽이 있었기에 셜록 홈즈와 그 후예들이 있는 것 아니겠나. 포우의 전범典範 없이 코넌 도일이 홈즈를 오늘날의 모습으로 탄생시킬 수는 없었을 것이다.
뒤팽이 탄생하고, 홈즈가 뒤를 이어 추리 소설의 황금기를 구가하던 1929년, 또 하나의 위대한 발명품이 등장한다. 바로 사무엘 대실 해밋의 <붉은 수확>이다. 포우가 없는 도일을 상상하기 어렵듯이 해밋 없는 챈들러나 맥도널드를 상상하기도 어렵다. '하드보일드'라는 도저한 흐름을 만들어 낸 것은 미스터리 문학사에 있어서 <모르그 가의 살인>에 필적할 만큼 큰 족적이라 할 수 있다. 이후 수없이 양산된 느와르 소설, 펄프 픽션들과 바다 건너 일본의 사회파 미스터리까지 해밋의 숨결은 곳곳에 숨어 있다.
이제 홈즈나 포와로는 뒤팽보다 더 유명하고, 필립 말로나 해리 보슈를 스페이드나 컨티넨털 옵보다 더 자주 접하게 되었지만 '원류의 정통함'은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그리고 원류를 탄생시킨 작가들은 그만한 칭송을 받아 마땅하다. 족발집도, 떡볶이 집도 너나 없이 원조를 따지는 세상이 아닌가. 해밋은 이견의 여지가 없는 '하드보일드'의 원조다.
과작이기도 했지만, 국내에 소개된 작품이 너무도 적어 늘 아쉬웠던 대실 해밋이 퍼블릭 도메인으로 풀리더니 결국 좋은 소식이 들려왔다. 미스터리 독자들에게 진정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두 팔 벌려 환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