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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 Real 5
이노우에 다케히코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6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만화는 과장(誇張)의 예술이다.
과장은 사물의 생김새나 동작, 특징등을 가느다란 선으로 평면에서 효과적으로 표현해 내야 하는 만화의 숙명이다.
영화에서는 엄두를 내기 어려운 스토리나 실사로 표현해서는 별다른 재미를 느낄 수 없는 내용들을 책상에 앉은 만화가는 자신의 펜끝에서 창조해 낸다. 소설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시각적인 재미와 함께. 책과 영화의 사이에 애니매이션과 만화가 존재하는 이유다. 과장되고 극단적인 묘사는 만화의 장르적 특성인 것이다. '만화 같다'라는 말은 '허무맹랑하다'라는 뜻으로 사용될 정도이니 말이다.
스포츠 만화(스포츠 영화나 드라마도 자유롭지는 않다)에서는 특히 이러한 과장된 묘사들이 차고 넘친다. 복싱 만화에서는 매번 피와 살이 튀는 처절한 경기가 벌어지고, 축구 만화에서는 강슛이 골망을 찢기 일쑤이다. 야구 만화에서는 매 타석 홈런만 쳐대는 무시무시한 타자와 오로지 강속구로만 승부하는 괴물 투수들이 수시로 등장한다.
다케히코 이노우에는 90년 대 초반 그동안 만화에서는 흔치 않았던 '농구'라는 소재와 스포츠 만화에서는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만큼의 '사실적'인 묘사들을 앞세운 <슬램덩크>라는 불후의 명작을 독자들에게 선보여 최고의 인기를 모았다. <슬램덩크>의 전반부와 후반부를 비교해 보면 알 수 있듯이 작가는 점점 더 '리얼리즘'과 '세밀한 그림'에 천착해 가는 듯 하다. 등장인물들은 더욱더 날카로운 펜선으로 덧입혀 졌고, 만화적인 고운 표정과 눈빛들은 희미해져갔다. 이러한 그림체는 <배가본드>에서 더욱 진일보한다.
가장 좋아하는 것을 할 때 가장 큰 힘을 발휘한다는 것은 당연한 상식. 슬램덩크를 끝낸 후에도 <버저비터>등으로 농구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표시했던 작가는 이제 <리얼>이라는 작품을 들고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농구'와 자신이 지향하는 작품세계인 '리얼리즘' 두마리 토끼를 쫓고 있음을 제목과 소재를 통해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길거리에서 헌팅한 여학생을 뒤에 태운채 오토바이 사고를 일으켜 학교에서 퇴학당한 노미야 토모미.
도내를 대표하는 단거리 육상선수 였지만 골육종이란 병을 앓아 한 쪽 다리를 절단해야만 했던 토가와 키요하루.
농구부 주장이자 교내에서 잘 나가던 모범생이었으나 자전거 사고로 하반신 마비가 된 타카하시 히사노부.
더이상 덩크슛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천재 고교생은 나오지 않는다. 그들이 처한 상황은 냉혹하고, 인정사정 없다. 사회는 그들에게 절망만을 강요한다.
<리얼>은 철저히 사회에서 아웃사이더가 될 수 밖에 없는 세 명의 장애인 - 퇴학생이라는 사회적 장애인과 두 명의 신체 장애인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10대 후반에 이미 사회의 메인 스트림에서 떨어져 나온 이 세명의 주인공이 자신의 시련을 어떻게 극복하고 '농구'라는 매개를 통해 어떻게 성장하는지를 '리얼'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들은 외친다.자신들은 더이상 '낙오자'가 아님을, 항상 '승리'를 꿈꾸고 있다는 것을.
사족 : 1년에 한 권씩 나오는 연재 속도는 독자의 인내심에 한계를 측정하는 듯 하다. 이 만화가 완결될 즈음에 내 나이는 몇 살 쯤일까.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