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얼굴은 먹기 힘들다
시라이 도모유키 지음, 구수영 옮김 / 내친구의서재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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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그리고 아무도 죽지 않았다>로 국내 독자들에게 첫 선을 보인 시라이 도모유키의 신작...이지만 실은 이 작품 <인간의 얼굴은 먹기 힘들다>가 작가의 데뷔작이란다. 실상 1800년대부터 쓰여져온 본격 추리소설의 여러 장치들이 이젠 고갈 단계라서 좀비물이나 타임루프 등 독특한 특수설정을 가미해 새로운 맛을 전달하는 게 최근 일본 본격추리의 유행인데 그중에서도 시라이 도모유키는 독보적인 상상력을 자랑한다. 전작에서는 감염병으로 죽여도 죽지 않는 살아 있는 시체들의 탐정놀이였다면, 이번에는 인간의 클론을 배양해 식용으로 쓰는 근미래를 다루고 있다.

식인이라는 핵심 테마만 들어도 끔찍하지만 전작에서 엽기적인 특수설정을 밀어붙여 말초적인 재미만 추구하는 게 아닌 본격 추리소설가로서의 실력을 톡톡히 보여줬기에 믿고 읽어보았다. 결과는 충분히 믿음에 부합하는 재미있는 본격 추리소설이었고, 시라이 도모유키 작가는 데뷔작부터 비범한 구석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물론 상황이 더 복잡하게 꼬여 있고 트릭의 가짓수도 많았던 전작보다는 살짝 못 미치는 감이 있었지만, '클론'이 상용화된 세계에서의 규칙들을 적절히 이용해 한 방을 크게 날리는 이번 작품도 못지않게 좋았다. 전작이 소나기 펀치라면 이번 신작은 온힘을 모아 결정타를 제대로 던지는 느낌이라서 취향에 따라 이 작품을 더 좋아하는 분들도 많을 것 같다.

인터넷 서핑을 하다 보면 고민에 빠지는 순간이 있다. '혐 주의'라고 쓰여 있는 제목을 클릭할까 말까 고민하게 되는 것이다. 하루 종일 뇌리에 남아 찝찝할 게 뻔한 끔찍한 영상이나 사진일 텐데도 왠지 궁금증을 참을 수 없어 한쪽 눈을 감고서라도 슬쩍 보게 되는 게 사람 심리가 아닐까. 시라이 도모유키는 바로 이런 악취미로 독자를 유인하는 데 명수라서 모든 작품에 비정상적이거나 극도로 자극적이고 혐오스러운 테마를 깔고 간다. 이 정도의 엽기성이라면 작가들의 든든한 지원군인 2차 판권(아니메, 영화, 드라마 등)을 팔기도 어려울 텐데도 꿋꿋하게 악취미 외길만 걷는 작가의 근성과 똘기에 박수를 보낸다. 빈말이 아니라 이렇게 꿋꿋하게 한 우물만 파는 작가라면 당장은 인정을 덜 받아도 결국은 하나의 사조를 창시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시라이류 엽기본격 같은 이름으로 말이다ㅋ

악취미니 엽기니 혐오니 했지만 본격 추리소설로서는 단연 합격점을 받을 만하다. 기본적으로는 알리바이 깨기 트릭인데 남녀 두 서술자의 챕터가 번갈아 진행되면서 독자를 자연스레 미스리딩에 빠뜨리는 기법도 훌륭하게 써먹었다. 책장을 다 덮고 맨 앞으로 돌아가서 하나씩 복기해보면 참으로 교묘하게 안배된 서술이 많구나 하는 걸 절감하게 된다. 특수설정이든 일반설정이든 추리소설이라고 라벨을 붙이려면 무엇보다 트릭이 좋아야 하는데 이 작가는 그 점은 부족함이 없다. 그냥 잘쓴 추리소설로 봐줘도 좋고, 특수설정 미스터리란 어떤 것인가 알고 싶어서 봐도 좋고, 왠지 '혐 주의'가 땡길 때 봐도 좋다. 개인적으로는 고만고만한 추리소설에 질린 점도 있어서 한 번씩 이런 걸물이 나오면 너무 반갑다. 진심으로 응원하고 앞으로 다른 작품들도 만나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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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년은 코로나로 거의 외출을 못한 덕분에 어느 때보다 많은 신간 추리소설을 읽었다. 그래서 다섯 편만 꼽기 너무 힘들었고, 아쉽게 순위에서 밀린 작품들이 눈에 밟히지만 그동안과 형평성을 맞추기 위해 눈물을 머금고 다섯 편만...실은 베스트를 다섯 개 이상 뽑으면 써야 할 글 분량이 늘어나는 게 끔찍해서 어쩔 수 없이^^;;

5위 <어리석은 자의 독> - 우사미 마코토









처음 읽어보는 작가의 책이었는데 가독성이 굉장했다. 물론 이건 우사미 마코토라는 작가가 글을 잘 써서이기도 하지만 '수기' 형태의 소설만이 주는 몰입감이 컸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 여름, 나는 사람을 죽였다'라는 첫 머리로 시작하는 소설과 '딩동, 택배 왔습니다' 하고 시작하는 소설 중 어느 것에 더 흥미가 쏠릴지는 굳이 말할 필요가 없겠다. 읽는 내내 누군가의 내밀한 일기를 훔쳐보는 듯한 호기심에 도저히 책장을 놓을 수 없었는데, 틈틈이 앞으로의 끔찍한 파국을 예감케 하는 서술이 들어가 결말까지 달음질쳐 읽을 수밖에 없었다. 우연히 친해진 생년월일이 같은 두 여자가 남긴 수기는 그녀들이 접하는 공통의 사건을 각각의 시선에서 묘사하면서 점차 빠진 부분을 더해가고 끝에 가서 결국 하나의 큰 그림을 완성시킨다. 그렇게 해서 완성된 퍼즐은 두 여자의 '생년월일이 같다는 데서' 어느 정도 짐작이 가는 부분은 있지만 독자가 도저히 짐작할 수 없는 어둡고 비극적인 사연들도 넘쳐난다. 절대적인 빈곤과 시대적인 아픔 속에 잉태된 '독'과 '악'의 씨앗이 어떻게 세대를 넘어 발아하는지 통렬하게 그려내는 결말은 가히 압도적. 무엇보다 다 읽고 보면 수기 속에 은근슬쩍 남겨진 복선들이 굉장히 많음을 깨닫게 되는데, 차근차근 복기해서 하나하나 맞춰보는 쾌감이 짜릿했다. 여러모로 굉장히 교묘하게 잘 쓴 미스터리이며, 특히 2부에서 쇠락한 탄광 마을의 묘사는 공들인 취재가 작품을 얼마나 빛나게 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모범 사례가 될 것 같다. 여담이지만 2부에서는 탄광 마을의 일본 사투리를 번역가가 경상도 사투리로 번역했는데 네이티브 경상도인이 아니라서 잘은 모르지만 굉장히 수준이 높은 것 같다. 보통 사투리를 잘 모르는 작가들은 어미만 '~했노', '~했나' 식으로 처리하고 넘어가는데 이건 그 수준이 아니라 경상도 사투리를 곁에서 생생하게 듣는 느낌이었다. 개인적으로 졸고를 집필할 때 사투리에 자신이 없어 아직까지 사투리를 쓰는 인물을 등장시킨 적이 없는데 만약 쓰게 된다면 이 정도는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4. <살인범 대 살인귀> - 하야사카 야부사카










외딴 섬에서 연속살인이 벌어지는 본격 추리소설의 왕도적 전개를 펼쳐 보이는 작품인데, 닳고 닳은 이 장르에서 이 작품만의 킬링 포인트는 '살인범'과 '살인귀' 두 명이 각각의 이유로 두 갈래의 연속살인이 펼쳐진다는 것이다. 뻔한 장르에 독특함 한 스푼을 추가시켜 뭔가 새로운 것을 보고 있다는 착각을 주는 작가의 영리함이 돋보인다. 나는 미스터리 소설을 크게 엔터테인먼트 계열과 메시지 계열로 나누는데, <살인범 대 살인귀>는 엔터테인먼트 계열에서 최근 몇 년 동안 본 소설 중에서 가장 재미있었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이 작가는 아주 새로운 구석은 없다. 여러 곳에서 자주 쓰인 트릭들을 재활용하는 경향이 강한데 그게 너무도 무지막지해서 오히려 흥겨울 지경이다. 예컨대 한 추리소설에서 범인에게 이어지는 단서나 트릭은 보통 3~4가지 정도이다. 그 이상 넘어가면 작가가 구상하기도 어렵고 지나치게 복잡해져서 독자들도 싫어한다. 하지만 하야사카 야부사카 작가는 줄잡아 10개 정도의 트릭과 단서를 범인을 특정하는 데 사용한다. 물론 '살인범' 하나를 특정하는 데만 그렇다는 얘기고, '살인귀'에게도 그만큼의 분량을 할애한다. 한마디로 설명 파트에서 20개 정도의 트릭과 단서가 줄줄이 제시되면서 독자들에게 다다다다 기관총을 쏘는 것이니 본격 추리소설 팬들에게 이보다 황홀한 순간이 또 있을까 싶다. 거울 장난이나 왼손, 오른손잡이 등 대부분 어디서 많이 봤던 것이지만 하여간 양이 많으니 뭔가 배불리 먹은 기분이다. 물론 뻔한 것만 팔지는 않는다. 개인적으로 둘 중 한 사람이 '희생자들을 선택하는 이유'에는 완전히 감탄했다. 근래 연속살인물 중에서 이보다 더 창의적인 동기는 못 본 것 같고, 한국어로도 비슷한 착상을 할 수 있었을 거라는 생각에 진한 아쉬움을 느꼈다. 아무래도 노인문제나 영아살해 같은 사회적인 내용을 담는 메시지파 작품들은 그 주제의 무게만큼이나 좋은 평을 받을 확률이 높은데, 순전히 유희적인 추리소설이라도 이 정도로 화끈하게 잘해내면 그 못지않게 상찬을 받아야 한다고 단언한다.

3위 <녹슨 도르래> - 와카타케 나나미









추리소설 전문 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사립탐정을 병행하는 '히무라 아키라' 시리즈의 여섯 번째 작품. 레이먼드 챈들러에 경도된 하라 료가 챈들러처럼 극도의 과작을 선보이고 있기에 현재로서는 일본 정통 하드보일드 계열 미스터리를 단독으로 짊어지고 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우연히 알게 된 할머니와 손자의 집에 세를 든 히무라 아키라는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탐정'이라는 별명답게 화재 살인사건에 휘말리게 되고, 본격적인 조사를 통해 과거와 현재에 걸쳐 그 가족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조사한다는 내용이다. 다소 사소해 보이는 의뢰로 출발해 거대한 사건의 실체에 접근한다는 고전적인 하드보일드의 주제에, 'Seek & find'라는 하드보일드의 방법론까지 충실하게 구사하고 있다. 끊임없이 이동하면서 새로운 장소와 사람을 만나고 그들의 증언이 더해지면서 점차 최종 결론을 향해 가는 이런 스타일은 용의자를 한 방에 몰아넣고 계속 증언만 청취하는 본격 추리소설과는 다른 흥취가 있다. 탐정이 가는 곳과 만나는 사람마다 1인칭 화자인 탐정만의 개인적인 생각을 들어볼 수 있어 한층 공감이 더해지며 몰입감도 높아진다. 요즘 유행하는 엽기범죄나 독특한 특수설정이 전혀 없이 담백하지만 볼수록 은은하게 잘쓴 소설이다. '녹슨 도르래'라는 제목의 의미가 밝혀지는 결말도 근사하고 전체적인 미스터리 구조도 짜임새가 훌륭하며 곳곳에 설치한 단서나 복선도 신중하게 배치되었다. <녹슨 도르래>에 X선을 쬐면 하드보일드 미스터리라는 장르의 뼈대가 정확하게 드러나지 않을까. 그만큼 단정하고 튼튼한 수작이다. 냉소적이고 신경질적인 탐정 캐릭터가 등장하는 챈들러풍의 서구 하드보일드와 가장 구별되는 지점은 츤데레스럽고 툴툴대면서도 부탁을 잘 거절 못하는 아키라의 인간미일 것이다. 게다가 추리소설 전문 서점에서 펼쳐지는 일상적인 생활감도 기존의 하드보일드에서는 거의 볼 수 없는 대목이다. 하드보일드의 구조와 형태를 잘 분석한 뒤 작가 자신만의 개성을 가미한 이 시리즈가 계속 이 수준을 유지할 수 있다면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하드보일드 미스터리 작가'로 남는 것도 꿈이 아닐 것 같다.

2위 <스완> - 오승호










총기소유가 일상화된 서구와 달리 아시아권에서는 총기 난사사건은 거의 벌어지지 않는다. '스완'이라는 거대 쇼핑몰에서 벌어진 총기 난사사건으로 시작되는 도입부가 유독 시선을 제압하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20명 넘게 사망한 이 초유의 사건에서 간신히 살아난 사람들에게 한 장의 초대장이 날아든다. 각자의 기억을 공유해 그날의 진실을 밝혀보자고...데뷔작 <도덕의 시간>이 크게 인상 깊지는 않았지만 오승호 작가의 독자를 이끌고 가는 파워는 주목할 만했는데, <스완>에서는 더욱 완숙해졌다. 조금씩 정보를 제공하다가 딱 흥미로운 지점에서 잠깐 끊고 다음을 기약하니 책을 도저히 손에서 놓을 수 없었다. 한마디로 요즘 드라마처럼 끊기 신공이 절묘한데 스토리텔러로서의 이 감각은 타고난 재능으로 보인다. 대부분의 미스터리가 풀린 후반부에서도 결정적인 한 가지 비밀은 남아 있었다. 이 비밀이 풀리는 최후반부에서 무릎을 쳤다. 상식적으로 그것밖에 답이 없는데 왜 깨닫지 못했을까 깊이 안타까웠다. 메시지에 더해 <도덕의 시간>에선 조금 아쉬웠던 미스터리 소설의 근원적인 재미까지 두 마리 토끼를 잡았으니 일본추리작가협회상을 수상할 수 있었으리라. 주제 면에서는 미증유의 사건을 접한 주인공들이 순간순간의 절박한 상황에서 내린 판단들에 대해 집중력 있게 들여다본다. 돌이켜보면 그때 이랬다면 어땠을까, 저랬다면 좋지 않았을까, 그렇게 하지 말걸 하는 각자의 후회들이 꼬리를 물고, 현장에 있지도 않은 사람들이 합리적인 이유를 대면서 쉽게 늘어놓는 비난들에 가슴이 무너지는데 생존자들은 말 그대로 생과 사가 오가는 찰나의 상황에서 그때그때 최선으로 느껴지는 일들을 했을 뿐이다. 처음 겪어보는 사태에 멘탈이 나가는 게 당연한데도 상식과 논리를 내세우고 피해자다움을 강요하는 요즘 세태에 꼭 필요한 얘기라고 생각한다. 결말은 조금 타협하는 느낌이 있었지만 온갖 비난 속에서도 백조처럼 다시 한 번 날아오르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먹먹한 감동을 주었다.

1위 <거울 속은 일요일> - 슈노 마사유키









나온 지 오래됐지만 아직도 뛰어난 반전으로 간간이 회고되는 <가위남>으로 성가를 높인 슈노 마사유키의 간만의 신작이다. 소라고둥을 닮은 범패장이라는 건물에서 살해된 불문학 교수의 살인사건을 다룬 과거와 깔끔하게 해결된 그 사건을 재조사하는 현재가 교차되는 구성이다. 서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1인칭 화자의 넋두리가 때때로 삽입되어 독자를 함정에 빠뜨리는 작가의 익숙한 트릭도 만나볼 수 있는데 이 작품에서는 더욱 완숙해져서 진상을 제대로 추리할 수 있는 독자는 거의 없을 것이다. 과거 사건이 전문적인 지식을 이용한 트릭이라 살짝 실망했지만 그건 예고편에 불과하고 진짜 해답 파트에서는 작가의 장기인 독자를 혼비백산하게 하는 반전이 몇 번이나 튀어나와 본격 미스터리 팬으로서의 만족도는 최상급에 달한다. 불문학과 프랑스어 등이 자주 나오다 보니 왠지 프랑스 예술영화를 떠올리게 하는 구석도 있는데 왠지 현학적이고 시공을 초월한 듯한 그 느낌도 너무 좋았다. <기생충>이 아카데미를 수상하고 이미경 CJ부회장이 봉 감독이 말하는 방식, 웃음, 스타일, 유머 등 모든 것이 좋다고 한 소감처럼 나 역시 이 소설의 모든 것이 그냥 좋았다. 특히 명탐정 캐릭터는 일본 추리소설에 등장한 명탐정 중에서 단연코 제일 매력적이라 할 만했다. 자신만만한 모습, 사려 깊은 모습, 사랑스러운 모습 등 다양한 매력을 보여주는 이 탐정을 계속 만나보고 싶다. 무엇보다 이 작품의 최대 매력은 책장을 다 덮었을 때 폭풍처럼 밀려오는 문학적 여운에 있다 할 것이다. 그동안의 추리소설에서는 사건이 해결되면 명탐정은 다음 사건을 기약하며 기분 좋게 떠나가지만 이 책에서의 명탐정은 여기서 끝이다. 모종의 이유로 더 이상 사건을 맡을 수 없으며, 과거 본인이 해결했던 사건들도 철없을 때의 옛 추억쯤으로 여기는 모습이 쓸쓸하기 그지없어 인상에 깊이 남았다. 아무리 복잡한 사건의 매듭도 쾌도난마처럼 끊어버리는 초인 명탐정의 비애를 담아내는 이런 추리소설이 또 있을까 싶다. 더구나 본격 미스터리는 전 세계적으로 어쩔 수 없이 사장되어가는 장르이다. 그 장르에 신명을 바쳐 봉사한 명탐정의 퇴역, 게다가 실제로 저자가 별세하기까지 했으니 <거울 속은 일요일>의 쓸쓸한 정서는 더욱 배가된다. 퇴장의 미학이랄까, 그 처연한 아름다움에 뛰어난 본격 추리소설적 트릭이 우아하게 융합되었다. 미스터리 소설 팬으로서 절대 놓치면 안 되는 한 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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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의 수법 - 살인곰 서점의 사건파일 하무라 아키라 시리즈
와카타케 나나미 지음, 문승준 옮김 / 내친구의서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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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시대에 접어든 지 거의 1년이 다 되어간다. 원래 집에서 잘 안 나가는 히키코모리 성향이지만 가끔 목적 없이 거리를 거닐며 경치 구경, 사람 구경을 하다가 다리가 아파지면 커피숍에 들어가 망중한을 즐기던 나날이 마치 전생의 기억처럼 느껴진다. 집에만 있다 보니 취미가 결국 책 아니면 영화, 영화 아니면 책이 될 수밖에 없는데 세월이 하수상하니 책도 쉬이 눈에 들어오지 않더라. 


우울한 시국에서 만나게 된 <이별의 수법>은 어땠을까. 굉장한 몰입감과 더불어 뜻밖의 해방감을 만끽했다. 몰입감이야 잘 쓴 이야기 덕분이지만, 전설적인 여배우의 부탁을 받아 20년 전 실종된 그녀의 딸을 찾으러 줄기차게 거리를 돌아다니는 하무라의 여정에 마치 활보가 자유롭던 코로나 이전 시대의 해방감마저 느껴졌던 것이다. 비록 서울이 아니라 도쿄의 곳곳이지만 원하는 곳을 마스크 없이(!) 자유롭게 갈 수 있는 하무라가 부럽기까지 했다. 


미스터리 측면에서도 사립탐정물 혹은 하드보일드의 성취가 상당하다. 어머니와 잘 맞지 않는 딸의 단순 가출로만 여겨졌던 20년 전 사건을 파보면 파볼수록 수많은 실종자가 더해지는데, 각각의 실종자들이 결국 어떤 그림을 완성하는지 조금씩 알게 되는 재미에 한 번 탄력이 붙으면 단번에 독파할 수밖에 없다. 최종적인 그림은 애잔하기도 하고, 끔찍하기도 한데 여러 단서나 복선이 잘 배치되어 하무라의 단숨에 핵심으로 점프하는 추리를 수긍할 수밖에 없다. 유일한 약점은 사건의 진상이 비교적 중후반부에 배치되어 최후반부의 집중력이 조금 떨어지는 것이지만 두어 가지 곁가지 사건들이 나머지 분량에 풀리면서 그런 약점을 상당 부분 상쇄하고 있다. 


무엇보다 하무라 아키라라는 탐정의 개인적인 매력이 이 시리즈의 가장 큰 원동력이 아닐까 싶다. 국내에 출간된 시리즈 초반작들이 그저 터프하게만 보이려던 여탐정 느낌이었다면, <이별의 수법>부터 시작되는 2기 하무라 시리즈는 중년에 접어든 하무라가 느끼는 여러 감정이 훨씬 인간적이고 공감가게 다가온다. 냉소적인 말투와 생각과 달리 부탁을 잘 거절 못하고 상처도 잘 받는 하드보일드 사립탐정이라니. 나는 누군가의 거짓말로 인해 오랜 인연을 맺었던 셰어하우스에서 쫓겨나야 하는 상황이 닥치자 홀로 베개에 눈물을 흩뿌리는 탐정을 본 기억이 없다. 냉철하고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추리기계 같은 탐정들 속에서 하무라의 인간미는 단연 독보적이다.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탐정'이 된 것도 결국 남의 부탁을 잘 거절 못하고, 불의를 보면 가만 있지 못하고, 불행한 처지에 빠진 사람을 보면 반드시 도와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 때문이 아닐까? 세상 어딘가에는 이런 불행한 탐정이 있기에 수많은 다른 사람들이 행복해지는 것이라고 진심으로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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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로 흉흉한 이 와중에 모처럼 종이책을 한 권 냈다. 제목은 <상처>. 좀 멜로틱한 제목이긴 하지만 확실히 추리소설이다. 그것도 하드보일드 풍이 가득한. 존경하는 로스 맥도널드와 챈들러, 해밋, 로렌스 블록 등의 흉내를 냈는데 확실히 대가가 왜 대가인가를 배웠을 따름이었다. 


사실 종이책이 워낙 안 팔려서 막상 책을 내봐야 투자한 출판사에게 면이 안 서는 결과만 낳기 마련이라 출판에 흥미가 좀 떨어졌는데 3년 만에 한 권 내고 보니 기분이 좀 업되는 건 있더라. 한두 명이라도 신작을 기다렸다는 덧글을 보고 많이 흐뭇하기도 했고, 그만큼 반성하는 기회가 됐다. 기다리는 독자가 한 명이라도 있으면 작가는 글쓰기를 멈추면 안 되는 것인데 그간 너무 무성의하게 살았던 것 같다. 간만에 신작이 나왔으니 앞으로는 적어도 1년에 한 권 정도는 신간으로 인사드릴 수 있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려면 얼른 넷플릭스 끊고 게임도 끊어야 하는데...(먼 산). 


요즘은 SF나 추리, 공포, 좀비 등 한국 장르소설의 출간도 활발한 것 같고 괜찮은 성과를 거둔 분도 계시다는 얘기도 들었다. 물론 아직도 부족한 점이 많지만 꾸준히 한국 장르소설을 아껴주시고 돌봐주시고 사랑해주시고 격려해주시고 칭찬해주시고 챙겨주시고 도와주시고 구매해주시고 적선해주시고 서평써주시고 응원해주시는 많은 분들께 부족한 한국 장르소설가 중 한 명으로서 깊은 감사를 드린다. 부디 <상처>도 기억해주시고 기회가 닿으면 꼭 한 번 읽어봐주셨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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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베스트를 뽑아놓고도 귀찮아서 나중에 써야지 했는데 벌써 6월이네-_-;; 코로나로 아직도 외출이 부담되는 분들의 즐거운 독서를 위해 늦게나마 정리해본다.


5위 <우먼 인 윈도> - AJ 핀











AJ 핀이라는 신인작가의 초대형 히트작. 미국에서 10여 년 만에 데뷔작이 베스트셀러 1위를 찍었으며 100만 부를 넘게 팔고 헐리웃에 영화 판권도 팔았다고 한다. 어떻게 썼길래 신인작가, 아니 작가라면 모두가 부러워할 만한 성공을 데뷔작으로 기록했는지 궁금했다. 600페이지가 넘는 매우 두꺼운 책을 하루 만에 읽고 역시 팔리는 물건에는 이유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 줄거리는 기본적으로 히치콕의 <이창> 70프로+<현기증> 30프로로 이뤄져 있으며, 히치콕만큼 유명하진 않은 90년대 스릴러 <카피캣>도 레퍼런스로 참조한 듯하다. 도입부에는 드러나지 않는 모종의 사건으로 광장공포증을 얻게 된 여성 정신과 의사가 있다. 그녀, 애나 폭스는 한국의 히키코모리(글쓴이 같은)에게 한 수 배워야 할 듯하다. 나 같으면 독서, 게임, 영화, 넷플릭스 등으로 하루가 모자랄 텐데 애나는 술과 신경의약품, 온라인 체스에만 몰두하고 있다. 그러다 질리면 창문으로 동네를 구경하는 게 낙인데 어느 날 새로 이사 온 3인 가족의 아내가 살해당하는 장면을 목격하고 만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살해당했다는 아내를 데려오는데, 놀랍게도 멀쩡히 살아 있는 그녀는 며칠간 지켜본 그 여자가 아니었다! 음모와 계략으로 점철된 히치콕풍 세계에서나 벌어질 법한 일이 실제로 일어났지만 문제는 애나가 광장공포증으로 외부 활동이 불가능하며 음주와 약물 의존증 때문에 주변인 누구도 그녀의 말을 믿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극복이 불가능한 이중고와 싸우며 그날 밤의 진실에 접근해가는 애나에겐 빼어난 반전과 의외의 범인이 기다리고 있다. 작가는 그간 벌어졌던 기기묘묘한 일들이 차근차근 설명되는 결말에서의 복선 회수도 매우 잘해냈다. 게다가 주인공을 고전 스릴러 광으로 설정해서 영화 얘기를 많이 넣었으며 영화에 딱 어울리는 장면들이 많아 영화 프로듀서들이 군침을 흘렸을 법하다. 다만 독자가 지나치게 많은 분량과 느린 템포(200페이지가 지나고 나서야 사건 발생)의 이중고와 싸우며 독서를 해야 하는 건 단점이다. AJ 핀은 자신의 어머니와 동생이 암으로 사망했다는 사실을 밝히고 동정표를 많이 얻었는데 알고 보니 모두 거짓말이었다. 본인은 우울증으로 인한 연극성 장애였다고 해명했지만 지금까지도 비난을 꽤나 받고 있다. 그러나 <우먼 인 윈도>에서의 실력을 보면 작가생활의 결정적인 문제는 안 될 것 같다.



4위 <조용한 무더위> - 와카타케 나나미











귀여운 곰 탈이 나오는표지 그림만 보면 서점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생이 소소한 사건을 해결하는 발랄한 일상계 미스터리 같지만 여기저기서 맞기도 하고 크고 작은 사고도 당하는 등 몸을 아끼지 않는 프로페셔널 탐정 하무라 아키라가 등장하는 소프트 하드보일드 미스터리 단편집이다. 전체 6편이 수록되어 있으며 첫 작품은 6월, 마지막 작품은 12월에 끝나 하무라의 반년을 보여주는 계절 미스터리이기도 하다. 표제작 '조용한 무더위'는 아주아주 유명한 고전 탐정소설의 모두가 아는 트릭을 현대적으로 변주한 본격 미스터리이고, '소에지마 씨 가라사대'는 서점에 매인 하무라가 전화로만 인질극 사건을 해결하는 안락의자 탐정물이며, 제목부터 <붉은 수확>의 패러디인 '붉은 흉작'은 대실 해밋 류의 고전 하드보일드에 바치는 오마쥬, '성야 플러스 1'은 하무라가 고객의 귀중품(?)을 운반하며 겪는 온갖 위험 속에서 음모(?)의 실체를 깨닫는 모험물이다(이것 역시 제목 자체가 모험소설의 고전 <심야 플러스 1>의 패러디). 데뷔작 <나의 미스터리한 일상>부터 절찬받은 인간 내면에 은밀하게 자리잡은 악의, 독기 등을 은근하게 그리는 필체는 여전한 가운데, 하무라가 탐정뿐만 아니라 추리소설 전문 서점에서 알바로 투잡을 뛰기에 독특하고 유머 넘치는 조연들이 많이 나와 예전 작품들보다 한결 읽기 편안해졌다.예전에 초기작 두 권이 나왔다가 절판된 하무라 아키라 시리즈가 중간에 몇 작품 건너뛰고 국내에 새로 출간되는 셈인데, 그새 일본에선 드라마화도 되고 매년 신작들이 미스터리 전문 잡지에서 높은 랭킹에 오르는 등 오히려 예전보다 신분이 더욱 상승한 느낌이다. 2020년에 국내 출간된 <녹슨 도르래> 역시 뛰어난 작품이었다(나만의 2020년 베스트에서는 최상위권도 노려볼 만하다고 생각 중). 앞으로도 하무라 아키라의 활약이 속속 출간될 예정이라고 하니 팬들은 기대해봐도 좋을 것 같다.



3위 미스터리 아레나 - 후카미 레이이치로











작년 <그 가능성은 이미 떠올렸다>처럼 기발하고 새로운 기법으로 고갈 위기에 놓인 일본 본격 추리소설의 돌파구를 열어가는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한마디로 아이디어로 반은 먹고 들어가는 추리소설이라 그 아이디어를 좋아하고 싫어하는 성향에 따라 반응이 극심하게 나뉠 듯. 도입부는 평범하게(?) 친구들 10여 명이 모인 산 속 콘도에서의 살인사건으로 시작한다. 그 순간, 갑자기 챕터가 바뀌며 또 다른 화자가 끼어든다. 그는 바로 <미스터리 아레나>라는 추리 프로그램의 진행자. <홍백가합전>이 이미 역사 속에 사라진 근미래의 일본에서는 1년의 마지막 날을 온 가족이 이 프로그램과 함께 보낸다는데, 도입부의 살인사건은 실제가 아니라 이 프로그램의 문제에 불과했다. 이 문제를 풀러 나온 참가자들 중 가장 빨리 맞춘 1인만 거액을 받기에 확신이 서면 중간에라도 바로 버저를 누르고 답을 말해야 한다. '내 생각에 범인은 누구이고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이렇다고.' 그런데 참가자들이 전부 추리소설에 쩛어 있는 것들이라 기상천외한 답을 쏟아낸다. 서술트릭, 성별오인, 정통 본격파, 다중인격 등 참가자들 수만큼이나 다양한 가설들이 말 그대로 쏟아진다. 독자를 속이는 추리소설의 고전적인 수법들이 총망라되고 있어 추리소설(특히 본격) 마니아들은 더욱 흐뭇하게 볼 수 있다. 더불어 작중의 문제가 추리소설의 형태로 제시되고 있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듯 추리소설에 대한 소설, 즉 메타 추리소설이기도 해서 추리소설의 각종 법칙이나 클리쉐를 토대로 가설을 제시하는 참가자들은 영락없이 우리 추리소설 마니아들을 떠올리게 한다. 평범하게 하나의 사건에 하나의 해답이라는 추리소설은 더 이상 자극을 못 주는 걸까? <마루타마치 르부아>, <그 가능성은 이미 떠올렸다>, 이 작품처럼 마치 백화점식으로 여러 개의 가설이 폭죽처럼 터지는 추리소설로 한계를 돌파하려는 노력이 갸륵하기도 하고, 좀 애처롭게도 보이는 게 사실이다. 작가의 아이디어에 감탄했고 매우 흥미로웠지만 결말이 좀 와장창 느낌인 건 아쉬웠다. 기왕에 여러 가설이 나온 김에 정말 끝판왕 격의 강력한 정답이 제시되길 바랐는데 그런 스타일의 결말은 아니었다.



2위 <사일런트 페이션트> - 알렉스 마이클리디스











<나를 찾아줘> 이래로 몇 년간 계속 지속되고 있는 도메스틱 스릴러 장르로 볼 수 있다. 가정 내에서 벌어지는 배신과 음모, 살인이 주요 테마인 이 장르는 특히 전 세계 어디서나 공통적으로 독서 시장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20-40대 여성들의 구미를 사로잡아 몇 년째 인기가 식지 않고 있다. 물론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해당 여성층은 밀리터리나 스파이, 액션, 프로파일러, 경찰물보다는 연애나 부부관계, 가정에서의 학대 등 현실적인 우리네 삶에 밀착된 얘기에 더욱 관심이 많아 보여 도메스틱 스릴러의 유행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짐작된다. 다만 가정 내에서 벌어지는 얘기를 주로 다루다 보니 가정학대나 데이트폭력, 불륜 등의 소재가 남발되어 감정적으로 공감은 가지만 추리소설로서는 순도가 떨어지는 도메스틱 스릴러도 제법 보여 읽고 나서 실망한 작품도 꽤 된다. 독자의 공감을 얻고 너만 그런 게 아니라며 다독이는 소설의 필요성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지만 역시 우리가 '추리소설'을 읽는 이유는 책장을 딱 덮었을 때 뒤통수가 얼얼한 반전이나 상상도 못했던 범인의 정체 같은 것에서 짜릿함을 느끼기 위함이 아닐까. 일상에서는 접하기 힘든 지적 쾌감 말이다. 특히 그런 점에서 <사일런트 페이션트>는 고만고만한 도메스틱 스릴러 중 단연 발군이다. 남편을 총기로 살해하고 몇 년째 입을 닫은 환자를 치료하려 노력하는 정신과 의사가 나오는 중심 줄거리는 뻔한 편인데 트릭에서 독자를 완전히 한 방 먹인다. 영국 작가가 아니라 아야쓰지 유키토나 아비코 다케마루 같은 일본의 신본격파가 떠오르는 음울한 분위기와 트릭지향적인 스타일이 서양 스릴러에 접목되니까 어디서도 접하지 못한 퓨전음식을 먹는 듯한 묘한 맛이 탄생했다. 기분 좋은 독서였고, 저자 알렉스 마이클리디스는 비슷한 시기에 데뷔한 <우먼 인 윈도>의 AJ 핀과 멋진 라이벌이 될 듯하다.



1위 <기도의 막이 내릴 때> - 히가시노 게이고











일본에서나 한국에서나 가히 추리소설의 제왕이라 할 만큼 인기가 드높은 히가시노 게이고지만 독자에게서나 평론가에게서나 비평적인 평가는 갈수록 떨어지는 추세인 듯하다. 워낙 많은 작품을 쓰다 보니 그중에 범작도 있고, 누가 봐도 돈 때문에 쓴 것 같은 안이한 작품들도 많아져서 자연히 평균이 내려간 게 아닐까. 개인적으로는 가장 좋아하는 추리소설가 중 한 명이고, 왕성한 생산력과 꿋꿋한 작가적 태도를 존경까지 하지만 어디서 그해의 베스트 추리소설을 얘기하는 자리에 게이고를 거론하는 건 좀 수준(?)이 떨어져 보이는 게 아닐까 스스로 생각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기도의 막이 내릴 때>를 다 읽고 몇 번을 고쳐 생각해봐도 이 작품은 내게 2019년 최고의 추리소설이다. 이 양반이 날림으로 쓰는 것도 많지만 적어도 본인의 양대 캐릭터인 가가 교이치로 형사와 '갈릴레오' 유가와 교수 얘기는 문장부터 구성, 트릭, 아이디어 모든 면에서 공을 들인다. 하물며 작가의 자타공인 대표작인 가가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 <기도의 막이 내릴 때>에서는 어떻겠는가. 데뷔를 <방과 후>로 했지만 실제로 제일 먼저 쓴 작품은 가가 시리즈의 첫 작인 <졸업>이라고 한다. 그야말로 게이고의 시작을 함께한 캐릭터를 영영 떠나보내는 것이니만큼 여느 때보다 집필에 힘을 준 덕분에 2010년대 게이고의 최고 걸작이라는 말에 부족함이 없다. 특유의 신파도 <용의자 X의 헌신>에 버금갈 만큼 강력하지만 플롯은 그 작품보다 더 탄탄하게 짜여져 있다. 최후에 밝혀지는 눈물 쏙 빼는 사연 못지않게 가가 교이치로라는 민완형사의 날카로운 추리가 곳곳에 돋보일 수 있도록 안배를 잘 해놓았다. 이 정도면 감동 코드와 눈물을 잘 다듬어 세일즈하는 일급의 문화상품이자, 40년 가까운 노장 추리소설가의 저력을 보여주는 회심의 한 방이 아닐까. 나 역시 게이고 작품 중 가장 좋아하는 가가 교이치로라는 캐릭터와 영영 작별하는 게 너무 아쉽다. 아직도 필력은 여전하니까 남은 작가생활 동안 그 못지않게 매력적이고 인간적인 주인공이 게이고의 펜 끝에서 또다시 탄생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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