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의 추리소설 거장 히가시노 게이고 별세 소식을 듣고 만감이 교차했다.
그동안 어린 시절부터 알았던 여러 유명인들의 죽음에 매번 씁쓸함을 느꼈지만 게이고의 죽음은 내게 더 특별한 감정으로 다가왔다.
대학 졸업 후 1년간 취직도 못하고 빌빌거리다 어쩌다 출판사 편집자로 일할 기회를 얻었는데 기왕 이렇게 된 거
큰 출판인이 되어보자는 거창한 꿈을 꾸었다.
그때 편집자로 첫 크레딧을 올린 작품이 바로 게이고의 <게임의 이름은 유괴>.한마디로 내 출판 인생의 스타트를 끊어준 작가와 작품이었다.
당시 게이고는 한국에서는 거의 알아주는 사람이 없어 판권료도 150만 원대였다. 머지않아 수억 원대로 가파르게 올랐지만 그때는 확실히 무명 작가에 가까웠다. 본진인 일본에서는 조금 나은 상황이었지만 작품 수는 많은데 히트작은 크게 없는 생계형 다작 추리소설가라고 할 수 있었다.
다소 맥없이 펼쳐지던 작품 활동에 전기를 마련해준 작품이 바로 <용의자 X의 헌신>. 나오키상을 탔을 때 내 일처럼 기뻐서 뛰어다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갈릴레오 시리즈'의 대성공 이후 완전히 스타 작가로 굳어져서 일본, 한국, 중국, 대만 등 아시아 전 지역을 호령하게 되었는데 전형적으로 늦게 빛을 본 대기만성형 작가라 할 것이다.
<게임의 이름은 유괴> 이후에도 <호숫가 살인사건>, <분신>이라는 작품을 작업했고 디른 한 작품의 외주 교정을 보았다. 여담인데 <분신>은 첫 출간 때 제목이 '분신자살'을 연상시킨다고 <레몬>으로 국내 출간했었다.
게이고가 인터뷰에서 본인의 저서 제목은 깊이 생각한 끝에 짓는다고 한국판 <레몬>에 유감을 표했었다.
이 자리를 빌어 죄송합니다. 제목 그렇게 바꾼 게 제 탓입니다...
아무튼 청운의 꿈을 꾸고 시작한 편집자 생활을 생각보다 일찍 접은 탓에 더는 게이고의 작품을 만지는 행운은 얻지 못했지만 시작을 같이 했기에(?) 늘 응원했다.
게이고의 작품이 쏟아지던 시기와 한국에서 일본 추리소설이 짧게나마 유행하던 시기는 대체로 일치한다.
워낙 저서가 많았던 터라 일본에서는 기출간작이었던 작품들이 한국에선 신작으로 소비됐고, 게이고로 인해 일본 추리소설이 잘 팔리니 덩달아 다른 일본 추리소설가의 작품들도 소개되어 국내 서점가에서 일약 일본 추리소설 붐이 일어난 것이다.
지금은 망한 나라의 잡초만 무성한 도성처럼 미야베 미유키도, 기리노 나쓰오도, 교고쿠도, 예전같지 못하니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다.
처음 읽어본 게이고의 작품은 그야말로 재미의 끝이었다. 평이한 언어로 오직 스토리의 재미에만 치중해 끝까지 달음질치는 구성이 한 번 잡으면 놓을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때는 20대로 집중력도 좋을 때라 출근할 때 반을 읽고, 퇴근하면서 반을 읽으면 하루에 한 권, 뚝딱이었다.
아마 국내 출간된 작품들의 70프로 정도는 읽어본 것 같다.
몇 년 전부터는 대표 시리즈인 갈릴레오나 '가가 형사'를 제외하고는 거의 읽지 않게 됐는데 워낙 많이 읽다보니 좀 질린 것도 있고, 워낙 저서가 많다 보니 옥석이 혼재해 평범이나 그 이하의 작품들에 몇 번 실망한 탓도 있다.
재미있는 건 일본의 대표 추리소설가라지만 의외로 마니아나 독서가들 사이에서는 크게 인정을 못 받는 면도 있다는 것이다.
평이한 언어라고 에둘러 표현했지만 사실은 중고생 일기에 가까울 정도로 문장의 맛이 없다. 밥을 먹었다, 맛이 있었다, 집에 돌아가 문을 열었더니 시체가 있었다, 식으로 계속 평범한 문장만 나열된다.
추리소설가로서 트릭도 몇몇 힘을 준 대표작들을 빼면 시시한 것이 많고 공감이 안 되는 것들도 많았다.
예전에 일본 출판사 베테랑 편집자를 만났을 때 내가 게이고를 제일 좋아한다고 하자 코웃음을 치며 게이고는 여고생이나 읽는 작가라고, 진짜 미스터리 마니아들은 따로 읽는 작가가 있다고 했었다.
여담이지만 그게 누구냐고 묻자 하라 료라고 했었다.
이 자리를 빌어 하라 료 선생의 명복도 빈다.
추리소설 동호회 등에서 제일 좋아하는 작가 등을 설문할 때 웬만하면 언급되지 않지만 나만큼은 언제나 자신 있게 히가시노 게이고였다.
괜한 어려운 말로 혹세무민하는 게 가장 증오하는 글버릇이기에 처음부터 그의 쉬운 문장이 좋았다. 압도적인 가독성과 오직 재미로만 직구 승부하는 근성을 사랑했다.
좋게 표현하면 인간 드라마, 제대로 말하면 신파로 일관하는 주제 또한 무슨 일이 있어도 상업성을 놓지 않는 대중 작가로서의 기백이라 생각했다.
죽기보다 싫은 출근길에 즐거움을 주고, 더 죽기보다 싫은 일요일 밤에도 작은 위안이 되고, 설거지를 마치고 10시 드라마가 시작되기 전 자투리 한 시간을 메꿔주는 역할.
다시 말해 그의 소설은 거창한 지식인이 아니라 늘 평범한 사람의 가장 친한 친구였던 것이다.
106편에 달하는 많은 작품수야말로 가장 존경받을 부분이다.
실은 전반기 50편 정도는 생활고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하게 던져본 것에 가까운데 놀라운 건 아시아 최고의 스타 작가가 된 후에도 생산성을 유지했다는 것이다.
장르는 미묘하게 다르지만 마쓰모토 세이초, 시바 료타로, 니시무라 교타로 등과 비슷하게 100편 이상의 작품들로 꾸준히 출간 시장을 지탱해준 타이쿤형 거장이다.
1년에 두세 편을 안정적으로 써주면 출판사와 서점들의 1년 계획을 짜는 데 더할 나위 없이 큰 도움이 된다. 좀 과장해서 말하면 출판 산업 전체가 어깨 위에 걸린 게 타이쿤형 작가들이라면 게이고는 그 역할을 성실하게 해냈다.
개인적으로 동아시아 영화인 중에 가장 사랑했던 존재가 주성치인데 한 10년 전부터 바뀌었다. 감독으로, 영화인으로 자신만의 예술을 관철하는 것도 좋지만 업계를 지탱해주는 것도 최고 스타의 의무이다. 주성치는 홍콩 영화산업 전체와 선후배 배우들을 위해 단순 고용 배우로서라도 홍콩 코미디 영화에 계속 나왔어야 했다.
게이고와 비슷한 출간 양으로 이 바닥을 지탱해주는 프로 작가가 따로 보이지 않아 일본 소설 시장의 침체도 예상해볼 수 있을 것 같다.
한동안은 유작들이 아시아 전역에서 엄청 팔릴 테니 죽어서도 출판 시장에 도움을 주는 게이고이다.
거장으로 성장한 게이고와 달리 그의 작품으로 시작했지만 나이만 먹고 이룬 게 없는 나.
안 그래도 며칠 전부터 그런 생각에 우울했는데 어제 게이고의 별세 소식을 듣고 정말 슬퍼졌다.
정말로 한 시대가 완전히 저물었다는 느낌.
20년간 일세를 풍미하던 한 사람은 죽었고, 한 사람은 소득없이 늙었으니 인간사 참으로 덧없다.
20년간 내가 가장 사랑하고 존경했던 히가시노 게이고 선생님.
명복을 빕니다.
東野圭吾
1958.2.4~2026.7.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