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밀레니엄 3 - 바람치는 궁전의 여왕>을 끝으로 스티그 라르손의 밀레니엄 시리즈 종주를 마쳤다. 평소 습관대로 전편을 연속해서 읽지는 않았지만, 2편과 3편은 이어지는 내용이니만큼 짧은 간격만 두고 연달아 읽어내렸다.

스웨덴을 포함한 북유럽의 미스터리는 의외로 국내에 제법 소개가 된 편이다.
노르웨이, 아이슬란드, 덴마크, 스웨덴 등등 핀란드를 제외한 고른 분포이기도 하다. 물론 스웨덴의 작품들이 가장 많다. 북유럽 국가중에서는 가장 인구가 많기 때문이려나.

단 한편만 소개된 것이 안타까운 <웃는 경관>의 마틴 벡 시리즈, 헤닝 만켈의 쿠르트 발란더(발란데르라고 쓰는 것이 옳은 표기법이겠다.) 시리즈, 그리고 스티그 라르손의 밀레니엄 시리즈까지가 스웨덴 작가의 스웨덴을 배경으로 하는 미스터리 소설들이다.

밀레니엄 시리즈는 헐리우드 판 영화 제작에 맞추어 국내에서도 출판사를 달리하여 새로 책이 나오고 있다. (번역자가 같은 것으로 보아 적어도 1편 -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은 같은 판본으로 보인다.)

범 북유럽의 미스터리는 동질성을 많이 갖고 있기도 하다. 북유럽 특유의 서늘하고 추운 날씨와 복지 국가의 그늘이라 할만한 윤택하지만 생기 발랄하지는 않은 다소 어두운 개개인의 일상들. 소통이 쉽지 않은 고독한 중년의 모습 등등이 많은 작품들에서 보여진다. 인드리다손의 에를렌두르, 헤닝 만켈의 쿠르트 발란더, 카린 포숨의 콘라드 세예르까지 어찌 그다지도 닮은 점이 많은지! (물론 이들의 모습이 미스터리 소설 속 중년 경감의 전형적인 모습이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 그러고 보면 <메인>의 라프왕트도 비슷한 이미지다.)

선입견 때문인지는 몰라도, 북유럽의 미스터리들을 읽고 있다보면 흐리고 을씨년스러운 날씨, 추위, 어두움 등등의 느낌이 밀려온다. 설혹 배경이 여름이라 하더라도. (어쩌면 전적으로 지치고 우울한 쿠르트 발란더 형사의 책임일 수도 있다.)

밀레니엄 시리즈는 적어도 스웨덴의 다른 작품들에 비하면 전체적인 느낌은 가장 밝다. 어둑한 저녁의 황량한 시골이 연상되는 다른 책들에 비해 밀레니엄은 밝은 대낮의 활기찬 도시가 연상된다. 남자 주인공 블롬크비스트의 일에 대한 열정과 활발한 연애활동 때문인가.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이 좌파 작가는 스웨덴의 일반적인 모습에 자신이 이상으로 추구했던 스웨덴 사회의 나아갈 길을 제시하고 파헤쳐져야 할 어두운 과거와 현재의 모습들을 고발한다. 그것이 바로 밀레니엄이 미스터리이면서도 사회소설로 불리울 만한 이유이다.

<3편 바람치는 궁전의 여왕>은 법정물로 분류해도 좋을만한 소설인데, 그 법정의 재판을 둘러싼 갖가지 사건들을 보고 있노라면 이 나라의 민주주의와 법치주의가 우리에 비해 얼마나 높은 성취를 이루어 내고 있는지 실감할 수 있다.

부도덕한 방법으로 돈을 벌던 거대 언론사주이자 기업가가 사회적으로 어떤 입장에 처하는지, 국가의 안보를 위해라는 명분아래 개인의 인권을 유린했던 정보기관이 어떤 취급을 받는지.

우리입장에서는 경탄하며 부러워 할 만한 일들이 당연하게 이루어지는 모습이나 일국의 총리가 현재 진행되는 재판에 대해 보이는 공평무사한 태도는 우리나라의 검찰과 권력기관의 행태를 돌아볼 때 부러움을 넘어 좌절감을 안겨주기도 한다. (총리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재판에 영향을 줄 수도 있는 어떠한 행동도 할 수 없다고 말한다.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에 반하는 상황이 검찰측의 주장임에도.)

복지와 함께 프리섹스의 나라로 알려진 스웨덴 답게 개인의 자유와 사생활에 대한 불가침적인 시각들은 '미풍양속'이라는 이름으로 인권을 저해하고 나아가 온갖 추악한 행패와 폭력을 일삼는 우리의 현실과 명징하게 대비되기도 한다.

독자들은 <밀레니엄>에서 그려지는 스웨덴 사회를 통해 민주주의는 각각의 사회 구성원들이 보다 더 고양된 의식을 갖추어야 진보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 개인마다 평가는 달라지겠지만, 내게는 3편이 최고의 재미를 주었다. 클라이막스이기도 한 법정 장면은 역대 어떤 법정 미스터리보다도 통쾌한 승리를 보여준다.

** 경찰 수사팀의 일원으로 등장하는 '쿠르트 볼린데르'는 '쿠르트 발란더(발란데르)'를 의식한 것일까?

*** 전국을 발칵 뒤엎은 연쇄살인 사건을 조사하는 특별팀 형사들도 9시 출근, 5시 퇴근. 주말에는 휴무를 철저히 지키는 모습은 아주 인상적이었다. 거기에 비하면 만켈의 쿠르트 발란더는 완전히 일중독자임에 틀림없다. 물론 발란더도 한국에 오면 개념없는 형사 취급 받겠지만.
한국에서는 '퇴근? 퇴근? 형사가 퇴근하면 소는 누가 키워?' 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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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viana 2011-01-19 1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야클님의 강추로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는데요.아쉽게도 3부는 도서관에 없어서 못보고 있어요. 매우매우 즐겁게 봤고 딱 보는순간 이 영화가 혹시 나왔는데 내가 못봤나라고 생각할 정도로 영화찍기 좋은 소설이라고 생각했어요. 작가가 너무 빨리 가셔서 더 이상의 글이 없다는게 아쉽더라구요. 근데 그렇게 모든 면이 우리보다 낫다고 생각한 곳에서 결혼하지 않았다고 몇십년동안 사실혼 관계에 있던 부인에게 인세가 가지 않는다는 말은 굉장히 의외였어요.
ㅋㅋ 소는 누가 키워라니 아침에 빵 터졌잖아요.

oldhand 2011-01-19 10:55   좋아요 0 | URL
스웨덴 판 영화는 이미 나왔다고 합니다. 포스터만 슬쩍 봤었는데, 리스베트 역할을 맡은 여배우 포쓰가 좀 나와주던걸요. 블롬크비스트는 좀 어벙벙해보이는 중년 아저씨였지만요.
헐리우드 버전은 데이빗 핀처가 감독을 한다고 하는데 멋진 영화가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라르손 아저씨 소설이 이렇게 크게 성공할 줄 알았다면 혼인신고나 다른 법적 조치라도 취했을텐데, 재판 진행중이라니 그 결과도 흥미롭네요. 아무쪼록 '정의'로운 판결이 나오길 바라 봅니다.
3부 아직 못 보셨다면, 나중에 꼭 보시기 바랍니다. 최고였어요. ^^
 

내친김에 연달아 올리는 3/4분기 단평.  

 <어둠이여, 내 손을 잡아라>
켄지&제나로 시리즈 제2편, 4,5편이 먼저 출판되었었기에 마치 스타워즈 에피소드 1~3을 보는 기분으로 읽을 수 있다. 박력넘치는 하드보일드물이지만, 때로는 대단히 우울하고, 어두운 면도 많이 있는 시리즈다. 미국의 현대 하드보일드물을 읽다 보면, 세상에 이런 디스토피아가 있을까 싶다. 과연 이 곳이 인간이 사는 곳이고, 세계에서 가장 잘 나간다는 국가가 맞는가? 사회의 가장 어두운 부분을 조망하는 것은 썩 즐겁지만은 않지만, 또한 많은 생각을 하게 하기도 한다.
가장 독특하고 나름 인기도 많은 캐릭터인 '부바'의 존재가 나에게는 때로 서걱거린다. 지나친 판타지 캐릭터 같아서이다. 리얼리즘을 앞세운 작품들일지라도 주연에게는 아주 현실감 넘치는 묘사를 하다가 통상 조연으로 나오는 캐릭터들에게 가끔 이런 무리한 과부하가 쏠리는 현상을 본다. 물론 부바의 존재가 소설적 재미와 통쾌함을 독자에게 안겨주지만 내게는 약간 아쉬운 점이기도 하다.


 <블러드 워크 - 원죄의 심장>
지금까지 국내에 소개된 마이클 코넬리의 소설들 중 탑 클래스에 들어갈만큼 재미있었던 소설. 코넬리는 워낙에 기대 수준도 높고, 작품의 평균 수준도 높아서 자칫하면 박한 평가를 받을 수 밖에 없는 비운의 작가이기도 하다. 역시 작가의 전매특허이기도 한 순식간에 빠져 들게 만드는 인상적인 초반 장면과 정신없이 책장을 넘기게 만드는 중반을 지나 현란하지는 않더라도 실망시키는 법 없는 마무리까지 독자의 시선을 붙잡아 두는 데 부족함이 없다. 현대 스릴러 소설이지만, 미스터리적 요소도 풍부하고 수수께끼를 풀어나가는 점이 아주 흥미진진하다는 것이 코넬리의 강점이다.
순전히 내 맘대로 결정하는 거지만, 제프리 디버와 함께 현존 미국에서 가장 재미있는 범죄 소설을 쓰는 작가에 임명하는 바이다.


 <콜드 문>
언제나 좀 묵혀 두었다가 읽는 링컨 라임 시리즈. 후속작이 나온 후에나 그 전편을 읽게 되는데, 읽고 나면 아, 다음편이 아직도 남아 있구나 하는 안도감이 든다고나 할까. 그만큼 독서의 만족감을 주는 흥행 보증 수표라 할 만하겠다. <브로큰 윈도>가 얼른 읽고 싶기도 하지만, 역시 조금 묵혀 두었다가 후속작 소식이 들려올 때 쯤 사서 보아야 겠다는 생각을 한다.
라임 - 색스 콤비 플레이에 이번에는 새로운 고수 '심문의 달인' 캐스린 댄스가 수사에 합세한다. 본작에서 링컨 라임만큼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던 캐스린 댄스를 주인공으로 한 새로운 시리즈가 시작되었으니(모클에서 시리즈 첫 작인 <잠자는 인형>이 출간되었다.) 이 또한 기대해 볼 만한 리스트가 될 것 같다.


 <로마서브로사3 - 카탈리나의 수수께끼>
후속편이 나올 수록 빛이 더욱 배가되는 스티븐 세일러의 로마서브로사 시리즈.
스파르타쿠스의 반란이 곁가지로 등장했던 전편에 반해, 이번에는 역사적 실화인 카틸리나의 역모 사건을 정면에서 다룬다. 공화정 말기 지배 계급의 이익을 대변했던 키케로와 대립했던 정적 카틸리나를 새로운 시각으로 재 조명하는데, 고르디아누스의 정치적 고뇌와 키케로와 카틸리나의 생생한 묘사 등이 압권이다.
약간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이 소설은 읽고 나면 묵직한 여운을 남긴다. 주인공 또한 매 사건을 겪으면서 더욱 인간적으로 성숙해 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독자도 고르디아누스만큼 정신적으로 성숙해 질 수 있는 감동과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시리즈의 판매가 극히 부진해서, 과연 10권 전 작이 모두 나올 수 있을지 염려가 된다. 내 주위에라도 일독을 적극 권장해야 겠다.


   <철서의 우리>
무려 4년만에 돌아온 교고쿠도.
물론 그 사이에 외전격인 백기도연대가 두 권 출간되었지만, 그것만으로는 목마름을 해소할 순 없었다. 이렇게라도 그동안의 기다림을 상쇄해 줄 양인지 <모방범>, <암흑관의 살인>에 버금가는 엄청난 분량과 교코구도의 끝없는 강의가 펼쳐진다. 이쯤되면 이미 교고쿠도의 추종자들은 만족스러울 터.
그렇지만 사건 자체의 불가사의함이나 기괴함은 기존의 시리즈에 좀 못 미치지 않았나 싶다. 시리즈 전편에서 활약했던 기바와 광골의 꿈에 새롭게 등장해 대활약을 펼쳤던 낚시터 주인 이사마가 출연하지 않은 점도 조금 아쉽다.


 <뉴욕을 털어라>
도널드 웨스트레이크의 코믹 범죄 소설 도트문더 시리즈의 첫작품.
케이퍼 소설이라 불리우는 장르이다.
<스팅>, <내일을 향해 쏴라> 처럼 범죄자를 주인공으로 하여 유쾌하고 가볍게 이야기를 전개하는 케이퍼 무비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거칠고 폭력적인 파커 시리즈와 달리 키득거리면서 술술 읽을 수 있다. 1970년 작품이니 발표된지 무려 40년이 된 소설이지만, 몇 가지 설정만 달리한다면 최근에 씌여진 소설이라 해도 무방할 만큼 세련되고 매끄럽다. 역시 그랜드마스터의 칭호를 받을만한 작가라 아니할 수 없다.
천재적인 절도 전문가이지만, 먹고 살기 위해 외판원 노릇을 하기도 하는 소시민적인 범죄자 도트문더와 어리숙하기 짝이 없는 그의 친구 켈프의 대화는 시종일관 배꼽을 잡게 만든다.


 <지옥에서 온 심판자>
워싱턴의 흑인 사립탐정 데릭 스트레인지 시리즈 제2작.
대단히 강한 인상을 심어주었던 전작 못지 않게 이번에도 재미있게 읽었다. 현실감 넘치면서도 마초적인 하드보일드. 이제 파트 타임 파트너의 신분으로 변신한 테리 퀸과 스트레인지는 각각 다른 사건을 담당하는데, 두 사건 모두 미성년자에 얽힌 사건이라는 것이 흥미롭다.
빈민가 흑인 사회의 처참함과 살벌한 현실이 가감없이 그려지고, 거침없는 폭력과 욕설 등은 관련 장르를 좋아하지 않는 독자들에게는 조금 꺼려질 것도 같다.
켄지&제나로 시리즈가 젊은 혈기로 맞서는 어두운 암흑가의 이야기라면, 스트레인지는 노년의 초입에 있는 나이인만큼 보다 더 주위를 돌아보는 연륜도 있고 그에 반해 세속적이기도 하다. 물론 젊은 혈기를 불태우는 파트너 테리 퀸도 있기에 이들 콤비가 더 빛을 발하는 것이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정말 재미있는 하드보일드인 이 시리즈를 더 이상 국내에서는 보기가 어려울 것 같아 아쉬울 뿐이다.


 <여왕벌>
지난 겨울에도 잠깐 등장했지만, 올 여름에도 어김없이 돌아온 긴다이치 코스케.
언제나 그렇듯이 긴다이치 주변의 사건 관계자들은 속속 죽어 나가고, 모든 사건이 마무리된 후 '사실은 이런 사건이었습니다.' 털어놓는 탐정도 그대로다. 그렇지만, <여왕벌>은 이미 여러 리뷰에도 언급되었듯이 기존 작품들과는 조금 다른 면도 보여준다. 공간의 확장성이라든가, 봉건적 인습에 얽힌 사건이 아니라든가 하는 점들에서.
그렇더라도 여전히 책장은 술술 넘어가서 제법 두툼했던 책이 금방 읽히게 만드는 것은 이 시리즈의 미덕이다.
출판계의 흐름 때문인지, 일관성 있는 표지는 계속 유지하고 있지만, 활자의 크기와 자간은 후속편으로 갈 수록 점점 헐렁해 지고 있는 것 같다. 두꺼운 책을 좋아하지만 헐렁한 책은 또 별로 안 좋아하는 나는 까탈스러운 독자다.


 <그리고 명탐정이 태어났다>
이례적일 만큼 올 여름 시장에서 성공한 소설.
우타노 쇼고가 <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 하네>로 국내 독자들에게 이름을 알리긴 했지만, 히가시노 게이고나 미야베 미유키 같이 고정 독자층을 가진 것도 아닌데, 적어도 알라딘에서는 베스트 셀러의 반열에 오를 만큼 많이 팔린 책이다. 지하철에서 이 책을 읽고 있는 사람을 봤을 정도면 출판사로서는 본전은 뽑고도 남음이 없을 터이다.
출판사 문학동네의 힘인가 생각해 보기도 했지만, 블랙펜 클럽 리스트가 모두 잘 팔린것은 절대 아니기에 여러가지 의문은 남는다. 그리고 테마 또한 본격 미스터리의 열렬한 독자들에게나 즐거운 내용 아닌가.
어쨌든 3편의 중편 소설은 각기 인상적이긴 한데, 역시 두 번째 소설인 <생존자, 1명>이 가장 재미있었다. 이 한편만으로도 읽을 가치가 있다. 요코야마 히데오의 <역전의 여름>에 비견할 만한 빼어난 중편.


 <잘린 머리처럼 불길한 것>
편집자 출신 미스터리 작가 미쓰다 신조의 ~처럼 ~한 것 시리즈.
후속편이 나올지는 모르겠으나, 독특한 시리즈를 만들어 내는 데에는 놀라운 재주를 갖고 있는 일본 미스터리에서도 이 시리즈 만큼 독특한 시리즈가 또 있을까 싶다.
과거의 사건을 소상히 기록한 초중반은 살짝 지리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잘린 머리라는 소재에 대한 탐닉에 가까운 천착과 잘 짜여진 복선, 현란하기까지 한 마무리는 '본격 미스터리'라는 본분을 아주 충실하게 지키고 있다.
화려하고 불가사의한 설정이지만 종반부에서 허탈해지는 소설들 보다는 전개는 조금 느슨하더라도 박력 넘치는 마무리의 소설들이 나는 더 좋다.
독자가 방심할 수 있는 부분이 어디인지를 잘 파악하고 있는 작가의 능수능란함과 치밀함이 돋보이는 수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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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viana 2010-10-07 1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옛손님 반가워요.ㅎㅎ
추천해 주신 책들은 잘 기억하고 있겠어요.
근데 왠만하시면 이달의 단평정도로 바꿔주세요. 자주 뵙고 싶으니까요.^^

oldhand 2010-10-07 14:01   좋아요 0 | URL
아, 파비님 오랜만이십니다. ^^
분기별 단평도 엄청 밀리는거 보셨으면서.. 이달의 단평이 가능할까요? -_-;

이매지 2010-10-07 15: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마이클 코넬리를 제프리 디버와 함께 현존 미국에서 가장 재미있는 범죄소설을 쓰는 작가로 임명 ㅎㅎ
로마 서브 로사와 잘린 머리처럼 불길한 것은 망설이고 있었는데 읽어봐야겠네요 :)

oldhand 2010-10-07 16:05   좋아요 0 | URL
코넬리와 디버가 있어서 햄볶아요. ㅎㅎㅎ.
로마 서브 로사 읽고 재밌으면 홍보좀 많이 해주세요. 좋은 책이 좀 많이 팔려야 하는데 말이죠. 그렇다고 제가 알바는 아닙니다. ㅎㅎㅎ.
 

1/4분기 단평을 쓰면서 우려했던대로 2/4분기 단평을 쓰지도 않은 시점에서 어느새 10월, 4/4분기다. 마음의 부담으로 살며시 남아 있었던 차에 조금 여유가 생겨서 미루어 둔 숙제를 하는 기분으로 3/4분기까지 빠른 시일내에 올려봐야 겠다는 결심을 해 본다. 그대신 편수를 대폭 줄여서. 아하하.

<유다의 창>
내가 미스터리 소설을 읽는 가장 큰 이유는 당연히 재미있기 때문이다. 장르 소설이나 대중 소설로 폄하하기도 하지만, 미스터리 안에는 온갖 다양한 시각과 관점, 문학성, 인간에 대한 탐구 그리고 빠뜨릴 수 없는 지적 쾌감이 들어 있다. 본격 미스터리 안에서 맛 볼 수 있는 불가해한 상황과 놀라운 진상에 도달했을 때의 그 짜릿함은 다른 분야의 독서에서 결코 쉽게 느낄 수 없는 부분이다. 딕슨 카의 대표작으로 회자되었지만 우리 글로는 접할 수 없었던 전설의 명작 <유다의 창>은 명불허전, 짜릿함을 넘어선 황홀한 걸작이었다. 밀실 트릭만으로는 걸작의 반열에 오르기 힘들었겠지만,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법정 공방과 이야기를 풀어가는 작가의 탁월한 능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런던의 모든 방문에는 '유다의 창'이 존재한다!
1년동안 이만큼 흥미진진하고 짜릿한 소설을 한 권 이상 읽는 일은 흔치 않을 것이다. 발표연도가 1938년, 시대를 초월한 걸작이란 바로 이런 작품이 아니겠는가.


<로마서브로사 2 - 네메시스의 팔>
1권에 이어 8년이라는 세월을 훌쩍 건너 뛰었다. 스파르타쿠스의 반란이 한창이던 BC72년. 당대 최고의 재력가이자 권력자인 크라수스의 사건 의뢰를 받은 고르디아누스의 활약이 펼쳐진다. 2000년 전의 사립 탐정이지만 고르디아누스는 필립 말로와 루 아처의 혈통을 이어 받고 있다. 로마의 시민이고, 남들에게 존경 받는 직업을 가진것도 아니지만 그에게는 인간미가 넘쳐 흐른다. 잔혹한 사건들과 추악한 권력 사이를 헤집고 다니지만, 소설의 끝은 언제나 묵직한 감동을 전해 준다. 고르디아누스는 시대의 진정한 휴머니스트다.


<죽은 자의 몸값>
1년에 1~3권 씩 잊혀질 만 하면 빼드는 캐드펠 시리즈.
8월에 읽은 <고행의 순례자>까지 어느덧 10권째에 도달했다. 20권 시리즈의 반환점을 돈 것.
엘리스 피터스의 캐드펠 수사 시리즈는 크리스티의 소설들에 비견할 수 있는데, 트릭이나 본격의 맛은 좀 더 적고, 로맨스가 더 부각되는 편이다. 젊은 연인들의 격정적인 사랑과 그에 얽힌 살인, 그리고 캐드펠의 지혜로운 해결. - 이는 사건의 해결 뿐 아니라 그에 얽힌 인간사의 해결을 포함한다. 이 자그마한 노수사는 중세의 중매장이라 불리워도 될 것 같다.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구입해 놓고 차일 피일 미루며 자그마치 5년을 묵혀 두었던 책을 비로소 읽었다.
르 카레의 소설은 '스파이 소설'로 분류되지만 그의 스파이 소설에는 박력 있는 액션도, 손에 땀을 쥐는 추격전도 없다. 오직 고뇌하는 정보원들과 그들의 내적 암투, 누구도 믿을 수 없는 불신의 세계가 있을 뿐이다. 스마일리는 그의 개인사가 얽혀 있어 더욱 우울함의 포스를 발산하고 있어서 사실 쉬이 읽히는 책은 아니었다.
르 카레는 놀랍도록 실감나게 영국의 정보부를 소설 속으로 옮겨 오는데, 더욱 놀라운 것은 상당수의 스파이 용어와 은어들이 그의 창작품이라는 것이다. 공히 '르 카레 월드'라 불러도 좋겠다.


<명탐정의 규칙>
장르 매니아를 위한 장르적 클리셰에 대한 통렬한 자아 비판.
이런 작품이 나오고, 독자의 반향을 일으킬 만한 일본의 풍성한 저변이 부럽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히가시노 게이고의 팬층이 적지 않기 때문에, 제법 많은 판매고를 기록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이런 내용을 키득거리면서 즐길 수 있는 독자층이 오히려 책의 판매량 보다도 적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밀레니엄 1 -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마르틴 벡 시리즈, 쿠르트 발란더 시리즈, 밀레니엄 시리즈. 모두 스웨덴의 추리 소설들이다.
인접 지역인 북유럽, 스칸디나비아의 미스터리도 나라마다 미묘하게 다른 색채를 띄는 것 같다. 스웨덴은 아무래도 가장 인구도 많고, 그에 따라 범죄의 발생 건수도 절대적으로 많을 것이기에, 노르웨이나 아이슬란드를 배경으로 한 소설들보다 더 잔혹하고 선정적이다. 그렇다고 또 미국의 최신 크라임 소설에서 흔히 다루어지는 비정상적인 섬뜩한 연쇄 살인마가 등장하는 현란한 미스터리 스릴러도 아니다.
밀레니엄은 충격적이고 센셰이셔널한 내용을 다루고 있지만, 그에 반해 대단히 건조한 문체로 소설이 선정적으로 흐르는 것을 막고 있다. 작가의 급작스러운 사망으로 3부에서 멈춰버리고 말았지만, 아직 내게는 두 편이 남아 있다는 사실에 만족감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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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회째를 맞이하는 와우 북 페스티벌에 올해에야 처음 가 볼 기회가 생겼다.
토요일, 비교적 이른 시간에 도착했더니, 아직 문을 열지 않은 부스들도 많았다. 북스피어에서 반품 도서도 저렴하게 구입하고, 점심먹고 다시 천천히 되짚어 부스를 둘러보느라 다시 찾은 북스피어 부스 한 구석에 차려져 있던 페이퍼 하우스 책들 중에서 눈이 번쩍 뜨이는 월척 발견. 두둥.
 
아동용으로 나온것을 제외하면 국내 초역인 울리치의 <검은 옷을 입은 신부>.

아니, 이 책이 언제 나왔나요?

"초신간인지라 아직 서점에도 깔리지 않았어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흥분해서 출판사분을 붙들고 이것 저것 물어보았다.
그 분의 말씀은 Black 시리즈라도 다 내는 것이 목표라고 한다. 하지만 판권 계약은 아직 하지 않았다고.
역시 <검은 옷을 입은 신부>의 성적이 상당부분 향 후 추가 출간을 좌우할 것 같다. 그리고 최근 울리치의 국내 판매 성적을 미루어 보면 결코 녹록치는 않을 것 같다.

"새벽의 데드라인도 꼭 좀 다시 내 주세요"라는 말을 전하였는데, 참고가 될런지.

그러나 저러나 작년 <밤은 천개의 눈을 가지고 있다>에 이어 울리치의 팬들에게는 반가운 소식임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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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10-09-14 15: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으.. 전 이틀이나 갔는데 못 봤어요. 아직 신간 서점에 안 뜨네요.
블랙시리즈 세 권정도 원서로 가지고 있는데, 이 작품도 일단 있는거기 하지만, 나오면 앞으로의 블랙시리즈들을 위하여! 꼭 사도록 하겠습니다.


oldhand 2010-09-14 17:29   좋아요 0 | URL
월요일에는 온라인 서점에도 깔리겠거니 했는데, 오늘까지도 안 보이네요. 추석이 지나야 깔릴런지. 잘 팔려서 다른 작품들도 쭉쭉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oldhand 2010-09-16 1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92년에 국일문화사에서 <미망인 살인수첩>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적이 있다고 합니다. 국내 초역은 아니고, '제대로 된 제목의 최초 완역본'정도가 되겠습니다.
 

월별로는 힘들더라도 분기별로는 인상깊었던 책들에 대해 단평정도는 쓸 수 있을 것 같다는 지레짐작을 했었지만, 웬걸. 4월이 다 지나서야 1/4분기에 대한 글을 쓴다. 4월 초에 읽었던 황홀한 걸작 <유다의 창>에 대한 이야기는 2/4분기 편에서나 쓸텐데, 과연 2/4분기편이 작성 될지도 미지수이다.
 
 <로마서브로사1 - 로마인의 피>
스티븐 세일러의 로마서브로사 시리즈 첫 권.
로마시대의 사립탐정 고르디아누스는 현대의 하드보일드 탐정과 유사하다. 공화정의 로마는 권력을 견제하기 위해 경찰제도를 포기한 사회였다. 밤의 로마는 살풍경한 무법지대로 변신한다. 고르디아누스가 뒤쫓아간 사건의 정황은 참혹한 일면을 드러내며 탐정을 고뇌하게 만들고, 키케로는 화려한 변론으로 소설의 말미를 수 놓는다. 로마시대를 생생하게 재현함에 그치지 않고, 실존인물, 가상인물을 가리지 않고 각각의 등장인물에 숨결을 불어넣은 작가의 필력은 훌륭하다. 책의 만듦새도 좋고, 번역도 그다지 걸리는 부분없이 잘 읽힌다. 시리즈의 흥행이 성공하길 기원한다.

 <안녕 내사랑>
필립 말로를 처음으로 만났던 작품. 10여년만에 북하우스판으로 다시 읽었다.
처음 읽었던 때보다 훨씬 좋았다. 곱씹을수록 챈들러는 빼어난 작가이며, 말로는 매력적인 탐정이다.
게다가 필립 말로 시리즈 장편들 중 가장 우수한 작품으로 1, 2위를 다투는 작품이 아닌가.
시간이 흐른 후 또 다시 읽고 싶은 생각이 들게 만드는 작품, 그리고, 읽을 때 마다 새로운 장면들을 발견하는 기쁨을 줄 수 있는 작품을 만날 수 있는 독자는 행복할 따름이다. 대를 이어 읽을 만한 소설. 이제 막 한글을 깨친 큰 아이를 보면서, 훗날 세월이 좀 더 흘러 필립 말로에 대해, 루 아처에 대해, 샘 스페이드에 대해 내 자식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행복한 상상을 해 본다.

 <실종- 사라진 릴리를 찾아서>
가독성 최고의 작가 마이클 코넬리.
평범한 주인공이 휘말리는 서스펜스의 긴장감을 이토록 현란하게 구사할 수 있는 작가는 많지 않다.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하는 주인공에 대한 린치 장면 등은 영화, 소설에서 흔히 보이는 잘생기고, 영리하며, 주먹질까지 잘하는 주인공들이 환타지라는 것을 깨닫게 해 준다. 이야기가 어떻게 마무리 될 지 미처 예상할 틈도 없이 숨가쁘게 결말까지 질주하는 쾌감을 선사한다. 찬탄을 자아낼 만한 걸작은 아니지만 범작이 이 정도라면, 보증수표도 이런 보증수표가 없는 셈이다.

 <파일로 밴스의 고뇌>
15년 쯤 되었나, 굉장히 오랜만에 다시 읽은 <주교 살인 사건>은 초독의 재미에 미치지 못하였다. 미스터리에 본격적으로 탐닉하기 전인 순진한 독자 시절에는 눈에 띄지 않았던 경찰 수사의 터무니없는 허술함이 가장 신경에 거슬렸고, 사건 발생 정황상 가장 먼저 용의선상에 떠오를 수 밖에 없는 사람을 별다른 심문도 하지 않고 넘어가는 밴스의 속셈은 과연 무엇이었는지 궁금하다.
물론 미덕도 있다. 지금에서야 흔하디 흔한 플롯이지만 마더 구즈를 차용한 동요 살인을 다룬것은 이 작품이 거의 최초가 아닐까. <주교 살인 사건>은 크리스티의 저 위대한 걸작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에 중요 플롯을 제시한 작품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주교 살인 사건이 10년 먼저 씌어졌다.)
국내 초역된 <그레이시 앨런 살인사건>은 반 다인의 밴스 시리즈라는 것을 제외하면, 실망스러운 수준이다. 특히 작중 밴스의 호감을 사는 매력적인 아가씨로 등장하는 그레이시 앨런의 묘사는 시대상을 반영하더라도 감내하기 힘든 수준이다. 아무리 봐도 그레이시 앨런은 지능이 부족한 사람 이상으로 보이지 않는다. 반 다인은 발랄하고 활달한 것과 어리석고 철 없는 것을 혼동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 다인의 전 작품이 소개되고, 읽혀진다는 것은 이런저런 실망을 충분히 감내할 만한 일이다. 북스피어의 반 다인 시리즈는 고전 미스터리의 애호가라면 당연히 소장 가치가 있는 아이템이다.

 <죽은 자는 알고 있다>
수많은 미스터리 문학상을 수상하였지만, 이제서야 국내에 최초로 소개된 로라 립먼의 작품이다.
볼티모어 경찰 시리즈 중 한 권이라고 하는데, 작가의 대표 시리즈 물은 또 따로 있다고 한다. (전직 기자 아마츄어 탐정 테스 모나한 시리즈)
섬세하고 치밀한 심리 묘사는 자극적이지 않은 내용으로도 충분히 독자에게 책을 읽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과거의 사건에 얽매여 있는 현재라는 점에서 낸시 피커드의 <스몰플레인스의 성녀>와도 유사성이 있다. 두 여성 작가들의 작품을 비교해 가면서 읽는 재미도 쏠쏠할 것이다. 아쉬운 점은 시리즈 물임에도 불구하고 한 편만 소개되었기 때문에 경찰들의 캐릭터에 익숙해 질 시간이 없다는 것. 세 명의 주요 캐릭터가 있는데, 이들에 대한 묘사나 설명이 뭔가 허전하게 느껴져 아쉽다.
최근에는 좀 주춤하고 있지만, 일본 미스터리의 범람과 검증된 유명 작가의 작품들만이 근근히 주목을 받는 출판시장에서 다양한 작가들의 최신 수작들을 접할 수 있는 블랙캣 시리즈는 나같은 독자들에게는 아주 소중한 리스트이다. 시장의 차가운 반응에도 불구하고 최근에는 책을 내는 속도도 조금 빨라진 것 같은데,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

 <수도원의 죽음>
그리스 로마 시대와 더불어 역사 미스터리 배경의 양대 산맥으로 꼽히는 곳은 역시 중세, 그중에서도 수도원이 아닐까.
꼽추 탐정 샤들레이크 시리즈는 수도원만을 배경으로 하지는 않지만 시리즈 첫권을 장식하는 <수도원의 죽음>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수도원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을 다루고 있다. 헨리 8세가 수장령을 발표하고 영국의 종교개혁을 단행할 즈음, 가톨릭 수도원들은 왕권에 밀려 쇠퇴와 해체의 길을 걷는다.
중세 시대 서민들의 비참한 삶과 헨리 8세의 철권 통치하에 억눌려 있는 지배층의 분위기, 타락한 가톨릭 수도사들과 그들의 위기감등이 잘 그려진다. 최근 시리즈 2작인 <어둠의 불>이 출간되었다. 입소문에 의하면 전작보다 더욱 빼어난 작품이라고 하니 기대감이 부풀어 오른다.

 <네 번째 문>
불가능하기 짝이 없는 밀실 살인, 마술사, 강신술. 미스터리 독자라면 누구를 떠올릴까. 폴 알테르의 <네 번째 문>은 현세에 재림한 딕슨 카의 작품을 보는 것 같다. 프랑스 출신 작가지만 영국을 배경으로 한 것도 딕슨 카에 대한 흠모가 아닐지. 지금까지 작가가 발표한 다른 작품들도 모두 1930년 대 고전 미스터리의 분위기를 띄고 있다고 한다. 1987년 작품이므로 이 소설도 어느덧 발표 후 20년이 훌쩍 넘었지만, 비슷한 시기에 등장하기 시작한 일본의 '신본격'류와 비교해 가면서 읽는 것도 또 다른 재미거리.

 <밤산책>
여름마다 돌아오던 사나이 긴다이치 코스케가 이례적으로 겨울에도 출현했다.
일본 독자와 평단 사이에서도 찬반 양론을 일으켰다는 논쟁의 작품. 그러나 역시 가독성 하나만은 명불허전이다.
고전 추리소설의 수많은 클리셰들이 등장하고, 이를 적절히 엮어 기괴한 분위기와 그로테스크함을 연출하는 것은 작가의 뛰어난 재주이다.

 <악의>
10여편을 읽고 굳이 새로운 작품을 찾아 읽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 멀어진 후 근 3년 만에 읽은 히가시노 게이고였지만, 내가 읽은 게이고의 작품 중 탑을 다툴만하다.
단도직입적인 작가는 제목에서 모든 것을 말하고 있지만, 독자들이 그 저의를 깨닫기 까지는 조근조근 세세하게 사건의 뿌리를 캐는 가가 형사의 발걸음을 따라 한참을 쫓아간 후가 될 것이다. 사건의 동기를 파헤치는 이른바 "Why done it?"류에서 이만한 최상급의 미스터리를 완성한 작가에게 박수를.

 <잘린머리에게 물어봐>
신본격 작가군을 언급하면 항상 빼놓지 않고 들어가는 이름 '노리즈키 린타로'의 장편 국내 초역이자 그의 대표작.
잘 설계되어 튼튼히 지어올린 콘크리트 건물을 연상케 하는 본작을 읽고 나서 들었던 생각은 바로 '원조'에 대한 그리움이었다.
신본격 미스터리 작가군에 가장 큰 영향과 영감을 준 작가는 틀림없이 엘러리 퀸일 것이다. 캐릭터, 플롯, 추리 방식, 페어 플레이를 표방한 독자에의 도전 등 퀸의 그림자가 그들의 작품 도처에 짙게 드리워져 있기 때문이다.
퀸의 등장 이후 50여년이 넘게 흐른 20세기 후반 그의 고국도 아닌 일본에서 그의 후계자들을 자처했던 작가군들이 대거 등장한 것이다. 엘러리 퀸에게는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는 것 같다.
나의 추리소설 역사에서도 엘러리 퀸은 도일, 크리스티에 이은 세 번째 사랑이었지만, 미스터리팬으로서의 자각을 시점으로 한다면 오롯이 첫사랑이다. 장르에 대한 애정을 돈독히 하게 된것도 역시 퀸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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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클 2010-04-29 17: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숨어서 추리소설만 읽고 계시는군요. 잘 지내시죠? ^^

oldhand 2010-04-29 17:12   좋아요 0 | URL
아하하, 뭐 다른 책들도 가끔 읽긴 합니다만 평을 올릴 깜냥은 없는 지라 미스터리 관련 책들만 올렸어요. 잘 지냅니다. 야클님도 잘 지내시죠? 애기도 많이 컸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