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곳 1~6 세트 - 전6권
최규석 지음 / 창비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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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곳최규석 만화 / 창비

 

 

인간의 삶에 있어서 ''은 소중하다. 어떤 행위로든 그 움직임 속에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로 들어서면서 인간은 집에서보다 직장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은 '직장인'이 되어버렸다. ''이라는 단어는 우리에게 스트레스와 직결되는 개념이자, 불안의 원천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을 멈출 수 없다.

 

 

우리는 왜 일을 하는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언뜻 떠오르는 답은? "먹고 살기 위해서.." 그렇게 살다 가기엔 우리의 삶이 안타깝다. 만약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이 즐겁다면, 우리 인생의 반을 즐겁게 보내고 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이는 단지 물리적인 시간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노사 관계를 생각해본다. 고용주는 고용자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굳이 입으로 답을 듣지 않아도 안다. 고용자들을 어떻게 대하는가를 보면 훤히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울며 겨자 먹기로 날이 밝으면, 시간이 되면 뭐에 끌린 듯, 홀린 듯 출근을 해야만 하는 마음은 슬프고 무겁다. 비참하다.

 

 

노동운동에 대한 만화를 그려보자는 생각을 어렴풋이 한 때부터 몇 년에 걸쳐 수도 없이 각오와 포기를 오가며 띄엄띄엄 취재를 했습니다. 노동운동에는 거기에서만 찾을 수 있는 특별한 이야기들이 있었고 그 특별함은 저를 잡아끄는 매력이자 벽이었습니다. 벽에 가로막혀 수십 번 마음을 접었다가도 취재 도중에 만난 사람들의 의지와 회의, 낙관과 비관, 영광과 상처들이 포기 쪽으로 기우는 저를 돌려세웠습니다. 혼란과 막막함을 안은 채로 이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도록 저를 잡아끈 수많은 송곳들에게 이 만화가 힘이 되기를 바랍니다.”     _작가의 말

 

 

 

중국집에서 배달맨으로 일하던 중 오토바이를 망가뜨렸다고 쫓겨난 한 젊은이가 공원에서 잠을 자고 있다. 6개월이나 일했는데 월급을 한 푼도 못 받았다. 마침 이 젊은이를 목격하고 도움을 준 이는 이 책의 중심인물 구고신 소장이다. 명함엔 떼인 임금 받아드림 부진노동상담소 소장이라고 되어있다. 체불/산재/부당해고/노동조합/ 무료상담이라는 글귀도 보인다.

 

 

이수인’ - 이 스토리의 주인공이다. 이 사회에 꼭 필요한 사람이다. 있어야 할 사람이다. 그러나 이 사회는 이런 존재감을 엄청 싫어한다. 수인은 불의를 보고 그냥 못 지나가는 성품, 아무런 이유 없이 고통과 불편을 겪어야 하는 사람들을 그냥 못 지나친다. 어려서부터 그런 기질이 듬뿍 담겨 있었다. 그 때문에 타인의 고통과 불편함을 덜어주다가 결국 자신의 고통과 불편함으로 위치 변동이 되었다. 막연히 출세를 꿈꿨다. 그 꿈을 꿀 무렵, 그 시절에 TV에 나오는 출세한 사람들은 육군사관학교 출신이었다. 육사에 입학했다. 육사에 있을 때, 대선이 있었다. 부재자 투표를 앞두고 대대장과의 개인면담. 압박감이 몰려든다. 아무리 생각해도 받아들이기 힘들다. 항명이다. “레일위를 달리기만 하면 되는 결정된 삶에서 벗어나 다시 행선지를 알 수 없는 불안한 출발선에 서야하고..” 그래도 어쨌든 그 안에서 살아남았다. 그러나 여전히 불안하다. 자신이 어디로 튈지 모르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군 생활을 하는 중에도 타협 불가할 일들만 생긴다. 블랙홀은 어디에나 있었다. 군납품비리를 목격하면서 더 이상 그 일에 동참하기 싫었다. 전역지원서를 내고 10년간의 복무를 끝내고 나온다. 제대 후 외국계 유통회사에 입사한다. 처음엔 그런대로 괜찮아보였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어둠의 몸짓이 보이기 시작한다. “눈을 감고, 고개를 돌리면 나 하나는 지킬 수 있다. 적어도 이곳에서는 그렇게 눈을 감고 조용히 세상과 나의 거리를 좁혀나갈 수 있을 거라 믿었다.”

 

 

노조를 만드는 것은 회사 하나 차리는 것보다 더 힘들다. 그 과정 중에 수인은 구고신 소장과의 만남이 이뤄진다. 운명적인 만남. 필연이기도 했다. “분명 하나쯤은 뚫고 나온다. 다음 한발이 절벽일지 모른다는 공포 속에서도/ 제 스스로도 자신을 어쩌지 못해서/ 껍데기 밖으로 기어이 한걸음 내딛고 마는/ 그런/ 송곳 같은 인간이.”

 

 

노동운동가들을 빨갱이로 인식하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도 그렇다. 기업가들은 권력 있는 자들을 좋아한다. 권력을 잡은 인간들은 기업가들을 좋아한다. 돈이 필요하고, 힘이 필요하다보니 서로 호형호제하며 희희낙락이다. 그리고 그들은 음모를 꾸민다. 그들의 음모가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을 막아야한다. 이 만화책은 작가가 의도하던 아니던 간에 노동법텍스트로 손색이 없다. 내가 당연히 찾아야 할 권리가 무엇인지 알 필요가 있다. 일터에 내 혼을 다 쏟아 부었을 때 내게 과연 무엇이 남아 있을까? 신중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 땅에 일만 하다 가기 위해 태어 난 것이 아니지 않은가? 그렇다면, 소나 노새하고 다를 것이 무엇이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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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 - 싸울 수밖에 없다면 이겨야 한다
이진우 지음 / 흐름출판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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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전쟁론이진우 / 흐름출판

 

북한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전면전도 불사하지 않겠다고 기를 쓴다. 김정은은 최근 연이은 군 수뇌부 숙청으로 북한 내에서 권력의 자리를 든든히 하겠다는 의지를 다졌다. 최근 DMZ주변의 고사포 도발 역시 김정은의 생각이라는 것은 새삼 말할 필요가 없다. 이 같은 진행과정은 자신이 북한군을 명실상부 장악하고 있는 최고 사령관이라는 것을 인민들에게 재차 확인시키려는 의도로 분석되고 있다.

 

 

싸울 수밖에 없다면 이겨야 한다.” 동양에 손자병법이 있다면, 서양엔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이 있다. 전쟁과 전략의 사유에서 두 사람을 비껴갈 수 없다. 이들이 시대를 넘어서 회자되는 것은 폭력을 낳을 수밖에 없는 인간관계와 인간 행위의 폭력성을 이들처럼 철저하게 사유한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왜 우리는 싸우는가? 싸울 수밖에 없다면 어떻게 이겨야 하는가? 모든 사람이 승리를 위해 노력한다면, 어떤 전략을 세워야 하는가? 손자와 클라우제비츠는 이런 물음에 대한 대답을 진지하게 찾고, 이 과정에서 우리의 생각과 상상력을 끊임없이 자극한다. 두 책은 동서고금의 전서(戰書)들 중에서 독보적인 자리를 차지한다. 고대의 전국시대와 근대의 나폴레옹 전쟁으로부터 얻은 인식과 통찰을 담고 있는 이 책들은 전략과 전술의 기본서일 뿐만 아니라 전쟁의 근본원리에 관한 포괄적인 철학서이다.

 

 

 

“21세기는 그 어느 때보다 전략을 요청하는 시대이다. 전쟁에 관한 가장 위대할 뿐만 아니라 유일무이한 전쟁론을 읽어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럼에도 방대할 뿐만 아니라 치밀한 논리로 짜여 있어 복잡하기 짝이 없는 이 책을 읽는 것은 쉽지 않다.” 따라서 저자는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을 오늘날에 필요한 전략의 관점에서 간추려 재구성하고, 그 뜻이 제대로 전달될 수 있도록 해설을 덧붙였다. 아울러 클라우제비츠의 문제에 관해 손자가 어떻게 대답하는 지 알아보고 있다. 그렇게 2,000여 년의 시대적 간극이 있는 손자와 클라우제비츠 사이의 대화가 이뤄진다.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와 함께 간다. 클라우제비츠는 전쟁은 나의 의지를 관철하기 위해 적에게 굴복을 강요하는 폭력 행위다.” 라고 했다. 또한 인간의 내면에 자리 잡은 폭력성을 이렇게도 표현했다. “전쟁의 위험을 알기 전에는 보통 그 위험을 무섭다기보다는 매력적이라고 생각한다. 흥분에 빠져 질풍처럼 적진으로 밀고 들어갈 때 누가 총알과 쓰러지는 자들의 수를 헤아리겠는가?”

 

 

이상적 전쟁과 현실적 전쟁

 

인간의 싸움에는 본래 적대적 감정과 적대적 의도라는 두 개의 다른 요소가 들어있다. 나는 그 중 후자를 우리가 정의하는 전쟁 개념의 특징으로 삼았는데, 그것은 후자가 더 보편적이기 때문이다. 가장 난폭하며 본능에 가까운 증오의 감정은 적대적인 의도 없이는 생각 할 수 없지만, 이와 달리 적대 감정이 전혀 없거나 적어도 강력하지 않은 적대적 의도는 많이 있다.”

 

손자는 뭐라고 했나?

 

전쟁이란 나라의 중대한 일이다. 죽음과 삶의 문제이며, 존립과 패망의 길이니 살피지 않을 수 없다.” 당연한 말인데, 글로 남겨놓은 것을 보면 실제로는 그렇게 안 했다는 이야기다.

 

 

클라우제비츠는 이상적 전쟁이 불가능한 이유를 현실에서 발견하고, 그것을 세 가지 명제로 표현한다. 1. 전쟁은 결코 고립된 행위가 아니다. 2. 전쟁은 단 한 번의 결전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3. 전쟁의 결과는 절대적이지 않다.

 

 

손자의 손자병법과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은 전쟁이라는 주제 앞에 서로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듯 보이지만, 상호보완적인 성격이 강하다. 전쟁의 참혹한 현장을 훨씬 더 많이 경험한 손자는 전쟁이 발발하기 이전에 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면, 클라우제비츠는 전쟁이 피할 수 없는 것이라면 전쟁의 직접적 상황에서 승리할 수 있는 전략을 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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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터 2015.8
샘터 편집부 엮음 / 샘터사(잡지)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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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터8월호 / 샘터

 

 

이젠 극성스럽던 더위도 뒷모습을 보이는 듯하다. 8월의 우리말 표현은 타오름달이라고 한다. ‘하늘에서 해가 땅 위에선 가슴이 타는 달이란 뜻을 품고 있다. 아무리 폭염이 이어져도 우리가 갈길, 해야 할 일은 멈춤이 없다. 날씨는 그저 우리 일상의 한 부분일 뿐이다.

 

 

이번 달의 특집은 서늘맞이의 추억이다. “너무 더워 감정이 들끓던 어느 여름날, 햇살아래 일렁이는 그림자가 괴물로 보이고 물속 친구의 얼굴이 낯설게 보였던 적은 없나요? 한여름 더위를 시원하게 씻어줄 서늘한 이야기 속으로 초대합니다.” 휴가철을 맞아 회사 동료 십여 명과 함께 섬으로 여행을 떠났던 한 독자의 이야기는 내 기억의 한 페이지를 들추게 한다. 섬은 뭍과 달리 날씨에 따라 오가는 것이 제한되다 보니 시간의 여유를 갖고 가지 않으면 가기 힘들다. 글쓴이는 태풍이 오는 바람에 예정보다 하루 더 발이 묶이게 된 사연을 적고 있다. 나 역시 휴가 기간을 넘기지는 않았지만, 황금 같은 휴가를 비바람 속에서 꼼짝 못하고 지낸 적이 있었다. 그나저나 글쓴이는 가족끼리도 아니고, 직원들이 함께 가는 바람에 자칫 집단 결근을 하게 되는 심각한 상황이다. 먹거리가 떨어져서 파출소를 찾아가 라면을 얻어먹고, 일행 중 환자가 생긴 것을 빌미로 해경의 도움을 받아 섬을 떠날 준비를 하게 되었다. 그러나 항구에는 수백 명의 관광객들이 배가 들어오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배가 들어오자 시선이 모두 그곳으로 쏠렸으나, 해경의 배라는 것을 알고 관광객들이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는 사이 글쓴이 일행은 전격제트작전처럼 배를 향해 달려갔다. 그 모습을 본 다른 사람들이 마치 공포영화 속 좀비 떼처럼 아우성을 치며 달려왔다고 한다. 승선인원이 한정되어 있는지라 겨우 글쓴이 일행만 빠져 나왔을 것이다. “천신만고 끝에 섬을 나왔지만 거기 있던 사람들은 어떻게 돌아갔을까 싶어 미안함과 궁금함이 엇갈립니다.”하고 마무리를 했다.

 

 

 

당신이 가지고 있는 물건 중에 가장 오래된 것은 무엇인가요? 사물의 시간 이라는 꼭지글에선 책공방북아트센터 김진섭 대표의 제책도구가 소개된다. “손으로 만든 책에서 오래된 미래찾았죠” “여기 있는 게 보물이에요. 평소에는 이 캐비닛을 절대 열지 않습니다. 열다섯 살부터 인쇄업에 종사한 어르신이 제게 물려준 건데, 그분도 처음 인쇄 기술을 배울 때 선배에게 물려받았다고 해요.” 캐비닛 안엔 완성된 책에 제목을 눌러 찍을 때 쓰는 타이프 홀더(활자 고정 장치)와 목활자 등이 모습을 드러냈다. 기름 냄새 물씬 풍기는 인쇄소에서 청춘을 보낸 장인의 세월이 오롯이 스민 도구들이다.

 

 

 

터미널은 단순한 종점이 아니다. 터미널(terminal)의 어원인 ‘term'에는 끝이라는 뜻도 있지만, ’경계라는 뜻도 있다. 누군가에게는 종착지이기도 하지만 누군가에겐 출발점이기도 한 곳. 또 누군가에겐 반환점이거나 경유지이기도 한 곳. 수많은 사람이 종종걸음으로 스쳐가는 곳이지만, 때로는 낡고 때 묻은 의자에 앉아 삶의 온기를 나눌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여기에 앉아 있는 몇 사람..” 나희덕 (시인, 대학교수)의 글과 사진이다. 나희덕의 산책이란 제목이 달려있다. 사진에는 3~4명의 외국인 남성이 터미널 의자에 앉아 있다. 그렇다. 누군가에겐 지나가는 곳, 누군가에겐 종착지, 또 그 누군가에겐 새로운 출발점. 우리의 삶 역시, 머무르는 듯 떠나고, 떠나는 듯 머무른다. 잠시 멈춰있다고 그 시간이 무의미한 것이 아니다. 시간들이 대나무가 더 높이 올라가며 서 있도록 해주는 매듭이 될 것이다.

 

 

 

성석제 연재 소설 만남 이달의 스토리는 막걸리병 따기의 예술이다. 오호 이런 방법이 있었구나. 술은 별로 안 좋아하지만, 혹시 막걸리 마실 일이 있을 때 써먹어야겠다. 작가가 알려주는 막걸리 거품이 넘치지 않게 뚜껑 따기의 예술은 이렇다. 1. 막걸리병을 뒤집거나 흔들고 나서 3분의 2가 되는 부분을 세게 눌러서 탄산을 배출한 뒤 뚜껑을 연다. 2. 막걸리병 윗부분을 잡고는 지구 자전축 기울기로 기울여 시계 방향으로 수십 회 돌리고 뚜껑을 연다. (수십 회라.. 마시기 전에 어지럽겠다) 3. 거꾸로 뒤집고 흔든 막걸리병의 뚜껑을 숟가락으로 장작 패듯 힘껏 10회 내리치고 연다. 4. 막걸리병 뚜껑을 먼저 딴 다음 반 잔 정도를 잔에 따른 뒤에 뚜껑을 닫고 병을 충분히 흔들고 나서 다시 열면 된다. 이 네 가지 방법 중 하나를 선택해서 해보라는 이야기다.

 

 

그 외에도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포근한 글들이 많이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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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고고학 - 미셸 푸코 문학 강의
미셸 푸코 지음, 허경 옮김 / 인간사랑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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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고고학미셸 푸코 / 인간사랑

 

 

이 책의 키워드 중 하나는 광기이다. 이 책을 읽기 위해선 푸코에게 광기가 어떤 의미로 다가오고 있는가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초기에 출간된 푸코의 글들은 모두 정신의학(Psychiatry)과 정신병들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다뤘다. 존재론적 현상학의 영향이 컸다. 푸코는 정신질환을 이해하기 위해서 환자가 살아온 경험을 고려해야 하며, ‘정신병의 현상학이 필수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푸코는 고전 문학작품 속에서 광기를 어떻게 표출해내고 있는가? 르네상스시대에 광기는 일상적 삶에서 없어서는 안 될 한 부분으로 이해되었다. 광인들은 도시에서 추방되었지만, 인간 존재와 사회로부터 광기를 완전히 지워 없애려 할 시도는 없었다. 광인들은 배제되기는 했으나, 사회적으로 두려움과 차별의 대상이 되지는 않았다. 그와는 정반대로, 광기는 인간적 조건에 관한 특별한 종류의 지혜를 지닌 것으로 인정받았다. 이 책 문학의 고고학에서도 등장하지만, 푸코는 다른 작가들보다 셰익스피어와 세르반테스가 작품에서 광인 배역들을 다루는 것에 대해 자주 언급한다. 그들이 다룬 미친 영웅들은 비극적 양심의 목소리를 통해 인간이 지닌 유한성과 절망적인 비애를 외쳤다는 것이다.

 

 

문학의 고고학으로 들어가 본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은 푸코의 공개 구두강연을 텍스트로 한 것이다. 라디오 방송녹음, 강연의 녹음테이프, 컨퍼런스 발표 내용을 담았다.

 

 

광기의 언어

 

1963년 푸코는 국립 RTF 프랑스 방송국에서 말의 사용이라는 타이틀로 광기의 언어에 관해 5회 연속 강의를 했다. 푸코는 서양 사회의 역사를 기술하기 위해 특히 광기를 이를 위한 시금석으로 삼았다. 네 개의 큰 부분으로 구성된다. 첫 번째로 작가(푸코)는 언어에 있어서의 광기의 분출지점 들을 규정한다. 작가는 병리학적 언어의 다양한 형식들을 분석한다. 이를 위해 작가가 고르고 연극배우들이 낭독하는 환자의 텍스트, 또는 기록된 환자와 의사 사이의 대화가 담겨있다(드라마 형식으로 진행된다). 두 번째로 광기가 언어 안에서 어떻게 재현되어 왔는가를 보여준다. 이를 위해 작가는 셰익스피어에서 코르네유에 이르는 작가들의 작품에 등장하는 광인의 캐릭터를 예로 든다. 세 번째, 작가는 언어의 내부 자체에 존재하는 비이성의 경험을 다루고, 이를 제라르 드 네르발이나 레몽 루셀과 같은 작가들에게서 나타나는 광기와 문학적 경험 사이의 관계를 드러낸다. 마지막으로 인위적으로 불러 일으켜진 광기에 대해 다루고 있다. 문학의 고고학에선 푸코의 다섯 개의 방송 중 두 번째 광인들의 침묵과 마지막 광기의 언어가 담겨있다.

 

 

 

광인들의 침묵

 

리어 왕은 의심의 여지없이 광기의 비극적 성격을 온전하고도 충실하게 보여주는 아주 드문, 거의 유일한 표현이지요. 리어 왕은 유례가 없는 작품인데, 이 유례없음은, 종종 희극적인 찬양을 제외한다면, 늘 정당화하는 먼 시선으로 광기를 바라보고, 근본적으로 광기와 거리를 취하도록 배려하기를 잊지 않는 문화, 곧 우리 것과 같은 문화에서는 유례가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 돈키호테의 비극성은 그 인물의 광기 자체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 아니며, 그가 사용하는 언어의 심오한 힘도 아닙니다. 돈키호테의 비극성은 독자와 다른 등장인물들에게만이 아니라, 산초와 마지막으로는 돈키호테 자신에게까지도 이 광기에 대한 의식을 가능케 해줄, 때로는 알아차리기 어려운, 이 거리, 작은 빈 공간 안에 놓여 있습니다.”

 

 

 

광인들과 소통한다는 것이 가능할까? 침묵의 광인보다 끊임없이 말을 하는 광인들이 많지 않을까? 알아들을 수 없는 말만, 독백조의 말만 하기 때문에 그들을 침묵으로 단정 짓는 것이 아닐까? 푸코의 말을 들어본다. “이제, 우리가 광인들과 소통하는 것이 어렵다면, 물론 그것은 그들이 말을 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아마도 분명, 지나치게 많은 것을 담은 언어로, 세계의 모든 길들이 뒤섞이는 기호들의 열대 군집과도 같이, 너무 많이 말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문학과 언어

 

196412월 미셸 푸코는 벨기에 브뤼셀의 생루이대학교에서 열린 컨퍼런스 문학과 언어에 참여한다. 푸코는 이 자리에서 자신이 간파한 언어, 작품, 문학사이의 기묘한 삼각형에 대한 분석이라는 목적아래 1960년대 초 문학에 관한 자신의 글에서 다뤘던 주제들 전체를 재조명한다.

 

문학이란 무엇인가?’ 푸코는 언어, 작품들, 문학 등의 세 요소로 구분하고 있다. “문학은 모든 언어 작품의 일반적 형식도 아니며, 언어 작품이 위치한 보편적 장소도 아닙니다. 문학은 말하자면 세 번째, 곧 언어에서 작품으로, 작품에서 언어로의 관계가 통과하는 삼각형의 정점(頂點)입니다.”

 

 

문학의 고고학은 푸코의 다른 저술을 읽고 이해하는 데 좋은 길잡이가 될 소중한 책이다.

옮긴이(허경)가 이 책을 푸코 사유의 잃어버린 고리를 드러내주는 귀중한 자료들이라고 언급한 것에 깊이 공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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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견이란 무엇인가 - 데카르트, 칸트, 하이데거, 가다머로 이어진 편견에 관한 철학 논쟁을 다시 시작한다
애덤 아다토 샌델 지음, 이재석 옮김, 김선욱 감수 / 와이즈베리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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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견이란 무엇인가애덤 샌델 / 와이즈베리

 

 

편견이란 단어가 있고, 선입견이란 단어가 있다. 둘 다 건강하지 못하다. 치우쳐있다. 불쾌하다. 선입견이라는 것은 다소 수정될 기미가 보이지만, 편견은 도무지 틈이 없어 보인다. 굳어있다. 전적으로 나의 개인적인 생각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절대 편견이 아니라고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는 점이 또한 문제다. 더 나쁜 것은 편견은 내 생각이 아니고, 당신 생각이라는 것. 내 생각은 언제나 정견(?)이라는 편견 속에 살아간다는 사실이다.

 

 

 

저자는 편견이라는 것은 현재 우리가 받아들이는 단편적인 생각보다 훨씬 더 광범위하다는 말을 시작으로 그의 논지를 펼쳐나가고 있다. 편견이라는 말의 의미를 잘 포착한 것은 임마누엘 칸트의 계몽에 대한 정의이다. 그는 계몽을 편견 일반으로부터의 해방이라고 정의했다. 확실히 여기서 칸트가 말하는 편견이란 정당화되지 않은 증오 이상의 것이다. (....) 칸트가 관심을 갖는 편견에는 전통, 습관, 관습, 교육 같은 것이 포함된다. 거기엔 심지어 인간의 타고난 욕망까지 포함된다. 이런 것들은 의식적인 성찰을 피해가면서 우리의 판단에 영향을 미친다.”

 

 

 

저자가 이 책을 통해 도전하고자 하는 것은 판단에 관한 편협한 사고방식, 즉 편견을 무조건 배격하는 현상이라고 한다. 이러한 그의 도전은 서로 구분되는 두 가지 판단 개념에 근거한다.

 

첫째는 비관여적 판단개념이다. 판단에 어떤 외부적인 영향력을 개입하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붙여진 개념이다. 두 번째는 정황적 판단개념이다. 이 개념에 따르면 완전한 판단이란 잘못된 사고방식에서 나온 것이다. 숙고와 판단은 언제나 우리가 처한 구체적 삶의 환경으로부터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정황적 판단 개념에 따르면 우리가 처한 삶의 환경은 합리적 사유에 대한 방해물이 아니라 합리적 사유에 정보를 제공하여 판단을 가능하게 해주는 관점을 기능한다.”

 

 

 

저자는 이 두 가지 판단개념 중에서 후자인 정황적 판단개념에 더욱 힘을 실어주고 있다. 아울러 편견에 반대하는 주장에 대한 비관여적 개념과 정황적 개념의 대비가 왜 중요한지를 이야기한다. 이 생각을 보완하기 위해 마르틴 하이데거와 한스게오르크 가다머라는 20세기 독일 철학자의 저작을 살펴보고 있다. 이 두 사람은 우리의 이해와 판단은 언제나 우리가 관여하는 전통과 기획, 실행에 의해 형성된 세계 내에서 혹은 지평 안에서 정황적인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 공통점이다.

 

 

이것은 우리가 판단을 내릴 때, 즉 정치나 법의 영역에서 서로 상충하는 주장들을 평가할 때, 철학 텍스트에 대한 이해를 시도할 때, 이러저러한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 숙고할 때 완전한 무의 상태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다. 우리가 내리는 판단은 언제나, 아직 정당화되지 않은, 대부분 우리의 의식적 관심 아래에 깔려 있는 선()개념(선입견)과 참여에 영향을 받는다. 저자는 대체적으로 편견이라는 단어에 호의적이다. ‘배경지식이라는 표현과 같은 곳에 올려놓기도 한다.

 

 

 

프랜시스 베이컨, 르네 데카르트, 애덤 스미스, 이마누엘 칸트, 에드먼드 버크 등의 편견에 반대하는 주장을 시작으로, 하이데거의 세계로 넘어간다. 하이데거의 말을 들어본다. " ‘위함무엇을 하기 위함이라는 의미다. 이것은 또한 무엇을 향함의 의미다. 이것은 다시 무언가가 그 안에개입함. 그리고 다시 무엇과 함께 개입함을 의미한다. 이 관계는 시원적 총체성으로서 서로 엮여 있다. 이 관계들은 이러한 의미로서 그 자신이다....이것이 곧 세계의 구조, 즉 현존재가 이미 그러한 자신으로서 존재하는 구조가 구성되는 방식이다." 저자는 현존재를 이렇게 풀이한다. “‘현존재라는 용어에 대한 하이데거의 정당화는 이렇다. 현존재는 인간 삶에 대한 주관주의적 이해를 배격한다(왜냐하면 우리는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우리가 하는 행동에 몰입하는 존재로서 존재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현존재는 우리의 비 반성적 활동무엇인가와 관련을 맺고, 무엇인가를 만들어내고 이용하며, 무엇인가를 포기하고 내려놓으며, 또 무엇인가에 착수하고 무엇인가를 성취하는 등의 활동이 이미 우리가 속해있는 지평 혹은 세계를 상정하고 있다는 의미를 포착하고 있다. 인간의 삶은 현존재, 거기에 있음혹은 세계존재라는 말로 정의된다. 인간의 삶은 결코 고립된 자아그것이 생각하는 사물이건(데카르트) 아니면 무한히 창조적인 개인이건의 행동일 수 없다는 것이다.

 

 

 

편견에 대한 가다머의 우호적 입장도 읽어볼만하다. 가다머는 에드먼드 버크의 뒤를 이어 편견을 전통의 영향력을 의미하는 단어로 사용하고 있다. 두 사람 모두 편견의 적법성에 의문을 제기했던 계몽 사상가들에 맞서 편견을 옹호했다. 가다머가 버크와 다른 점은 편견을 이성과 연결시킨 점이다. 가다머는 편견을 이해를 위한 조건(conditions of understanding)’이라고 여겼다.

 

 

 

도덕 판단에서 편견의 역할은 어떨까? 아리스토텔레스를 초대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우리가 처한 포괄적 상황 혹은 삶의 관점을 좋은 삶이라는 견지에서 파악한다. 그는 선은 우리가 그것에게 인도를 원하는 추상적 형식이 아니라, 우리의 행위(프락시스)에서 표현되는 구체적인 목적인(目的因)이라고 했다.

 

 

이 책의 저자 애덤 샌델은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 마이클 센델의 아들이다.

부자지간에 ‘~무엇인가시리즈로 뭔가 해보겠다는 거냐는 편견을 접어놓고 읽어볼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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