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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어린이들
이영은 지음 / 을유문화사 / 2025년 8월
평점 :
《 제국의 어린이들 》 _이영은 / 을유문화사(2025)
“지난번에 학교에서 어머니와 누나에게 국어(일본어)공부를 시켜준다는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고 어머님께 말씀드렸습니다. 그 후부터 어머니는 제가 학교에서 돌아오고 나면 책과 공책과 연필과 지우개와 칼을 가지고 “국어공부 하고 올게” 하시고는 매일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학교에 가십니다.” _경성한동공립심상고등소학교 제2학년 최준창
일제 강점기 때 빼앗긴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나, 우리의 말과 글을 빼앗긴 것이 가장 안타깝다. 이 글을 쓴 아이는 당연히 일본어가 국어라고 알고 성장했을 것이다. 일제는 아이들에게만 일본어를 강요한 것이 아니라, 그 부모와 다른 가족들에게도 그들의 언어를 강요했다. 아마도 학교에선 선생이나 관리자가 각 가족의 구성원을 모두 확보한 후 아이를 통해 가족들이 일본어를 배우러 오게끔 유도했을 것이다. 부모들은 일본어를 배우고 싶지 않아도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 또는 일본어를 배우지 않으면 아이에게 불이익을 당할까봐 피곤한 몸과 마음을 재촉해서 늦은 오후 또는 이른 저녁에 학교로 발길을 움직였을 것이다.
1919년 3월 1일. 민족 대표 33인의 독립선언서 낭독을 시작으로 퍼져나간 독립을 향한 염원은 일제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조선인의 독립을 위한 투쟁은 단순한 운동이 아니라 목숨을 건 행위였다. 일제는 총과 칼로 조선을 통치하는 것에 한계를 느낀다. 무력을 통한 무단 통치에서 언론과 시위, 문화 행위의 다소간의 자유를 허용하는 문화 통치로 선을 바꾼다. 아동 문학 잡지분야에선 육당 최남선의 『소년』은 창간, 발매금지, 정간조치를 반복하다가 결국 1911년에 폐간된다. 그 후 다소나마 느슨해진 문화정책 기간 중 소파 방정환이 『어린이』를 창간한다.
1937년 중일전쟁 발발 이후, 일본 식민기구는 내선일체(내선일체(內鮮一體, 내지의 일본과 외지의 조선은 하나다)라는 국시아래 조선에 거주하는 일본인과 조선인 소학생 전체를 상대로 글짓기 경연대회라는 큰 이벤트를 연다. 일본식민기구 산하 경성일보가 주최한 이 행사는 1938년부터 1944년까지 총 7회에 걸쳐 개최되었다. 1,2회 우수작들은 단행본으로도 출간되었다. 지은이는 이 단행본에 실린 수상작품을 위주로 글을 꾸몄다. 나의 순진한 바람이 하나 있었으니, 혹시라도 조선과 일본아이들의 글속에서 빼앗긴 나라, 빼앗은 나라에 대한 상념이 숨어있지 않을까 기대를 했다. 택도 없는 이야기. 그런 내용이 들어갔다면 당연히 탈락이었으리라. 아이들의 글은 크게 비전쟁과 전쟁으로 구분되고, 비전쟁 챕터에선 자연, 가족, 동물, 놀이, 일상, 학교로 분류했다.
자연을 소재로 한 글들은 조선인 어린이들보다 일본인 어린이들의 글에서 더 많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아마도 조선의 어린이들은 자연을 바라보는 것을 넘어서 자연 속에서 무언가 먹거리를 찾거나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 더 많지 않았을까? 동물은 주제로 한 글들은 조선과 일본의 아이들의 글에서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 조선아이들의 글에 등장하는 동물들은 돼지, 소 등이 등장하고, 일본아이들의 글에선 개나 고양이가 등장한다. 돼지, 소는 생계수단이고 개나 고양이는 순수한 애완동물에 위치한다. 놀이문화는 어떤가? 시골에 거주하는 아이들은 눈이 오면 눈이 놀이기구가 된다. 천렵도 포함되겠다. 반면 도시의 아이들은 폭이 넓다. 일본아이들이야 가고 싶은 곳, 먹고 싶은 것 마음대로였겠지만, 조선의 아이들은 먹고 살만 하거나 부모가 갖는 사회적 위치에 따라서 역시 차이가 난다. 백화점 나들이, 창경원 동식물원 관람, 이왕가 박물관 관람, 운동장, 도서관, 뚝섬유원지, 경성부민관 등이 아이들끼리 또는 부모와 함께 돌아볼만한 곳으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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