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 다이어 1
미셸 호드킨 지음, 이혜선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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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 다이어미셸 호드킨 / 한스미디어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이 복잡하게 밀착될수록 사건, 사고도 많이 발생한다. 크고 작은 사건들 속에서 상처받은 몸과 마음이 회복되는 과정이 필요하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또는 증후군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지만, 예전에 비해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는 것은 다행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본인이 그 증상을 치료하는 주치의라는 점이다. 서운하게 들릴지 몰라도 설령 부모 형제가 나를 위해 애써본들 내가 털고 일어나겠다는 의지가 없으면 아무 소용없다.

 

 

내 이름은 마라 다이어가 아니다. 그런데 변호사가 가명 같은 걸 하나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왜 그래야 하는지 굳이 설명할 필요까지는 없겠지. 가짜 이름을 갖는다는 게 이상한 일이란 건 안다. 하지만 지금 나에게는 가장 평범한 일이 되고 말았다.” 이 소설의 주인공 마라 다이어의 자기소개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위저보드 위에 화려한 문양으로 새겨진 글자와 숫자들이 촛불에 비쳐 일그러지더니 머릿속에서 춤추듯 움직였다.” 위저보드는 서양의 점성술에서 유래한 운세를 점치는 게임으로 분신사바와 비슷하다. 한동안 우리나라 중고생들 사이에서 크게 유행을 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위저보드를 통해 쳐본 점괘는 유쾌하지 못했다. 불운이었다. 6개월 뒤 두 사람이 죽었다.

 

 

마라는 혼수상태에 있었다. 며칠 만에 깨어났다. 사고가 있었다. 건물이 무너졌다. 마라는 건물 지하의 에어포켓에 갇혀 있었다. 경찰이 찾아냈을 때 의식이 없었다. 그곳에서 마라의 친구 레이첼이 죽었다.

 

 

레이첼의 장례를 치루고 마라가 이상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갑자기 비명을 지르고, 옷장 안에 들어가서 울고 있기도 하고, 피 묻은 손으로 깨진 거울을 쥐고 멍하니 눈을 깜박거리고 있는 딸의 모습을 본 마라의 엄마는 기겁을 한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치료해주던 심리상담사는 장기 치료기관을 추천해 준다. 그러나 마라는 가족들에게 이사를 가고 싶다고 요청한다.

 

 

레이첼이 계속 이 집에 있어요. 무엇을 보든 레이첼 생각이 나요. 게다가 학교에 가면 거기서도 레이첼을 볼 거예요. 그래도 학교에 다시 나가고 싶어요. 꼭 그래야 해요. 뭔가 다른 생각을 해야 하니까요.”

 

 

결국 마라의 가족들은 이사를 간다. 고등학교 2학년 마라 다이어. 학기 중간에 공립학교에서 사립학교로 전학을 간다. 모든 환경이 바뀐다. 특히 학교 환경은 적응하기에 더욱 예민하다. 학교 화장실에서 거울을 보면 클레어가 보인다. 이를 악물고 다시 거울을 노려보면 마라의 얼굴이다. 한밤중에 목에서 터져 나오는 비명소리와 가슴을 짓누르는 무거운 압박감 때문에 잠에서 깬다. 두렵고 고통스럽다. 꿈에선 레이첼과 함께 죽었다는 주드가 자주 나타난다. 두렵고 불쾌하다.

 

 

혼란스러운 마라의 마음에는 어둠의 영이 들어가 있다. 학교 가는 길에 유기견이나 다름없는 개를 마주친 적이 있다. 그 개가 목에 무척 무거운 쇠줄을 걸고 말뚝에 매어있는 모습을 보고 측은지심이 발동하여 그 개에게 가까이 가려는 순간, 개 주인이 나타난다. 개 주인이 마라에게 패악을 떤다. 그 자리를 떠나며 마라는 마음으로 분노와 증오심이 솟구친다. 마음으로 저주를 내린다. 개 주인이 참담한 꼴로 죽어 없어지길 바랐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진짜 그렇게 죽었다. 그 개 주인 남자는.

 

 

 

그 뒤로 유사한 일이 여러 차례 발생한다. 건물이 붕괴되는 사고까지 카운트하면 마라 주위에서 죽은 사람이 다섯이다. 마라는 심히 두렵다. 평탄치 않은 학교생활에서 그나마 숨통이 트이는 일이 생긴다. 노아라는 이름의 남자애다. 노아는 나이에 안 어울리게 조숙하다. 어른스럽다. 이어지는 대부분의 이야기는 마라의 가족과 노아의 주변이야기이다. 흔들리는 마라를 바라보며 노아는 마라를 지켜주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노아에겐 힐러의 기운이 감돈다.

 

 

무엇이 죽음을 유발할지 누가 안단 말인가? 빗나간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 충분했던가? 아니면, 내가 마음속으로 상상을 해야 했던가? 내가 결코 죽기를 바란 적이 없는데도 죽은 그 동물들은 어떻게 된 걸까? 레이첼은 어떻고?”

 

 

마라에겐 노아가 필요하다. 다음 권에서 노아의 역할이 더욱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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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독해져라 - 현실에 흔들리는 남녀관계를 위한 김진애 박사의 사랑 훈련법
김진애 지음 / 다산북스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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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2015-152

 

사랑에 독해져라김진애 / 다산북스

 

 

사랑은 추상명사가 아니다. 동사다. 움직임이 가능하다. 사랑은 현실이다. 그래서 사랑은 현실과 이상사이에서 방황한다. 왔다 갔다 하다 지쳐 쓰러진다. 사랑에 죽고 사랑으로 다시 산다.

 

사랑이라는 미명하에 생지옥에서 살지 말고, 사랑에 대한 집착 때문에 생지옥에서 살지도 말고, 겁이 나서 사랑을 피하는 생지옥에서 살지도 말고, 사랑이 끝날까봐 생지옥에서 살지도 말자. 알면서도 생지옥에 빠지지 말고, 생지옥인지 모른 채 남아있지 말고, 헤어 나올 방법을 알면서도 빠져나올 용기가 없어서 생지옥에 남아 있지도 말자.” 생지옥으로 시작해서 생지옥으로 끝난다. 누군들 사랑의 첫 장을 열면서 지옥을 꿈꾸랴. 그러나 지옥은 너무 가까이 붙어있다.

 

 

책은 6개의 장으로 구성된다. 첫 장에선 사랑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남녀관계를 어떻게 정의하느냐.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는가에 대해 묻고 있다. 둘째 장은 이 사람인가라는 근본적인 의문에 대해서다. , ‘내 짝을 어떻게 변별할지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셋째 장은 헤어지는 법에 대한 공감을 다룬다. 넷째 장에선 진흙탕 같은 현실 속에서 남녀관계를 지속 가능하게 하는 여덟 가지 훈련 방식이 담겨 있다. 다섯째 장에선 남녀관계가 흔들릴 때어떤 태도를 갖느냐에 대한 이야기다. 마지막 여섯 째 장은 사랑의 로망에 대한 것이다.

 

 

아이가 먼저인 집을 보면 나는 많이 언짢아진다. 그런 경우를 직접 목격하게 되면 더욱 언짢아져서 속에서 열불이 날 정도다. 두 가지 점에서 그렇다. 첫째, 그 부부를 위해서 절대로 안 좋고, 둘째, 그 아이들을 위해서는 더욱 절대로 안 좋기 때문이다. 아이가 먼저인 집은 자연스럽지 않다. 어딘가 불안하다. 어느 누구도 진정 독립하지 못한다. 어느 누구와도 건강한 관계가 성립되기 어렵다.”

 

_ 만약 아이 키우기에 대한 철학이 건강해진다면, 만약 아이와 부모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 건강한 상식이 자리 잡는다면, 만약 아이 먼저가 아니라 부부 먼저라는 가치관이 우리 사회에 뿌리 내린다면, 아마도 아이 낳기에 대한 두려움도 좀 줄어들지 않을까?

 

 

 

 

우리는 최대한 축복이 될 수 있는 선택, 가능하면 저주로 빠지지 않을 선택을 하고 싶다. 그래서 선택의 기준이 필요하다. ‘왜 이 사람인가?’에 답할 수 있는, 기댈 수 있는, 믿을 만한 그 어떤 기준이다. ‘이 사람인가?’ 하는 의문은 결코 피할 수 없는 것이니 만큼 자기 나름대로의 이유를 댈 수 있으면 우리의 선택에 대해 덜 불안해질 수 있는 것이다.”

 

_ 궁극적으로 너와 나는 같이 성장할 수 있을까?’ 라는 의문에 긍정적인 답변이 나온다면 바람직하다. 한 사람의 성장이 다른 사람의 성장으로, 서로 도와가며 함께 성장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다.

 

 

 

헤어짐에 대한 나의 개념은 명쾌하다. 모든 사람, 모든 관계, 모든 남녀, 모든 남녀관계에 적용되는 개념이다. 첫째, 헤어짐을 전제하지 않는 만남은 없고, 둘째, 헤어짐을 전제로 해야 좋은 관계가 이어지며, 셋째, 헤어지는 방식에 대한 존중이 있어야 비로소 잘 헤어질 수 있다.”

 

_ 건강한 헤어짐이 건강한 사회를 만든다. 사회면의 사건, 사고 소식의 대부분은 건강하지 못한 헤어짐이 비중을 많이 차지한다. 헤어지자는 사람을 차로 들이 받으며 깔아뭉개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하나. 죽이고 싶도록 사랑한다고?

 

 

 

 

나의 흔들림, 너의 흔들림, 그리고 우리의 흔들림은 어떻게 시작해서 어떻게 전개되고 어떤 결말을 향해 가는 걸까? 밖에서 오는 유혹도 있고 안에서 오는 불안도 있다.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는 전제 자체가 틀린 전제다. 사랑에 빠질 때, 빠져 있을 때는 영원한 사랑을 얘기할 수 있을지 몰라도 본격적인 남녀관계로 넘어가면 흔들리는 사랑그것도 끊임없이 흔들리는 사랑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른다.”

 

_ 흔들리지 않는 남녀가 어디 있으랴? 흔들림 자체가 문제가 아니다. 흔들릴 때 어떠한 태도를 갖고 중심을 잡느냐가 관건이다. 보통 흔들리는 관계는 서로 직감으로 안다. 흔들리기 전에 그 징조를 미리 알거나 알아줬으면 하는 경우도 있다. 흔들릴 때 무엇을 할 수 있는지, 해야 하는지, 하지 않는 게 좋은지, 하지 말아야 할지를 깊이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저자는 이렇게 사랑을 마무리한다. “사랑으로 성장하라! 사랑의 기운은 우리를 부쩍 자라게 해준다. 사랑의 순간은 기적과 같은 끌림으로 시작되지만 절대적인 노력으로 이루는 사랑의 지속 역시 기적이다. 처음 빠졌던 사랑의 순간에 느꼈던 그 기쁨을 잊지 마라. 사랑을 지속하기 위해 들이는 노력에 인색하지 마라. 인생의 다른 그 어떤 것과 마찬가지로, 사랑에도 훈련이 필요하다. 사랑의 훈련을 통해 사람은 훌쩍 큰다. 사랑에 대한 로망을 잃지 마라. 온갖 괴로움과 고통 속에서도 사랑은 여전히 기적이다. 사랑하라. 당신의 현실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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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교과서 공자 - 인, 세상을 구원할 따뜻한 사랑 플라톤아카데미 인생교과서 시리즈 3
신정근.이기동 지음 / 21세기북스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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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2015-147

 

공자신정근 + 이기동 / 21세기북스

 

공자는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다. 현존하는 나와 미래의 시간에 도달하고자하는 시간과 공간에서 스스로를 엄격하게 단련했다. 그리고 그 간극을 좁히기 위해 애썼다. 개인이 사회를 떠나서 살아갈 수 없듯 개인과 사회의 문제 또한 공자에게 중요한 과제였다.

 

 

21세기북스가 플라톤 아카데미와 함께 위대한 현자들을 향한 삶의 원초적 질문과 답을 정리한 인생교과서〉 「공자를 만나본다. 이 책 역시 두 저자가 참여한다. 현재 성균관대학교 유학대학장과 유교문화연구소장을 맡고 있는 신정근 교수와 역시 성균관대학교에서 유학과 동대학원 동양철학과를 졸업하고, 성균관대학교 유학 동양학부 교수로서 유학대학장과 대학원장을 역임한 이기동 교수이다.

 

 

죽음이란 무엇인가?

 

죽음이라 쓰고 삶이라 읽는다. 죽음을 사유하는 현장이 곧 삶의 현장이기 때문이다.

 

아직 삶도 모르는데 어찌 죽음을 알랴

 

공자는 죽음 이후 내세에 있는 죽은 사람에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는 죽음 이후에도 현세에 남겨진 죽은 사람의 영광스러운 자취에 주목했다. 그는 이 영광스러운 자취를 이름으로 보았다. ‘죽음이 찾아올 무렵까지 자신의 이름이 들먹여지지 않으면, 군자는 몹시 고통스러워한다.” (위령공20) - 신정근

 

여기서 의미하는 이름은 무엇인가? 명예욕? 신교수는 공자가 말한 이름은 특정한 인물이 죽고 난 뒤에도 산 사람들이 그를 끊임없이 부르면서 기념하고 본받으려는 롤 모델(Role Model)이라고 한다.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

 

모든 존재의 공통뿌리는 하늘이다. 배움을 통해서 공자는 이를 알았다. 이를 알게 된 공자의 관심은 하늘로 집중된다. 하늘을 알고 하늘처럼 사는 것, 그것이 바른 삶이며 영원한 삶이기 때문이다.” - 이기동

 

 

사람관계를 어떻게 조율하는가?

 

사람들 사이에 예()가 있게 하라.”

 

()는 거시적인 의식과 미시적인 예절 모두를 포괄하면서 사람이 대상에게 어떻게 다가가는지를 규정하고 있다. 우리가 여러 사람을 만나다보면 어떤 이는 또 만나고 싶지만 어떤 이는 거북스럽다. 예는 사람이 일상적으로나 의례적으로 만남을 부드럽게 이어가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예는 기계가 서로 마모되지 않고 제 기능을 다하게 하는 윤활유와 비슷하다. 물론 역사적으로 보면 예가 윤활유에 머무르지 않고 스스로 규범화하여 사람을 억압하는 측면도 있었다. 그때마다 예의 정신에 입각해서 현행 의식과 예절의 정당성을 따져봐야 할 것이다.”

- 신정근

 

 

 

절망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 다시 일어설 수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도 큰 복이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삶을 살다가는 사람이 진짜 행복한 사람이다. 그러나 당연히 그 일은 나도 살고, 남도 살리는 일이어야 한다.

 

성공은 직선으로 사는 삶이고 실패는 곡선으로 사는 삶이다. 공자처럼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한다면 곡선의 휘어진 방향을 반대로 되돌리면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좋아하는 것이 있다는 것은 우리가 실패에 쓰러지지 않고 거기서 배워 재도약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 신정근

 

 

탐욕 너머에 있는 인()을 회복하라

 

탐욕 중에서 절대로 채울 수 없는 탐욕은 늙기 싫고 죽기 싫은 것이다. 이는 결코 채울 수 없는 탐욕이기 때문에 그 절망을 감당하기 어렵다. 절망은 탐욕을 가진 사람의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 이기동

 

책은 삶과 죽음, 나와 우리, 생각과 행동, 도덕과 가치 등 4부로 구성되어있다. 각 챕터마다 7~8개의 질문과 답이 실려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순서대로 읽거나, 그때그때 내 마음의 궁금 상태에 따라 한 꼭지씩 선택해서 읽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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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초 밥상
이상권 지음, 이영균 사진 / 다산책방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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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야기 2015-142

 

야생초 밥상글 이상권. 사진 이영균 / 다산책방

 

향기로운 것들은 들에서 산다.”

 

옛날에는 부자고 가난한 사람이고 먹는 건 비슷했지. 봄이면 보릿국 끓여먹고, 소리쟁이국 끓여먹고, 시래기국 끓여먹고 다 그랬지.” 먹거리는 예전에 비해 풍성해졌지만 사람의 몸은 더 약해졌다. 질병은 더 많아졌다. 수명만 연장되었다는 느낌이다. 건강하게 살다가는 것은 누구나 바라는 점이지만, 나의 건강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해선 무심하다. 아니 무지하다.

 

 

이 책의 지은이 이상권은 어느 봄날, 지인들과 남도 들판을 향해서 가벼운 여행을 떠났다. 봄바람에 취해 정신없이 걷다보니 배가 고파왔다. 식당 간판이 눈에 안 띈다. 아니 매운탕집 간판을 하나 스치긴 했는데 모두 그 곳에 들어갈 생각들이 없었다. 그저 뭔가 토속적인 평소 만나기 힘들었던 음식에 기대감을 걸고 걷고 또 걸었다. 그렇게 3시간을 걸었을까? 한계점에 다다랐다. 마을 앞에 있는 작은 상점을 보고 걸음을 멈췄다. 거기서 일단 컵라면이라도 요기를 하고 맛난 저녁을 기대하기로 했다. 할머니 혼자 지키고 있던 상점에서 밥통에 남아 있던 밤에 묵은 김치와 멸치볶음으로 허기를 달래던 중, 할머님이 뒤꼍에 널린 돌나물을 한 소쿠리 뜯어다 주는 바람에 각기 밥의 양이 두 배로 늘어나서 양푼바닥이 보일 때까지 정신없이 먹었다. 고추장 참기름 돌나물비빔밥은 이 책을 나오게 한 일등 공신이다.

 

 

이름도 처음 만나고, 당연히 먹어본 기억도 없는 소리쟁이를 만나보자.

 

소리쟁이는 가을에 잎이 지고 새로 돋아날 때부터 뜯어다가 나물로 해먹는다. 사람의 입맛에 따라 뜯어다 먹는 시기가 다 다르다. 초여름까지 뜯어다 먹을 수 있다. 우리나라들에서 가장 흔한 풀이 소리쟁이다. 습기 많은 땅에 많지만 밭가에도 많다. 여름에 줄기가 크게 자랄 때만 빼고는 언제든 뜯어다 먹는다. 긴 줄기를 미역처럼 끓여먹기도 했다.

 

 

이걸 씹다보면, 새팥 작은 이파리도 생각나고, 노란 꽃, 꼬불꼬불한 덩굴, 그 주위에서 살아가는 온갖 곤충들까지 다 생각나면서 그냥 마음이 즐거워지더라고요.” 새팥은 콩과식물로 소들이 좋아하는 풀이다. 재배하는 콩보다 작지만 단맛이 더 강하다. 30여 년 전까지만 해도 가난한 사람들이 채취해서 식량으로 썼다. 재배한 팥에서는 도저히 우려 날 수 없는 빛깔과 향이 난다.

 

 

옥매듭밥이라고 해요. 봄에 해먹는 특별한 음식이었죠. 부자나 가난한 사람들이나 해먹는 밥. 아주 공평한 음식이에요. 옥매듭풀이라고도 하는 마디풀은 늦봄이나 초여름이 되어야 나물로 먹을 수 있다. 나물로 해먹는 시기가 아주 짧다. 보통 4월 말이나 5월 초가 가장 좋다. 마디풀은 풀 전체가 진한 옥빛이다. 이런 옥빛으로 다른 풀과 구별을 한다. 주로 길가에 자라는 마디풀은 중부지방, 특히 강화에서 많이 해먹는 전통음식이다. 줄기에 옥빛이 난다고 하여 옥매듭풀이라고 한다.

 

 

쇠무릎 줄기의 마디가 소무릎 같다고 하여 쇠무릎이라고 한다. 산이나 밭가 들 등의 다소 그늘지고 습한 곳을 좋아한다. 뿌리를 넣어 담근 우슬주를 마시면 노화를 방지할 수 있다고 한다. 쇠무릎은 봄에 새싹을 내밀면서 마디와 마디 사이를 굵게 살찌우며 자란다. 쇠무릎에는 전혀 독이 없다. 당연히 초식동물들이 좋아할 수밖에 없다. 쇠무릎은 땅속에다 깊은 뿌리를 묻고 사는 여러해살이 풀이다. 봄에 땅속뿌리에서 무리지어 새싹이 돋아난다. 그래서 나물 뜯기가 편하다. 어린순을 데쳐 나물로 무쳤다. 전혀 쓴맛이 없어서 국거리로도 좋은 풀이다.

 

 

참 향기로운 책이다. 이젠 야생초를 그냥 지나치지 못할 것 같다. 정감 있는 글과 화려하진 않지만 공연히 마음이 포근해지는 좋은 사진들이 함께 하는 귀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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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틱 한시 - 사랑의 예외적 순간을 붙잡다
이우성 지음, 원주용 옮김, 미우 그림 / arte(아르테)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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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2015-141

 

로맨틱 한시이우성 / 아르테(북이십일)

 

 

로맨틱한 시? 로맨틱 한시? 띄어쓰기 하나로 의미가 달라지는 듯하지만, 결국 같은 뜻이다.

 

어느 날, 사랑에 관한 한시를 읽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알았죠. , 바보였구나. 부끄럽고 두려워서 사랑하는 사람이 눈앞에 있는데도 멀뚱히 서 있기만 했구나. 붙잡지도 매달리지도 못했구나. 당신도 그래요? 당신도 사랑이 지나가는 걸 보고만 있었어요? 망설이지 말라고, 포기하지 말라고, 이 글들을 썼습니다. 당신이 잘 해내면 나도 잘 해낼 것 같아서요.” 글쓴이 이우성의 글이다.

 

 

사랑이 나를 그대의 세상으로 부르네

 

구름 같은 이 내 마음 정숙을 생각해보려 하지만

산골짜기 적막하여 사람 보이지 않네

아름다운 꽃은 피어날 생각을 하는데,

장차 어찌하리, 이 내 청춘은..“

 

7세기 여승이었던 설요가 지은 것으로 알려진 반속요(返俗謠)라는 시다. 설요는 당나라에 건너가 좌무장군이 되었던 설승충의 딸이다. 그녀의 나이 열다섯에 아버지가 전쟁 중에 죽자 승려가 된다. 6년 동안 수행하던 중 불교 신도인 곽원진이 나타나자, 청춘의 타오르는 정열을 이기지 못하고 한 수의 시를 남겼다. 사람 구경하기도 어려운 적막한 산골에서 아름다운 꽃들이 향기를 발하며 흐드러진 모습과, 그것을 바라보며 설레는 자신의 마음이 잘 그려져 있다.

 

피어나는 꽃을 억누를 힘이 있을까? 뿜는 향을 막을 길이 있을까? 생명은 움직임에 있다. 마음도 마찬가지다. 아름다운 꽃은 피어날 생각은 하는데, 비록 속세를 떠난 비구니의 몸이지만, 마음은 여전히 푸릇푸릇하니 어쩌면 좋으리.

 

 

그대와 함께 연밥을 따다

 

가을에 맑은 호수는 푸른 옥처럼 흘러가고

연꽃 수북한 곳에 작은 배 매어두고

사랑하는 그대를 만나 물 건너로 연밥을 던지다

행여나 누가 봤을까 반나절 부끄러웠네.

 

허난설헌이 남긴 시다. 친접집의 옥사와 불운한 결혼생활 등으로 삶의 의욕을 잃고 책과 시로 슬픔을 달래며 살던 그녀는 1589년 스물일곱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임종 때 자신의 작품을 모두 불태우라는 유언을 남겨 작품이 모두 소각된 것으로 전해진다. 동생 허균이 그녀의 작품 일부를 명나라 시인 주지번에게 주었고, 그녀가 별세한 지 18년 후인 1606년에 중국에서 최초로 난설헌집으로 간행되어 격찬을 받았다. 1711년 일본에서도 간행되어 세계적인 여류 시인으로 명성을 떨치게 되면서 조선 후기에 이르러 역수입되었다.

 

 

그대 향한 마음 끝없이 흐르네

 

달빛 아래 오동잎 모두 지고

서리 맞은 들국화는 노랗게 피었네.

누각은 높아 하늘에 닿고

오가는 술잔은 취하여도 끝이 없네.

흐르는 물은 거문고와 같이 차고

매화는 피리에 서려 향기로워라.

내일 아침 그대 보내고 나면

사무치는 정 물결처럼 끝이 없으리.

 

 

사족이 필요 없는 황진이가 남긴 시다.

 

로맨틱 한시그윽한 향의 한시와 그 이력과 그림, 해설이 잘 어우러진 귀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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