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은 사람을 배제시키는 게 아니라, 살 길을 여는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 P135

하지만 평생 결코 그런 집은 문턱도 넘어보지 못하리라는 현실은 사람을 좌절시키는 구석이 있었다. - P154

"뭐든 그 일을 하기에 딱 좋은 때라는 건 없는지도 몰라. 결정하고 헤쳐 나가야하는 순간들이 있을 뿐. 나는 시청에서 혼인 신고로 대신하는 것도 좋아. 가까운 사람들 불러서 밥이나 먹고." - P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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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 문지 스펙트럼
토마스 베른하르트 지음, 김현성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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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우포늪에 갔었다. 더운 때라 새벽에 출발해 아침 8시에 도착해서 늪 주변을 걸었다. 아직 사람이 많지 않았던 그곳은 조용했고 반짝였다. 늪은 아름다웠다. 하지만 늪 안쪽으로 걸어갈수록 해가 떴음에도 축축했고, 음산했다. 그리고 물풀로 가득한 늪지 안으로 묘하게 빨려들 것만 같았다. 늪을 떠난 뒤에도 한동안 늪의 풍경은 내 기억 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이 책의 첫 단편인 <두 명의 교사>를 읽고 어리둥절했던 난 두 번째 단편인 <모자>를 읽고나자 그 우포늪이 떠올랐다. 이 단편집은 늪이다. 질척이고 축축하고 음산하지만 나도 모르게 책장을 넘기고 있었다. 불안하고 답답하고 우울하고 힘든데, 덮을 수가 없었다. 


<두 명의 교사>는 제목 그대로 두 명의 교사가 나온다. 새로 온 교사가 자신이 겪고 있는 불면증과 그로 인해 끔찍해진 삶을 고백하는 형태이다. 무언가 우리가 알 수 없는 유년기 시절의 억압 혹은 경험이 그의 삶을 흔들고 있었다. 그것은 억압된 자아일까, 죄책감이나 두려움일까. 그는 왜 용서를 구했을까.


<모자>는 우연히 주운 모자 때문에 일어나는 일을 이야기한다. 모자의 주인을 찾기 위한 여정인지, 끔찍한 무기력과 쓸모 없는 존재라는 자괴감의 표출인지 알 수가 없다. 삶은 우연이 많은 것을 결정한다지만, 극심한 우울감 밑에 살고자 하는 의지도 같이 있었던 걸까.


<희극입니까? 비극입니까?>는 조금 특이했다. 어쩌면 나보다 더 비참한 사람이 있다면 나는 어느 정도 덜 비참하다고 느끼는 걸까? 그 사람의 삶이 비극이라면 내 삶은 희극일까. 이 단편 역시 죽음이 가득했지만, 강제로 자유의지를 박탈당한 뒤 미쳐버린 삶은 더 비극적이었다. 단편들 모두 죽음을 갈망하지만 죽지 못하는 인물들이 나오는데, 그것은 삶을 향한 의지가 남아있어서가 아니라 죽을 의지마저 빼앗겼기 때문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 세 편의 단편 이후 나오는 단편들은 모두 극도의 우울감을 드러냈다. <야우레크>도, <프랑스 대사관 문정관>도, <인스브루크 상인 아들의 범죄>도, <목수>도, <슈틸프스의 미들랜드>도, <비옷>도, <오르틀러에서-고마고이에서 온 소식>도 모두 말이다. 모두 죽었거나 죽을 지경인 인물들이 나왔고, 그들을 지켜보는 이들은 방관하거나 무관심했다. 삶은 살 가치가 있는지, 그저 질병과도 같은 것인지, 그저 고통의 연속인지 알 수가 없었다. 어디에도 희망의 부스러기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도 모르게 다 읽어버렸다. 너무 불편하고 우울하지만 덮지 못하고 가슴 한 구석에 늪지의 축축함을 느꼈다. 외삼촌과 어머니의 근친상간이 의심되는 상황에서 어머니의 아들인 '나'는 외삼촌에게 멸시 당하지만 야우레크를 떠날 수 없다. 사슬에 묶인 것 마냥 그 곳에서 나올 힘을 내지 못한 채 그저 코미디언을 흉내내며 견딜 뿐이다.


프랑스 대사관 문정관이 어떤 불안감이나 우울감에 사로잡힌 지 모른 채 삼촌은 그를 추앙하지만, 결국 비극적인 이야기를 듣는다. 인스브루크 상인의 아들 이야기 역시 마찬가지다. 그를 괴롭힌 건 가족, 아버지이지만 범죄의 낙인은 피해자인 아들에게 찍힌다. 사회가 만들어 낸 범죄자인 목수는 가족인 여동생이 감당해야 했다. 그들을 끔찍한 삶으로 내몰고도 사회는 그저 그들을 외면하면서 아무 일 없는 듯 행세한다. 


휠체어를 탄 여동생을 내버려둘 수 없어서인지, 혹은 벗어날 수 없어서인지 슈틸프스를 떠나지 못하는 상속자들 이야기 역시 답답하고 우울했다. 한 번씩 찾아오는 영국인은 어떤 대안도 내놓지 못하고 그저 말만 번드르 할 뿐이다.


죽은 삼촌의 비옷은 그 비옷을 입은 다음 사람을 자신의 희생양으로 삼았다. 아들에게 버림받은 한 아버지의 사연은 그저 비옷의 출처에 밀려 사라졌다. 그 비옷을 손에 넣은 엔더러 씨는 어떻게 될까.


예술과 과학은 공존할 수 있을까. 예술이든 과학이든 증오로 가득한 곳에 굳이 파묻히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오르틀러는 부모의 학대를 상기시키는 곳이며, 형의 광기를 부추기는 곳이다. 유년기의 끔찍한 상황이 발현되면, 그것으로 끝이다. 치유되지 않는 광기는 스스로를 잠식하고, 죽을 의지조차 상실한 채 비극을 이어나간다. 희망은 없다, 세상은 원래 그러한 곳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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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4-09-09 03: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작가 이야기가 담긴 것 같기도 하네요 소설에 자기 이야기 쓰지 않는 작가는 별로 없겠지만... 우울해도 빠져들게 하는 이야기군요


희선

꼬마요정 2024-09-09 10:09   좋아요 1 | URL
자신이 겪은 일들로 만들어진 내면이 극도로 우울한 것 같아요. 보는 동안 많이 힘들었지만 그래도 저도 모르게 읽고 있더라구요. 아, 정말 힘들었어요. 작가는 어떻게 살았을까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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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나라 선녀님
허태연 지음 / 놀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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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가슴 아픈 사연이 있고, 누구에게나 커다란 슬픔이 있다. 누구는 부잣집에서 태어나 돈 걱정 없이 살아가고, 누구는 부모도 모르거나 부모를 잃은 삶을 살아가기도 한다. 누군가는 삶을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큰 돈이 누군가에게는 좋은 일을 한다는 기쁨을 주는 정도가 되어버리기도 한다. 돈으로 해결하는 게 제일 쉽다지만 돈만큼 치사하고 사람의 자존심을 깎아내리는 것도 드물다. 


중고나라나 당근이 이웃의 정을 느끼고 아끼고 나눠쓰는 장이 될수도 있지만, 서민 체험 하는 곳이 될 수도 있다. 그래도 선여휘 여사 같은 사람이 많으면 세상은 좀 더 살기 좋을 수 있겠다. 동정이든 공감이든 간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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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장윤회양분세계
조현아 지음 / 읻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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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수많은 죽음을 보았다. 죽음이 무엇인지도 모를 때 친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얼굴도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조금 더 나이가 들어 함께 살았던 친할머니가 돌아가셨고, 몇 년 후 외할머니도 돌아가셨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화장장에서 화장이 시작될 때, 나랑 동생은 미친듯이 울었더랬다. 어린 시절, 나랑 동생을 키워주시다시피 하셨다. 사랑하고 사랑했다. 얼마나 사랑했냐면, 외할머니가 이상한 행동을 하셔도, 그게 더러워도 난 꾹 참을 정도였다. 사랑했으니까. 외할머니가 내 팔에 있는 흉터를 안쓰럽게 여겨 흉터를 없애는 비법이라며 아침에 눈 뜨자마자 침을 발라도 참았다. 물론 흉터는 전혀 없어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나는 괜찮았다. 


그 후 큰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친구 어머님이 사고로 돌아가시고, 정독실에서 함께 공부하던 후배가 죽었고, 시어머니가 돌아가셨다. 함께 공부하던 또 다른 후배가 세상을 떠나고, 함께 공부하던 선배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고, 대학원 지도교수님의 사모님이 돌아가셨다. 그 후로도 지인들의 부모님이 돌아가시는 등 주변에 조사는 끊이지 않았다. 게다가 반려동물도 여럿 무지개다리를 건넜고, 길에서 밥을 챙겨주던 냥이들도 많이들 떠났다.


그렇게 죽음은 너무 가까이에 있었다. 사랑하는 이들의 죽음은 슬프고 아팠지만 때론 이젠 더 이상 고통스럽지 않을 거란 믿음도 있었다. 차안(此岸)의 세계에는 고통이 있지만 피안(彼岸)의 세계에는 고통 따위는 없겠지. 육신이 없으니 육체의 고통을 더 이상은 느끼지 않을테지란 위안이 말이다.


불교 재단 '연산윤회연구소'는 몇천 년의 인류 역사를 압축한 가상세계 sam4를 개발했다. 그리고 그 프로그램의 유지보수를 한국대 대학원에 맡겼다. 담당자가 자리를 비운 며칠 사이, 시스템에 손을 댄 이들이 있었고 문제를 해결하기도 전에 연구동은 정전됐다. 이제 sam4 속 세계 PYAYAN은 피안과 차안이 뒤섞여 아침이 와도 해가 뜨지 않았고, 나이가 들어도 병에 걸려도 심지어 높은 곳에서 뛰어내려도 죽지 않았다. 


죽음이 없는 세상을 꿈 꾼 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가진 부와 권력을 동원하여 끊임없이 피안의 세계를 엿보았고 실패했다. 사람들은 그런 불사(不死)의 존재를 상상하기 시작했다. 뱀파이어는 대표적인 불로불사(不老不死)의 존재다. 그들은 해를 보지 못하지만 늙지도 죽지도 않는다. 특정한 상황만 피한다면 말이다. 그런데 이곳 sam4 속 세계 PYAYAN은 오류 및 오류로 인한 긴급저장의 가동으로 살아있는 것들은 죽지 못했다. 


물고기를 구워도 물고기들은 죽지 않았다. 심장병에 걸린 열여덟 살의 강아지도 죽지 않았다. 연명치료를 중단한 사람들도 죽지 않았다. 프로그램이 스스로 복구하려는 과정 속에서 간편식이 개발되는 바람에 sam4 속 사람들은 굶어죽을 수도 없게 되었다. 하지만 고통은 남았다. 살아있는 이상 반드시 죽음은 찾아 온다. 그건 어떻게 보면 축복이다. 고통을 끝낼 수 있는 축복. 이제 어떤 생명체도 죽지 않았고 그리하여 어떤 생명체도 태어나지 않았다. 


그런 저주 같은 상황에서도 사람들은 살아갔다. 공무원 중 자리를 지키며 계속 일을 하는 이들도 있었고, 주변에 간편식이나 필요한 물품들을 배달하며 사람들을 도우는 이들도 있었다. 그들은 뜨지 않는 해를 기다리고 태어나지 않는 생명을 기다리고 떠날 사람들을 생각하며 멈춰버린 세상이 다시 돌아가기를 기다렸다. 그런 희망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빛이 없는 세상에서도 사람들은 소소한 일상을 살아가고 희로애락(喜怒哀樂)을 경험하고 이 고통이 지나갈 것을 꿈꾼다. 그들 역시 번뇌가 들끓는 평범한 사람들이지만 또한 자신과 타인을 돕는 이들이다. 어쩌면 구원이란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한없이 맑고 깨끗한 것이 아니라 작은 것들을 소중히 여기고 더럽고 추악한 면들을 조금씩 정화시켜 나아가는 것 말이다. 그들이 원하는 건 단순히 컵라면을 먹고, 소주를 마시고, 좋아하는 웹툰을 보는 일상이다. 그리고 다시 일상을 회복하리라는 희망이 있기에 그들은 극단적인 선택들을 하지 않는다. 분노로 남을 해치지도, 절망으로 자신을 해치지도 않는다. 그들은 끊임없이 답을 찾으려 노력하며 그 과정을 결코 무시하지 않는다. 그렇게 삶은, 죽음은, 세상은 순환한다.


예전에 열심히 하던 게임이 있었다. 게임 속 고양이들을 돌보는 오락이었는데, 한동안 이 게임을 그만둘 수 없었다. 가상 세계임에도 내가 이 게임을 그만두면 이 고양이들의 밥과 물은 누가 챙겨주며, 장난감으로 놀아줄 이는 누구이며, 포근한 잠자리는 누가 깔아준단 말인가. 이 게임을 그만두고 죄책감에 시달렸고, 이런 류의 게임은 다시는 하지 않으리라 마음 먹었다. 가상 세계 속 이들은 이렇게 누군가 접속을 끊어버리면 어디로 가게 될까. 

살아 있는 이상 죽음에 저항하지 못하는 순간은 분명 찾아온다. 죽어야 할 때 죽지 못하면 더는 인간으로 살 수 없게 된다. 주변을 지키는 이들도 서서히 인간이기를 포기한다. 사랑하는 존재가 차라리 죽었으면 좋겠다고 독기 품은 저주를 내리고, 다시 고개 드는 죄책감에 울고. 산 사람이 살기 위해서 죽을 사람은 죽어야 한다. 그 경계에 지나치게 오래 머물면 삶의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린다. - P136

태양이 꺼져도 따뜻했던 까닭은 언니가 세상을 사랑했기 때문이다. 남은 자들이 어둠과 영생을 견디도록, 언니는 세계를 포용했다. - P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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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4-09-05 02: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큰 재해가 일어난 뒤에도 산 사람은 살아가는 게 떠오르기도 하네요 죽음이 없어지면 사는 게 괴로울지, 아프지 않다면 좀 나을 텐데 아픈 건 그대로면 사는 게 힘들겠습니다 그런 세상에서도 사람은 살아가는군요 언젠가 좋아진다 믿고... 그렇게 되면 좋을 텐데...


희선

꼬마요정 2024-09-07 23:29   좋아요 1 | URL
이 책 읽다보면 그런 이야기가 나오거든요. 심장병에 걸린 강아지가 죽지 못해 고통 받는 걸 보다가 아파트에서 던지려고 했다는 이야기요. 하지만 그러고도 죽지 못하기에 더 고통 받을 수밖에 없다는 걸 사람들은 알지만 받아들이기 힘들어해요. 다행히 그 강아지는 ‘삭제‘라는 형태로 죽음을 맞이했지만, 마음이 아팠어요. 죽음이 좀 다르게 다가오더라구요.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페크pek0501 2024-09-05 12: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람들은 굶어죽을 수도 없게 되었다.˝ - 저는 죽을 자유가 없는 세상이 끔찍하게 느껴집니다. 실제로 자살을 하지 않더라도 맘만 먹으면 고통을 한 순간에 끝낼 수 있다는 사실이 인간에게 위로를 준다고 여기기 때문이에요.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다면 그래서 고통이 계속된다면 그건 지옥이지요. 장수 시대가 꼭 좋지만은 않다고 생각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예요. 자신이 점점 노화되어 나중엔 남의 도움 없이는 하루도 살지 못하는 날이 온다면 그래서 기저귀를 차고 살아야 한다면 지옥에서 사는 것처럼 느껴지거든요.

꼬마요정 2024-09-07 23:33   좋아요 1 | URL
안 그래도 건강 유튜브 보면 그러더군요. 우리의 목표는 아흔 살에도 스스로 걸을 수 있는 거라구요. 그래서 지금부터 근육을 만들어야 한다는 거죠. 언제 죽을 지 모르지만, 사는 동안은 스스로 뭐든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어릴 땐 몰랐는데 점점 그런 생각이 듭니다. 남의 도움 없이 가장 기본적인 일들을 해 내는 게 쉬운 게 아닐 수 있다는 걸요. 고통을 끝낼 수 있다는 건 축복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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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월; 초선전
박서련 지음 / 은행나무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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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4대 미녀를 일컫는 말이 있다. 침어낙안 폐월수화(沈魚落雁 閉月羞花). 춘추전국시대 오나라를 패망으로 이끈 서시, 흉노가 득세하던 시기에 한나라를 위해 흉노의 선우와 정략혼을 한 왕소군, 삼국지연의에 등장하여 동탁을 제거하는 데 일조했던 초선, 당 현종의 며느리이자 한 시대를 휘어잡았던 양귀비가 그 주인공들이다.(4대 미녀에 초선이 들어가고 조비연이 빠진 건 저 말이 너무 입에 달라붙어서일까.) 물고기가 헤엄치는 것을 잊어버린 채 가라앉고, 하늘을 날던 기러기가 날갯짓을 잊어버려 떨어지고, 달이 창피해서 숨어버리고, 꽃이 부끄러워 고개를 숙인다는 아름다움이란 어떤 것일까.  


사실 저 이야기들 중 실존인물이 아닌 이가 있다. 바로 초선이다. 초선은 뜬금없이 삼국지연의에서 왕윤의 가기(歌妓) 혹은 수양딸로 등장하는데, 빼어난 외모와 총명함, 뛰어난 연기로 동탁과 여포를 이간질하여 한 왕조의 문을 닫게 하는데 큰 역할을 한다. 하지만 그녀의 처음과 끝은 지워진 듯 사라진 듯 없다. 마치 서시가 오나라를 망하게 한 뒤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는 것처럼 말이다. 이는 어쩌면 쓸모가 다한 존재의 뒷 이야기는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 같다. 그리고 남은 건, 그저 한 나라를 무너뜨릴만큼 아름다웠다는 전설 뿐.


하지만 그런 여인들에게도 부모가, 어린 시절이, 고난이 있었다. 그녀들은 늙어죽을 수도 있었고, 행복할 수도 있었다. 박서련 작가는 그런 초선의 삶을 되살려냈다. 태어나고 싶어 태어난 것도 아니고, 아름답고 싶어 아름다워진 것도 아닌, 그저 살아있기에 살고자 했던 한 사람으로서의 초선을 말이다.


아주 어린 시절 '나'의 기억 속 부모는 기아에 허덕이다 옆집 아이와 '나'를 바꿨다. 잡아먹기 위해서였다. 옆집 아이는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으나 '나'는 필사적으로 도망쳤다. 살기위해서였다. 그리고 다리 밑 거지 아이들과 함께 살게 되었고, 대장을 만났다. 때는 후한 말, 십상시도 난리고 황건적도 난리고 탐관오리들도 난리고 군웅들이 할거한다고 난리던 시절이었다. 난세는 기회라지만 거지 아이들에게 그런 것보다는 당장 한 끼 밥과 비를 피할 곳이 더 중요했다. 대장은 '나'에게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들을 알려주었고, 구걸하기에 보다 쉬웠던 아이는 그렇게 어른이 되어갔다. 


그리고 황건적의 난이 일어났다. 거지 아이들은 황건적에 합류했고, 관군에게 쫓겼다. '나'는 그 난리통에 뒤쳐졌고, 운명을 만났다. 왕윤은 '나'를 주웠고, '나'는 주워들은 대로 황건적들에게 가족을 잃은 귀족 행세를 했다. 그렇게 '나'는 왕윤의 양딸이 되었다.


처음으로 따뜻한 밥을 먹었고, 부드러운 이불을 덮었고, 고운 옷을 입었다. 하고 싶고 되고 싶은 것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자신의 은인인 왕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었다.


"정말 여자는 관리가 될 수 없습니까?"

"여인으로서 관모에 손댈 수 있는 자는 오직 초선뿐이란다."

"그러면 저도 초선이 되겠습니다."(p.52)


초선관모는 담비(貂)털과 매미(蟬) 날개로 만들어져 망가지기 쉽기에 삼공이나 그 이상 가는 높은 관직에 오른 사람의 집에나 황제의 곁에만 그 관만을 모시고 손보는 여인을 둔다. 그런 여인을 초선이라 부른다. 그 때부터 나는 초선이 되었다. 


삼국지연의에서 말하지 않았던 초선의 이야기는 무척이나 흥미로웠다. 초선이 어떻게 왕윤의 수양딸이기도 하고 가기(歌妓)이기도 했는지, 어째서 초선이었는지, 왜 왕윤을 위해 자신의 몸을 바쳤는지 그녀의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왕윤이 구해주기 전까지 어떤 기준도 없던 여자 아이가 자신을 구해 준 이에게 연정을 품고 서로를 이용하며 원하는 바를 이루려고 하기까지의 과정을 말이다. 


초선은 어쩌면 자기 자신을 가장 사랑했는지도 모른다. 자신이 못났든 잘났든 상관없이 말이다. 그래서 자신을 구해 준 왕윤을 사랑했고, 자신에게 쾌락을 알려 준 여포에게 약간의 마음 한 자락을 내주기도 하고, 듣기 좋은 목소리를 가진 동탁을 마냥 혐오하지만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마지막에 사랑했던 이의 비겁하면서도 간절한 부탁을 거절할 수 있었겠지.    


그녀가 정말로 되고 싶었던 건 무엇이었을까.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은 무엇이었을까. 그저 한 사람으로 자유롭게 살아가다 늙고 병드는 것마저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삶을 원했을까. 자신의 아름다운 머릿결이, 백옥같은 얼굴이, 짙고 풍성한 눈썹이, 하얗고 가지런한 이가 하얗게 세고, 누렇게 뜨고, 다 뽑혀 듬성듬성해지고, 다 빠져버려도 그저 웃는다. 


그녀는 살아남았고, 그녀가 이겼다. 

그러한 모든 순리는 허망한것이로되 나는 여전히 살아있다. - P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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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4-09-03 20:0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초선, 그이가 끝내 살아 훗날 늙어 자연사했기를 바랍니다. 왕윤, 여포, 동탁 같은 영웅 말고 그저 무지랭이 하나 만나 남은 평생 밭이나 갈다가 아이들 낳고 없는 살림 궁상 떨면서 그렇게, 그렇게 살다 갔기를. 그런데 아닐 거 같네요.

꼬마요정 2024-09-04 00:47   좋아요 2 | URL
아, 정말로 그렇게 늙어 죽기를 바랍니다... 킬킬 웃으며 한 때 천하를 호령하던 이들을 만났던 때를 우스개거리로 삼으면서 말입니다. 가정을 이루고 아이들을 낳을 수 있으면 좋구요, 또 없으면 어떻습니까. 험난한 세상 홀로 자유롭게 살아가도 좋겠지요. 그렇게 아름답지 않더라도, 총명하지 않더라도 한 사람으로 살다 그렇게 가기를요... 그랬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서시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카스피 2024-09-04 01:3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흠 일종의 삼국지 스핀오프 같은 소설이네요.위에서 말히신 중국 4대 미인중 저는 서신,초선,양귀비등은 자신의 의지로 역사를 바꾸려고 했거나 황제를 좌지우지하면서 호화로운 삶은 살았다면 왕소군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후궁들과 환관의 간계로 흉노에 끌려가 제일 비참하지 않았나 싶어요.

꼬마요정 2024-09-04 02:12   좋아요 1 | URL
말씀 듣고 보니 왕소군 너무 불쌍하네요. 서시나 초선은 스스로 영웅적인 역할을 하려 했고, 양귀비는 부와 권력을 손에 넣었지만 왕소군은 너무 비참했겠어요ㅠㅠ 결국 화공은 참수됐지만 왕소군은 혹독한 땅으로 떠나야했죠. 그 곳에서 행복하기라도 했으면 좋겠어요. 낯선 곳, 낯선 사람들 속에서 너무 외롭지 않았기를. 어쩜 이리도 뒷날의 삶을 살게 하고픈 이들이 많을까요ㅠㅠ

Falstaff 2024-09-04 05:58   좋아요 2 | URL
중국 미인들 가운데 제일 행복한 삶을 살았던 이가 왕소군 아닐까 싶습니다.
비록 오랑캐 땅으로 끌려가 춘래불사춘을 읊었지만, 뽀얀 피부의 왕비로 왕에게 사랑받고, 가죽옷을 입던 흉노 여인들에게 길쌈과 물레질을 가르쳐 죽을 때까지 그들의 존경을 받았다고 합니다. 부정부패와 암투와 질투, 시기가 들끓었던 중국 황실, 귀족의 뒷방보다야 훨씬 낫지 않을까요.

꼬마요정 2024-09-04 13:07   좋아요 1 | URL
오오 그랬다니 정말 다행입니다. 고향이 그립긴 해도 그곳에서 행복하다면야 좋지요. 어느 시절이든 중국 황실 암투는 정말... 귀족의 뒷방이라도 가면 다행이고, 죽을 수도 있잖아요. 그게 아니라 정말 다행이에요.^^

유부만두 2024-09-04 09: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초반에 영 속도가 나질 않아서 포기했는데 또 궁금해지네요.

꼬마요정 2024-09-04 13:10   좋아요 0 | URL
재밌게 읽었어요. 무엇보다 초선이 스스로 삶을 개척해나가는 게 좋았구요. 마지막이 좋았습니다.^^

호시우행 2024-09-08 18: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초선의 이야기를 이렇게 풀어낸 작가님과 리뷰글이 무척 인상적입니다.

꼬마요정 2024-09-08 21:44   좋아요 0 | URL
초선의 삶이 누군가를 위한 삶이 아니라 자신을 위한 삶이라 좋았습니다. 인상깊게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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