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입자
안인용 지음 / OC HQ(오씨에이치큐)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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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돈 앞에 굉장히 생각이 많아지는 곳이다. 내 건물에서 사건, 사고가 나면 건물값 걱정부터 드니까 말이다. 심지어 자기 자본만으로 건물을 짓거나 사는 경우가 별로 없어서 무슨 일이 나면 대출금 상환 걱정이 절로 든다. 건물을 지을 때 문화재가 발견되어도 지연되는 공사 일정과 그에 따른 비용 증가를 생각하고, 건물을 다 지은 후에도 건물값이 떨어지지 않도록 주변과 담합을 하든 조작을 하든 관리한다. 


시장 경제 원리로 가격은 자연스럽게 수요와 공급으로 조절된다고 하지만, 일정 이상의 가격을 원하는 공급자가 수요자의 선택을 방해하는 일이 빈번한 것은 아마 이제 더 큰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 노동이 아니기 때문인 듯 하다. 예전처럼 열심히 일해서 모은 돈으로 차도 사고 집도 사는 일은 환상처럼 보이기도 한다. 갑자기 오른 부동산이나 코인, 주식 등으로 벼락부자가 된 사람들이 경제적 자유를 얻었다고 호의호식하는 걸 보면서 사람들은 부러워하는 동시에 자신들도 그런 부를 거머쥐고 싶어 소위 '영끌'을 통해 '투기'를 한다. 내 한 몸 누이고 하루의 피로를 씻어줄 평온한 안식처로 '집'을 원하는 게 아니라 막대한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집'을 원하는 것이다.


경복궁 쪽 청자동에 꼬마빌딩을 짓기로 한 지원은 처음에 그런 마음은 아니었다. 어린 시절, 부모의 보살핌은 커녕 학대를 받던 아이는 언제나 쫓기듯 살았고, 그저 안락한 가정을 원했다. 겉보기에도 안으로도 행복한 가정을 원했던 그녀는 두 번의 결혼을 실패하고 자신만의 집을 짓기로 결정했다. 자신의 예산에 맞는 땅을 찾고 찾아 마침내 건물을 올리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문화재가 나왔다.


문화재 발굴 조사 팀장 미정이 옛날부터 좋은 땅이라 그렇다는 위로에도 지원은 불어나는 공사비를 셈하면서 우울해했다. 그리고 자신의 땅에 나타난 대형건물주 천기백을 만나면서 묘한 긴장감이 발생하는데...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특별한 존재이길 바란다. 그리고 자신에게 찾아오는 시련은 무언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두 가지가 합쳐지면 사람은 '사이비'에 빠져들기 쉬워진다. '신'이 나를 선택해서, 내 조상이 '나'를 선택해서 등등 망상에 빠지면서 이 과업을 완수해야 자신의 것인 부와 명예를 되찾을 수 있다 여기는 것이다. 


여기 지원이나 기백에게 진정한 공포는 사람의 시체도, 귀신도, 연쇄살인마도, 싸이코패스도, 크툴루도 아니었다. 그들이 정말 무서워하는 건 부동산 시세가 하락하는 것, 그것이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모른 척하고 아닌 척하고 숨기려고 했다. 하지만 진실은 언젠가는 드러나는 법.


'정상' 혹은 '제대로'란 무엇일까. 아무리 둘러보아도 '정상'이란 단어에 딱 들어맞는 사람은 없어보인다. 피와 시체를 보면 기절하는 의대생이었던 치수나 어린 시절 부모의 학대를 받은 지원이나 무슨 중세 영주마냥 동네를 군림하는 기백이나 자녀의 학비 때문에 혹세무민하는 현록이나 모두 '제대로'된 상태는 아닌 것 같지만 그 또한 우리 사회가 만들어낸 보통 사람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본이 잠식되면 그에 따른 비용이 빠르게 늘어난다. '파산'은 이 사회에서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어렵게 한다. 그러니 한 사회에서 버려지는 것이 두렵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그래서 사람들은 '돈' 앞에 기를 쓰고 애를 쓰고 뻔뻔해지는 지도 모르겠다. 인간답게 살기 위해 필요한 돈이 도리어 인간성을 훼손하는 것도 모른 채 말이다. 


실패했을 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사회가 되고, 노동이 제대로 된 가치로 인정받는 세상이 오면 좋겠다. 그러면 조금이나마 더 살만한 세상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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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4-12-31 14: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비극은 사는 곳(place)이 아닌 사는 것(buy something)으로 바뀌어 버린 것에 있겠죠.

꼬마요정 2024-12-31 18:52   좋아요 0 | URL
아악, 너무 비극적입니다.ㅠㅠ 남보다 좋은 집, 남보다 비싼 집을 꿈꾸는 세상이 슬프네요. 행복하고 안락한 집은 돈으로 ‘살 수 있는(purchasable)‘ 것이 아닌데 말입니다. 집이 오롯이 그 목적에 충실할 때가 오기를 바랍니다.

희선 2025-01-01 02: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꼬마빌딩을 지으려고 하다니, 엄청나네요 그런 걸 할 돈이 있다는 거기도 하니... 자신이 평안하게 살 수 있는 곳이기만 해도 될 텐데, 다른 것까지 생각하기도 하는군요 평안만 바랐다면 서울이 아닌 다른 곳에 건물을 지으려고 했겠습니다

꼬마요정 님 새해가 왔네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 잘 챙기시기 바랍니다


희선

꼬마요정 2025-01-01 10:18   좋아요 1 | URL
정말 평안만 바랐다면 서울 외곽이나 서울 아닌 지역의 땅을 샀겠네요. 사람의 욕망은 어디까지일까요…

희선 님, 2024년 감사했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늘 건강하세요^^

서니데이 2025-01-02 17: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꼬마요정님, 새해 첫 날 잘 보내셨나요.
2025년에도 항상 건강하고 행복하시고, 좋은 일들 가득한 한 해 되시길 바라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