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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장윤회양분세계
조현아 지음 / 읻다 / 2024년 6월
평점 :
살면서 수많은 죽음을 보았다. 죽음이 무엇인지도 모를 때 친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얼굴도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조금 더 나이가 들어 함께 살았던 친할머니가 돌아가셨고, 몇 년 후 외할머니도 돌아가셨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화장장에서 화장이 시작될 때, 나랑 동생은 미친듯이 울었더랬다. 어린 시절, 나랑 동생을 키워주시다시피 하셨다. 사랑하고 사랑했다. 얼마나 사랑했냐면, 외할머니가 이상한 행동을 하셔도, 그게 더러워도 난 꾹 참을 정도였다. 사랑했으니까. 외할머니가 내 팔에 있는 흉터를 안쓰럽게 여겨 흉터를 없애는 비법이라며 아침에 눈 뜨자마자 침을 발라도 참았다. 물론 흉터는 전혀 없어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나는 괜찮았다.
그 후 큰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친구 어머님이 사고로 돌아가시고, 정독실에서 함께 공부하던 후배가 죽었고, 시어머니가 돌아가셨다. 함께 공부하던 또 다른 후배가 세상을 떠나고, 함께 공부하던 선배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고, 대학원 지도교수님의 사모님이 돌아가셨다. 그 후로도 지인들의 부모님이 돌아가시는 등 주변에 조사는 끊이지 않았다. 게다가 반려동물도 여럿 무지개다리를 건넜고, 길에서 밥을 챙겨주던 냥이들도 많이들 떠났다.
그렇게 죽음은 너무 가까이에 있었다. 사랑하는 이들의 죽음은 슬프고 아팠지만 때론 이젠 더 이상 고통스럽지 않을 거란 믿음도 있었다. 차안(此岸)의 세계에는 고통이 있지만 피안(彼岸)의 세계에는 고통 따위는 없겠지. 육신이 없으니 육체의 고통을 더 이상은 느끼지 않을테지란 위안이 말이다.
불교 재단 '연산윤회연구소'는 몇천 년의 인류 역사를 압축한 가상세계 sam4를 개발했다. 그리고 그 프로그램의 유지보수를 한국대 대학원에 맡겼다. 담당자가 자리를 비운 며칠 사이, 시스템에 손을 댄 이들이 있었고 문제를 해결하기도 전에 연구동은 정전됐다. 이제 sam4 속 세계 PYAYAN은 피안과 차안이 뒤섞여 아침이 와도 해가 뜨지 않았고, 나이가 들어도 병에 걸려도 심지어 높은 곳에서 뛰어내려도 죽지 않았다.
죽음이 없는 세상을 꿈 꾼 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가진 부와 권력을 동원하여 끊임없이 피안의 세계를 엿보았고 실패했다. 사람들은 그런 불사(不死)의 존재를 상상하기 시작했다. 뱀파이어는 대표적인 불로불사(不老不死)의 존재다. 그들은 해를 보지 못하지만 늙지도 죽지도 않는다. 특정한 상황만 피한다면 말이다. 그런데 이곳 sam4 속 세계 PYAYAN은 오류 및 오류로 인한 긴급저장의 가동으로 살아있는 것들은 죽지 못했다.
물고기를 구워도 물고기들은 죽지 않았다. 심장병에 걸린 열여덟 살의 강아지도 죽지 않았다. 연명치료를 중단한 사람들도 죽지 않았다. 프로그램이 스스로 복구하려는 과정 속에서 간편식이 개발되는 바람에 sam4 속 사람들은 굶어죽을 수도 없게 되었다. 하지만 고통은 남았다. 살아있는 이상 반드시 죽음은 찾아 온다. 그건 어떻게 보면 축복이다. 고통을 끝낼 수 있는 축복. 이제 어떤 생명체도 죽지 않았고 그리하여 어떤 생명체도 태어나지 않았다.
그런 저주 같은 상황에서도 사람들은 살아갔다. 공무원 중 자리를 지키며 계속 일을 하는 이들도 있었고, 주변에 간편식이나 필요한 물품들을 배달하며 사람들을 도우는 이들도 있었다. 그들은 뜨지 않는 해를 기다리고 태어나지 않는 생명을 기다리고 떠날 사람들을 생각하며 멈춰버린 세상이 다시 돌아가기를 기다렸다. 그런 희망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빛이 없는 세상에서도 사람들은 소소한 일상을 살아가고 희로애락(喜怒哀樂)을 경험하고 이 고통이 지나갈 것을 꿈꾼다. 그들 역시 번뇌가 들끓는 평범한 사람들이지만 또한 자신과 타인을 돕는 이들이다. 어쩌면 구원이란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한없이 맑고 깨끗한 것이 아니라 작은 것들을 소중히 여기고 더럽고 추악한 면들을 조금씩 정화시켜 나아가는 것 말이다. 그들이 원하는 건 단순히 컵라면을 먹고, 소주를 마시고, 좋아하는 웹툰을 보는 일상이다. 그리고 다시 일상을 회복하리라는 희망이 있기에 그들은 극단적인 선택들을 하지 않는다. 분노로 남을 해치지도, 절망으로 자신을 해치지도 않는다. 그들은 끊임없이 답을 찾으려 노력하며 그 과정을 결코 무시하지 않는다. 그렇게 삶은, 죽음은, 세상은 순환한다.
예전에 열심히 하던 게임이 있었다. 게임 속 고양이들을 돌보는 오락이었는데, 한동안 이 게임을 그만둘 수 없었다. 가상 세계임에도 내가 이 게임을 그만두면 이 고양이들의 밥과 물은 누가 챙겨주며, 장난감으로 놀아줄 이는 누구이며, 포근한 잠자리는 누가 깔아준단 말인가. 이 게임을 그만두고 죄책감에 시달렸고, 이런 류의 게임은 다시는 하지 않으리라 마음 먹었다. 가상 세계 속 이들은 이렇게 누군가 접속을 끊어버리면 어디로 가게 될까.
살아 있는 이상 죽음에 저항하지 못하는 순간은 분명 찾아온다. 죽어야 할 때 죽지 못하면 더는 인간으로 살 수 없게 된다. 주변을 지키는 이들도 서서히 인간이기를 포기한다. 사랑하는 존재가 차라리 죽었으면 좋겠다고 독기 품은 저주를 내리고, 다시 고개 드는 죄책감에 울고. 산 사람이 살기 위해서 죽을 사람은 죽어야 한다. 그 경계에 지나치게 오래 머물면 삶의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린다. - P136
태양이 꺼져도 따뜻했던 까닭은 언니가 세상을 사랑했기 때문이다. 남은 자들이 어둠과 영생을 견디도록, 언니는 세계를 포용했다. - P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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