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생 순정만화 X SF 소설 시리즈 2
듀나 지음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24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가 순정만화를 처음 접한 건 중학생 때였다. 외숙모가 재밌다고 집 옆에 있던 만화방에서 빌려 준 책이었는데, 그 책이 한승원, 김동화 작가님의 <사랑의 에반제린>이었다. 그 뒤로 순정만화의 늪에 빠진 나는 닥치는 대로 읽다가 엄마한테 걸려 여러 번 혼이 났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만화책을 읽는 게 무슨 잘못인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한참 읽다보니 좋아하는 작가도 생기고, 작품도 생겼다. 내가 충격 받았던 작품들은 제법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아르미안의 네딸들>이었다. 당시 그리스 신화와 역사를 좋아하던 터라 정말 재미나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완결이 나지 않았다는 사실도. 정말 충격 받았다. 아니, 왜? 여기서?


신일숙 작가님의 작품을 계속 찾았더랬다. <사랑의 아테네>나 <아르미안의 네딸들>, <리니지>, <라이언의 왕녀> 등등 매력적이고 매혹적인 작품들이 많았다. 그리고 그 중에 또 충격적인 작품인 <1999년생>이 있었다.


한참을 읽어나가다가 어느 순간이 왔을 때, 입에서 비명을 안 지르고 본 내 나이대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순정만화라고 다 로맨스만 있는 건 아니었고, 다 지고지순함만 있는 건 아니었다. 리더십도 있었고 배짱도 있었고 무력도 있었다. 이미 그녀는 여왕이었고 장군이었고 전사였다. 그런 그녀에게 시련은 로맨스 뿐만 아니라 동료애에서 비롯되기도 하였다. 


사랑에 흔들리는 건 여자라고 편향된 시각이 존재한다지만, 저 먼 시대 달기나 포사 때문에 나라 망하게 한 사람도 있으니까. 소중한 상대를 두고 협박하는 건 어느 시대, 어느 성별에나 있는 이야기일 뿐이다.


지금은 지났지만, 그 당시에는 미래였던 시간대인 20세기 말. 어느 날 갑자기 우주에서 외계인이 쳐들어왔고, 지구는 속절없이 당하다가 그들이 추위와 초능력에 약하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특히초능력의 경우 1999년에 태어난 이들이 가진 초능력에 특별히 약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1999년에 태어난 이들 중 뛰어난 초능력을 가진 이들은 갑자기 외계인과의 전쟁에 군인으로 투입되었다. 


어린 나이에 갑자기 전투에 내몰린 그들 중 크리스 정이 있었다. 특히나 뛰어난 능력을 가졌던 그녀는 최전방이라 할 수 있는 멕시코로 가게 되는데, 그곳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로페스 교관이 있었다. 


이야기는 크리스와 로페스의 악연, 아니 자헬 킬레츠와의 악연이 절정으로 이끈다. 그러한 이유로 크리스는 그 사건 이후로도 지금까지 고통 받고 고통을 주고 있었다. 2023년생이 자라서 19살이 되던 2042년까지도 말이다. 


듀나 작가의 <2023년생>은 가루다 팀이 외계인 수석 중 한 명인 에이바 플래너건을 습격하다 캡틴인 수린을 잃는 것으로 시작한다. 지구인들은 이제 외계인 군단의 행성을 찾아내기에 이르렀고 가장 유력한 위치를 찾았다. 그곳은 '지옥'이라 불렸다. 캡틴을 잃은 가루다 팀은 충원이 필요했고, 다국적인들로 이루어진 팀은 뛰어난 능력을 바탕으로 '지옥'에서의 최후의 전쟁을 준비하게 되는데...


에이바 플래너건을 제거하면서 이제 남은 수석은 자헬 킬레츠 정도였다. 외계인 군단은 자신들의 군대가 죽어도 지원군을 보내거나 다른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여전히 전쟁 중이기는 하지만 지구에는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어느 정도 퍼져 있었고, 전후 시기를 저울질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리하여 지금은 외계인과의 싸움에서 든든한 아군이지만 전쟁이 끝난 뒤에는 처치곤란일 초능력자들의 처분 문제도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었다. 실제로 자신들의 힘만 믿고 민간인을 괴롭히는 이들이 많았다. 특히나 성폭력은 큰 문제가 될 수 있었다. 


능력이 있다는 이유로 10대들을 전쟁에 투입하는 건 옳은 일일까. 과거 소년 십자군처럼 어른들에게 실컷 이용당하고 버려지지는 않겠지만, 그들은 어린 나이에 자신들의 힘을 '살육'하는 데 써야 했다. 비록 외계인이라고는 하지만 살아있는 누군가의 생명을 꺼트리는 일은 참혹할 터였다. 그리고 그들은 이제 통제하기 힘든 대상이 되었다. 평범한 인간이 초능력자를 상대로 싸울 수 있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초능력을 제어할 기술이 필요했다. 일전에 로페스가 사용했던 알코올이 든 목걸이처럼 말이다.


성폭력과 살인을 자행한 이들은 강철불사조 팀이었다. 그들은 교수대에 매달리는 대신 전투에 투입되었고, 이제는 여성 군인들에 대해 음담패설을 나불거렸고, 외계인들을 무자비하게 고문하고 학살했다. 화가 난 가루다의 예류가 가해자인 이동수를 잡으러 가면서 자헬 킬레츠의 '골렘'이 모습을 드러냈고, 그렇게 수석들의 이름이나 외모에 대한 단서를 얻게 되었다.


외계군단의 방해가 있었지만, 팀은 '지옥'으로 향했다. 과연 그들은 왜 지구를 침략했으며, 왜 그렇게 크리스를 괴롭혔을까. 예측한 장소에 '지옥'이 있을까. 불가사의한 힘을 가진 초능력자들은 어디서 기인한 것일까.


외계군단과의 전쟁이 끝난 후 지구는 어떤 모습을 지닐까. 어떤 체제를 구성하고 어떤 사회를 지향할까. 큰 전쟁 하나가 끝나고 또 다른 다툼은 없을까. 인간은 다투기 좋아하는 존재라 또 어떤 꼬투리를 잡아 무력으로 상대를 제압하려 할지 모르겠다. 살육의 전장으로 내몰았던 초능력자들을 사회구성원으로 받아들이기 위해 그들에게 족쇄를 채우려 들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또 다른 전쟁이 일어날 지도 모르고. 모두가 함께 살 수 있는 세상은 그저 꿈일 뿐인 걸까. <삼체>에서도 그랬지만 우주의 질서란 하나의 재앙을 또 다른 재앙으로 덮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당시 <르네상스> 독자들에게 그 반전은 폭탄과 같았다. ‘그 에피소드‘는 <르네상스> 독자들이 순정만화에서는 안전하게 여기고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모든 규칙을 깨트렸다. 허겁지겁 앞의 에피소드로 돌아간 독자들은 이 작업이 독자들의 눈앞에서 뻔뻔스럽게 윙크를 던지며 무자비하고 치밀하게 전개되었다는 것을 확인했다. 처음부터 오직 그 결말만을 위해 달려온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것은 ‘순정만화‘라는 장르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에 대한 선언이기도 했다. - P204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락방 2024-11-22 10: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만화책을 많이 보진 않았는데, 고등학생때 한참 <점프트리 에이플러스> 유행했던 생각이 납니다. 저도 짜증내면서도(모두가 여주인공을 좋아해!) 아주 재미있게 보았지요. 원수연 만화도 재미있게 봤고 이미라도 재미있게 봤는데, 꼬마요정 님이 언급하신 <아르미안의 네딸들>.은 ㅋ ㅑ- 주옥같은 문장이 거기 나오지요.

미래는 예측불허 그리하여 생은 의미를 갖는 것.

꼬마요정 님의 리뷰 덕에 추억 돋습니다. 아, 저는 순정만화 조금 보다가 ㅋㅋㅋ 학원물로 이동하게 됩니다. ㅋㅋㅋㅋㅋㅋㅋ<오늘 우리는>, <반항하지마> 이쪽으로다가..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꼬마요정 2024-11-25 09:31   좋아요 0 | URL
오오 <점프트리 에이플러스> 진짜 오랜만에 듣습니다 ㅋㅋ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걸로 기억해요. 그리고 <블루> 도 있었고… 전 김혜린 님의 <비천무>랑 강경옥 님의 <별빛속에>랑 황미나 님의 <엘 세뇨르>랑 신일숙 님의 <아르미안의 네딸들>이랑 이미라 님의 <인어공주를 위하여>는 무슨 일이 있어도 소장하리라!!! 마음 먹고 성인이 되자마자 사모으기 시작했답니다 ㅎㅎ 아 맞다!! 클램프도 엄청 인기였죠. <동경 바빌론>이나 <x> 정말 재밌었는데… ㅎㅎ

소년 만화는 저 <용비불패>, <열혈강호>, <니나 잘해>, <아일랜드>, <신암행어사전>, <최유기> 이런 거 좋아했어요 ㅎㅎㅎㅎㅎ

감은빛 2024-11-28 15: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지금은 게임 제목으로 유명한 [리니지]가 제일 기억에 남네요. 김진 작가와 신일숙 작가는 소년만화만 주로 보던 저에게 새로운 관점을 보여주었어요. 그러고보니 김진 작가의 [바람의 나라]도 이젠 게임으로 유명하네요.

듀나 작가의 소설들을 좀 읽었는데, 어쩐지 작품별로 편차가 크다는 느낌입니다. 이 책 꼭 구해서 읽어보고 싶네요.

꼬마요정 2024-11-29 18:35   좋아요 0 | URL
김진 작가님의 <바람의 나라>도 정말 명작이었죠. 결국 완결이 안 난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ㅠㅠ 무휼과 세류, 청룡과 주작이 생각나네요. 유리왕이 제일 맘에 안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처절한 해명태자도 생각나네요... 그나저나 옛날판으로 23권까지인가 모았었는데, 얼마 전에 곰팡이 때문에 다 버렸거든요. 가슴이 아픕니다.ㅠㅠ

듀나 작가의 소설들은 말씀처럼 편차가 있는 듯 합니다. 저도 어떤 작품은 너무 좋은데 어떤 작품은 고개를 갸우뚱 할 때가 있거든요. 이 책은 재미있게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