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가 손을 내밀 때
이지환 지음 / 영언문화사 / 2002년 4월
평점 :
절판


윤지유. 엄~청난 부자에 엄~청난 능력을 가지고 있는 대재벌이다. 뭐, 포춘 선정 세계 50대 기업 중 11위를 차지하는 대기업의 총수라니까. 지무이. 그녀는 윤지유의 집안에 얹혀 사는 재택비서 지실장의 딸이며, 윤지유의 아내감이다. 어처구니 없는 이유로 허수아비 신세가 되어야 했던 그녀와 자신의 유년이 살해당한 줄 모르는 바보 천치, 그래서 사랑이나 정을 모르는 그가 얽히게 되었다. 어찌보면 한서은은 둘의 월하빙인이 아니었을까...

의붓남매라는 이유로, 어린 시절의 불장난으로 인생이 피폐해져 버렸다는 이유로 지유를 옭아매는 사슬은 그보다 두 살 많은 서은이었다. 탐욕스럽기 그지없는 그녀의 전술에 지유는 그녀가 원하는 모든 것을 해주었다. 심지어 다른 여자와 결혼하는 것까지도. 하지만 서은과의 밀애를 즐기기 위해 허수아비로 들여놓은 그 안방마님 무이 덕분에 사랑이 뭔지, 사는 게 어떤 건지 절실하게 깨달아버린 그는 이제 서은을 떼어놓아야만 한다. 물론 무이의 마음을 차지하는 것도 급한 일이고.

빠른 전개가 좋긴 했는데, 읽는 내내 '화홍' 생각이 났다. 화홍보다 먼저 씌어졌으니 화홍보다 엉성하지만 그 관계설정이나 남주, 여주의 성격이나 여러모로 유사하다. 뭐, 크게 읽고 재밌었다란 느낌은 받지 못했다. 사실, 중간에 지유가 무이에게 퍼붓는 독설이 너무나 섬뜩하여 놀라긴 했다.

"네 아비가 죽어버리라고!"

흐익~~ 저게 도대체 해서는 절대 안 되는 말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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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친구에게 들었던 무섭고도 끔찍한 이야기 하나!

친구의 후배는 여자이고 스무 살인가 스물 한 살인가 앳된 처자다. 그 처자가 며칠 전 제법 늦은 시간에 귀가를 하는 길이었다. 자기네 아파트로 가는 길에 자기 뒤에 왠 남자 둘이 각각 떨어져서 따라오는데 (처자... 남자1... 남자2 이런 식으로 띄엄 띄엄)  너무나 무서워 종종 걸음으로 아파트까지 달려오다시피 했다. 막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다다른 그녀는 잽싸게 타고 16층 버튼을 누른 후 닫힘 버튼을 눌렀지만, 바로 뒤에 따라오던 남자(남자1)가 뒤이어 타고 그는 17층을 눌렀다. 이 아파트에 사는가봐..라며 조금은 안심하는 순간 문이 거의 닫혔다.

그 때 닫혀가는 문틈으로 갑자기 팔 하나가 쑤욱 들어오더니 제일 끝에 따라오던 남자(남자 2)가 타는 거였다. 그는 뛰어왔는지 숨을 헐떡였고, 그가 타고 문이 닫혔다. 그는 5층 버튼을 눌렀다.

그렇게 셋이서 엘리베이터를 탔고, 얼마 지나지 않아 5층이 되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남자 2는 갑자기 그녀의 손목을 낚아챘다. 엉겁결에 그녀는 남자 2와 5층에 내리게 되었고, 잔뜩 겁에 질린 그녀가 안 내리려고 발버둥을 쳤지만, 남자의 힘을 당할 수 있는가... 결국 엘리베이터 문은 닫혀 위로 올라갔고, 그녀는 떨면서 물었다.

"왜 이러세요...ㅡ.ㅜ"

남자 2는 엘리베이터가 올라가자 손을 놔 주었는데, 어찌나 세게 잡았던지 손에 멍이 다 들었더랜다. 손을 놔준 남자 2는 조근조근 설명했다. 자기는 508호 살고, 의심나면 지금 들어가서 확인할 수도 있다고. 그러면서 덧붙이길, 아까 오는데 남자 1이 바지 뒷춤에서 칼을 꺼내 안주머니에 숨기는 걸 봤다고.. 너무 놀래서 일 나겠다 싶어 급하게 쫓아왔다고, 아니나다를까 같이 엘리베이터를 타는 걸 보고 자기도 탔다고. 그래서 손목을 잡아챘다고.. 너무나 무서워진 그녀를 남자 2는 걸어서 16층까지 데려다줬고, 자기는 걸어 5층으로 내려왔다고 한다.

하지만 정말 무서운 건... 다음날 아침이었다.

학교를 가려고 아침에 집을 나선 그녀는 아파트에 경찰차며 구급차가 와 있고,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걸 보고 무슨 일인가 알아봤더니... 세상에... 어제밤 20층에 혼자 사는 여자가 강간을 당한 뒤 칼에 찔려 숨져 있었다는 거였다. 만약 남자 2가 구해주지 않았더라면 자신의 모습이었을거란 충격에 그녀는 너무나 놀랐고... 지금은 병원에 다닌다고 한다. 정신적인 충격이 얼마나 컸을까...

우리 모두 이런 사고가 없도록... 조심합시다.

저 그 이야기 들은 뒤로 너무 무서워서 집에 잽싸게 들어왔어요... 비록 주택에 살지만, 주택이든 아파트든 작정하고 덤비는 사람들 무섭잖아요... 모두들 조심하세요...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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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영엄마 2005-11-15 1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정말 무서운 세상이에요. @@;; 특히나 여자는 혼자 택시도 타지 말아야 하고, 혼자 밤거리를 걷지도 말아야 하고, 이제는 집으로 들어가는 엘리베이터도 혼자 타지 말아야 하는거군요... 무서워요...

날개 2005-11-15 2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정말 무서운 세상이예요....ㅠ.ㅠ

물만두 2005-11-15 2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우어우... 엘리베이터에도 cctv달아야 한다던데... 넘 무서워요 ㅠ.ㅠ

chika 2005-11-15 2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끄..끔찍하군요.

하이드 2005-11-15 2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어, 우리 엘리베이터는 CCTV 달려있고, 창도 나있는데, 그래도 무서워요 ㅜㅜ

꼬마요정 2005-11-15 2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엘리베이터에 cctv가 있었대요..하지만 남자가 모자를 쓰고 있어서 얼굴이 안 나왔대요.. .아예 작정한 거죠... 흑흑... 모두들 조심하셔야 해요..꼭이요~~!!!

프레이야 2005-11-15 2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휴, 정말 무서운 일이네요.

꼬마요정 2005-11-15 2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무서운 일이지요...

과일&추리가좋아님~~ 안녕하세요~ 반가워요~~^^* 어휴.. 조심하셔야 돼요~ 꼭이요~!! 세상이 점점 무서워지니 큰일이네요...훌쩍

panda78 2005-11-15 2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무서운 세상이에요. 모르는 남자랑 둘이만 엘리베이터 타야 하는 상황이라면 걸어올라가고 말지요. 그런데 처음엔 둘이 아니었는데 나중에 둘이 되면 그것도 꽤 무섭고.. 끔찍해요..

울보 2005-11-15 2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로 무서운세상이지요, 전그래서밤에는 밖에 안나갑니다,
가끔 모르는 앞동아저씨 술취해서 와서 현관을 두드릴때마다 가슴이 얼마나 졸이던지,,,,

꼬마요정 2005-11-15 2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요.. 언제 어디서든 낮이고 밤이고 간에 조심하셔야 해요... 작정한 사람은 정말 무서워요..흑흑

꼬마요정 2005-11-15 2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울보님.. 그래요 밤에 밖에 함부로 나가면 안 돼요...ㅜ.ㅜ 앞동아저씨 약주가 과하셨나봐요.. 술 취한 남자.. 정말 무서워요...

꼬마요정 2005-11-15 2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이어요~~ 으어으어!!

미완성 2005-11-15 2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허걱. 잠들기 직전 요정님 페이퍼보고 어찌나 놀랬는지요. 불 다 끄고 침대에 누워 몽환의 세계에 빠져들려다가도,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던 그 찰나 508호 남자분이 후배의 팔을 잡아당기지 않았다면....그 혼자 살았다는 20층 여자분은 얼마나 무서웠을까하는 생각까지....끔찍합니다.
결국 잠 깨고 왔슴다. 아...저희집도 한 번 도둑맞은 적이 있거든요. 엄마도 큰일 당할 뻔 하시고...그때 일을 생각하니 더 가슴에 와닿네요. 여자로 살아가는 거 이럴 때는 참...무서워요..

꼬마요정 2005-11-16 0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사랑하는 멍든사과님의 단잠을 깨웠다니 심히 미안한 마음을 감출 길이 없네요.. 그래도 님께는 큰 피해가 없었다니 다행입니다. 정말로 여자로 살아가는 거 너무 무서워요..흑흑

미완성 2005-11-16 0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정님의 마법으로 다시 재워주셔요 호호호;;; 이거 무슨..한때 tv에 자주 나오던 전기충격기라도 하나 가지고 다녀야할까봐요.

꼬마요정 2005-11-16 15: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호호;; 저는 그만 일찍 자 버려서... 어쩌죠??
정말 전기 충격기 하나 장만해야겠어요..쯧쯧
 

 

     “유사 이래 현세에 이르기까지 공명만한 사람 없고, 역사가 이어지는 영원한 앞날에서도 공명만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前無後無諸葛武候)” 이 말은 주원장을 도와 명나라를 세우고 개국 공신으로서 성의백에 봉해진 유기가 한 말입니다. 자신은 천하를 통일했지만, 제갈공명은 천하를 삼분하는 데 그쳤다고 생각하여 늘 제갈공명을 폄하하던 유기는 천하를 구경하던 중 촉 땅을 들르게 되었는데, 그 때 공명의 신묘함에 감탄하며 이 말을 했다고 합니다. 제갈공명이 활약하던 그 때부터 후세에 이르기까지 그는 뛰어난 지략가이자 공명정대한 재상이며 충직한 신하라는 평이 조금도 허물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저 역시 삼국지를 읽으면서, 혹은 중국의 역사책을 읽으며 가장 호감을 가졌던 사람은 바로 제갈공명이었습니다.


     그가 살았던 시대, 무수히 많은 명장들과 책략가들, 군왕들이 영웅으로서 세상을 떠받치려고 했던 그 시대로부터 이름을 남긴 많은 인물 중의 한 사람인 제갈공명(181~234)은 이름은 양이며 자는 공명으로 낭야군 왕도 출신입니다. 그는 어려서 부모를 잃고 숙부를 따라 형주로 이주한 후 17세 때 숙부와 사별하게 됩니다. 그 후 융중에 초가를 짓고 밭을 갈면서 경전과 사서를 공부하고 벗들과 학문을 토론하며 자신을 춘추, 전국 시대 제나라의 명재상 관중과 연나라의 명장 악의에 비유하고 있었습니다. 그 지방의 지식인들은 모두 제갈공명을 당대의 영걸로 보고 때가 오면 언제든지 하늘로 오를 것이라 생각하여 와룡선생(臥龍先生)이라 불렀습니다. 공명의 나이 27세, 유비의 나이 47세 때 둘은 역사에 길이 남을 만남을   가집니다. 삼고초려(三顧草廬)란 말로 너무나 잘 알려져 있는 그들의 만남은 후에 관우와 장비가 공명에게 반감을 가질 때 유비가 했던 수어지교(水魚之交)와 함께 유명한 고사로 남습니다. 지금도 제갈공명이 살았던 융중에는 많은 고적이 보존되어 있어 ‘융중방’, ‘삼고당’, ‘초려정’, ‘궁경전’ 등의 고적은 지금도 보는 이로 하여금 회고의 정을 자아내고 있습니다. 공명은 유비의 휘하에 들어온 뒤 그가 죽을 때까지 유비를 위해 그의 재능을 아낌없이 쏟아 붓습니다. 그의 활약 하에  거두었던 적벽에서의 대승은 그가 내놓았던 천하삼분지계를 현실로 만들었고, 후에 형주와 촉을 차지할 때나 유비가 황제에 즉위할 때 역시 그는 유비를 충심으로 섬깁니다. 그러나 관우가 죽은 후 광분한 유비를 진정시키기 위해 노력하지만, 혈육처럼 여기던 관우를 잃었다는 슬픔에 싸인 그를 이기지 못해 오와의 전쟁을 감행하여 실패하고 맙니다. 충격으로 병을 얻은 유비가 죽은 후 이제 촉한의 운명은 공명에게 달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오나라와 화친을 맺은 후 북벌군을 출동시켜 천하를 통일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운남 지방에서 만족의 추장 맹획이 반란을 일으켰는데, ‘칠종칠금(七縱七擒)’의 고사가 바로 이 때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공명은 진심으로 항복을 받기 위해 맹획을 사로잡았다 놓아주기를 일곱 번을 하였고, 이에 맹획은 진심으로 공명에게 항복하여 나중에 촉한의 중앙정부에서 어사중승의 벼슬을 지내게 됩니다. 맹획을 토벌하고 회군하던 때 ‘만두’가 생겨나게 됩니다. 227년 제갈공명은 전군을 이끌고 위나라 토벌에 나서며 유선에게 ‘전 출사표’를 올리는데 이 글을 보고 눈물을 흘리지 않는 사람은 인간이 아니라고 할 정도로 사람들의 폐부를 찌르는 명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출사표를 올린 후 공명은 군대를 한중에 출진시키고 다음해 기산을 공략하였습니다. 그러나 마속의 대패로 인하여 회군할 수밖에 없었던 공명은 한중으로 돌아와 아끼던 마속의 목을 벱니다(泣斬馬謖). 그 후 공명은 다시 북벌을 시도하여 유선에게 ‘후 출사표’를 올리고 사마의와 대적하게 됩니다. 하지만 오장원에서 붉고 긴 꼬리를 그리며 큰 별이 떨어진 후 그는 5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그가 죽었다는 소식에 위세도 당당하게 촉의 진영을 치려던 사마의는 마치 공명이 살아있는 듯한 촉의 태세에 놀라 도망을 칩니다. 이 때 사람들은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도망치게 했다”고 사마의를 비웃었습니다. 공명은 227년부터 234년까지의 7년 동안 6회에 걸쳐 북벌을 감행했다 하여 육출기산이라는 말이 남아있습니다. 이 여러 번에 걸친 싸움에서 공명은 항상 교묘한 계략으로 사마의를 위기일발의 함정에 몰아넣어 숱한 일화를 남겨놓았습니다. 그는 생활에 있어서 검소하여 타의 모범이 되었으며, 정치에 있어서도 공평하여 아끼던 마속을 눈물을 머금고 참하였습니다. 촉한에서는 제갈공명을 정군산에 안장하고 충무후(忠武候)라는 시호를 내렸습니다. 


      나관중의 유명한 소설 『삼국지연의』에서 역시 가장 호평을 남기고 있는 인물이 있다면 바로 제갈공명일 것입니다. 소설이 아닌 진짜 역사에서도 사람들이 좋아하는 인물은 제갈공명입니다. 그것은 아마도 그가 뛰어난 능력을 가졌다는 사실 외에도 그 재능을 적재적소에 쓰면서 의리와 명분을 잃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본인이 겸손하고 검박하였으며 사리가 공정하여 사람들로부터 원망을 사지 않았으니 그간 귀족들의 전횡과 전쟁으로 인하여 고통 받은 백성들의 사랑을 받은 것은 당연하다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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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 파마를 했다. 머리를 하면서 미용사 아저씨와 신나게 이야기를 하는데, 이 아저씨는 보통 미용사와는 좀 다르다. 나름대로 성공하기 위해서 부단한 노력을 하기 때문이다. 경제 관련 강의도 열심히 듣고 실용서 관련 책도 매일 매일 읽는다. 이야기를 하다보면 코드가 맞는 부분도 제법 있다. 그래서 머리 하는 동안 들고 갔던 '역사법정'은 거의 읽지 못했다.

아저씨가 물었다.

"꿈이 뭐예요? 나중에 어떻게 살고 싶어요?"

난 주저없이 대답했다.

"자유롭게 살고 싶어요..."

"와~ 멋지네요.. 근데 그게 어떤 거에요?"

"음... 전 커피를 좋아하거든요. 그런데 정말 맛있는 커피를 마시려면 좋은 원두와 좋은 기계가 있어야 해요.. 그래서 돈 많이 벌어서 원두와 기계를 놔두고 집을 마치 작은 까페처럼 만들거에요.. 또, 책도 좋아하니까 큰 서재도 만들거구요, 역사를 좋아하니까 발굴작업이나 세미나 등에도  참여하고 싶구요, 여행도 다니고 싶어요..."

정말 평소에 생각하고 있었던 것들을 괜히 자랑하는 투로 이야기 했다. 어릴 때 누군가 장래희망이 뭐니..라고 물으면 수줍으면서도 행복한 미소로 답했던 것처럼...

그런데 아저씨... 좀 오버하셨다. ^^;;

자기가 하고 있는 사업은 영원한 블루 오션이라며 시대에 딱 맞는 거니까 많은 돈을 벌 수 있다고 자랑스럽게 암웨이를 소개해 주셨다.

암웨이...

세간에서는 다단계로 알려져 있지만, 경영학 용어로는 네트워크 마케팅.

그러면서 저녁에 있을 강연회에 가자고 제안하셨다. 유통의 변천과 유비쿼터스, FTA 등에 대해 강의하는 거라고...

흐흐흐... 내 전공이 뭔가... 무역 아닌가. 무역학과에서 배우는 건 국제경영, 국제경제, 무역실무...  대충 아는대로 주절주절 아는 체를 했더니 아저씨.. 나에게 반하셨다..^^;;

물론 강연회에 가지 않았다.

암웨이 사업에 뛰어들 생각도 없다.

그게 나빠서라던가 실패할거라서가 아니라, 내가 가진 꿈과 맞지 않기 때문이다.

내 꿈은 다른 어떤 것. 후훗... 확실한 건 '성공=돈'은 아니라는 것...

그래서 정중하게 거절해야 하는데, 조금 어렵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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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라겐 2005-11-14 2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하셨어요.. 성공=돈이 아니란 것에 한표!!!!

꼬마요정 2005-11-14 2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사람마다 다르긴 하지만, 성공 = 돈 이라면 참 삭막할거에요...

마태우스 2005-11-15 1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암웨이 하면 주위 사람들과 절연해야 한다는데.... 잘하신 것 같습니다

꼬마요정 2005-11-15 1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옷~ 정말인가요?? 후훗.. 암웨이가 정말로 성공하려면 세간의 인식부터 긍정적으로 바꿔놓아야 하겠군요... 어쨌든 안 할건데요 뭘.. 고려해 본 적조차 없답니다.^^
 
 전출처 : 릴케 현상 > 프랑스 소요 사태가 말하는 것

프랑스 소요 사태가 말하는 것
- 신자유주의 경찰국가와 법질서는 폭력의 악순환을 부른다


 

소요사태의 책임은 국가와 경찰, 그리고 지배계급에게 있다

지난 10월 27일, 이슬람 신도들이 한 달 동안 낮 시간에 금식을 하는 라마단의 마지막 날, 주민 중 실업자가 50%에 달하고 어린이의 반수가 유급을 경험하며 불어를 할 줄 모르는 사람도 많고 경찰의 무차별적이고 모욕적인 불심검문이 아이들에게 생애 최초의 굴욕과 증오를 가르치는 파리 방리유(외곽도시) 클리시 수 부아.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내무장관이 10월 19일 교외 폭력 행위에 ‘가차없는 전쟁’을 치르겠다고 선포한 이래 경찰 검문이 한층 강화되었다는 사실을 알았기에, 늦게까지 공놀이를 하던 이민자 2세 청소년들은 모욕을 피하고 한 달간 주린 배를 한시라도 빨리 채울 생각에 우회로를 택한다. 경찰과 마주친 이들은 달리기 시작하고 이들 중 두 소년 지에드(17)와 바누(15)는 송전소 담을 넘다가 변압기에 떨어져 감전사한다.

프랑스 언론은 “주변에 일어난 절도사건을 수사하던 경찰이 이들 소년을 용의자로 보고 검문을 하려 했을 뿐 추격전은 없었다”는 경찰의 주장을 일제히 보도한다. 그러나 당일 주변 지역에서 절도사건은 없었던 것으로 드러나고 방리유 젊은이들은 분노한다. 사고 발생 다음날 밤, ‘경찰의 살인적 추격 작전’을 규탄하며 400여 명의 젊은이들이 250-300여 명의 경찰과 대치한 가운데 실탄이 경찰차에 날아들고 방화로 인한 화재가 발생한다. 하지만 그 다음날, 클리시 수 부아 시장을 비롯한 지역 정치인들과 희생자 가족 등 500여 명이 비폭력 침묵시위를 벌이고, 시위대와 경찰의 대치상황은 없는 등 사태가 진정될 기미를 보인다.

그러나 10월 30일 밤, 사르코지는 소년들의 죽음에 대한 경찰의 책임을 부인하고, 도시 테러를 용납하지 않겠다면서, “더 이상 순찰의 문제가 아니다… 체포다”라는 등 강경 발언을 내놓는다. 이와 함께 지난달 25일 또 다른 방리유 아르장퇴유에서 무슬림들을 쓰레기라고 모욕한 사르코지의 발언이 저녁뉴스 시간에 수 차례 방송된다. 이에 더해 사르코지는 소요현장을 초강력 분무기로 청소할 것을 주문하면서 방리유 주민들을 다시 한번 쓰레기 취급한다.

이처럼 명백한 도발에 분노하며 화염병과 돌을 든 방리유 젊은이들이 다시 거리로 나온다. 한편 시간이 흐르면서 소규모 그룹을 이룬, 14-20세의 마그레브나 아프리카 본토 출신 이민자 자녀들로 구성된 젊은이들의 산발적 방화와 약탈이 늘어난다. 파리를 중심으로 동서남북의 22개 교외 소도시들로 소요가 확산되고, 11월 6~7일 밤은 자동차 1,400대가 방화되고 400명이 체포된다. 파리 근교에 한정됐던 혼란은 디종을 시작으로 지방 도시까지 번져 226개 마을에서 1,173대의 차량이 화염에 휩싸이는 것으로 절정에 이르며, 심지어 독일과 벨기에 대도시의 외국인 밀집 거주지역에서 프랑스 소요사태의 모방범죄로 보이는 차량방화 사건이 발생하여 전 유럽이 긴장한다.

전국적인 소요사태가 13일째 계속된 11월 9일 프랑스 정부가 본토에서는 사상 처음으로 비상사태령을 선포한다. 야간통행금지, 집회와 결사 금지, 영장 없는 단속·체포·체포·언론·출판 통제·거주지 제한 등 민주주의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항목으로 이루어진 비상사태법은 1955년 프랑스 식민지이던 알제리의 독립전쟁을 진압할 목적으로 제정된 것으로, 정부가 2-3세대 북아프리카계 이민자들을 식민지 신민으로 대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지방도시들에는 산발적인 소요가 이어지고, 경찰은 에펠탑과 샹 젤리제 대로 등 주요 지점을 위주로 삼엄한 경계 활동을 펼친다. 한편 파리 라탱 구역에서는 좌파 및 노동 단체들이 주도하는 시위가 열려 정부의 비상조치 발동을 비판하고 니콜라 사르코지 내무장관의 사퇴를 촉구한다.

한편 사르코지는 9일 하원회의에서 이번 소요사태에 관해 유죄 판결을 받은 외국인은 체류의 합법성 여부와 관계없이 즉시 추방하겠다고 선언함으로써, (피고인이 동일범죄에 대해 이중으로 형사처벌받을 위험을 방지하는) ‘이중위험’(double jeopardy) 금지의 원칙을 드러내놓고 비웃는다. 소요사태를 계기로 “외국인 전원추방”을 주장하는 극우파들도 목소리를 높인다. 11월 8일 『르파리지앵』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73%는 야간통금에 찬성한다. 또한 여론조사기관 CSA에 따르면, 강경발언으로 논란이 된 사르코지 내무장관도 우파성향의 국민들에게 높은 지지를 얻는다. 우파 정당 프랑스운동(MPF)의 필립 드 빌리에 당수는 “통금령을 실시하고 군대를 투입하라”고 정부를 압박한다. 또 1980년대 중반 ‘이민자 2백만, 실업자 2백만’이라는 악명 높은 선거구호로 반(反)이민운동을 선도하고 2002년 대선 결선투표 진출로 기염을 토했던 극우정당 국민전선(FN)의 장 마리 르펜은 이민자 대량 유입이 프랑스에 재앙을 불러올 것이라는 자신의 경고가 옳았던 것으로 입증됐다면서 “프랑스 신분증이 있다고 다 프랑스인이 아니다. 프랑스를 위협하는 이민자들은 그들의 원래 나라들로 돌려보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국민전선의 신입당원 담당 부서는 사태 발생 이후 1천여 명이 새로 가입했다고 밝힌다.

며칠 동안 침묵하던 시라크 대통령의 첫 발언은 사망사건에 대한 진상규명과 근본적인 문제해결이 아니라 법질서를 존중할 것을 호소하는 것이었다. 빌팽 총리는 11월 8일 오후 하원에 출석해 “프랑스가 진실의 순간을 맞았”으며 “우리 통합 모델의 효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고 말하면서도, “사회적 불평등의 원인은 부분적으로는 제대로 통제되지 못한 이민정책에 있다”면서 불법 이민을 더욱 강력하게 금지하겠다고 밝힌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법질서와 경찰논리는 모든 사회쟁점과 갈등을 압도하는 절대선의 자리에 등극한다. 시라크는 “공공질서의 회복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질서 회복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오랜 노력을 필요로 한다”고 말한다. 부시 역시 테러와의 전쟁이 ‘끝없는 전쟁’이며 인내를 요구한다고 말했다.

 

‘이주 문제’ - 사회 위기를 전가하기 위한 희생양

이번 프랑스 소요사태의 중심에는 이른바 ‘이주 문제’가 있다. 그러나 ‘이주 문제’라는 말은 그 자체로 심각한 착시현상을 일으킨다. 실업, 빈곤, 주거, 사회갈등, 범죄, 교육, 동일성, 보건, 복지 등 여러 사회 문제들이 ‘이주자’들의 존재 때문에 생겨나거나 악화되었다고 진단하고, 따라서 이주자들을 추방하거나 경찰적·행정적 수단에 따라 관리하면 이런 문제들이 해결될 수 있다고 처방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이주자들은 전간기(戰間期) 유럽 특히 독일에서 유태인의 지위와 놀라울 정도로 유사하다. 민족적 나아가 유럽적 동일성을 위기에 빠뜨리고 사회를 갈등으로 몰아넣는 불순물로 전시된다는 점에서 말이다.

지난 20년 간 프랑스 정부는 이주자를 국가의 권위에 도전하는 ‘조직된 비행’으로 간주하면서, 헌법에 명시된 기본권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억압적·굴욕적 수단을 사용하는 경향 쪽으로 점점 더 이끌렸다. 좌우 간의 정권교체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정책 기조는 전혀 변하지 않았으며, 심지어 좌우파 간 격렬한 경쟁의 특권적 대상으로 등극했다. 1990년대 후반 미등록 이주자의 거대한 투쟁 앞에서 법과 행정부의 권위를 강압한 것은 다름 아닌 ‘좌파 총리’ 조스팽이었다. 그 이후 좌우 양편에서 ‘세계화’의 경제적 힘, ‘범죄적’ 이주 네트워크, 경제적 또는 문화적 특수주의, 마지막으로 ‘탈민족주의적’ 이데올로기에 홀린 관념적 지식인과 단체가 뿌리째 흔들고 있는 민족주권 및 ‘공화국’을 수호하자는 반동적 이데올로기가 확고해진다. 이 이데올로기의 특권적 공격 대상은 두말할 나위 없이 이주자였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국가주권이다. 즉 국가가 자임하는 ‘주권’과 경제정책·집단안보·정보기술 등에 관해 국가가 일상적으로 드러내는 무능력이 대비되는 상황에서, 국가는 극히 무력한 이주자를 희생양 삼아 자신의 권위가 건재하다는 허구를 상연함으로써 자신에 대한 불안과 불신을 권위적으로 잠재우려는 것이다. ‘폭력’과 ‘치안’ 담론의 득세는 정확히 이 맥락 위에 있다. 또 다른 문제는 신자유주의 반혁명이 시민권을 축소시키는 것에 대한 대중들의 불만이다. 이를 시민권의 보편적 확대로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외국인의 권리가 열등하고 취약하며 기존 사회에 통합되었다는 징표를 반복적으로 표현함으로써만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따라서 르펜과 사르코지가 말한 것처럼 프랑스를 위협하는 이주자들은 신분증이 있더라도 추방될 수 있다는 것)을, 외국인 특히 ‘남반부’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국가행정 전반의 ‘제도적 인종주의’를 통해 전시함으로써, 민족 구성원의 시민권이 상대적으로 안정되었다는 안도감을 주려는 것이다.

 

이른바 ‘사회통합’ 담론의 뿌리로서 식민주의 동화 담론 - 되돌아온 식민주의 유산

현재 국가행정 전반에 확대되는 ‘제도적 인종주의’는 제국주의/식민주의 유산을 직접적 뿌리로 한다. 우선 현재 알제리와 같은 과거 (반)식민지 영토 출신 노동자들에게, 나아가 이른바 ‘남반부’ 노동자들 전반에게 적용되는 행정적 조치와 관행은, 프랑스 국가장치 형성의 결정적 시기에 식민지 영토에서 ‘토착’ 인구를 대상으로 집행된 정책을 그 기원으로 한다. 방리유에 대한 도시 정책이 그렇고, 무엇보다 이번에 발동된 비상사태법이 그렇다.

또한 이주 문제의 해결책인 양 제시되는 이른바 ‘사회통합’ 담론조차 기실 제국주의적인 동화 담론에서 연원한 것이다. 추상적으로 생각하는 것과 달리 통합과 차별(화)라는 통념은 서로를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보편/특수, 공/사의 위계와 유비할 수 있는 위계를 이룬다. 이 위계의 기준이 되는 것은 물론 ‘공화주의’라 불리는 프랑스 민족성으로, 여기에 통합되는 정도에 따라 ‘문화’와 ‘종족(성)’이 차별적으로 범주화되어, 예컨대 ‘공화국 시민’과 ‘이등 시민’, 그리고 ‘불법 이민’이 분할된다. 역사적으로 이 같은 위계의 목적은 식민지 토착민이 새롭게 해방된 시민으로 나아가는 가능성을 제한하고 통제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는 특수하고 사적인 것으로 분류되는 집단들에 대한 물리적·상징적 폭력 및 그로 인한 갈등 가능성을 포함한다.

한때 사라지거나 약화된 줄 알았던 이 같은 (재)식민화 경향은 그동안 잠복해 있다가, 80년대 들어 경제적 세계화와 새로운 불평등의 효과를 배경으로 재출현한다. 이때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 미디어에 의해 조장되는 세계 및 인류에 대한 고정관념 유포, 특히 남반부 인민들에 대한 체계적 평가절하였다. 세계 속에서 그들이 차지한다고 여겨지는 위치는 특정 국가 안에서 그들이 점해야 한다고 간주되는 위치로 번역되어 할당된다. 이는 각각의 인종이 고유한 문화를 가지는 바, 이를 보호하려면 문화들이 섞이지 않게 하고 ‘문화적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는 순수주의적 고립주의, 반-인종주의를 후방으로부터 공격하는 이른바 ‘차별화주의적’ 신-인종주의와 결합한다. 이에 따라 남반부 출신 시민들은 주로 도시나 교외의 게토로 분리수용되거니와, 이곳에서는 식민지 점령지에서 실행되는 행정조치가 집행되고, 종종 적나라한 경찰 폭력이 지배한다. 소요가 일어나기 전 클리시 수 부아에서 벌어진 일이 바로 이것이다. 이는 남한에서도 전혀 예외가 아니어서, 국가는 이주노동자들을 영장 없이 강제단속하고 고무총으로 탄압하며, 수갑과 쇠사슬을 휘감는다.

이렇듯 화려하게 부활한 식민주의의 인종 분할은 보충적인 사회적 효과를 갖는다. 우선 경제적 면에서 볼 때, 인종 분할에 기초한 노동시장 분할은 상당한 정도의 자국 노동력이 (비록 점점 더 취약해지고 있긴 하지만) 부분적으로 ‘입헌화’된 사회적 권리와 조절에 의해 보호받는 시기에, 자국 노동자들에게 경향적으로 금지된 과잉착취를 보충하는 한편 이들을 압박하는 전통적인 ‘산업예비군’을 재생산함으로써 자본축적을 용이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 바로 이 때문에 유럽연합, 특히 중심국들은 이주의 흐름을 막을 생각이 전혀 없다. 오히려 그들은 유럽연합 중심국과 주변국, 또는 유럽연합에 속하지 못한 유럽의 주변국 간의 생활수준 격차를 가능한 한 오랫동안 유지함으로써, 낮은 임금과 혹독한 규율, 극도의 불안정성에도 불구하고 주변국 노동자들이 회원국으로의 이주를 ‘선택’하게 강제한다. 유럽의 주변국은 더욱 빈곤해지고, 이 빈곤을 피해 중심국으로 들어온 노동자들은 ‘중심 안의 주변’, ‘제 1세계 안의 제 3세계’를 형성한다. 프랑스 방리유보다 이 말에 잘 들어맞는 공간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방리유는 프랑스 곳곳에, 그리고 유럽 도처의 ‘경계지대’에 있다.

이리하여 개별 국가 안에서 ‘소수자’인 이주자들이 전 유럽 차원에서 보면 유럽연합의 ‘16번째 회원국’이라 불릴 정도의 ‘다수자’로 등장한다. 각 국가들이 이주자에 대해 불안을 느끼는 것, 특히 이번 소요사태를 두고 전 유럽이 확대가능성에 대해 긴장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이주자를 1848년 당시 마르크스가 유럽을 배회한다고 말한 ‘유령’, 각국의 지배계급을 공포에 떨게 만든 ‘위험계급’과 비교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바로 이 같은 정치적 위험을 방지하는 것이 인종 분할의 정치적 효과다. 즉 외국인 노동자와 국내 노동자 간, 또한 외국인 노동자들 간의 인종 분할을 통해, 이주자들이 전통적인 계급투쟁 형태에 참여하거나, 사회적 관계가 초민족화하는 맥락에 맞게 새로운 형태를 발명해 내는 것을 방해하려는 것이다. 이같은 분할선을 사이에 두고 분할선 이 편에 있는 방어적 대중운동은 현재 위기의 원인뿐만 아니라 그런 위기를 무력하게 겪는 스스로에 대한 절망과 미움을 분할선 저 편의 이주자들에게 투사한다. 이는 현재의 위기를 상상적으로 회피하려는 노력으로, 이 같은 정서가 강력한 한에서 대중들은 국가가 이주자들에게 가하는 물리적·상징적 폭력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거나, 심지어 능동적으로 동참한다. 분할선 저 편에서 이주자들은 공적 영역에의 접근, 표현의 자유와 투쟁의 가능성이 금지되고 게토에 감금되며, 개성화와 사회화를 동시에 억압받고 따라서 식민지 상황에서 그런 것처럼 개인적·집단적 자유의 쟁취를 제약받는다. 이주자들의 정치적 진출이 이들의 억압과 배제 곧 ‘비권리’에 기초한 착취 가능성 및 사회적 다수자의 지위를 위협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불의가 프랑스의 공적 생활을 기초하고 있다. ‘진실의 순간’ 운운에도 불구하고 빌팽 총리의 발언이 비길 데 없이 위선적인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이주자들을 끊임없이 불법 상태로 내모는 것이 기존 프랑스의 ‘사회통합’ 원리임에도 불구하고, 사회통합이 위기에 빠졌을 때는 이주자들의 불법 상태를 위기의 원인으로 지목하고 이들을 다시 한번 배제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도착적인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비단 프랑스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고, 프랑스와 동일한 불의에 기초한 모든 국가와 사회에 확산될 잠재력을 갖는다. 우리는 미처 알아채지 못하는 사이에, 유럽의 이데올로기 지형을 바꿔 놓는 거대한 ‘사건’을 막 지난 것인지도 모른다.

 

갈등의 범죄화는 더큰 불의와 폭력을 부를 뿐이다

프랑스 소요사태는 비단 프랑스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경제위기와 세계화 속에서 계급간·지역 간 불평등이 극도로 심화되는 한편 기존의 민족국가가 위기에 빠질 때, 그 원인을 적합하게 인식하고 발본적으로 변혁하기보다 방어적이고 행정적으로 대응함으로써 생겨난 극단적 결과다. 신자유주의가 불평등과 배제를 심화시킴과 동시에 이렇게 발생한 문제를 행정적·경찰적으로 다루는 ‘배제에 기반한 관리주의’라고 한다면, 이는 신자유주의를 채택하는 모든 국가가 공통적으로 직면할 수 있는 위험이다.

우리 사회에서도 어느 날부터인가 ‘정치논리와 이념’을 배제하고 ‘시장원리와 전문가’의 지도에 따라 ‘민생정치’와 ‘사회적 합의·통합’에 주력하자는 담론이 좌/우, 진보/보수세력을 막론하고 세를 얻어가고 있다.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오늘날 프랑스 소요사태의 구조적 원인이 되는 관리주의의 핵심 논리로, 이는 정치를 말의 강한 의미에서 ‘통치’와 ‘치안’으로 타락시킨다. 관리주의는 이른바 ‘이데올로기의 종언’, 즉 계급투쟁과 여타 갈등 형태의 정당성을 발본적으로 부정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정치 적어도 민주주의 정치가 갈등의 생산성을 인정한다면, 행정의 논리는 갈등을 기본적으로 부정적인 것으로 폄하하는 가운데 합의와 통합을 지향한다. 그러나 갈등과 근본적 차이에 대한 몰인정 및 법질서적 접근, 결국 갈등과 차이의 범죄화는 자신들을 그 상태로 밀어 넣은 지배계급과 엘리트에게 오히려 쓰레기 취급을 받는 대중들의 격분을 초래한다. 만일 대중들에게 어떤 정치적·공적 해결책도 주어져 있지 않다면, 대중들은 종종 극단적이고 자기파괴적이며 ‘주소 없는’ 폭력을 통해 존엄성의 침해에 대한 격분을 표현한다. 이번 프랑스 소요 사태에서 우리는 이 같은 대중들의 분노를 목격한다.

하지만 이 같은 분노는 역설적으로 법질서적이고 경찰적인 논리를 더욱 강화시키는 것으로 흡수된다. 실제로 이번 사르코지의 대응에서 보듯, 경찰논리의 대변자들은 갈등을 범죄화하여 대항폭력을 도발한 후, 그렇게 유발된 대항폭력과 이 폭력에 대해 느끼는 대중들의 불안에 힘입어, 이른바 ‘예방폭력’으로서 자신의 폭력을 사후적으로 정당화한다. 각종 설문조사 결과 프랑스 시민들의 70% 이상이 정부의 ‘비상사태 선포’에 찬성하고, 법질서적 접근을 지지하며, 르펜당에 며칠 사이 1000명 이상 가입하는 것을 보라. 이것이 바로 신자유주의 시대, 지배계급들이 취약한 정당성을 보충하는 방식이다. 또한 갈등을 ‘법질서’를 해치는 ‘범죄’로 바라봤을 때, 우리 스스로 빠질 수 있는 반동화의 위험이다.

따라서 가장 우선적으로 확인되어야 하는 것은, 이 사건으로 등장한 대중들의 비참한 조건을 법질서와 경찰논리의 이름으로 억압하고 은폐하지 않으면서, 똑바로 대면하는 것이다. 프랑스 정부의 비상사태 선포는 사태를 악화시킬 뿐으로, 즉각 철회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들의 절망적인 외침에 응답하면서, ‘사회통합’을 되뇌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구조적으로 억압하고 배제한 기존 사회를 변혁하고, 그 사회 안에서 안락하지만 불의한 지위를 부여받았던 스스로의 존재 자체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점점 더 야만적이고 경찰적으로 변하는 국가 개입이 일종의 ‘상수’로서 개입하여, 대중들의 분노 및 폭력의 악순환을 도발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위의 과제와 함께 무엇보다 긴급하게 제기되어야 하는 것은 법질서와 경찰을 앞세워 폭력을 악화시키는 국가와 지배계급의 폭력에 맞서는 것이다. 이는 이미 벌어진 사안에 대한 대처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특정 사안의 전개를 선제적으로 규정하는 폭력의 구조 자체에 맞서는 것이다. 이것이 클리시수 부아의 비극, 우리 사회에서 더 비참하게 고통받고 모욕당하는 이주노동자들, 그리고 정치적으로 배제되고 사회적으로 억압받는 수많은 ‘프롤레타리아트’에 대해 우리가 져야 하는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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