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능무의 봉신연의가 원전이 아니었으니, 비교하며 읽는 재미가 있다. 일리아드, 오디세이아와 비교하며 읽어도 재미가 있다. 천교와 중국화 된 불교의 신들이 주나라 편이라면, 절교의 신들은 상나라 편이다. 이는 마치 헤라와 아테나가 그리스의 편을 들고, 아프로디테가 트로이의 편을 드는 것과 비슷하다. 다른 것이라면 봉신방에 이름이 오른 신들은 전쟁을 통해 육신을 벗고 직위를 가진 신에 봉해지고, 그리스의 신들은 직접적으로 전쟁에 참여하기가 어렵고 대놓고 전쟁을 조종하기가 힘들다는 점 정도? 운명은 천명이란 이름으로 정해진 걸까...
정비석의 초한지가 ‘서한연의’인 줄 착각하고 살았더랬다. 술술 읽혀서 좋다. 하지만 봉신연의든 삼국지든 열국지든 초한지든... 너무 뻥이 심하다. 뭐만 하면 몇 십만 군사들이 나온다. 진나라 병사 20만을 몰살해도 또 어디선가 몇 십만의 대군이 두둥 나타난다. 이 책의 군사 다 합치면 징집 가능한 남자 수가 어마어마하다. 기원전 200년대인데... 항우가 패할 수 밖에 없긴 하지만 안타깝다. 유방이 인자한 듯 해도 잔인한 부분들이 있다. 토사구팽은 만고의 진리인 듯.
민음사에서 나온 <벨킨이야기 스페이드 여왕>에 수록된 이야기들과 겹친다. 하지만 번역가가 다르고, 책이 너무 예뻐서 살 수 밖에... 둘 다 잘 읽혀서 번역은 잘 모르겠다. 이야기는 여전히 재미있고, 읽을 때마다 새롭다. 삶은 아무리 힘들어도 한 줄기 빛을 품고 있다.
내 맘 속에 짙게 배어있는 흔적들이 말을 할 수 있다면 과연 어떤 이야기를 풀어낼까... 우리는 누구나 말로 하기 힘든 이야기들을 가지고, 다듬어지지 않은 생각들을 가지고 산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나 생각이 정리된 걸 보거나 듣게 되면 놀란다. 어떻게 저렇게 정리를 잘 하지?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할 수 있지? 동경은 그럴 때 돋아나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