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성년열전
신해욱 지음 / 현대문학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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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부터 조커/광대'는 왕의 노리개로 내시'와 같은 취급을 받았다. ( 여자 같은 남자를 조롱할 때 흔히 쓰는 말이 내시 같다는 말이다. ) 이성복 시인이 아, 입이 없는 것들이라고 한탄했다면,  나는 " 아, 부, 부부부부부부불알'이 없는 것들 ! " 이라고 외치겠다. 영화 속 조커는 좆이 없는 존재다. 이러한 사실은 상처 입은 입을 보면 답이 나온다. 입을 90도 각도로 틀면 입이 여성 성기'를 닮았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영화 속 조커의 입술이 유난히 강조된 이유는 바로 조커가 여성(성을 간직한 남성)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입술이 폭력적인 아버지에 의해 찢어졌다는 것은 조커가 아버지에 의해 강간당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찢어진 입은 강간, 낙태, 임신중절 수술을 연상케한다. 조커는 남성 폭력에 의해 강제로 적출된 낙태아'이다. 지금 그녀는 복수를 하기 위해 배트맨과 싸움을 신청한 것이다. 말 그대로 방망이를 든 사내와 세기의 성대결을 벌이는 것이다. bat는 말 그대로 야구 배트'를 의미하지 않은가 ? 몽둥이란 폭력적 가부장의 대표적 오브제가 아니었던가 ? 라캉은 여성을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 여자란 존재하지 않는다 ! "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여자는 0'이다. 그러므로 조커는 여자다. 왜냐하면 카드에서 조커는 숫자 0이기 때문이다. 나는 진심으로 조커'가 승리하기를 바랐다. 폭력적인 아버지를 응징하기 위해 나타난 조커 ! 얼마나 멋진가. 남근을 닮은 그 몽둥이'를 부러뜨리기 위해 그녀는 돌아온 것이다. 배트맨은 bat가 아니가 bad다. 그는 나쁜 놈이다.  

 

 

- 배트맨보다 조커에게 경배를, 0에 대한 모든 것 中

http://myperu.blog.me/20163566815

 

 


 

 

 

 

 

 

 

非라는 문자를 좋아한다 !

 

非'라는 " 문자의 소리 " 를 좋아한다. 목소리 좋은 남자가 눈꺼풀을 느리게 내렸다가 천천히 올리며 낮은 탁성으로 읊조리는 저음 말이다. 소리뿐만이 아니다. 이 문자가 가진 꼴'도 좋아한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리 많은 벌레가 연상된다. 그러니깐 非는 반골적 기질과 하찮은 것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우연일까 ? 非와 같은 문자가 가지고 있는 반골 성향'은 알파벳 b와도 겹친다. 둘 다 < 삐끕 > 이 주는 반골 기질'이 느껴진다. 곰곰생각하는발 식으로 표현하자면 " 뼛속까지 캄캄한 오골계의 생래적 성질머리 " 이다.

 

주류가 가지고 있는 긍정성'을 체질적으로 혐오하는 나의 태도는 非급에 대한, 혹은 b급'을 향한 열광적 지지'로 이어지고는 했다. 영웅'보다는 괴물'을 좋아했다. 배트맨'보다는 조커'에게 끌렸고, 백마보다는 당나귀가 더 근사했다. 괴물이 등장하는 수많은 재난 영화에서 내가 응원했던 것은 인간이 아니라 괴물이었다. 재난 영화 속에 자주 등장하는 괴물'은 도시를 파괴하기 위해 등장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인간이 잃어버린 휴머니즘을 복원하기 위해 등장하는 < 위악적 선인' > 일 뿐이다. 괴물은 인간을 위해서 죽는다.

 

우리는 도시를 아수라장으로 만드는 괴물과 인간의 사투를 통해서 그동안 잃어버렸던 인간성을 성찰하게 된다. 폐허가 된 도시'는 기념비와 함께 다시 우뚝 솟을 것이다. 그리고 그때 함께 손잡고 뛰었던 가족은 다시 뭉칠 것이다. 해피엔딩이다. 괴물 영화가 최종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가족의 재발견이다.  괴물은 인간적인 것'을 보여주기 위하여 일그러진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비록 괴물은 끔찍한 얼굴을 하고 있지만 가면을 쓰지는 않는다. 그들은 날것 그대로를 보여줄 뿐이다. 괴물보다 더 무서운 존재는 인간의 탈을 쓴 짐승이 아닐까 ? 가면을 가지지 못하는 존재는 순수한 존재이다.

 

그래서 이래저래 < 非' > 라는 글자가 좋다. < 非 > 는 모두가 YES라고 말할 때  NO라고 말할 줄 아는 용기'이며, 긍정성'보다 부정성'에 가치를 두는 문자이다. < 바틀비/허먼 멜빌 > 에서 바틀비가 " 하지 않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 라는 선언이 바로 非다.  이 문자는 콜린 윌슨이 쓴 < 아웃사이더 > 와도 완벽하게 겹친다. 우리가 흔히 비주류'라고 말할 때의 < 非 ~ > 는 중심에서 벗어난 아웃사이더'를 완벽하게 재현한다. 만약에 < 非 > 대신에 < 反 > 이라고 썼다면 과연 < 비주류 > 적인 반골 기질'을 전달할 수 있었을까 ? < 非 > 와 <  b > 만큼 대상을 명확하게 지시하는 문자'도 없다. " 非는 존재 증명'이다 ! "

 

내가 시인 신해욱이 쓴 에세이 < 비성년 열전 > 을 읽은 까닭은 오로지 " 非성년 " 이라는 조어'가 주는 독특한 느낌 때문이었다. 그녀가 쓴 (시를 읽어본 적은 있으나) 시집'을 읽은 적도 없을 뿐더러 이 책의 목차를 훑어보지도 않고서 이 책을 산 이유는 전적으로 < 非 > 라는 문자가 주는 강렬함 때문이었다. 신해욱'은 미성년 대신 비성년을 선택한다. 未성년'이  AGE'에 근거한 분류'라면, 非성년'은 EDGE'에 속한 분류다. 그러니깐 미성년'은 성인 이전의 시간'을 의미한다면, 비성년은 중심에서 벗어난 공간인 변방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未 는 시간 영역'이고, 非는 공간 영역'이다. 非는 反과 다르고 不과도 다르다.

 

공교롭게도, 정말 공교롭게도, 그녀가 관심을 가지고 관찰한 비성년자'들은 내가 대부분 관심을 가지고 지켜본 캐릭터들이었다. 바틀비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 프롤로그는 다시 바틀비에 대한 생각으로 끝을 맺는다. 그녀가 이 에세이'에서 다룬 모든 비성년자들은 또 다른 바틀비'였다. 그녀는 시작부터 미노루 후루야의 치명적 만화인 < 두더지 > 에서 주인공 스미다'를 바틀비의 적자로 호명한다. ( 내가 후류야의 < 두더지 > 을 읽었을 때 느꼈던 감동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을 읽었을 때 느꼈던 감동과 동일한 것이었다. 후루야는 도스토예프스키다. )

 

그런가 하면, < 렛 미 인 >에서는 호칸 뱅손'을 적자로 호명한다. 낯선 이름이리라. 그는 흡혈귀인 소녀 이엘리'를 욕망하는 중년의 늙은 남자'이다. 44세, 전직 국어교사, 소아성애에 사로잡힌 사내 말이다. 그는 이성애 중심 사회에서 완벽하게 벗어난 비주류이자 소아성애자라는 측면에서 괴물'이다. 욕망을 채우는 순간 그는 괴물이 된다. 그는 그저 사랑하는 흡혈귀 이엘리'를 위해 피를 공급하는 초라한 사내이다. 호칸 뱅손이 중년의 몸으로 소녀를 사랑하는 운명이라면, 영화 < 오펀 > 에 나오는 주인공 에스더 콜먼은 소녀의 몸을 한 나이 든 여자'다. 그녀는 끊임없이 사회로부터 < 아이-다움 > 을 강요받는다.

 

하지만 아이가 아닌 어른인 그녀에게 천진난만'을 강요하는 것'은 결국 비극을 낳는다. 이런 식으로 저자는 비성년자들을 호출해서 그들을 위한 변명을 한다. 그리고 그녀의 항변은 정당하다. 非는 강렬하다. 非라는 문자로 커밍아웃된 존재 증명(들)은 허우대 멀쩡한 세상'을 향해 돌을 던진다. 이 소수자들은 힘이 없는 존재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엄청난 에너지를 발산하는 주체'이다. 내가 구로자와 아키라'보다는 스즈키 세이준에게 열광한 이유도, 미시마 유키오'보다는 다자이 오사무'에게 빠진 이유도 다 그놈의 非급 정서 때문이 아닐까 ?

 

다이안 아버스와 실비아 플라스 그리고 프리다 칼로'에게 빠진 이유도 마찬가지이리라. 그들은 아름다운 얼굴로 유혹하는 존재가 아니라 초라한 어깨로 유혹하는 존재였다. 앞에서 보면 보이지 않으나 뒤에서 보면 선명하게 보이는 것이 바로 둥근 어깨가 아니었던가. 내가 사랑했던 여인도 초라한 어깨를 가진 자'였다. 非급 존재증명자'들은 반드시 실패하게 된다. 그것이 그들이 가진 운명이다. 어쩌다 실패하게 되는 운명이 아니라 반드시 실패할 수밖에 없는 운명'은 그 필연성으로 인하여 아우라'를 얻는다. 참혹을 매혹으로 만드는 힘'이다.

 

다이안 아버스는 이런 말을 했다 : 길을 걷다가 누군가를 발견하게 되는 것, 그래서 눈에 띠는 것, 그것은 치명적인 매력이 된다.  치명적인 존재는 아름답다, 동시에 치명적인 존재는 독을 품는다. 인간이 非처럼 생긴 지네'를 두려워하는 것은 지네'가 징그러운 벌레이기 때문이 아니다. 반대로 아름답기에 사랑에 빠지는 것이다. 몸이 경직되고, 호흡이 가빠지고, 눈을 땔 수 없는 현상은 무섭기 때문이 아니라 첫눈에 반했기 때문이 아닐까 ? 두려움과 사랑은 동일하다. 이 책 매우 좋다. 난, 틀린 적이 없다. 내 말을 믿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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팜므느와르 2013-07-17 08: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B급 좌파라 노래하는 김규항 때문에 한 발 물러나 C급 (허)무파라 생각하는 일인 여기 있어요.
다이안 아버스, 실비아 플러스, 프리다 칼로도 당연히 내 파라 생각해요.
근데 비는 태희파인데 곰발님도 혹시?

서두에 입이 없는 것들 대신에 외칠 때 아, 불불불불불, 불알이 없는 것들이라고 정정해야 하는 것 아네요. ㅋ

곰곰생각하는발 2013-07-17 08:26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아, 그게 더 강렬한데요...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불알이 없는 것들로 정정하겠습니다.

만화애니비평 2013-07-17 0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지라가 있다면 에비라도 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07-17 08:43   좋아요 0 | URL
어여, 출근 서두루소 !!! 강철 만애비... ㅎㅎㅎㅎㅎ

드팀전 2013-07-17 1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잘보고 많이 배우고 갑니다.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3-07-17 16:34   좋아요 0 | URL
아, 드팀전 님을 이 자리에서 뵙는군요...ㅎㅎ. 고맙습니다.

히히 2013-07-17 1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非급 존재증명자'들은 반드시 실패하게 된다...그 필연성으로 인하여 아우라'를 얻는다.'
완전 끄덕끄덕.
영화는 보지못하여 몰것고 책에서는 호칸 뱅손이 제일 남습니다.

흔적없이 섞인다는 건 불가능한 일입니다만
非에겐 억지라는 누명을 씌우는 세상이므로
결국엔 그들은 숨는꼴이 됩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07-17 16:34   좋아요 0 | URL
뱅손이 영화에서는 거의 존재가치가 없어요. 전 영화로 받을 때, 이 영화 부천영화제에서 했었는데 내 기억으로는 발리우드 인도 영화 다음으로 가장 인기가 좋았던...

전 영화에서는 아버지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소설은 전혀 다르더군요.
영화로도 훌륭하고소설로도 참 훌륭하죠.....

비로그인 2013-07-17 18: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B적인 것을 애호하는 너의 마음에 무진장 공감!!
그런데 지극히 B적인 것을 A적인 양 끌어올려내지 않으면
B의 인생은 너무나 찰나,인 거 같아.

영원을 만들기도.. 그렇다고 찰나를 받아들이기도..
참 힘이 들구나..


나 이제 잘꺼얌~!!

곰곰생각하는발 2013-07-17 20:45   좋아요 0 | URL
그림 그릴 때마다 징징거리더니 이번 작업은 꽤 흡족한가 보다 ?
이러다가 대박나는 거 아니냐.
하튼 6시에 자면 12시에나 일어나겠구만.. 흠흠...
난 b는 그냥 b스럽게 내버려둔 작품이 좋더라고.
b가 a 흉내를 내면 좀 그렇다.
그나마 호가든 맥주가 제일 맛이 좋다. 스팸에 호가든.. 궁합이 꽤 좋아 !
 
고등어 - 개정판
공지영 지음 / 오픈하우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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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기억을 찾아서......

 

며칠 전 : 책장에 꽂힌 공지영의 소설책 두 권을 뽑았다. <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 과 < 고등어' > 다. 사실 < 우행시 > 는 200페이지 정도 읽다가 던져버렸지만 책 내용'들은 아직까지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이 책은 헌책방에서 헌책으로 장만했지만 책 상태는 지금 당장 서점으로 달려가 진열장에 꽂아  넣어도 새책으로 오해할 만큼 깨끗하다. 밑줄을 긋지 않은 것'을 보면 기억할 만한 문장이 전혀 없었나 보다.

 

그것은 이 책을 헌책방에 판 책 주인에게도 해당된다. 그는 흔적이 될 만한 밑줄, 접힌 모서리, 메모, 갈피 사이에 끼워진 낙엽이나 네잎 클로버 혹은 편지나 영화표 그리고 영수증따위'로 낡은 책'이라는 기표를 남기지 않았다. 감정적 전이 상태가 없었던 까닭이리라. 그러다가 책 맨 뒷 장'을 펼쳤다. 책 알림 정보'를 살펴보니 초판 167쇄'라는 기록이 인쇄되어 있었다. 167쇄 ?  167쇄?!!!!  아니, 이 책이 167 쇄'나 팔렸다는 말인가 ? 

 

이번에는 < 고등어 > 를 꺼냈다. 매우 오래된 책'이다. 내가 공지영의 소설을 처음 접한 것은 < 더 이상 아름다운 방황은 없다. > 였다. 풀빛에서 출판되었었나 ?! 그때부터 나는 으르렁거리는 안티'가 되었다. " 지랄 같은 소설이군. 대한민국의 화염병 가운데 70%는 모두 소설 속 주인공이 던진 것처럼 말하네. 당신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결국 이 땅의 민주주의와 자유가 아니라 최루탄 속 사랑'이잖아 ?  러브스토리이면서 왜 투쟁을 이야기하지 ? " 나는 공지영이 이토록 유명한 소설가'가 되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는 내 예상을 깨고 신경숙과 함께 최고의 작가'가 됐다. 아니, 가장 많은 책을 파는 작가'가 됐다.

 

고등어'를 살펴본다. 그러다가 문득 내가 이 책'을 읽지 않았다는 생각을 했다. 사 놓고 읽지 않은 책'이 워낙 많기에 이 책'도 사 놓았을 뿐 읽지 않은 것이다. 중구난방으로 이 책 저 책 읽다 보니깐 산 책을 다시 산 경우'도 많았다. 그래서 종종 읽지도 않은 책을 읽었다고 착각하는 경우도 있고, 읽었으면서도 읽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허다했다. 내가 이 책을 읽었는가 읽지 않았는가를 판단하는 기준은 흔적이다. 노란 색연필로 그은 밑줄, 연필이 눌린 자국, 메모, 모서리가 접힌 자국, 각종 영수중, 서표'를 통해 유무를 판단하고는 했다. 일단 책 맨 뒷 페이지'를 살펴보았다. 맙소사 ! 95년 초판 57쇄 ?  초판 1쇄'가 94년 6월인데 1년만에 60쇄에 도달한 것이다. 미치겠군 !  

 

그런데 서른 페이지 정도 읽다가 노란 색연필'로 그어진 문장을 발견했다. 노란색 밑줄이 그어졌다는 사실은 내가 이 책을 읽었다는 증거다. 그런데 도무지 기억이 안 난다. 아무리 재미없는 영화'라도 몇 분만 들여다보고 있으면 잃어버렸던 장면들이 다 복기되는데 이 소설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읽다가 만 소설일까 ?  맨 뒷 부분을 살피는데 노란 밑줄이 다시 발견된다. 끝까지 읽었다는 명백한 증거다. 그런데 단 한 줄도 줄거리가 기억나지 않는다.

 

이런 경우가 가능할까 ? 이렇게 표백된 기억'이 가능할까 ? 불가능하다. 그런 일'은 단 한 번'도 없었으니깐 말이다. 대충 내용을 살펴보니 80년대 운동권 세대'에 대한 스케치다. 이번에는 불륜을 건드렸나 보다. 피식 웃음이 났다. " 여전히 정의를 부르짖으면서 사랑'을 이야기하는구나. " 책 맨 뒷장을 살피니 다음과 같은 메모가 있다.

 

TO. 곰곰생각하는발

 

피로 맺은 우정, 죽음까지도 함께 하리라.

 

김은호 ( 011 - #### -#### )

 

FROM. ○○○

 

피로 맺은 우정이라.........  사인' 부분은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휘갈겨쓴 상태라 이름을 알 수는 없었다. 누구일까 ? 내가 아는 사람이 분명할 터인데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답이 나오질 않았다. 이 책의 주인이었던 사람은 왜 느닷없이 김은호'라는 사람과 그 사람 연락처를 남긴 것일까 ? 나는 이 사람에 대해 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하여튼 날이 밝으면 김은호'라는 사람에게 전화를 할 것이다. 아직까지 011 - 로 시작하는 핸드폰 번호'를 가지고 있을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그래도 전화해 볼련다.

 

" 김은호 씨 ?  011-739 -0*** 번 김은호 씨 ?  제가 공지영의 고등어라는 책을 가지고 있는데 맨 뒷 장에 선생님 이름과 전화번호'가 있더군요. 실례를 무릅쓰고 이렇게 전화를 드렸습니다. 혹시 누구인가요 ?  아... 화내지는 마십시요. 제가 기억을 잃어버렸거든요. 그래서 그 기억을 찾고 싶어서 그렇습니다. 시간이 괜찮으시다면 찾아뵙고 말씀 나누고 싶습니다. 필체와 사인을 보여드릴 테니 기억나시는 분이 계시면 말씀을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어제까지의 : 에필로그 

 

1. 김은호 씨'와 통화를 한 후 그를 찾아갔다.

2. 책 뒷 장에 쓰여진 필체를 김은호 씨'에게 보여줬다.

3. 김은호'는 사인을 자세히 보더니  " 박명욱 "이라는 자를 지목했다.

4. 나는 박영욱을 찾아갔다.

5. 그는 3일 전 의문의 사고'로 죽었다고 한다.

6. 그의 부인을 찾아갔다.

7. 부인의 이름은 김은혜'다.

8. 김은혜'는 남편이 공지영 팬 사인회에서 얻은 책이라고 말했다.

9. 나는 공지영을 찾아갔다.

10. 공지영을 만났다.

11. " 돌아가는 꼴 " 을 이야기하며 공지영 씨에게 사실 확인'을 부탁했다.

12. 공지영 씨'가 나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리고는 말했다.

 

"  이 책을 어떻게 아시지요 ?  고등어'는 지금 제가 집필하고 있는 소설입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 ? 곰곰생각하는발 씨 !  출판된 적이 없는 책이라구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책이란 말입니다. 도대체 당신 누구야 ? 아, 아아... 그러고 보니......  나,  당신... 누군지 알 것 같아요. 그때 팬 사인회'에서 실수로 내 옷에 커피를 쏟았던......   "

  

갑자기 나는 정체성의 혼란을 느낀다. " 전...  저는..  다만....  그러니깐.... .....      달콤쌉싸래한 씀바귀입니다. " 뒷걸음질친다. 돌부리에 걸린 것일까 ? 휘청, 넘어진다. 박영욱, 박영욱, 박영욱이라.... 어디서 많이 듣던 이름이기는 하다. 내가 박영욱이었던가 ? 땀이 비오듯 쏟아진다. 주머니 속 손수건을 꺼내다가 구겨진 종이뭉치를 꺼낸다. 펼쳐보니 정신과 처방전이다. 박영욱이란 이름이 박혀 있다. 어디선가 박수소리가 들린다. " 브라보 ! 가는 길에 영광 있으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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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2013-07-16 07: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전 페루애님 이런 넌픽션과 픽션이 가미된 글이 참 좋아요. :)

공지영 책은 읽은 적이 없고... 우행시는 영화를 봤습니다.
인공적인 기조며 너무 관객의 감정선을 직접적으로 촌스럽게 건드리던 영화 자체가 별로 와닿지 않았고..
아니 그보다 불만이 참 많았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듯은데.. 암튼 소설 자체도 별로인가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07-17 03:12   좋아요 0 | URL
공지영이 후졌다기보다는 서로의 취향이 맞지 않은 듯합니다.
전 공지영 식 문장에 꽤 마음에 안 들어요. ㅎㅎㅎㅎㅎ
근데 다시 생각해보면 내 취향의 기준에 의해서 마음에 들지 않는단 거지
공지영 문장이 후지다는 것은 아닌 것 같아요.
요즘 그런 생각을 해요. 너무 내가 내 기준으로만 보는구나. 이런 거...
늙나 봅니다. 팔팔할 때는 대립각도 많이 새웠는데 이젠 그게 싫어져요...

그리고.. 영화, 송해성 감독의 그 영화. 아 정말 보다가 나오고 싶었습니다.
파이란을 만든 감독이라고는 매치가 잘 안 되었어요.

히히 2013-07-17 1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각을 접기는 하나 밑줄긋기는 아직 아깝습니다요.

'이별로 돌아오지 않는 사랑, 죽음까지 함께 하리라.'

곰곰생각하는발 2013-07-17 16:35   좋아요 0 | URL
밑줄은 못 긋는군요...ㅎㅎ. 노란색연필 추천합니다. 제가 수많은 색의 색연필을 사용해 보았으나
노란색은 좋습니다.
 
[블루레이] 올드보이 - 아웃케이스 없음
박찬욱 감독, 강혜정 외 출연 / 피터팬픽쳐스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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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마지막으로 선보인 음식은 딤섬'이었다. 짬뽕으로 승부하기에는 경쟁이 치열해서 고급화 전략'으로 딤섬 요리 기술'을 틈틈이 공부하고 있다며 내놓은 것이다. 내가 만두'라고 했더니 그는 화를 냈다. " 그, 그그그그것은 딤섬에 대한 모독이야 ! " 딤섬을 點心'이라고 적는단다. 마음에 점을 찍는다는 이름이 시적이어서 마음에 들었다. < 올드보이 > 에서 최민식이 질리도록 먹었던 군만두'는 서비스 메뉴'였을 것이다. 이런저런 추론을 해보면 유지태는 최민식을 사설 감옥'에 보내면서 날마다 밥값을 지불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밥값은 사설 감옥 직원들의 공돈으로 주머니 속으로 들어가고 대신 서비스'로 나온 군만두를 주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 그러니깐 최민식은 15년 동안 직원들이 점심을 시켜 먹고 남은, 서비스로 나온 만두만 먹다가 속 터져버린 이야기다. 만약에 최민식에게 군만두 대신 딤섬을 點心 으로 내놓았다면 그토록 비극적이지는 않았으리라. 짬뽕이 맵고 자극적이었다면, 김이 모락모락나는 딤섬'은 담백하고 순한 맛있었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젊을 때는 자극적인 것을 탐하다가 늙으면 순한 맛에 매료된다.

 

- 보수란 무엇인가, < 짬뽕과 딤섬 > 中

 

 


 

 

 

 

올드보이와 군만두.  

 

 ■ http://myperu.blog.me/20176091371 : 유지태는 스핑크스다

■ http://myperu.blog.me/20128341708 : 말하는 괄약근과 배설하는 입

 

처음에는 < 올드보이 > 에 대해 " 오이디푸스와 그리스 비극 " 에 대한 글을 쓰려고 했으나 생각해보니 그런 식의 접근은 이미 신형철을 비롯한 무수한 먹물'들이 신물'나게 지적했을 터, 발화의 힘은 화려한 스펙'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니 내가 아무리 아름다운 문장으로 지적을 해보아야 소용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방향을 틀어서 " 올드보이와 군만두 " 에 대한 이야기를 하련다. < 올드보이 > 에서 유지태는 최민식에게 이 비극을 초래한 원인으로 " 당신의 세치 혀 " 를 지목했지만 내가 보기엔 " 군만두 " 때문에 비롯된 비극'이다.  

 

최민식'은 처음부터 군만두'를 먹었던 것은 아닐 것이다. 유지태가 최민식에게 감금된 기간 동안 육체적 고통'을 주려고 했다면 모텔 인테리어를 그대로 옮긴 감옥에 그를 가두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실 최민식은 감금되어 자유를 잃었을 뿐이지, 나름대로 문화적 혜택을 누린다. 티븨'가 나오고, 수세식 변기와 에어컨이 작동한다. 유지태 입장에서 보면 수인에 대한 나름대로의 선처'다. 그렇기 때문에 먹는 것 가지고 장난을 쳤을 리'가 없다. 그렇다면 최민식은 왜 군만두만 먹게 된 것일까 ? 속 터지게 말이다.  

 

최민식도 처음에는 다양한 요리'를 제공받았을 것이 분명하다. 칼칼한 짬뽕도 먹고, 쫀득쫀득한 짜장면도 먹었을 것이며, 볶음밥, 유산슬, 팔보채도 먹었을 것이다. 먹고 자고 싸니, 나름 살 만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억만장자인 유지태가 그깟 밥값이 아깝지는 않았을 터. 아마도 한 끼 식사 비용으로 만 원씩 제공되지 않았을까 ? 문제는 그 돈이 사설 감옥 직원들의 주머니로 들어갔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법적으로 하자 많은 사설 감옥이므로 마음대로 음식을 시켜 먹을 수는 없으니 특정 식당 하고만 거래가 있었을 것이다. 독자들도 다들 아시겠지만 중화요리'라는 것이 단골이 되면,  짜장면 두 개만 시켜도 군만두 서비스'가 제공된다. 하물며 날마다 음식을 주문하는 사설 감옥이라면 ? 

 

사실 감옥 직원들은 최민식에게 제공되는 식사 비용'을 자기 호주머니에 넣고서는 서비스로 나오는 군만두'를 주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때부터 최민식은 군만두만 먹는다. ( 앞으로는 미래 가정법이 아닌 현재진행형으로 묘사하겠다. ) 신물나게 한 가지 음식만 먹어본 자만이 안다. 그 고통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그 이상의 고통을 선사한다. 더군다나 느끼한 군만두가 아니었던가. 15년 동안 군만두만 먹다가 그는 폭발한다. 음식 주입구에 대고 고함을 지른다. " 야, 이 개새끼들앙 ! 나도... 칼칼한 짬뽕 먹고 싶다. 나박나박 썬 호박 넣고 끓인, 조개로 맛을 낸 된장찌개 먹고 싶다. 으, 으으으으. 짭짤하게 간이 벤 갈치조림 먹고 싶다. 씨발새끼들아 ! "  

 

그는 복수를 다짐한다. 황당한 설정 같지만 정당한 이유이기도 하다. 다양성이 배제된 획일성'은 인간을 피폐시키기에 충분하다. 듣기 좋은 말도 여러 번 하면 짜증이 나듯이, 군만두도 삼시 세 끼'를 삼 년 동안 먹어보라. 그 아무리 성인군자라 해도 입에서 개새끼'라는 소리가 자연스럽게 튀어나온다. 포르노 배우였던 에나벨 청'도 이와 같았을 것이다. 그녀가 기획한 섹스 이벤트 ( 10시간 동안 300명의 남자와 섹스를 하는 것 ) 는 자기가 아무리 좋아하는 것이라 해도 강제로 진행되는 획일성'은 결국 고통과 피로'만을 준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다. 처음에는 좋았다. 섹스광답게 그녀는 남성의 불기둥에 환희를 느꼈다. 하지만 처음의 환희는 사라지고 끝에 가서는 고통으로 일그러진 얼굴만 남는다. 왜 아니 그러겠는가 !  괄약근'은 민감한 피부이다. 이 글을 읽는 사람이 남자라면 그 고통을 이해하지 못할 것 같아서 좋은 비유를 하나 대련다. 10시간 동안 똥만 싼다고 생각해 보라. 속에서 불 난다.  

 

입도 괄약근과 마찬가지로 매우 연약한 피부 조직'이다. 에나벨 청이 10시간 동안 쉬지 않고 섹스만 했다면, 최민식은 최소 10년 동안 쉬지 않고 입속에 군만두를 넣었다. 고통이 스며들었을 것이다. 그는 먹으면서 복수를 다짐한다. 나를 가두고 15년 동안 군만두만 먹인 놈을 찾아나서기로 말이다. 어쩌면 이 영화는 " 오이디푸스와 그리스 비극 " 따위'를 이야기하려는 의도가 아니었을 수도 있다. 박찬욱은 이 영화의 메시지로 획일화된 전체주의'에 대한 경고'를 날린 것은 아니었을까 ? 

 

대한민국 사회'는 다양성을 존중하지 않는 사회이다. 학창시절은 지옥과 같다. 개인의 은밀한 욕망은 성적'이라는 거대한 군만두'로 인하여 포기해야 한다. 짬뽕도 먹고 싶고 짜장면도 먹고 싶지만, 이러한 은밀한 입맛(욕망)은 발설하면 안 된다. 대한민국 교육 시스템은 오로지 군만두(성적)만 먹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앉으나 서나 군만두 생각이다. 학창 시절을 벗어나 조직 생활을 한다 해도 크게 다르지 않다. 조직이라는 커다란 군만두를 위해 충성을 바쳐야 한다. 다양성은 존중되지 않는 것이다. 좌파적 상상은 빨갱이'가 되고, 동성애는 전염병 취급을 한다. 여성들은 집에 가서 밥이나 해야 하는 존재로 찍힌다. 같은 이유로 십대와 여성이 성에 대해 자유롭게 말하는 순간 싼 년이 되거나 싼 놈이 된다. 오로지 군만두만 먹으라고 하는 사회. 이런 사회, 거침없이 돌을 던져도 된다 ! 

 

군만두가 짜장면 두 개를 시키면 나오는 싸구려 음식으로 추락할 때, 중국 만두인 딤섬'은 예술이 되었다. 웨인 왕 감독은 영화 < 딤섬 > 에서 딤섬을 인생에 비유한다. 만약에 만두나 딤섬'이 다 같은 만두 아니냐고 묻는다면, 당신은 웨인 왕이나 왕가위에게 따귀를 맞을 것이다. 과연 한쪽은 싸구려 서비스 음식이 되고 다른 한쪽은 예술이 될 수 있었던 결정적 차이'는 무엇이었을까 ? 중화요리 주방장인 내 친구 말에 의하면 < 다양성 > 이다. 딤섬은 종류가 무려 200가지가 넘는다고 한다. 딤섬에 대한 기사를 인용하면 이렇다.  

 

딤섬은 재료, 모양, 조리 방법에 따라 다양한 종류가 있다. 작고 투명한 것은 ‘교’, 껍질이 두툼하고 푹푹한 건 ‘파오’, 통만두처럼 윗부분이 뚫려 속이 보이는 것은 ‘마이’다. ‘바오(包)’는 ‘감싼다’는 뜻으로 피가 두툼하고 대체로 둥글게 빚어 감싼 형태로,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왕만두를 생각하면 된다. 마트나 편의점에 판매하는 고기 만두 모양의 ‘지아오(餃)’는 속이 비칠 정도로 피가 얇고 끝마무리를 맞물려 다문 형태다. 마지막으로 윗부분이 꽃봉오리처럼 활짝 열려 있거나, 윗부분은 닫혔으나 갖가지 색상의 재료를 얹은 ‘마이(賣)’가 있다. 특히 통통한 새우를 속이 보이는 얇은 찹쌀 피로 빚은 ‘하가우’는 한입 베어 물면 쫀득한 피와 고소한 새우의 맛이 일품이다. 딤섬은 간단하게 먹는 음식이다. 

- 매일 경제 

 

 이 다양성은 딤섬을 예술로 승화시킨 것이다. 만약에 최민식에게 군만두가 아니라 딤섬을 제공했다면 끝까지 치닫는 비극'은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 어쩌면 그는 사설 감옥 안에서 딤섬에 대한 글을 쓰다가 보편적 진리'를 깨닫고 유지태를 용서했을 수도 있다. 그리고는 쪽지를 남기고는 그곳을 탈출했을 수도 있다. " 재워 주고, 먹여 줘서 고맙수다 !  " 누누이 하는 말이지만 다양성이 존중되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다. 인간은 위너도 없고 루저도 없다. 실패가 모두 매력 없는 것도 아니다. 같은 이유로 승리'가 아름다운 것만도 아니다. 군만두로 시작된 이야기가 너무 멀리 왔다. 다음엔 물만두 이야기다.

 

 

- 이미지 출처, 안나 쉐프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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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2013-07-15 2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군만두만 강요되는 사회.. 거기서 군소리 없이 군만두만 잘 처묵처묵 하는 애들이 일등이 되고..
그러고 보니 영화속 저 상황, 장면이 일종의 구조적 은유였네요.
(앗, 너무 거창한가요. 하하 ;;)

곰곰생각하는발 2013-07-15 23:24   좋아요 0 | URL
거창합니다...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군소리 없이 군만두를 먹는다라. 요런 라임 선호합니다.

iforte 2013-07-16 0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옹,,, 역쉬.... 군만두를 또 이렇게 연결시키다니.... 님 쫌 짱인듯. ㅎㅎ 간만에 애들 용어 좀 써봤습니다.
오늘 오후부터 여행갑니다. 지금 막 짐챙기다가 쉬는 중입니다. 며칠동안 사진찍으러다닐 생각에 엄청 기분 업입니다. 돌아와서 좋은 사진 좀 건지면 자랑시키러 제일먼저 곰발님한테 들르도록 하지요. 그동안 안녕히, 잘, 지내시길!

곰곰생각하는발 2013-07-16 03:06   좋아요 0 | URL
잘 다녀오십시요. 워낙 사진 감각이 탁월하셔서 항상 기대가 됩니다.
지금 한참 여행 중이시겠군요.
느낌 좋은 사진 많이 찍어오세요. 제프 다이어의 책 좋더군요 !
제프 다이어의 사진 에세이에 삽입될 사진 하나 얼릉 찍어오세요..

만화애니비평 2013-07-16 0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군만두는 점심시간 중국집에서 볶음밥 시킬 때 종종 나오죠. 오늘 중국집에서 점심 먹어야 겠군요

곰곰생각하는발 2013-07-17 03:13   좋아요 0 | URL
점심은 항상 저의 글에서 힌트를 얻으시는군요 !

마노아 2013-07-16 15: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만두를 기대하면서, 그 사이에 나는 작가다도 올려주세요. 쓰다가 마는 건 줬다가 빼앗는 거예요. 나빠요!!

곰곰생각하는발 2013-07-17 03:13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 알겠습니다. 작가다, 시리즈를 다시 시작하도록 합죠..

히히 2013-07-17 1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박찬욱감독이 '세치 혀'에 주제를 둘 때 상당히 놀랐는데
곰...발님이 다양성에 무게를 실으니 기똥차게 맛나네요.

여중생 딸은 아직 공부 관련 학원은 간적없고
차라리 외식을 즐기는 우리 세모녀입니다.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은 예체능이라는 똥고집으로
음악, 미술에는 돈을 아끼지 않습니다...만,
성적이 바닥을 치면 만두가 그립겠지요?

"야,이 개새끼들앙! 짬짜면이 안되면 수면이라도 먹어보자."


곰곰생각하는발 2013-07-17 16:37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히히 님 재미있습니다.
예체능'이 사실 그 세대들에게는 전부죠.
이걸 우리는 개무시한다는 게 통탄스러운 일입니다.
 

두 권의 책 ; 그린 마일과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내 주량은 소주 2병'이지만 엄밀히 말하면 1병'이라고 말하고 싶다. 돌이켜보면, 소주 한 병을 마시고 술자리'를 마쳤을 때가 가장 좋았던 것 같다. 왜냐하면 나에게는 소주 1병'을 마시고 난  취기'가 가장 기분 좋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기분이 좋아지면 나는 언제나 버릇처럼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만든 " 밀리언달러베이비 " 를 이야기한다.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병실'에 누워 있는 제자'를 찾아가서 몰래 안락사 시키는 장면이다. 감독은 스승이 반신불수인 제자의 병실을 찾아와 제자가 간절히 요구했던 소원대로 안락사'를 시키는 장면을 매우 빠르게 진행한다. 이 과정에서 값싼 신파는 존재하지 않는다. 망설임 없는 신속한 처리'는 두 사람 사이에 형성된 확고한 신뢰'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결정'이었기 때문이다. 감독은 숨죽이며 흐느껴우는 신파'를 버리는 대신 신뢰'라는 키워드를 건져 올린다. 감정의 과잉'이 보이지 않는다. 잠시 동안 나눈 눈인사'와 짧은 고해, 그리고 늙은 복서가 어두운 복도를 성급히 빠져나가는 어두운 어깨'만 있을 뿐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장면에서 " 종종 " 실망한다. 왜냐하면 이 장면이야말로 눈물을 쏘옥 빼버릴 만한 클라이막스'가 아니었던가 ? 로미오가 줄리엣을 부여잡고 통곡하는 장면이 아니었던가 ?   하지만 감독은 욕심을 버리고 건조하게 마무리한다. 늙은 감독이 이 장면을 통해서 말하고 싶었던 것은 신파'가 아니라 신뢰'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술 기운에 흥이 난 나는 지난번에도 했던 말을 뻔뻔하게도 처음 하는 소리처럼 또 다시 늘어놓는다. 눈을 지그시 감았다가 치켜뜬다.

 

" 그렇지. 감독은 그 장면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 형성된 신뢰에 대한 질문을 던진 거야.  눈물을 보이지 말 것, 세련된 영화들은 슬픈 장면에서는 일부러 눈물을 보이지는 않아. 채플린을 보라고 ! 울컥 하는 장면에서 채플린은 절대로 눈물을 보이지 않아. 수줍은 얼굴을 보일 뿐이잖아. 이 영화도 마찬가지야. 죽음을 동정하는 순간 늙은 복서와 젊은 복서가 맺은 우정은 빛을 잃는다고 감독은 생각한 거야. 사랑으로 비춰지기'를 우려했던 감독의 뜻이지. 눈물이 넘치면 추해지고, 웃음이 지나치면 무례해지는 것과 같아. 감정이란 아슬아슬하게 경계 위에 있을 때'가 절절한 법이지. " 

 

술'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 기분 좋게 취하다가 주량을 넘기면 추해지는 것처럼. 스티븐 킹이 쓴 < 그린마일'> 에서 " 비터벅 사형 장면 " 부분을 읽으면, 나는 밀리언달러 베이비'에서 느낀 그 담백한 장면들이 생각난다. 스티븐 킹'은 이 장면에서 호들갑스러운 연출을 자제하고 부드럽지만 깔끔한 문장'으로 다음과 같이 이끈다. 

 

추장은 목사가 잔잔한 물가에 눕는다는 내용의 찬송가를 부르기 시작하자 울기 시작했다. 우는 것은 나쁘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그들이 우는 모습을 보는 게 좋다. 울지 않으면 슬슬 걱정이 된다. 

 - 그린 마일

 

스티븐 킹'은 과감하게 "나는 그들이 우는 모습을 보는 게 좋다. 울지 않으면 슬슬 걱정이 된다. " 라고 1인칭 고백체'를 통해 회상한다. 얼핏 읽으면 반인륜적인 표현으로도 보이지만 그 속내는 추장에 대한 화자의 연민'이다. 킹은 어떻게 하면 독자들에게 소설 속 상황을 알기 쉽도록 표현할까'에 목숨을 거는 작가 같다. 그는 그린마일'에서 말보다는 주먹이 먼저 앞서는 성질 급한 남성'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독자를 웃긴다.

 

남자의 손은 겨우 절반만 길들인 동물과 같다. 대체로 온순하게 지내다가도 이따금 이탈해서 처음 보는 대상을 덮어놓고 무는 것이다.

 

이 정도면 완벽에 가깝지 않을까 ?  앞뒤 안 가리고 툭 하면 주먹을 휘두르는 남자의 주먹을 사나운 개의 주둥이'로 묘사하다니 말이다.  나는 이 문장에 줄을 긋고 한참동안 웃었다. 오, 킹 아저씨 ! 오, 귀여운 킹 아저씨 !! 볼수록 정이 가는 선생님이다. 사형수를 다룬 소설이라는 측면에서 나는 종종 < 그린 마일 > 을 공지영이 쓴 <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 과 비교하고는 한다. 결론은 스티븐 킹'이 얼마나 우아한가를 새삼 다시 느낀다. 다음은 공지영의 "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에 나오는 사형수 윤수의 고백이다. 그의 목소리는 장마철에 물 먹은 습자지 같다.

 

이곳 구치소에 들어와서 저는 처음으로 인간다운 대접을 받아보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이라는 게 무엇인지 처음으로 알았고, 사랑이라는 게 무엇인지 처음으로 알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살인자로 이곳에 오지 않았더라면 제 육체적 생명은 더 연장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제 영혼은 언제까지나 구더기 들끓는 시궁창을 헤매었을 것입니다. 기다리는 것, 만남을 설레며 준비하는 것, 인간과 인간이 진짜 대화를 나눈다는 것, 누군가를 기도한다는 것, 서로 가식 없이 만난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습니다.

-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전쟁터로 향하기 전 군인들을 앞에 놓고 장광설을 늘어놓는 장군의 연설문 같다. 사형수와의 사랑이라는 비극적 상황을 설정하기 위해서 공지영은 구질구질하게 온갖 신파를 끌어들인다. 인간'이라는 단어만 무려 네 번 나온다. 인간, 영혼, 인간, 대화, 인간과 인간, 생명, 가식, 기도, 만남. 눈물을 자극할 수 있는 모든 수사와 단어'가 동원되는 것이다. 그런데 정말 꼭 이런 물폭탄 장치'로 독자를 울리는 것이 클라이막스'를 위한 최선의 방식이었을까 ? 우아하게, 킹 할아버지처럼 우아하게, 소설가'라면 감정의 과잉을 적당히 숨겨야 하는 미덕을 갖는 것이 좋지 않을까 ?

 

공지영의 이 소설을 읽으면 60년대 한국 반공 영화'가 떠오른다. 적이 쏜 총에 맞아 최후를 맞는 주인공의 모습이 스친다. 총 맞고, 쓰러지고, 죽으면 되는 5초 분량의 장면'을 10분씩 끌고가는 그 신파 말이다. 쓰러질 듯 쓰러질 듯 쓰러지지 않고, 죽을 듯 죽을 듯 죽지 않는 주인공의 질긴 생명력'을 보면 짜증이 난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처럼, 스티븐 킹'처럼 간결하지만 강렬하게 끌고갈 재주는 없는 것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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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13-07-15 1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작가다 공지영 편을 해설해 주신 것 같아요.^^
얼마 전에 화이트 하우스 다운을 봤는데 주인공만 비켜가는 총알들과 허무하게 추락하는 블랙 호크 등이 어이 없었어요. 좀 공정하기만 했어도 시원한 액션영화될 뻔 했는데 말예요.

곰곰생각하는발 2013-07-15 13:20   좋아요 0 | URL
나는 작가다, 가 별로 인기가 없는 거 같아요.. 으하하하...
전 사실 드라마도 거으 안봅니다. 왜 주인공을 중심으로 돌아가잖아요. 나머지는 다 들러리고 말이고
난 이게 도통 집중이 안 됩니다. 뭐 총알이 빗겨나가는 건 말할 것도 없고 말이죠..후후...

히히 2013-07-15 17: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는 계속 '엄마를 부탁해'가 생각날까요?
공지영은 독자를 여성에 두는 듯 하고 25세전으로 한정하는 것 같아요.
화자가 말하는 것인지 작가가 말하는 것인지 분간이 가지않을 때
사실감이 살아있는 맛을 보기도 하지만
상상의 쾌감을 뭉게는 경우도 있습니다.
독자의 감정까지 어루만질 이유는 없습니다.
그 자극을 찾아 수많은 책을 기웃거립니다. 저는요 충분히 자립적입니다.
'봉순이언니'는 좋았습니다.

추가로
작가가 원하는 눈물과 독자의 것과는 핀트가 맞지않습니다.
35세 즈음에 [능소화]를 읽다가 엉뚱한 문장에서 눈물이 터져
가을밤을 적신 기억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우리 처럼 서로 어여삐 사랑할까요?"
원이 엄마에게 남편이 자주 고백했다는 이 말에
뻥 터졌습니다.
당시 남편과의 사이가 삐격거렸기 때문입니다.
허나 지금 다시 이 책을 든다면 당연한듯이 넘길 문장입니다.
신파는 우리의 여건이 만드는 것이지
작가의 몫으로 돌리기엔 다분히 억지가 있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07-15 20:08   좋아요 0 | URL
보편적 신파가 있는 것 같습니다. 대부분 보편적 신파에 울잖아요.
예를 들면 시어머니가 갑자기 나타나 애를 데리고 어디론가 사라지는 장면에서 사람들은
대부분 빵 터지죠. 눈물이...
그런데 롤랑 바르트적 신파'도 있어요. ( 요건 제가 히히 님 글 읽고 방금 지어낸 거임 )
푼크툼이라고 하잫아요. 사적 찌름'으로 인한 사적 신파인 거죠.
아마 히히 님이 능소화에서 울었다는 것은 사적 신파에 해당될 것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신파는 보편적인 것과 사적인 신파로 나눌 수도 있다고 봐요.
이 지점에서 작가는 대부분 보편적 신파에 매달리겠죠.
제가 아마 밀리언 달러의 그장면을 보고 가슴이 찡했던 이유는
개인적 사연이 있어서 일 겁니다. 이게 겹칠 때 터지거든요.

봉순이 언니는 함 읽어보도록 할께요..
 

 

 

 

 

 

 

이 영화가 나에게 술 한 잔 하자고 했다.

 

 

 

매력 있는 여성을 보면 함께 눕고 싶듯이, 좋은 영화를 보고 나오면 술을 마시고 싶다. 이건 본능적 허기'이기에 참기가 힘들다. 그러나 좋은 영화'라고 해서 모두 술 생각이 나는 것은 아니다. 쓸쓸하고 허전할 때 나를 위로해 주는 것은 여러분이 아니라 술과 영화'다. 다음 영화 목록'은 술 생각'이 간절한 영화들이다. 그 전에 올린 글을 다시 정리하여 올린다.

 

 

1. 밀리언 달러 베이비

밀리언 달러 베이비'를 보았다. 심장이 뛰었다. 취하고 싶은 밤이었다. 술집에서 그 여자와 나는 그 영화에 대한 이야기만 했다. 그녀는 토끼처럼 귀를 쫑긋 세우며 들었고 나는 쉼표 없이 말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관객에게 원했던 것은 값 싼 동정이 아니라 동의'라는 말을 했다. 마틴 스콜세이즈의  < 성난 황소' > 에 대한 이야기도 했던 것 같다.  영업이 끝날 때까지 우린 밀리언 달러 베이비' 이야기를 했다. 그때까지도, 그때까지도 내 심장은 천둥처럼 뛰었다. 나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가 눈을 떴다. 여자의 눈동자가 캄캄한 밤 하늘 위에 뜬 인공위성처럼 반짝였다. 그날 우리는  습관처럼 798번째 섹스'를 했고 1098번째 섹스를 끝으로 헤어졌다.  

 

 

 

 

2. 키즈리턴 

 

대학로 동숭 아트 센터'에서 기타노 다케시 감독의  < 키즈 리턴' > 을 보았다. " 실패했을까 ?  " 라는 질문에 친구가 답한다. " 빠가야로, 우린 아직 시작'도 안 했어. " 영화가 끝나고 나오니 아직도 날이 밝다. 마로니에 공원에 앉아서 혼자 소주를 마셨다.  

 

  

 

3. 다이하드 3 

아뿔사 ! 영화표를 샀더니  친구와 나는 돈이 없었다. 그것도 종로 3가 한복판에서 말이다. 친구가 그토록 보고 싶었던 다이하드 3'는 매진,매진,매진'이었다. 결국 우리가 선택한 시간은 마지막 회 영화 상영'이었다. 앞으로 네 시간'은 버텨야 한다. 돈을 다 털어보니 남은 돈은 칠천 원 정도.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1평 남짓한 구멍가게'로 들어갔다. 가게 안에는 간이 탁자 한두 개 놓여 있는 그런 풍경의 구멍가게. 추위도 녹일 겸 우린 두부 한 모를 시켜서 막걸리'를 마시기 시작했다.

 

친구야, 이 추위를 버티기 위해서는 술을 마셔야 한다구. 러시아를 봐. 그놈들은 얼어죽지 않기 위해서 보드카를 마시잖아.  우린 존 맥클레인 형사의 활약상을 위해 마시자구 ! 자, 건배. 시작은 좋았다. 그렇게 마신 막걸리가 다섯 병. 취할 때로 취했다. 밖을 나오는데 휘청 휘청. 야, 야야야야. 이거 우리가 존 맥클레인 걱정할 때가 아닌데 ! 빌어먹을. 하여튼 우린 영화'를 보았다. 나중에 깨달은 사실이지만 가지 말았어야 했다.

 

500석 가까운 좌석은 앞 줄까지 매진이었다.  예고 상영 때부터 졸음이 쏟아졌지만 두 눈을 부릅뜨고 참았다. 존 맥클레인 아저씨가 펼치는 대활약'을 보기 위해서. 영화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상황은 묘하게 꼬였다. 덜덜 떨면서 밖에서 술을 마시다가 갑자기 따스한 곳'으로 들어오니 속이 좋지 않았다. 우리는 둘 다 깊은 잠에 빠졌다. 다시 눈을 뜬 이유는 누군가가 신경질적으로 어깨를 흔들었기 때문이었다. 정신을 차리니 여기저기서 궁시렁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막걸리 냄새가 극장 안에 진동을 했으리라. 친구가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크억!  친구야. 크억 !   아, 나. 나나나나 토할 것 같아. 크으으으으윽.  토할 것 같다 ! "  이런 빌어먹을, 오도가도 못할 상황은 존 맥클레인이 아니라 나'였다.  씹새끼, 여기서 토하면 우린 모두 죽는다. 밖을 나가자면 좌석 열 명'은 지나쳐야 한다.

 

그때 갑자기 친구가 크으으윽 소리를 요란하게 내면서 일어났다. 마치 무협 만화에서 나오는 의성어 크아아아아앙,  이러한 느낌처럼 말이다. 순간 올 것이 왔구나 하는 느낌이 왔다. 친구가 입을 막더니 황급히 밖을 나가며 무릎과 무릎들을 헤쳐나갔다. 여기저기서 비명 소리가 낮게 들렸다. 이크. 존 맥클레인 형사'가 일촉즉발 위기'를 모면했다. 관객이 내지른 비명 소리가 어떤 의미'였는지는 아리송했다. 존 맥클레인의 대활약'을 그토록 보고 싶었던 친구는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그날 걸어서 집으로 갔다. 2시간 만에 도착했다. 영화는 다이하드 시리즈 중 최악이었다. 토 나올 만한 영화였다.   

  

 

4. 가을의 전설

오후 1시 40분. 그러니깐 그녀는 비행기 안에 있을 것이다. 내 첫사랑 여자'는 일본으로 이민'을 갔다. 어머니가 아버지와 이혼 후 일본인 남자와 결혼한 까닭에,  그 여자'도 엄마를 따라 일본'으로 떠났다. 나는 그날 공항에 가지 않았다. 내가 찾은 곳은 동네 삼류 극장'이었다. 그곳에서 < 가을의 전설' > 을 보았다. 한낮에 울기에는 이곳만큼 좋은 곳도 없었다. 나는 울기 위해서 표를 끊었다. 몇 시간 동안 울어도 됩니까 ? 매표원에게 물었더니, 매표원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말했다. 껌 씹는 소리와 겹쳐서 들려왔다. " 2시간 30분 정도는 펑펑 울 수 있어요. 이 극장은 대부분 낮에 울기 위해서 오는 관객들이랍니다. 펑펑 우세요. "  

 

극장 안은 온통 남자들로 가득했다. 양복을 입은 40대 남자들이 대부분이었다. 집에서는 듬직한 가장이었으니 모두 당당한 어깨였으리라. 그들은 직장에 가는 대신 극장으로 몰렸다. IMF로 인하여 권고사직이나 실직을 한 모양이었다. 집에다가는 직장에 간다고 말하고 나온 모양이었다. 사람들은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작정한 듯 울기 시작했다. 대성통곡을 하는 이도 있었다. 나도 펑펑 울었다. 소주 네 병은 마신 것처럼 어질어질했다. 가끔 티브이'에서 이 영화를 상영하면 첫사랑 여자'가 생각나고는 한다. 불이 켜지고 영화가 끝나면 사람들은 극장 로비'로 나가 극장 측에서 준비한 얼음팩으로 부은 눈덩이를 마사지했다. 그리고는 방긋.

 

   

 

5. 조지아 

영화 <조지아> 에서 제니퍼 제이슨 리’는 무명 가수’를 연기한다. 그녀가 선술집 무대 위에 오른다. 처마 밑에서 녹는 고드름처럼 여기저기서 간헐적으로 박수 소리’가 들린다. 예의상 보내는 박수이리라. 그녀는 깊은 주름과 퍼렇게 멍든 눈을 가리기 위해 짙은 스모킹 화장을 한 얼굴’로 객석을 바라본다. 그녀는 깊게, 심호흡을 한다. 노래를 부른다. 영화는 거기서 끝난다. 그 흔한 성공 스토리도 없다. 성공을 빛내기 위해서 실패'를 곁가지로 이야기하는 서사는 촌스럽다.    

 

실패는 오롯이 실패일 때 아름답다. 내가 조지아'라는 영화에서 발견한 것은 담백한 실패'였다. 높낮이가 거의 없는 멜로디처럼, 담담하게 고백하는 실패담'은 겸손하다. 우리는 술을 마셨다. 실패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여자가 말했다. " 형은... 반드시 실패할 거야.  우리의 연애도 실패할 거야. "  나는 웃으면서 말했다. " 실패는 재단사의 좋은 도구이지. " 술에 취한 그녀가 내 뺨을 때렸다. 다음날, 나는 대낮에 동네 삼류 극장으로 갔다. 매표원 아가씨'가 나를 알아보고는 말했다. 껌 씹는 소리가 겹쳐서 들려왔다. " 자주 오시네요 ? "   

 

 

6. 사실은 당신과 봤던 모든 영화.

사실은 우리의 데이트 코스'는 늘 일정했다. 영화'를 보고, 술을 마시고,  헤어지거나 모텔에 갔다. 좋은 영화는 좋은 느낌대로, 후진 영화는 후진 느낌대로 그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늘 그렇듯이 그녀는 들었고 나는 말했다. 형편없는 영화일 때'는 늘 밀리언 달러 베이비'와 비교하고는 했고, 좋은 영화일 때도 밀리언 달러 베이비'를 인용하고는 했다. 그러니깐 그녀와 나는 헤어질 때까지 밀리언 달러 베이비' 이야길 줄곧 했던 것이다. 지금 돌이켜 보면 내 심장을 오래도록 뛰게 만들었던 것'은 그 영화 때문이 아니었다. 당신이 있어서, 천둥처럼 뛰었던 것 같다. 내 심장은 그 사실을 몰랐다.언젠가 주말의 명화에서 이 영화'를 우연히  보게 된다면, 당신도 보고 있다면, 나는 당신을, 당신은 나를 기억할 것이다. 그때처럼,  천둥이 치겠지. 노장의 말을 빌리자면 이길 때가 있으면 질 때'도 있는 법이지. 레마르크의 소설 제목을 인용하자면 사랑할 때가 있으면 이별할 때도 있는 법이지. 안녕, 모스쿠라 ! 

 

 

 

 

 

 

 

 

 

 

 

 

 

그외, 나를 술 마시게 만들었던 영화들 

 

 

 

 

 

 

 

연어알, 샌프란시스코에서의 하룻밤, 2004년 시네마떼끄 기념 상영전  아비정전,  아라비아의 로렌스, 에밀 쿠스트리차의 실패한 몇몇 작품들 : 그의 몰락이 믿겨지질 않았서 술을 마셨다. 

 

타르콥스키의 거울,  팀버튼의 피위의 대모험, 비틀쥬스, 가위손, 에드우드, 크리스마스의 악몽,  마틴스콜세이즈의 택시드라이버, 코미디의왕, 비열한 거리. 조단테의 그렘린 2, 마티니. 아, 그리고 기타노 다케시의 모든 영화.  나이 들수록 점점 성숙해지는 알모도바르의 영화들, 캔로치의 레이닝스톤 : 이 영화 보고 정말 많은 술을 마셨다.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그 무수한 영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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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orte 2013-07-15 0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함께 영화를 보고나서 술을 마실만한 연인이라면 헤어져도 사연과 추억은 많이도 남을듯요. 영화보며 치즈 뿌린 나쵸에 콜라먹고, 영화가 끝나면 택시타고 각자 집에가는 그런 애인에대한 기억은 추억도 없이 가물거리기만.....
오늘은 술...은 못마시니 좀 그렇고, 술안주 땡기는 영화한편 봐야할듯요. 아직 이곳은 일요일....

곰곰생각하는발 2013-07-15 00:50   좋아요 0 | URL
여기도 아직 일요일입니다. 아니구나 월요일이다..ㅎㅎ
말이 좋아 낭만이지 사실 영화 보고 술 마시는 코스... 굉장히 클래식하잖아요. 별로 안 좋아할 것 같아요.
전 이상하게 영화 보고 나오면 그렇게 술이 땡기더라고요. 할 얘기도 많고....
사실은 몇 달 전에 했던 얘기 다시 하고 그런 거죠....

어떤 영화 좋아하세요 ? 함 리스트 올려주십셔. ~~

iforte 2013-07-15 01:17   좋아요 0 | URL
히힛. 제 취향 듣고서 놀리지마세염. 저는 딱 다섯가지 쟝르의 영화만 봐요. 액션, 코미디, 에스에프, 환타지, 애니메이션.
이 장르들이 겹쳐지면 겹쳐질수록 그런 영화는 더 좋아하고요. 가령 매트릭스, 반지의 제왕, 호빗, 맨인블랙 시리즈요. 스릴러나, 공포영화, 재난 전쟁영화는 심장에 받는 압박이 넘 심해서 못보고요. 로맨스는 신경질나서 못보구요. 드라마는 졸려워서 못봐요. ㅡ.,ㅡ;;;;

제 개인적 성격 혹은 인생관을 표현하라고 해도 딱 이 다섯 단어를 말해요. 한마디로 이상과 현실의 완전결합이라고 할까요..? 그러니, 이 다섯 쟝르의 개성을 한 인간이 가지면 어떻게 되겠어요. 한마디로... 엽기...그 자체.... ㅍㅎㅎ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3-07-15 04:17   좋아요 0 | URL
아름다운 합체'네요. 전 다행히 장르를 가리지는 않습니다. 정말 닥치는대로 다 봅니다. 그래도 그 5가지 장르가 합치면 뭔가 답은 나오네요. 활동적이고, 쾌활하며, 솔직하고, 낯가림이 없는....
그런 모습이 떠오릅니다. 선천성 명랑함이라고 할까요 ? 포르테 님은 MBTI에서 EN - 쪽 성향을 보이는군요. 외향적 성격 말입니다. 전 INTP예요. 죽으나사나 인피티'더군요.

에스에프 하니 테리 길리엄의 < 브라질 > 이란 영화가 생각났네요. 참... 걸작이었는데 말이죠...

히히 2013-07-15 14: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싱싱한 해산물에 맑은 소주를 찾는 신랑과
다를 게 없습니다.
아마도...
영화라는 푸짐한 안주에 술은 필수지요.

대낮에 일하기 싫어 영화관엘 갔는데
혼자뿐이더라구요.
독방을 차지하고 열심히 관람하고 있는데
뒤가 간질간질하여 돌아보니
아저씨가 영화를 상영하면서 고개를 내밀고
영화감상을 하고 있었습니다.
완전 깜놀!
제목이 '두여자'였으니까요.
상관없는 남자와 둘이 보기엔 진했습니다.ㅋㅋ
예전엔 혼자서 영화관을 즐겼습니다.
순전히 제 시간을 갖고 싶어서.

곰곰생각하는발 2013-07-15 21:45   좋아요 0 | URL
싱싱하 해산물에 소주라.. 최고죠.
정말 제가 해산물에 소주 좋아라 합니다.
회는 별로고 왜 해삼, 멍게 조개 이런 거 있잖습니까.
그거 좋아합니다.

내가 아는 분은 혼자 공포 영화 보다가 너무 무서워서 극장 측에 불 켜달라 하고 봤다고 하더라고요..
진짜 켜주었다고 합니다. 왜 예고편 할 때 그때 조명 있잖습니까..

팜므느와르 2013-07-17 08: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왠지 첨 시작할 때부터 6번의 결론이 나오지 않을까 조마조마 읽었지요.
역시 곰발님의 센스란! 흐흐~~
근황으로 새로운 '당신'과 본 영화도 소개해주시어요.

곰곰생각하는발 2013-07-17 08:29   좋아요 0 | URL
전 대부분 5,60년대 영화만 보느라 요즘 영화들은 안 보는데..
이번에 마스터;라는 영화는 보러 갈 겁니다. 고거 보면 알려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