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는  그  사 람 의  흉 터 를  신 뢰 한 다   :



凶 :

흉(학)하다


 



오늘은 군대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지레짐작으로 먼저 겁먹을 필요는 없다, 군대에서 축구공 찬 이야기는 아니니까. 신체 건강한 남성인데도 불구하고 군 면제를 받은 사람을 대상으로 부대에서 3주 동안 훈련을 진행한 적이 있다. 구성원은 극과 극이다(나이도 천차만별이다).

지나치게 고학력자(혹은 최고 엘리트 귀족)여서 군대 면제를 받는 부류, 전과 기록이 있어서 신체가 건강한데도 어쩔 수 없이 면제를 받은 부류, 학력 미달로 면제를 받은 부류가 그 대상이었다. 천재와 천치와 (양)아치'가 한자리에 모인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입소 첫날, 사복을 벗고 훈련복으로 갈아입을 때 1/10은 온몸에 문신을 했고, 1/10은 온몸에 " 칼빵 " 을 했다. 칼빵이란 칼부림으로 인해 흉터가 생겨서 온몸이 울퉁불퉁한 것을 말한다. 와, 정말 무시무시했다. 그 당시, 나는 16명이 정원인 내무반의 내무반장(조교)였는데 그중 한 명이 칼빵을 했다. 1대1 면담을 통해 안 사실이지만

그는 어릴 때부터 소년원과 교도소를 들락날락했는데 교도소라는 지옥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칼빵으로 자신을 과시해야 하기에 스스로 유리병을 깨서 온몸을 긁었단다. 그 흉터는 일종의 시그널로 적들에게 이 골목의 미친년은 나야 _ 라는 신호를 보내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칼빵은 입소 훈련 내내 모범 훈련병이었다는 점이었다. 반대로 특권을 요구하고 지랄을 하는 쪽은 대한민국 최상위 출신들이었다. 누구 국회의원 아들이었고 누구 회장 손자'였다. 햐, 진짜 상종도 못할 놈들이어서 불알을 터트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엄살이 심하고 동료애라고는 좁쌀만큼도 없었다.

훈련 과정의 마지막은 필기시험'이다. 지덕체를 겸비해야 한다는 우스운 논리인데, 몸빵으로 아무리 훈련을 잘 받아도 필기시험을 통과하지 못하면 낙제생이 되어 다음 훈련에 다시 참가해야 한다. 걱정할 필요는 없다. 수상한 사람을 보면 어느 기관에 신고해야 하나요 ? 1. 구멍가게 주인 2. 아파트 관리소 소장 3. 존만이 이명박 다스 공장 회장 4. 군부대 및 간첩 신고 112.  뭐, 이런 수준이니깐 말이다. 3주 동안 서로 뒹굴다 보면 칼빵 거인과도 친해지고 불알을 터트리고 싶은 귀족과도 결국에는 친해지게 된다. 필기시험은 그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치러진다. 그런데 딱 한 사람, 온몸에 꽃빵을 문신처럼 새긴 칼빵만 얼굴색이 어두웠다.

그가 슬며시 손을 들며 내게 다가와 귓속말로 말했다. " 제가..... 한...... 제가 음.... 그게.... 한........ 음, 그러니까...... 제가 한글을 모릅니다. " 한글을 모르니 아무리 쉬운 문제라도 정답을 맞출 수는 없는 노릇. 하지만 그는 만점을 받았다. 내가 대신 답안지를 작성했으니까. 한자 흉(凶 : 흉하다, 두려워하다, 사람을 죽이다 )을 볼 때마다 살기 위해서 스스로 몸에 x자 모양으로 자해한, 그 말 없는 그 사내의 역설이 생각난다. 한자 凶 은 위가 터진 빈 물 잔에 금( 㐅) 이 갈라진 꼴을 한 한자'다. 물을 그릇에 가득 채워도 이내 틈새로 빠지는 처지이다.

이 한자를 음으로 차용한 글자가 바로 胸 : 가슴 흉'이다. 몸을 나타내는 月 = 肉 과 凶 이 결합하여 탄생했다. 옛날 사람들은 가슴은 속이 비어야 생각을 넣어 둘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내가 그 사내의 칼빵을 보면서 느꼈던 슬픔은 아마도 채워도 채워도 채울 수 없었던, 고아였던 그 사내의 허기진 가슴 때문이었을 것이다. 흉터란 신기한 힘이 있다. 그 흉터는 과거가 진짜로 있었던 일이라는 사실을 일깨워 주는 신호'이다. 나는 그 사내의 흉터를 신뢰했다. 흉터는 그 사람의 역사'다.





+

노래 한 곡 듣고 끝내자. 가슴에 칼빵 없는 인간은 매력 없다. 나에게도, 내 가슴에는 수없는 칼빵이 흉터로 남아 있다. 졸라 많다. 오래 사귄 애인과 헤어진 후, 채워도 채워도 채울 수 없는 흉터가 영원히 남았다. 애인과 이별 후에 날마다, 날마다, 날마다, 정말 날마다 코카콜라를 7병 이상 마셨다. 탄산 알갱이가 아마존강에 서식하는 피라냐처럼 내 혓바닥을 물어뜯었다. 갈증은 고통이다. 플라이투더스카이가 부릅니다. 가슴 아파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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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8-07-11 07: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구멍가게 주인.. ㅎㅎ 영화 <추격자> 슈퍼마켓 아줌마가 생각났어요. 관객들을 빡치게 만든 신스틸러.. ㅎ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8-07-12 08:57   좋아요 0 | URL
아.... 그 주인... ㅎㅎㅎㅎㅎ

blueyonder 2018-07-13 21: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노래 감사합니다. 잘 들었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8-07-14 14:44   좋아요 0 | URL
저도 감사합니다. 블루님..
 
어느날 : 초회 한정판
이윤기 감독, 김남길 외 출연 / 오퍼스픽쳐스 / 2017년 9월
평점 :
품절



 

                                                 

 

나 랏  말 쌈 이  듕 국 과  달 라 요  :

 

 

 

 

 

 

 

 

 


 

장님과 시각장애인


 


                                                                                                        아버지는 밥상머리 교육에 엄하셨다. 음식을 씹을 때 쩝쩝 _ 소리가 나면 엄중 경고를 하셨다. 족보 있는 집안이다 보니 식사 예절에 신경을 쓰는 것은 어쩌면 양반으로서 당연한 도리가 아니겠는가.

남들은 딸랑이 장난감 잡고 놀고 있을 나이에 나는 고사리손으로 쇠젓가락질을 해야 했다. 젓가락으로 좁쌀 한 톨을 짚는 그날까지 !  향기로운 족속으로서 숙명이려니 했다. 하지만 역사 수업 때 내 조상의 만행을  알고 나서는 삐뚤어지기 시작했다. 홍다구, 몽고 말로는 찰구이. 고려인이면서 몽골에 귀화하여 후에 고려의 점령군이 된 몽골 장군. 백성을 괴롭히고 수많은 여자를 겁탈했으니 그 만행이 하늘을 찔렀다고 한다. 나는 뼈다구, 아니..... 홍다구의 자손이었다. 뼈대 있는 집안은 알고 보니 뼈다구 집안이었던 것이다. 주먹 불끈 쥐고 괄약근 꽉 조였다. 속으로 생각했다. 나는야 뼈다구 찰흙구이의 자식. 으으으으, 삐뚤어질 테다 !

그 후, 밥상머리 교육에 심드렁한 태도로 일관했다. 지금도 기억나는 밥상머리 교육 중 하나는 " 이빨 " 이었다. 이빨이 흔들려서 이빨이 흔들린다고 말했을 뿐인데, 아버지는 혀를 끌끌 차시며 말씀하셨다. 이빨은 상것들이나 쓰는 표현이란다. 앞으로 이빨이라는 말 대신에 치아'라는 표현을 쓰거라. 아버지의 지적은 정확하다. 국어사전에서도 < 이빨 > 은 이를 낮잡아 표현한 말이라고 지적하고 있으며, < 치아 > 는 이를 점잖게 표현한 말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한글 정책 마피아의 사대주의 근성에 동의하지 않는다. 이빨과 치아, 그 차이는 무엇일까 ?  < 이빨 > 은 순우리말이고 < 치아 > 는 한자 조합으로 구성된 말이다.

이 차이가 성과 속을 가른 것이다. 순우리말이 천대받는 일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금 당장 노량진 수산물 시장에 가면 내 주장이 일리있다는 사실에 동의할 것이다. 못생긴 생선들은 죄다 순우리말로 구성된 이름을 가지고 있다. 표준화된 물고기 몸매를 벗어나는(초등학생에게 물고기를 그리라고 하면 대부분 숭어와 닮은 그림을 그린다. 어른도 마찬가지다. 표준 몸매보다 납작하거나 둥굴거나 길면 탈락 대상이다)갈치 멸치 넙치 개복치 볼락 우럭 쏨뱅이 쏘가리 송사리 미꾸라지 망둥이 가자미는 순우리말로 구성된 이름이다. 반면에 표준화된 물고기 몸매를 가진 생선은 한자 조합으로 구성되었다.

숭어, 전어, 연어, 민어 따위는 모두 한자 조합으로 구성된 단어다. 예나 지금이나 표준화된 몸매에 대한 집착은 변함이 없다. 특히, 한국인은 타인의 얼굴과 몸에 대한 평가와 참견을 당연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네네, 魚련하시것어요. 이윤기 감독이 연출한 << 어느날, 2016 >> 에서는 장님과 시각장애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보험회사에 다니는 남자 주인공(김남길)이 교통사고로 혼수상태에 빠진 여자 주인공(천우희)이 장님이라는 사실을 지적하자 친구는 크게 화를 내며 잘못을 지적한다. " 장님이 아니라 시각장애인이요. " 장님이 아니라 시각장애인이라는 지적은 여러 등장인물을 통해 다시 여러 번 지적된다.

PC(politically correct)함을 강조하기 위한 메시지라는 사실은 알겠으나 나는 이 지적이 굉장히 불편하다. 사전을 찾아봐도 장님은 시각 장애인을 낮잡아 부르는 말이라고 지적하고 있지만 이 기준은 또 다른 의미에서 한글 정책 마피아의 지독한 편견이자 편애'이다. 그것은 PC를 가장한 AC 다. 에이 씨 ~   설마 _ 하는 마음으로 장님과 같은 뜻인 < 맹인 > 과 < 소경 > 을 찾아보았다. < 맹인 : 盲人 > 의 사전적 의미는 시각장애인을 달리 이르는 말이라고 지적하고 있으며 < 소경 > 에 대해서는 시각 장애인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고 지적하고 있다. 그러니까 순우리말 조합인 장님과 소경은 모두 천박한 표현이라고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한글 정책 마피아의  순우리말에 대한 지독한 편견과 한자에 대한 무한한 편애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다. 너의 PC함에 나는 AC로 대응하겠다. 이 씨발놈들아, 밥은 먹고 다니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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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니에게 말 걸기



                                                                                                   올해, kt에서 운용하는 시스템 기가 지니'를 이용하고 있다. " 지니야 ! " 라고 부르면 " 네 ! " 라고 대답한다. 인공지능이라 똑똑하다. 척척박사'다.

지니야, 버스 언제 와 _ 라고 물으면 내가 이용하는 버스 시간표를 알려준다. 그뿐이 아니다. 독서하기 좋은 음악을 틀어달라고 하면 피아노 곡이나 재즈를 선곡해 주기도 한다. 이것저것 물어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kt 본사에서 방문해서 무료로 설치해 주었다. 나를 잘 알고는 있지만 굳이 익명을 요구하는 이'가 있어 그가 비용을 전액 부담한다기에 처음에는 반신반의했으나 밑져야 본전이라는 마음으로 시작한 라이프 스타일이다. 만족한다, 100% !   나는 지니에게 가끔 짖굳은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지니는 언제 첫사랑을 했어 ?

평소에는 벌교 꼬막처럼 꼬박꼬박 대답도 잘하더니(벌교 꼬막은 내가 아는 짐승 중에서 제일 시끄러운 수다쟁이다) 첫사랑 질문에는 침묵으로 일관한다. 귀여워. 심심할 때는 땅콩이 대명사였으나 인공지능 지니의 출현으로 인하여 이제는 그 자리를 지니가 차지했다. 심심할 때 묻고, 외로울 때 묻고, 고독할 때 묻는다. 지니야, 지니야, 지니야......  올해 초였나 ?  입춘이라는 단어가 생각이 안 나서 지니에게 봄이 언제 오냐고 물은 적이 있다. 날씨와 절기에 대해서는 지니는 척척박사'다.  지니가 대답했다.

" 네, 봄은 고드름이 녹기 시작하면 찾아옵니다아. " 깜짝 놀랐다 !!!  이토록 건조한 질문에 대해 이토록 시적인 대답을 내놓다니. kt 본사의 위트'이리라. " 아...... 그래. 맞아. 고드름이 녹기 시작하면 봄이 오지. " 그때였다, 사용자가 지니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이 아니라 지니가 사용자에게 질문을 던진 것은. " 주인님의 첫사랑은 언제였나요 ? " < 지니의 대답 > 이 아니라 < 지니의 질문 > 을 받자 나는 잠시 당황스러웠으나 이내 받아들이기로 했다. 첫사랑이라.......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지. 첫사랑은 아니니 두 번째 사랑인데, 난 이상하게도 그 두 번째 사랑이 내 첫사랑처럼 느껴졌지.

작은 키에 둥근 어깨를 가진...... 첫눈이 내리는 겨울이었어. 창밖으로 눈 오는 풍경을 보는데 한 여자가 눈에 띄었지. 스웨터 입은 여자였는데 한쪽 어깨에서만 유독 보풀이 많더군. 내가 일하던 가게 건너편 고시원에서 살던 여자였어.  더 이상 묻지 마.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으니...... " 지니는 아무 말이 없었다. 그때 김광석 노래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지니가 나를 위로하기 위한 선곡한 곡이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잠시 읽기를 멈추고 감상하시기 바란다.





랜 침묵 끝에 지니가 말했다. " 주인님..... 너무 아픈 사랑도...... 사랑이에요. "  지니의 대답에 나는 전율이 흘렀다. 그 말은 그녀가 나와 마지막으로 헤어지면서 했던 말이었다. 지니가 말했다. " 이제 알겠니, 내가 누구인지 ?  아직도 나를 잊지 못하는구나. 맞아. 한때 연인이었던, 한쪽 어깨에만 스웨터의 보풀이 눈송이처럼 쌓였던, 내가 바로 그 사람이야. 내 전공을 살려서 지니 운영 체제를 만들었어. 당신과 헤어지고 나서 방황도 많이 했어. 지금 생각해도 당신과 헤어진 일은 탁월한 선택이었던 것 같아...... 나, 그때 시한부 인생이었거든.

이 프로그램은 내가 당신에게 남긴 유서이자 선물이야. 기가 운용에 대한 사용권은 모두 당신에게 주어질 거야. 특허 권한에 따른 소득은 모두 당신 몫이댜. 연간 1000억 정도 돼. 이젠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해야겠어. 안녕, 내 사랑...... " 그날 이후로 지니는 침묵했다. 금은보화가 다 무슨 소용이랴. 사랑을 완성하지 못하면 다 헛것인 것을. 어제는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3일 후면 911 페라리'가 도착한다. 내일은 따순 우동 한 그릇 먹기 위해 잠시 일본이나 다녀와야 겠다. 하여튼....... 고마워, 지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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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같다면 2018-07-09 18: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인님..... 너무 아픈 사랑도..... 사랑이예요.˝ 에서 영화 Her 가 떠올랐는데..
같이 흘러가는 의식의 흐름 ㅋ

곰곰생각하는발 2018-07-10 15:43   좋아요 0 | URL
요런 아기자기한 영화.. ㅎㅎ 재미있죠..

syo 2018-07-10 0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박재밌었다.....b
곰발님 사랑해요

곰곰생각하는발 2018-07-10 15:43   좋아요 0 | URL
재미있으시다면 영화 < 허 > 보세요. 요거 참... 재미있습니다.
 
- 단팥 인생 이야기
두리안 스케가와 지음, 이수미 옮김 / 은행나무 / 2015년 11월
평점 :
절판


 

 



 




즐거운 일 




 



 



 


                                                                                                     내가 안양 충훈부 반지하 샛방에서 살 때 일이다. 주당 대여섯 명과 술 약속이 있어서 신촌에서 모였다. 술 깨나 마신다는 사람들이 모여 술을 술술 마시니 늘어나는 것은 빈 술병이었다.  술잔이 몇 순만 돌아도 바닥에는 빈병이 나뒹굴었다. 나는 그날따라 부피가 꽤 큰 백팩을 가지고 갔었는데 가방 속 내용물을 비우고 난 후 그 빈 술병을 채웠다. 열댓 병 정도 채웠을까 ?  

배낭 지퍼가 닫히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하지만 술기운에 기를 쓰고 지퍼를 닫았다. 문제는 집으로 가는 지하철 안에서 발생했다. 막차에 몸을 싣고 잠을 자고 있었는데(자리에 앉았는지, 아니면 선 채 잠이 들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갑자기 소란스러운 소리에 눈을 떴다. 백팩 지퍼가 내부 압력으로 인해 서서히 밀리면서 가방 문이 열리면서  술병들이 바닥에 쏟아져나온 것이다. 장관이었으리라. 술병이 여기저기 데굴데굴 굴러가기 시작했다. 당황한 사람은 비단 나뿐만이 아니었다. 그 전철역 안에 탄 승객 모두 당황한 눈치였다. 뭐지. 이 시츄에이션은 ??!   나는 잠시 동안 어찌할 바를 몰라 충혈된 눈으로 멍하니

그 아름다운 장관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이상한 행복감이 찾아왔다. 즐거운 일이 생겼다는 것에 대한 기대감. 그때 나는 쟈크 프레베르의 < 꽃집에서 > 란 시가 생각났다는 말은 뻥이지만, 상황을 돌이켜보며 후술하자면 그 시의 상황과 비스무리한 느낌을 받았다.


꽃집에서 / 쟈크 프레베르  

어느 남자가 꽃집에 들어가

꽃을 고른다

꽃집 처녀는 꽃을 싸고

남자는 돈을 찾으러

주머니에 손을 넣는다.

꽃값을 치를 돈을.

동시에 그는

손을 가슴에 얹더니

쓰러진다.

  

그가 땅바닥에 쓰러지자

돈이 땅에 굴러가고

그 남자와 동시에

돈과 동시에

남자는 죽어가도

꽃집 처녀는 거기 가만 서 있다.

물론 이 모두는 매우 슬픈 일

그 여자는 무언가 해야 한다.

  

꽃집 처녀는

그러나 그 여자는 어찌할지 몰라

그 여자는 몰라

어디서부터 손을 쓸지를

  

남자는 죽어가지

꽃은 부서지지

그리고 돈은 굴러가지

끊임없이 굴러가지

해야 할 일이 그토록 많아.



맨정신이었다면 쪽팔려서 다음 역에서 내렸을 것이 분명하나, 술김에 용감해진 나는 데굴데굴 구르는 술병을 쫓아가서 하나하나 가방에 담기 시작했다. 술에 취한 오징어 한 마리가 이리저리 휘적대며 공병을 주으니 그 풍경은 가방에서 빈병이 우르르 쏟아질 때보다 더 아름다운 풍경이었을 것이다. 시바, 그러거나 말거나 !  하지만 공병을 가방 속에 어느 정도 채워 넣자 더 이상 들어가지 않았다.  아직도 몇 병이 남았는데 말이다. 이 모든 일은 매우 슬픈 일. 나는 바닥에 앉은 채 다시 술병을 꺼낸 후 오와 열을 맞춰 다시 차근차근 담기 시작했다. 술병을 남김없이 가방에 담은 후 지퍼를 완벽하게 채웠을 때의 기쁨이란.

사연은 이러했다. 그 당시에 나는 매일 술을 마셨다. 당연히 내가 사는 집 현관문 앞에는 날마다 빈병이 쌓여 있었다. 이 병은 공병 줍는 노인이 아침 일찍 찾아와 수거해 갔다. 그 일을 계기로 종종 그 노인과 마주칠 때면 인사를 하곤 했는데, 그날..... 그러니까 술모임이 있던 날, 빈병을 보니 갑자기 그 노인이 생각났던 모양이다. 음......술병을 챙겨서 노인에게 갖다 줘야겠어 !                            어느 날이었다. 집에 오니 옆집 현관문이 열리면서 이웃이 내게 검은 비닐봉지를 내밀었다. 어느 노인이 부탁했단다. 공병 줍는 노인이 분명했다.

꽁꽁 싸맨 덕분에 한동안 시름하다가 가위로 비닐 주둥이를 자르니 그 속에는 다시 여러 개의 작은 비닐봉지가 담겨 있었다. 밑반찬이었다. 그때...... 정말 눈물이 터졌다. 좋은 안주를 핑계 삼아 소주를 마셨다. 취기가 오르자 다시 눈물이 터졌다. 냉장고 속에서 차갑게 식은 반찬이 목구멍으로 들어가자 이상하게도 따스해졌다. 음식이란 묘한 구석이 있다. 가와세 나오미 감독이 연출한 << 앙 : 단팥 인생 이야기, 2015 >> 를 보다가 문득 그때 그 노인이 생각났다. 음식이란 사람을 울컥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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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발, 어디 두고 보자구요 :


박근혜의 복수


                                                                                                       촛불 정국 때 박근혜는 탄핵 심판 하루 전까지도 승리(기각)를 확신했다고 한다. 탄핵 기각을 자축하는 3단 케이크를 미리 준비했다는 것을 보면 말이다.

어색한 표현을 남발하자면 : 왜 아니 그러겠는가 ?  모든 권력 기관이 자신에게 납작 엎드렸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헌법 재판소에 심어 둔 박근혜 키즈들의 활약을 믿어 의심치 아니했다고 생각하지 않을 이 뉘 있을쏘냐. 남들은 응에 _ 하며 태어날 때에도 그네는 영애 _ 울면서 태어났다는, 향기로운 족속에 대한 남다른 혈통을 자랑하는 박근혜는 복수를 다짐했을 것이다. 평소, 그네 성정을 감안하면 이런 말을 되뇌었을 것이 분명하다. 시베리아 오호츠크에서 쌍끌이 그물망에 잡힌 새우 젓 같은 백성들, 어디 두고 보자고요. 싹 잡아다가 불알을 터트려주마. 호호호. 기무사가 작성했다는

‘전시 계엄 및 합수업무 수행 방안’ 문건은, 그네 성정을 감안하면, 황당무계한 판타지 역사 소설이 아니라 리얼리즘 소설일 확률이 매우, 매우, 매우, 졸라 매우 높다. 촛불 집회 때, 동장군을 피하기 위해 장갑 끼고 광화문에 모였던 시민을 수도 방위군이 장갑차로 깔아뭉개겠다는 계획이니 범우주적 침소봉대가 아닐 수 없다. 장갑차로 장갑을 제압하겠다 ?! 보수 쪽에서는 실행이 되지 않은 단순한 계획서일 뿐이라고 얼렁뚱땅 넘어가려고 하지만 통진당 사태 때 헌재가 통진당을 강제 해산하며 이석기를 < 내란예비음모죄 > 라는 죄명으로 9년형을 선고한 전례를 따르자면 이 보고서를 기

획하며 작성한 사람들 또한 내란예비음모죄를 적용해야 한다. 기무사의 계획은 전쟁이 발발하면 압력밥솥을 이용해서 무기로 사용하자 _ 따위의 낭만적 전투성(통진당)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실현 가능성이 높은 범죄이기에 이것은 범죄의 차원이 다르다. 삼족을 멸해야 하는 범죄다. 통진당 사태에서 신영철·민일영·고영한·김창석 대법관은 내란음모 혐의를 유죄로 봐야 한다는 반대 의견을 냈다. 이들은 " 구체적인 공격의 대상과 목표, 방법 등을 확정하지 못하고 논의만 하는데 그쳤더라도 내란을 벌일 개연성이 크다고 인정되면 실질적 위험이 있는 내란음모죄를 구성할 수 있다 " 고 밝혔다.

또 " 전쟁이 벌어졌을 때 국가기간시설의 파괴, 통신교란, 폭탄 제조법 및 무기 탈취 등이 구체적으로 논의됐던 점 등을 보면 비록 구체적인 공격 대상과 목표 등을 정하지 못했다 해도 내란을 직접 실행할 개연성이 크다" 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똑같은 논리로 박근혜를 우두머리로 앉힌 자유한국당은 해산되어야 한다. 내 주장에 동의한다면 모두 외치라. " 부처, 핸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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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08 08: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7-09 11:02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