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팥 인생 이야기
두리안 스케가와 지음, 이수미 옮김 / 은행나무 / 2015년 11월
평점 :
절판


 

 



 




즐거운 일 




 



 



 


                                                                                                     내가 안양 충훈부 반지하 샛방에서 살 때 일이다. 주당 대여섯 명과 술 약속이 있어서 신촌에서 모였다. 술 깨나 마신다는 사람들이 모여 술을 술술 마시니 늘어나는 것은 빈 술병이었다.  술잔이 몇 순만 돌아도 바닥에는 빈병이 나뒹굴었다. 나는 그날따라 부피가 꽤 큰 백팩을 가지고 갔었는데 가방 속 내용물을 비우고 난 후 그 빈 술병을 채웠다. 열댓 병 정도 채웠을까 ?  

배낭 지퍼가 닫히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하지만 술기운에 기를 쓰고 지퍼를 닫았다. 문제는 집으로 가는 지하철 안에서 발생했다. 막차에 몸을 싣고 잠을 자고 있었는데(자리에 앉았는지, 아니면 선 채 잠이 들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갑자기 소란스러운 소리에 눈을 떴다. 백팩 지퍼가 내부 압력으로 인해 서서히 밀리면서 가방 문이 열리면서  술병들이 바닥에 쏟아져나온 것이다. 장관이었으리라. 술병이 여기저기 데굴데굴 굴러가기 시작했다. 당황한 사람은 비단 나뿐만이 아니었다. 그 전철역 안에 탄 승객 모두 당황한 눈치였다. 뭐지. 이 시츄에이션은 ??!   나는 잠시 동안 어찌할 바를 몰라 충혈된 눈으로 멍하니

그 아름다운 장관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이상한 행복감이 찾아왔다. 즐거운 일이 생겼다는 것에 대한 기대감. 그때 나는 쟈크 프레베르의 < 꽃집에서 > 란 시가 생각났다는 말은 뻥이지만, 상황을 돌이켜보며 후술하자면 그 시의 상황과 비스무리한 느낌을 받았다.


꽃집에서 / 쟈크 프레베르  

어느 남자가 꽃집에 들어가

꽃을 고른다

꽃집 처녀는 꽃을 싸고

남자는 돈을 찾으러

주머니에 손을 넣는다.

꽃값을 치를 돈을.

동시에 그는

손을 가슴에 얹더니

쓰러진다.

  

그가 땅바닥에 쓰러지자

돈이 땅에 굴러가고

그 남자와 동시에

돈과 동시에

남자는 죽어가도

꽃집 처녀는 거기 가만 서 있다.

물론 이 모두는 매우 슬픈 일

그 여자는 무언가 해야 한다.

  

꽃집 처녀는

그러나 그 여자는 어찌할지 몰라

그 여자는 몰라

어디서부터 손을 쓸지를

  

남자는 죽어가지

꽃은 부서지지

그리고 돈은 굴러가지

끊임없이 굴러가지

해야 할 일이 그토록 많아.



맨정신이었다면 쪽팔려서 다음 역에서 내렸을 것이 분명하나, 술김에 용감해진 나는 데굴데굴 구르는 술병을 쫓아가서 하나하나 가방에 담기 시작했다. 술에 취한 오징어 한 마리가 이리저리 휘적대며 공병을 주으니 그 풍경은 가방에서 빈병이 우르르 쏟아질 때보다 더 아름다운 풍경이었을 것이다. 시바, 그러거나 말거나 !  하지만 공병을 가방 속에 어느 정도 채워 넣자 더 이상 들어가지 않았다.  아직도 몇 병이 남았는데 말이다. 이 모든 일은 매우 슬픈 일. 나는 바닥에 앉은 채 다시 술병을 꺼낸 후 오와 열을 맞춰 다시 차근차근 담기 시작했다. 술병을 남김없이 가방에 담은 후 지퍼를 완벽하게 채웠을 때의 기쁨이란.

사연은 이러했다. 그 당시에 나는 매일 술을 마셨다. 당연히 내가 사는 집 현관문 앞에는 날마다 빈병이 쌓여 있었다. 이 병은 공병 줍는 노인이 아침 일찍 찾아와 수거해 갔다. 그 일을 계기로 종종 그 노인과 마주칠 때면 인사를 하곤 했는데, 그날..... 그러니까 술모임이 있던 날, 빈병을 보니 갑자기 그 노인이 생각났던 모양이다. 음......술병을 챙겨서 노인에게 갖다 줘야겠어 !                            어느 날이었다. 집에 오니 옆집 현관문이 열리면서 이웃이 내게 검은 비닐봉지를 내밀었다. 어느 노인이 부탁했단다. 공병 줍는 노인이 분명했다.

꽁꽁 싸맨 덕분에 한동안 시름하다가 가위로 비닐 주둥이를 자르니 그 속에는 다시 여러 개의 작은 비닐봉지가 담겨 있었다. 밑반찬이었다. 그때...... 정말 눈물이 터졌다. 좋은 안주를 핑계 삼아 소주를 마셨다. 취기가 오르자 다시 눈물이 터졌다. 냉장고 속에서 차갑게 식은 반찬이 목구멍으로 들어가자 이상하게도 따스해졌다. 음식이란 묘한 구석이 있다. 가와세 나오미 감독이 연출한 << 앙 : 단팥 인생 이야기, 2015 >> 를 보다가 문득 그때 그 노인이 생각났다. 음식이란 사람을 울컥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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