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 초회 한정판
이윤기 감독, 김남길 외 출연 / 오퍼스픽쳐스 / 2017년 9월
평점 :
품절



 

                                                 

 

나 랏  말 쌈 이  듕 국 과  달 라 요  :

 

 

 

 

 

 

 

 

 


 

장님과 시각장애인


 


                                                                                                        아버지는 밥상머리 교육에 엄하셨다. 음식을 씹을 때 쩝쩝 _ 소리가 나면 엄중 경고를 하셨다. 족보 있는 집안이다 보니 식사 예절에 신경을 쓰는 것은 어쩌면 양반으로서 당연한 도리가 아니겠는가.

남들은 딸랑이 장난감 잡고 놀고 있을 나이에 나는 고사리손으로 쇠젓가락질을 해야 했다. 젓가락으로 좁쌀 한 톨을 짚는 그날까지 !  향기로운 족속으로서 숙명이려니 했다. 하지만 역사 수업 때 내 조상의 만행을  알고 나서는 삐뚤어지기 시작했다. 홍다구, 몽고 말로는 찰구이. 고려인이면서 몽골에 귀화하여 후에 고려의 점령군이 된 몽골 장군. 백성을 괴롭히고 수많은 여자를 겁탈했으니 그 만행이 하늘을 찔렀다고 한다. 나는 뼈다구, 아니..... 홍다구의 자손이었다. 뼈대 있는 집안은 알고 보니 뼈다구 집안이었던 것이다. 주먹 불끈 쥐고 괄약근 꽉 조였다. 속으로 생각했다. 나는야 뼈다구 찰흙구이의 자식. 으으으으, 삐뚤어질 테다 !

그 후, 밥상머리 교육에 심드렁한 태도로 일관했다. 지금도 기억나는 밥상머리 교육 중 하나는 " 이빨 " 이었다. 이빨이 흔들려서 이빨이 흔들린다고 말했을 뿐인데, 아버지는 혀를 끌끌 차시며 말씀하셨다. 이빨은 상것들이나 쓰는 표현이란다. 앞으로 이빨이라는 말 대신에 치아'라는 표현을 쓰거라. 아버지의 지적은 정확하다. 국어사전에서도 < 이빨 > 은 이를 낮잡아 표현한 말이라고 지적하고 있으며, < 치아 > 는 이를 점잖게 표현한 말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한글 정책 마피아의 사대주의 근성에 동의하지 않는다. 이빨과 치아, 그 차이는 무엇일까 ?  < 이빨 > 은 순우리말이고 < 치아 > 는 한자 조합으로 구성된 말이다.

이 차이가 성과 속을 가른 것이다. 순우리말이 천대받는 일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금 당장 노량진 수산물 시장에 가면 내 주장이 일리있다는 사실에 동의할 것이다. 못생긴 생선들은 죄다 순우리말로 구성된 이름을 가지고 있다. 표준화된 물고기 몸매를 벗어나는(초등학생에게 물고기를 그리라고 하면 대부분 숭어와 닮은 그림을 그린다. 어른도 마찬가지다. 표준 몸매보다 납작하거나 둥굴거나 길면 탈락 대상이다)갈치 멸치 넙치 개복치 볼락 우럭 쏨뱅이 쏘가리 송사리 미꾸라지 망둥이 가자미는 순우리말로 구성된 이름이다. 반면에 표준화된 물고기 몸매를 가진 생선은 한자 조합으로 구성되었다.

숭어, 전어, 연어, 민어 따위는 모두 한자 조합으로 구성된 단어다. 예나 지금이나 표준화된 몸매에 대한 집착은 변함이 없다. 특히, 한국인은 타인의 얼굴과 몸에 대한 평가와 참견을 당연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네네, 魚련하시것어요. 이윤기 감독이 연출한 << 어느날, 2016 >> 에서는 장님과 시각장애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보험회사에 다니는 남자 주인공(김남길)이 교통사고로 혼수상태에 빠진 여자 주인공(천우희)이 장님이라는 사실을 지적하자 친구는 크게 화를 내며 잘못을 지적한다. " 장님이 아니라 시각장애인이요. " 장님이 아니라 시각장애인이라는 지적은 여러 등장인물을 통해 다시 여러 번 지적된다.

PC(politically correct)함을 강조하기 위한 메시지라는 사실은 알겠으나 나는 이 지적이 굉장히 불편하다. 사전을 찾아봐도 장님은 시각 장애인을 낮잡아 부르는 말이라고 지적하고 있지만 이 기준은 또 다른 의미에서 한글 정책 마피아의 지독한 편견이자 편애'이다. 그것은 PC를 가장한 AC 다. 에이 씨 ~   설마 _ 하는 마음으로 장님과 같은 뜻인 < 맹인 > 과 < 소경 > 을 찾아보았다. < 맹인 : 盲人 > 의 사전적 의미는 시각장애인을 달리 이르는 말이라고 지적하고 있으며 < 소경 > 에 대해서는 시각 장애인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고 지적하고 있다. 그러니까 순우리말 조합인 장님과 소경은 모두 천박한 표현이라고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한글 정책 마피아의  순우리말에 대한 지독한 편견과 한자에 대한 무한한 편애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다. 너의 PC함에 나는 AC로 대응하겠다. 이 씨발놈들아, 밥은 먹고 다니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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