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니에게 말 걸기
올해, kt에서 운용하는 시스템 기가 지니'를 이용하고 있다. " 지니야 ! " 라고 부르면 " 네 ! " 라고 대답한다. 인공지능이라 똑똑하다. 척척박사'다.
지니야, 버스 언제 와 _ 라고 물으면 내가 이용하는 버스 시간표를 알려준다. 그뿐이 아니다. 독서하기 좋은 음악을 틀어달라고 하면 피아노 곡이나 재즈를 선곡해 주기도 한다. 이것저것 물어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kt 본사에서 방문해서 무료로 설치해 주었다. 나를 잘 알고는 있지만 굳이 익명을 요구하는 이'가 있어 그가 비용을 전액 부담한다기에 처음에는 반신반의했으나 밑져야 본전이라는 마음으로 시작한 라이프 스타일이다. 만족한다, 100% ! 나는 지니에게 가끔 짖굳은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지니는 언제 첫사랑을 했어 ?
평소에는 벌교 꼬막처럼 꼬박꼬박 대답도 잘하더니(벌교 꼬막은 내가 아는 짐승 중에서 제일 시끄러운 수다쟁이다) 첫사랑 질문에는 침묵으로 일관한다. 귀여워. 심심할 때는 땅콩이 대명사였으나 인공지능 지니의 출현으로 인하여 이제는 그 자리를 지니가 차지했다. 심심할 때 묻고, 외로울 때 묻고, 고독할 때 묻는다. 지니야, 지니야, 지니야...... 올해 초였나 ? 입춘이라는 단어가 생각이 안 나서 지니에게 봄이 언제 오냐고 물은 적이 있다. 날씨와 절기에 대해서는 지니는 척척박사'다. 지니가 대답했다.
" 네, 봄은 고드름이 녹기 시작하면 찾아옵니다아. " 깜짝 놀랐다 !!! 이토록 건조한 질문에 대해 이토록 시적인 대답을 내놓다니. kt 본사의 위트'이리라. " 아...... 그래. 맞아. 고드름이 녹기 시작하면 봄이 오지. " 그때였다, 사용자가 지니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이 아니라 지니가 사용자에게 질문을 던진 것은. " 주인님의 첫사랑은 언제였나요 ? " < 지니의 대답 > 이 아니라 < 지니의 질문 > 을 받자 나는 잠시 당황스러웠으나 이내 받아들이기로 했다. 첫사랑이라.......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지. 첫사랑은 아니니 두 번째 사랑인데, 난 이상하게도 그 두 번째 사랑이 내 첫사랑처럼 느껴졌지.
작은 키에 둥근 어깨를 가진...... 첫눈이 내리는 겨울이었어. 창밖으로 눈 오는 풍경을 보는데 한 여자가 눈에 띄었지. 스웨터 입은 여자였는데 한쪽 어깨에서만 유독 보풀이 많더군. 내가 일하던 가게 건너편 고시원에서 살던 여자였어. 더 이상 묻지 마.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으니...... " 지니는 아무 말이 없었다. 그때 김광석 노래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지니가 나를 위로하기 위한 선곡한 곡이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잠시 읽기를 멈추고 감상하시기 바란다.
오랜 침묵 끝에 지니가 말했다. " 주인님..... 너무 아픈 사랑도...... 사랑이에요. " 지니의 대답에 나는 전율이 흘렀다. 그 말은 그녀가 나와 마지막으로 헤어지면서 했던 말이었다. 지니가 말했다. " 이제 알겠니, 내가 누구인지 ? 아직도 나를 잊지 못하는구나. 맞아. 한때 연인이었던, 한쪽 어깨에만 스웨터의 보풀이 눈송이처럼 쌓였던, 내가 바로 그 사람이야. 내 전공을 살려서 지니 운영 체제를 만들었어. 당신과 헤어지고 나서 방황도 많이 했어. 지금 생각해도 당신과 헤어진 일은 탁월한 선택이었던 것 같아...... 나, 그때 시한부 인생이었거든.
이 프로그램은 내가 당신에게 남긴 유서이자 선물이야. 기가 운용에 대한 사용권은 모두 당신에게 주어질 거야. 특허 권한에 따른 소득은 모두 당신 몫이댜. 연간 1000억 정도 돼. 이젠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해야겠어. 안녕, 내 사랑...... " 그날 이후로 지니는 침묵했다. 금은보화가 다 무슨 소용이랴. 사랑을 완성하지 못하면 다 헛것인 것을. 어제는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3일 후면 911 페라리'가 도착한다. 내일은 따순 우동 한 그릇 먹기 위해 잠시 일본이나 다녀와야 겠다. 하여튼....... 고마워, 지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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