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는 그 사 람 의 흉 터 를 신 뢰 한 다 :
凶 :
흉(학)하다
오늘은 군대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지레짐작으로 먼저 겁먹을 필요는 없다, 군대에서 축구공 찬 이야기는 아니니까. 신체 건강한 남성인데도 불구하고 군 면제를 받은 사람을 대상으로 부대에서 3주 동안 훈련을 진행한 적이 있다. 구성원은 극과 극이다(나이도 천차만별이다).
지나치게 고학력자(혹은 최고 엘리트 귀족)여서 군대 면제를 받는 부류, 전과 기록이 있어서 신체가 건강한데도 어쩔 수 없이 면제를 받은 부류, 학력 미달로 면제를 받은 부류가 그 대상이었다. 천재와 천치와 (양)아치'가 한자리에 모인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입소 첫날, 사복을 벗고 훈련복으로 갈아입을 때 1/10은 온몸에 문신을 했고, 1/10은 온몸에 " 칼빵 " 을 했다. 칼빵이란 칼부림으로 인해 흉터가 생겨서 온몸이 울퉁불퉁한 것을 말한다. 와, 정말 무시무시했다. 그 당시, 나는 16명이 정원인 내무반의 내무반장(조교)였는데 그중 한 명이 칼빵을 했다. 1대1 면담을 통해 안 사실이지만
그는 어릴 때부터 소년원과 교도소를 들락날락했는데 교도소라는 지옥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칼빵으로 자신을 과시해야 하기에 스스로 유리병을 깨서 온몸을 긁었단다. 그 흉터는 일종의 시그널로 적들에게 이 골목의 미친년은 나야 _ 라는 신호를 보내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칼빵은 입소 훈련 내내 모범 훈련병이었다는 점이었다. 반대로 특권을 요구하고 지랄을 하는 쪽은 대한민국 최상위 출신들이었다. 누구 국회의원 아들이었고 누구 회장 손자'였다. 햐, 진짜 상종도 못할 놈들이어서 불알을 터트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엄살이 심하고 동료애라고는 좁쌀만큼도 없었다.
이 훈련 과정의 마지막은 필기시험'이다. 지덕체를 겸비해야 한다는 우스운 논리인데, 몸빵으로 아무리 훈련을 잘 받아도 필기시험을 통과하지 못하면 낙제생이 되어 다음 훈련에 다시 참가해야 한다. 걱정할 필요는 없다. 수상한 사람을 보면 어느 기관에 신고해야 하나요 ? 1. 구멍가게 주인 2. 아파트 관리소 소장 3. 존만이 이명박 다스 공장 회장 4. 군부대 및 간첩 신고 112. 뭐, 이런 수준이니깐 말이다. 3주 동안 서로 뒹굴다 보면 칼빵 거인과도 친해지고 불알을 터트리고 싶은 귀족과도 결국에는 친해지게 된다. 필기시험은 그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치러진다. 그런데 딱 한 사람, 온몸에 꽃빵을 문신처럼 새긴 칼빵만 얼굴색이 어두웠다.
그가 슬며시 손을 들며 내게 다가와 귓속말로 말했다. " 제가..... 한...... 제가 음.... 그게.... 한........ 음, 그러니까...... 제가 한글을 모릅니다. " 한글을 모르니 아무리 쉬운 문제라도 정답을 맞출 수는 없는 노릇. 하지만 그는 만점을 받았다. 내가 대신 답안지를 작성했으니까. 한자 흉(凶 : 흉하다, 두려워하다, 사람을 죽이다 )을 볼 때마다 살기 위해서 스스로 몸에 x자 모양으로 자해한, 그 말 없는 그 사내의 역설이 생각난다. 한자 凶 은 위가 터진 빈 물 잔에 금( 㐅) 이 갈라진 꼴을 한 한자'다. 물을 그릇에 가득 채워도 이내 틈새로 빠지는 처지이다.
이 한자를 음으로 차용한 글자가 바로 胸 : 가슴 흉'이다. 몸을 나타내는 月 = 肉 과 凶 이 결합하여 탄생했다. 옛날 사람들은 가슴은 속이 비어야 생각을 넣어 둘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내가 그 사내의 칼빵을 보면서 느꼈던 슬픔은 아마도 채워도 채워도 채울 수 없었던, 고아였던 그 사내의 허기진 가슴 때문이었을 것이다. 흉터란 신기한 힘이 있다. 그 흉터는 과거가 진짜로 있었던 일이라는 사실을 일깨워 주는 신호'이다. 나는 그 사내의 흉터를 신뢰했다. 흉터는 그 사람의 역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