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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레이] 컨저링 - 아웃케이스 없음
제임스 완 감독, 릴리 테일러 외 출연 / 워너브라더스 / 2013년 12월
평점 :
품절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 !
멜로(장르)는 어긋남을 전제로 한다. 이 장르는 " 버스 떠난 후에 손 흔들 때 " 완성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멜로 영화의 랜드마크는 이별과 만남을 상징하는 길, 기차역, 항구, 터미널, 공항 따위'이다. 멜로 속 주인공-들'은 한발 앞서 떠나거나 간발의 차이로 만나지 못한다. 기차는 7시에 떠나고 당신은 7시 0.00000001초 후에 그 역에 도착한다.
오고가다 다 만나면 그것은 멜로가 아니라 텔레토비'다. 꼬꼬마 친구들에게는 우연이고 나발이고 없다. 텔레토비 동산이라는 동네가 엎드리면 코 닿는 곳이다 보니 집 밖으로 한 발짝만 떼어 놓아도 꼬꼬마 친구들은 서로 만날 수밖에 없는 동네'다. 만날 약속 따윈 지나가는 민들레에게나 줘 ! 이 만남은 우연도 아니요, 필연도 아니요...... 에라이, 이놈의 집구석(텔레토비 동산)이 좁아서 생기는 일'이다. 이런 집구석에서는 훌륭한 러브 스토리를 뽑을 수 없다. 그래서 보라돌이, 뚜비, 나나, 뽀는 대사가 없다. 유일하게 내뱉는 대사가 " 아이, 좋아 ! " 다. 아이구야, 그냥..... 좋댄다 !
그렇기 때문에 텔레토비는 얼라들이나 보는 프로그램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것이다. 텔레토비가 꼬꼬마들이나 보는 방송이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서는 세상 밖으로 시야를 확장시켜야 한다. 멜로의 격정적 서정은 거리에 비례하는 것이다. 사랑하기에 떠나야 한다. 그것이 멜로의 공식이다. 그래야 두 남녀 간에 < 거리감 > 가 생기니까. (심리적) 거리감 때문에 헤어지고, (지리적) 거리감 때문에 그리워하다가, (운명적) 거리감 때문에 다시 만난다. 이 거리감이 멜로의 이야깃거리이다. 국경을 초월한 사랑이야말로 멜로의 정석이다.
노라 애프런 감독이 연출한 <<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 에서 톰 행크스와 맥 라이언이 머무는 거주지가 각각 시애틀과 뉴욕이라는 설정(시애틀과 뉴욕은 극과 극에 위치한다. 거리가 3875km) 또한 멜로와 거리가 서로 밀접한 관계에 있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봉천동 남자와 옆동네 신림동 여자의 운명적 격정 멜로는 좀 우습지 않을까 ? 한국 영화가 클래식 멜로'보다는 로맨틱 멜로와 코미디 장르로 발전하는 까닭은 순전히 땅덩어리가 좁다는 데 있다. 집구석이 좁다 보니 이들의 사랑은 뭔가..... 그러니까 팔팔 끓는 용광로 같은 사랑이라기보다는 칠칠 끓는 냄비 같은 사랑이라고나 할까 ?
<< 닥터 지바고 >> 나 << 카사블랑카 >> 처럼 웅장한 맛이 없는 것이다. 이처럼 만남은 (집)구석보다는 광장이라는 단어와 어울리기에 좋은 짝패다. 그래서 < 만남의 (집)구석 > 이라는 말은 없어도 < 만남의 광장 > 이라는 말은 흔한 까닭이다. 좁은 집구석 때문에 손해를 보는 쪽은 비단 멜로만은 아니다. 공포영화도 크기에 비례한다. < 하우스호러-물 > 하면 쉽게 연상되는 대저택, 넓은 마당, 다락방, 지하실을 갖춘 주거 공간을 한국에서는 쉽게 만날 수가 없다. 기껏해야 2,30평 아파트에서 살아가는 한국식 주거 환경 때문에 영화감독은 멋진 공포물을 만들 수 없는 것이다(한국 영화가 유독 공포 영화 장르에 취약한 이유이다).
단칸방에서 벌어지는 초울트라-고딕-블러드-호러물은 봉천동 남자와 신림동 여자의 국경을 초월한 격정 러브 멜로물만큼이나 우스운 꼴이다. 멜로물과 공포물은 모두 집구석에서 벗어나야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반대로 두 장르가 획득하려는 공간 감각은 서로 다르다. 멜로물은 사랑하는 사람이 멀리 있다는 사실에 슬퍼하는 영화이고 공포물은 두려운 사람(혹은 존재)이 너무 가까이 내 곁에 있다는 사실에 공포를 느끼는 영화이다. 전자는 부재가 핵심이고 후자는 실재가 핵심이다. << 컨저링 >> 시리즈와 같은 하우스 호러(귀신 들린 집) 장르의 특징은 명징하다.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 ! 귀신의 집(공간)이 거주자의 이식을 지배하는 것이다. 윤석열이 청와대에 입성하는 것을 끔찍하게 생각하는 이유도 그 집(청와대)에 귀신이 산다는 악몽 때문이다. 윤석열은 문재인을 두고 " 너무 겁이 없다 " 고 비난했지만 내가 보기에 윤석열은 " 너무 겁이 많다 ". 겁이 없다는 것은 용감하다는 의미로도 읽을 수 있지만 겁이 많다는 것은 그 어떤 해석으로 좋은 점수를 줄 수 없다. 그는 무서운 사람이 아니라 겁이 많은 사람이다. 하아. 진짜 공포는 바로 그것이다. 한 나라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자리에 앉은 인간이 존재하지도 않는 악령 때문에 대통령 집무실을 용산으로 이전하는, 이 해괴한 일이야말로 진짜 공포다. 오, 오오오. 시발, 무서워서 잠이 안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