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파동을 아는가 ?






너의 목소리가 쇠꼬챙이처럼 나를 찔렀고

그래, 나는 소리 없이 오래 찔렸다

ㅡ 청파동을 아는가, 최승자

 



                                                                                                             괴수 영화에 등장하는 괴물은 성격이 대부분 샤이(shy)하다. 네에, 부끄럽고요.                 부끄러움을 많이 타다 보니 처음부터 관객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일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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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작, sky 하늘을 우러러 shy 부끄럼 한 점을 스크린 테이블 앞에 선보일 뿐이다. 일단 입가심으로 맛만 보세요 ~              괴물의 시점 - 샷'이나 그림자로 스쳐 지나가거나 거대한 발자국을 남기는 정도'다. 관객 입장에서 보면 < 감질맛 > 이 나서 애를 태우지만 그것이야말로 크리쳐물(괴수영화)만이 가지고 있는 < 감칠맛 > 이다. 중간에 괴물이 꼬리 치는 장면이 나오기라도 하면 관객은 자지러진다. 괴수영화는 신체의 일부분(페티시즘)으로 시작해서 세미누드로, 그리고 종극에는 올 누드로 끝을 맺는다는 점에서 클래식한 에로 영화를 보는 맛이 있다. 관객은 알몸을 보고 싶어 한다. 얼마나 단단한 물건인지, 얼마나 딱딱한 물건인지, 얼마나 거대한 물건인지, 도대체 저것은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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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가요무대 피날레를 장식하는 것은 언제나 조용필이었고 90년대 피날레를 장식하는 것은 < 서태지와아이들 > 이었듯이, 괴수 영화에서 피날레를 장식하는 것은 괴물(의 헤어누드)이다. 그것이 바로 장르의 법칙이다. 몸값이 워낙 비싸다 보니 몸통보다는 꼬리를 살짝 보여주는 것이 제작비를 절감할 수 있는 묘수이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관객의 호기심을 점진적으로 확장하기 위한 술수이기도 했다. 시작부터 헤어누드로 등장하는 것은 포르노이지 에로영화는 아니지 않은가 !  90분짜리 에로 영화를 스킵 없이 감상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지만 90분짜리 포르노 영화를 스킵 없이 전편 관람하는 것에 애로 사항이 많다. 에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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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한의 막장 드라마도 마찬가지이다. 드라마 생명은 " 연속성 " 이다. 일일드라마 같은 경우는 더더욱 그렇다. 시청자 입장에서 보면 드라마 시청을 하루라도 놓치게 되면 맥락이 끊어져서 재미가 반감되고 결국에는 시청을 포기하게 된다. 그래서 임성한 작가는 자극적인 오늘의 미끼를 던진다. 임성한 작가는 여러분에게 미끼를 던진 것이고 당신은 미끼를 확, 물어분 것이여 ~             당신이 미끼를 물어버린 이상, 주도권은 막장 드라마 작가에게 있다. 낚싯대를 쥔 것은 작가이니깐 말이다. < 오늘의 미끼 > 는 < 어제의 미끼 > 보다 항상 먹음직스럽다. 그것이 막장 드라마의 윤리 없는 도덕률이자 법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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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 골목식당 >> 을 성공한 싸구려 괴수영화 시리즈물'이라거나 막장 드라마'라고 폄하하는 이유는 시청자의 호기심을 붙잡기 위해서 미끼의 싸이즈'를 키운다는 데 있다. 여기서 미끼는 미운오리새끼의 준말이면서 빌런을 의미한다. << 골목식당 >> 은 회를 거듭할수록 전편보다 더 강력한 빌런이 등장한다. 역대급 발암 캐릭터라는 홍탁집 아들은 청파동 피자집 사장에 비하면 천사에 가깝다. 그리고 오늘의 빌런은 언제가 방영될 내일의 빌런에 비하면 천사라는 소리를 들을 것이 분명하다. 왜 ? 그것이 바로 장르의 법칙이기 때문이다. 성공한 영화 속편이 내용과는 관련 없이 사이즈만 키우다가 몰락하고 말듯이(트랜스포머 시리즈를 보라. 이 영화는 외양은 로봇 영화이지만 따지고 보면 괴수 영화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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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장드라마가 날마다 시청자를 붙들기 위해 내용과는 상관없는 자극적인 미끼만을 던지듯이 골목식당은 보다 센 국민 욕받이 캐릭터를 찾기 위해 제작진은 오늘도 죽은 상권을 찾아 하이에나처럼 어슬렁거릴 것이 분명하다. 골목식당 제작진이 욕망하는 것은 착한 상인이 아니라 나쁜 빌런이기 때문이다. 잘 키운 빌런 하나 얌전한 상인 열 명 부럽지 않다. 막장 드라마에 대한 정의가 욕하면서 본다는 의미라면 골목식당은 막장 드라마'다. << 골목식당 >> 이라는 프로그램은 멘티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성장 드라마라는 애초의 제작 의도와는 달리 멘토가 주인공인 성장 드라마로 변질되었다. 이제는 멘티가 멘토를 공격하는 행위는 역린으로 취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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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자인 당신은 힘들게 살아가는 이 시대의 자영업자를 응원하기 위해 << 골목식당 >> 을 보는 것 같지만 속마음은 빌런을 구경하기 위해서이다. 당신은 자영업자 눈물을 닦아줄 손수건이 아니라 쇠꼬챙이를 옆에 두고 티븨 앞에 앉는다. 그리고는 빌런이 등장할 때마다 로마 전투장을 찾은 로마인처럼 하늘을 향해 세운 엄지손가락을 바닥을 향해 내리꽂으며 자비롭게 외칠 것이다. 찔러, 찔러, 찔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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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04 13: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1-04 13:5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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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네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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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성난 황소. 2018  ★★


                                예술 영화는 인물을 집중 탐구하는 영역이어서 풀타임 내내 등장인물을 분석하는 데 할애한다. 그리고 예술 영화를 즐겨 보는 시네필도 기꺼이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만 오락 영화인 경우는 다르다. 오락영화에서 지루함은 재앙이다. 오락영화를 소비하는 관객이 지루함을 견딜 수 있는 한계는 영화 시작한 지 러닝타임 20분 내외'로 그 이후부터는 집중력이 저하되어 몰입에 방해가 된다고 한다. 이 시간대는 감독이 영화 속에 등장하는 캐릭터를 관객에게 소개하는 시간이다. 아아, 마이크 테스트 !  관객 여러분에게 소만근을 소개합니다. 소고기 한 근도 아니고 반 근도 아닌, 자그마치 소고기 만 근이요. 나이는 28세, 철근도 씹어삼킬 남근의 소유자입죠.                       이 기초 설정이 탄탄해야 후반부에 휘몰아칠 질풍노도에 관객은 격렬하게 호응하게 된다. 문제는 관객의 몰입도'이다. 그래서 할리우드 영화는 상영 시간 20분 즈음에 관객의 흥미를 끌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한다. 예를 들면, 괴수 영화 장르 같은 경우 이 시간대에 괴물 꼬리를 살짝 보여주는 식이다. 지루해서 입이 댓 발 나온 관객은 꼬리를 보는 순간에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흥미를 갖기 시작한다. 이 시스템을 알고 나면 마동석이라는 배우는 매우 효과적인 배우이다. 마동석은 그 자체로 하나의 텍스트'여서 감독이 굳이 마동석이라는 인물을 지루하게 설명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마동석은 하나의 고유명사이기 때문에 다양한 영화에 출연해도 마동석은 마동석이다. 우리는 그가 화가 나면 헐크로 변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 성난 황소, 2018 >> 의 마동석은 << 범죄도시 >> 의 그 마동석이고, << 부라더 >> , << 챔피언 >> , << 원더풀 고스트 >> , << 동네 사람들 >> 의 그 마동석이다. 문제는 엇비슷한 이미지 소모에 따른 식상함이다. 바로 그 지점이 마동석의 딜레마'이다. 굵은 팔뚝만 가지고 장사하기에는 이제 밑천이 다 드러난 상태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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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도어락, 2018  ★


                            < 방 > 이 개인이 거처할 수 있는 실내라는 점을 감안하면 < 원룸 ONE-ROOM  > 은 1인 주거 공간의 마지노선'이다. 원룸은 자신의 가치를 훼손하지 않고 살 수 있는 마지막 보루인 셈이다. 이보다 후퇴한 주거 형태가 < 쪽방 > 이다.  쪽방은 ROOM 를 1/2, 1/3, 1/4, 1/5, 1/6......1/13으로 쪼갠 형태로 고시원, 쪽방촌, 달방, 고시텔이 이에 속한다.  영화 << 도어락 >> 은 원룸에 혼자 사는 여성이라면 누구나 겪었을 만한, 일상의 공포를 설득력 있게 제공한다. 독거의 최소 주거 공간 형태가 ONE - ROOM 이라는 점은 주인공 조경민(공효진 분)이 계약직 직원이라는 설정과 맞물리면서 주거 빈곤에 따른 현대 여성의 사회적 불안을 다루는데 성공한다. 한 칸짜리 방에 사는 여자는 이제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 이곳에서 물러나면 갈 곳은 방을 쪼갠 쪽방이다. 이 영화가 리얼리티를 가지는 부분이다. 하지만 살인마가 사는 공간으로 설정된 공가(空家)가 영화 중후반부터 주요 무대로 등장하면서 이 영화는 톤 앤 매너가 갑자기 와르르 무너진다. 무대가 원룸 ONE-ROOM 에서 공가(空家) EMPTY HOUSE 로 후퇴하면서 일상생활의 공포는 난도질 스플래터 장르의 판타지로 추락한다. 특히, 공가 장면들은 영화 << 목격자 >> 와 << 샤이닝 >> 냄새가 너무 나서 신선함마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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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완벽한 타인, 2018 ★★★


                                       영화 << 완벽한 타인 >> 은 핸드폰이 요물이라는 사실을 폭로한다. 영화 속 인물들은 전화벨이 울릴 때마다 곤경에 처하게 된다. 영화는 이 곤경과 불안을 코미디로 처리했지만 장르를 스릴러로 바꿔도 꽤 흥미진진한 영화가 탄생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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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크라잉게임, 1993 ★★★★★

                                        인간 관계가 어려운 지점은 내 본성과 네 본성이 대립할 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내 천성과 네 천성이 대립할 때 발생하게 된다.  본성이 < 거시적 서사 > 라면 천성은 < 미시적 서사 > 에 가까워서, 천성은 본성에 비하면 쩨쩨하고 사소한 성질머리'에 속한다. 그렇기에 뭔가 거창하고 잘난 척하기 좋아하는 문학은 주로 인간의 천성을 다루지 않고 인간의 본성을 다룬다. 예를 들면 " 게으른 성격 " 은 본성이 아니라 그 사람의 " 사소한 천성 " 이다. 일상에서 관계의 어려움은 주로 이 쩨쩨하고 사소한 성질머리-들이 서로 대립할 때 발생한다. 남녀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비록, 남녀가 서로 사랑하는 사이라 해도 남성의 천성과 여성의 천성이 다르기에 대립하게 된다. 여기어 덧대어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개성과 살아온 환경이 다르다면 더더욱 그렇다. 천성이란 교정으로 고쳐지는 것이 아니어서 성격과는 다른 성격이 천성이다. 천성은 유별난 것이다. 그 사람의 천성이 유별나지 않다면 그것은 천성이 아니라 본성에 가깝다. 영화 << 크라잉게임 >> 에 등장하는 전갈과 개구리 이야기는 서로 다른 천성을 가진 전갈과 개구리가 등장한다. 헤엄일 칠 줄 모르는 전갈이 개구리 등에 엎혀 강을 건너는 도중에 개구리에게 독을 쏜다. 강 한가운데서 벌어진 일이어서 개구리는 독 때문에 죽고 전갈은 물에 빠져 죽는다. 개구리가 전갈에게 묻는다. WHY ? 그러자 전갈이 죽어가면서 대답한다. IT'S MY NATUER !  천성은 그 사람의 개성이면서 동시에 타인을 향한 독이기도 하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나는 전갈일까, 개구리일까 ?  내 천성이 누구에게는 독이 되지 않았을까 ?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밤이다. 그렇고 그런 한국 영화 100편을 보는 것보다는 차라리 이 영화 한 편을 보는 것이 좋다. 이 영화는 걸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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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9-01-01 15: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미치광이 최강희 평론가라는 분은 완.타.를
작년 최고의 영화로 꼽더군요.

다만 그 영화 역시 우리의 오리지널이 아니
라, 외국영화의 리메이크인지라...

그나저나 외국 걸작 영화들의 번역 제목을
차용한 영화들의 범람이 그다지 마음에 들
지 않습니다.

마틴 스코시즈와 드니로의 <성난 황소>가
전혀 상관 없는 마동석 배우의 영화로 거듭
나는 건 쫌...

곰곰생각하는발 2019-01-01 16:14   좋아요 0 | URL
일종의 소품인 영화인데
한국 영화가 워낙 질이 떨어지다 보니
최강희는 원탑이라 자신있게 말하는군요..

마틴의 < 성난 황소 > 는 정말 걸작이죠.
저의 톱10안에 도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나와같다면 2019-01-01 19: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Why? It‘s in my nature
죽음. 소멸의 공포마저도 이겨버리는 본성.
너무나 슬픈 대사

전갈의 천성을 알면서도 등에 태울 수 밖에 없었던 개구리

곰곰생각하는발 2019-01-01 19:29   좋아요 1 | URL
보고 나면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영화죠.
저 위의 < 완타 > 도 재미있긴 한데.. 보고 나면 남는 건 없어요..

syo 2019-01-01 19: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2019년 첫 영화를 <크라잉게임>으로 해야겠구나 싶은데요!! 영화에는 진짜 소양이 없어놔서, 올해는 곰발님 픽 덕 좀 보겠슴니다...

곰발님 새해 복 많이 받으소서!!

곰곰생각하는발 2019-01-01 20:53   좋아요 1 | URL
이 영화 좀 오래된 영화인데 생각할거리가 매우 많은 영화입니다.
충격적 반전도 있고 꽤 재미있습니다..
 

 

 




체리와 함께


                                               옛날에 칠레산 체리를 먹다가 그만 (체리)씨를 삼키는 바람에 뱃속에 씨가 자라서 산부인과 병원 대신 자유부인 수목원에서 배를 갈라 어린 체리나무를 낳았다. 당시, 광우병 시위로 인하여 사람이 체리를 임신했다는 놀라운 뉴스는 묻혔지만, 이 동네에서는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이야기'였다. 동네 사람 중에서 젊은 사람들은 나를 " 체리 아빠 ' 라고 불렀고 노인들은 앵두 아빠라고 불렀다.  금지옥엽, 체리를 키웠다.  고생한 보람은 있어서 지난여름에는 체리가 달콤한 열매를 생산했다. " 아빠, 제가 만든 열매들이에요 ! " 체리는 눈물을 뚝뚝 흘렸다. 아빠, 제가 만든 열매들이에요. 그 열매들이 첫 월급을 탄 자식이 선물한 빨간 내복 같아서 나 또한 설움이 목구멍까지 올라와 체리와 함께 울었다. " 우리 외나무,  체리야 !  이 시베리아벌판보다 추운 서라벌한복판에서 홀홀단신 홀로 살아야 할 체리야. 외롭지 않니 ? " 체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체리를 보자 나는 말했다. "  아무 말도 하지 말고 아무 말이라도 해보렴, 어서 ! " 체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아무 말이나 하려고 애를 쓰느라 애를 먹고 있었다.  오늘은 체리와 함께 술을 마셨다. 술을 어느 정도 마시자 불콰해진 체리'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유재하의 << 가리워진 길 >> 이었다. 체리가 노래를 부르자 나는 술 안주 대신 기타 반주로 체리의 가락에 호응했다. 창을 부르는 소리꾼에 맞춰 장구를 두드리는 고수처럼 말이다. 늘어진 노래 테이프처럼, 슬픈 하울링이 텅빈 방안 가득 채우자 나는 그만 눈물이 앞을 가렸다.



참, 이상도 하지......  기똥차게 노래 잘하는 가수가 부르는 노래는 이상하게도 지겹다. 탐 웨이츠, 밥 딜런, 백현진의 노래가 좋다. 고음 파트를 삑사리로 처리할 때마다 " 인간적 ㅡ " 이란 생각이 든다.  언제였던가 !  충무로 인현시장 노포에서 술을 마시고 있는데 누군가가 내게 다가와 말했다. " 혹시 앵두 아빠 아니세요 ? " 백현진이었다. 그는 반색을 하며 어린 앵두 소식을 물었다. 나는 그가 앵두라고 말하는 것으로 보아 그의 나이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다.  초등학교를 국민학교라고 말하는 세대의 말버릇처럼 말이다.  우리 앵두는 잘 있읍니다. 우럭도 아니면서 무럭무럭 크고 있읍니다.  사슴도 아니면서 서슴없이 뛰어드는 혈기왕성한 어린애 같읍니다. 그가 내게 크라운 맥주를 가득 컵에 따라 주었다. 치어스 ~ 그가 말했고  나는 응답했다. 치어스 ~ 노래가 흘러나왔다.  외로움만이 나를 감쌀 때 그대여, 힘이 되어 주오.


 

 내가 좋아하는 단어는 < 아무 > 라는 대명사'다. " 아무 ㅡ " 다음에 어떤 조사가 붙는냐에 따라 의미가 180도 달라진다. < 아무나 > 와 < 아무도 > 는 전혀 다른 뜻이다. " 아무나 " 는 아무나 할 수 있지만 " 아무도 " 는 아무도 할 수 없다. 전자는 everything이고 후자는 nothing이다. 이처럼 " 아무 " 는 모든 것이면서 동시에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아무것도 아닌 것을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일이 있다.  그것은 당신의 무능이 아니다.  < 하고 싶은 것 > 을 잃어버린 당신에게 이 노래를 추천한다.  올해의 목표를 아무것도 이룩하지 못했다고 화를 낼 필요는 없다.  당신의 무능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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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eyonder 2018-12-31 14: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 해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더욱 좋은 일만 함께 하는 새해 맞으시기 바랍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8-12-31 16:40   좋아요 0 | URL
수고 많으셨씁니다.. 건강하십시오 ~

겨울호랑이 2018-12-31 20: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곰곰발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1일1식과 함께 건강한 2019년 되세요!^^:)

곰곰생각하는발 2019-01-01 13:41   좋아요 1 | URL
겨울호랑이 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새벽 5시, 포방터 돈가스집 앞에서  :

 


 

 

 

 

 


1일1식 4년차를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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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를 끝으로 일일일식을 한 지 4년을 마무리한다. 내년이면 5년 차이다. 체중 감소는 일일일식 1년 차에 집중했을 뿐이니(나머지 해는 체중을 유지했다) 1식이 내 일상을 변화시켰다고 말하는 것은 모순이다. 먹는 습관을 바꿨을 뿐인데 바뀐 것은 체중 변화가 아니라 사고방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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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와 인간은 음식에 대한 < 새것공포증 neophobia > 을 가지고 있다. 처음 보는 낯선 음식에 대한 거부 반응이다. 어린아이에게 있어서 처음 보는 음식은 모두 혐오 음식인 셈이다. 그 이유는 먹을 수 있는 음식이라 해도 그 사람의 체질과 기저 질병에 따라 어떤 음식은 약이 되기도 하지만 독이 될 수도 있다는 데 있다. 예를 들면 현미와 시금치는 병실 환자의 대표적인 식단이지만 신장이 나쁜 사람에게는 치명적인 독으로 작용하여 장기 복용할 경우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 그렇기에 인생 경험이 짧은 아이들에게 낯선 먹거리는 위험한 것이다. 쥐도 마찬가지'다. 쥐는 처음 보는 낯선 먹이가 아무리 맛있는 냄새를 풍긴다 해도 극소량만 맛을 보고 대신 맛없는 음식을 배 터지게 먹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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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령, 자신이 먹은 낯선 음식 속에 쥐약이 숨겨 있다 해도 쥐는 극소량만 섭취했기에 몸속에서 독소를 해독할 수 있다. 만약에 이 낯선 음식을 먹었는데도 다음날 배탈이 나지 않으면 그때부터는 어제 먹다 남긴 낯선 먹이를 안심하고 먹기 시작한다고 한다. 그런데 한국인의 밥상은 다양한 음식을 골고루 먹는 것이 올바른 식사법이라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서 산해진미를 차려놓고 골고루 먹는다. 우리는 뷔페식당에 가면 허리띠를 풀어 놓고는 배가 터지도록 이것저것 먹기 시작한다. 그런데 다양한 음식을 한꺼번에 섭취하게 되면 자기 몸에 맞지 않는 독소가 든 음식을 섭취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배탈이 나기 일쑤다. 하지만 섭취한 종류가 많다 보니 어떤 식재료가 배탈을 유발했는지 알 수가 없다.

​

그렇기에 식단을 간소화해서 먹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내가 오이가 내 몸에 독으로 작용한다는 것을 발견한 것은 최근의 일이다. 김치와 오이만으로 구성된 식단을 차려서 먹었는데 다음날 배탈이 나서 고생을 한 적이 있다. 내게는 오이 성분이 독소로 작용한 탓이다. 음식 종류를 간소하게 차려서 먹다 보니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을 수 없는 것을 가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경험을 통해서 깨닫게 되는 것은 " 다양 " 하다는 것이 가지고 있는 함정이다. 그동안 나는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었다. 문학은 물론이고 사회, 자연, 과학, 정치와 관련된 책도 꾸준히 읽었다. 1년에 평균 100권 정도 읽었다. 1년에 100권 ?!  우레와 같은 박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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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여기에는 꼼수가 도사리고 있었으니, 목표를 실천하기 위해서 거의 대부분을 속독과 다독으로 건성건성 읽어치웠다. 하루에 책 여러 권을 1 / 3, 1 / 4, 1 / 5씩 읽는 방식이다.  주말에는 대여섯 권을 신용불량자가 카드돌려막기하는 것처럼 < 텍스트 돌려 막기 방식 > 으로 읽곤 했다. 이 방식은 책 읽는 지루함을 상쇄시킬 수 있다. 지루하다 싶으면 다른 책을 읽고 지루하다 싶으면 다른 책으로 건너뛰는 것이다. 이러다 보니 내용이 섞이게 된다. " 라스콜리니코프는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로 알제리에서 해수욕을 즐기다가 아랍인을 권총으로 쏴 죽였지,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는 말과 함께 ! "  이런 식 ?! 응, 그런 식 ! 지금은 한 가지 책을 매우 느리게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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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민의 << 차마, 깨칠 뻔하였다 >> 라는 에세이는 한 달째 읽고 있다. 문장은 짧으나 사유가 깊어서 가끔 그의 한 문장에서 책 한 권의 사유를 훔치게 된다. 간소하게 차린 식단으로 식사하는 기분이 든다. 저자인 김영민도 1일1식을 한 지 오래되었다고 한다. 다양한 음식을 고루고루 먹는 것이 건강식이 될 수 없듯이 다독이 사유를 넓히는 것도 아니듯이 다양한 경험이 그 사람이 살아온 서사를 풍요하게 만드는 것도 아니다. 여행과 경험의 다양성이 그 사람의 인성을 풍부하게 만든다면 세계 곳곳을 누빈 김우중과 이명박은 성인이 되었을 것이다. 칸트는 오로지 산책을 통해서만 거대한 사고를 확장했고 몽테뉴의 << 수상록 >> 은 다락방에서 쓰여진 책이었다. 먹는다는 것은 곧 생각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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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제일 싫어하는 인간 부류는 백종원'이다. 의도적으로 오타를 남발하자면 골목 상권을 파괴하는 주체가 가난한 골목 자영업자 앞에서 눈알을 불알이며 그들의 생사여탈권을 자지우지하는 것을 보면 화가 난다. 그리고 포방터 돈가스집 돈가스를 처먹기 위해 새벽 5시부터 줄을 서서 기다리는, 그 좆같은 대중 취향의 광기도 혐오하는 쪽이다. 소확행을 위해서 돈가스 하나 처먹겠다고 새벽 5시에 가게 앞에서 기다릴 시간에 차라리 사랑하는 사람과 뜨거운 섹스를 해라. 섹스가 돈가스보다 맛이 좋아. < 소확행 > 의 핵심은 경제적 불평등이 낳은 좌절과 절망을 교묘한 방식으로 자위하려는 자기 방어 기제'이자 경제 불황과 미래 불안으로 인해 위축된 소비자의 호주머니를 다른 방식으로 털기 위한 먹거리 자본제의 속성이다. 찐따 새끼들, 맛있는 음식이 너희들을 행복하게 만들지는 않아.



+

요즘은 < 몸의 장소성 > 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예수는 "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 라고 말씀하셨는데  예수는 무거운 짐을 진 자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몸을 그들에게 실내(室內)라는 장소'로 내준 것이다. 타인을 < 안 > 으로 들이는 방식은 환대이고 사랑의 행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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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bomi 2018-12-29 12: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와 생각이 비슷한 부분이 많네요. 저는 골고루 먹으라는 말이 듣기 싫어요ㅜㅜ 매 끼니 단백질(고기) 챙겨 먹으라는 말도 참 듣기 싫고요. 꼬박꼬박 골고루 챙겨 먹었을 때 더 힘들던데... 그리고 그렇게 먹어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아무거나 막 먹거나, 하루종일 먹고 있는 것만 같고... 여튼 공감합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8-12-29 12:39   좋아요 0 | URL
각자 몸에 맞는 음식은 다 다릅니다. 위에서 예를 들었듯이 말입니다. 누구에게는 현미가 건강식이지만 누구에게는 현미가 독이죠. 모든 식재료는 약이자 독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종류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몸에서 독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은 음식을 섭취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고... 안전한 먹거리는 자신이 먹었을 때 무탈했던 것을 가려내는 능력이 아닌가 싶습니다..

syo 2018-12-29 13: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먹는 걸 돼지처럼 좋아하다 보니 1일 1식은 정말 일종의 경지로 보일 지경이네요..... 4년 씩이나, 멋있으세요.

2018년도 이렇게 착착 마무리가 되고 있습니다, 곰발님.
올해도 이래저래 감사했구요, 2019년도 잘 부탁드립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8-12-29 13:52   좋아요 0 | URL
알라딘계의 슈퍼스타 쇼 님도 내년에는 장원급제하여 이 나라를 평정하여 주시옵소서 ~

syo 2018-12-29 17:07   좋아요 0 | URL
네?? 슈퍼스타요?? 말도 안 됗ㅎㅎㅎ
그렇지만 저에 대해 뭔가를 기억하시고 계신 것 같아서 살짝 감동......ㅠ

1일 1식에 입문하게 되면, 꼭 곰발님의 자문을 구하겠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8-12-29 18:18   좋아요 0 | URL
진단은 의사에게 약은 약사에게 1식은 곰곰발에게 ~

카알벨루치 2018-12-29 13: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곰곰님 1일1식...4년...우아! 감탄사 백개 찍고 갑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구 늘 건강하십시오!

곰곰생각하는발 2018-12-29 13:59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2018-12-31 12: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2-31 12: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신경숙의 << 외딴 방 >> 에서 보여지는 퇴행적 역사 인식과 오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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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감으세요 / 모두 눈을 감으세요


ㅡ 징병검사장에서, 윤희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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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지니아 울프는 << 자기만의 방 >> 에서 여성 예술가는 독립적 공간을 위한 < 자기만의 방 > 과 경제적 자립을 위해 < 500파운드의 돈 > 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버지니아 울프는 여성이 " 남성 " 으로부터 독립하여 자유롭게 살아가기 위한 장소로 " 자기만의 방 " 을 선정한 셈이다. < 방 > 이 버지니아 울프를 대표하는 장소성'이라면 < 부엌 > 은 신경숙 문학을 대표하는 장소성'이다. 하지만 신경숙이 집착하는 부엌이라는 장소성은 버지니아 울프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자기만의 방이 남성으로부터 독립하고자 하는 잰더 인식에서 비롯되었다면 신경숙의 부엌은 남성들과 결탁하여 스스로 그 욕망에 부역하고자 하는 장소로 퇴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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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엌에서 만들어진 밥은 남성(욕망)을 위해 바치는 보시布施 이다. 자전적 소설로 알려진 << 외딴방 >> 에서 1인칭 여성 화자인 < 나 > 는 정치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사랑하는 오빠를 위해 저녁을 차리는 것을 최고의 행복이라 믿는다. " 나는 정치 같은 건 몰라, 그냥 오빠에게 맛있는 저녁을 차려주는 행복만을 느끼고 싶어 ! " 신경숙은 < 나 > 를 낮에는 공장에서 일하고 저녁에는 학교를 다니며 집에 와서는 오빠의 저녁밥을 책임지는 부엌데기'로 취급한다. 내가 이 소설이 굉장히 악질적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70년대 말에서 80년대를 관통하는 시대적 배경과 구로공단에 위치한 동남전기주식회사의 열악한 노동 현장이라는 지정학적 위치를 정조준한 소설이면서도 애써 탈정치적 노스텔지어만을 강조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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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 나 > 가 노조를 배신하면서 말했던 해도 해도 안 되는 일이 있다( " 해도 해도 안되는 일이 있는 것이다. 우리들의 희망은 소모전이었던 것이다 " , 외딴방 )는 변명은 7,80년대 노동 운동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신경숙의 퇴행적 사회 인식을 엿볼 수 있다. 신경숙이 보기에 7,80년대 노동 운동은 쓸모 없는 소모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녀는 줄기차게 주인공 < 나 > 의 입을 빌려서 노동 운동에 대해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는데, 이 행위 자체가 정확하게 강경 자본가 우파의 " 정치색 " 을 띤다는 점에서 < 나 > 가 강박적으로 정치에는 관심이 없다고 고백하는 언술은 이율 배반에 해당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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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운동을 단순하게 해도 해도 안 되는 무용한 일로 치부하는 것은 자본가가 노조를 무력화하기 위해서 노동자를 협박하거나 회유할 때 자주 사용하는 언술이라는 점에서 << 외딴 방 >> 에서 주인공 나는 < 외피는 구로공단 여공 작업복을 둘렀지만 내피는 자본가 / 기득권 / 수구 보수의 남성 실크 넥타이를 맸다는 점에서 속내를 숨긴 캐릭터 > 로 읽힌다. 이 얼마나 가증스러운 가면극인가. 그리고 광주 시민을 학살했던 학살자(대통령)의 얼굴보다 싫은 것이 무우국을 끓이려고 사다 놓은 무우가 꽝꽝 얼어버려가지고 칼이 들어가지 않는 가난1)이라고 자신있게 말하는 화자의 논리는 박정희 정권의 독재를 지지하기 위해 내세웠던 태극기 집회 무리의 산업화 논리와 다를 것 하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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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해서 말하지만 << 외딴 방 >> 에서 주인공은 자신을 탈정치적 존재라고 강조하지만 유감스럽게도 < 나 > 는 그 누구보다도 정치적 입장을 당당하게 그리고 적극적으로 말하는 존재'이다. 이 소설이 문학동네에서 출간되었고 조선일보가 남진우를 앞세워서 조선일보 지면에서 대대적인 작품 홍보에 열을 올렸다는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문학동네가 조선일보의 비호 아래 짧은 시간 안에 거대한 공룡으로 성장했다는 사실은 문학판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출판사 문학동네는 한국 문학사에서 1970-80년대 문학을 정치색에 함몰된 저질 프로파간다 문학으로 평가절하하면서 문학은 정치적 이데올로기로부터 독립하여 탈정치화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

그 정점에 서 있는 것이 신경숙 작가이고 신경숙 문학의 최고봉이 << 외딴 방 >> 이다. 이 소설 또한 1970-80년대 노동 운동을 평가절하하면서 탈정치화를 선언한 구로공단 여공이 주인공이라는 점에서 문학동네와 신경숙은 동일한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탈정치화를 주장하는 행위 자체가 정치적인 행위'라는 점이다. 인간은 정치적이다. 이 전제를 바탕으로 하자면 인간을 다루는 문학은 필연적으로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탈정치화를 선언한 신경숙 소설뿐만 아니라 그를 옹호한 문학동네 또한 정치적인, 너무나 정치적인 이익집단이다. 비극은 그들이 그 사실을 모르고 있다는 데 있다. 신경숙은 외부의 일에 간섭하지 말고 눈을 감고 내면의 이야기를 하자고 속삭인다. 눈을 감으세요. 모두 눈을 감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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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수록 우리는 더욱 두 눈 부릅뜨고 외부를 바라보아야 한다. 컨베이어 벨트에 목이 잘리는 노동자가 있고 지금도 철탑 위에서 408일 동안 농성을 하는 노동자가 있다. 해도 해도 안되는 일을 하는 것은 쓸모 없는 소모가 아니라  숭고한 일이다.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는 한때 해도 해도 안되는 일이었다. 신경숙 문학에 침을 뱉는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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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라, 오빠. 나는 그런 것들보다 그때 연탄불은 잘 타고 있었는지, 가방을 챙겨들고 방을 나간 오빠가 어디 길바닥에서나 자지 않았는지, 그런 것들이 더 중요하게 느껴져. 그때 왜 그렇게 추웠는지 말야. 오빠, 그때 내가 정말 싫었던 건 (전두환) 대통령의 얼굴이 아니라 무우국을 끓이려고 사다 놓은 무우가 꽝꽝 얼어버려가지고 칼이 들어가지 않은 것 그런 것들이었어. 눈이 내린 아침에 수돗물을 틀었을 때 말야. 물이 얼지 않고 시원스럽게 나와주면 너무 좋았고, 안 그러고 얼어 나오지 않으면 너무 싫고 그랬어. 내가 문학을 하려고 했던 건 문학이 뭔가를 변화시켜주리라고 생각해서가 아니었어. 그냥 좋았어. 문학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현실에서 불가능한 것, 금지된 것들을 꿈꿀 수가 있었지. 대체 그 꿈은 어디에서 흘러온 것일까. 나는 내가 사회의 일원이라고 생각해. 문학으로 인해 내가 꿈을 꿀 수 있다면 사회도 꿈을 꿀 수 있는 거 아니야?


-​신경숙, 『외딴방』, 2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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