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네 편








1 성난 황소. 2018  ★★


                                예술 영화는 인물을 집중 탐구하는 영역이어서 풀타임 내내 등장인물을 분석하는 데 할애한다. 그리고 예술 영화를 즐겨 보는 시네필도 기꺼이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만 오락 영화인 경우는 다르다. 오락영화에서 지루함은 재앙이다. 오락영화를 소비하는 관객이 지루함을 견딜 수 있는 한계는 영화 시작한 지 러닝타임 20분 내외'로 그 이후부터는 집중력이 저하되어 몰입에 방해가 된다고 한다. 이 시간대는 감독이 영화 속에 등장하는 캐릭터를 관객에게 소개하는 시간이다. 아아, 마이크 테스트 !  관객 여러분에게 소만근을 소개합니다. 소고기 한 근도 아니고 반 근도 아닌, 자그마치 소고기 만 근이요. 나이는 28세, 철근도 씹어삼킬 남근의 소유자입죠.                       이 기초 설정이 탄탄해야 후반부에 휘몰아칠 질풍노도에 관객은 격렬하게 호응하게 된다. 문제는 관객의 몰입도'이다. 그래서 할리우드 영화는 상영 시간 20분 즈음에 관객의 흥미를 끌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한다. 예를 들면, 괴수 영화 장르 같은 경우 이 시간대에 괴물 꼬리를 살짝 보여주는 식이다. 지루해서 입이 댓 발 나온 관객은 꼬리를 보는 순간에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흥미를 갖기 시작한다. 이 시스템을 알고 나면 마동석이라는 배우는 매우 효과적인 배우이다. 마동석은 그 자체로 하나의 텍스트'여서 감독이 굳이 마동석이라는 인물을 지루하게 설명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마동석은 하나의 고유명사이기 때문에 다양한 영화에 출연해도 마동석은 마동석이다. 우리는 그가 화가 나면 헐크로 변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 성난 황소, 2018 >> 의 마동석은 << 범죄도시 >> 의 그 마동석이고, << 부라더 >> , << 챔피언 >> , << 원더풀 고스트 >> , << 동네 사람들 >> 의 그 마동석이다. 문제는 엇비슷한 이미지 소모에 따른 식상함이다. 바로 그 지점이 마동석의 딜레마'이다. 굵은 팔뚝만 가지고 장사하기에는 이제 밑천이 다 드러난 상태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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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도어락, 2018 


                            < 방 > 이 개인이 거처할 수 있는 실내라는 점을 감안하면 < 원룸 ONE-ROOM  > 은 1인 주거 공간의 마지노선'이다. 원룸은 자신의 가치를 훼손하지 않고 살 수 있는 마지막 보루인 셈이다. 이보다 후퇴한 주거 형태가 < 쪽방 > 이다.  쪽방은 ROOM 를 1/2, 1/3, 1/4, 1/5, 1/6......1/13으로 쪼갠 형태로 고시원, 쪽방촌, 달방, 고시텔이 이에 속한다.  영화 << 도어락 >> 은 원룸에 혼자 사는 여성이라면 누구나 겪었을 만한, 일상의 공포를 설득력 있게 제공한다. 독거의 최소 주거 공간 형태가 ONE - ROOM 이라는 점은 주인공 조경민(공효진 분)이 계약직 직원이라는 설정과 맞물리면서 주거 빈곤에 따른 현대 여성의 사회적 불안을 다루는데 성공한다. 한 칸짜리 방에 사는 여자는 이제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 이곳에서 물러나면 갈 곳은 방을 쪼갠 쪽방이다. 이 영화가 리얼리티를 가지는 부분이다. 하지만 살인마가 사는 공간으로 설정된 공가(空家)가 영화 중후반부터 주요 무대로 등장하면서 이 영화는 톤 앤 매너가 갑자기 와르르 무너진다. 무대가 원룸 ONE-ROOM 에서 공가(空家) EMPTY HOUSE 로 후퇴하면서 일상생활의 공포는 난도질 스플래터 장르의 판타지로 추락한다. 특히, 공가 장면들은 영화 << 목격자 >> 와 << 샤이닝 >> 냄새가 너무 나서 신선함마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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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완벽한 타인, 2018 ★★★


                                       영화 << 완벽한 타인 >> 은 핸드폰이 요물이라는 사실을 폭로한다. 영화 속 인물들은 전화벨이 울릴 때마다 곤경에 처하게 된다. 영화는 이 곤경과 불안을 코미디로 처리했지만 장르를 스릴러로 바꿔도 꽤 흥미진진한 영화가 탄생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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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크라잉게임, 1993 ★★★★★

                                        인간 관계가 어려운 지점은 내 본성과 네 본성이 대립할 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내 천성과 네 천성이 대립할 때 발생하게 된다.  본성이 < 거시적 서사 > 라면 천성은 < 미시적 서사 > 에 가까워서, 천성은 본성에 비하면 쩨쩨하고 사소한 성질머리'에 속한다. 그렇기에 뭔가 거창하고 잘난 척하기 좋아하는 문학은 주로 인간의 천성을 다루지 않고 인간의 본성을 다룬다. 예를 들면 " 게으른 성격 " 은 본성이 아니라 그 사람의 " 사소한 천성 " 이다. 일상에서 관계의 어려움은 주로 이 쩨쩨하고 사소한 성질머리-들이 서로 대립할 때 발생한다. 남녀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비록, 남녀가 서로 사랑하는 사이라 해도 남성의 천성과 여성의 천성이 다르기에 대립하게 된다. 여기어 덧대어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개성과 살아온 환경이 다르다면 더더욱 그렇다. 천성이란 교정으로 고쳐지는 것이 아니어서 성격과는 다른 성격이 천성이다. 천성은 유별난 것이다. 그 사람의 천성이 유별나지 않다면 그것은 천성이 아니라 본성에 가깝다. 영화 << 크라잉게임 >> 에 등장하는 전갈과 개구리 이야기는 서로 다른 천성을 가진 전갈과 개구리가 등장한다. 헤엄일 칠 줄 모르는 전갈이 개구리 등에 엎혀 강을 건너는 도중에 개구리에게 독을 쏜다. 강 한가운데서 벌어진 일이어서 개구리는 독 때문에 죽고 전갈은 물에 빠져 죽는다. 개구리가 전갈에게 묻는다. WHY ? 그러자 전갈이 죽어가면서 대답한다. IT'S MY NATUER !  천성은 그 사람의 개성이면서 동시에 타인을 향한 독이기도 하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나는 전갈일까, 개구리일까 ?  내 천성이 누구에게는 독이 되지 않았을까 ?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밤이다. 그렇고 그런 한국 영화 100편을 보는 것보다는 차라리 이 영화 한 편을 보는 것이 좋다. 이 영화는 걸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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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9-01-01 15: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미치광이 최강희 평론가라는 분은 완.타.를
작년 최고의 영화로 꼽더군요.

다만 그 영화 역시 우리의 오리지널이 아니
라, 외국영화의 리메이크인지라...

그나저나 외국 걸작 영화들의 번역 제목을
차용한 영화들의 범람이 그다지 마음에 들
지 않습니다.

마틴 스코시즈와 드니로의 <성난 황소>가
전혀 상관 없는 마동석 배우의 영화로 거듭
나는 건 쫌...

곰곰생각하는발 2019-01-01 16:14   좋아요 0 | URL
일종의 소품인 영화인데
한국 영화가 워낙 질이 떨어지다 보니
최강희는 원탑이라 자신있게 말하는군요..

마틴의 < 성난 황소 > 는 정말 걸작이죠.
저의 톱10안에 도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나와같다면 2019-01-01 19: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Why? It‘s in my nature
죽음. 소멸의 공포마저도 이겨버리는 본성.
너무나 슬픈 대사

전갈의 천성을 알면서도 등에 태울 수 밖에 없었던 개구리

곰곰생각하는발 2019-01-01 19:29   좋아요 1 | URL
보고 나면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영화죠.
저 위의 < 완타 > 도 재미있긴 한데.. 보고 나면 남는 건 없어요..

syo 2019-01-01 19: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2019년 첫 영화를 <크라잉게임>으로 해야겠구나 싶은데요!! 영화에는 진짜 소양이 없어놔서, 올해는 곰발님 픽 덕 좀 보겠슴니다...

곰발님 새해 복 많이 받으소서!!

곰곰생각하는발 2019-01-01 20:53   좋아요 1 | URL
이 영화 좀 오래된 영화인데 생각할거리가 매우 많은 영화입니다.
충격적 반전도 있고 꽤 재미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