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귀신이 산다 SE (2disc) - 초회한정판
김상진 감독, 차승원 외 출연 / 아트서비스 / 2008년 12월
평점 :
품절
불 광 불 급 : 미 쳐 야 미 친 다
한국판 컨저링 : 귀신이 산다
옛날에는 여름이 되면 << 주말의명화 >> 시간에 납량 특집 영화 시리즈를 특별 편성하여 상영하곤 했다. 폭서의 계절에 혹한의 공포를 선사하겠다는 편성 목적이다. 성냥갑 만한 좁아터진 집구석에서 무더위를 이겨내야 하는 서민들에게 공포 영화는 에어컨이나 다름없었다. 그 시절, 토요일 주말 저녁이 되면 우주 로봇 건담조차 간담을 서늘케 한다는 공포 영화가 매주 상영되었다. 그때 상영했던 한국 공포 영화가 << 월하의 공동 묘지, 1967 >> , << 깊은밤 갑자기, 1981 >> , << 여곡성, 1986 >> 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무덤이 홍해처럼 쫙 갈라지며 화장실에서나 달았을 빨간 알전구 불빛이 세상 밖으로 번지는 월하의 공동묘지를 보며 오금이 저려서 오줌을 쌀 뻔했던 기억이 난다. 므, 므므므므섭구나. 이 납량 특집 한국 공포 영화 시리즈 기획에서 발군은 << 여곡성 >> 이었다. 눈에서 피를 흘리는 신씨 부인의 데스마스크'는 그 어떤 표현으로도 형용할 수 없는 공포를 선사했다. 신씨 부인이 닭 피를 마시다가 낌새를 차리고 갑자기 뒤돌아보는 장면에서 오금보다 오줌이 먼저 저리는, 믿지 못할 신체 반응을 경험하기도 했다.
오금을 저린다는 것과 오줌을 지린다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곤경이라는 사실을 알려준 영화였다. 므, 므므므므섭구나. 어디 그뿐인가. 대감이 지렁이 국수를 먹는 장면은 내가 지금껏 보았던 모든 병맛 장면을 통틀어서 두 번째로 좋아하는 씬이다(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존 워터스 감독의 << 핑크 플라밍고 >> 에서 디바가 길거리에 떨어진 개똥을 먹는 장면이다. 이 장면에서 배우는 실제로 개똥을 씹어먹는다. 예술을 위하여 개똥에 쌈 싸먹는 장면을 보면 예술은 똥이라는 앤디 워홀의 말이 어느 정도 일리는 있다는 생각이 든다).
대감은 귀신에 홀려서 그릇에 담긴 지렁이를 국수로 착각하고는 맛있게 먹는다. 이 장면의 리얼리티를 글로 설명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지금 이 순간도 마찬가지다. 단장이 끊어지면서 몸부림치는 지렁이 장면은 소름 그 자체였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 장면에 사용된 지렁이는 미니어처가 아니라 실제로 살아있는 지렁이였다고 한다. 배우는 열정을 불태워 혼신의 연기를 펼친 것이다. 위 영화 세 편의 무대는 대부분 < 넓은 집 > 이 배경이다. << 월하의 공동 묘지 >> 와 << 여곡성 >> 의 공간이 사랑채와 별채가 있고 뒷간과 넓은 마당이 있는 근대 한옥을 배경으로 한다면 << 깊은밤 갑자기 >> 의 공간 무대는 양옥 대저택이다.
생각해 보면 단칸방에서 귀신이 나오는 영화를 찍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코딱지 만한 집구석에서 무슨 얼어죽을 공포인가. 얼어 죽기는커녕 여름에는 더워 죽을 공간에서 말이다. << 컨저링 >> 시리즈로 대표되는 하우스 호러물의 핵심은 인간이 아니라 공간이 주는 공포'다. 하우스 호러물 장르를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 그 집에 귀신이 산다 " 일 것이다. 공간이 넓으면 넓을수록, 공간의 종류가 다양하면 다양할수록 감독은 더 많은 공포 효과를 효율적으로 만들 수 있다. 귀신은 다락방과 지하실 그리고 사랑방에서 숨어 산다. 모든 공포 영화는 기본적으로 부르주아적이다.
한국 영화가 공포 영화 장르에 취약한 이유는 한국인이 열악한 주거 환경에 노출되어 있다는 데 있다. 기껏해야 30평짜리 아파트 공간에서 무슨 얼어죽을 공포를 선사할 것인가. 대한민국에서 하우스 호러물 찍기에 최적인 공간은 어디일까 ? 바로 청와대'다. 청와대에 가면 영빈관도 있고, 청와대에 가면 영빈관도 있고 지하 벙커도 있고, 청와대에 가면 영빈관도 있고 지하 벙커도 있고 넓은 정원도 있고, 청와대에 가면.......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서프라이즈 류의 오락적 상상에 불과하다. 컨저링의 실제 모델이었던 사건은 나중에 주작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진짜 공포는 청와대에 귀신이 산다는 것을 철썩같이 믿고 있는 사람이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때 벌어지는 일이다. 단 1초라도 청와대 안으로 발을 들일 수 없다고 말하는 윤석열을 볼 때마다 진짜 공포가 엄습한다. 미신에 사로잡힌 미치광이 지도자의 손에 국운이 결정된다는 것이야말로 진짜 공포가 아닐까. 환상이란 내면의 공포가 만든 서사'라는 점에서 : 윤석열이 청와대를 흉터(凶家)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것은 그가 검사 시절에 자신의 손에 피 묻혔던 업보를 기억하기 때문일 것이다. 귀신이란 죄 많은 인간이 만들어낸 고해성사의 한 방식이다.
진짜 공포는 현재 윤석열은 당선자 신분일 뿐 대통령 직무 수행을 아직 시작도 안했다는 데 있다. 민주노총은 윤석열이 당선된 다음날 다음과 같은 논평을 내놓았다. " 지옥의 문이 열렸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