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조끼와 워마드




                                                프랑스 노란조끼 시위가 대한민국에서 벌어졌다면 어떤 일이 발생했을까 ? 시위대가 가게를 약탈하고 자동차를 뒤집어엎는다면 한국 언론은 어떤 자세를 취할까, 그리고 국가는 ?  만약에 이명박근혜 정권 때 노란조끼 시위 같은 일이 발생했다면 국가는 계엄령을 발동했을 것이다. 박근혜 정권이 촛불시위라는 그 평화로운 집회 때에도 계명령을 준비했다고 하니 지나친 상상력은 아닐 것이다. 프랑스 언론이 노란조끼 시위를 보도하면서 보인 태도는 폭력적인 시위'는 대중으로부터 지지를 받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하면서도 시위가 발생하게 된 근본 원인'이 무엇인가를 들여다보아야 한다고 진단했다. 그러니까 프랑스 언론은 노란조끼의 폭력 시위에 대해 원인과 결과를 분리해서 접근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프랑스 언론은 노란조끼 시위가 제2의 68혁명 혹은 신자유주의에 저항하는 민중적 봉기라는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한국 언론이었다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접근법이다. 대한민국 언론은 시위가 발생하면 제일 먼저 계산기부터 두드린다. 뉴스 속보를 말씀드리겠습니다아, 삼 일째 이어진 금속노조 파업으로 인해 1조 3000억의 국가적 손실이 발생했습니다. 또한 시위 현장 인근 상인들은 잦은 시위로 인해 가게 문을 닫을 지경이라며 파업이 하루빨리 끝나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한국 언론은 시위대가 경제(불평등)가 어려워서 시위를 하는데 반대로 시위를 해서 앞으로 경제가 어려워질 것이라고 진단을 하니 원인과 결과를 도치해서 진단하고 있는 것이다. 시위 도중에 폭력 사태가 발생했다면 그 결과(폭력사태)에 대한 비판을 하되 원인은 따로 분리해서 진단을 해야 하지만 한국 언론 거개는 그렇지 못하다. 워마드 - 메갈 논란도 마찬가지'다. < 밖으로 내뱉은 말 > 이라는 것은 철저하게 결과의 산물이다. 이 결과는 < 안으로 삼킨 마음 > 이 원인이다.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은 명백하다. 여성이 밖으로 내뱉은 말에 대하여 그것을 강제로 제거하거나 제압한다고 해서 안으로 삼킨 마음마저 도려낼 수는 없다는 점이다. 전자는 가시적 현상학(결과)이고 후자는 내재적 심리학(원인)이다. 프랑스 언론이 노란조끼 시위의 폭력에 대해서는 우려를 표명하면서도 신자유주의에 저항하는 민중적 봉기라는 평가를 내리듯이 한국 여성이 < 내뱉은 말 > 과 < 안으로 삼킨 마음 > 은 따로 분리해서 분석하고 평가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나는 사회적 약자에 대해서 어떤 식으로든 지지할 생각이 있다. 나는 믿지 못하겠지만 변강쇠를 뛰어넘어 가르캉뒤아의 성기 사이즈를 가지고 있으나 당신이 그런 나를 소추라며 놀려도 기꺼이 받아들일 용의가 있다. 당신은 항상 옳다, 언제나 !












■  덧대기


한국인의 여성관은 주로 < 남자는 배이고 여자는 항구 > 라는 시각이다. 여성의 정주성(定住性)을 강조한 것이다. 망부석(望夫石 : 정조를 굳게 지키던 아내가 멀리 떠난 남편을 기다리다 그대로 죽어 화석이 되었다는 전설적인 돌)은 있는데 망모석이 없는 이유이다. 여성은 주로 실(室)과 내(內)와 방(房)으로 묘사된다. 아내를 집사람, 안사람이라고 부르는 것도 여성을 집이라는 장소성으로 규정한 결과이다. 아내라는 말도 집 안쪽이라는 뜻이다. 그러다 보니 여성이 < 안 > 을 벗어나 < 밖 > 에 있으면 남성으로부터 표적이 된다. 한국 남성들이 흔히 여성을 조롱할 때 사용하는 표현인 " 할 일 없으면 집에서 밥이나 하라 ! " 는 말도 여성의 정주성을 강조한 것이다. 김승옥의 << 무진기행 >> 도 이와 똑같은 상황인식을 보여준다. 주인공 < 나 > 가 무진에 내려가 사랑을 나누는 여자 이름이 바로 하인숙이다. 이 이름은 여인숙을 떠올리게 만들고 이름을 도치하면 하숙인(집)을 연상케 한다. 여성의 정체성을 집이라는 장소성에 가두려고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 단편은 문체는 훌륭하지만 한편으로는 졸라 고리타분한 남성적 시각을 보여준다. 또한, 이 소설은 서울과 무진을 제국과 식민의 관계로 설정한다는 점에서 불편하다. 서울 사람(화자인 나와 여인숙은 서울에 거주하거나 서울에서 무진으로 내려간 사람이다)은 무진을 계몽이 필요한 장소로 설정하고 무진 사람을 속물로 규정한다. 이런 소설이 문학도들에게 숭배에 가까운 찬사를 받는 것은 우려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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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옥, 손창섭 그리고 페미니즘

 

   

 

                                                                                                                                                                                                                    문학에 문외한인지라 한국 문학의 전설로 통하는 김승옥의 << 무진기행 >> 을 읽었을 때 이 작품이 가지고 있는 문학적 가치를 가름하지 못하는 쪽이다

 

어느 문학 모임에 갔을 때 S 대 국문과 출신이라는 이가 뒤풀이 장소인 호프집에서 이 작품을 " 문체의 혁신과 내용의 전복 " 으로 설명하던데, 나는 그가 내뱉는 장광설이 하도 따분해서 하모니카를 연주하듯이 치킨 닭 모가지를 두 손으로 공손하게 잡은 후에 박힌 살을 세심하게 뜯는 데에만 열중했다발라먹는 이 재미, 아시려나 그는 필사할 한국 문학으로 이 작품을 첫 번째로 뽑던데....... 글쎄올시다, 나는 모르겠습니다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         내가 보기에는 이 작품이 가지고 있는 " 문체의 혁신1) " 은 인정하지만 " 내용의 전복 " 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 무진기행 >> 에서 서른셋인 화자는 제약회사 중역으로 아내의 도움으로 벼락출세한 남자'.

출세를 위한 사랑 없는 결혼으로 읽히는데권태에 빠진 남자는 잠시 휴가를 얻어 세속을 벗어나 무진으로 떠난다. 살면서 좌절을 할 때나 실패를 할 때마다 무진을 찾았다는 화자의 고백으로 미루어 보자면 무진으로 떠난다는 행위는 고개 숙인 남성성'을 회복하려는 수단으로 보인다.  그곳에서 그는 하인숙이라는 처녀를 만나 섹스를 하며 사랑에 눈을 뜬다는 내용그는 < 세속의 명예 > 이냐 < 탈속의 사랑 > 이냐를 놓고 잠시 고민하지만 이내 무진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하룻밤이지만 즐거웠어 ~              내가 이 소설을 읽으면서 느낀 것은 여성'을 단순하게 오로라민 C 같은 활력 보조제 따위로 취급하려는 것이었다.

내가 관심을 가지는 것은 하인숙이라는 이름이다. 이름 순서를 도치하면 하숙인이 된다. 그러니까 여인숙을 떠올리게 하는 하인숙은 하숙집에 사는 하숙인이란 의미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 > 라는 화자가 일면식도 없는 하인숙이라는 여인과 하룻밤 몸을 섞다가 떠나는 장면은 일종의 여인숙에 머물렀다가 1박 하고 떠나는 2일 여행인 셈이다김승옥이 이 소설을 쓰면서 그것을 의도했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설령 의도하지 않았다고 해도 어쩌면 무의식적 발현의 결과라는 생각이 든다주인공 < > 는 하인숙을 만나 진정한 사랑을 느끼지만 그 이면에는 하인숙을 값싼 하급 여관1) 정도로 취급하려는 작가의 애티튜드를 읽을 수도 있다

 

내가 주목하는 작가는 손창섭이다김승옥의 문체와 문장이 아름다울 정도로 세련되었다면 손창섭은 지식인 특유의 계몽적 태도가 없으며 정직하고 꼿꼿한 느낌을 준다단편 << 신의 희작 , 1961 >> 은 압도적 몰입을 가능하게 만드는 걸작이다. 이 소설에서 주인공 S 는 자신을 손창섭이라고 밝힌 후 이야기를 전개한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치즈코'도 실제로 그의 아내 이름'이어서 한국 문단에서는 이 작품이 자전 소설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소설 내용을 보면 S 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개새끼'. 읽다 보면 이런 개새끼도 없다. 이 소설이 자전 소설( S = 손창섭 )이라면 손창섭은 개새끼'인 셈이다. 그런데 실제로 손창섭은 법 없이도 살 만큼 정직했으며 내성적인 성격에다가 누구보다도 애처가'였다.

그러니까 이 소설은 " 팩션 / faction " 이 아니라 " 픽션 / fiction " 인 셈이다그가 이 소설에서 말하고 싶었던 것은 한국 남자라는 사실에 대한 자기 혐오'가 깃든 자기 부정이 아니었을까 손창섭 문학은 페미니즘적 시각으로 다시 읽어야 할 매우 중요한 텍스트'특히 << 삼부녀 >> 는 매우 흥미로운 펄프픽션이다.  < 주간여성 > 에 연재되었다가 1970년에 출간된 이 소설은 원조교제와 계약 가족이라는 파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어서 막장 세태 통속소설로 치부되고 있지만 시대적 상황을 고려하면 한국문학 사상 이보다 파격적이며 전복적인 소설은 이 소설이 유일하다. 이 소설을 읽다 보면 뭐, 이런 막장 소설이 있나 _ 하며 한탄하게 된다.

아내는 시누이 남편과 바람이 나서 이혼한 상태이고, 남편은 여대생과 원조교제하는 사이이다. 결국 가족은 해체되어 모두 집을 떠나지만 남자는 떠난 자리를 마이너한 타자 - '로 채운다. 원조교제하는 여대생을 유사 아내로 모셔오고 술집에서 일하는 친구의 딸을 딸자식 역할로 데려온다새로운 가족을 재구성한 셈이다.  과연, 이 나쁜 가족극은 성공할 수 있을까 ?  얼핏 이 소설은 남자의 성적 판타지를 총족시키기 위한 싸구려 통속소설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뜯어보면 정반대로 가부장 욕망과 가족 역할의 재배치를 다룬다. 그렇기에 이 소설은 오히려 페미니즘적 시각으로 다시 읽어야 한다고 내가 주장하는 이유이다. 손창섭이 이 소설에서 주장하고자 했던 것은 낡은 가부장제 해체'이다

​그는 국내 유력 문학상을 두 번이나 수상한 뛰어난 작가였지만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다한국 정치에 대한 혐오와 한국 남성(가부장제)에 대한 경멸'이 반영된 것처럼 보인다나중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그는 한국을 떠나 일본에 정착하며 개명한 이름은 우에노 마사루 였다. 우에노 마사루, 부계의 '을 따르는 한국 (부)성' 거부하고 아내 이름을 따랐으니 모계의 (모)성을 받아들인 것이다완벽한 자기 부정인 셈이다그는 2010623일 향년 88세로 숨을 거두었다. 숨을 거두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 말은 아내에게 " 그동안 잘 대해줘서 고맙다 " 는 말이었다.

 

 

 

 

                                    

 

1) 이 소설의 문체와 문장은 정말 모던하다. 완벽하다 ! 안개에 대한 풍경 묘사는 압권이다.

2)  하숙집의 사전적 의미가 값싼 하급 여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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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sulemono 2018-12-20 11: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무진기행>을 두고 ˝내용의 전복˝을 이야기하는 건 과해보이네요. 저 정도를 ˝전복˝이라고 하면 이상의 <날개>같은 작품을 두고는 뭐라 할지...

곰곰생각하는발 2018-12-20 21:59   좋아요 0 | URL
제가 그때 좀 알딸딸한 상황이어서... 뭐 하여튼 전복전복하더군요..ㅎㅎ

2018-12-20 12: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8-12-20 21:59   좋아요 0 | URL
그렇죠 ? 왜 그 이름으로 정했을까? 첫 번째 드는 의문은 그것이었습니다.
왜 작가들은 이름 지을 때 고심을 많이 하잖아요. 상징성도 넣으려고 하고...

잠자냥 2018-12-20 13: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손창섭에 대해 하신 말씀 구구절절 공감하면서 좋아요 7개를 누르고 갑니다.
덧붙여 ‘하모니카를 연주하듯이 치킨 닭 모가지를 두 손으로 공손하게‘에서 미친듯이 웃고 갑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8-12-20 21:58   좋아요 0 | URL
제가 치킨 부위 중에서 닭모가지를 제일 좋아해서..
닭모가지 살을 발라내는 데 시간이 걸리다 보니 다른 녀석들은 날개와 닭다리를 다 먹더군요..ㅎㅎ
전 항상 손해를 봅니다..

cyrus 2018-12-20 17: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얼어 죽을 전복 같은 소리하네... ㅎㅎㅎ 그 국문학과 사람한테 전복죽이나 먹으면서 정신 차리라고 말하고 싶네요.

그나저나 역시 손창섭 마니아다운 글입니다. 페미니즘 소설이 나오는 것도 좋지만, 페미니즘 시각으로 읽을 수 있는 소설들도 많이 알려져야 합니다. ^^

곰곰생각하는발 2018-12-20 21:57   좋아요 0 | URL
제가 아마 손창섭의 첫 번째 마니아일 겁니다. 자랑자랑.. ^^

akardo 2018-12-20 20: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문체는 모르겠는데 내용의 전복은 헛소리 같은데요. ㅋㅋㅋ 우리나라 근대 남성작가들 소설에 흔히 나오는 게 아내 아닌 여자와 그렇고 그런 관계 맺는 거 아닌가요. ㅋㅋㅋ

곰곰생각하는발 2018-12-20 21:57   좋아요 0 | URL
지금 생각하니 내용의 전복성은 아니고 형식의 전복성인가... 뭐, 하여튼... 전복 전복 그랬던 것은 기억이 나네요... 알딸딸할 때 들은 내용이라.... ㅎㅎ

akardo 2018-12-20 22:13   좋아요 0 | URL
형식의 전복이라면 무진에서 옛날 여자를 만나 사람이 확 바뀌어 새 삶을 살게 됐다는 식의 근대 교양 소설에서 벗어나 도로 원래 생활로 돌아갔다는 걸 말한 걸지도 모르겠네요. 그렇게 해석한 글도 본 듯한데 말이죠. 여행을 갔다가 돌아왔어도 주인공의 내면과 외면에서 큰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도 포함해.

곰곰생각하는발 2018-12-20 22:39   좋아요 0 | URL
이 소설 보면 무진 사람들은 다 멍청하고 속물이에요....
이 소설에는 서울에서 살던 사람이 딱 둘인데 하인숙과 주인공 남자입니다..
이 양반 둘이 주구장창 무진 사람들 속물근성에 대해 말하는데
전 이게 엘리트주의의 계몽주의적 태도로 보여서 읽는 내내 불편했던 기억이 납니다..
뭔가 더럽게 좀 가르치려고 해요..


반면에 손창섭 소설에는 그런 게 전혀 없습니다. 문체는 투박해도 문체가 꼿꼿해요..

akardo 2018-12-20 22:45   좋아요 0 | URL
오래전에 읽어 자세힌 기억 안 나는데 무진사람 속물근성 흉도 봤었군요. 아니 제가 보기에 속물근성은 주인공 양반이 제일 강한데 말이죠. ㅎㅎㅎ 손창섭 소설 재미있게 잘 봤었는데 다시 찾아봐야겠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8-12-20 22:50   좋아요 0 | URL
제가 보기엔 자기들도 속물이면서 무진 사람 속물이라고 흉을 보고 있죠...ㅎㅎㅎㅎㅎ
뭐, 그게 작가의 의도 같기도 하고.... 일단, 전 주인공이 꼴도 보기 싫어서..
이런 인간 질색입니다. 겉으로는 꽤나 정직한 척하지만 속은 더럽게 속물인...

akardo 2018-12-20 22:56   좋아요 1 | URL
주인공에게 감정 이입은 안되는 소설이었죠. ㅎㅎ 막장드라마에서 원래 여자 배신하고 부잣집 여자와 결혼해놓고선 불행해 웅엥웅거리는 주인공 같아 비호감이었는데.ㅋㅋ

곰곰생각하는발 2018-12-20 23:41   좋아요 0 | URL
제가 진짜 이 소설을 이해 못하는 대목이


딱 보면 남자가 출세를 위해서 제약회사 회장 딸과 결혼하잖아요.
이 사람이 곧 전무 승진을 합니다. 주주총회가 열리는데 아내가 잠시 무진 내려가 있으라고 하죠
아빠와 둘이서 일을 잘 마무리짓겠다고.. 아마도 논란이 있겠죠
남자는 무진으로 가요. 그리고는 종종 서울 일을 궁금해 하는데
회장이 주주총회에서 자신을 전무로 승진하려는 것을 상상하는데
하여튼.. 주인공은 그 장면이 좀 역겹다,.. 뭐 그런 마인드를 가졌더라고요..
속으로 제가.. 이나 시발놈, 출세에 눈이 멀어서 사랑 없는 결혼을 한 주제에
장인이 전무 추진하면 감사해야지.. 웬 정의로운 코스프레를 하지 ?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akardo 2018-12-20 23:52   좋아요 0 | URL
위선적이죠. ㅎㅎ한국 드라마에서 자기보다 잘난 집 여자를 만나 결혼한 남자가 여자가 시댁을 무시한다느니 어쩌고하면서 그래서 나는 불행해 뭐 이러는 거 보는 느낌입니다.
 

 

 

 

 

 

 

 

 

 


 


 

​                                       


꽃  으  로  도     때  려  라   :



 




위플레쉬, 심석희 그리고 백종원



 

400번의 매질이 아이를 어른으로 키운다

- 프랑스 속담 




 


1등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할 각오가 되어 있는 앤드류는 음대 신입생이다.  그는 최고의 재즈 드러머가 되기 위해 플레쳐 교수가 이끄는 밴드에 들어간다. 그의 교수법은 폭언과 학대'이다. 그에게는 " 가학( 苛虐 : 몹시 심하게 학대함 ) 이 곧 가학( 苛學 : 회초리 교육법 ) " 이다.  그대 ↗  앞에만 서어면 ~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 아니라 똥 ! 덩 ! 어 !  리 ! 

이 영화는 한국 평단과 관객 모두에게 극찬에 가까운 칭송을 받으며 흥행에 성공한다.  왜 ?!  미치광이 선생이 휘두르는 사랑의 채찍질(whiplash) 이야기.  한국 사회에서는 너무나 익숙한 서사이기 때문이다(반대로 유럽 국가에서는 흥행에 실패한다. 사랑하기 때문에 때려야 한다는 이야기에 유럽인은 1도 이해 못해).  온갖 인간 군상이 잡다하게 모이는, 정치색이 다종다양한 한국 평단이라면 한 명쯤은 " 때려야 말을 듣는다 " 는 S - 서사와 " 맞아야 정신 차린다 " 라는 M - 서사에 대해 불편한 시선을 보일 만하지만 한국식 교수법에 익숙하다 보니 삐딱한 시선으로 이 영화를 보는 이'는 없었다.  평소 진보적 PC함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이도 모두 다 가시는 길에 영광있으라이 _ 라고 말하니  나는 " AC , 이게 뭐야 ~  " 

나는 이 영화를 보는 내내 앤드류의 그 후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가정 폭력에 시달리는 아이가 어른이 되면 가정 폭력의 주체가 되듯이 플레쳐 교수법으로 최고가 된 앤드류도 나이가 들면 플레쳐와 똑같은 폭군이 되어 학생들에게 위플레쉬하지 않을까 ?  아따, 앤드류보다 플래쳐 교수가 더 매력있다아 ~   매 맞는 아이가 악에 받쳐서 1등이 되어가는 이야기를 보며 너무나 감동해서 물개 박수나 치고 있는 영화관 풍경을 보며 속으로 외쳤다. 지랄하고 자빠졌네. 이 영화에 열광했다면 당신은 조재범 코치와 심석희 선수의 애증이 섞인 십 년 풀 스토리에 감동해서 기립박수를 쳐야 한다. 조재범 코치는 플레쳐 교수'다.

심석희의 고백에 의하면  :  어릴 때 조재범 코치의 폭행으로 인해 새끼손가락이 부러졌으며 그것이 일상이었다고 하니 그 역경을 극복하고 세계 정상에 우뚝 선 심석희는 앤드류인 셈이다.   나는 백종원의 << 골목식당 >> 을 볼 때마다 플레쳐 교수가 오버랩된다.  골목식당 제작진은 < 돌아온 탕아 > 라는 성서 이야기를 재현할 인물을 찾는다. 제작진 레이더망에 걸려든 이가 바로 홍탁집 아들이다.  하는 꼴을 보니 건들건들하고 게으르며 늙은 노모 밑에서 돈이나 타 쓰는,  한심한 한량이다.  땀 흘리지 않고 먹고산다는 의미에서 불한당(不汗黨  :  아니 불, 땀 한, 무리 당. 땀 흘리지 않고 사는 무리라는 뜻이다) 이다. 이런 캐릭터는 백종원이 폭언하기 좋고 학대하기 좋다.

제작진이 멍석은 깔았으니 한국의 플레쳐 교수인 백종원만 등장하면 된다. 가차없다.  보다 보면 기가 찬다.  그는 홍탁집 아들에게 말한다. 똥 !  덩 !  어 !  리 !  1회를 보면 마지막 50회의 결말을 알 수 있는 막장 드라마처럼 우리는 이 이야기의 끝을 알 수 있다.  영화 << 위플레쉬 >> 에서 플레쳐 교수는 게으르고 약해빠진 사람들에게 항상 같은 말을 한다. "  어이, 시밤바 !  내 말 잘 들어. 세상에서 가장 쓸데없는 말이 그만하면 잘했어 야 "  백종원은 플레쳐 교수의 교수법을 그대로 따른다. " 그만하면 잘했슈 _ 라고 내가 말할 줄 알았쥬 ? " 백종원이 채찍질을 할 때마다 홍탁집 아들은 좌절한다.  하지만 이 악물고 그 모욕을 견딘다.  그리고 결말은 개과천선한 탕아'다.

사람들이 감동해서 백종원 선생을 향해 기립박수를 칠 때 나는 속으로 외쳤다. 지랄하고 자빠졌네.                 문득, 의문이 들었다.  만약에 백종원 교수의 교수법을 거부한다면 그 사람은 반드시 실패하게 되는 것일까 ?  훌륭한 사례가 있다.  충무로 골목 편에서 백종원의 교수법에 반기를 들어 백종원 레시피를 거부한 출연자가 있다.  바로 충무로 국숫집'이다.  백종원 교수법이 옳다면 충무로 국숫집은 파리만 날려야 한다.  정말 그럴까 ?  현재 충무로 국숫집은 주말인데도 불구하고 점심시간이면 줄을 서서 먹어야 할 정도로 장사가 잘 된다. 이 사실은 백종원 레시피'가 죽은 자(가게)도 벌떡 일어나게 만든다는 기적의 레시피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한다.

그것은 백종원이 가진 전지전능한 능력 때문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방송의 힘'이다. 내가 보기에 << 위플레쉬 >> 이야기나 << 심석희 >> 이야기나 << 홍탁집 아들 >> 이야기는 서로 장르가 다를 뿐 동일한 이야기'다. 폭언과 학대가 성적 향상에 영향을 주었다고 해서 그것을 정당화한다면,  당신은 << 조재범과 심석희의 애증 십 년 풀-스토리 디렉터즈컷 버전 >> 에도 공감해야 한다.  플레쳐, 조재범, 백종원은 동일인물'이다. 삼위일체 ㅡ 놀랄 일은 아니다. 영화 << 불한당 >> 의 그 유명한 대사로 매조지하자. 셋 다 모두 좆이나 뱅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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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18 23: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8-12-19 21:20   좋아요 0 | URL
교육과 조련의 차이라는 지적이 확 마음에 와닿습니다.. ^^

문득 저는 < 교육과 교련 > 의 차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한국 문화는 확실히
군사문화의 잔재가 매우 깊이 박힌.... 아, 요즘은 교련 과목이 사라졌죠 ?

저도 백종원 음식이 맛있다고 느껴본 적 1도 없습니다.
종종 사람들 때문에 할 수 없이 백종원 가게 몇 번 가본 적 있는데
당최 맛의 우월성을 못 느끼겠습니다. 술 마시기에는 더럽게 분위기 없는 가게라는 인식만 남았습니다..

서연오 2018-12-19 14: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백종원씨 개인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인데, 요즘 인터넷 돌아다니다보면 이 사람이 한국에서는 거의 신처럼 대접받고 계십니다. 백종원씨의 사람됨됨이를 떠나서(사실 백종원씨가 사적으로 좋은 사람이냐, 혹은 그렇지 못한 사람이냐는 전혀 관련 없는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보통 이런 얘기 하면 사람들이 혼동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이런 대답들을 하곤 합니다 ˝왜, 백종원이 부럽냐?˝) 그가 이렇게 추앙받는 사회는 그만큼 불행할 수 밖에 없음을 알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곰발님이 항상 말씀하시는 한국사회에 깊게 내제된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와 관련지어서는 물론이고, 저는 더 나가서 백종원식 ‘사이다‘에도 문제를 제기하고 싶네요. 소위 사이다라는 것이 복합적으로 구성된 하나의 문제를 평면으로 뭉게버리고, 거기다가 간단명료하지만 강경한 해결책을 제시하는데 이게 비단 음식점이 흥하냐 망하냐의 차원이라면 그리 큰 문제가 아니겠지만 스케일이 커져서도 사람들의 생각속에 그대로 자리잡고 있는걸로 보이거든요. 그래서 요즘 네티즌들이 PC같은걸 학을 때는겁니다. 복잡한것들은 모르겠고 자기들이 생각하기에는 굉장히 심플한 해결책이 보이니까요. 그래서 걔들은 PC강조하는 사람들을 파시스트라 부릅디다. 마치 페미를 나치라 부르듯이.. 왜 유럽이나 북미가 그렇게 엄격하게 PC를 들여왔는지는 안 찾아보는 모양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8-12-19 21:27   좋아요 0 | URL
저도 황교익씨 개인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는 사람인데 어찌하다 보니 황교익 지지자가 된 모양새이지만 개인적으로도 황교익에 대해 우호적인 사람은 아닙니다.

위에서도 지적했듯이, 저는 위플레쉬의 플레쳐 교수법을 교육이 아닌 교련‘으로 보았습니다.
일종의 군사문화적 강압인데. 이것에 대한 지적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익숙하다는 거죠. 성공만 한다면 스승의 모욕과 학대는 교육이 되는 겁니다.
같은 이유로 백종원 서사도 그런 것 같습니다.

가장 기본적인 정치적 소양 없이는 그 어떠한 에티켓도 애티튜드도 없다고 봅니다.
모든 훌륭한 태도는 기 기본이 PC잖아요. 그런데 그것을 무시하면 엉터리가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
 
책 읽어주는 남자 시공사 베른하르트 슐링크 작품선
베른하르트 슐링크 지음, 김재혁 옮김 / 시공사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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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어주는 남자


 



                                                                                                                    주정뱅이에 가까웠던 내가 일주일에 한 번 술을 마시다 보니 오늘은 귀한 날이다. 소주 한 병과 맥주 한 병을 사서 술상을 차렸다. 호박을 삶아서 믹서기로 갈은 호박 스무디를 만들어 맥주 500CC 잔에 채우고 호박으로 만든 부침개와 돼지고기 큼직하게 썰어 넣은 김치찌개와 밥 한 공기를 담았다.

맥주컵에 소주를 담고 그 위에 거품이 나지 않도록 맥주를 부었다. 물론, 이 과정은 매우 신중해야 한다. 소맥을 탈 때에는 거품이 생길 때의 공간을 계산에 넣어야 한다. 소맥을 타기 위해 (소맥을 타기 위해서만 사용하는 특수한) 소맥 전용 젓가락 한 짝을 컵에 담고 다른 한 짝으로 젓가락 쇠기둥을 내리친다. 이때에도 신중한 계산이 필요하다. 타악의 힘이 젓가락 쇠기둥에 미치는 영향과 맥주 탄산이 이에 반응하는 격랑의 소용돌이를 계산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은 쉽지 않은 일. 거품을 만들어 거품을 맥주 유리컵 꼭대기까지 끌어올린다는 것은 시시포스가 바위를 끌고 산꼭대기에 오르는 것만큼 쉽지 않은 일.

이 작고 즐거운 수고를 위해 나는 오늘도 캄캄한 밤에, 컴컴한 방에 홀로 정좌를 하고 젓가락 쇠기둥을 내리친다. 참선하는 마음, 이와 같으리라.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소맥을 24시간 동안 굶어서 허기진 위장에 쏟아 넣는다. 방은 고요하다. 티븨도 없다. 아름다운 여자를 생각했다. 알싸하게 퍼지는 술기운이 좋다. 안주로 호박 스무디를 마셨다. 놀라운 사실은, 아니 씨발.......  소맥 딱 한 잔' 마셨을 뿐인데 그만 인사불성이 되어 작별인사도 못하고 죽은 듯이 잠을 잤다는 사실이다.  한때 " 말술 " 을 먹었으나 이제는 나이가 들어 " 벼룩(의 간으로 담근)술 " 에도 잠을 자는구나. 일어나 보니 새벽이다. 이 황망함. 뭐랄까 ?  고자가 된 듯한 느낌 ?!  내가...... 고자라니. 아, 내가 고자'라니.  

차라리 계룡산 쌍쌍봉 아랫골의 고라니로 살고 싶다아.  새벽에 일어나 남은 벼룩술을 마셨다.  벼룩의 간이 이런 맛이로구나. 문득, 사랑이라는 것도 소맥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신이라는 시금털털한 보리 맥주와 나라는 맑고 독한 소주가 섞이는 과정. 처음에는 서로의 밀도가 달라서 맥주 아래 소주가 가라앉으나 어느 순간 타악의 힘으로 젓가락 쇠기둥을 치는 순간  맥주와 소주가 격랑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들어간다는 것, 그 하얀 포말.  아, 저 격랑.  그것이 사랑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눈물 젖은 빵을 먹지 않은 자는 인생을 논할 자격이 없듯이, 소맥을 말아먹지 않은 자는 사랑을 이야기할 자격이 없다. 나는 속으로 말한다. 소맥이 얼마나 맛있다고.

10년 전에 읽었으나 읽은 줄도 모르고 다시 읽은 소설(책 읽어주는 남자)을 생각했다. 이 소설이 오프라 윈프리 쇼의 북클럽 코너에서 소개되었을 때 패널 - 들 사이에서 격렬한 논쟁이 벌어진 적이 있다.  논란의 핵심은 스물한 살 차이가 나는 열다섯 살 소년 미하엘과 서른여섯 살 한나의 사랑이 과연 사랑이라 말할 수 있는가 _ 라는 것이었다. 어떤 이는 사랑이 아니라 그루밍'이라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이 질문을 받은 베른하르트 슐링크는 화가 나서 두 사람의 나이 차이가 문제가 되는 것은 오로지 미국이라는 나라에서만 벌어지는 현상이라고 지적한 후,  유럽의 독자들은 단 한 번도 그런 질문을 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미하엘과 한나를 통해 전쟁 이전 세대와 전쟁 이후 세대의 세대 갈등을 말하고 싶었다고 이야기했다. 그런데 나는 조금 다른 차원에서 " 한나 " 를 이해하기로 했다.  프로이트와 라캉은 아이가 문자 세계로 진입했는가 못했는가에 따라 상상계와 상징계로 분류했다.  상상계에 머무르는 아이는 당연히 문자 세계에 진입하지 못했기에 입말(구술성)에 집착할 수밖에 없다.  한나 슈미츠'가 그런 경우'다.  그녀는 몸은 성숙한 여인이지만 구순기에 고착된 어린아이'이다.  그렇기에 그는 선악의 구별이 없다.  그녀는 자신의 나치 부역에 대한, 그에 따른 죄의식이 없다.  그녀는 순수한 의미에서 無知이다.  그런 의미에서 미하엘과 한나의 사랑은 그루밍'이 맞다. 

미하엘보다 한참 어린 이는 한나 슈미츠라는 갓난 여자아이'이다. 한나는 교도소에서 문자를 배운다. 

그녀는 힘을 잔뜩 주어 썼다. 한가운데를 접은 편지지의 아래쪽 면과 위쪽 면에 박힌 글씨 자국을 읽을 수 있을 정도였다. 얼핏 보면 그것은 어린아이가 쓴 글씨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어린아이의 글씨체에서 서툴고 어색하게 보이는 부분이 여기서는 듬뿍 힘이 들어가 있었다. 선들을 모아 글자를 만들고, 글자들을 모아 낱말을 만들기 위해 한나가 극복해야 했던 어려움이 눈에 들어왔다. 어린아이의 손은 이리저리 마구 헤매기 때문에 글씨가 나아가는 길의 안쪽에다 손을 붙잡아두어야 한다

-255쪽

그것은 구순기 고착에서 벗어나 성인의 세계로 진입했다는 상징이다. 비로소 한나는 성인이 되어 선악을 구별하게 된다.  결국 한나는 석방 예정일 전날에 목을 매달아 자살을 선택한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텍스트를 이해할 수 있고 능력에 따라 행간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나는 어린이로서 사랑을 시작했고 어른으로서 생을 마감했다. 이 소설을 당신에게 추천한다. 소맥 마시며 소설 읽기 좋은 새벽이다. 죽기 아니면 까무라치기 좋은, 캄캄한 겨울 새벽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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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욕 죽겠지, 욕이 욕을 부른다  :




 



백종원 신드롬

 

 

 

 

 

 

                                                                                                                                                                                                                서당개 삼 년이면 " 풍월강산 " 을 읊는다지만 대한민국 자본주의 사회에서 식당개 삼 년이면 " 풍비박산 " 이 되는지라 식당 개업 팔 할은 망한다. 그런 의미에  백종원은 요식업계의 허준'이다. 그가 나타나 침을 놓으면 앉은뱅이 죽은 가게도 벌떡 일어난다.   " 침을 놓는 " 기술은 점점 향상이 되어 이제는 " 침을 뱉는 " 수준이 되었다.

처음에는 < 위로 > 로 시작한 방송이지만 이제는 < 독설 > 이 주무기가 되었다. 포방터 홍탁집 아들을 다루는 백종원은 거침이 없다. 가뜩이나 소 눈깔처럼 생긴 눈알을 불알이며 욕설을 내뱉을수록 욕먹는 사람은 욕을 한 사람이 아니라 욕을 먹는 쪽이다. 그것이 바로 백종원 매직'이다. 시청자가 원하는 것은 밑바닥까지 추락한 인간이 어떻게 기어올라올 것인가에 달려 있다. 씨이이발, 이 사람은 절대 변하지 않을 거야 _ 라고 백종원이 백기 들고 가게 문을 힘차게 닫고 나갈 때 방송은 투 비 컨티뉴 라는 자막이 흐르며 시청자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결정적 순간에 뒷목 잡고 쓰러지며 끝나는 막장 일일 드라마'처럼 말이다.

시청자는 고분고분하고 말귀 잘 알아듣는 골목식당 출연자에게는 관심이 없다. 즉, 착한 쥐가 쥐가천성'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고 못된 개새끼의 개과천선에 관심이 높다(이런 고급 말장난은 대한민국에서 오직 이 블로그에서만 맛볼 수 있는 문장이다). 그렇기에 << 백종원의 골목식당 >> 에서 백종원은 방송이 진행될수록 발언 수위가 점점 높아진다. 침을 놓던 그가 방향을 전환하여 침을 뱉기 시작한 이유이다. 지난 주말에 충무로 다방에 앉아서 이런저런 수다를 떨다가 백종원 이야기를 하다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욕하면서 보는 막장 드라마 시청자를 붙잡기 위해서는 어제보다 더 자극적인 상황 연출이 필요하듯이 백종원의 골목식당도 막장드라마化 될 것이다.

종극에는 백종원이 솔루션을 신청한 가게주인의 멱살을 잡거나 진짜로 침을 뱉는 지경까지 가리라. 자극에 중독이 되면 보다 더 강한 자극을 원하듯이 말이다. 아니나 달라. << 백종원 골목식당 >> 예고편은 백종원이 침을 뱉는 수준이 한층 강화된 모습이 나오는 모양이다. 이 방송 기사를 모니터한 기사 제목이 모두 < 백종원 구역질 분노 " 폐업하는 게 낫겠다 " 충격 식당 등판 ? > , < 이번에 또 최악의 식당 등장하나 ? > , < 백종원 구역질 + 폐업 요구까지, 홍탁집 뛰어넘는 가게 나오나 ? > .........   침을 놓던 백종원이 침을 뱉기 시작하면서 인기를 얻더니 이제는 침을 뱉는 수준의 오버액션에 해당하는 구역질 신공을 선보일 모양이다. 최악의 식당은 이제 최악의 악당처럼 읽힌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열광하는 멘토의 진짜 모습이다. 짓밟을 대로 밟아 놓고서는 다시 일으켜세우며 위로하는 멘토의 애티튜드를 보다 보면 영화 << 300 >> 에서 크세르크세스가 " 나는 관대하다, 나는 관대하다, 나는 관대하다 " 고 말하는 대사가 생각난다. 크세르크세스는 언제나 관대하다. 단, 조건이 있다. 나는 관대하다. 만약 나에게 무릎을 꿇는다면 너에게 스파르타는 물론이고 모든 그리스를 지배할 수 있는 왕위는 물론이고 부귀와 영화를 주겠다. 하지만 끝까지 항전하면 스파르타의 모든 건물, 사람, 가축, 풀 한 포기조차 모조리 불태우고 스파르타를 역사에서 지우겠다.” 

사람들은 백종원이 요식업계의 허준이라며 칭송하지만, 정신과 의사도 정작 다른 의사에게 정신과 상담을 받듯이, 그도 약을 처방받아야 할 환자'다. 내가 약사는 아니다만 그에게 내릴 약은 " 조까라마이싱 " 이다. 이름이 제법 거칠긴 해도 이보다 약효가 빠른 약은 아스피린이 유일하다. 백종원 씨, 조까라마이싱 캡슐 한 알 먹고 기운 차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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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14 09: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8-12-15 07:02   좋아요 0 | URL
그러게 말입니다. 백종원 이 양반 사기꾼이죠. 요리 좀 한다는 사람들은 미원으로 맛을 낸다고 하면 일단 하수잖아요. 서양도 서양요리사의 기준이 설탕을 쓰느냐 안 쓰느냐에 명성이 다르다고 하더군요. 서양에서는 설탕으로 맛을 내는 요리사를 하수 취급한다고 합니다.
아, 글구 진짜 궁금한 게 백종원 가게 음식 맛있나요 ? 난 진짜 맛이 없더라고요. 그리고 싸지도 않아요... 뭐가 백종원 가게가 저렴하고 맛있다는 것인지 이해를 못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