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어주는 남자 시공사 베른하르트 슐링크 작품선
베른하르트 슐링크 지음, 김재혁 옮김 / 시공사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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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어주는 남자


 



                                                                                                                    주정뱅이에 가까웠던 내가 일주일에 한 번 술을 마시다 보니 오늘은 귀한 날이다. 소주 한 병과 맥주 한 병을 사서 술상을 차렸다. 호박을 삶아서 믹서기로 갈은 호박 스무디를 만들어 맥주 500CC 잔에 채우고 호박으로 만든 부침개와 돼지고기 큼직하게 썰어 넣은 김치찌개와 밥 한 공기를 담았다.

맥주컵에 소주를 담고 그 위에 거품이 나지 않도록 맥주를 부었다. 물론, 이 과정은 매우 신중해야 한다. 소맥을 탈 때에는 거품이 생길 때의 공간을 계산에 넣어야 한다. 소맥을 타기 위해 (소맥을 타기 위해서만 사용하는 특수한) 소맥 전용 젓가락 한 짝을 컵에 담고 다른 한 짝으로 젓가락 쇠기둥을 내리친다. 이때에도 신중한 계산이 필요하다. 타악의 힘이 젓가락 쇠기둥에 미치는 영향과 맥주 탄산이 이에 반응하는 격랑의 소용돌이를 계산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은 쉽지 않은 일. 거품을 만들어 거품을 맥주 유리컵 꼭대기까지 끌어올린다는 것은 시시포스가 바위를 끌고 산꼭대기에 오르는 것만큼 쉽지 않은 일.

이 작고 즐거운 수고를 위해 나는 오늘도 캄캄한 밤에, 컴컴한 방에 홀로 정좌를 하고 젓가락 쇠기둥을 내리친다. 참선하는 마음, 이와 같으리라.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소맥을 24시간 동안 굶어서 허기진 위장에 쏟아 넣는다. 방은 고요하다. 티븨도 없다. 아름다운 여자를 생각했다. 알싸하게 퍼지는 술기운이 좋다. 안주로 호박 스무디를 마셨다. 놀라운 사실은, 아니 씨발.......  소맥 딱 한 잔' 마셨을 뿐인데 그만 인사불성이 되어 작별인사도 못하고 죽은 듯이 잠을 잤다는 사실이다.  한때 " 말술 " 을 먹었으나 이제는 나이가 들어 " 벼룩(의 간으로 담근)술 " 에도 잠을 자는구나. 일어나 보니 새벽이다. 이 황망함. 뭐랄까 ?  고자가 된 듯한 느낌 ?!  내가...... 고자라니. 아, 내가 고자'라니.  

차라리 계룡산 쌍쌍봉 아랫골의 고라니로 살고 싶다아.  새벽에 일어나 남은 벼룩술을 마셨다.  벼룩의 간이 이런 맛이로구나. 문득, 사랑이라는 것도 소맥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신이라는 시금털털한 보리 맥주와 나라는 맑고 독한 소주가 섞이는 과정. 처음에는 서로의 밀도가 달라서 맥주 아래 소주가 가라앉으나 어느 순간 타악의 힘으로 젓가락 쇠기둥을 치는 순간  맥주와 소주가 격랑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들어간다는 것, 그 하얀 포말.  아, 저 격랑.  그것이 사랑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눈물 젖은 빵을 먹지 않은 자는 인생을 논할 자격이 없듯이, 소맥을 말아먹지 않은 자는 사랑을 이야기할 자격이 없다. 나는 속으로 말한다. 소맥이 얼마나 맛있다고.

10년 전에 읽었으나 읽은 줄도 모르고 다시 읽은 소설(책 읽어주는 남자)을 생각했다. 이 소설이 오프라 윈프리 쇼의 북클럽 코너에서 소개되었을 때 패널 - 들 사이에서 격렬한 논쟁이 벌어진 적이 있다.  논란의 핵심은 스물한 살 차이가 나는 열다섯 살 소년 미하엘과 서른여섯 살 한나의 사랑이 과연 사랑이라 말할 수 있는가 _ 라는 것이었다. 어떤 이는 사랑이 아니라 그루밍'이라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이 질문을 받은 베른하르트 슐링크는 화가 나서 두 사람의 나이 차이가 문제가 되는 것은 오로지 미국이라는 나라에서만 벌어지는 현상이라고 지적한 후,  유럽의 독자들은 단 한 번도 그런 질문을 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미하엘과 한나를 통해 전쟁 이전 세대와 전쟁 이후 세대의 세대 갈등을 말하고 싶었다고 이야기했다. 그런데 나는 조금 다른 차원에서 " 한나 " 를 이해하기로 했다.  프로이트와 라캉은 아이가 문자 세계로 진입했는가 못했는가에 따라 상상계와 상징계로 분류했다.  상상계에 머무르는 아이는 당연히 문자 세계에 진입하지 못했기에 입말(구술성)에 집착할 수밖에 없다.  한나 슈미츠'가 그런 경우'다.  그녀는 몸은 성숙한 여인이지만 구순기에 고착된 어린아이'이다.  그렇기에 그는 선악의 구별이 없다.  그녀는 자신의 나치 부역에 대한, 그에 따른 죄의식이 없다.  그녀는 순수한 의미에서 無知이다.  그런 의미에서 미하엘과 한나의 사랑은 그루밍'이 맞다. 

미하엘보다 한참 어린 이는 한나 슈미츠라는 갓난 여자아이'이다. 한나는 교도소에서 문자를 배운다. 

그녀는 힘을 잔뜩 주어 썼다. 한가운데를 접은 편지지의 아래쪽 면과 위쪽 면에 박힌 글씨 자국을 읽을 수 있을 정도였다. 얼핏 보면 그것은 어린아이가 쓴 글씨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어린아이의 글씨체에서 서툴고 어색하게 보이는 부분이 여기서는 듬뿍 힘이 들어가 있었다. 선들을 모아 글자를 만들고, 글자들을 모아 낱말을 만들기 위해 한나가 극복해야 했던 어려움이 눈에 들어왔다. 어린아이의 손은 이리저리 마구 헤매기 때문에 글씨가 나아가는 길의 안쪽에다 손을 붙잡아두어야 한다

-255쪽

그것은 구순기 고착에서 벗어나 성인의 세계로 진입했다는 상징이다. 비로소 한나는 성인이 되어 선악을 구별하게 된다.  결국 한나는 석방 예정일 전날에 목을 매달아 자살을 선택한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텍스트를 이해할 수 있고 능력에 따라 행간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나는 어린이로서 사랑을 시작했고 어른으로서 생을 마감했다. 이 소설을 당신에게 추천한다. 소맥 마시며 소설 읽기 좋은 새벽이다. 죽기 아니면 까무라치기 좋은, 캄캄한 겨울 새벽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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