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옥, 손창섭 그리고 페미니즘
문학에 문외한인지라 한국 문학의 전설로 통하는 김승옥의 << 무진기행 >> 을 읽었을 때 이 작품이 가지고 있는 문학적 가치를 가름하지 못하는 쪽이다.
어느 문학 모임에 갔을 때 S 대 국문과 출신이라는 이가 뒤풀이 장소인 호프집에서 이 작품을 " 문체의 혁신과 내용의 전복 " 으로 설명하던데, 나는 그가 내뱉는 장광설이 하도 따분해서 하모니카를 연주하듯이 치킨 닭 모가지를 두 손으로 공손하게 잡은 후에 박힌 살을 세심하게 뜯는 데에만 열중했다. 발라먹는 이 재미, 아시려나 ? 그는 필사할 한국 문학으로 이 작품을 첫 번째로 뽑던데....... 글쎄올시다, 나는 모르겠습니다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 내가 보기에는 이 작품이 가지고 있는 " 문체의 혁신1) " 은 인정하지만 " 내용의 전복 " 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 무진기행 >> 에서 서른셋인 화자는 제약회사 중역으로 아내의 도움으로 벼락출세한 남자'다.
출세를 위한 사랑 없는 결혼으로 읽히는데, 권태에 빠진 남자는 잠시 휴가를 얻어 세속을 벗어나 무진으로 떠난다. 살면서 좌절을 할 때나 실패를 할 때마다 무진을 찾았다는 화자의 고백으로 미루어 보자면 무진으로 떠난다는 행위는 고개 숙인 남성성'을 회복하려는 수단으로 보인다. 그곳에서 그는 하인숙이라는 처녀를 만나 섹스를 하며 사랑에 눈을 뜬다는 내용. 그는 < 세속의 명예 > 이냐 < 탈속의 사랑 > 이냐를 놓고 잠시 고민하지만 이내 무진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하룻밤이지만 즐거웠어 ~ 내가 이 소설을 읽으면서 느낀 것은 여성'을 단순하게 오로라민 C 같은 활력 보조제 따위로 취급하려는 것이었다.
내가 관심을 가지는 것은 하인숙이라는 이름이다. 이름 순서를 도치하면 하숙인이 된다. 그러니까 여인숙을 떠올리게 하는 하인숙은 하숙집‘에 사는 하숙인이란 의미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 나 > 라는 화자가 일면식도 없는 하인숙이라는 여인과 하룻밤 몸을 섞다가 떠나는 장면은 일종의 여인숙에 머물렀다가 1박 하고 떠나는 2일 여행인 셈이다. 김승옥이 이 소설을 쓰면서 그것을 의도했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설령 의도하지 않았다고 해도 어쩌면 무의식적 발현의 결과라는 생각이 든다. 주인공 < 나 > 는 하인숙을 만나 진정한 사랑을 느끼지만 그 이면에는 하인숙을 값싼 하급 여관1) 정도로 취급하려는 작가의 애티튜드를 읽을 수도 있다.
내가 주목하는 작가는 손창섭이다. 김승옥의 문체와 문장이 아름다울 정도로 세련되었다면 손창섭은 지식인 특유의 계몽적 태도가 없으며 정직하고 꼿꼿한 느낌을 준다. 단편 << 신의 희작 , 1961 >> 은 압도적 몰입을 가능하게 만드는 걸작이다. 이 소설에서 주인공 S 는 자신을 손창섭이라고 밝힌 후 이야기를 전개한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치즈코'도 실제로 그의 아내 이름'이어서 한국 문단에서는 이 작품이 자전 소설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소설 내용을 보면 S 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개새끼'다. 읽다 보면 이런 개새끼도 없다. 이 소설이 자전 소설( S = 손창섭 )이라면 손창섭은 개새끼'인 셈이다. 그런데 실제로 손창섭은 법 없이도 살 만큼 정직했으며 내성적인 성격에다가 누구보다도 애처가'였다.
그러니까 이 소설은 " 팩션 / faction " 이 아니라 " 픽션 / fiction " 인 셈이다. 그가 이 소설에서 말하고 싶었던 것은 한국 남자라는 사실에 대한 자기 혐오'가 깃든 자기 부정이 아니었을까 ? 손창섭 문학은 페미니즘적 시각으로 다시 읽어야 할 매우 중요한 텍스트'다. 특히 << 삼부녀 >> 는 매우 흥미로운 펄프픽션‘이다. < 주간여성 > 에 연재되었다가 1970년에 출간된 이 소설은 원조교제와 계약 가족이라는 파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어서 막장 세태 통속소설로 치부되고 있지만 시대적 상황을 고려하면 한국문학 사상 이보다 파격적이며 전복적인 소설은 이 소설이 유일하다. 이 소설을 읽다 보면 뭐, 이런 막장 소설이 있나 _ 하며 한탄하게 된다.
아내는 시누이 남편과 바람이 나서 이혼한 상태이고, 남편은 여대생과 원조교제하는 사이이다. 결국 가족은 해체되어 모두 집을 떠나지만 남자는 떠난 자리를 마이너한 타자 - 들'로 채운다. 원조교제하는 여대생을 유사 아내로 모셔오고 술집에서 일하는 친구의 딸을 딸자식 역할로 데려온다. 새로운 가족을 재구성한 셈이다. 과연, 이 나쁜 가족극은 성공할 수 있을까 ? 얼핏 이 소설은 남자의 성적 판타지를 총족시키기 위한 싸구려 통속소설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뜯어보면 정반대로 가부장 욕망과 가족 역할의 재배치를 다룬다. 그렇기에 이 소설은 오히려 페미니즘적 시각으로 다시 읽어야 한다고 내가 주장하는 이유이다. 손창섭이 이 소설에서 주장하고자 했던 것은 낡은 가부장제 해체'이다.
그는 국내 유력 문학상을 두 번이나 수상한 뛰어난 작가였지만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다. 한국 정치에 대한 혐오와 한국 남성(가부장제)에 대한 경멸'이 반영된 것처럼 보인다. 나중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그는 한국을 떠나 일본에 정착하며 개명한 이름은 “ 우에노 마사루 ” 였다. 우에노 마사루, 부계의 성'을 따르는 한국 (부)성'을 거부하고 아내 이름을 따랐으니 모계의 (모)성을 받아들인 것이다. 완벽한 자기 부정인 셈이다. 그는 2010년 6월 23일 향년 88세로 숨을 거두었다. 숨을 거두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 말은 아내에게 " 그동안 잘 대해줘서 고맙다 " 는 말이었다.
1) 이 소설의 문체와 문장은 정말 모던하다. 완벽하다 ! 안개에 대한 풍경 묘사는 압권이다.
2) 하숙집의 사전적 의미가 값싼 하급 여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