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죽던 날,  화장실 변기가 막혔고 멀쩡했던 노트북이 고장 났다.   개는 피 수혈을 해야 할 정도로 심각했고  나는 그럴 때마다 피를 말리는 심정이었다. 피 수혈 1회 비용이 150만 원이어서 만만치 않는 부담을 주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미룰 수는 없었다.  병원 입원비만 1000만 원을 훌쩍 넘었고 공사비와 노트북 수리비를 더하니 통장 잔고는 0원이었다. 직장은 7월에 이미 그만둔 상태'였다. 원래 계획은 통장에 남은 1000만 원이 조금 넘는 돈으로 알뜰하게 생활을 하면서 집에서 훌륭한 장편소설 하나를 쓰는 것이었다. 나름, 완벽한 계획이었다. 나는 일필휘지로 써 내려가는 내 문장에 대한 확신을 가졌던 상태였고,  개는 건강했으며,  변기는 무쇠라도 씹어삼킬 만큼 흡인력이 좋았기 때문이었다.  또한 집에 처박혀 글만 쓰면 1년 정도는 충분히 버틸 것으로 예상했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예상을 빗나갔다. 앞으로는 틈틈이 전단지 붙이는 아르바이트도 하고 인형 눈깔 붙이는 부업이라도.... 과연, 입에 풀칠은 할 수 있을까 ?  가난하면 굶어죽을 수도 있다는 막연한 상상이 현실로 다가오니 상상 그 이상이다. 슬프다. 사랑하는 개를 잃었다는 것도, 굶어죽을 수도 있겠다는 막막한 공포도, 오늘 아무 생각 없이 현관문을 열고서는 펄럭아 _ 라고 외쳤던 나의 착각도. 사무엘 베케트가 그런 말을 했다. 불행보다 더 재미있는 것은 없다고 ! 그래서 이 비루한 불행'을 기록으로 남긴다. 행복하시라. 당신의 즐거움을 위해서 내 불행을 기록으로 남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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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9-11-14 06: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전에 곰곰발님께서 올리셨던 사진 속의 개가 떠오릅니다... 크고 곰곰발님을 잘 따랐던 녀석 같았는데 안타깝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9-11-14 12:53   좋아요 1 | URL
아마 성정이 지랄같아서 천국에는 가지 못했을 것 같긴 합니다만, 지옥에서 나를 기다린다면 함께 가야겠죠..

푸른괭이 2019-11-14 1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쇠라고 -> 무쇠라도 /

님의 서재에 자주 오는데, 새 글 보고서 반가운 마음에 처음으로 댓글 달아봅니다...^^;
사람은 가난하면 굶어죽을 수 있겠...더라고요 ㅠㅠ ^^;
님의 글을 보면 소설(픽션)인지 사실(논픽션)인지 헷깔릴 때가 많던데,
‘펄럭‘이가 진짜 죽은 건가요?? ㅠㅠ

곰곰생각하는발 2019-11-14 12:52   좋아요 0 | URL
괭이 님의 새책을 읽었는데 펄럭이 때문에 경황이 없어서 리뷰도 못 올렸네요. 10년 넘게 키우던 개입니다.
11살, 리트리버 견종, 몸무게 35kg인 수컷이었습니다.


+
책 잘 읽었습니다.

나와같다면 2019-11-14 1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 잘 생기고 착해보이던 리트리버.
마음이 너무 아프시겠어요.

곰곰생각하는발 2019-11-16 07:44   좋아요 0 | URL
네에. 고맙습니다. 허전하네요. 이삿집 다 빼고 나면 갑자기 살았던 집이 넓어보이는 것처럼
집이 너무 넓어 보입니다.

2019-11-15 23: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1-16 07: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                                        


고 백 은   바 람 개 비 와   같 다   :












발화된 언어는 물리적 성질을 갖는다






- 날 사랑한다는 말을 안 했어요
- 굳이 할 필요가 없는 말도 있소
- 난 그 말을 듣고 싶었는데 그는 말해주지 않았어요
 
_ 동사서독 中 







영화 << 동사서독 >> 에서 장만옥은 장국영을 사랑한다. 장국영도 장만옥을 사랑한다. 끝 !  하지만 여기서 끝나면 멜로-서사'가 아니라 메로나와 누가봐-서사'이다.  선남선녀가 서로 좋아하다 보니 그 사랑은 결실을 맺을 것 같지만 장만옥은 장국영의 형과 결혼을 한다. 그리고 장국영은 홀로 사막에 여관을 짓고 무사의 삶을 산다. 도대체 그들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 


장국영을 잘 아는 무사가 장만옥을 찾아가 그녀에게 묻는다. " 왜 당신은 사랑하는 장국영을 배신했는가 ? " 그녀는 비를 잔뜩 머금은 검은 구름처럼 슬픈 표정으로 말한다. " 날 사랑한다는 말을 안 했어요. " 그 말을 들은 무사는 굳이 할 필요가 없는 말도 있소 _ 라고 말한다.  당신을 사랑한다는 마음 표현을 굳이 말로 표현해야 아느냐는 소리'이다.  여자는 말한다. " 난 그 말을 듣고 싶었는데 그는 말해주지 않았어요. "  그 고백 이후, 그녀는 자살을 선택한다. 이 장면은 << 동사서독 >> 이라는 난삽한 서사의 핵심이기에 이 행간을 이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남자는 言(말)보다 心(마음)의 우위를 주장한다. 사랑한다는 말보다 중요한 것은 사랑하는 마음'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여자는 心보다 중요한 것은 言이라고 주장한다. 이 간극이 동사서독의 핵심이다.  고백은 바람개비와 같다. 바람개비는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을 볼 수 있게 만드는 도구'이듯이 고백은 그 사람의 마음을 볼 수 있는 장치'이다.  고백은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심성)을 눈에 보이는 현상으로 드러내는 방법이라는 점에서 " 물성 " 을 띤다.  발화된 언어는 공간을 차지하거나 부피와 질량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물질'이라 할 수는 없으나 


고백 행위가 물성'을 갖는다라는 접근은 충분히 가능하다.  그렇다면 장국영이 유심론자'에 가깝고 장만옥은 유물론자에 가깝다.  일상생활 전반에 걸쳐,  마음은 물성을 띤 현상으로 나타난다.  목이 마른 사람에게 물잔을 건네는 것, 그러니까 목이 마른 사람이 받은 잔(盞)은 물을 건네준 사람의 심성이 물성으로 전환되는 순간이다. 선의가 물잔이라는 물성으로 변환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주고받는 것이 인지상정이어서 인간 관계란 결국 물성을 띤 물적 관계의 교환인 셈이다. 영화 << 동사서독 >> 에서 장국영과 장만옥의 엇갈림은 결국 물물교환의 실패'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말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법이다. 그래서 나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고 말하는 초코파이의 유심론을 볼 때마다 말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이 인간의 속성이라고 말대답하고 싶다. 그런 점에서 나는 유물론자'다.


서로가 서로를 사랑한다면 당당하게 말로써 고백하라. 자본이 필요 없는 투자이자 가장 저렴한 기부 행위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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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컴맹 2019-10-19 18: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갑자기 나는 왜 유심론자가 된건지 이해못해서 번복해 읽지만

곰곰생각하는발 2019-10-20 13:13   좋아요 0 | URL
21세기 님의 문해력 때문이 아니라 저의 문장력에 문제가 있어서 그렇습니다.. ㅎㅎㅎ
 












해석의 독점에 반대한다







비평가들이 일삼는 작품에 대한 해석은 예술에 대한 가장 잔인한 테러'이다

- 해석에 반대한다, 수전 손택







                                                                                                 언제부터인가 신간 소설 뒤편에 부록처럼 평론가의 " 작품 해설 " 이 붙기 시작했다.  종종, 고전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서 작품 헤제'가 실리는 경우는 있었지만  초판 1쇄 발행인 책, 그러니까 신간 소설이 대중 앞에 첫선을 보이기 앞서 (평론가의 검증 과정을 거친 후) 소설 뒤에 작품 해석 부록을 함께 제공하는 1+1 전략을 본격적으로 선보인 것은 출판사 문학동네'였다. 


그러자 우후죽순으로 여러 출판사에서 이 스타일을 모방했고,  주례사와 정실 비평은 한국 출판 문학의 랜드마크'가 되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출판사와 이해관계에 있는 (출판사에서 운영하는 문예지에서 활동하는) 평론가들이 그 출판사에서 출간되는 작품의 평론을 작성한다는 점이다.  문제는 매의 눈이 되어 날카롭게 작품을 해제해야 될 평론가들이 썩은 동태 눈깔이 되어 사탕발림을 남발한다는 데 있다. 내가 보기엔 그 소설의 주제는 " 현대인의 불안 " 인데 평론가들은 " 현대인의 불알 " 이라고 하니 이 간극을 대체 어찌하오리까. 그래, 현대인의 불알은 소중하다아.


독자는 평론가'라는 권위에 눌려 그들이 해석한 텍스트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그들은 영화 << 넘버3 >> 에 등장하는 조필(송강호 분) 이다.  평론가들이 목에 핏대 세우며 " 내, 내내내내가 현정화라면 현정화야 ! " 라고 소리치면 임춘애'라고 믿었던  독자는 그만 할 말을 잃게 된다. " 그래, 현정화겠지. 아무렴 !  한국 문학, 최고의 문학 박사님께서 현정화라고 하시니 현정화일 거야. 그래, 현정화는 날마다 라면만 먹고 육상에서 금메달 3개나 딴 육상 선수'야. " 그러다 보니 출판사에 소속된 문학 박사님께서 작성하시었던 " 평론을 가장한, 출판사 홍보 자료 " 는 권위의 날개를 달고 


지붕 뚫고 하이킥을 하기에 이른다. 그들 말마따나 어떤 작품은 " 전무후무한 걸작 " 이 되고 " 전복적 상상력 " 이 되고,  또 어떤 작품은 " 출구 없는 현대인의 불알 " 이 된다.  아무렴, 그렇고말고요. 현대인의 불알은 소중하니까 !  출판사가 자신과 이해관계에 놓인 평론가를 동원하여 평론(부록)을 제공하는 태도는 기본적으로 독자의 문해력이 낮다는 가정에서 출발한 애티튜드'이다.  너희, 문학 무지렁이들이 무엇을 알겠느냐.  문학 박사님이 가르쳐주마. 뭐, 이런 태도 ?!  그러니깐 평론 부록은 독자를 낮잡아보는 문학 엘리트의 지적 허세'인 것이다. 


내가 지금까지 보았던 주례사 비평의 최고봉은 남진우가 신경숙의 << 외딴 방 >> 에 남긴 평가였다. 그는 이 소설을 <<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 과 겨뤄도 손색이 없는  최고의 노동소설이라고 극찬했는데 사실 신경숙의 << 외딴 방 >> 은 노동소설이 아니라 반노동 정서를 악랄하게 담고 있다는 점에서 남진우의 주례사는 괴랄하다. 주인공 < 나 > 가 노조를 배신하면서 말했던 해도 해도 안 되는 일이 있다( " 해도 해도 안되는 일이 있는 것이다우리들의 희망은 소모전이었던 것이다 " )는 변명은 


7,80년대 노동 운동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신경숙의 퇴행적 사회 인식을 엿볼 수 있다. 신경숙이 보기에 7,80년대 노동 운동은 쓸모 없는 소모-전'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녀는 줄기차게 주인공 < 나 > 의 입을 빌려서 노동 운동에 대해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는데, 이 행위 자체가 정확하게 강경 자본가 우파의 " 정치색 " 을 띤다는 점에서 < 나 > 가 강박적으로 정치에는 관심이 없다고 고백하는 언술은 이율 배반에 해당된다. 노동 운동을 단순하게 " 해도 해도 안 되는 ㅡ " 무용한 일로 치부하는 것은 자본가가 노조를 무력화하기 위해서 노동자를 협박하거나 회유할 때 


자주 사용하는 언술이라는 점에서 << 외딴 방 >> 에서 주인공 나는 < 외피는 구로공단 여공 작업복을 둘렀지만 내피는 자본가 / 기득권 / 수구 보수 남성의 실크 넥타이를 맸다는 점에서 속내를 숨긴 캐릭터 > 로 읽힌다. 그것은 여성W이라는 외피를 둘렀지만 내피는 뒤집어진 남성 M 이라는 간교와도 일맥상통한다. 광주 시민을 학살했던 학살자(대통령)의 얼굴보다 싫은 것이 무우국을 끓이려고 사다 놓은 무우가 꽝꽝 얼어버려가지고 칼이 들어가지 않는 가난이라고 자신있게 말하는 화자의 철딱서니 없는 논리를 앞세우는 << 외딴 방 >> 이 난쏘공을 뛰어넘는 노동소설이라고 ????! 


책 뒷면에 부록처럼 달린 주례사 비평과 정실 비평으로 인해 독자가 작품을 읽고 주체적으로 작품을 해석할 자유를 잃은 결과가 바로 한국 문학의 몰락이었다. 독자의 이해를 돕겠다는 선의와는 달리 출판사의 1+1 전략은 오히려 독자의 작품 해석을 방해하는 주범이 되었다. 작품 해석의 주체는 평론가가 아니라 독자의 몫이 아닐까 ? << 조국대전 >> 이라는 대하소설의 한 꼭지였던 < 김경록PB KBS 9.11 보도 파문 > 을 보면서 느꼈던 것은 출판사와 평론가의 끈적끈적한 관계가 언론과 검사의 관계와 매우 유사하다는 점이었다. 검사는 << 조국 >> 이라는 텍스트 독해를 독점한다. < 조국 > 이라는 일상성을 다룬 사소설 장르는 검사에 의해 가족 범죄 사기극(피카레스크) 장르로 변질된다. 


그리고 검사의 말이니 믿고 의심하지 않는 기자의 태도는 문학박사님의 텍스트 독해이니 어련하시겠어 _ 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독자를  닮았다.  검사님이 " 내가 현정화라면 현정화야 ! " 라고 핏대 세우며 외치면 기자들은 받들어, 총 !  대중 앞에 첫선을 보이기 앞서 먼저 평론가의 검증을 받고 나서 그 평론이 책의 부록처럼 유통되는 출판 시스템은 전 세계에서 대한민국이 유일하듯이 검사의 말이라면 팩트 확인도 없이 받아쓰는 기자들도 전 세계에서 대한민국이 유일할 것이다. 주례사 비평의 결과가 한국 문학의 몰락을 가져왔듯이 정언유착도 결국에는 한국 기자의 몰락을 가져올 것이다. 


KBS이라는 거대한 공영 방송사'가 1인 유튜버에게 발려서 쪽도 못 쓰는 광경이 명징한 징후'이다. KBS 법조팀에게 묻고 싶다. " 정말 현정화는 짱깨와 라면만 먹고 달려서 육상에서 금메달 3개나 땄니 ?  너희들, 밥은...... 먹고 다니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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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9-10-13 19: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리하야 무지몽매한 저같은 독자는
저만의 오독을 즐기게 되었더라는
거랍니다.

독서의 주체는 분명 나일텐데 해석
까지 타자에게 맡기는 건 정말 말
도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주례사 비평 혹은 평론
해제에 대한 타격은 가열찼습니다.


이번 대전을 치르면서 검찰과 언론
개혁이야말로 시대의 과제라는 생각
이 들었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9-10-13 19:25   좋아요 1 | URL
그래서 저는 소설 뒤에 있는 해제 읽지 않습니다. 웃기잖아요.
지들이 뭔데 이 소설의 의미는 이런 것이란다. 독자들아.

아니, 돈은 내가 냈는데 왜 지들이 이렇게 읽어, 라고 강요하는지.... 웃긴 일이죠.....
 




                                     


미 치 도 록   꼴 리 고   싶 다   :












남성애와 가족애와 인간애가 동시에 조우할 때  :














                                                                                                  카를로스 푸엔테스의 2인칭 소설 << 아우라 >> 를 흉내 내자면    :   < 너 > 는 인간을 혐오하기 때문에 인류를 사랑하게 되었다. 만약에 인류마저 혐오하게 되었다면 너라는 놈은 희대의 범죄자'가 되었을 것이다. 여기서 너'는 나다. 그러니까 인류애'라는 카테고리는 내 안의 악마(성)을 컨트롤하기 위한 최후 보루인 셈이다. 


이 형용모순이 이율배반이라고 말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이 형용모순과 이율배반이 나의 정체성'인 셈이다. 인간을 싫어하다 보니 인간 몇 놈이 모이면 꼴도 보기 싫다. 오고 가는 입말에 싹트는 우정 운운하지만 내가 보기엔 오고가는 입말에 싹트는 것은 빈 쭉정이'일 뿐이다. 우리가 이 자리에서 듣고 싶은 것은 진실 따위가 아니라 " - 날씬해졌다 " 는 말과 " - 예뻐졌다 " 는 거짓말'을 듣고 싶을 뿐이다. 그나마 " - 우리가 남이가 " 라는 우정 과시형 거짓말에 비교하면 양반이다. 알탕 모임에서 누군가가 내게 우리가 남이가 ! _ 라고 외치면 


나는 화를 억누르지 못하고 그만 니힐하며 시니컬하게 말대답을 하게 된다. 그러면 우리가 남이지 님이니, 니미. 그러다 보니 가족주의보다는 개인주의를 옹호하게 되었다. 골방에서 죽은 듯, 혹은 죄지은 듯, 조용히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인류 번영에 이바지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인간이여, 제발 닥치고 골방에서 조용히 살아라. 취향이 이토록 고약하다 보니 지나치게 남성성과 가족애를 강조하거나 인간애를 찬양하는 영화'는 아연실색 넘어 아연질색하게 된다. 영화 << 실미도 >> 는 이 모든 것을 강조해서 나를 무간지옥으로 이끈 대표적 영화'에 속한다. 


IMF 이후 게릴라성 집중호우처럼 집요하게 양산되었던 " 고개 숙인 남성을 위로하는 영화-들 " 을 보면서 깨닫게 되는 것은 한국 남성의 뻔뻔함'이다. IMF 이후, 한국 영화들이 고개 숙인 남성을 위로하는 동안 여성이라는 존재는 스크린에서 사라졌다. 기껏해야 영화 << V.I.P >> 엔딩 크레딧에서는 여자 시체1,2,3,4,5,6,7,8,9,10,11 따위로 등장하거나 << 남한산성 >> 에서 대사를 하는 여성은 고작 5살짜리 여자아이'가 전부였다. 또한 영화 속에서 비중 있게 등장하는 여성은 산 자가 아니라 죽은 자(괴물, 미친 여자, 유령 따위)이다. 가부장 사회에서 IMF 때 남성이 고생했다면 여성은 개고생했을 것이 자명한 데에도 그것에 대한 성찰은 없다. 


영화 << 실미도 >> 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다 목에 핏대 세우며 외친다. " 우린 죽디 않아 !!!!!!!!!!!!!!!!!!!!!!!!!!!!! " 나는 이 샤우팅이 사회/경제적 발기 불능에 대한 한국 남성의 신경 쇠약 직전의 정서적 지랄'로 읽었다. 나는 극장에서 혼잣말을 했다. " 그래, 다시 꼴릴 수 있어 !  실미도 대원들, 용기 내...... "  내가 이 영화가 괴랄했던 이유는 임포텐츠 환자들이 집단으로 나와 말할 때마다 느낌표 열 개를 남발하면서 이렇게 외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 나도 꼴리고 싶다아아아아 !!!!!!!!!!!!! " 맙소사, 이런 영화가 천 만 관객을 동원했다니.  


미치도록 꼴리고 싶다는 은밀한 욕망을 떼창하다니. 오오. 하나님,  맙소사. 







영화 << 마이파더, 2007 >> 는 어릴 때 미국으로 입양을 간 남성이 성인이 되어 사형수인 아버지를 찾는 과정을 그린,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휴먼 드라마로 모성애 못지 않게 부성애를 강조한 영화'다. 아따, 그 부성애가 단장의 고통을 리얼리티하게 전하니 눈물이 박연폭포처럼 쏟아진다.  그런데 실화 속 주인공인 사형수는 모녀를 수십 조각으로 토막살인 한, 매우 극악한 흉악범이었다. 여기서 반전 하나 ! 실제로 아버지와 아들은 부자 관계가 아니었다. 사형수였던 아버지'가 사실은 가짜였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만들어졌다. 그 시대에는 고개 숙인 남성을 위로한답시고 이런 인간조차 휴먼이라는 이름으로 둔갑하는 시대였다. 참... 좆같은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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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술의전당과  함민복 시인  :











너는 계획이 다 있구나










                                                                                                  아무 생각 없이 옷을 벗습니다. 불알 두 쪽이 흔들렸지만 저의 다음은 변함이 없습니다. 샤워를 합니다. 샤워를 마친 후 옷을 입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살다 보니 너무 일찍 차비를 차렸습니다. 집에서 개를 키운 사람이라면 외출복을 미리 입은 채 집안에서 뒹군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란 사실을 모두 알고 계실 겁니다. 개털은 옷에 묻거든요. 


옷을 다시 벗은 다음에 밍기적거리다가 두 시간 후에 다시 입고 출발할 것인가, 아니면 그냥 일찍 집을 나설 것인가 ?  고민하다가 집을 나서기로 했습니다. 예상보다 2시간 일찍 서초역에 도착했지만,  서초역은 이미 인산인해로 발디딜 틈조차 찾기 힘들었습니다.  서초역 7차 촛불집회 때 이야기'였습니다. 이번 8차 집회에는 << 기생충 >> 에서 아버지의 충고를 받아들여 미리 계획을 세우기로 했습니다.  ㉠ 출발 두 시간 전에 샤워를 한다. ㉡ 샤워를 끝마치면 옷을 입고 대문을 박차고 교대역 9번 출구로 향한다. ㉢ 서초역은 이미 포화 상태이니 3호선 교대역에서 내려 산책을 즐기며 서초역 방향으로 걸어가리라. 


㉣ 미리 편의점에 들려 생활용품을 마련한다. 아버지, 저에게도 계획이란 것이 있습니다 !  브라보 ~ 착착, 진행되었습니다.  5분 동안 샤워를 하고 25분 동안 머리를 말리고 4B 연필로 눈썹을 그리고 옷을 입었습니다. 지난 집회에서는 밤이 되면 날씨가 쌀쌀해질 것을 대비하여 따스하게 입고 갔으나 날이 더워 고생했던 기억이 나서 이번에는 얇은 홑옷 하나 입고 양말을 신자마자 개털에 옷에 붙기 전에 횡, 대문을 박차고 나왔습니다. 그리고 3호선을 타고 교대역에 내렸습니다. 교대역에 내리자 안내방송이 흘러나오기 시작했습니다. " 교대역 9번 출구는 인구 혼잡으로 인해 막힌 상태이니 다른 출구를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 "


아닌게 아니라 자원봉사자들이 역 안에서 소리를 치기 시작했다. 계획이 어긋나는 시발점이었다. 나는 하는 수없이 9번 출구에서 가장 먼 출구로 빠져나왔으나 이미 거리를 포화상태였다. 어떻게 한자리 꼽싸리 껴서 앉을까 틈틈이 기회를 엿봤으나 기회는 오지 않았습니다. 하는 수없이 군중에 휩쓸려가다 보니...... 니미, 예술의전당까지 내려왔습니다. 되는 일이 없군 !  태어나서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여 있는 거리를 본 적이 없었지만 혼잡하다는 느낌은 없었습니다.  예술의 전당을 서성거리다 보니, 이 집회 현장에서 문득 함민복 시인의 < 흐린 날의 연서 > 란 시가 생각났습니다. 


이 또한 계획에 없었죠.   한때, 이 시를 좋아했습니다. 집회는 따분했습니다.  선동의 문장들은 촌스러웠고 때론 감동 없는 격문이어서 힘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꼬박꼬박 집회에 참석하는 이유는 내가 서울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냥 숟가락 하나를 보태야죠. 그게 식구니까.  밤이 되자 지난 집회와는 달리 날씨가 꽤 쌀쌀했습니다.  정말 계획대로 되는 것은 없더군요.  그날,  저는 자주 함민복 시인의 시를 생각했습니다.  아버지, 인생은 항상 계획대로 되는 것은 아닌 모양입니다.  집회 1부가 끝날 때 전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집으로 오는 길에 소주 한 병과 맥주 두 병을 샀습니다.  계획에 없는 음주가무였습니다. 술을 마시며 함민복 시인의 시를 읽었습니다.  좋았습니다. 모기가 내 눈동자의 피를 빨게 될지라도 / 내 결코 당신을 잊지 않으리라.       옛 여자 생각을 했습니다.  이것 또한 계획에는 없었습니다.  나는 취한 목소리로 낮게 속삭였습니다. 당신의 눈동자에 건배 ! 







까마귀산에 그녀가 산다

비는 내리고 까마귀산자락에서 서성거렸다

백번 그녀를 만나고 한번도 그녀를 만나지 못하였다

예술의 전당에 개나리꽃이 활짝 피었다고

먼저 전화를 걸던 사람이

그래도 당신

검은 빗방울이 머리통을 두드리고

내부로만 점층법처럼 커지는 소리

당신이 가지고 다니던 가죽가방 그 가죽의 주인

어느 동물과의 인연 같은 인연이라면

내 당신을 잊겠다는 말을 전하려고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고 독해지는 마음만

까마귀산자락 여인숙으로 들어가

빗소리보다 더 가늘고 슬프게 울었다

모기가 내 눈동자의 피를 빨게 될지라도

내 결코 당신을 잊지 않으리라

그래도 당신 




                   ㅡ 흐린 날의 연서, 함민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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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9-10-06 1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르나우의 1927년작 << 일출 >> 을 보았다. 좋더라..

겨울호랑이 2019-10-06 22: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난 주에는 교대역부터 통제가 시작되었는데, 이번에는 강남역에서 조금 들어간 곳부터 통제가 되고 교대역에서 더는 앞으로 못나갈 정도였습니다. 정말 많은 인파였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9-10-08 12:24   좋아요 1 | URL
진짜 많이 왔더라고요. 그런데 움직이는 데 불편함은 없었어요. 길을 꿇어놓아서걷는 데에는 불편이 없더군요. 오랜만에 강남 이곳저곳 돌아다녔습니다. 십자대로 전부 구경한 듯.. ㅎㅎㅎ

수다맨 2019-10-08 10: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래전에 함민복 시인을 광장에서 우연히 본 적이 있습니다. 사진으로만 보았기에 본인이 맞는지 알 수 없었지만 가까이 다가가서 조심스럽게 질문을 드렸더니 흔쾌하게 맞다고 하시더군요. 자신의 얼굴도 아는 일반 독자가 있냐면서 꽤나 신기해 하던 모습이 생각납니다.
그렇게 저녁이 되어서 집회가 끝났고 (아마도 문인으로 보이는 남자분들이) 함 시인에게 술을 마시러 가자고 했던 것으로 기억납니다. 그런데 함 시인은 다음날 인삼 장사를 해야 한다면서 곧바로 강화도로 돌아가야 한다는 식으로 답변하더군요. 생활인의 무게랄까, 대학 강단에 서지 않는 직장인으로서 살아가는 그 분의 처지가 문득 떠오르네요. 그래서 지금까지도 함 시인이 좋은 작품을 쓰는 것 같다는 느낌도 받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9-10-08 12:25   좋아요 0 | URL
함 시인 시가 좀 촌스럽고 때론 감정이 앞선 느낌이란 생각도 들긴 하지만, 그게 또 함 시인 시의 매력이더라고요..
온통 똥폼 잡고 절제 절제한 시보다 때론 이런 시들이 매력적으로 읽힐 때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