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 대한 딴지'와 대꾸' 50 選

 

 

 

 

 

1. 상영 도중 극장 문을 박차고 나온 영화는 ?

실미도, 해운대 : 대한민국에서 가장 잘 팔리는 서사'는 반공 이데올로기와 가족 이데올로기'다. 실미도가 1000만'을 돌파했다는 사실은 비극에 가깝다. 그리고 영화 < 해운대 > 는 반공 이데올로기'와는 전혀 다른 시원한 여름 블록버스터'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노골적인 반공 이데올로기적이다. 쓰나미'는 곧 북한 침공에 대한 은유이다. 그러니깐 물을 피해서 도망치는 풍경은 피난'이다.

 

 

2. 상 한 번 타겠다고, 멋부린 티가 나서 불쾌했던 영화는 ?

칼라퍼플, 쉰들러 리스트, 지옥의 묵시록

 

 

3. 40번 넘게 본 영화가 있는지 ?

아비정전

 

 

4. 20번 넘게 본 영화가 있는지 ?

쇼생크 탈출, 그램린 2. : 쇼생크'는 볼 때마다 새로운 것을 깨닫게 한다. 두 번째 보았을 때는 < 새벽 3시의 불 켜진 창문 > 에 대해 생각했으며, 세 번째 보았을 때는 < 야구 > 에 대한 생각에 빠졌고, 네 번째는 < 담배 > , 다섯 번째는 < 나비 > , 여섯 번째는 < 부러진 왼팔 >, 일곱 번째는 < 서랍장 > 에 대해 생각했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다 보면 삼백 번째 상념이 떠오를 것이다. 그때 < 쇼생크 탈출 > 에 대한 책 한 권 쓰리라, 다짐한다. < 그램린 2 > 는 우울하면 기분 전환을 위해서 본다. 헐리우드에서 가장 저평가된 감독은 조 단테'일 것이다.

 

 

4-1. 10번 넘게 본 영화.

너무 많아서 일일이 거론하는 것은 생략한다.

 

 

5. 오프닝이 가장 인상에 남는 영화는 ?

성난 황소 / 마틴 스콜세이즈, 악의 손길 / 오손 웰즈. 안드레이 류블레프 / 타르코프스키 : 작가가 제일 오랫동안 고심하는 부분은 첫 문장이다. 김훈은 < 칼의 노래 > 에서 조사 하나'를 놓고 < 이 > 로 써야 할지 < 은 > 으로 써야 할지 꽤나 고민했다고 한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오프닝 장면이 훌륭한 영화는 첫 문장이 훌륭한 소설과 같다. 첫 문장이 좋으면 다 좋다.

 

 

6. 과대평가된 한국 영화는 ?

서편제 : 볼수록 한심해지는 ( 임권택의 거의 모든 ) 영화( 들 ) 이다. 장정일의 지적처럼 딸에게 독약을 먹이는 것은 살인 미수죄'에 해당된다. 내가 임권택을 싫어하는 이유는 폭력적인 남성 서사 때문이다.

 

 

7. 평가절하된 배우는 ?

임창정 : 언젠가 제대로 된 평가가 올 날이 있을 것이다. 힘 내십셔 ~

 

 

8. 과대 평가된 배우는 ?

경구, 안성기 : 설경구를 보고 있으면 목소리 큰 사람이 싸움에서 이긴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는다. 과잉의 연기'는 칭찬 받을 것이 못 된다. 이 세상에서 가장 하기 쉬운 역은 깡패'다. 깡패는 웬만한 배우들이라면 모두 그럭저럭 훌륭하게 소화할 수 있다. 왜냐하면 양아치란 허세가 팔 할이므로.

 

 

9.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관은 ?

충무로 극동 극장

 

 

10. 이유는 ?

알고 보니 동성애 전용 극장.

 

 

11. 가장 웃겼던 영화는 ?

총알 탄 사나이,사우스 파크, 넘버 3 : 넘버3야말로 대한민국 컬트'다. 사우스파크는 욕으로 시작해서 욕으로 끝나고, 총알 탄 사나이'는 몸 개그로 시작해서 몸 개그로 끝난다. 웃기면 장땡이다.

 

 

12. 최고의 공포 영화는 ?

살아난 시체들의 밤 : 공포 영화 중 가장 우아하다. 느린 것이 어떻게 공포를 유발할 수 있는지를 정확하게 보여준 작품이다.

 

 

13. 가장 훌륭한 오프닝 타이틀 시퀸스는 ?

솔 바스의 사이코 : 솔 바스'는 오프닝 타이틀을 예술로 만들었다.  

 

 

14. 예상치 못했던 인물의 등장은 ?

북촌방향'에서의 백현진

 

 

15. 허세로 가득 찬 영화는 ?

카페 느와르 : 햄버거 먹을 때부터 느낌이 좋지 않았다.

 

 

16. 최고의 평론집은 ?

로빈우드 < 베트남에서 레이건까지 >

 

 

17. 최악의 평론집은 ?

정성일 < 필사의 탐독 > : 필사의 난독, 정성일을 생각할 때마다 기분이 나빠진다.

 

 

18. 극장에서 반드시 다시 한 번 보았으면 하는 영화는 ?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 : 반드시 한 번 보았으면 한다.

 

 

19. 가장 무서웠던 영화는 ?

링 : 개인적으로 살인마가 아닌 소복 입은 귀신이 나오는 영화를 잘 보지 못한다.

 

 

20. 최고의 난도질은 ?

데드 얼라이브 : 슬래쉬무비, 스플레터 무비, 고어, 호러 모두를 통틀어서 가장 질퍽하다.

 

 

21. 좋아하는 배우를 나열하시오 ?

해리 딘 스탠든, 포레스트 훼데커, 임창정, 문창근, 스티븐 부세미, 리버 피닉스, 존 굿맨, 클린튼 이스트우드, 모건 프리먼

 

 

22. 싫어하는 배우를 나열하시오 ?

손예진, 설경구, 이미연,  : 설경구가 소리를 지를 때마다 지겹다는 생각이 든다.

 

 

23. 생각보다 좋았던 영화는 ?

구타유발자 : 시나리오가 훌륭했다.

 

 

24. 잔뜩 기대했으나 실망만 한 영화는 ?

아바타 :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좋지도 않다.

 

 

25. 잘 알려지지 않은, 추천하고 싶은 영화는 ?

세 친구/임순례, 여자는 충동한다/엘리스 맥클린 ( 뉴질랜드 ), Proof/조슬린 무어하우스 ( 호주 ) : 명감독의 평작을 보는 것은 유쾌하지 않지만

평범한 감독의 걸작'을 보는 것은 기쁘다.

 

 

26. 과대 평가된 외국 영화 ?

천국의 문, 지옥의 묵시록, 플레이어, 천국의 아이들, 프랑수와 트뤼포의 영화들...

 

 

27. 가장 인상에 남는 살인마 ?

양들의 침묵의 한니발 렉터.

 

 

28. 극장에서 대성통곡을 한 영화는 ?

가을의 전설.

 

 

29. 이유는 ?

그 시각, 첫사랑은 떠났다.

 

 

30. 지금까지 보아온 영화 중 가장 혐오스러운 영화는 ?

악마를 보았다 : 감독으로써의, 그리고 인간으로써의 기본적 예의가 없다.

 

 

31. 극장 반입이 허용된 콜라와 팝콘 외의 음식을 먹은 기억은 ?

도시락 ( 쌀밥 + 열무김치. )

 

 

32. 자세한 설명을 ?

중학교 때 도서관 간다는 핑계로 영화관으로. 3류 영화관에서 도시락 먹었음.

 

 

33. 극장 안에서 가장 공포스러웠던 에피소드 ?

금호동 < 현대극장 > 기억이 가물거리나, 내 기억으로는 극장 안에서 연탄난로를 피웠음. 양아치 형들이 내 돈을 뜯었는데, 그중 한 명이 라이터를 연탄 난로 속에 넣고는 도망쳤음. 도망치면서 내 돈을 뜯은 양아치 형이 내 머리를 때리면서 말했던 기억이 희미하게 남 : 이 빙신새끼야, 도망쳐 ! 곧 가스가 폭발할 거야 !!!!!

 

 

34. 식스센스 이전의 최고의 반전은 ?

야곱의 사다리/ 에드리안 라인. 씨에스타 / 메리 램버트, 엔젤 하트/엘런 파커 : 식스 센스 식 반전은 이미 오래 전부터 차용된 트릭이다.

 

 

35. 다시는 영화를 만들지 말았으면 하는 감독은 ?

강우석 : 코 파며 잇힝 한다.

 

 

36. 다시 영화를 만들었으면 하는 감독은 ?

< 달마가.. > 의 배용균, 

 

 

37. 영화보다 영화에 쓰인 엄청난 제작비가 더 궁금해지는 영화 ?

장선우 감독의 <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 , 마이클 치미노의 < 천국의 문 >

 

 

38. 제작비에 비해 최고의 효과를 낸 영화는 ?

코헨 형제의 < 블러드 심플 >, 샘 레이미의 < 이블데드 > : 천재 감독의 데뷔작은 늘 번쩍인다.

 

 

39. 이런 영화는 나도 만들 수 있다 ?

없다. 그런 영화는 절대 존재하지 않는다.

 

 

40. 가장 스타일리쉬한 감독은 ?

스즈키 세이준 : 뮤직 비디오 출신 감독의 스타일이 멋지다고 생각 마라. 스즈키'야말로 진정한 스타일리스트'이다.

 

 

41. 최고의 컬트 ?

짙은 선홍색 / 아르투로 립스타인 ( 멕시코 )

 

 

42. 성장 영화 중 가장 인상에 남는 영화 ?

개 같은 내 인생/ 라세 할스트롬

 

 

43. 딱히 좋은 영화는 아니지만 묘하게 내 심장을 두드리는 영화는 ?

불후의 명작 / 심광진 : 묘하게 심장을 후벼파는 후진 영화.

 

 

44. 뭘 해도 잘생긴 배우 ?

원빈

 

 

45. 영화 보다가 오바이트한 영화는 ?

팜즈 29.

 

 

46. 극장에서 관객들에게 항의를 받은 적은 ?

다이하드 3 : 1. 다음 회는 매진. 결국 다다음 회 티켓팅 !

                      2. 공구 상가 구멍가게'에서 파는 막걸리와 두부 한 모를 사서 친구와 파라솔 아래에서 막걸리를 막(막,막,막) 마심.

                      3. 극장에서 영화를 봄.

                      4. 졸려서 입 벌리고 코를 골면서 잠을 잠

                      5. 옆좌석의 관객이 술 냄새 난다고 아주 지랄을 함.

 

 

47. 사춘기 시절 개인적으로 매우 좋아하는 프랑스 영화 ?

귀여운 반항아 : 갱스부르의 그 부르튼 입술이 강열하게 사춘기 소년을 단단하게 만든다.

 

48. 자동차 영화 중 가장 환상적인 작품 ?

공포의 보수 / 클루조 : 재밌다, 재밌다, 진짜 재밌다. 얀 드봉의 < 스피드 > 가 얼마나 후진 영화인가를 일깨워주는 작품.

 

 

49. 최고의 액션영화 ?

- 옹박 : 와이어 액션을 액션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 제너럴 : 버스터 키튼을 보면 가끔 목숨 건다는  행위가 이런 것이란 생각이 든다. 그는 훌륭한 코미디 배우이지만 동시에

                 훌륭한 액션 배우였다. 그가 채플린과 함께 공연한 < 라임 라이트 > 를 보다가 울컥 해서 운 적이 있다.

 

 

50. 영화 하면 생각나는 사람 ?

미화.... 김영화 씨 언니다 !

 

 

 


댓글(17)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달사르 2013-04-02 0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비정전'이 갑이네요. ㅎㅎ
전, 야곱의 사다리'가 좀 땡기네요.
혹시 블레이드러너'가 여기 들어간다면 어떤 꼬리표가 붙을까요?
이유는, 제가 좋아하는 영화여서 어떤 평일지 궁금해요.

곰곰생각하는발 2013-04-02 01:10   좋아요 0 | URL
야곱 사다리.. 상당히 재미있습니다. 블레이드 러너'는 한 열 번 정도 본 것 같아요. 열번은 아니구나.. ㅎㅎㅎ. 하여튼 7,8번은 보았습니다. 언제 한번 블레이드 러너에 대한 글을 써야 할 것 같아요. 이처럼 계속 복사하지 말고요. 다 옮긴 줄 알았더니 아직도 많더라고요..ㅎㅎㅎㅎㅎ블레이드 러너'를 쓰면 그것은 달사르 님에게 바치겠습니다.

포스트잇 2013-04-02 1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39번 질문과 답이 인상적입니다^^맞아요.... 그런 영화는 없죠.

곰곰생각하는발 2013-04-02 17:17   좋아요 0 | URL
전 이런 적은 제작비로 개고생해서 만든 영화 좋아합니다.
뭔가 짠 하잖아요. ㅎㅎㅎ.

푸른희망 2013-04-02 15: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곱의 사다리. 쇼생크 탈출.. 정말 오랜만에 듣네요. 한때 팀로빈슨이 나오는 영화는 무조건 보러다녔거든요,,
커다란 배우가 왠지 슬퍼보이기도 하고,. 뭐 그랬던거 같네요.
두 영화에 대한 구체적인 평이 궁금하네요


저도 임창정 배우로 꽤 괜찮다고 생각해요. 가수보다.. 멜로에도 꽤 어울릴거같기도 하고..

곰곰생각하는발 2013-04-02 17:18   좋아요 0 | URL
그렇죠 ? 저도 임창정 보면서 짐 캐리 종종 생각하고는 합니다.
맬로에도 잘 통하잖아요. 임장정 잘 관리하면 좋은 배우 됩니다.
임창정이 너무 코믹 쪽으로만 가서 그렇지 기본기가 매우 뛰어난 배우예요.

2013-04-02 15: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보다가 중간에 나온 영화 : <목포는 항구다> 정말 내가 본 중 가장 걸쭉하고 후진 영화였어요. / 답변이 대체로 공감이 갑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04-02 17:19   좋아요 0 | URL
목포는 항구다..ㅎㅎㅎㅎㅎ 정말 웃기지 않은 영화 강제로 웃으려고 하면 미치죠.
전 두사부일체 3 보다가 정말 미치겠더군요
그냥 극장에서 잤습니다.

써니쏠 2013-04-02 16: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후아...어찌 이리 많은 영화를 보실 수 있을까요?
저도 임창정 좋아합니다. 모건 프리먼도 좋고요.
스스로 질문하고 대답하기. 재미있는 걸요?
곰발님 글 읽으려고 네이버에서 일루 넘어왔어요.

곰곰생각하는발 2013-04-02 17:20   좋아요 0 | URL
헤헤 서니소울님이시군요... ㅎㅎㅎㅎ
이거 미안하네요. 항상 네이버 글 복사해서 이리 옮기니...
소울님도 자문자답 한 번 해 보세요.
기억이 새록새록 나서 은근 재미있어요..

비로그인 2013-04-02 2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필사의 탐독, 저도 몇 년전에 읽긴 읽었는데요...
정성일이 저지르고(?) 있는 뭔가가 있다고는 미처 생각 못하고
그저 맹목적으로 영평계의 대부, 영화평 좀 한다는 신인들이 다들 쫓아가고 싶어하는 대단한 사람, 뭐 그렇게만 놓고
독자로 하여금 무기력하게 만드는 면이 있어도 내가 못나서 그런 거려니 했고(지금도 그런 건 여전하긴 하지만요)
최악이라고 단언하시니..도저히 궁금해서 댓글을 안달수가 없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3-04-03 17:53   좋아요 0 | URL
최악은 아니지만.... 좀 너무 먹물 티가 나서 말입니다.
그냥 적당히 알기 쉽게 쓰면 될 것을 온갖 번역 투의 문장에
쓸데없는 인용에 ... 읽다가 보면 골치가 아픕니다..

노이에자이트 2013-04-04 17: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포의 보수! 스릴러의 걸작이죠.이렇게 단순한 줄거리로 이런 영화를 만들어 냈다는 게 대단합니다.저는 일요일 낮에 EBS에서 하는 것을 봤습니다만 곰발 님은 어떤 경로로 보셨는지요?

곰곰생각하는발 2013-04-04 21:07   좋아요 0 | URL
전 아마 영화관에서 보았을 겁니다. 시네마떼끄에서 보았습니다.
사실 영화 속 트럭은 아주 고물이잖아요. 천천히 달리는...
그런데 영화의 속도감은 정말 끝내주더군요.
히치콕이 유일하게 질투심을 느낀 감독이 클루조 였을 겁니다.
디아볼릭' 때문에 디아볼릭을 능가하는 사이코'를 만들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습니다.

이진 2013-04-05 0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곰곰님 영화... 정말 제가 아는 누님 한 분도 영화라면 도가 트신(?) 분이신데, 하여튼 영화 많이 보는 사람들 보면 부러워요. 나는 항상 보겠다 보겠다 다운은 받아두면서 볼 시간도 없을 뿐더러 보지도 않거든요. 영화만 외장하드에 300기가 쌓여 있는데 언제 볼는지.

자기 전에 한 번 미소 지어보고 싶었는데 그냥 잘래요. 곰곰님 잘 자요! 좋은 아침!

곰곰생각하는발 2013-04-05 09:00   좋아요 0 | URL
영화 보기도 시간이 필요합니다. 소이진 님은 영화보다 잠을 더 많이 주무세요...ㅎㅎㅎㅎ.
그래야 쑥쑥 큽니다..

비로그인 2013-04-06 17: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43번 대공감! ㅋㅋ
 
La Lengua Salvada / The Saved Language (Paperback, Translation)
Canetti, Elias / Debolsillo / 200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구제된 혀.

 

속초로 떠나기 전 책장 2개 분량의 책을 헌책방에 판 적'이 있다. 간직할 책과 팔 책을 분류했던 것이 아니라 그냥 모서리 책장에 있는 책'을 모조리 팔았다. 여비가 없어서 판 것은 아니었다. 와,신,상,담. 바늘 침대에서 잠을 자고, 쓸개를 먹는 심정으로 새롭게 시작하자는 의미에서였다. 책이 없는 텅 빈 책장은 일일이 못을 빼서 분리한 후 겨울에 장작으로 쓸 요량으로 창고에 쌓아두었다. 책장이 있던 자리엔 네 개의 꼭지점이 방바닥에 흔적을 남겼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표가 나는 법.

 

그날 밤 그 돈으로 술을 마셨다. 내가 지금 마시는 술은 내가 판 책이구나. 묘한 죄책감이 들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치 내 아내가 몸을 팔아서 벌어온 화대'로 술을 마시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술에 취해서 책장 속에 꽂힌 책들을 보다가 엘리어트 카네티의 < 군중과 권력 > 에서 시선이 멈췄다. 아, 그래.... 엘리엇 카네티 ! 나는 빠르게 그의 저서 < 구제된 혀 > 를 찾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보아도 찾을 수가 없었다. 내가 무심코 팔아버린 책 속에 이 책도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서점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책이라면 아쉽지 않은데 이 책은 1982년 심설당에서 나온 이후로 출판이 안 된 것으로 알고 있다. 구하기도 힘들 뿐더라 내게는 매우 뜻 깉은 사연이 있는 책이었다. 그런데 그만 이 책을 팔아버린 것이다. 책을 판 지 며칠이 지난 후였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더니 다행히 책 분류 중이어서 보관 중이라는 메시지를 받았다. 그 책은 다시 내게로 돌아왔다. 그 이후로는 아직까지 책을 팔지 않고 있다. 내가 이 책을 구입하게 된 것은... 그러니깐  5년 전 일이다.

 

예일여고 헌책방에서 카네티의 < 구제된 혀 > 를 발견했을 때, 나는 너무 기뻐서 소리를 질렀었다. 이 책이 여기서 발견할 줄은 꿈에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낡아서 누렇게 변해버린 종이를 넘길 때마다 종이가 바스러질까봐서 조심스레 책장을 넘겼었다. 마치 비본을 보는 것처럼. 이 책을 헌책방에 내다 판 사람은 누굴까 ? 다행히 책 뒷장의 빈 속지'엔 책 주인의 메모'가 적혀 있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안녕 ! 반갑다.

아마 이 글을 읽을 즈음이면 너는 헌책방에 있을 것이다. 예일여고 < 숨어 있기 좋은 책방 > 이겠구나. 내가 이 책을 그곳에 팔았거든. 네가 자주 다니던, 너의 집 근처 헌책방이잖아. 우리가 종종 가던 그 책방. 내 예상이 맞다면 너는 이 책을 발견하고는 기뻐할 거야. 왜냐하면 네가 그토록 찾던 그 책이었으니깐 ! ( 혹시 내가 찾던 사람이 아닌 분이 이 글을 읽고 있다면 이 책을 사지 말아주세요. 단 한 사람을 위해 쓰여진 러브레터이니깐 말이죠. ) 나... 누군지 알겠니 ? 애린이야. 한애린 ! 이제 기억나지 ? 그동안 난 몸이 아팠어.휴학과 복학을 반복하다가 결국 졸업은 하지 못하게 되었어. 병원에서 6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았거든. 문득 네 생각이 나더구나. 나... 널 좋아했거든. 죽기 전에 널 찾고 싶었지만 이젠 너무 늦었다는 생각이 들더구나. 추한 몰골로 널 만날 수도 없었을 뿐더러, 너의 소식을 접할 수도 없었어. 넌 감쪽같이 지상에서 사라졌더구나. 혹시 네가 그토록 가고 싶다던 페루로 떠난 것일까 ? 오랜 고민 끝에 이렇게 너에게 러브레터를 보낸다. 네가 좋아하는 책의 빈 속지에 말이다. 넌 내게 말했지. 이 세상 모든 연애편지를 접어야 한다고. 접고 접어야 편지봉투 속에 들어간다고 말이지. 하지만 난 접지 않고도 너에게 띄울 수 있어. 지금처럼 ! 이 글을 발견했을 즈음이면 난 멀리 떠났을 거야. 헌책방이란 헌책방은 모두 뒤졌어. 전국을 돌아다녔지. 어렵게 얻은 책이다. 내가 너에게 주는 지상에서의 마지막 선물이다.

 

안녕, 나의 날개접은새 !

2002.4.01 애린

 

 

 

 

가 그녀의 이 메모 편지를 읽었을 때는 이미 6년이 지난 후였다. 그러니깐 2007년이었다. 나는 흐르는 눈물을 닦고 책방 주인에게 책을 내밀었다. 주인이 나를 바라보았다. 댁이 ***이요 ? 네에, 제가 ***입니다 ! 혹시 이 책을 판 사람 기억하세요 ? " 그럼... 기억하고 말고 ! 그 아가씨는 이 책의 주인이 있다며 내게 당부를 했다오. 그리고 책 값도 이미 지불했어요. 잠시만... 그 아가씨가 두고 간 사진이 있었는데... 아, 여기 있구려 ! 사진을 주며 꼭 이 사람에게 이 책을 주라고 하더군. 언젠가는 올 거라고 하면서 말이지. 내가 그때의 일을 또렷이 기억하는 이유는 아가씨가 슬피 울어서 생각이 나오.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다고, 하지만 인연이 아니라고, 자신은 곧 먼 곳으로 떠난다고... 이 책은 이미 값을 지불했으니 그냥 가지고 가시구랴. 아픈 사랑 너무 오래 두지는 마시구랴. 사실 이 책 한 권 때문에 그동안 책방을 접지 못했다오. 무슨 사연이 있길래 그토록 슬피 우는가 호기심이 생겨서 이 책을 읽다가 그 아가씨가 쓴 메모를 읽었다오. 읽지 말았어야 했어. 손님을 애타게 기다린 건 그 아가씨뿐만이 아니라오. 이 늙은이도 손님을 기다렸소. 이젠 가게 문을 닫아야 할 것 같아. 어디 가서 술이나 한 잔 합시다. 이제 손님 얼굴이 기억 나는구려. 아니, 그동안 왜 그렇게 발길이 뜸했소? "

 

*

 

그녀를 처음 만난 곳은 대입 재수 학원에서였다. 한 여자가 필기를 하지 못했다며 교재를 빌려달라고 했다. 바로 그 여자였다. 창백한 여자였다. 여자와 나는 문학을 좋아한다는 공통점이 있어서 쉽게 친한 사이가 될 수 있었다. 우리는 종종 문학에 대하여 이야기하고는 했다. 엘리엇 카네티에 대한 이야기와 카프카와 그르니에의 섬에 대해서 이야기했던 기억이 난다.

 

그녀는 우스갯소리'로 나중에 둘이 동업을 해서 헌책방을 열자고 했다. " 내 책과 네 책을 모으면 꽤 근사한 헌책방이 되지 않을까 ? " 그녀는 맑게 웃으며 말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 말은 제안이 아니라 고백이었다. 그땐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우리의 인연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할 말과 못할 말을 남겨둔 대 우리는 그렇게 잊혀졌다. 그녀를 헌책방에서 다시 만난 것이다. 그녀가 하고 싶었던 말이면서 동시에 못할 말이었던 사랑 고백을 한 것이다. 책이면서 동시에 연서인, 고백이면서 동시에 유서가 되어버린 책을 나는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 언젠가 내가 헌책방을 열면 가게 이름을 < 애린 책방 > 으로 하겠어. 잘 자라, 캄캄한 밤 하늘을 보면 종종 네 생각이 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고전에 대한 사전적 정의는 다음과 같다. " 오랫동안 많은 사람에게 널리 읽히거나 모범이 될 만한 문학이나 예술 작품." 총 30음절이다. 사전답게 유머 감각도 없고 딱딱하다. 반면 마크 트웨인은 " A classic is something that everybody wants to have read and nobody wants to read : 고전이란 누구나 한번쯤 읽기를 바라지만, 사실은 아무도 읽고 싶어 하지 않는 책이다. " 라고 고전을 정의한다. 아, 사랑스러운 마크 할아버지 ! 하지만 번역해 놓으니 34음절'이다. 30음절 이상을 달달 외운다는 것은 그리 쉬운 것이 아니다. 그래서 준비했다.

 

나는 고전에 대한 정의'를 2음절로 줄일 수 있다. " 원 ! 빈 ! " 그렇다, 아저씨가 되어도 멋진 원빈' 말이다. < 고전 = 원빈 > 이다. 원빈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 원빈의 조각 같은 외모를 칭찬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 우리 모두는 원빈에 대해서 잘 알고 있으며 그의 아름다운 얼굴을 찬양한다. 그런데... 그를 실제로 본 사람은 과연 몇 명이나 될까 ? 고전'도 이와 다르지 않다. < 돈키호테 > 나 < 천일야화 > 를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나 ? 이 위대한 고전에 대해 경배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나 ? 그런데 막상 읽은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 고전에 대한 정의는 원빈이다 !

 

내가 농담으로 이 글을 시작한 이유는 고전 단테의 < 신곡 > 때문이다. 이 자리를 빌어 고백하자면 나는 단테의 < 신곡 > 을 읽지 않았다. 그래서 서두에 넋두리가 길었던 것. 이번 고백을 계기로 꼭 읽어보리라, 다짐한다. 내가 < 신곡 > 에 대해 알고 있는 상식은 지옥 편, 연옥 편, 천국 편' 순으로 구성되었다는 점이 전부'이다. 그중에서 지옥 편이 무척 궁금하다. 내가 성경을 읽었을 때 제일 먼저 본 부분은 창세기가 아니라 요한계시록'이었다. 이렇게 공포 쪽으로 머리가 돌아가다 보니 이상하게 < 신곡 - 지옥 편 > 이 제일 땡기는 것이다. 취향은 숨길 수 없는 것인가 ? 천국 편'은 읽다가 질투가 날 것 같고, 연옥 편'은 왠지 어설픈 미스테리 스릴러 같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면 나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 지옥 편 > 에 호기심이 발동할 것 같다. 신이 버티고 있는 천국의 조용한 풍경은 재미가 없을 것 같다. 그것은 마치 사장이 참석한 직원 회식자리와 비슷하리라. 인간은 본능적으로 천국'보다는 지옥'에 눈길이 가지 않을까 ?  그래서 원작의 의도와는 다르게 단테의 신곡은 범죄 문학이나 영화'의 단골 소재가 되었다. 줄리오 레오니는 단테를 탐정'으로 내세워 돈을 꽤 벌었다. < 비밀의 집회 > < 빛의 살인 > < 모자이크 살인 > 은 단테가 탐정으로 나오는 시리즈물'이다. 아마.. 계속 단테를 팔아서 돈을 벌 모양이다.

 

그런가 하면 대부분은 단테의 신곡이라는 텍스트'가 살인 사건의 원인을 제공한다. 단테가 이 소식을 들었다면 두 눈을 번쩍 떴을 것이지만 죽은 자는 말이 없는 법. 매튜 펄의 < 단테 클럽 > 은 살인자가 단테의 신곡'에 나오는 형벌을 살인에 모방한다는 측면에서 영화 < 세븐 > 과 비슷하다. ( 그런데 < 세븐 > 에서 언급하는 7가지 대죄'는 사실 지옥 편이 아니라 연옥 편'에 언급된 내용이라고 한다. )

 

 

 

 


 

 

 

 

 

세븐 : " 밥은...... 먹고 다니냐 ? "

 

 

 

데이빗 핀처의 < 세븐 > 은 매우 잘빠진 스릴러'다. 카일 쿠퍼가 담당한 오프닝 타이틀 장면은 이미 전설이 되었다. 본편'보다 훌륭한 오프닝 타이틀 시퀸스'라는 찬사는 은근히 데이빗 핀처의 심기를 건드렸을 것이 분명하다. 현대 스릴러 장르 경향'을 보자면 오프닝 부분에서는 < 세븐 > 이전과 이후'로 나뉠 정도로 압도적인 퀄리티'를 자랑한다. 요즘은 개나 소나 다 세븐 스타일'을 따라해서 식상한 속도감이지만 최초의 오리지날인 이 오프닝은 그 당시엔 명불허전이었다.

 

※ 오프닝 씬과 오프닝 타이틀 씬은 다르다 !

 

 

                     

 

 

하지만 내게는 히치콕의 < 사이코 > 오프닝' 타이틀 시퀸스가 더 예술적이고 감각적이다. 굳이 두 작품을 비교하자면 말이다.  전설적인 타이포그래픽의 대가인 솔 바스'가 제작한 오프닝은 가로 직선과 세로 직선이 반복적으로 나열된다. 이 직선들은 관현악기의 불협화음과 오버랩되면서 날카로운 것으로 긋는 이미지'를 생산한다. 그러니깐 이 선들은 < line > 이기 보다는 < slash > 적인 느낌이 강조된다. 이 타이틀 시퀸스'가 끝나면  카메라는  바로 바우하우스적 미학 형태인 도시 빌딩 건물을 보여준다. 그것들은 모두 가로 직선과 세로 직선으로 이루어진 건축물이다. 솔 바스'가 직선 이미지로 오프닝을 구성한 이유는 직선'이 가지고 있는 냉정함 때문이다. 곡선이 감성적이며 인간적이라면, 직선은 이성적이며 기계적이다. 솔 바스, 그는 탁월한 예술가였다. 물론 카일 쿠퍼'도 훌륭했다.

 

접힌 부분 펼치기

 

 

 

 

 

 

 

 

처음 이 영화 포스터의 제목을 보고 당황했다. 빨간 바탕에 아홉 개의 빗금''이 전부인 디자인'이 아닌가 ? 디자인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최소주의'이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 보면 무릎을 탁 치게 되어 있다. 혼자서 아 하다가, 잠시 오 하다가, 결국에는 와 하게 된다. 그리고는 다시 와와 !! 이 작품의 유일한 오브제는 < / / / > 이 전부다. 결국은 빗금'으로 이 암호 같은 수수께끼'를 풀어야 한다. 시작이자 마무리'다. 우선 게슈탈트'에서 확장한 도상학적 접근을 시도해 보자. 우리가 이 작품에서 유추할 수 있는 것은 빗방울'이거나 혹은 물줄기'다.

 

 

 

왜냐하면 우리는 대부분 비가 오는 날을 그림으로 그릴 때 빗금'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영화'가 물과 관련이 깊다는 추리'를 하게 된다. 스탠리 도넨의 뮤지컬 걸작 < 사랑은 비를 타고 > 일까 ? 그런 것 같지는 않다. 빨간 원색이 사용된 불길한 바탕 이미지는 " 사랑은 비를 타고 " 의 로맨틱 코미디 뮤지컬'과는 이미지가 맞지 않다. 물줄기와 관련된 영화는 수두룩하다. 해양 영화에서 시작해서 타워링 같은 재난 영화에 이르기까지 그 범위'가 광범위하다. 바탕이 붉은 색은 것으로 보아 < 타워링 > 같은 재난 영화에 가깝지만 말이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자

 

 

 

곰곰 생각에 빠진다. " 아, 이 빗금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 " 내가 혼잣말을 하자 누군가 지나가며 의미 없는 말을 던진다. " 슬래시가 아홉 개네 ? " 슬래쉬 ?SLASH !!!!!! 그렇다, 이 문제의 핵심은 SLASH'다. " / " 는 컴퓨터 자판 부호이기도 하고, " (날카로운 것으로) 베다 " 라는 뜻을 가지고도 있는 단어이다. 그러니깐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 / > 는 물줄기'를 의미하면서 동시에 살인'을 의미한다. 물과 살인'이라는 키워드에 적합한 장소는 샤워실이다. 빙고 ! 여기까지 풀면 문제는 쉽게 진행된다. < 사이코 > 에서의 그 유명한 샤워 장면'을 모를 수가 있나.

 

 

 

< 사이코 > 가 정답일 것이라는 추리에 쐐기'를 박자면 " slash ( / ) " 에 - er'를 붙이면 " slasher " 가 된다. 우리가 흔히 난도질 영화'라고 말할 때의 그 슬래셔무비'가 되는 것이다. < 사이코 > 야말로 슬래셔무비'의 최고 걸작이 아니었던가 ? 이 영화 포스터 디자이너'는 단순히 빗금 9개'를 가지고 모든 것을 설명한다. 이 영화'는 샤워실에서 살인이 일어난다는 내용과 영화의 장르가 슬래셔무비'라는 것까지 알려주는 것이다. < / > 은 기호이면서 동시에 아이들이 그림을 그릴 때 즐겨 사용하는 물의 도상이면서 동시에 난도질하다, 라는 뜻도 내포하고 있다.

 

 

 

 

펼친 부분 접기 ▲

 

 

 

 

 

처음 이 영화 포스터의 제목을 보고 당황했다. 빨간 바탕에 아홉 개의 빗금''이 전부인 디자인'이 아닌가 ? 디자인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최소주의'이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 보면 무릎을 탁 치게 되어 있다. 혼자서 아 하다가, 잠시 오 하다가, 결국에는 와 하게 된다. 그리고는 다시 와와 !! 이 작품의 유일한 오브제는 < / / / > 이 전부다. 결국은 빗금'으로 이 암호 같은 수수께끼'를 풀어야 한다. 시작이자 마무리'다. 우선 게슈탈트'에서 확장한 도상학적 접근을 시도해 보자. 우리가 이 작품에서 유추할 수 있는 것은 빗방울'이거나 혹은 물줄기'다.

 

 

왜냐하면 우리는 대부분 비가 오는 날을 그림으로 그릴 때 빗금'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영화'가 물과 관련이 깊다는 추리'를 하게 된다. 스탠리 도넨의 뮤지컬 걸작 < 사랑은 비를 타고 > 일까 ? 그런 것 같지는 않다. 빨간 원색이 사용된 불길한 바탕 이미지는 " 사랑은 비를 타고 " 의 로맨틱 코미디 뮤지컬'과는 이미지가 맞지 않다. 물줄기와 관련된 영화는 수두룩하다. 해양 영화에서 시작해서 타워링 같은 재난 영화에 이르기까지 그 범위'가 광범위하다. 바탕이 붉은 색은 것으로 보아 < 타워링 > 같은 재난 영화에 가깝지만 말이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자

 

 

곰곰 생각에 빠진다. " 아, 이 빗금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 " 내가 혼잣말을 하자 누군가 지나가며 의미 없는 말을 던진다. " 슬래시가 아홉 개네 ? " 슬래쉬 ?SLASH !!!!!! 그렇다, 이 문제의 핵심은 SLASH'다. " / " 는 컴퓨터 자판 부호이기도 하고, " (날카로운 것으로) 베다 " 라는 뜻을 가지고도 있는 단어이다. 그러니깐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 / > 는 물줄기'를 의미하면서 동시에 살인'을 의미한다. 물과 살인'이라는 키워드에 적합한 장소는 샤워실이다. 빙고 ! 여기까지 풀면 문제는 쉽게 진행된다. < 사이코 > 에서의 그 유명한 샤워 장면'을 모를 수가 있나.

 

 

< 사이코 > 가 정답일 것이라는 추리에 쐐기'를 박자면 " slash ( / ) " 에 - er'를 붙이면 " slasher " 가 된다. 우리가 흔히 난도질 영화'라고 말할 때의 그 슬래셔무비'가 되는 것이다. < 사이코 > 야말로 슬래셔무비'의 최고 걸작이 아니었던가 ? 이 영화 포스터 디자이너'는 단순히 빗금 9개'를 가지고 모든 것을 설명한다. 이 영화'는 샤워실에서 살인이 일어난다는 내용과 영화의 장르가 슬래셔무비'라는 것까지 알려주는 것이다. < / > 은 기호이면서 동시에 아이들이 그림을 그릴 때 즐겨 사용하는 물의 도상이면서 동시에 난도질하다, 라는 뜻도 내포하고 있다.

 

 

 

 

펼친 부분 접기 ▲

 

 

 

 

 

 

                                               

 

 

 

 

세븐의 주요 모티브는 단테의 신곡에 나오는 7가지 죄악이다. 지옥으로 떨어지는 7가지 대죄(seven deadly sins)는 ‘폭식 Gluttony’ ‘질투 Envy’ ‘색욕 Lust’ ‘자만 Pride’ ‘게으름 Sloth’ ‘탐욕 Greed’ ‘분노 Wrath’ 등이다. 살인자 존 도'는 이를 모방한다. 이 7가지 대죄 목록 중에서 내가 주목하는 것은 " 폭식 " 이다. 영화 속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살인 방식'은 바로 먹다 죽은 남자 에피소드'다.  많이 먹는다는 게 미련한 짓이기는 하지만 그게 지옥으로 떨어질 정도의 대죄는 아니지 않은가 ? 생리적 욕망은 생래적인 것이다. 중세는 먹는 거 가지고 너무 야박하다 싶다.

 

그런데 곰곰 생각하면 7가지 대죄'는 결국 먹고 사는 문제'로 귀결된다. 인간이 먹고 사는 문제에서 해방된 것은 그리 오랜 역사가 아니다. 현재에도 굶주려서 영양 실조에 걸린 인구의 비율이 20%에 육박한다. 이 풍요로운 시대에도 말이다. 하물며 중세 시대'는 말 그대로 먹고 사는 문제가 가장 큰 걱정이었다. 기근이라도 발생하면 굶어죽는 사람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었다. 중세 시대의 전쟁은 곧 식량 전쟁이었다. 7가지 대죄 중에서 식욕과 성욕' 그리고 게으름을 죄악시한 이유에는 아마도 식량 정책과 관련이 깊을 것이다. 식량 소비의 주범은 식욕과 인간의 쪽수(성욕)가 아니었던가.

 

단테의 신곡에서는 7가지 대죄 가운데 가장 지탄을 받아야 할 죄로 < 자만 > < 질투 > < 분노 > 라고 뽑고는 나머지는 정상 참작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이 3가지 주요 죄악은 심장에서 나오는 욕망이다. 마음의 원죄다. 그리고 정상 참작이 가능하다고 말하는 나머지인 < 폭식 Gluttony > 은 먹고 싶은 입의 욕망이고, < 색욕 Lust > 은 거시기의 단단한 욕망이며, < 게으름 Sloth > 은 눕고 싶은 발의 욕망, < 탐욕 Greed >은 움켜쥐고 싶은 손의 욕망이다.  모두 신체 기관들의 원초적 생리 욕망이다. 결국 대죄 핵심 3인방을 제외한 나머지 죄악은 식량 정책'을 위한 암묵적인 경고 메시지'인 것이다.

 

그것은 쌀이 없다고 말하기는 쪽팔리니깐 엉뚱하게 보리와 밀가루'가 건강에 좋다고 홍보하던 박정희 시대의 보건국과 비슷하다. 하지만 그것을 탓할 수는 없다.  밥 한 숟가락 덜어내서 내일의 기근에 대비하자는 것이니 말이다. 이제는 중세와는 달리 먹는 문제에서는 해방되었다. 현대 문명 사회는 먹고 사는 문제에서 먹는 것은 해결되었으니 이제 남은 것은 " 어떻게 (먹고) 살 것인가 ? " 만 남았다.  데이빗 핀처는, 얼마나 종교적인 인간인지는 모르겠으나,  중세시대의 종교적 장치'를 선호하는 감독이다. 에이리언 3' 도 한 편의 장엄한 종교 수난극 같다. 

 

봉준호 감독의 < 살인의 추억 > 에서 송강호는 박해일의 멱살을 잡으며 묻는다. " 밥은..... 먹고 다니냐 ? " 이 대사가 강인하게 남는 이유는 뜬금없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먹는 문제'에서 해방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중세 시대 인삿말로 당신의 안부를 묻는다. 밥은 먹고 다니냐 ? 식사 하셨어요 ? 대한민국이 천박해지는 순간이다. 여전히 먹는 문제가 모든 이슈를 잡아먹는다. 중요한 것은 먹는 문제 말고도 많다.  어떻게 살 것인가 ? 현대인의 화두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스누피 2013-04-01 2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아아아아 사랑스런 마크 할아버지!

세븐의 타이틀 오프닝도 몹시 훌륭하지만(당시엔 진짜 충격 먹었음!) 역시나 사이코의 타이틀 오프닝이;;
세븐의 오프닝은 하나의 압축된 서사 (본편의 내용을 이미지로 흘리고 낚는)인 반면, 사이코의 오프닝은 그야말로 도상학의 표본이라 할 만. 그래서 올드한 느낌이지만 오히려 그 미니멀함이 더 단단하게 느껴져요. 둘 다 시적이긴 하지만 굳이 비유하자면 세븐의 오프닝은 단편소설이고 사이코의 오프닝은 잘 벼려진 상징시 정도?

단테에 버금가는 작가, 신곡에 버금가는 스토리가 나오기 전엔(사실 신곡도 성서를 상당 부분 카피했겠지만?) 줄리오 레오니는 계속 단테를 앵벌이 시킬 듯. ㅋㅋㅋㅋ

오늘도 재미난 글 잘 읽고 갑니다. 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3-04-01 20:40   좋아요 0 | URL
마크 할아버지가 좀 좌파이셨죠. 시니컬하시고, 유머 감각 있으시고 참 좋으다.
사이코도 훌륭하지만 현기증도 이 솔 바스 님의 작품인데,
현기증은 정말 초현실주의적인 작품입니다.
현기증 보도가 타이틀 시퀸스보다가 놀랐습니다.
이런 식도 가능하구나....
대단해요....

조운 2013-04-01 2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곰곰생각하는발님..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이쪽으로 아주 이사오신거예요?

곰곰생각하는발 2013-04-01 23:06   좋아요 0 | URL
그쪽은 너무 과도한 사랑을 보내주셔서 좀 부담이 되었습니다.
이곳은 알아주시는 분들도 없고 해서 좋네요... ㅎㅎㅎ.
앞으로는 곰곰발이라고 불러주세요.
자주 놀러오세요. 조운 님.......

+

뭔 이사까지야...ㅎㅎㅎㅎㅎ. 서서히 접을 생각까지는 않고, 잠시 문을 닫을 생각이에요.서서히 말이죠.. 조운 님도 이곳 자주 오셔서 알라딘 글들 읽어보세요. 좋은 글이 꽤 많아요..
 

 

 

 

 

 

 

 

 

 

 

 

 

 

 

 

 

 

 

 

우리 안의 파시즘 : 집 나가면 개고생이다.

 

 

해마다 여름'이면 박카스'에서 주최하는 국토 순례 대장정'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청(소)년 극기 체험 프로그램'이다. 참가한 학생들은 각자 조'를 나누어 일주일 동안 도보로만 국토'를 횡단해야 한다. 각자 무리'를 지어 나누었으니 그 중엔 리더'가 있을 것이고 다른 무리'와의 경쟁'과 갈등'도 있을 것이다. 온실 속에서 자란 아이들에게는 지옥에서 보낸 한 철'이나 다름 없다. 비가 와도 행군. 눈이 와도 행군'이다. 오직, 행군'뿐이다. 한 명의 낙오' 없이 우리는 이 지옥의 레이스'를 뚫고 나아가야 한다.

 

이쯤 되면 눈치 빠른 사람'은 알아차렸을 것이다. 이 로드-쇼'는 군사 훈련 프로그램'을 청소년 성장 프로그램'으로 변형시켜 놓은 원맨-쇼'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이다. 국토대장정 프로그램은 육체의 한계를 테스트하는 것이 아니라 집단을 향한 개인의 충성도를 체크'하는 불온한 익스트림 스포츠'다. 개인의 포기는 곧 그 개인이 소속된 조'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한다. 겉으로는 내색은 안하지만 조원들은 자신의 조에서 이탈자가 발생했다는 사실에 짜증이 난다. 이탈자는 곧 겁쟁이, 까탈쟁이, 투덜이, 빙신, 쪼다, 개불, 재수없던 애'로 강등된다.

 

남자라면 징징거리는 사내 새끼 취급을 하고, 여자라면 너무 곱게 자린 년 취급을 당한다. 이 지점에서 국토대장정은 본색을 드러낸다. " 하자 " 있는 육체와 정신'을 걸러내는 것, 그것은 일종의 색출'이며 검열, 바로 히틀러식 우생학'이다. 더욱 재미있는 사실'은 부모의 돈으로 참가한다는 데 있다. 고. 생. 을. 사. 서.한. 다 ?!  돈 주고 깨달음'을 얻겠다는 발상'인데, 그 시작이 심히 불온하다. 차라리 돈 내고 피, 똥, 싸, 라 ! 잇힝 ~

 

결국, 그 모든 고통'을 견디며 최종 목적지'에 도착한 아이'들은 만감이 교차한다. 비싼 참가비'를 내고 얻은 깨달음은 두 가지'다. 하나는 모두가 yes라고 할 때 no라고 말하면 빙신'이 된다는 사실.  빙신보다는 차라리 고통을 참는 것이 유리하다는 결론이고, 다른 하나는 집 나가면 개고생'이다는 사실이다. 지구는 독수리 5형제가 지키고, 노원병은 안철수가 지키지만, 우리집은 아빠와 엄마가 지켰어. 엉엉엉. 고마워 아빠 !  아이들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올 것이다. 좀더 안락한, 좀더 근사한 내부의 집'을 열망하며 열공할 것이다. 땡볕에서 일하는 직업은 힘든 직업. 그래서 그들은 편안한 안락의자'를 꿈꾼다.  오늘도 네이티브 원어민 발음'을 위하여!  굳은 혓바닥'을 동글게 휠 것이다. 두.유.스.피.크.잉.글.리.쉬 ?

 

 

 

1. 히틀러는 일종의 패티쉬 환자'라 할 만하다. 그를 자극하는 이미지는 횃불'이다. 이 횃불 이미지'는 바그너와도 연결된다. 그가 < 불 > 을 상징하는 프로메테우스'에게 반한 이유는 이 불꽃 이미지 때문이다. 2. 인간에 대한 오해'는 히틀러의 우생학이 얼마나 멍청한 짓인가를 짓인가를 증명한다. abo 혈액형'은 히틀러 우생학에서 비롯된 이론으로 히틀러 추종자들은 B형은 나쁘다는 논리'를 편다. 유럽인들은 대부분 O, A형이기 때문이다.B형은 유독 아시아 인종'이 유럽 인종'에 비해 많다. 그런 식으로 따지자면 히틀러 우생학자들이 경배해야 될 대상은 페루 인디언이다. 이들은 모두 100% O형으로 이루어졌다. 3. 홀로코스트 산업'은 히틀러 학살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히틀러 학살'을 이용하는 유태인에 대한 보고서'이다. 히틀러에 의해 가장 많은 수가 희생된 집단은 유태인이 아니라 집시'였다. 4. 우리 안의 파시즘'은 파시즘이 비단 20세기 초 독일 히틀러의 이야기'가 아니라고 말한다. 파시즘은 일상 곳곳에 침투해 있다. 국토대장정'따위의 극기 프로그램이 그 좋은 예이다. 참가자는 명령과 복종을 배운다. 인내와 끈기'라는 인문학적 포장지로 포장을 했으나 사실 포장지 안에 들어간 알맹이는 마조히즘'이다. 고통을 참는 것이다. 즉 개인보다는 집단이다.집단의 이익을 위해서는 개인의 욕망을 억제하라, 라는 것이 파시즘의 주요 강령은 아닐까 ?

 

 


 

 

 

 

 

 

 

 

난도질 영화 : 집 나가면 개고생이다.

 

 

고백하건대, 한때 나는 공포영화 열혈 오타꾸'였다. 가가호호. 면면촌촌. 동네 비디오 가게의 공포영화 코너'란 코너'는 모두 섭렵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 당시 나의 꿈은 공포 영화'를 정복하는 것이었다. 지구 정복'은 잘 빠진 주류 하드-바디'들의 몫이었으니, 나 같은 비주류 오타꾸는 병뚜껑 모으기 정복, 껌종이 모으기 정복' 등 주류가 꺼려하는 변방의 잡동사니'를 수집하는 넝마주이'형에 가까웠다. 아아, 그 시절'을 회상하며 나는 쓴다. 오래되고 낡은 브이. 에이치. 에스' 테이프 속에서 웨스 크레이븐'과 로이드 카우프만'의 영화'를 발견해내는 기쁨'은 하나의 위대한 불꽃'이었노라 말이다.

 

 

 

스플래터 무비'라고 불리우는 십대 난도질 영화에서 희생자들이 곱게 죽이면 재미'가 없다. 미안한 소리이지만 우선 나부터 우우, 한다. 난도질 영화의 묘미'는 바로 살인 도구의 스펙타클화'에 있다. 전기톱'이 등장하는가 하면 정원사용 가위'까지 등장한다. 심지어는 꿈속의 악마가 살인을 하기도 한다. 이 장르를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집 나가면 개고생'이다'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삼백여 편'의 공포영화'를 섭렵한 내공'이니, 위의 정의'를 우습게 생각하지 말기'를 바란다.

 

죽을 운명에 놓인 영화 속 십대들은 할로윈데이나 13일 밤의 금요일'이 되면 꼭 집을 나간다. 엄마의 잔소리'와 아빠의 충고'를 무시하고 떠난 사춘기 소년 소녀들의 캠프파이어'는 결국 지옥에서 보낸 하루로 끝난다. 이 죽음'은 아빠의 징벌'에 가깝다. 관객이 보게 되는 것은 살인자의 얼굴이 아니라 무시무시한 무기'다. 장면과 장면 사이에 삽입된 단단한, 딱딱한, 확대된 무기'는 일종의 아버지 남근'이다. 그것은 아버지의 법'을 무시한 죄. 가족이라는 이름의 울타리'를 벗어난 죄. 그리고 집 밖에서 팬티'를 내린 죄'에 대한 응징'인 셈이다. 영화 속 최후의 생존자'는 온 몸에 피를 뒤집어쓴 채 이렇게 중얼거린다. " 집 나가면 개고생'이야. "

 

이 지점에서 십대 난도질 영화'와 국토 대장정'은 겹친다. 그들은 모두 밖에서 고생하다가 집으로 돌아온다는 줄거리를 가지고 있다. 차이점이 있다면 전자는 부모의 금지 명령이 십대를 밖으로 내몰고, 후자는 부모의 적극적인 후원에 의해 밖으로 내몰린다는 점이 다르다. 하지만 그들 십대들이 깨닫는 교훈은 동일하다. 아버지의 말씀'을 무시하지 말라는 거. 가족이라는 이름의 울타리'는 언제나 당신'을 위험으로부터 보호해준다는 거. 그리고 무리'에서 벗어나지 말라는 것!!!   벗어나는 순간, 그러니깐 당신이 팬티를 내릴려고 으슥한 곳으로 가는 순간, 당신을 기다리는 것은 하키 마스크를 뒤집어쓰거나, 얼굴 가죽을 뒤집어쓰거나, 정원용 가위나 전기톱을 든 가면 쓴 아버지'다. 관객인 우리는 젖가슴이 큰 여자가 무리에서 벗어나는 순간 속으로 외친다. " 이 바보야 ! 무리에서 벗어나지 말라고 ! "

 

부모들은 자신의 자녀들이 십대 난도질 영화'에 빠지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보면 안 되는 목록으로 지정한다. 그런데 여름방학만 되면 자신의 자녀'를 국토대장정 프로그램에 참여시킨다. 내가 보기엔 다 거기서 거기인데 말이다. 사실 난도질 영화보다 더 위험한 것은 국토대장정이다. 난도질 영화는 말 그대로 영화일 뿐이지만, 국토대장정은 체험이기 때문이다. 십대 난도질 영화가 남성 가부장 이데올로기의 후진 잔소리'이라면, 국토대장정은 남성 가부장"들"의 집단 명령'이다. 남성 가부장의 확장형이 바로 파시즘이기 때문이다.  무엇이 더 위험한가 ?

 

아이가 고통'을 참지 못하고 절룩거릴 때는 걷기를 중단해야 한다. 멋들어지게 비트겐슈타인의 말투를 빌려 비비꼬자면, 개인의 고통에 대해서는 모두 다 침묵해야 한다. 그것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그게 어른이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하는 교육이다. 누군가는 강하게 키우겠다고 채찍을 드는 사람도 있겠으나 그것은 교육이 아니라 폭력이지 않은가 ? 당신은 어쩌면 파시즘을 가르치기 위해 자신의 자식을 땡볕으로 내몰고 있는지도 모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흉터에는 신기한 힘이 있지. 과거가 진짜 있었던 일이라는 것을 일깨워주거든. 흉터를 얻게된 사연은 결코 잊을 수 없지. 안 그런가?

- 모두 다 예쁜 말들 中

 

 

 

오늘 생각없이 책장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코멕 메카시의 < 모두 다 예쁜 말들 > 이 생각났다. 이유는 모른다. < 아비정전 > 을 생각하다가, 장국영을 생각하다가, 장만옥을 생각하다가, 실패한 내 연애를 생각하다가, 불현듯 < 모두 다 예쁜 말들 > 이 떠오른 것이었다. 다시 읽기 위해 찾는 것이 아니었다. 다만, 그냥... 찾고 싶었을 뿐이다. 다섯 개의 책장에서 코멕 메카시의 소설을 모두 골라냈다. < 핏빛 자오선 > < 국경을 넘어서 > < 평원의 도시들 > <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 < 로드 > . 하지만 여전히 < 모두 다 예쁜 말들 > 은 보이지 않았다. 분실한 모양이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그동안 내가 잊고 있었던 기억이 갑자기 생각났다. 나는 천장이 낮은 옥탑에서 산 적이 있다. 그곳에서 한 여자를 오랫동안 사랑했다. 그 여자와는 헤어졌다. 그 책을 그녀가 가지고 있었다. 그녀의 책인 레비스트로스의 < 슬픈 열대 > 가 내 책장에 있는 것처럼 말이다.  기억이란 늘 이렇게 의뭉스러운 점이 있다.  생각해 보니, 이 아비정전'도 그녀와 함께 본 영화였다. 책을 다시 사야 할까 ? 고민하다가 이내 포기했다. 잃어버린 책을 다시 사는 것은 어리석다. 더군다나 그 책을 읽은 적이 있다면 더더욱 그렇다. 그리고 헤어진 여자를 그리워하는 것도 어리석다. 더군다나 헤어진 여자가 다른 사람과 사랑에 빠졌다면 더더욱 그렇다. 이젠 소년다운 고집은 버려야 한다.

 

잃어버린 것에 대한 아쉬움 때문이었을까 ? < 모두 다 예쁜 말들 > 에 대한 리뷰'를 읽어보았다. 그러다가 그 여자가 쓴 글을 우연히 발견하게 되었다. 천장이 낮은 옥탑에 살았던 남자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 사람은 코맥 메카시의 소설을 유독 좋아했다고  담담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그리고 끝으로 < 모두 다 예쁜 말들 > 은 그 남자의 책장에 꽂혀 있어야 할 책이었으나 이렇게 자신의 책장에 꽂히게 되었다고 말했다.   2009년의 리뷰였다. 범종 같은 울림이 밑바닥 깊은 곳'에서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 밑에는 글쓴이의 동료로 보이는 사람의 덧글이 달렸다. 덧글은 2012년의 것이었다. 그러니깐 글쓴이의 동료는 3년이 지난 글에 뒤늦게 덧글을 단 것이다. " 우연히 네가 쓴 글을 보았다 " 로 시작한 글이었다. " 우연히 네가 쓴 글을 보았어. 내가 ** 샘'에게 보내던 메일 주소 아이디'와 알라딘 아이디가 똑같더라... 너무 아파서 끝까지 읽지 못했다. **샘'이 그렇게 불의의 사고로 허망하게 떠나고 나서, 나... 샘의 빈 자리'를 보며 많이 울었어. 여긴 마치 나를 위한 숨은 보물 찾기 쪽지 같아. 자주 올께. 주인 없는 집에 너무 자주 온다고 눈치를 주지는 마. 보고 싶다. 그립다... "

 

내일은 4월 1일'이다. 하루 앞당겨서 이리 쓴다. 

 

 

 

 


 

  

 

 

 

 

 

 

소년다운 고집.

 

 

 

장국영이 죽었다. 같은 날 김정일은 군부 세력에 의해 살해당했고, 기타노 다케시는 가족 살해 혐의로 체포되었으며, 심형래는 칸느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58건이나 되는 허위 신고가 119에 접수되었다. 2003년 4월 1일 만우절의 풍경이었다. 하지만 다른 이들은 모두 죽었다가 깨어나는 기적을 이루었으나 장국영은 더 이상 깨어나지 못했다. 그는 빌딩 24층에서 뛰어내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잉게보르크 바하만이 그랬던가.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고?! 스스로를 발 없는 새'라고 말했던 남자는 거짓말처럼 죽었다.나는 그 소식에 휘청거렸다. < 아비정전 > 을 스무 번 넘게 보던 즈음이었다. 그날 밤, 다시 아비정전을 보았다. 살아 있는 배우의 걸작'을 보는 것과 죽은 배우가 남긴 유작'을 보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이라는 사실을 그때 깨달았다.

 

 

              

 

 

 

 

 

 

 

나는 이 영화를 생각날 때마다 보았다. 볼 때마다 생각났다. 이런저런 일로 이 영화를 마흔 번 넘게 보게 되었다. 이 영화를 습관처럼 본다는 것은 소년다운 고집'에 속했다. 이 영화에 대한 개인적 오마쥬인 셈이었다. 내가 이 영화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2007년 봄, 낙원동 시네마떼끄'에서였다. 그때, 나는 이제 더 이상 이 영화'를 보면 안 된다는 생각을 했다. 이 불길한 느낌은 적중했다. 성공한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소년의 불순한 고집따위는 버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담배를 끊으면 사탕을 찾듯이, 나는 고집을 버리는 대신 반짝반짝 빛나는 것들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다시는 보지 않겠다는 태도는 지금 생각해 보니, 또 다른 고집이었던 것 같다. 오래된 고집을 버리고 새 고집을 얻은 셈이다

.

 

 

 

 

내가 이 영화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장국영이 자신을 버린 어머니를 찾았을 때'이다. 바람과는 달리 어머니는 만남을 거부한다. 어머니에게서 다시 한번 버림받은 그가 뒤돌아서 빠른 걸음으로 씩씩하게 걸을 때, 화면은 재촉하는 걸음과는 달리 어느 순간 슬로우모션'이 되어 느린 걸음으로 바뀐다. 재촉은 지연된다. 이 빠른 걸음과 느린 걸음'은 주인공이 품고 있는 겉과 속을 효과적으로 표현한다. 빠른 걸음이 그가 어머니를 향해 내뱉는 위악'이라면, 느린 걸음은 어머니 곁에 머물고 싶은 그리움이다. 어머니는 커튼이 쳐진 창가에서 아들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앞에서는 보이지 않으나 뒤에서 보면 선명하게 보이는 것은 초라한 어깨'다. 내것이 아닌 타자의 어깨'는 늘 마음 속에 오래 남는 법이다.

 

 

 

 

 

▶ 편집 과정에서 삭제된 아비정전 스틸 컷

 

오늘 우연히 이 스틸 사진'을 발견했다. 편집에서 삭제된 장면 중 하나'다. 장만옥은 왜 천장이 낮은 양조위의 방 창가에 앉아 있(었)을까 ? 나는 엔딩에서 거울을 보며 머리를 빗는 양조위'를 장국영'이라고 착각한 적이 있다. 세 번째 보았을 때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인물'은 장국영이 아니라 양조위'였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질 나쁜 모니터 화질 탓만은 아니었다. 둘은 묘하게 닮았다. 그녀는 여전히 첫사랑인 장국영을 잊지 못한 것이다. 장만옥에게 있어서 양조위는 장국영의 헛것이다. < 첫 > 의 반대말은 < 끝 > 이 아니다. < 헛 > 이다. 그러므로 첫사랑의 반대말은 헛사랑'이다. 나는 그 후로 양조위를 볼 때마다 장국영이 생각났다.

 

 

 

 

 

 

 


댓글(12)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새벽 2013-03-31 18: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정말이지 내일이 바로 그날.. 거짓말처럼 저 배우가 간지도 벌써 몇 년이 흘렀네요.
제게 곰발님 오늘 글은 특히나 좋네요. 가슴에 팍팍 꽂힙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03-31 18:37   좋아요 0 | URL
제 글이 아니라 저 영화가 가지는 독특한 매력 때문일 겁니다.
어제 한번 다시 보았습니다. 42번째 관람입니다.

달사르 2013-03-31 18: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흉터는 그렇게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며 치유의 과정을 반복하나봐요.
제게도 흉터가 있는데 가끔 나도 모르게 손이 갈 때면, 지나간 과정이 도르르 말리면서 재생되더라구요.
나를 사랑하는 남자라면, 내 흉터 또한 사랑해줬으면..생각이 가끔 들기도 하구요.

내일은 만우절보다는 장국영이 떠난 날로 더 먼저 기억되는 거 같아요. 이것도 흉터여서 그렇겠지요?

곰곰생각하는발 2013-03-31 19:53   좋아요 0 | URL
5월은 가정의 달이고, 4월은 장국영의 달이죠. 이젠 전 그렇게 기억합니다.
4월 1일 혹은 4월 16일을 장국영의 날로 정해야 합니다.
영화 속 장국영과 장만옥이 만나는 날이 4월 16일이거든요. 장국영은 공교롭게도
4월에 세상을 뜨고 말이죠. 4월은 이래저래 장국영이 떠오르비다.

포스트잇 2013-03-31 2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왕가위, 장국영, 양조위, 장만옥... 제게 90년대는 화양연화였네요...,영화의 시대였어요.......

곰곰생각하는발 2013-04-01 00:01   좋아요 0 | URL
화양연화도 좋죠. 이참에 다시 보아야겠습니다.

라로 2013-04-01 1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것이 아닌 타자의 어깨'는 늘 마음 속에 오래 남는 법이다. 라는 말 인상에 남네요,,
첫의 반대는 헛! 이군요,,,,미리 앞당긴 만우절 페이퍼인가요?????ㅎㅎㅎ
늘 멋져요!!^^

곰곰생각하는발 2013-04-01 17:22   좋아요 0 | URL
네에. 하루 앞당긴 만우절 페이퍼입니다.
전 이상하게 그 사람이 뒤돌아서면 그때부터는 어깨만 보이더라고요.
참.. 신기해요..

스누피 2013-04-01 1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전 장국영에 빙의된 저 인물이 장학우라고 얼핏 착각하고 있었다는.
그런데 곰곰 발로 생각해 보니 머리 빗는 장학우는 영화전차 엔딩에서 본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당시의 홍콩영화들은 죄다 비빔밥이 돼 버려서
기억이란 놈 참 의뭉스럽다,그런 생각 많이 합니다. 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3-04-01 17:21   좋아요 0 | URL
저 영화를 볼 때 모니터가 심각하게 어두웠어요.
왜 오래되면 어두워지잖습니까. 가뜩이나 어두운데
화면도 어둡다 보니 전 마지막 머리 빗는 남자가 정말 감쪽 같이
장국영인 줄 알았어요. 제가 생각하는 그 스누피 님 맞으시죠 ? 후후..

그 놈 맞음 스누피 2013-04-01 17:45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스누피란 놈도 워낙 의뭉스런 놈이라;; ㅋㅋㅋㅋㅋ
맞아요. 심각하게 어두웠지요. 원래 화면도 그런데다 그 땐 죄다 닳고 닳은 비디오로 아비정전을 봤으니까요. 그래서 저도 처음엔 응? 장국영인가벼? 저 놈 안 죽었나? 회상씬인가? 그랬다는; ㅋㅋㅋ

아마도 왕가위가 일부러 그런 걸 노리고 관객들을 놀려 먹은 게지요, 분명히. ㅎ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3-04-01 17:56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ㅎㅎㅎㅎㅎ 왕가위가 워낙 뒤죽박죽 편집 대마왕이라서..
저도 과거의 한 장면이겠거니 했습니다.
이 영화에서 편집으로 잘려나간 장면이 무지 많았다고 하죠 ?
하여튼 잘리기 전에는 장만옥과 양조위가 한방에 있는 것으로 보아
연인이 되었나 봅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