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안의 파시즘 : 집 나가면 개고생이다.
해마다 여름'이면 박카스'에서 주최하는 국토 순례 대장정'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청(소)년 극기 체험 프로그램'이다. 참가한 학생들은 각자 조'를 나누어 일주일 동안 도보로만 국토'를 횡단해야 한다. 각자 무리'를 지어 나누었으니 그 중엔 리더'가 있을 것이고 다른 무리'와의 경쟁'과 갈등'도 있을 것이다. 온실 속에서 자란 아이들에게는 지옥에서 보낸 한 철'이나 다름 없다. 비가 와도 행군. 눈이 와도 행군'이다. 오직, 행군'뿐이다. 한 명의 낙오' 없이 우리는 이 지옥의 레이스'를 뚫고 나아가야 한다.
이쯤 되면 눈치 빠른 사람'은 알아차렸을 것이다. 이 로드-쇼'는 군사 훈련 프로그램'을 청소년 성장 프로그램'으로 변형시켜 놓은 원맨-쇼'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이다. 국토대장정 프로그램은 육체의 한계를 테스트하는 것이 아니라 집단을 향한 개인의 충성도를 체크'하는 불온한 익스트림 스포츠'다. 개인의 포기는 곧 그 개인이 소속된 조'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한다. 겉으로는 내색은 안하지만 조원들은 자신의 조에서 이탈자가 발생했다는 사실에 짜증이 난다. 이탈자는 곧 겁쟁이, 까탈쟁이, 투덜이, 빙신, 쪼다, 개불, 재수없던 애'로 강등된다.
남자라면 징징거리는 사내 새끼 취급을 하고, 여자라면 너무 곱게 자린 년 취급을 당한다. 이 지점에서 국토대장정은 본색을 드러낸다. " 하자 " 있는 육체와 정신'을 걸러내는 것, 그것은 일종의 색출'이며 검열, 바로 히틀러식 우생학'이다. 더욱 재미있는 사실'은 부모의 돈으로 참가한다는 데 있다. 고. 생. 을. 사. 서.한. 다 ?! 돈 주고 깨달음'을 얻겠다는 발상'인데, 그 시작이 심히 불온하다. 차라리 돈 내고 피, 똥, 싸, 라 ! 잇힝 ~
결국, 그 모든 고통'을 견디며 최종 목적지'에 도착한 아이'들은 만감이 교차한다. 비싼 참가비'를 내고 얻은 깨달음은 두 가지'다. 하나는 모두가 yes라고 할 때 no라고 말하면 빙신'이 된다는 사실. 빙신보다는 차라리 고통을 참는 것이 유리하다는 결론이고, 다른 하나는 집 나가면 개고생'이다는 사실이다. 지구는 독수리 5형제가 지키고, 노원병은 안철수가 지키지만, 우리집은 아빠와 엄마가 지켰어. 엉엉엉. 고마워 아빠 ! 아이들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올 것이다. 좀더 안락한, 좀더 근사한 내부의 집'을 열망하며 열공할 것이다. 땡볕에서 일하는 직업은 힘든 직업. 그래서 그들은 편안한 안락의자'를 꿈꾼다. 오늘도 네이티브 원어민 발음'을 위하여! 굳은 혓바닥'을 동글게 휠 것이다. 두.유.스.피.크.잉.글.리.쉬 ?
1. 히틀러는 일종의 패티쉬 환자'라 할 만하다. 그를 자극하는 이미지는 횃불'이다. 이 횃불 이미지'는 바그너와도 연결된다. 그가 < 불 > 을 상징하는 프로메테우스'에게 반한 이유는 이 불꽃 이미지 때문이다. 2. 인간에 대한 오해'는 히틀러의 우생학이 얼마나 멍청한 짓인가를 짓인가를 증명한다. abo 혈액형'은 히틀러 우생학에서 비롯된 이론으로 히틀러 추종자들은 B형은 나쁘다는 논리'를 편다. 유럽인들은 대부분 O, A형이기 때문이다.B형은 유독 아시아 인종'이 유럽 인종'에 비해 많다. 그런 식으로 따지자면 히틀러 우생학자들이 경배해야 될 대상은 페루 인디언이다. 이들은 모두 100% O형으로 이루어졌다. 3. 홀로코스트 산업'은 히틀러 학살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히틀러 학살'을 이용하는 유태인에 대한 보고서'이다. 히틀러에 의해 가장 많은 수가 희생된 집단은 유태인이 아니라 집시'였다. 4. 우리 안의 파시즘'은 파시즘이 비단 20세기 초 독일 히틀러의 이야기'가 아니라고 말한다. 파시즘은 일상 곳곳에 침투해 있다. 국토대장정'따위의 극기 프로그램이 그 좋은 예이다. 참가자는 명령과 복종을 배운다. 인내와 끈기'라는 인문학적 포장지로 포장을 했으나 사실 포장지 안에 들어간 알맹이는 마조히즘'이다. 고통을 참는 것이다. 즉 개인보다는 집단이다.집단의 이익을 위해서는 개인의 욕망을 억제하라, 라는 것이 파시즘의 주요 강령은 아닐까 ?
난도질 영화 : 집 나가면 개고생이다.
고백하건대, 한때 나는 공포영화 열혈 오타꾸'였다. 가가호호. 면면촌촌. 동네 비디오 가게의 공포영화 코너'란 코너'는 모두 섭렵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 당시 나의 꿈은 공포 영화'를 정복하는 것이었다. 지구 정복'은 잘 빠진 주류 하드-바디'들의 몫이었으니, 나 같은 비주류 오타꾸는 병뚜껑 모으기 정복, 껌종이 모으기 정복' 등 주류가 꺼려하는 변방의 잡동사니'를 수집하는 넝마주이'형에 가까웠다. 아아, 그 시절'을 회상하며 나는 쓴다. 오래되고 낡은 브이. 에이치. 에스' 테이프 속에서 웨스 크레이븐'과 로이드 카우프만'의 영화'를 발견해내는 기쁨'은 하나의 위대한 불꽃'이었노라 말이다.
스플래터 무비'라고 불리우는 십대 난도질 영화에서 희생자들이 곱게 죽이면 재미'가 없다. 미안한 소리이지만 우선 나부터 우우, 한다. 난도질 영화의 묘미'는 바로 살인 도구의 스펙타클화'에 있다. 전기톱'이 등장하는가 하면 정원사용 가위'까지 등장한다. 심지어는 꿈속의 악마가 살인을 하기도 한다. 이 장르를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집 나가면 개고생'이다'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삼백여 편'의 공포영화'를 섭렵한 내공'이니, 위의 정의'를 우습게 생각하지 말기'를 바란다.
죽을 운명에 놓인 영화 속 십대들은 할로윈데이나 13일 밤의 금요일'이 되면 꼭 집을 나간다. 엄마의 잔소리'와 아빠의 충고'를 무시하고 떠난 사춘기 소년 소녀들의 캠프파이어'는 결국 지옥에서 보낸 하루로 끝난다. 이 죽음'은 아빠의 징벌'에 가깝다. 관객이 보게 되는 것은 살인자의 얼굴이 아니라 무시무시한 무기'다. 장면과 장면 사이에 삽입된 단단한, 딱딱한, 확대된 무기'는 일종의 아버지 남근'이다. 그것은 아버지의 법'을 무시한 죄. 가족이라는 이름의 울타리'를 벗어난 죄. 그리고 집 밖에서 팬티'를 내린 죄'에 대한 응징'인 셈이다. 영화 속 최후의 생존자'는 온 몸에 피를 뒤집어쓴 채 이렇게 중얼거린다. " 집 나가면 개고생'이야. "
이 지점에서 십대 난도질 영화'와 국토 대장정'은 겹친다. 그들은 모두 밖에서 고생하다가 집으로 돌아온다는 줄거리를 가지고 있다. 차이점이 있다면 전자는 부모의 금지 명령이 십대를 밖으로 내몰고, 후자는 부모의 적극적인 후원에 의해 밖으로 내몰린다는 점이 다르다. 하지만 그들 십대들이 깨닫는 교훈은 동일하다. 아버지의 말씀'을 무시하지 말라는 거. 가족이라는 이름의 울타리'는 언제나 당신'을 위험으로부터 보호해준다는 거. 그리고 무리'에서 벗어나지 말라는 것!!! 벗어나는 순간, 그러니깐 당신이 팬티를 내릴려고 으슥한 곳으로 가는 순간, 당신을 기다리는 것은 하키 마스크를 뒤집어쓰거나, 얼굴 가죽을 뒤집어쓰거나, 정원용 가위나 전기톱을 든 가면 쓴 아버지'다. 관객인 우리는 젖가슴이 큰 여자가 무리에서 벗어나는 순간 속으로 외친다. " 이 바보야 ! 무리에서 벗어나지 말라고 ! "
부모들은 자신의 자녀들이 십대 난도질 영화'에 빠지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보면 안 되는 목록으로 지정한다. 그런데 여름방학만 되면 자신의 자녀'를 국토대장정 프로그램에 참여시킨다. 내가 보기엔 다 거기서 거기인데 말이다. 사실 난도질 영화보다 더 위험한 것은 국토대장정이다. 난도질 영화는 말 그대로 영화일 뿐이지만, 국토대장정은 체험이기 때문이다. 십대 난도질 영화가 남성 가부장 이데올로기의 후진 잔소리'이라면, 국토대장정은 남성 가부장"들"의 집단 명령'이다. 남성 가부장의 확장형이 바로 파시즘이기 때문이다. 무엇이 더 위험한가 ?
아이가 고통'을 참지 못하고 절룩거릴 때는 걷기를 중단해야 한다. 멋들어지게 비트겐슈타인의 말투를 빌려 비비꼬자면, 개인의 고통에 대해서는 모두 다 침묵해야 한다. 그것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그게 어른이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하는 교육이다. 누군가는 강하게 키우겠다고 채찍을 드는 사람도 있겠으나 그것은 교육이 아니라 폭력이지 않은가 ? 당신은 어쩌면 파시즘을 가르치기 위해 자신의 자식을 땡볕으로 내몰고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