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에 대한 사전적 정의는 다음과 같다. " 오랫동안 많은 사람에게 널리 읽히거나 모범이 될 만한 문학이나 예술 작품." 총 30음절이다. 사전답게 유머 감각도 없고 딱딱하다. 반면 마크 트웨인은 " A classic is something that everybody wants to have read and nobody wants to read : 고전이란 누구나 한번쯤 읽기를 바라지만, 사실은 아무도 읽고 싶어 하지 않는 책이다. " 라고 고전을 정의한다. 아, 사랑스러운 마크 할아버지 ! 하지만 번역해 놓으니 34음절'이다. 30음절 이상을 달달 외운다는 것은 그리 쉬운 것이 아니다. 그래서 준비했다.
나는 고전에 대한 정의'를 2음절로 줄일 수 있다. " 원 ! 빈 ! " 그렇다, 아저씨가 되어도 멋진 원빈' 말이다. < 고전 = 원빈 > 이다. 원빈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 원빈의 조각 같은 외모를 칭찬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 우리 모두는 원빈에 대해서 잘 알고 있으며 그의 아름다운 얼굴을 찬양한다. 그런데... 그를 실제로 본 사람은 과연 몇 명이나 될까 ? 고전'도 이와 다르지 않다. < 돈키호테 > 나 < 천일야화 > 를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나 ? 이 위대한 고전에 대해 경배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나 ? 그런데 막상 읽은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 고전에 대한 정의는 원빈이다 !
내가 농담으로 이 글을 시작한 이유는 고전 단테의 < 신곡 > 때문이다. 이 자리를 빌어 고백하자면 나는 단테의 < 신곡 > 을 읽지 않았다. 그래서 서두에 넋두리가 길었던 것. 이번 고백을 계기로 꼭 읽어보리라, 다짐한다. 내가 < 신곡 > 에 대해 알고 있는 상식은 지옥 편, 연옥 편, 천국 편' 순으로 구성되었다는 점이 전부'이다. 그중에서 지옥 편이 무척 궁금하다. 내가 성경을 읽었을 때 제일 먼저 본 부분은 창세기가 아니라 요한계시록'이었다. 이렇게 공포 쪽으로 머리가 돌아가다 보니 이상하게 < 신곡 - 지옥 편 > 이 제일 땡기는 것이다. 취향은 숨길 수 없는 것인가 ? 천국 편'은 읽다가 질투가 날 것 같고, 연옥 편'은 왠지 어설픈 미스테리 스릴러 같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면 나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 지옥 편 > 에 호기심이 발동할 것 같다. 신이 버티고 있는 천국의 조용한 풍경은 재미가 없을 것 같다. 그것은 마치 사장이 참석한 직원 회식자리와 비슷하리라. 인간은 본능적으로 천국'보다는 지옥'에 눈길이 가지 않을까 ? 그래서 원작의 의도와는 다르게 단테의 신곡은 범죄 문학이나 영화'의 단골 소재가 되었다. 줄리오 레오니는 단테를 탐정'으로 내세워 돈을 꽤 벌었다. < 비밀의 집회 > < 빛의 살인 > < 모자이크 살인 > 은 단테가 탐정으로 나오는 시리즈물'이다. 아마.. 계속 단테를 팔아서 돈을 벌 모양이다.
그런가 하면 대부분은 단테의 신곡이라는 텍스트'가 살인 사건의 원인을 제공한다. 단테가 이 소식을 들었다면 두 눈을 번쩍 떴을 것이지만 죽은 자는 말이 없는 법. 매튜 펄의 < 단테 클럽 > 은 살인자가 단테의 신곡'에 나오는 형벌을 살인에 모방한다는 측면에서 영화 < 세븐 > 과 비슷하다. ( 그런데 < 세븐 > 에서 언급하는 7가지 대죄'는 사실 지옥 편이 아니라 연옥 편'에 언급된 내용이라고 한다. )
세븐 : " 밥은...... 먹고 다니냐 ? "
데이빗 핀처의 < 세븐 > 은 매우 잘빠진 스릴러'다. 카일 쿠퍼가 담당한 오프닝 타이틀 장면은 이미 전설이 되었다. 본편'보다 훌륭한 오프닝 타이틀 시퀸스'라는 찬사는 은근히 데이빗 핀처의 심기를 건드렸을 것이 분명하다. 현대 스릴러 장르 경향'을 보자면 오프닝 부분에서는 < 세븐 > 이전과 이후'로 나뉠 정도로 압도적인 퀄리티'를 자랑한다. 요즘은 개나 소나 다 세븐 스타일'을 따라해서 식상한 속도감이지만 최초의 오리지날인 이 오프닝은 그 당시엔 명불허전이었다.
※ 오프닝 씬과 오프닝 타이틀 씬은 다르다 !
하지만 내게는 히치콕의 < 사이코 > 오프닝' 타이틀 시퀸스가 더 예술적이고 감각적이다. 굳이 두 작품을 비교하자면 말이다. 전설적인 타이포그래픽의 대가인 솔 바스'가 제작한 오프닝은 가로 직선과 세로 직선이 반복적으로 나열된다. 이 직선들은 관현악기의 불협화음과 오버랩되면서 날카로운 것으로 긋는 이미지'를 생산한다. 그러니깐 이 선들은 < line > 이기 보다는 < slash > 적인 느낌이 강조된다. 이 타이틀 시퀸스'가 끝나면 카메라는 바로 바우하우스적 미학 형태인 도시 빌딩 건물을 보여준다. 그것들은 모두 가로 직선과 세로 직선으로 이루어진 건축물이다. 솔 바스'가 직선 이미지로 오프닝을 구성한 이유는 직선'이 가지고 있는 냉정함 때문이다. 곡선이 감성적이며 인간적이라면, 직선은 이성적이며 기계적이다. 솔 바스, 그는 탁월한 예술가였다. 물론 카일 쿠퍼'도 훌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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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영화 포스터의 제목을 보고 당황했다. 빨간 바탕에 아홉 개의 빗금''이 전부인 디자인'이 아닌가 ? 디자인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최소주의'이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 보면 무릎을 탁 치게 되어 있다. 혼자서 아 하다가, 잠시 오 하다가, 결국에는 와 하게 된다. 그리고는 다시 와와 !! 이 작품의 유일한 오브제는 < / / / > 이 전부다. 결국은 빗금'으로 이 암호 같은 수수께끼'를 풀어야 한다. 시작이자 마무리'다. 우선 게슈탈트'에서 확장한 도상학적 접근을 시도해 보자. 우리가 이 작품에서 유추할 수 있는 것은 빗방울'이거나 혹은 물줄기'다.
왜냐하면 우리는 대부분 비가 오는 날을 그림으로 그릴 때 빗금'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영화'가 물과 관련이 깊다는 추리'를 하게 된다. 스탠리 도넨의 뮤지컬 걸작 < 사랑은 비를 타고 > 일까 ? 그런 것 같지는 않다. 빨간 원색이 사용된 불길한 바탕 이미지는 " 사랑은 비를 타고 " 의 로맨틱 코미디 뮤지컬'과는 이미지가 맞지 않다. 물줄기와 관련된 영화는 수두룩하다. 해양 영화에서 시작해서 타워링 같은 재난 영화에 이르기까지 그 범위'가 광범위하다. 바탕이 붉은 색은 것으로 보아 < 타워링 > 같은 재난 영화에 가깝지만 말이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자
곰곰 생각에 빠진다. " 아, 이 빗금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 " 내가 혼잣말을 하자 누군가 지나가며 의미 없는 말을 던진다. " 슬래시가 아홉 개네 ? " 슬래쉬 ?SLASH !!!!!! 그렇다, 이 문제의 핵심은 SLASH'다. " / " 는 컴퓨터 자판 부호이기도 하고, " (날카로운 것으로) 베다 " 라는 뜻을 가지고도 있는 단어이다. 그러니깐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 / > 는 물줄기'를 의미하면서 동시에 살인'을 의미한다. 물과 살인'이라는 키워드에 적합한 장소는 샤워실이다. 빙고 ! 여기까지 풀면 문제는 쉽게 진행된다. < 사이코 > 에서의 그 유명한 샤워 장면'을 모를 수가 있나.
< 사이코 > 가 정답일 것이라는 추리에 쐐기'를 박자면 " slash ( / ) " 에 - er'를 붙이면 " slasher " 가 된다. 우리가 흔히 난도질 영화'라고 말할 때의 그 슬래셔무비'가 되는 것이다. < 사이코 > 야말로 슬래셔무비'의 최고 걸작이 아니었던가 ? 이 영화 포스터 디자이너'는 단순히 빗금 9개'를 가지고 모든 것을 설명한다. 이 영화'는 샤워실에서 살인이 일어난다는 내용과 영화의 장르가 슬래셔무비'라는 것까지 알려주는 것이다. < / > 은 기호이면서 동시에 아이들이 그림을 그릴 때 즐겨 사용하는 물의 도상이면서 동시에 난도질하다, 라는 뜻도 내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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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영화 포스터의 제목을 보고 당황했다. 빨간 바탕에 아홉 개의 빗금''이 전부인 디자인'이 아닌가 ? 디자인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최소주의'이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 보면 무릎을 탁 치게 되어 있다. 혼자서 아 하다가, 잠시 오 하다가, 결국에는 와 하게 된다. 그리고는 다시 와와 !! 이 작품의 유일한 오브제는 < / / / > 이 전부다. 결국은 빗금'으로 이 암호 같은 수수께끼'를 풀어야 한다. 시작이자 마무리'다. 우선 게슈탈트'에서 확장한 도상학적 접근을 시도해 보자. 우리가 이 작품에서 유추할 수 있는 것은 빗방울'이거나 혹은 물줄기'다.
왜냐하면 우리는 대부분 비가 오는 날을 그림으로 그릴 때 빗금'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영화'가 물과 관련이 깊다는 추리'를 하게 된다. 스탠리 도넨의 뮤지컬 걸작 < 사랑은 비를 타고 > 일까 ? 그런 것 같지는 않다. 빨간 원색이 사용된 불길한 바탕 이미지는 " 사랑은 비를 타고 " 의 로맨틱 코미디 뮤지컬'과는 이미지가 맞지 않다. 물줄기와 관련된 영화는 수두룩하다. 해양 영화에서 시작해서 타워링 같은 재난 영화에 이르기까지 그 범위'가 광범위하다. 바탕이 붉은 색은 것으로 보아 < 타워링 > 같은 재난 영화에 가깝지만 말이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자
곰곰 생각에 빠진다. " 아, 이 빗금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 " 내가 혼잣말을 하자 누군가 지나가며 의미 없는 말을 던진다. " 슬래시가 아홉 개네 ? " 슬래쉬 ?SLASH !!!!!! 그렇다, 이 문제의 핵심은 SLASH'다. " / " 는 컴퓨터 자판 부호이기도 하고, " (날카로운 것으로) 베다 " 라는 뜻을 가지고도 있는 단어이다. 그러니깐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 / > 는 물줄기'를 의미하면서 동시에 살인'을 의미한다. 물과 살인'이라는 키워드에 적합한 장소는 샤워실이다. 빙고 ! 여기까지 풀면 문제는 쉽게 진행된다. < 사이코 > 에서의 그 유명한 샤워 장면'을 모를 수가 있나.
< 사이코 > 가 정답일 것이라는 추리에 쐐기'를 박자면 " slash ( / ) " 에 - er'를 붙이면 " slasher " 가 된다. 우리가 흔히 난도질 영화'라고 말할 때의 그 슬래셔무비'가 되는 것이다. < 사이코 > 야말로 슬래셔무비'의 최고 걸작이 아니었던가 ? 이 영화 포스터 디자이너'는 단순히 빗금 9개'를 가지고 모든 것을 설명한다. 이 영화'는 샤워실에서 살인이 일어난다는 내용과 영화의 장르가 슬래셔무비'라는 것까지 알려주는 것이다. < / > 은 기호이면서 동시에 아이들이 그림을 그릴 때 즐겨 사용하는 물의 도상이면서 동시에 난도질하다, 라는 뜻도 내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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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븐의 주요 모티브는 단테의 신곡에 나오는 7가지 죄악이다. 지옥으로 떨어지는 7가지 대죄(seven deadly sins)는 ‘폭식 Gluttony’ ‘질투 Envy’ ‘색욕 Lust’ ‘자만 Pride’ ‘게으름 Sloth’ ‘탐욕 Greed’ ‘분노 Wrath’ 등이다. 살인자 존 도'는 이를 모방한다. 이 7가지 대죄 목록 중에서 내가 주목하는 것은 " 폭식 " 이다. 영화 속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살인 방식'은 바로 먹다 죽은 남자 에피소드'다. 많이 먹는다는 게 미련한 짓이기는 하지만 그게 지옥으로 떨어질 정도의 대죄는 아니지 않은가 ? 생리적 욕망은 생래적인 것이다. 중세는 먹는 거 가지고 너무 야박하다 싶다.
그런데 곰곰 생각하면 7가지 대죄'는 결국 먹고 사는 문제'로 귀결된다. 인간이 먹고 사는 문제에서 해방된 것은 그리 오랜 역사가 아니다. 현재에도 굶주려서 영양 실조에 걸린 인구의 비율이 20%에 육박한다. 이 풍요로운 시대에도 말이다. 하물며 중세 시대'는 말 그대로 먹고 사는 문제가 가장 큰 걱정이었다. 기근이라도 발생하면 굶어죽는 사람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었다. 중세 시대의 전쟁은 곧 식량 전쟁이었다. 7가지 대죄 중에서 식욕과 성욕' 그리고 게으름을 죄악시한 이유에는 아마도 식량 정책과 관련이 깊을 것이다. 식량 소비의 주범은 식욕과 인간의 쪽수(성욕)가 아니었던가.
단테의 신곡에서는 7가지 대죄 가운데 가장 지탄을 받아야 할 죄로 < 자만 > < 질투 > < 분노 > 라고 뽑고는 나머지는 정상 참작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이 3가지 주요 죄악은 심장에서 나오는 욕망이다. 마음의 원죄다. 그리고 정상 참작이 가능하다고 말하는 나머지인 < 폭식 Gluttony > 은 먹고 싶은 입의 욕망이고, < 색욕 Lust > 은 거시기의 단단한 욕망이며, < 게으름 Sloth > 은 눕고 싶은 발의 욕망, < 탐욕 Greed >은 움켜쥐고 싶은 손의 욕망이다. 모두 신체 기관들의 원초적 생리 욕망이다. 결국 대죄 핵심 3인방을 제외한 나머지 죄악은 식량 정책'을 위한 암묵적인 경고 메시지'인 것이다.
그것은 쌀이 없다고 말하기는 쪽팔리니깐 엉뚱하게 보리와 밀가루'가 건강에 좋다고 홍보하던 박정희 시대의 보건국과 비슷하다. 하지만 그것을 탓할 수는 없다. 밥 한 숟가락 덜어내서 내일의 기근에 대비하자는 것이니 말이다. 이제는 중세와는 달리 먹는 문제에서는 해방되었다. 현대 문명 사회는 먹고 사는 문제에서 먹는 것은 해결되었으니 이제 남은 것은 " 어떻게 (먹고) 살 것인가 ? " 만 남았다. 데이빗 핀처는, 얼마나 종교적인 인간인지는 모르겠으나, 중세시대의 종교적 장치'를 선호하는 감독이다. 에이리언 3' 도 한 편의 장엄한 종교 수난극 같다.
봉준호 감독의 < 살인의 추억 > 에서 송강호는 박해일의 멱살을 잡으며 묻는다. " 밥은..... 먹고 다니냐 ? " 이 대사가 강인하게 남는 이유는 뜬금없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먹는 문제'에서 해방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중세 시대 인삿말로 당신의 안부를 묻는다. 밥은 먹고 다니냐 ? 식사 하셨어요 ? 대한민국이 천박해지는 순간이다. 여전히 먹는 문제가 모든 이슈를 잡아먹는다. 중요한 것은 먹는 문제 말고도 많다. 어떻게 살 것인가 ? 현대인의 화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