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9
밀란 쿤데라 지음, 방미경 옮김 / 민음사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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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지 않으면 비극이 된다.

 

니체는 이런 소리를 했다. " 세상에서 인간보다 가장 큰 고통을 느끼며 살아가는 존재는 없다. 그래서 웃음을 발명할 수밖에 없었다. " 이 말은 곧 웃음'은 불행과 연관이 깊다는 소리'이다.  자주 웃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 아니라 불행한 사람일 경우가 높다. 완벽하게 행복한 사람은 웃지 않는다. 왜냐하면 웃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심리학자 월리엄 맥두걸의 말이다.  사실 < 웃음 > 은 우리가 생각하고 있던 메커니즘'을 살짝 뒤집는다. 기대에 충족시킬 때는 < 감탄 > 이 되고, 기대 이상일 때에는 < 경탄 > 이 되지만,  기대에 못 미칠 때 < 웃음 > 이 나온다. 그러므로 웃음이란 기본적으로 실패의 결과이다. 오늘따라 이 말들이 나를 위로한다.

- 말하기의 다른 방법 중

 


 

 

< 웃음' > 이라는 속성'은 생각보다 복잡하고 예민한 구석이 있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 양반이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위해서 농담을 던졌을 때, 비록 그 농담이 철 지난 장소팔-고춘자 만담'처럼 느껴지더라도 일부러 웃는 척을 하는 행위는 기만이라기보다는 예(禮)에 속한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성대를 울려 웃음을 만든다고 해서 딱히 손해를 보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 오히려 농담이 재미없다고 해서 정색을 하며 무표정하게 상대를 바라보는 행위야말로 솔직한 태도라기보다는 무례(無禮 )에 가깝다. 그런데 예의를 차린답시고 너무 크게 웃어버리면 실례 ( 失禮 ) 가 된다. < 후후후 > 와 < 아햏햏 > 은 한 끗 차이'이지만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의미'이기도 하다.

이와 같이 < 웃음 > 은 발신자와 수신자의 지위, 웃음의 강약, 발화의 장소에 따라 복잡하게 변하는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다.  재미없는 농담에 대한 무표정은 " 솔직한 태도 " 에 가깝지만 역설적이게도 < 무례 > 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재미없는 농담에 대한 적당한 웃음'은 " 거짓 " 이라는 형태를 취하지만 반대로 타자를 배려하려는 < 예 > 가 될 수도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그 웃음이 지나치면 < 실례 > 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말 그대로 가지고 있던 예(禮)를 놓쳐버린 꼴(失) 이다. 좋게 말하면 < 웃음 > 이라는 녀석은 성격이 예민한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변덕이 죽 끓듯 해서 어느 쪽에 장단을 맞춰야 하는지 모르는 놈이다.   

밀란 쿤데라의 < 농담 > 은 " ...... " 이라고 해야 하는 사회에서 " 아햏햏 " 이라고 웃어서 인생 좆된 케이스'이다. 루드빅은 평소 관심이 있던 마르게타에게 추파를 던진다. " 낙관주의는 인류의 아편이다 !  건전한 정신은 어리석음의 악취를 풍긴다.  트로츠키 만세 ! "  평소 무뚝뚝한 성격인 마르게타'에게 농담 한 마디 한 것뿐인데 그는 이 농담 때문에 강제수용소에 끌려가 중년이 되어서야 풀려나온다. 내가 만약에 소설 속 주인공인 루드빅'이었다면 " 낙관주의는 인류의.... " 따위의 문장을 작성하기보다는 차라리 " 내 마음을 몰라주는 마르게타 때문에 내 마음도 마르겠다 ! 아햏햏. " 이라고 써서 엽서를 보냈을 것이다.  루드빅은,  유머감각이 부족한 것이다 ! 하지만 중요한 것은 유머 감각이 쩔다와 구리다의 차이'가 아니다.

농담에 대해 웃지 않는 사회'가 문제'인 것이다. 농담에 대해서 정색하는 사회'는 병색이 완연한 사회이다. 루드빅이 " 낙관주의는 인류의 아편 "이라고 실없이 말했다면, < 장미의 이름 > 에 나오는 호르헤 수도사는 " 웃음은 인류의 아편 " 이라고 진지하게 말한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제2권 < 희극론 >에 독을 묻혀서 그 책에 읽는 이'를 독살한 것이다. 종교'란 기본적으로 신과 율법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이 강할수록 강력하게 작동하기 때문이다. 호르헤 수도사'는 웃음이 종교적 힘'을 약화시키는, 근엄에 똥침을 날리는 손가락이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누구나 동의하겠지만 호르헤 수도사'는 너무 웃지 않아서 미친 것이다.

< 농담 > 의 배경이 되는 경직된 사회와 < 장미의 이름 > 에 등장하는 호르헤 수도사'는 웃음을 부정적 기운으로 간주했지만  아시다시피 웃음'이란 生의 활력소'다. 그렇다고 해서 웃음을 만병통치약이라고 주장하는 것 또한 경계해야 한다. 왜냐하면 웃음'이란 부족해도 문제가 되지만 넘쳐도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웃음이 지나치면 쾌락주의'에 빠지기 쉽다. 가장 좋은 웃음은 < ...... > 와 < 아햏햏햏 > 사이에 놓인 웃음일 것이다. 웃음이 가지고 있는 기능 가운데 중요한 것은 바로 공감'이다.  좀더 유식하게 말하자면 저자와 독자 간의 상호 교류'이다. 독자가 책에서 마음에 드는 문장을 골라 밑줄을 긋는다는 것은 저자의 생각에 동의한다는 의사 표시이며 지지'이다.

웃음도 마찬가지다. 웃음은 농담을 하는 사람에 대한 작은 동의이며 손해 볼 것 없는 지지'이다. 그러므로 책에 밑줄 긋는 연필과 조용한 웃음은 동의어'다. 오래전, 호르헤 수도사'처럼 웃지 않는 친구를 둔 적이 있었다. 시립 도서관에서 오고가다 만난 사이였다. 그는 세상 사람들이 주머니에 칼을 숨기고 다닌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문학적 수사'가 아니다. 그는 정말로 사람들이 주머니에 칼을 숨기고서는 호시탐탐 자신을 찌를 궁리만 한다고 생각했다. 불안한 마음과 초조한 눈빛은 항상 그의 영혼을 갉아먹었다. 그는 날마다 마르는 고사목 같았다. 내가 웃음이 없던 그를 끌고 간 곳은 수요일이면 영화를 상영해주던 도서관 시청각실'이었다. 상영 영화는 < 라임라이트 > 였다.

채플린 영화가 그를 웃게 만들 거란 막연한 생각을 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가 웃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영화 상영 내내 웃지 않았다. 그리고 나 또한 웃지 않았다. 웃기는커녕 펑펑 울었다. 분장을 지운 광대의 얼굴만큼 슬픈 얼굴'이 또 있을까 ? 찰리 채플린'이 카메라를 응시하며 분장을 지울 때, 무표정한 얼굴로 정면을 바라보았을 때, 절뚝거리며 마임을 선보일 때, 무성영화 배우가 토키 영화'에 나와 말을 걸 때, 노인이 된 버스터 키튼의 둥근 어깨를 보았을 때, 그럴 때마다......  슬펐다.  채플린은 독백처럼 말한다. " 웃지 않으면 비극이 되지...... " 이 대사가 왜 그렇게 내 심장을 찔렀는지는 잘 모르겠다. 광대'에게 있어서 " 비극 " 이란 관객이 웃지 않을 때이니,

저 대사'는 잊혀져간 늙은 광대의 고해성사 같아서 슬펐다. 영화가 끝나자 사람들이 칼을 주머니에 숨기고 다닌다고 생각하는 친구가 내게 물었다. " 코미디 영화인데 왜 울어요 ? " 곰곰 생각했으나 딱히 떠오르는 답이 없어서 그 친구에게 되물었다. " 코미디 영화인데 너는 왜 웃지 않니 ? " 그친구도 곰곰 생각하는 눈치였다. 그리고는 말했다. " 영화는 재미있었어요 ! 다만 웃고 싶지 않았을 뿐이에요. 웃은 지 꽤 오래되어서 그 느낌 자체를 잃어버렸어요. " 웃음을 잃어버리면 쉽게 절망하고 슬퍼한다. 그리고 슬픔을 버리면 쉽게 웃을 수 있지만 웃음은 한 번 잃어버린 웃음을 다시 찾는 데에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린다. 어떤 사람은 웃음이 없는 세월을 버티지만 누군가는 버티지 못하고 낙엽처럼 떨어진다.

채플린이 말한 극중 대사'처럼 인생이란 웃지 않으면 비극이 된다. < 농담 > 을 읽다가 문득 웃지 않아서 웃음을 잃어버렸다던 친구가 생각났다. 그는 다시 웃음을 찾았을까 ? 아니면 버티지 못하고 쓰러졌을까 ? 소식이 끊긴 지 꽤 오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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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맨 2013-10-09 2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잘 알던 선생님이 이런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사람들이 보통 채플린의 작품 하면 '모던 타임즈'부터 말하지만 나는 '라임 라이트'를 떠올린다. '모던 타임즈'가 시대에 대한 비판적 자의식으로 만든 작품이라면, '라임 라이트'는 쌓이고 쌓여 발효된 예술가의 내공으로 빚어낸 작품이다'
지금은 어렴풋이 기억나긴 하는데, '라임 라이트'에 이런 대목이 있었지요. 늙은 광대는 한물간 개그를 하는데 고용된 관객들은 그것을 보면서 웃음을 보내지요. 광대는 무언가 이상하다는 걸 알지만 그래도 즐겁게 공연을 마무리하지요. 때로는 그 가짜 웃음이야말로 어떻게 보면 진짜로 좋아서 나오는 웃음보다 더 값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10-10 09:13   좋아요 0 | URL
저는 시티라이트와 라임라이트를 좋아합니다. 쌍라이트'죠.. ㅎㅎㅎㅎ
라임라이트는 채플린이 스스로 이제는 자신의 시대가 끝났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만든
유서와 같은 작품이죠. 이 영화에는 그 위대한 버스터 키튼도 나옵니다.
아, 이 위대한 코미디언'은 정말 노인이 되었더군요.
두 위대한 코미디언이 한자리에 모인다는 것 자체가 감동이었습니다.


2013-10-10 01: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10-10 09:14   좋아요 0 | URL
손창섭... 저도 누구 소개로 받아보고는 그만 뻑이 갔죠......
책 너무 처분하지 마세요.. 나중에 후회합니다..ㅎㅎㅎㅎㅎ

네에 가까운 날에 한번 봅시다.

엄동 2013-10-10 1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죽지못해 살고
울지못해 웃지만.

무례나 실례가 아니라면
이 퍽퍽한 세상에 웃음만큼
쉬 업될 수 있는 도구는 없을 겁니다

그것의 파워는
때때로 양 엄지를 추겨세울만큼
폭발적거덩요 흐흐흐흐

곰곰생각하는발 2013-10-10 14:02   좋아요 0 | URL
이제 슬슬 엄동설한 님의 계절이 돌아오는 군요.
겨울 말입니다. 조금 지나면 겨울이겠지요 ?
전 딱히 웃지는 않는데...
하여튼 웃어서 나쁠 것은 없겠더라고요.
웃음에 필요한 근육을 사용하면 뇌가 멍청해서
실제로도 기쁜 감정이 생긴다고 해요.
억지로 웃어도 말이죠..
하여튼 인간의 뇌란 늘 멍청합니다.

마립간 2013-10-10 1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흔하게 주위 사람들에게 던지는 질문입니다. 사랑 한번 못해 본 사람이 더 부정적일까요, 사랑에 실패한 사람이 더 부정적일까요?

곰곰생각하는발 2013-10-10 14:03   좋아요 0 | URL
항상 아리송한 질문을 저에게 던져주시는 마립간 님.. ㅋㅋㅋㅋ
사랑 한번 ㅗㅅㅎ못해본 사람은 부정적이기보다는 어떤 판타지가 작동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제 입장에서만 말하자면 실패하면 사랑은 더욱 부정적으로 다가오는 거 가틉니다.

마립간 2013-10-11 12:13   좋아요 0 | URL
엄격히 말해서 다른 분에게 드렸던 질문은

(객관적 입장에서)사랑 한번 못해 본 사람이 더 불행하냐, 아니면 사랑에 실패한 사람이 더 불행하냐 입니다. ; 전자를 지지하는 사람은 사랑의 실패에 대한 아픔을 잘 모르는 사람일 수 있고, 후자를 지지하는 사람은 삶의 긍정이 약한 사람일 수 있죠.

물론 저는 아직 결론을 못 내린 상태입니다. 요즘 행복에 관해 생각하고 있기에 나름 정리가 될 때까지 불행대신에 부정적이다라는 단어로 대신했습니다. 곰곰발님은 제3자의 평가가 아니라 당사자의 입장에서 판단을 해서 제가 조금 당황하고 생각을 다시 정리하게 되었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10-11 18:40   좋아요 0 | URL
예 맞아요. 위의 정의는 순전히 제 경험담입니다...ㅎㅎㅎㅎㅎㅎ
저도 그것에 대해서는 좀 생각을 해봐야겠네요.
좀 생각을 하고서 정리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즐거운 인생 2013-10-11 0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어째 네이버에 있을 때보다, 점잖은 동네로 이사해서 그런가 예전보다 글이 더 정제된 느낌이네요.
더 잘 쓴다구요!

곰곰생각하는발 2013-10-11 02:30   좋아요 0 | URL
즐거운 인생 님 감사합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즐인 님이 그리 말씀하시니 기분이 방방 뜨는군요.
여기는 그래도 신경이 좀 쓰이더라고요. 네이버야 그냥 거의 막 갈긴 글인데 여긴 뭔가 한번 들여다보고
그러더라는거죠.. ㅎㅎ. 나탈야 베너 효과 좋은데요 ~

히히 2013-10-12 0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가장 황홀한 쾌락과 가장 감미로운 기쁨을 느꼈던 시기라고 해서
가장 감동적인 것은 아닙니다.
그 강렬함 때문에 인생에서는 듬성듬성 생겨난 자국에 지나지 않습니다.
환희의 절정 다음에 뒤따르는 참담함을 경험한 자라면
단조롭고 사심없는 상태의 연속성에서 행복을 느낄것 입니다.
<감탄>에 집착하지 마시고 <웃음>을 쌓아서 광자가 됩시다.
미쳐야 행복하지요.

곰곰생각하는발 2013-10-13 07:57   좋아요 0 | URL
인생은 섹스와 같은 것 같습니다.
하고 나면 뭔가 나른하고 허탈한 그런 느낌..
맞아요, 쾌락과 기쁨은 하나의 과정이지
지속은 되지 않습니다.
 

말하기의 다른 방법'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에서 연구한 자료에 따르면, 사람은 하루에 평균 무려 200번, 시간으로 따지면 약 8분에 한번 꼴로 거짓말을 한다고 한다. 만약 이 질문에 오늘 하루 동안 단 한 번도 거짓말을 한 적이 없다고 대답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사회생활에 문제가 있거나 거짓말쟁이일 확률이 높다고 봐야할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생각보다 훨씬 많은 거짓말을 하며 살아간다.

- 텔링 라이즈, 출판사 책 소개 글 中

 

 

 

 

 

 


 

 

소리 없이 눈으로만 가만히 웃거나 목소리가 매력적인 사람을 부러워한 적은 있어도 말을 잘하는 사람을 부러워한 적은 없다. 인간 거짓말 탐지기 박사인 폴 애크먼은 < 텔링 라이즈 > 에서 인간은 입만 열면 거짓말을 하는 존재'라고 주장한다. 약 8분에 한 번 꼴로 거짓말을 하고 10분에 한 번 꼴로 섹스'를 생각한다고 하니,  인간이란 입으로는 거짓말을 하고 뇌는 온통 섹스 생각뿐이다. 앉으나 서나 당신(과의 화끈한 섹스) 생각뿐이다. 스스로를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보기에는 이 데이터가 지나치게 허무맹랑할지 모르지만,  하루에 평균 8분마다 거짓말을 하고 10분마다 섹스를 생각하는 나는 수긍이 가는 대목이다.  왜냐하면 이 글을 작성하는 짧은 순간에도 거짓말과 음란한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나는 < 텔링 라이즈 > 를 읽지 않았으나 읽은 척하며 말했고,  lie가 그 lie가 아님을 알면서도 자꾸 그 lie가 생각나서 불현듯 이화장 모텔 침대에 눕던 어떤 밤이 생각났다. 이 짧은 시간에 말이다. 촉촉하고 검은 동굴 속으로 탐험을 하고 있을 때 땀방울이 내 등골을 타고 움푹 파인엉덩이 골에 또르르 떨어지던, 아... 황홀한 밤 !  남자란, 그런 존재'다. 그러니깐 당신이 스타벅스에서 굉장히 잰틀하고 교양있는 남자와 1시간 동안 문학에 대한 열정을 나눌 때 남자는 평균 7번의 거짓말을 하면서 중력을 무시한 싱싱한 노른자위 같은 젖가슴과 촉촉한 동굴에 대한 생각을 하면서 당신을 벌거숭이로 만든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과학적 데이터만 놓고 본다면 말이다. 이처럼 신체 기관 가운데 가장 교활하며 모순적인 기관은 < 입 > 과 < 뇌 > 다. 오히려 < 말 > 보다 항상 앞서서 곤란을 겪는 < 거친 주먹 > 은 이들에 비하면 정직한 쪽에 속한다.

말이 많다는 것은 말이 없는 사람보다 거짓말을 더 많이 하는 사람이니 말을 잘하는 사람을 믿으면 안 된다. 할 말 안 할 말 가려해야지 할 말 안 할 말 다 하면 곤란하다. 할 말은 과천 경마장으로 보내고, 안 할 말은 마굿간으로 보내야 하며, 말 밖에 믿을 게 없다는 말하는 인간은 나중에는 전재산을 탕진하고는 경마장 볕 잘 드는 곳에서 쪼그려앉아 쪽잠을 잘 것이다. " 말을,  믿지 마세요 ! " 그래서 나는 " 말 한 마디에 천냥 빚을 갚는다 " 따위의 속담을 믿지 않는다. 말 한 마디에 천냥 빚을 갚을 능력을 가진 놈은 팔 할이 사기꾼'이다. 냉정한 소리 같지만 그 아무리 좋은 사람이라고 해도 기본적으로 51%만 믿고 나머지 49%는 의심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싶다. 곰곰발, 누누이 이야기하지만 모든 것은 한끗 차이. 호(好) 와 오(惡) 에 대한 기준도 결국은 한끗 차이'이다.

아시다시피 인간은 처음부터 < 말 > 을 했던 존재는 아니었다. 하지만 말을 배우지 못한 원숭이 조상들이 " 집단 내 의사소통 " 이 불가능했던 것 또한 아니었다. 말을 대신한 얼굴 표정은 가장 강력한 표현 수단이었고, 말이 아닌 소리를 동반한 손짓과 발짓으로 이루어진 몸짓은 언어 없이도 충분히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프란스 드 발은 < 침팬지 폴리틱스 > 에서 인간 뺨치는, 권모술수에 능한, 침팬지의 줄서기와 뒤통수 정치학'을 제대로 보여준다. 눈짓과 몸짓 몇 가지 표현만으로도 복잡하고 치밀한 계획'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정말 무서운 분'들이시다. 이후 " 털 있는 원숭이 " 에서 " 털 없는 원숭이 " 로 진화한 인간이 말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 얼굴 표정과 몸짓 기호 > 대신 < 언어 > 가 의사를 전달하는 가장 중요한 표현 방식'이 되었다.

털을 갓 벗은 인간은 언어'에 점점 익숙해지면서 그 옛날 통용되었던 얼굴 표정과 몸짓 기호'를 까먹기 시작했다. 오랜 타관 생활에 모국어를 잊게 되는 디아스포라의 운명'처럼 말이다. 언어는 가장 강력한 표현 수단이 되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뇌를 통해 입으로 쏟아내는 말은 뻥이 팔 할이었으니 정확한 의사 표현은커녕 혼란만 가중시키는 꼴이 되었다. < 말 > 은 결과적으로 사기꾼과 모사꾼, 카사노바와 철면피, 독재자와 간신 그리고 " 왕년에 ~ " 를 입에 달고 사는 수많은 꼰대를 양산했다. 누가 나에게 꼰대를 알기 쉽게 정의 내리라고 하면 이렇게 묘사하겠다 :  [ 누렇게 변색된 백먕 메리야스 사이로 설핏 보이는, 축 늘어진 거무퉤퉤한 젖꼭지'는 그가 왕년에 별 볼 일 없는 수컷이었다는 사실을 증명하지만,  골목길을 지나가는 아가씨 엉덩이를 보자마자 아랫도리가 꼿꼿하게 서 있는 모습에 성욕만큼은 왕년과 다르지 않음에 스스로 기뻐하는 존재. ]

결국 말은 인간을 만물의 영장'으로 만들었지만 반대로 가장 믿을 수 없는 짐승으로 만들기도 했다. 말은 가장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기호이면서 동시에 가장 정확하지 않은 정보'를 제공하는 기호'이다. 반면 얼굴 표정이나 몸짓 기호'는 말에 비해 정확한 정보'를 제공한다. 야구에 빗대서 말하자면 말은 타자를 속이기 위한 변화구에 가깝고, 표정과 몸짓은 직구'에 가깝다. 표정은 거의 모든 것을 제공한다. 예를 들어 모나리자의 미소'는 가짜에 가깝다. 왜냐하면 가짜 미소'는 비대칭을 이루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썩소'라고 말하는 한쪽만 올라간 입꼬리'는 가짜 미소'다. 이처럼 가짜 감정'을 연기할 때는 표정이 비대칭적인 구도가 된다.  예를 들면 가짜-분노'에서는 왼쪽 눈썹이 더 낮게 내려가고, 가짜-혐오 표정에서는 코주름을 잡을 때 더 왼쪽으로 기울어지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모나리자의 미소가 가짜 미소라는 증거는 비대칭성 이론'을 제외하더라도 눈을 보면 알 수 있다. 진짜 웃음과 미소'가 사용하는 얼굴 근육은 눈 부위 근육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진짜 미소를 관장하는 근육이 작동되면 자연스럽게 눈 근육에 영향을 준다. 반면 가짜 미소'는 입꼬리를 움직이는 근육만을 사용할 뿐이기 때문에 눈' 근육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다. 미소 짓는 척 할 뿐이다. 모나리자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입은 미소를 짓고 있는데 눈은 웃고 있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인지과학자들이 보기에는 모나리자의 미소는 억지 웃음'에 가깝다. 하지만 모나리자를 탓할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닐까 ?  모나리자는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 김치 ~ " 하라고 요구하니,  그저 " 김치 " 라고 말했을 뿐이다. 얼굴 표정은 말할 필요도 없고, < 손짓 > 또한 얼굴 표정만큼이나 중요한 정보를 제공한다. 

모나리자는 전형적인 오른손잡이'일 확률이 높다. 오른손잡이'일 경우, 가짜미소를 흉내 낼 때 왼쪽 입꼬리'가 올라가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는 또 있다. 좌뇌사용자/오른손잡이'는 손깍지를 하거나 팔짱을 낄 때 오른손 엄지와 오른팔이 위로 올라간다. 그림 속 손의 위치를 보면 오른손이 왼손 위에 올려져 있다. 이 사실만 보더라도 그녀는 지독한 좌뇌 사용자'라는 계산이 나온다. 이처럼 손짓은 매우 많은 정보를 제공한다. 근심이 가득할 때 우리는 주로 손으로 뺨을 만지게 되는데 그러한 행동은 엄마가 아이를 어루더듬었던 스킨십의 체온을 무의식적으로 재현한 것이다. 위로 받고 싶은 심리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거짓말이 들통날까 봐서 당황스러울 때 우리는 흔히 손으로 코를 만지거나 입을 자주 만지게 되는데 이러한 행동은 주로 얼굴 표정을 상대가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가리기 위한 무의식적 반응이다.

이처럼 팩트는 말이 아니라 한순간에 지나가는 표정과 몸짓'으로 감지된다. 그래서 나는 인간이 내뱉는 말'을 믿지 않게 되었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함민복이 믿는 말랑말랑한 힘 대신 딱딱한 유물론자가 되었다. 이 세상에는 스승도 없고, 멘토도 없다. 그리고 달달한 사랑도 떨리는 고백도 믿지 않게 되었다. 여기서 콜린 윌슨의 말투를 빌리자면, "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달달한 사랑과 떨리는 고백을 간절히 원한다. 니체는 이런 소리를 했다. " 세상에서 인간보다 가장 큰 고통을 느끼며 살아가는 존재는 없다. 그래서 웃음을 발명할 수밖에 없었다. " 이 말은 곧 웃음'은 불행과 연관이 깊다는 소리'이다.  자주 웃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 아니라 불행한 사람일 경우가 높다. 완벽하게 행복한 사람은 웃지 않는다. 왜냐하면 웃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심리학자 월리엄 맥두걸의 말이다.  

사실 < 웃음 > 은 우리가 생각하고 있던 메커니즘'을 살짝 뒤집는다. 기대에 충족시킬 때는 < 감탄 > 이 되고, 기대 이상일 때에는 < 경탄 > 이 되지만,  기대에 못 미칠 때 < 웃음 > 이 나온다. 그러므로 웃음이란 기본적으로 실패의 결과이다. 오늘따라 이 말들이 나를 위로한다. 나는 평소 웃을 일이 없으니 시바 존나 행복한 사람이구나. 으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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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13-10-08 1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말하기의 다른방법...잘 읽었어요. 곰발님에게 베르그손의 <웃음>을 강추드립니당~ㅎㅎ
뭐, 이미 읽으셔따면 패쑤~

곰곰생각하는발 2013-10-08 14:29   좋아요 0 | URL
베르그송... ㅎㅎ. 좋은가요 ? 딱딱할 거 같아서...
왠지 웃음을 철학적으로 풀면 뭔가 좀 우울할 것 같습니다....

엄동 2013-10-08 18: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쓸데없이 말이 많은 사람들
할말 못할말 못가리는 사람들
이유없이 말(만) 잘하는 사람들
저도 참 싫어하는데요 ㅋ

좋은 사람들 만나고 술 몇잔 들어가면
그 말이 참 많아지는 것도 접니다.
아부부부부

그러고보니 어릴 땐.
누구를 만나든 초면에
방싯방싯하며 끊기지 않는 대화를
유도하기도 했었던거 같은데.

지금은 그냥 '천사의언어=침묵' 오알 '최대한 닥치리'
라는 생각으로 있지 말입니다.

꽤나 잘하는 거짓말도 이젠 귀찮아지고요 훗


(그나저나 마지막 문단, 좋네요~ 으하하하하 ㅎ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3-10-09 03:02   좋아요 0 | URL
관심없는 자리에서 오고가는 말만큼 따분한 것도 없죠.
회사 회식 자리'라던지...
상사가 웃기지도 않은 말을 해도 껄껄껄 웃어야 할 때의 그 묘한 허무감...
ㅎㅎㅎㅎ
전 자리가 불편하면 아예 말을 안해요. 옆 테이블 보고 막 그럽니다...
아마 상대방은 화딱지 날 거임...

으하하하.. 요거 김애란이 즐겨쓰는 표현이빈다.

2013-10-08 23: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0-09 02: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히히 2013-10-09 0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세상과 비정규직의 관계는 착취
세상과 연대의 관계는 힘
세상과 대선후보자의 관계는 악수
세상과 베트콩의 관계는 매복
세상과 쥐의 관계는 덫
세상과 술의 관계는 개
세상과 철학의 관계는 의문
세상과 예술의 관계는 광기
세상과 갈대의 관계는 흔들림
세상과 잡초의 관계는 무관심
세상과 눈물의 관계는 정화
.
.

세상과 말의 관계는 손해
세상과 나의 관계는 위장 - 8분마다 말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10-09 02:59   좋아요 0 | URL
하이쿠의 대가'시군요. 세상과 갈대의 관게는 흔들림이라는 표현이 좋군요.
세상과 잡초의 관계는 무관심이라...
이것 또한 좋습니다. 히히 님 덧글을 모아서 나중에
책 하나 내면 좋겠습니다. 잘 팔릴 것입니다. 장담함 !
 

속물과 잉여'

  

 

 

 

 

 

 

 

 

< 속물과 잉여 > 라는 책이 나와서 출판사가 제공하는 책 소개 글을 읽다가 문득 생각나는 것이 있어 적는다. 나는 그동안 주로 네이버 블로그'에 글을 꾸준히 올렸었다.  텃새보다는 철새에 가까운 인간인 나는 이 짓'도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사이버 공간은 온통 허세를 가장한 < 잉여 > 와 친절을 가장한 < 속물 > 로 가득했다.  ( 내 이웃들은 대부분 솔직하고 매력있는 사람들이었다. 오프에서도 자주 만난다. ) 속물'이 통속과 신파로 버무려진 골뱅이와 소면'이라면 잉여는 엽기와 자학으로 욕망을 드러낸다. 잉여의 약빨'이란 소주 한 병 사서 안주 없이 병나발 불면 해결되는 빈곤형 자학에 가까우니 손해볼 것은 없다.  잉여는 자신을 소진시키는 집단이다. 그것은 일종의 정신적 매혈'이다. 잉여는 허삼관'이다.

내가 네이버 블로그'라는 사이버 공간에서 만난 놈 가운데 가장 이상한 놈은 서른이 채 되지 않은 어느 디자인 회사 ceo였다. 그의 이웃들은 그가 나열한 스펙'에 열광했다. 내가 그 사람이 가진 스펙을 나열하면 이 글을 읽는 당신 또한 반하지 않을 수 없다. ① 포르쉐를 몰고다니는 디자인 회사 ceo인 그는 틈틈이  ② 대학 출강을 나가는 미술 강사다. 여기서 끝이냐 ? 아니다. 그는 ③ 모 미술관 큐레이터도 겸하며 ④ 전시회도 꾸준히 여는 현역 화가이기도 하다. 더군다나 ⑤ 책을 출간한 적이 있는 작가이니 대,다,나,다. ⑥ 그리고 연예 기획사 대표로 모 아이돌 그룹을 야심차게 선보이기도 했다. ⑦ 더욱 놀라운 사실은 자신을 음반 제작자이면서 스스로 음반을 낸 적이 있는 가수라고 소개한 점이었다. 그가 서른이 되기 전에 이룩한 왕국이었다. 웃으면서 코 팠다.

이 정도면 쓰리 잡'이 아니라 텐잡이'였다. 가지도 아니면서 가지가지하는 꼴이다.  또 하나 ! 이 골드 스펙'에 화룡정점을 찍는 것이 있었으니 자신을 해외 파병 군인이라고 소개한 대목이었다. 그는 아프가니스탄 전투에 참가하여 수류탄 던지고 돌격 앞으로를 외치며 전쟁터에서 혁혁한 공을 세워 전역할 때에는 육군참모총장 표창장을 받았다며 자랑스럽게 무용담을 블로그에 올리기도 했다. 이제 태평양에서 새우 잡고 중국 가서 탁구만 치면 포레스트 검프'형 스펙이 될 지경이었다. 잉여가 만들어낸 과잉'이었다. 평소 < 부러우면 지는 거다 > 가 생활 신조'인 나는 지지 않기 위해서 그가 올린 글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을 했다.  자기가 만든 작품이라는 의자'는 알고 보니 어느 유명한 디자이너가 만든  작품이었고, 글과 그림은 이곳저곳에서 온통 베낀 것들이었다.

그리고 대한민국 육군은 해외에 공병대를 파병한 적은 있어도 전투병을 파병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으니, 그 거짓말을 굳이 증명할 필요는 없었다. 도대체 그는 국군이었을까, 미군이었을까 ? 그는 결국 산더미처럼 쌓인 거짓말에 대한 해명을 할 수가 없어서 블로그를 폭파하고 존나 멋지게 바람과 함께 사라졌다. 그런가 하면 어떤 이상한 년은 인지도가 낮은 여자 배우 사진을 대문에 걸어놓고 그 배우 행세'를 하다가 걸리기도 했다. 나중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몸매가 환상적인 여자 배우 사진을 도용한, 자칭 대기업 연구소 선임 연구원이라고 주장하는 그녀는 블로그 이웃 남자들을 유혹해서 벌거벗은 사진을 서로 주고받으며 사이버 섹스'를 했다는 점이 밝혀져 곤혹을 치르기도 했다. " 당신의 뜨거운 불기둥 때문에 내 사타구니 사이로 애액이 흘러서 넘쳐요 !  "

따위를 남발하면서 말이다. < 애액 > 이라는 단어에서 한참을 웃었다. 얼마만에 들어보는 단어인가 ! 중학교 때 세운 상가'에서 몰래 구입했던 빨간책에서나 보았던 단어였는데, 평소 존나 교양 있는 척을 하며 바로크에서 로코코까지의 예술사를 꿰뚫고 있던 입에서 이 단어가 튀어나올 줄은 꿈에도 상상을 못했다. 아마도 애액이 흘러넘쳤던 그녀는 여자를 가장한 " 네카마 " 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이 둘의 공통점은 " 속물을 동경하는 잉여 인간 " 이었다. 사이버 공간에서 911 포르쉐를 타고 출퇴근하던 이'는 현실에서는 365 편의점에 앉아서 벼룩 시장 구인 코너를 꼼꼼하게 체크했을 것이고, 상상 속에서는 c컵 가슴에 44사이즈 몸매'였던 그녀는 현실 속에서는 a컵 가슴에 77사이즈였을 것이다. 쌓이는 것은 밀린 고지서과 동창생들이 보내오는 청첩장'일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일이 벌어졌다 ! 그/그녀'와 관계를 맺은 이웃들은 새빨간 거짓말이 들통났음에도 불구하고 몇몇 이탈자를 제외하고는 더욱 공고히 뭉쳐서 우상을 섬겼다. 어떤 놈은 인간에 대한 예의 운운하며 죽기살기로 대들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반응'이었다. 거짓말이 탄로가 나면 믿음은 산산조각이 나야 정상인데  오히려 강하게 뭉쳐서 공격적 성향을 보인 것이다. 믿숩니까 ? 라고 외치면 일제히 믿숩니다 ! 라고 외쳤다. 곰곰 생각했다. 결론은 인지부조화'였다. 새빨간 거짓말로 자신을 속인 이웃을 비판하게 되면 결국 그 비판은 부메랑이 되어 자신에게 돌아온다. 왜냐하면 새빨간 거짓말을 한 그들을 비판하게 되면 결국은 새빨간 거짓말에 속은 자신 또한 어리석은 사람이 된다는 결론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 불일치 > 가 발생하게 된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이 믿었던 행동이 어리석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거짓말쟁이'를 오히려 옹호해서 < 불일치 > 를 < 일관성 > 으로 바꾼다. 황우석 사태'가 전형적인 인지부조화 현상'이다. 황빠'들은 황우석을 옹호했다기보다는 황우석에게 속은 자신을 옹호하기 위해서 비겁한 변명을 한 것이다. 이처럼 잉여는 체제 내' 에 포섭되지 않을 때 발생하게 된다. 프로이드의 지적처럼 강한 부정'은 곧 긍정을 다른 식으로 표현한 것이다. 잉여는 겉으로는 체제 내에 소속된 꼰대와 속물의 경직과 우아함을 자유분방한 방식으로 조롱하지만 속내는 부러움'이다. 잉여가 최종적으로 지향하는 바는 속물이다. 그들은 현대판 완장인 사원증'을 차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역설이 존재한다. 단물 쏙 빠진 속물이 최종적으로 지향하는 바 또한 잉여'이기 때문이다.

속물은 돈 많이 벌어서 빌딩 사고, 그 빌딩에서 나오는 돈으로 띵가띵가 놀면서 잉여로운 삶을 사는 것이 목표다. 잉여는 적당히 바쁘게 사는 것이 목표이고, 속물은 한가하게 사는 것이 목표이니 이 둘은 기묘한 짝패'이다. 한쪽은 놀고 싶은데 먹고 살려니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고, 다른 한쪽은 먹고 살기 위해서 일하고 싶은 데 갈 곳'이 없으니 다르지만 동시에 닮았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속물과 잉여 모두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둘 다 " 먹고 살기 위한 " 몸짓이니 말이다. 알고 보면 속물과 잉여는 모두 생존자본주의정글'에서 살아남기 위한 부스러기에 지나지 않는다. 

멘토와 힐링을 가장한 감성팔이 책이나 자기계발서'가 꾸준하게 주장하는 것은 " 나에게 채찍을 휘두르자 ! " 이다. 이들 책이 가지고 있는 공통된 주장은 모든 문제는 < 모자란 내 탓 > 에서 시작된다.  당신이 그 모양 그 꼴인 이유는 5분 늦게 일어나기 때문이고, 한 숟가락을 더 떠먹기에 다이어트에 실패하는 것이고, 사람을 다루는 처세가 부족하기에 비정규직이 되었다고 가르친다. 사회와 제도의 구조적 모순을 지적하기에 앞서 내 탓을 하자는 것 ! 기득권이 보기에 이보다 좋은 조언도 없다. 이런 메시지'가 박정희 정권'이후로 계속 지속되다 보니 이젠 세뇌'에 가까운 정언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한국인은 < 네 탓 > 을 어른스럽지 못한 부끄러운 태도라 생각하고 < 내 탓 > 을 당연한 도리와 반성'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 내 탓 > 이 지나치면 자학이 되고 자학이 깊어지면 우울증이 된다.

우울'이란 화를 외부 대상에게 쏟지 못하고 자기 자신에게 향할 때 생기는 병이다. 자기 자신을 향한 공격이 우울증'이고, 그 처벌 수위가 높아지면 자살이 된다.  대한민국이 자살률 1위인 까닭은 바로 < 내 탓 > 을 강요하는 사회 탓'이 크다. 차라리 < 내 탓 >  보다는 < 네 탓 > 을 선택하는 것이 현명하다. 내 탓'은 지배 계급이  퍼트린 노예 이데올로기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남에게 피해를 줘도 된다는 말은 아니다. < 악랄 > 하게 살면 안 되지만 < 지랄 > 하며 사는 것에 대해서는 용서할 필요가 있다.  계급 연대'가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나를 죽이겠다고 협박하고 고소하려 했던 포르쉐 쌍놈과 44사이즈 쌍년을 용서하기로 했다. 나는 당신보다 더한 잉여킹'이니깐 말이다. " 하여튼.... 씨발것들아, 잘 먹고 잘 살아라 ! " 이 말은 진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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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2013-10-07 04: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디자인 회사 CEO 겸 작가 겸 강사 겸 큐레이터 겸 가수라는 블로거는 모르는 사람인데도 정말 혀를 내두르겠네요.
애액 얘기 했다던 블로거는 누군지 알 것 같고...
여러 이웃들께 대충 주섬주섬 얘기 듣긴 했는데 이렇게 정리해서 읽으니까 처음엔 허~ 하고 놀라다가 나중엔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참.. 이건 사이버 공간에서의 욕망에 대한 논문감이네요. 씁쓸하기도 하구요.

곰곰생각하는발 2013-10-07 14:39   좋아요 0 | URL
조금만 생각하면 이게 말이 안 된다는 걸 바로 알거든요. 대학졸업하고 군대까지 나오면 27 정도 될 터인데 2년 동안 이룩한 꼴이 굉장합니다. 2년 안에 회사를 차리고, 큐레이터를 겸직하고 음반을 제작하고, 스스로 가수가 되고, 책도 쓰고, 미술 작품도 하고... 뭐... 이거 슈퍼맨이죠.
이걸 그 이웃들은 병신처럼 철썩같이 믿더란 말입니다.

히히 2013-10-07 2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그 년놈의 속물들 때문에 마이 당항하셨어요~?
그러길래 허삼관아버지께서
'좆 털이 눈썹보다 나기는 늦게 나도 자라기는 길게 자란다'고 하질 않던가요?
<지랄>하며 사는 쌍년놈을 용서하신 민주 곰...발님을 토닥입니다.
"이 신발끈들아, 좀 말고 잘 살아라!" 이 말은 관심이다. 오카이?

수십 번을 생각해도 '히히' 이상의 포장은 없는 사람입니다.
님처럼 장문의 글로 묘기를 부릴 재주가 없어서 선택한
제 나름의 처세술이거니 치부하시고 어여삐 너겨주시와용.

곰곰생각하는발 2013-10-08 00:46   좋아요 0 | URL
전형적인 잉여가 과해서 과잉이 된 판타스틱이고
과잉이 넘쳐서 진정 잉여가 된 예입니다.
적당한 거짓말은 아름답죠.
하지만 아주 작정하고 하는 거짓말은 불쾌합니다.
위의 두 녀석들은 그 선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어요.
둘의 공통점은 거짓말 탄로나니 블로그 폭파하더니 다시 10흘 안에
새로운 블로그 만들어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ㅎㅎㅎㅎㅎㅎ
이해 불가능...

yamoo 2013-10-08 1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곰발님의 글은 역쉬나 재미납니다~ 좀더 강도높은 비판도 좋은데 말이죠^^ 추천 쾅!

전 맨날 지랄하면서 살기 때문에...ㅋㅋ

곰곰생각하는발 2013-10-08 14:29   좋아요 0 | URL
이 둘의 공통점은 둘 다 블로그 폭파를 했다는 점이고
또 공통점은 폭파한 지 열흘 안에 다시 개설했다는 점입니다.
여전히 설레발과 허세를 부리더군요.....

여울 2013-10-08 15: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소설보다 더 소설같은 현실이네요. 정신없이 읽었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10-09 02:31   좋아요 0 | URL
하여튼... 정말 환상적인 사건들 많이 일어납니다.

iforte 2013-10-08 2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전히 글'빨'로 사람 혼을 쏙 빼놓는 곰발님이세요. 정신없이 일하다 잠시 쉬려고 들렸는데 또 정신없이 읽고야 말았네요.
공감, 또 공감합니다. 사실 실제로 '포르쉐'타는 인간을 둘이나 봤는데요, 둘다 하루에 잠은 거의 3-4시간 자는지, 아마 것도 다 못자고 일만 하더군요. 당연, 주말이라곤 아예 존재하지 않죠. 이런 사람들이 인터넷에서 자신 내력 자랑할 틈은 절대 없을듯요. 그래서 전 그냥 포르쉐 안타고, 그냥 잠 다 자고, 속물과 잉여 사이 어디쯤 어중간히 걸치고 편안히 발뻗고 살렵니다, 앞으로도, 쭉~~ ㅍ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3-10-09 02:29   좋아요 0 | URL
여긴 한글날이어서 휴일인데 그쪽은 평일이겠군요.
슬슬 비도 오고 오늘은 술 마시기 좋은 날이네요.
그 녀석 어찌나 포르쉐 자랑을 하던지...
라면 사러 가는 데 포르쉐 몰고.. 아니다, 라면인가 만두인가 하여튼 먹고 싶다고
포르쉐 몰고 동네 가게 새벽에 가서 먹고 왔다... 이런 얘길 참 잘하더라고요..ㅎㅎㅎㅎㅎ
얼마나 가지고 싶으면 거짓말을 지어낼까 싶다가도
저런 맨탈이면 정말 저 녀석이 벼락부자가 되면 정말 가관이겠구나, 그런 생각도 들고...

속물과 잉여 사이에 있는 게 제일 좋은 선택입니다.
내가 포르쉐 새끼'랑 한판 붙은 이유가 사실은 용산 집창촌 직업여성을 몰래 찍어서
자기 블로그에 사진을 공개한 것 때문이었습니다. 몰카로 찍고서는 공개하며 밑에 단 글은
용산 창녀들... 이런 제목 달고... 아는 분이 신고를 했는데 그 사진 찍힌 사람이 직접 신고를 해야지
다른 사람이 신고를 하면 성립이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하여튼 기본적 멘탈에 문제가 이는 놈이었음..

즐거운 인생 2013-10-11 0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대략 여기서도 잘 지내고 계시구만요. 이러면 안되는 데. 킁
오늘은 이만하고, 또 나탈리 님 배너타고 놀러 올께요~

곰곰생각하는발 2013-10-11 02:33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ㅎ... 여기 너무 따분합니다. 거친 맛이 없어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네이버가 트랜스포머를 상영하는 상영관이라면 여긴 무성영화 틀어주는 거 가틈..

강냉이 2013-11-16 2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글 제 블로그에 퍼가도 될까요

곰곰생각하는발 2013-11-17 03:48   좋아요 0 | URL
네에, 퍼가셔도 됩니다.
 

바람은 투명한 배우'다.  

 

 

메소드 연기'란 용어가 있다. 러시아의 스타니슬라프스키'가 창안한 연기론'으로 " 극중인물과 동일시를 통한 극사실주의적 연기 스타일'을 지칭하 " 는 것을 말한다. 쉽게 말하자면 메소드 연기란 " 쟤, 연기 잘한다 ! " 로 정의할 수 있겠다. 극중 배역에 맞춰 자유자재로 연기 변신을 하는, 천 가지 얼굴을 가진 배우가 선보이는 연기 스타일'이 바로 메소드 연기'다.  잭 니콜슨, 로버트 드니로, 알 파치노, 케빈 스페이시 같은 배우가 이에 속한다.  반면 우디 앨런 같은 경우'는 자신의 페르소나'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우디 앨런'이 연기를 못한다고는 할 수 없다. 연기 스타일'이 다를 뿐이다. 우디 앨런은 우디 앨런'이다. 로버트 드니로가 무아無我'라면 우디 앨런은 몰아沒我'다. 그렇다면 무아의 경지에 다다른 대한민국 배우는 누구일까 ? " 단언컨대, 송강호는 완벽한 물질입니다 ! "

 

그가 < 밀양 > 에서 보여준 카 센터 사장 연기'는 명불허전'이었다. 적당한 속물과 의외의 순정 사이'를 교묘하게 오고가는 연기'는  그가 아니면 그 어느 누구도 할 수 없는 연기'라는 것을 스스로 증명했다. 소리만 지르면 연기인 줄 아는 설경구 같은 배우 하고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메소드 연기'가 지향하는 것은 바로 무아 無我'의 경지'다.  송강호'는 무아'를 통해 타자와 접신'을 하는 박수무당에 가깝다. " 나는 내가 아니라 너다 ! " 그런데 < 연기 > 는 인간만이 할 수 있는 능력'은  아니다. 바람, 비, 눈따위도 온힘을 다해 연기를 한다. 소설 < 폭풍의 언덕 / 에밀리 브론테 >을 영화화할 때 중요한 것은 배우의 신들린 연기'보다는 바람의 신들린 연기'이다. 소설 < 폭풍의 언덕 > 이 영화로 만들어질 때마다 항상 실패하는 이유는 적재적소에 바람의 다양한 얼굴을 그려넣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서정주는 나를 키운 것은 팔 할이 바람이었다고 말도 안되는 허세를 부렸지만, 사실 < 폭풍의 언덕 > 을 키운 것은  팔 할이 쓸쓸한 바람'이었다. 하지만 바람'은 기획사에 소속된 전속 배우가 아니기에 감독이 스케줄에 따라 오라 가라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바람은 조련사에 의해 다스려지는 존재가 아니지 않은가 ! 바람을 다스릴 수 있는 사람은  " 제갈공명 " 밖에는 없다. 그래서 대부분은 자연이 만들어내는 바람 대신 선풍기가 만들어내는 인공적인 바람에 의지하게 되지만 그 효과는 미미하다. 거대한 선풍기가 만들어내는 인공적인 바람'은 표현력이 부족해도 너무 부족하다. 액션은 화려하지만 표정은 빈약하다. 이처럼 선풍기가 만들어낸,  직선으로 이루어진 편향'은 자연스러운 바람을 재현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자연스러운 바람은 한 방향에서만 불어오지 않고 다양한 각도에서 기류를 탄다.

 

선풍기로 만든 인공적인 바람이 2차원 평면'이라면 자연적으로 생긴 바람은 3차원 입체'다. 전자가 직선이라면 후자는 곡선이다. 그래서 고집 있는 감독은 바람이 촬영장을 찾아올 때까지 기다린다.  고다르가 고백했듯이, 바람이 꼭 필요할 때  촬영장에 부는 바람은 신이 예술을 위해 내린 깜짝 선물이다. 이별 장면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배우가 흘리는 눈물보다는 남과 여 사이'에 바람이 불 때'이다.  바람이 지나가며 헝크러뜨린 머리카락은 구구절절한 열여덟 마디 대사'보다 더 애절한 심상을 전달한다.  화가는 바람을 그리기 위해서 바람을 그리지 않고  바람에 흔들리는 꽃을 그린다고 고백하지 않았던가.  그러니깐 당신이 보고 있는 것은 이별을 앞둔 연인의 헝크러진 머리카락이 아니라 심란한 마음'이다.  나는 < 헝크러진 머리카락 > 이라고 쓰고, 아...  < 산산이 부서진 마음 > 이라고 읽는다.

 

그렇다고 바람이 모두  황홀한 연기를 선보인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는 없다.  < 바람 > 도 연기를 잘하는 바람과 연기를  못하는 바람이 있다. 송강호처럼 " 기차게 " 연기를 잘하는 배우가 있는 반면에 얼굴은 반반하지만  " 기가  차서 " 말이 안 나올 만큼 연기를 못하는 배우가 있듯이 말이다.  내가 지금까지 본 영화 가운데 가장 탁월한 연기력을 선보인 바람은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감독이 연출한 < 거울 > 이라는 작품이었다.  나는 그 장면에서 느닷없이 튀어나온 바람의 명연기에 그만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내용은 이렇다  :  여자는 기약  없이 떠나는 남자을 멀리서 바라본다.  짧은 만남 긴 이별'이다.   떠나는 남자과 그 모습을 지켜보는  여자 사이에는 넓은 초원이 가로놓여 있다. " 진격의 거인 "  이 아니라  " 간격의 연인 " 이다.  이때 느닷없이 바람이 카메라 앞에 나타나더니 뒤로 사라진다. 

 

풀은 흔들린다.  풀은 바람이 지나는 방향으로 누우며 잔물결을 만들고 이 잔물결이 모여서 큰 물결을 만든다. 작은 슬픔이 모여서 큰 격정을 이룬다. 기약 없이 떠나는 남편을 바라보는 아내는 슬픔과 격정 사이를 오간다.  바람에 흔들리는 풀은 이별 앞에서 흔들리는 마음과 같다.  감독은 이 장면을 두고 " 우연히 찍힌 예상치 못한 바람  "  이었다고 고백했다.  신이 예술을 위해 내린 선물'이었다. 바람의 황홀한 연기'였다.  내가 칸느 영화제 심사위원장'이었다면 남우주연상으로  " 바람 " 을 호명했을 것이다.  와,  와와 !!  왠지 모르게 이 영화에 등장한 바람'은  고흐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고흐가 자살하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그린 < 까마귀가 나는 밀밭 > 에서 내가 본 것은  쓸쓸하게 부는 바람'이었다. 내가 고흐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림 속에 바람이 지나간 흔적이 보이기 때문이다.

 

고흐는 < 볕 > 을 그리기 위해서 < 바람 > 을 그린 화가였다. 그는 풍경만이 아니라 사람을 그릴 때에도 바람이 지나간 길을 그렸다.  주정뱅이 우체부 탕기 영감'을 그릴 때에도 그 얼굴에서 바람의 흔적이 보인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영화 속 주연 배우'보다 비, 바람, 눈, 볕 같은 무보수 무명 배우들에게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7월에 내리는 비는 시끄럽고 11월에 내리는 눈은 조용하다. 그 가운데에서도 바람은 특별한 배우였다.  오랜 기다림이 있어야 좋은 바람을 만날 수 있다. 성격이 급한 감독이 담은 바람'은 매력이 없다. 만약에 당신이 이유없이 " 어떤 장면 " 이 마음에 들었다면  그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의 연기가 탁월했기 때문이다.  모든 영화에는 바람이 등장하지만 우리는 그 사실을 종종 망각한다. 칼바람처럼 요란하게 소리를 내는 바람도 있지만 소리 없이 스치듯 지나가는 바람도 있다.

 

창문을 열면 제일 먼저 들어오는 바람은 기분을 좋게 만들고, 죽어가는 자가 내뱉은 날숨은 관객을 쓸쓸하게 만든다. 이처럼 바람은 시끄럽고 조용하고 기분 좋고, 때론 슬프며 쓸쓸하다. 바람이야말로 천 가지 얼굴을 가진, 무보수 무명 배우'이다. 아니, 투명한 배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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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히 2013-10-05 0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바람 불어
우듬지 볕 쪼개고
산사 풍경 깨우고
호수 은파 휘젓고
달무리 그믐 건져내고
갑순이 갑돌이 눈 맞고
.
.
.

히히 가슴에 가을바람 불어 이리 팔랑 저리 팔랑
아따 그 바람 한번 곰살갑네.

곰곰생각하는발 2013-10-05 01:27   좋아요 0 | URL
흠....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고수다 !!!!!!!!!

새벽 2013-10-07 04: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타르코프스키의 거울에선 정말 풀잎에 이는 바람이 카메라에 반응하는 배우 같았습니다.
사실 바람, 하면 거울 이전에 알렉산더 도브첸코의 대지,에서 워낙 인상 깊었기에 전 막상 거울에서의 감흥은 좀 깎였고.. ^^;
타르코프스키의 솔라리스에서 물 속에서 부유하는 수초들이 전 너무 환상적이더라구요.
그리고 바람, 하면 떠오르는 또 한 편은 봄날은 간다.. 역시 좋았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10-07 14:41   좋아요 0 | URL
타르코프스키는 모든 영화가 좋죠. 솔라리스도 정말 위대하고
스토커는 어떻습니까.. 환상적이죠.
안드레이 류블레프는 정말 가장 위대한 걸작이빈다.
이반의 이런 시절..

하여튼 모든 작품이 전부 무시무시한 걸작을 만든 건 타르코프스키가 유일하지 앟을까 싶어요..
 

 

 

재미있는 이야기.

 

 

속초에서 만난 스무 살 여자애 이름은 재미'였다. 이름이 재미있다보니 재미'를 만나면 장소팔 고춘자 만담처럼 시시껄렁한 농담을 서로 주고받고는 했다. 명랑 쾌활한 소녀'였다. 이런 식'이다.

 

- 여보세요 ?  재미있나요 ?

- 재미없어요.

- 재미없다구요 ?

- 네.

- 아, 재미없네...

 

재미랑 < 트랜스포머2 > 를 볼 때에도 난 재미에게 이렇게 말했다.

 

- 재미, 재미없지?

- 재미있어!

- 맙소사, 재미 ! 이게 재미있어?

- 맙소사, 그럼 재미없어?

- 너, 말이 짧다 ?

- 삼촌이 말 편하게 하라고 했잖아요.

 

녀석은 나중에 조양동 이마트 보안 직원이 되어 있었다. 이마트에서 우연히 만났는데 그때 내가 한 최초의 말은 " 오, 재미 !  여기서 일하니깐 재미있니 ? " 였다. 내가 종종 재미에게 하는 농담이 " 재미없는 세상이 나는 재미있어 ! 그래서 난 재미있는 세상은 재미없어 !! " 였는데, 그 말만 하면 술에 취한 재미는 미친년 경기하듯 까르르르 웃어 젖혔다. " 까르르르... 삼촌, 재미 없으면 재미없지 ? 재미 있으면 재미있고. 까르르르르. 삼촌 만날 내 이름 가지고 농담하잖아. 그게 유일한 낙이잖아. 까르르르르. "  아, 철없는 재미는 실존에 대한 내 진지한 성찰'을 농담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재미 씨, 농담도 잘하셔 !  속초에 가면 재미가 산다. 속초에 재미'라는 이름을 가진 처녀도 있으니 제주도에는 재주라는 이름을 가진 총각도 있으리라.

 

- 재주 있나요 ?

- 재주 없어요.

- 네에 ? 재주 없다구요 ? 

- 네에. 재주,  별다른 재주도 없고 해서 제주도 떠났어요. 서울에서 공장 다녀요.

- 아하, 재주도 없어서 제주(도) 떠났군요. 

- 네, 그렇습니다. 참 재주도 없는 녀석이에요. 

 

이런 " 오고가는말풍선 " 이 예상되지 않습니까 ? 재주도 없어서 제주도 떠나는 안타까운 재주 씨'라니 ! 만약 재주 씨'가 제주도를 떠나서 속초에서 산다면 어떻게 될까 ? 둘이 만나면 이런 시시껄렁한 대화가 오고갈 것이다.

 

- 전 웃기는 재주가 없어서 재미없는 재주입니다.

- 어머, 재주 씨 !  재미있어요. 곰곰발 삼촌 생각이 나네...

- 재미 있으면 좋습니다.

- 저도요 ! 재미있는 세상이 좋아요.

- 아니요. 제 말은 재미 씨 있는 곳'이면 즐겁다는 뜻입니다.

- 어머 !

- 재미 씨는 사람을 재미있게 하는 재주가 있습니다 재미 씨가 없으면 재미도 없습니다.

- ......

- 재미없는 사람이어서 무뚝뚝한 나에게 재미 씨는 재미있는 사람이어서 좋았습니다. 평소 재미없는 성격을 고치려고 무던히도 노력을 했으나 내성적인 천성을 고쳐지질 않더군요. 그래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재미 씨 ! 재미없는 내 성격을 고칠 사람은 당신 밖에 없습니다. 당신과 함께 하면 재미(씨)있는 사람'이 되니깐 말입니다.

- 지금 청혼하시는 거예요 ?

- 네, 당신 앞에 무릎 꿇고 이렇게 고백합니다. 재미 씨 !  평생 제 곁에 있어주세요. 재미있는 결혼생활을 하고 싶습니다.

- 조건이 있어요 ?

- 뭡니까 ?

- 아무리 외로워도 슬퍼도, 힘들어도, 재미 앞에서는 항상 재주 부리는 귀여운 곰이 되기로 약속 !

 

그래서 그들은 그날 밤 모텔에 가서 뒹굴었을 것이다.  재주는 재미 앞에서 재주껏 재주 부리고, 재미는 재주 부리는 재주 씨'를 재미있게 할 것이다. 외로워도, 슬퍼도, 힘들어도, 너도, 나도, 제주도 !  그들은 재미없는 세상에서 장소팔 고춘자 만담 콤비처럼 한세월 말장난 하다가 떠날 것이다. 재미는 재주 씨를 위해서 재미있는 이주일 성대모사를 해서 재주 씨를 웃기리라. " 띠리리리리. 재주 있는 사람들이 사는 곳은? 제주도 ! 까르르르르. "

 

 

 

 추신  :  재주와 재미는 결혼하여 아들을 낳는다면 아들의 이름은 재수'라고 짓지 않을까 싶다. " 재수  있니 ? 재수 없다고 ? 아, 재수 없네. 그럼 엄마 재미 바꿔. 뭐 재미도 없어 ?  아, 재미없네. 그럼 아빠 재주는 ? 재주도 없어 ? 아니, 무슨 재주가 있어야 먹고 살 거 아니야. 이런이런. 제주도에서 할머니가 전화했다고 말씀드려라. 가만... 가만.....  집에 아무도 없으면.... 근데 넌 누구니 ? 재길?  근데 재길이가 누구지 ? 내 아들 이름은 재주이고 며느리 이름은 재미, 그리고 하나밖에 없는 손주 이름은 재수인데 낭낭한 목소리를 가진 너는 누꼬 ?  뭐, 도둑놈 ?  아이구야, 이런 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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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히 2013-10-05 0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곰발 글발 끗발이 좋아서
약발 까치발 보태도 어림도 없네.
노발대발 하려다가
버선발로 반기네.
제발 단발에 그만두지 마소.
발 벗고 나설끼요.

곰곰생각하는발 2013-10-05 11:48   좋아요 0 | URL
아, 진짜 궁긍ㅎ서 하는 말이지만.. 히히 님 정체가 뭡니까 ?
이젠 슬슬 짜증나려고 합니다. 이젠 나에게 알려주세요.
< 발 > 이라는 것으로 황홀하게 마술을 부리는 것을 보면 고수인데....


곰발 글발 끗발 약발 노발 대발 버선발 제발 단발...

고수다, 고수...ㅎㅎㅎㅎ
도대체 당신 누구세요 ?


정말 이런 댓글 만나기 위해서 항상 덧글을 열어둡니다.


소년에로학난성 2013-10-08 1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로그가 아니니 철저한 익명이 가능해졌군요ㅋㅋ

곰곰생각하는발 2013-10-08 14:30   좋아요 0 | URL
아이고... 오랜만입니다. 창업은 잘 되시나 모르겠네요....
가을이니 조만간 술한잔 하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