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은 투명한 배우'다.  

 

 

메소드 연기'란 용어가 있다. 러시아의 스타니슬라프스키'가 창안한 연기론'으로 " 극중인물과 동일시를 통한 극사실주의적 연기 스타일'을 지칭하 " 는 것을 말한다. 쉽게 말하자면 메소드 연기란 " 쟤, 연기 잘한다 ! " 로 정의할 수 있겠다. 극중 배역에 맞춰 자유자재로 연기 변신을 하는, 천 가지 얼굴을 가진 배우가 선보이는 연기 스타일'이 바로 메소드 연기'다.  잭 니콜슨, 로버트 드니로, 알 파치노, 케빈 스페이시 같은 배우가 이에 속한다.  반면 우디 앨런 같은 경우'는 자신의 페르소나'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우디 앨런'이 연기를 못한다고는 할 수 없다. 연기 스타일'이 다를 뿐이다. 우디 앨런은 우디 앨런'이다. 로버트 드니로가 무아無我'라면 우디 앨런은 몰아沒我'다. 그렇다면 무아의 경지에 다다른 대한민국 배우는 누구일까 ? " 단언컨대, 송강호는 완벽한 물질입니다 ! "

 

그가 < 밀양 > 에서 보여준 카 센터 사장 연기'는 명불허전'이었다. 적당한 속물과 의외의 순정 사이'를 교묘하게 오고가는 연기'는  그가 아니면 그 어느 누구도 할 수 없는 연기'라는 것을 스스로 증명했다. 소리만 지르면 연기인 줄 아는 설경구 같은 배우 하고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메소드 연기'가 지향하는 것은 바로 무아 無我'의 경지'다.  송강호'는 무아'를 통해 타자와 접신'을 하는 박수무당에 가깝다. " 나는 내가 아니라 너다 ! " 그런데 < 연기 > 는 인간만이 할 수 있는 능력'은  아니다. 바람, 비, 눈따위도 온힘을 다해 연기를 한다. 소설 < 폭풍의 언덕 / 에밀리 브론테 >을 영화화할 때 중요한 것은 배우의 신들린 연기'보다는 바람의 신들린 연기'이다. 소설 < 폭풍의 언덕 > 이 영화로 만들어질 때마다 항상 실패하는 이유는 적재적소에 바람의 다양한 얼굴을 그려넣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서정주는 나를 키운 것은 팔 할이 바람이었다고 말도 안되는 허세를 부렸지만, 사실 < 폭풍의 언덕 > 을 키운 것은  팔 할이 쓸쓸한 바람'이었다. 하지만 바람'은 기획사에 소속된 전속 배우가 아니기에 감독이 스케줄에 따라 오라 가라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바람은 조련사에 의해 다스려지는 존재가 아니지 않은가 ! 바람을 다스릴 수 있는 사람은  " 제갈공명 " 밖에는 없다. 그래서 대부분은 자연이 만들어내는 바람 대신 선풍기가 만들어내는 인공적인 바람에 의지하게 되지만 그 효과는 미미하다. 거대한 선풍기가 만들어내는 인공적인 바람'은 표현력이 부족해도 너무 부족하다. 액션은 화려하지만 표정은 빈약하다. 이처럼 선풍기가 만들어낸,  직선으로 이루어진 편향'은 자연스러운 바람을 재현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자연스러운 바람은 한 방향에서만 불어오지 않고 다양한 각도에서 기류를 탄다.

 

선풍기로 만든 인공적인 바람이 2차원 평면'이라면 자연적으로 생긴 바람은 3차원 입체'다. 전자가 직선이라면 후자는 곡선이다. 그래서 고집 있는 감독은 바람이 촬영장을 찾아올 때까지 기다린다.  고다르가 고백했듯이, 바람이 꼭 필요할 때  촬영장에 부는 바람은 신이 예술을 위해 내린 깜짝 선물이다. 이별 장면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배우가 흘리는 눈물보다는 남과 여 사이'에 바람이 불 때'이다.  바람이 지나가며 헝크러뜨린 머리카락은 구구절절한 열여덟 마디 대사'보다 더 애절한 심상을 전달한다.  화가는 바람을 그리기 위해서 바람을 그리지 않고  바람에 흔들리는 꽃을 그린다고 고백하지 않았던가.  그러니깐 당신이 보고 있는 것은 이별을 앞둔 연인의 헝크러진 머리카락이 아니라 심란한 마음'이다.  나는 < 헝크러진 머리카락 > 이라고 쓰고, 아...  < 산산이 부서진 마음 > 이라고 읽는다.

 

그렇다고 바람이 모두  황홀한 연기를 선보인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는 없다.  < 바람 > 도 연기를 잘하는 바람과 연기를  못하는 바람이 있다. 송강호처럼 " 기차게 " 연기를 잘하는 배우가 있는 반면에 얼굴은 반반하지만  " 기가  차서 " 말이 안 나올 만큼 연기를 못하는 배우가 있듯이 말이다.  내가 지금까지 본 영화 가운데 가장 탁월한 연기력을 선보인 바람은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감독이 연출한 < 거울 > 이라는 작품이었다.  나는 그 장면에서 느닷없이 튀어나온 바람의 명연기에 그만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내용은 이렇다  :  여자는 기약  없이 떠나는 남자을 멀리서 바라본다.  짧은 만남 긴 이별'이다.   떠나는 남자과 그 모습을 지켜보는  여자 사이에는 넓은 초원이 가로놓여 있다. " 진격의 거인 "  이 아니라  " 간격의 연인 " 이다.  이때 느닷없이 바람이 카메라 앞에 나타나더니 뒤로 사라진다. 

 

풀은 흔들린다.  풀은 바람이 지나는 방향으로 누우며 잔물결을 만들고 이 잔물결이 모여서 큰 물결을 만든다. 작은 슬픔이 모여서 큰 격정을 이룬다. 기약 없이 떠나는 남편을 바라보는 아내는 슬픔과 격정 사이를 오간다.  바람에 흔들리는 풀은 이별 앞에서 흔들리는 마음과 같다.  감독은 이 장면을 두고 " 우연히 찍힌 예상치 못한 바람  "  이었다고 고백했다.  신이 예술을 위해 내린 선물'이었다. 바람의 황홀한 연기'였다.  내가 칸느 영화제 심사위원장'이었다면 남우주연상으로  " 바람 " 을 호명했을 것이다.  와,  와와 !!  왠지 모르게 이 영화에 등장한 바람'은  고흐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고흐가 자살하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그린 < 까마귀가 나는 밀밭 > 에서 내가 본 것은  쓸쓸하게 부는 바람'이었다. 내가 고흐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림 속에 바람이 지나간 흔적이 보이기 때문이다.

 

고흐는 < 볕 > 을 그리기 위해서 < 바람 > 을 그린 화가였다. 그는 풍경만이 아니라 사람을 그릴 때에도 바람이 지나간 길을 그렸다.  주정뱅이 우체부 탕기 영감'을 그릴 때에도 그 얼굴에서 바람의 흔적이 보인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영화 속 주연 배우'보다 비, 바람, 눈, 볕 같은 무보수 무명 배우들에게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7월에 내리는 비는 시끄럽고 11월에 내리는 눈은 조용하다. 그 가운데에서도 바람은 특별한 배우였다.  오랜 기다림이 있어야 좋은 바람을 만날 수 있다. 성격이 급한 감독이 담은 바람'은 매력이 없다. 만약에 당신이 이유없이 " 어떤 장면 " 이 마음에 들었다면  그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의 연기가 탁월했기 때문이다.  모든 영화에는 바람이 등장하지만 우리는 그 사실을 종종 망각한다. 칼바람처럼 요란하게 소리를 내는 바람도 있지만 소리 없이 스치듯 지나가는 바람도 있다.

 

창문을 열면 제일 먼저 들어오는 바람은 기분을 좋게 만들고, 죽어가는 자가 내뱉은 날숨은 관객을 쓸쓸하게 만든다. 이처럼 바람은 시끄럽고 조용하고 기분 좋고, 때론 슬프며 쓸쓸하다. 바람이야말로 천 가지 얼굴을 가진, 무보수 무명 배우'이다. 아니, 투명한 배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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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히 2013-10-05 0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바람 불어
우듬지 볕 쪼개고
산사 풍경 깨우고
호수 은파 휘젓고
달무리 그믐 건져내고
갑순이 갑돌이 눈 맞고
.
.
.

히히 가슴에 가을바람 불어 이리 팔랑 저리 팔랑
아따 그 바람 한번 곰살갑네.

곰곰생각하는발 2013-10-05 01:27   좋아요 0 | URL
흠....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고수다 !!!!!!!!!

새벽 2013-10-07 04: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타르코프스키의 거울에선 정말 풀잎에 이는 바람이 카메라에 반응하는 배우 같았습니다.
사실 바람, 하면 거울 이전에 알렉산더 도브첸코의 대지,에서 워낙 인상 깊었기에 전 막상 거울에서의 감흥은 좀 깎였고.. ^^;
타르코프스키의 솔라리스에서 물 속에서 부유하는 수초들이 전 너무 환상적이더라구요.
그리고 바람, 하면 떠오르는 또 한 편은 봄날은 간다.. 역시 좋았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10-07 14:41   좋아요 0 | URL
타르코프스키는 모든 영화가 좋죠. 솔라리스도 정말 위대하고
스토커는 어떻습니까.. 환상적이죠.
안드레이 류블레프는 정말 가장 위대한 걸작이빈다.
이반의 이런 시절..

하여튼 모든 작품이 전부 무시무시한 걸작을 만든 건 타르코프스키가 유일하지 앟을까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