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밑 작업

 

 

 

가을에서 겨울로 계절이 바뀌는 시절이 오면, 나무는 모든 걸 내려놓는다. 한여름 울울했던 삼림의 기억'은 묻어 둔 채 추운 겨울을 맞이하기 위해서 나무는 옷을 벗어 벌거숭이'가 된다. 이 혹한의 겨울'을 견딜 수 있을까 ? 모두가 겨울잠을 잘 때 나무는 홀로 깨어서 황홀했던 여름 한때를 기억한다. 잊지 않기 위해서, 나무는 깨어 있는 것이다. 날카로운 촉보다 매서운 바람이 기생충보다 깊이 몸속을 파고들 때에도 나무는 오직 여름'만을 기억한다. 이파리 돋고 꽃 필 때까지 깨어 있으라, 다시 만나기 위해서 깨어 있으라. 나는 앙상한 것(들)을 사랑했다. 겨울나무와 섹스가 끝난 후 깃털처럼 가볍게 졸고 있는 애인의 마른 어깨를 사랑했다.

 

- 가을에서 겨울 中 

 

 

 

 


 

 

 

 

 

 

리명박 각하께서 < 국민과의 대화 > 에서 로봇물고기'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었다. 사대강 수질 관리용 로봇 물고기'를 개발하여 한강'을 비롯한 대운하가 지나는 물길'에 로봇 물고기'를 풀어 넣겠다는 야심찬 계획이었다. 로봇의 임무는 수중 생태계 감시, 오염원 추적, 보호어종 감시'였다. 노무현이 집권 초기에 진행한 토크쇼 < 검사와의 대화 > 는 검사들이 개겨서 노무현이 이 정도면 막가자는 거지요 ? 라고 할 정도로 우중충하게 끝났지만 이명박이 진행한 토크쇼 < 국민과의 대화 > 는 처음부터 끝까지 화기애애했다. 각하가 내세운 비전에 의하면 하늘엔 조각구름 떠 있고, 강물에 유람선이 떠 있고, 강속엔 로봇 물고기가 떠 있는 구상이었다. 아아... 아름다운 우리 조국이로구나. 청사진은 화려했고 딴지를 거는 사람은 없었다. 각본대로 짜맞춘 티가 났다. 내 눈에는 이 화기'가 애애'하기보다는 애매'했다. ( 각하의 청사진이 뻥이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조각구름은커녕 뜬구름 잡는 소리가 팔 할이었고, 강물에는 유람선 대신에 굴착기로 강바닥이나 긁었으며, 강속에 녹조만 가득했다. )

 

그리고 얼마 후 청와대로부터 아름다운 미담이 흘러나왔고, 언론은 받아쓰기'를 했다. 리명박 각하'께서 강에 띄울 로봇 물고기의 크기가 크면 작은 어류들이 놀랄 테니 사이즈'를 줄이라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참모진들이 기술적인 이유를 들어 난색을 표하자,  리명박은 정색을 하며 각 기능별로 나누어 분리하면 크기'를 줄일 수 있지 않느냐며, 크기를 줄일 것을 요구했다는 내용이 담긴 미담'이었다. 쉽게 말해서, 다랑어 크기의 1인 로봇피쉬 감시체계에서 벗어나 연어급 5인 1조 편대유영'으로 감시하겠다는 발상이다. 이 미담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분명했다. " 대통령은 세심'하고 참모는 소심'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둘 다 한심'했다.  아, 이 촌스러운 손장난.  습관적인 자기 만족.  리버-월드'를 군대식 사열'로 재편하겠다는 놀라운 발상'에 난 두 손 두 발 다 든 적이 있다.  " 니미럴, 물고기'가 기러기냐 ?  편대유영으로 돌진하게 ?  하여튼, 낚시하다가 내 눈에 띄면 밟아버린다. "  

 

그런데 밟아버리기 전'에 한 가지 자문을 구하고 싶었다. 이 행위'가 범죄'라면 불법 수렵 채취에 의거한 민법 조항입니까? 아니면 군 시설 파괴 행위에 따른 군법 조항입니까 ? 당시에 거론되었던 물고기 5인조 편대 유영론'은 맨땅에 헤딩하는 꼴이나 다름없었다.   ‘로봇 플랫폼 설계 제작’ ‘자율 유영 충전기술’ ‘수중 유영기술’ ‘수중 위치인식 및 통신기술’과 같은 원천 기술이 전무한 마당에 무슨 수중로봇 상용화'인가 말이다. 그것은 마치 인공위성을 쏘아올린 적도 없는 세력이 스타워즈 전략 운운하는 꼴과 다르지 않았다. 각하와 청와대'가 가지고 있는 초일류 원천기술이라고는 < 물밑 작업 > 이 유일했다. 유감스럽게도 이 물밑 작업은 그 물밑 작업이 아니었다. 물밑에서 해야 할 일을 뭍 위에서 하면 치사한 모략과 더러운 술책이 되는 법이다. 결국 리명박 4대강 SF 판타지아'는 말 그대로 판타지'에 불과했던 것으로 끝났다. 한 남자의 에스에프적 상상력'은 결국 환경 재앙으로 이어졌으니 강물은 악취를 풍기며 썩어가기 시작했다.

 

각하가 입만 열었다 하면 튀어나왔던 < 녹색 성장' > 은 알고 보니 < 녹조 현상 > 이었다. 물길을 막으면 유속이 느려지니 녹조가 발생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느리게 흐르는 물은 섞는다, 라는 상식은 환경 전문가'가 아니더라고 쉽게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사대강 정비 사업'이 홍수를 예방하기 위한 치수 정화'였다는 말도 새빨간 거짓말에 속한다. 강바닥을 파서 물을 담는 그릇을 넓히는 작업'은 수위를 높일 뿐이지 홍수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1리터 용량인 수조를 2리터 용량인 수조로 바꿨다고 해서 수조'에 물이 가득 차 있다면 효과가 없다. 물이 가득 찬 수조는 1리터 용량이나 2리터 용량이나 빗물을 받아 저장할 수 없다. 홍수 예방 효과를 얻기 위해서는 강물을 비워야 하는데 비우기는커녕 고여서 수위만 높아졌을 뿐이다. 대부분의 홍수 피해는 강이 범람하기 때문이 아니라 물이 빠질 수 있는 하수 시설이 제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하게 된다.

 

각하가 치수 정책에 신경을 썼다면 강바닥을 건드리는 것보다는 하수공사에 신경을 썼어야 옳다.  사대강 사업은 치수정책에서도 재앙이었고, 정화 사업 측면에서도 재앙이었다. 이래저래  걷잡을 수 없는 환경 재앙이었다. 하물며 환경과 생태 전문가'들은 이 위험성'을 일반인이 생각하는 우려보다 더욱 심각하게 받아들였을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각하 정권 때 국토해양부 4대강살리기추진본부 환경부본부장' 자리에 오른 인물은 차윤정'이라는 사람이었다.  혹시 그 사람 ?!  혹시는 역시나 였다. < 신갈나무투쟁기 > 로 환경 분야에서 명저로 이름을 날린 저자와 같은 사람'이었다. 개인적으로 이 책은 생태 환경을 다룬 < 현산어보를 찾아서 > , < 개미제국의 발견 > 과 더불어 가장 아끼는 책'이었다. 이 책을 읽고 나서부터 나무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기 시작한 나로써는 차윤정의 선택을 이해할 수 없었다. 최근에 " 4대강복원범국민대책위원회 " 가 이명박 전 대통령을 비롯한 4대강 사업 추진세력을 검찰에 고발키로 했는데,  

 

4대강범대위'가 선정한 스페셜 급 찬동인사에는 이명박 전 대통령을 비롯해 권도엽 전 국토해양부 장관, 김건호 한국수자원공사 사장, 심명필 전 4대강 추진본부장, 박석순 국립환경과학원 원장, 박재광 미국 위스콘신대 교수, 이만의 전 환경부 장관, 이재오 새누리당 국회의원, 정종환 전 국토해양부 장관 그리고 차윤정 전 4대강 추진본부 환경부본부장'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녀는 환경부본부장을 임명받기 전에 한국일보 칼럼'에 이런 글을 기고하셨다고 한다. ‘흐르는 강물처럼’이라는 글에서 사대강 발상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한강 유역에 사는 식물종만 해도 대략 700여종, 수서곤충은 100여종, 민물고기 50여종, 그리고 새도 50여종이나 된다. 그러나 우리가 기술하는 강의 정보란 여울, 소(沼), 습지, 연못, 수충부, 모래 톳, 수로, 유속, 유량 등 많아야 20개 정도다. 그나마 이 속성들 사이의 생태적 관계는 미처 파악하지 않았을 뿐더러 통합적으로 논의하지도 않는다"며

 

한국일보 2009.10.11 사설 칼럼, 차윤정 < 흐르는 강물처럼 > 전문 ▼

 

약 4,700년 전 바빌로니아의 도시국가 우룩(Uruk)을 지배하고 있던 길가메시(Gilgamesh)는 제국을 건설하기 위해 남부 메소포타미아의 광활한 숲을 개간하기를 원했다. '숲으로의 여정(The Forest Journey)'으로 알려진 '길가메시 대서사시(Epic of Gilgamesh)'는 그가 숲을 점령해나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러나 문자로 기록된 인류 최초의 영웅 서사시에는 불행히도 인류를 향한 오랜 생태적 저주가 담겨 있다.

길가메시 이전에 한번도 인간이 들어가 본 적이 없는 어둡고 신성한 숲은 수메르의 신 엔릴(Enlil)이 지키고 있었다. 병사들은 이 신성한 정령들의 숲에 들어가기를 꺼렸으나 길가메시는 죽음으로 위협하며 병사들을 숲 안으로 내몰았다. 수많은 병사가 숲과의 싸움으로 목숨을 잃었으나 결국 숲은 인간에게 길과 대지를 내주었다. 이때 죽음에 임박한 엔릴은 길가메시와 그의 군대에게 다음과 같은 저주를 내린다.

'너희가 먹는 음식, 너희가 마시는 물 모두 불이 삼키리라 (May the food you eat be eaten by fire; may the water you drink be drunk by fire)'

지금의 이라크를 포함한 중동지역의 사막이나 준사막 지역은 아직까지 고대의 저주에 걸려있어 그 속의 인간은 고통스럽다. 우리에게 이런 저주의 역사가 전해지지 않았음이 얼마나 다행인지. 국토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산을 엎어 경작지를 만들고 도시를 만들어 짧은 혜택을 누릴 수 있었겠지만, 도전과 개척 정신이 부족했다는 비난이 있을지라도 지금의 남겨진 자연유산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오랜만에 김포공항을 나가기 위해 강을 따라 도로를 내달린다. 막 가을로 접어드는 유유한 강물과 강변의 사람들이 평화롭다. 늘어진 나무들과 가벼워진 갈대이삭들이 더 없이 사랑스러운 거대 도시의 한 조각. 서울, 너는 정말 아름다운 강을 가지고 있었구나.

산이 정적이라면 강은 동적이다. 물이 휘몰아치는 굽이에는 너른 모래 톳을 만들어 힘을 흩어버리고 땅을 파고드는 곳에서는 자갈을 쌓아 상처를 보듬는다. 강은 스스로를 통제하기 위해 이리저리 몸을 비틀어 지상에는 역동적이고 아름다운 선이 만들어진다. 그 구비마다 수많은 생물이 틈을 메우며 생존하다. 그 안에 사람도 있다.

한강 유역에 사는 식물종만 해도 대략 700여종, 수서곤충은 100여종, 민물고기 50여종, 그리고 새도 50여종이나 된다. 그러나 우리가 기술하는 강의 정보란 여울, 소(沼), 습지, 연못, 수충부, 모래 톳, 수로, 유속, 유량 등 많아야 20개 정도다. 그나마 이 속성들 사이의 생태적 관계는 미처 파악하지 않았을 뿐더러 통합적으로 논의하지도 않는다. 이제 강을 수로와 수심과 수변으로만 다듬는 '사업'을 한다고 예산까지 구체화하였다. 뭘 어떻게 해서 자연의 이름다운 강보다 더 아름다운 강을 만든단 말인가.

작은 샘에서 시작되는 강의 긴 여정과 그 여정이 다듬어 왔던 생물과 풍광의 역사가 어찌 4,700년보다 짧을까. 강의 의미가 단순히 사람의 풍광만으로 정의될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겠다. 그러나 강은 산보다 더 정교하고 엄격한 자연이요, 환경이다. 산의 파괴가 그토록 오랜 시간 저주를 풀지 않는데, 정복당한 물이 내릴 저주란 얼마나 끔찍할지, 좀 더 심각한 고민이 필요하지 않을까. 자연은 투자의 대상이 아니라 보호의 대상이다.

 

펼친 부분 접기 ▲

 

"이제 강을 수로와 수심과 수변으로만 다듬는 '사업'을 한다고 예산까지 구체화하였다. 뭘 어떻게 해서 자연의 아름다운 강보다 더 아름다운 강을 만든단 말인가" 라고 했던 그녀가 연봉 7천만 원짜리 1급 공무원이 되고 나서 한다는 소리가 늙은 강'을 젊은 강으로 복원하자, 였다. 내 귀를 의심했다. 어떻게 자연을 늙은 것과 젊은 것'으로 정의내릴 수 있으며,  설상가상 신이 선사한 자연'을 늙었으니 바꿉시다, 라고 주장할 수 있을까 ? 차윤정은 칼럼'에서 서울의 한강을 바라보며 " 너는 정말 아름다운 강 " 이라고 하던 찬탄은 관직을 얻자마자 " 늙은 강 " 이라는 탄식으로 바뀐다. 그사이 차윤정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 오염된 강은 있을 수 있어도 늙은 강'은 존재하지 않는다.  환경 생태학자'가 할 소리가 아니다. 밥벌이를 위해서 동태찌개와 생태찌개'를 팔 수는 있어도,

 

밥벌이를 위해서 숨탄것이 살아가야 하는 생태(지식')을 팔아서 관직을 얻는 것은 곤란하지 않을까 ? 잘못된 행정 결정은 단순히 전봇대'를 뽑으면 되돌릴 수 있지만 잘못된 환경 정책 결정은 숨탄것들에게는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재앙이 된다. < 땅 > 이 몸이라면 < 강 > 은 핏줄이자 젖줄이다. 강이 죽으면 숲도 죽는다. 숲에 대해 해박한 학자'가 그 사실을 모를 리 없다. 정복당한 물이 내릴 저주를 두려워했던 저자'가 물을 정복하기 위한 환경 재앙 사업에 앞장섰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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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비 2013-10-29 04: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졸렬하네요. 이명박이나 차윤정이라는 사람들

저는 물질로 존재하는 단어들은 생각과 감정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요. 나무나 전봇대 같은 것들이요..그래서 저는 가끔 길 걷다가 길에 아무도 없으면 괜히 나무한테 인사도 하고 말도 걸어요. 우리가 안볼 때는 나무들도 서로 몰래 속닥거릴지도 몰라요. 강물은 나무처럼 하나의 개체가 아닌 유동적인 것이지만
분명히 강물도 자신을 살려준다면서 자신의 몸을 마구 파헤치고 몸뚱이를 자르고 막고 이상한 것들을 설치하면서 오히려 아프게 만든 사람들로 분노와 슬픔을 느꼈을 거에요..지금도..

아픈 네개의 강들이 불쌍해요


곰곰생각하는발 2013-10-29 12:35   좋아요 0 | URL
심장이 쫄깃해야 하는데 흐물흐물한 인간형이죠.
강을 직선으로 펴는 작업을 하는 것을 보고 정말 기가 막혔습니다.
강은 구불구불해야 되거든요. 그래야 유속이 서로 다르니 다양한 어종이 살 수 있고 퇴적을 막기도 하니깐 말이죠. 강을 직선으로 펴는 것은 환경에, 아니 책 한두 권만 읽어도 나오는 상식 아닙니까....
각하는 물을 많이 담을 요량으로 강바닥을 팠는데...
이게 결정적입니다. 보는 깨부슈면 되지만
바닥은 그동안 자연적 흔적에 따라 다양한 퇴적층이 형성된 관계입니다.
이걸 뒤엎으니 문제가 심각한 것... 모래를 다시 덮는다고 되는 성질이 아니잖아요...
하여튼 환경 재앙입니다.

저도 종종 나무와 말을 하고는 합니다. 묘하게 감동적일 때가 있죠. 피비양 님 !!
 

 

 

 

 " 꼴찌를 위한 변명 " 시리즈 2탄

 

 

 

 

힘줄과 고독

 

 

당신이 결혼 따위 생각하지 않는 여자였으면 좋겠어 우리 그냥 연애만 하자 사랑이 현실에 갇히는 건 끔찍해 결혼은 천민들의 보험일 뿐이야 진부해 그냥 연애만 하자 서로의 눈을 바라보자구 구속하는 일 따위 구역질난다 서로의 사생활을 존중해야지 밤에 내게 전화하는 건 구속받는 기분이어서 싫더라 주말에 약속 잡는 사람들 정말 이해할 수 없어 정서적 난민 같아 주말엔 책을 읽고 음악을 들어야지 당신은 내게 뭔가 요구하지 않을 사람 같아서 참 마음에 들어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는 사랑은 폭력이야 천박해 그러니 우리 쿨하게 연애하자구 참, 내가 전화 받기 곤란할 만큼 바쁜 사람이란 거 알지 ? 전화는 항상 내가 먼저 할게 사랑해 이런 느낌 처음인 것 같다 우리 좀더 일찍 만날 걸 그랬지 ?

 

- 유부남 전문, 시집 상처적 체질

 

 

 

 


 

 

 

마초란 근육 있는 남자'다. 시인 류근'은 마초다. 잘생긴 얼굴에 상대를 홀릴 만한 말'을 가졌으니, 그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눈물바람을 낸 여자 많았을 것이다. 고래 힘줄 같은 정력으로 잘록한 허리를 거칠게 휘어감으면 여성들은, 아... 탄산음료 같은 황홀한 탄성이 쏟아지리라. 시에 등장한 사내는 사랑이 현실에 갇히는 건 " 끔찍해 " 하고, 결혼 제도는 " 진부해 " 하며, 서로의 사생활은 " 존중해 " 야 된다고 주장한다. 여기까지는 쿨하고 리버럴해서 좋다. 하지만 주말에 약속을 잡는 사람들 정말 " 이해 " 할 수 없다고 할 때부터 뭔가 좀 이상하게 흘러간다.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는 사랑은 폭력이어서 " 천박해 " 라고 하더니 전화 받기 곤란할 만큼 바쁜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시적 화자'는 이내 전화는 자신이 항상 먼저 하겠다며 " 사랑해 " 라고 매조지한다. 이쯤에서 우리는 곧 이 욕망이 매우 뻔뻔하다는 사실에 웃고 만다.  결혼 제도가 진부다고 말하는 남자는 유부남이다. 한때 마초였던 꼰대의 희망사항이었던 것이다.

 

이두박근, 삼두박근 같은 힘줄은 주로 연애'를 할 때나 사용될 뿐이지 정의의 문제'와는 무관한 근육'이다. 행동하는 양심'은 두근두근'에서 나온다. 염통에서 나온다는 말이다. 염통이 쫄깃쫄깃해야지, 변두리 회 센터 수족관 속 개불처럼 흐물흐물하거나 이명박 각하처럼 꾀죄죄하면 생산할 수 없는 것이 바로 행동하는 양심이다. 이처럼 힘줄'을 너무 단련하면 이두박근'은커녕 이명박근(혜)이 되기 십상이다. 이상적인 < ① 마초' > 는 고독해야 한다. 힘줄과 고독이 6 : 4 정도로 배합되면 좋다. 여기에 염통이 가지고 있는 양심'을 적절하게 사용하면 그보다 섹시할 수 없다.  그런가 하면 < ② 속물' > 은 힘줄은 있는데 고독은 없는 놈이다. 여자와 술을 마실 때마다 외롭다며 술잔을 한입에 터프하게 터는 놈은 진짜 마초가 아니다. 외로움'이란 피동적 결과이고 고독'은 자발적으로 선택'한 결과이다. 속물이란 외롭다는 핑계로 여성이 가지고 있는 모성 본능을 자극하려는 계략일 뿐이다. 이상적인 마초는 여자를 지키려고 하고 찌질한 속물은 여자를 건드리려고만 한다.

 

그런데 이 속물'보다 한발 더 나아가는 부류가 있다. < ③ 꼰대'>남근도 근육이라고, 괄약근도 힘이라고 믿는 무리'이다.  힘줄(力)을 칼(刀)처럼 휘두르는 인간이다. 반면 힘줄도 없고 연어처럼 펄떡이는 염통도 없는 무리는 잉여 인간이 된다. < ④ 잉여' >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결핍을 숨기거나 보상받기 위해서 허세와 뻥으로 망가진다. 나는 아무래도 힘줄도 없고 심장박동도 약한 무리에 속하는 부류인 듯싶다. 사실 내게도  남근과 괄약근'이라는 미약한 근육'이 있었으나 이제는 그나마도 쓸모가 없게 되었다. 부실한 괄약근은 치질'을 낳았다. 대장항문과 의사 선생'은 늘 다음과 같은 처방을 내리고는 했다. " 치질이란 게 그렇습니다. 허허, 너무 오래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있지 마세요 ! 의자에 오래 앉아 있는 것도 치질을 악화시킵니다. 아참, 그리고 오래 서서 있으면 치질에는 정말 최악이란 사실도 알고 계시죠 ? "

 

앉으나 서나 치질 생각에 고통스러웠던 나는 속으로 쌍욕을 했다. " 씹새끼.... 바닥에 앉아도 안 된다, 의자에 앉아도 안 된다, 서서 있어도 안 된다 ?! 아예, 공중부양을 해라고 해라, 인간이 붕어 새끼냐, 시바 !! " 의사는 내 속도 모르고 열심히 전문 지식을 뽐냈다. " 치질와 요통은 직립을 하게 된 인간에게 생긴 병이지요. 더군다나 치질은 의자에 앉아서 오랫동안 생활을 해야 하는 현대인에게는 운명적인 병입니다. 치질로 인해 괄약근이 망가졌다고 해도 선생님에게는 우람한 남근이 있으니 너무 상심 마십시요. 뭐라고요 ?! 전립선 기능 저하라고요 ? (혼잣말로) 가지가지하는구나. 맙소사. 그래도 시도 때도 없이 케겔 운동을 하는 것을 잊으시면 안 됩니다. 당신 앞에 벌거벗은 여자가 앙탈을 부려도 남근에 힘 주지 마세요. 지금 당장 중요한 것은 괄약근이지 남근이 아니니깐 말이죠. "

 

어찌 되었든 나는 괄약근마저 없는 인간이었다. 류근이 유근( 有筋 : 힘줄 근 ) 이라면, 나는 괄약근도 망가지고 거시기도 부실하니 무근( 無筋 : 힘줄 근 )이면서 동시에 무근( 無根 : 뿌리 근 )이었다. 시바, 뒷방 늙은이처럼 이게 무슨 지랄병인가. 의사 선생이 하는 말을 듣고 있자니 인간에게 꼬리'가 달렸다면 치질로 인한 질병은 사라지지 않았을까 ? 라는 생각을 잠시 하게 되었다. 꼬리 근육을 열심히 움직이면 당연히 괄약근 운동에 도움을 주어서 치핵이 밖으로 튀어나오는 불행은 없었을 것이 아닌가. 마초와 꼰대'는 < 쪽 > 을 중요시한다. 양심은 팔아도 쪽 팔린 건 못 참는 부류가 바로 그들이다. 그들은 쪽 팔리면 하와이 간다. 그들에게 어울리는 사자성어는 < 어두육미 > 다. " 성님, 그래도 생선은 대가리가 맛있지라, 잉. " 힘을 숭배하는 자들이 이구동성으로 외치는 것이 바로 대가리 찬양‘이다.

 

미래 권력에게 줄 서기 위해서 안달이 난 사람들은 대가리'라는 우상을 숭배하는 자들이다.  하지만 신체 가운데 가장 많은 구멍’이 쏠린 부분 또한 대가리라는 점‘을 반드시 기억할 필요가 있다. 파리가 죽은 자의 내부에 제일 먼저 접촉하는 부분이 대가리다,  얼굴이다, 구멍이다.  파리는 눈, 코, 입, 귀’를 통해 내부로 잠입하여 금쪽같은 새끼를 낳는다. 그러므로 대가리는 부패의 위풍당당 개선문‘이다. 그래서 권력이란 지독한 냄새를 풍기는 것이 아닐까 ? 방향을 설정하는 것’은 물고기의 대가리이지만 추동하는 힘‘은 꼬리’에서 나온다. 꼬리를 흔들지 않으면 진전은 없다 ! 언행일치‘란 대가리로 방향을 설정하고 꼬리로는 물살을 힘껏 가르는 행동을 의미한다. 하지만 지식인 대부분은 머리로 방향을 설정하는 능력은 탁월하지만 꼬리를 치는 힘’은 부족하다. 막상 행동해야 될 시기‘가 오면 꼬리를 내린다. 

 

만약에 인간에게 꼬리가 달렸다면 인류는 어떻게 진화되었을까 ?  얼굴은 거짓말을 하지만 꼬리는 거짓말을 하지 못한다. 얼굴은 감정을 숨기기 위해서 고개를 외면하거나 웃는 시늉을 해도, 꼬리는 감정에 충실한 나머지 모든 감정이 들통난다. 무서우면 꼬리를 내리고, 기분이 좋으면 꼬리를 흔들며, 화가 나거나 싸움을 하려고 하면 꼬리를 높이 쳐든다. 그러니깐 꼬리는 감정을 숨길 줄 모르는 < 다혈질 이드‘ > 이고, 얼굴은 참고 참고 또 참는 < 캔디형 초자아’ > 다.   동료 직원에게 성적 호감을 느낀 여직원이 속마음을 숨긴 채 “ 전, 당신에게 전혀 관심이 없어요 ! ” 라며 내숭을 떤다고 치자.  하지만 꼬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한여름에 부채질하는 노인의 부채처럼 꼬리’가 한들한들 흔들린다면 ? 

 

혹은 상사가 실없이 던진 농담에 박장대소하는 박 대리의 꼬리‘가 물에 젖은 양말처럼 우울하게 축 늘어져 있다면 ?  전철 안에서 예쁜 여자를 보고 꼬리가 발딱 선다면 ? 꼬리는 감정을 숨기려고 해도 숨길 수 없는 골치 아픈 요물이지만 달리 생각하면 이 솔직한 기관은 꽤나 매력적이다. 인간에게 꼬리가 달린다면 < 내숭의 사회 > 는 사라질 것이다. 누가 적이고 누가 동지인지는 명약관화하니 인류는 보다 솔직한 사회가 되었을 것이 분명하다. < 알고 보니 당신은 나의 배경을 사랑한 것이지 나를 사랑한 것이 아니었소 > 류’의 신파 멜로 드라마‘는 제작되지 않았을 것이다. 꼬리를 보고 사랑을 찾는 사회.  왠지 모르게 꽤 근사하다는 생각을 한다. 언젠가 꼬리/꼴등’도 대우받는 사회가 올까 ?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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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2013-10-27 17: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아, 쫄깃쫄깃하다..!
간만에 곰곰발님 글 다운 글을 접한 기분.. :)

시도 재밌네요. 맨 처음에 저 '유부남'이란 단어가 뭔가.. 했다능.
유부남,은 제게 참 낯선 단어에요. 하하.

곰곰생각하는발 2013-10-27 21:09   좋아요 0 | URL
심장이 쫄깃쫄깃한 인간이 진짜 인간이지요.
심장이 이명박처럼 흐물흐물한 인간이 가장 제 입장에서는 쫌 그렇습니다.....ㅎㅎㅎㅎㅎ

류근 시 의외로 재미있게 읽협니다. 재미있어요...ㅎㅎㅎㅎㅎㅎ.

나탈야 2013-10-28 0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명박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http://www.phpschool.com/gnuboard4/bbs/board.php?bo_table=talkbox2&wr_id=874574

곰곰생각하는발 2013-10-28 21:50   좋아요 0 | URL
이명박근.... ㅋㅋㅋ 센스가 좀 돋보이죠 ? ㅎㅎ.
그나저나 따님과 고구마 캐셨던데 남은 것 좀 같이 먹읍시다 ~
내일 모레 모임 때는 게이스럽게 입고 가겠습니다.

엄동 2013-10-28 1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동감입니다

곰곰발님 글도 찰져서 쪅쪅 달라붙지만

저 류근님 정말 웃기네요

와놔 유부남들이란! ㅋㅋ


곰곰생각하는발 2013-10-28 21:52   좋아요 0 | URL
유근 시집 꽤 웃깁니다.
이 시 말고도 다 흥미쥔쥔합니다.

즐거운 인생 2013-10-29 14: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잘 읽었어요. 곰곰발 님은..님은..님은 언어 유희의 대가!
갑자기 류근의 상처적 체질을 사서 볼까나..싶은 마음이 마구 듭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10-29 18:49   좋아요 0 | URL
아프로는 유희왕이라 불러주세요.
류근 시집 말랑말랑하고 좋습니다.
 

 

 

 

 

 

 

 

 

전국노래자랑'은

이 시대의 레지스탕스가 되었나 !

 

 

미스터 방긋에게서 배운 두 번째는 바로 이용복의 노래 < 줄리아 > 였다. 어느 날 이 친구는 노래방에서 줄리아'라는 노래를 10월에 핀 코스모스처럼 한들한들 불렀다. 듣도 보도 못한 노래'였다. 물어보니 어릴 때 자기 아버지가 운전하던 차 안에서 늘 듣던 노래라는 것이다. 이용복 핫 골든 베스트 테이프' 속에 이 노래가 있어서 아버지 차를 탈 때마다 듣는다는 것이다. 친구의 노래 실력은 < 전국노래자랑'> 에 나가면 최소한 인기상'은 따논 당상'이었다. 나는 이 노래를 듣자마자 사랑에 빠졌다. 친구들에게는 라디오헤드나 모비 혹은 레드 핫 칠리 페퍼스의 노래를 즐겨 듣는다고 말은 했으나 사실은 뽕짝의 피가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 줄리엣이 아니라 줄리아 中

 

 

각하 정권 때 유행하던 것이 바로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이었다. 그 시절, 대중으로부터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오디션 프로그램은 < 슈퍼스타 K > 였다. 각하는 단 한 명의 우승자가 모든 것을 독차지하는 승자 독식 방식'은 그가 평소에 생각했던 철학과 잘 맞아떨어져서 삼성에서 무료로 제공한 벽걸이 티븨'로 이 방송을 즐겨 보고는 했다. 그에 반해 < 전국노래자랑 > 은 흥미롭지가 않았다.  대상, 최우수상, 우수상 2명, 장려상 2명, 아차상 2명, 인기상 3명 그외 기타 등등'으로 상금을 골고루 나누는 방식을 각하는 체질적으로 혐오했다. 각하는 시대가 바뀌었다고 생각했다. 쌍팔년도처럼 일 잘하는 놈이나 못하는 놈이나  모두 끌어안고 나아가는 방식'은 현대적 경영 방식과 어울리지 않는 방식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는 된 놈'하고 될 놈'만 밀어주는 것이야말로 정글 자본주의'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이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열심히 < 슈퍼스타 K > 를 시청했다고 한다. 이 대회 우승자는 모두 승승장구했다. 서인국은 배우로써 크게 성공했고, 가난한 수리공이었던 허각 또한 대중으로부터 많은 사랑을 한몸에 받아서 한때는 허각에 대한 호감도가 각하'보다 높았던 적도 있었다.  여기저기서 " 각하보다 허각 ! " 이라는 우스개'가 통인동 거리에 떠돌았다고 한다. 이 소문을 알음알음 전해 들은 각하는 " 허걱 ! " 하며 쓰린 마음을 달랬다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암암리에 전해지기도 했다. 지금은 아무도 믿을 사람이 없겠지만 그에게도 잘나가던 시절이 있었으니 그가 " 믿습니까 ? " 라고 외치면 사람들은 " 믿습니다 !!!!  " 라는 말하고는 했다. 하지만 지금은 < 믿습니까 ? > 라고 물으면 < 믿습니다 ! > 라는 대답 대신에 < 밉습니다 ! > 가 되어 돌아온다.  꾀죄죄한 몰락이었다.

 

하지만 익명을 요구한 최측근에 의하면 각하는 지금도 " 밉습니다 ! " 를 " 믿습니다 ! " 라고 잘못 알아듣는다고 한다. 낫 놓고 기역 자'를 모를 수는 있다. 그러나 믿음과 미움'을 혼동하면 아니 되옵니다. 퇴임 후 찾아온 각하의 꾀죄죄한 몰락과 함께 < 슈퍼스타 K > 도 옛 명성을 되찾지는 못하고 추락하는 모양새'다. 몰락은 아니지만 우려할 만한 하락이 지속되었다. < 슈퍼스타K > 는 < 전국노래자랑 > 를 벤치마킹해서 현대 감각에 맞는 세련된 디자인으로 새롭게 재탄생한 오락 프로그램'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두 프로그램은 사뭇 다르다.  슈퍼스타 K 는 < 도전 > 에 방점을 찍고, 전국노래자랑은 < 참가 > 에 방점을 찍는다. 그러니깐 < 슈퍼스타 K > 에는 도전자는 있으나 참가자'는 없다. 같은 이유로 < 전국노래자랑 > 에는 참가자가 있을 뿐 도전자'는 없다.

 

그리고 또 하나. 전국노래자랑 참가자는 꾀꼬리 같은 노래 실력을 자랑하기 위해 무대에 오르지만 슈퍼스타K 도전자들은 노래 실력을 인증 받고 싶기 때문에 무대에 오른다. 엇비슷해 보이지만 서로 다르다. 우리는 슈퍼스타 K에서 도전자들이 “ 도전 ! ” 이라며 손을 들어 외치는 순간, 숨을 죽이고 바라보게 된다. 몰입, 그렇다 ! 이상하게도 도전'이라고 외치고 나서 노래를 하는 순간, 우리는 뚫어지게 그들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 그것은 마치 천 원짜리 지폐 다발로 만들어진 십만 원짜리 돈 묶음'을 셀 때의 몰입과 같다. 세는 도중 누가 말이라도 걸어서 방심하면 처음부터 다시 세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우리는 일요일 아침이면 송해 할아버지가 진행하는 전국노래자랑'을 몰입에 가까운 몰아의 상태로 티븨를 시청하지는 않는다.

 

관심을 끌기 위해서 악기들이 빰빰빠 빠라빠빠, 빠빠라빠빠 빠빠' 라며 서영춘 성대모사로 호객행위'를 해도, 시작하기도 전에 텔레비젼 앞에 질펀하게 앉아서 기다리는 열혈 관객은 없다.  똥줄이 타는 것은 순번표를 받아든 대기자들과 그 가족들뿐 ! 볼만한 구경거리가 없어서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다가 문득 얻어걸리게 되거나, 그래도 일요일 아침에는 전국노래자랑'이라며 시청하게 되는 쓸데없는 의리'와 습관적인 노스텔지어'가 작동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전국노래자랑'을 < 읍내 대항전 > 수준이라거나 슈퍼인 척하는 구멍가게'라고 놀리면 송해 할아버지'가 서운해 하신다. 조곤조곤 따지고 들어가면, 이 프로그램에는 의외의 반전이 당신을 기다린다. 하아!  이거 심오하다. 궁금하신가 ? ( 이하 슈퍼스타 K는 슈퍼로, 전국노래자랑은 전국'으로 표기하겠다. 갑자기 급 귀차니즘이 발동. )  

 

핵심은 < 땡의 미학' > 에 있다. 슈퍼와 전국의 공통점은 땡'을 친다는 것이다. 슈퍼가 뽀다구나게  또르르르 슬롯머신 흉내를 내는 디지털 점수판으로 바뀌었어도 결국은  “ 실로폰 손으로 톡 톡 프로그램 ”의  디지털 업그레이드 버전에 지나지 않는다. 땡 없는 오디션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  어쩌면 우리는  마지막까지 억척스럽게 살아남은 1등'을 보기 위해서 < 슈퍼스타K > 를 보는 것이 아니라 누가 떨어졌나를 보기 위해서 채널을 고정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너무 시니컬한 냉소인가 ?  좋다 ! < 슈퍼스타K' > 는 아니라고 치자. 하지만 < 전국노래자랑' > 은 정말 탈락자'를 놀리기 위한 고약한 프로그램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어설프게 노래 부르다가 땡, 하는 실로폰 소리'가 들리면 얼마나 즐거웠던가 ! 우리가 전국노래자랑'을 보게 되는 이유는 최후의 1등'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땡처리 꼴등'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었던가?

 

" 약자를 응원해주지는 못할 망정 깔깔거리며 놀리다니, 고약한 프로그램일세 ! " 그러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 이런 걸 두고 반전이라고 하는 거다. 그래, 그거였어. )  < 슈퍼스타K > 가 승자가 주인공인 뻔한 프로그램이라면 < 전국노래자랑' > 은 패자가 주인공'인 반전이 있는 프로그램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땡처리 탈락자들은 떨어져도 수퍼스타 탈락자처럼 찌질하게 울지 않는 것이다.  왜 ?  진짜 주연 배우'는 그들이니깐 !  그렇다, 진짜 주인공은 그들이었다. 오히려 쟈니 리의 < 뜨거운 안녕 > 을 불러서 우승을 차지한 ' 김영화 ( 목포 양포리, 자영업 36 ) 씨는 주인공이 아니라 엑스트라'에 불과했다. 주인공인 줄 알았는데 가짜였고, 진짜는 어설픈 시늉을 흉내 낸 땡처리'였던 것이다.

 

의외의 반전이다. 유주얼서스팩트'에 나오는 찌질한 겁쟁이 절름발이 용의자처럼,  전국노래자랑 땡처리 탈락자'는 절뚝거리며 무대에서 내려오는 순간 느닷없이 정면을 응시하며 알 듯 모를 듯한 미소를 지으며 패션모델처럼 우아하게 걷는다. 아, 아아아아아. 그렇다. 전국노래자랑'은 수많은 루저'를 위해서 존재하는 빛나는 프로그램이었던 것이다.  지하실 십오 촉 알전구 밑에서 등사기로 각하 퇴진 구호가 박힌 찌라시를 만드는 지하조직이었던 셈이다. 1등만 알아주는 더러운 세상'에게 딴지를 걸기 위해서 꼴등도 주인공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이었던 것이다. 아, 이 깊은 뜻. 곰삭은 웅숭깊은 맛 ! 샤방샤방한 노래방 전투.  총칼 대신 노래'로 전복을 꾀하는 아마츄어 땡처리 딴따라들 ! 가는 길에 영광 있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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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gettable. 2013-10-25 16: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훈훈하다! 곰곰발님은 이시대 우리 루저들을 위한 홍길동 같은 분이세요! ㅋㅋ

오늘도 무릎을 딱 치고 한수 배워갑니다.
하루에 님 페이퍼 하나씩만 읽어도 똑똑해지는 기분ㅋㅋ

곰곰생각하는발 2013-10-25 17:00   좋아요 0 | URL
앞으로 루저 대변인으로 열심히 대변하겠습니다.
윤창중에게 대변인이란 이런 것이다. 알려주고 싶네요...
창중 선생님이 여자 엉덩이를 어루만질 때 저는
대중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대변인이 되겠습니다.

saint236 2013-10-25 16: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믿습니다라는 말대신 밉습니다...대박...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3-10-25 16:59   좋아요 0 | URL
믿습니다 멘트 좀 센스 있었죠 ? 헤헤..

나탈야 2013-10-25 17: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간만의 따뜻한 포스팅이군요.
냉소적 시선도 좋지만, 무언가에 대한 따뜻한 시선도 무척 중요합니다.
앞으로 더욱 기대하겠습니다.

-는 저랑 어울리지 않는 댓글이구여.

저의 궁금증이나 해결해 주세요.
송해할아버지 은퇴하시면 전국노래자랑이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여?

(궁금)

곰곰생각하는발 2013-10-25 17:05   좋아요 0 | URL
송해 할아버지 은퇴하시면 오히려 네거티브 전략으로 가면 성공할 수 있습니다.
왜 JTBC가 욕 먹는 강용석 끌어들여서 성공했듯이
송해 할아버지 대신 윤창중'을 사회자로 쓰면 의외로 성공할 듯합니다.
앞으로는 창중 선생님은 손으로 펜을 잡고나 엉덩이를 잡을 수 없으니 마이크나 잡아야죠..
별수 있겠습까..

마이크 잡는 맛도 꽤 훌륭한 그립감 아니겠습니까....

엄동 2013-10-26 1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등만 기억하는 퍽퍽한 세상에서
여전히 사람냄새를 풍기며 맛깔나는 즐거움을 주는
전국노래자랑'은 우리집 큰어른도 참 좋아하시는 프로그램이죠

이를 "땡의미학"으로 훈훈하게 풀어주신
곰곰발님의 글을 보니

추운날 온장고 속의 호빵을 집어들었을때 처럼
땃땃해지네요. 맴이

곰곰생각하는발 2013-10-26 13:24   좋아요 0 | URL
송해 할아버지 뭐..... 평생 직장 얻은 셈이죠....
야외로케 이게 쉬운 건 아닐 텐데...
왜 주부들의 로망이 송해'라고 하잖아요.
정년 지나도 꼬박꼬박 돈 벌어오지,
거의 집에 안 들어오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노이에자이트 2013-10-27 1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 70년대 노래는 장르 불문하고 트로트 취급 받는 시대죠.이용복도 별명이 한국의 레이 찰스일 정도로 팝송을 잘 불렀는데...포크 계열 가수였고요.<줄리아>도 트로트가 아닌데...
곰발 님도 이용복 노래 좋아하나요?

곰곰생각하는발 2013-10-27 21:12   좋아요 0 | URL
아, 이용복의 줄리아'가 뽕짝은 아니군요. 가만 들어보니 하긴 뽕짝은 아니네요.
흔히 흘러간 노래하면 무조건 뽕짝 하니 그리 생각한 모양이에요.
사실 전 이용복 잘 모릅니다. 아니 거의 모릅니다.
친구가 노래방에서 불러서 이 노래만 기억합니다....

수다맨 2013-10-27 18: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부들의 로망이 송해라는 댓글에서 크게 웃었네요^^
어제 경향신문에 실린 기사를 보았는데 지상파 3사의 아이돌 뮤직프로그램 시청률을 모두 합쳐도 전국노래자랑보다 낮다고 하더군요. 곰곰발님 말씀처럼 다른 프로그램에서는 1위가 누가 될 거냐가 궁금한데, 전국노래자라은 누가 땡을 맞을 것이냐가 제일 궁금하지요. 패자의 존재를 이만큼 상큼하게 다루는 프로그램도 드문 것 같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10-27 21:11   좋아요 0 | URL
저도 주부륻의 로망이 송해라는 말 듣고 한참 웃었어요....
그런데 맍는 소리 같긴 해요. 주부들이 정년퇴임한 남편이 집에 하루종일 있으면 그게
엄청난 스트레스가 된다고 하더라고요...
차라리 날마다 등산을 다니면 더 좋다고....
송해 할아버지는 팔순이 되어도 정년퇴임 안 하시고 밖에 돌아다니시면서
돈을 버시니 좋을 것 같긴 합니다...ㅎㅎ
 

 

 

쿠루병 :

웃는 게 웃는 게 아니다 !

   

거짓 미소'는 비대칭을 이루는 경향이 있다. 미소를 억지로 지으면 한쪽만 입꼬리가 비대칭적으로 올라간다. 이처럼 가짜 감정'을 연기할 때는 표정이 비대칭적인 구도가 된다.  예를 들면 가짜-분노'에서는 왼쪽 눈썹이 더 낮게 내려가고, 가짜-혐오 표정에서는 코주름을 잡을 때 더 왼쪽으로 기울어지는 경향이 있다. 모나리자의 미소가 가짜'라는 증거는 비대칭성 이론'을 제외하더라도 눈을 보면 알 수 있다. 진짜 웃음과 미소'가 사용하는 얼굴 근육은 눈 부위 근육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진짜 미소를 관장하는 근육이 작동되면 자연스럽게 눈 근육에 영향을 준다. 반면 가짜 미소'는 입꼬리를 움직이는 근육만을 사용할 뿐이기 때문에 눈' 근육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다.  모나리자는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 김치 ~ " 하라고 요구하니,  그저 " 김치 " 라고 했을 뿐이다.

 

- 얼굴에 대하여 中

 

 

 


 

 

 

 

이명박 각하는 < 광우병 > 으로 시작해서 < 사대강' > 으로 매조지했다. 공통점은 둘 다 환경 재앙'이었다는 점과 이에 대항하기 위해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촛불을 들었다는 점이었다. 각하와 한나라가 주장하는 작전 세력 개입'은 없었다. 든든한 빽그라운드라고는 쥐뿔도 없는 시민들이 촛불을 들었을 뿐이다. 청와대는 불똥이 어디로 튈지 몰라서 전전긍긍할 뿐이었다.  고작 한다는 짓이 인왕산에 올라 아침이슬'을 부르는 것이 고작이었다. 소통'을 원했으나 돌아온 것은 불통'뿐이어서 시민들은 원통'했을 뿐이다. 각하 집권 내내 촛불을 들어야 하는 일은 많았다. 누가 나에게 이명박 정권을  4자성어'로 요약하라고 부탁한다면 " 촛불잔치 " 라고 할 것이고,  길게 늘려서 40자 트위터 논평'을 부탁한다면 " 각하보다는 허각이 대세였던 요상한 시대 " 라고 회상하거나  

 

" 각하는 상득이 하고는 놀아도 완득이 하고는 놀지 않는 로열 패밀리다운  상위 1% " 라고 비아냥거렸을 것이다.  각하의 불통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소의 꼴통'을 열어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를 알아야 했다. 막연히 미친소'라고만 외칠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그때 읽은 책이 바로 < 얼굴 없는 공포, 광우병 / 톰 켈러허 > 였다. 광우병을 이해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그 흔적을 찾아 역추적하는 것이다. 인간광우병 전에 알츠하이머'를, 미친 사슴 전에 스크래피에 걸린 양'을, 이런 식으로 역주행하다 보면 최종적으로 쿠루병'에 도착하게 된다. 톰 켈러허'는 인간 광우병을 설명하기 위해서 1950년대 파푸아 뉴기니아'에서 유행하던 쿠루병으로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는다. 몸을 부들부들 떨다가 죽는 병인데 얼굴은 항상 웃고 있는 모습이었다. 

 

흥미로운 점은 쿠루'는 주로 여성과 아이들에게 집중적으로 발병한다는 점이다. 진상 조사를 위해 포레 족 마을을 방문한 가이듀섹 박사는 죽은 환자의 뇌에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고 곧바로 역학 조사에 들어간다. 발병 원인은 충격적이었다. 식인 풍습'이었다. 쿠루 병에 걸린 여성들은 병에 걸리기 전에 무덤을 파헤쳐서 시체의 살점과 뇌를 뜯어먹었던 것이다 ! 병에 걸려서 구멍이 숭숭 뚫린 뇌'를 뜯어먹은 사람들은 그대로 전염되어 뇌 신경세포가 파괴되기 시작한 것이었다. 무시무시한, 전염병이었다.  내가 이 지점에서 흥미로웠던 부분은 왜 남성'은 쿠루에 걸리지 않았는가, 라는 점이었다. ( 혹은 남성 환자 비율이 여성에 비해 적은 규모였는가 ! 라는 점 ) 의외로 간단했다. 성인 남성들은 여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죽은 시체의 살점과 뇌를 뜯어먹을 기회가 적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깐 여성과 아이들은 사람을 먹는 기회가 많았고 성인 남성은 기회가 적었던 것이다. 이상하다, 음식 섭취량이나 폭력성을 놓고 보자면 식인 습성은 여성이나 아이'보다는 성인 남성에게서 더 많이 나타나야 한다. 그러므로 쿠루 발병 또한 여성보다는 남성이 더 많이 걸려야 이치에 맞다. 그렇지 않은가 ? 가이듀섹 박사는 쿠루병의 발병 원인'을 발견해서 노벨상'을 수상했지만 왜 사회적 약자인 여성과 아이들이 동료의 시체를 뜯어먹었는가에 대한 속 시원한 해답을 내놓지는 못했다. 단순하게  < 그들만의 은밀한 리그 > 로 치부했을 뿐이다. 쿠루 ?! 이 단어'를 어디서 본 적이 있다. 곰곰 생각해 보니, 마빈 해리스가 쓴 < 음식 문화의 수수께끼 > 에서도 쿠루'에 대한 언급을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는 쿠루'에 대해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 다른 뉴기니의 고원지대에 사는 다른 부족들과 마찬가지로 포레족의 매장의식에 따르면 죽은 사람의 여자 친척이 얕은 무덤에다가 시체를 묻도록 되어 있다. 알려지지 않는 기간이 지나면 그 여자는 뼈를 파내어 깨끗이 씻지만 그 고기는 전혀 먹지 않는다. 1920년대에는 여자들이 이 관습을 바꾸었는데 아마도 인간 동료로부터 얻을 수 있는 고기 공급이 줄어드는 것을 보상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그들은 시체를 이틀이나 사흘 뒤에 꺼내어 뼈를 발라내고 고사리와 다른 푸른 채소들을 섞어 대나무통에 넣고 요리를 하여 시체 전부를 먹기 시작했다. "

- 음식문화의수수께끼, 241

 

마빈 해리스는 포어 족 여성이 사람을 먹은 이유로 성인 남성들이 고기'를 독점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성인 남성들이 배 터지게 먹고 나서 남은 것을 먹어야 했던 여성들이 배급받은 것이라고는 뼈에 붙은 살점이 전부였다.  그래서 여성과 아이들은 결국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된 것이라는 해석이다. 결국 < 음식에 대한 불평등 배분 > 이 쿠루병이 퍼지게 된 원인이라는 것. 그는 그 증거로 포레 족 여성의 단백질 섭취량이 권장 기준에 못 미치는 56%였다는 점을 들어 자신의 주장을 합리화한다. 그런데 이 주장에는 함정이 있다. 포레 족 남성에 대한 단백질 섭취량에 대해서는 아무런 제시가 없다. 만약에 포레 족 남성의 단백질 섭취량이 권장 기준을 웃돈다면 마빈 해리스는 이 값을 가지고 동물성 단백질 섭취량의 성별 불균형을 통해서  자신이 주장이 옳다는 것을 재차 확인시켰을 것이다.

 

그런데 아무런 언급이 없는 것으로 보아 포레 족 남성 또한 신통치 않은 단백질 섭취량'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모계사회 부족이 아닌 이상은, 남성은 여성에 비해 질 좋은 고기'를 먹을 기회가 많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사냥을 하는 성인 남성들은 질 좋은 고기를 자기들끼리만 먹었고, 여성들과 아이들은 개구리나 곤충 혹은 벌레로 동물성 단백질을 보충했다. 이처럼 옛날이나 지금이나 여성과 아이들은 언제나 성인 남성에 비해 사회적 약자였다. 여성이 살아가기에는 동정 없는 세상일 뿐이다.  이제는 시대가 변해서 좀비가 아닌 이상은 고기가 먹고 싶어서 사람을 뜯어먹는 일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힘이 약한 아이들은 법적으로 보호를 받는다. 배가 난파되면 제일 먼저 구조될 대상은 여성과 아이들이다. 우리가 여성을 먼저 배려해야 하는 이유는 명백하다. 지난 세월에 대한 반성'이다.

 

그런데 < 음식에 대한 불평등 배분 > 을 < 임금 (pay )에 대한 불평등 배분 > 으로 살짝 바꾸면 시대는 달라졌지만 구조적 모순은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옛날에는 일을 한 대가로 음식을 얻었고 지금은 일을 한 대가로 품삯을 받으니, 음식과 임금은 재화라는 측면에서 동일하다고 볼 수 있다. 현대 여성은 여성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남성에 비해 70% 수준의 임금 밖에 받지 못한다. 승진에도 제약이 따른다. 여전히 불평등 배분 사회'인 것이다. 그런데 남성들은 몇몇 최상위 엘리트 직업 여성의 진입에 좌불알석'이다. ( 오타가 아니라, 좌불안석 대신 좌불알석'이 입에 짝짝 붙는다. ) 된장남'보다는 된장녀가 많고, 김치남은 없는데 김치녀는 있다. 그리고 운전 못하는 김사장은 없는데 운전 못하는 김여사는 존재한다. 이 세상은 김태희 아니면 쌍년'이고, 성공한 여성은 보슬아치'로 격하시킨다.

 

쿠루병'은 < 웃는 병 > 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는데 안면근육이 마비가 되어서 죽을 때까지 웃는 표정을 짓게 된다. 웃는 게 웃는 게 아닌 병'인데도 말이다. 묘하게 현대 직장 여성과 닮은 구석이 있다. 언제부터 여성이 직장의 꽃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미소는 여성의 마스코트가 되었다. 특히 감정 노동자인 경우는 더욱 그렇다. 사회는 여성에게 친절을 이유로 미소를 강요한다. 무뚝뚝한 남성은 무뚝뚝하다는 이유만으로도 매력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무뚝뚝한 여성은 환영받지 못한다. 남성이 무뚝뚝한 성격인 경우에는 그것이 < 성실함 > 을 말해주는 징표가 되지만 여성이 무뚝뚝한 성격일 경우에는 < 노처녀 > 로 늙어 죽을 징표로 읽는다. " 아, 씨불알 ! 남성들이여, 도대체 어쩌란 말이냐. " 그래도 웃어야 한다.  사실은 웃는 게 웃는 게 아닌 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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젯소 2013-10-24 1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페루애님 아니 곰곰발님 저에요 젯소에요
그리워서 들어와보고는 역시 즐겨찾기했어요
알라딘 블로그를 활성화시키시는
너란남자.. 지니같은 남자..

곰곰생각하는발 2013-10-24 16:47   좋아요 0 | URL
오랜만이군요. 싸랑하는 젯소 님 !
이 세상에서 가장 매력적인 여성 1위.
이 늙은이를 그립다 하시니 마음이 설레이는군요.
자주 뵙도록 합시다. 가야금 연주 함 들어야 하는데..ㅋㅋ
 
선택의 심리학 - 선택하면 반드시 후회하는 이들의 심리탐구
배리 슈워츠 지음, 형선호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5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짜장면이냐 짬뽕이냐 !

 

 

 

 

나는 친구들과 함께 그 녀석이 일하는 일터를 찾아간 적이 있다.  비록 그가 손수 만든 매운 짬뽕 때문에 내 똥구멍에서는 불이 났지만 맛은 < >좋았다. 친척이었던 중국집 사장님의 배려로 우리는 밤 늦도록 문 닫은 가게에서 술을 마셨다. 얼큰하게 취했을 무렵 그의 여자친구가 와서 함께 술을 마셨다. 친구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도 했다. 누군가가 망치질을 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고 말했다. 친구는 그 말에 몇 년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를 생각하며 눈물을 흘렸다. 한때 뽄드를 불며 007 제임스 뽄드 흉내를 내던 철없던 놈이 철이 든 것이다.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오고갔다. 오빠야 성깔이 화끈해서 좋아예, 뒤끝 없어예, 밤에는 더 화끈해예, 야광봉이라예, 캡사이신보다 더, , 더 화끈해예. 오래 쓰는 건전지라는 말에 기분이 좋아진 천맹기 씨는 마작을 하자고 했다. 내가 모른다고 하니 가르쳐주겠다고 했다. 마작을 하다가, 고스톱을 치고, 포커 게임을 했다. 술기운이 올라왔다. 나는 화장실에 가서 설사를 했다. 닝기미, 짬뽕이 너무 매웠다.

 

-  짬뽕과 딤섬 中

 

 

 

중국집에 가서 짜장면을 주문하게 되면 곧 후회를 하게 된다. " 짬뽕을 시킬걸...... "  칼칼한 짬뽕 국물 생각을 하니 짜장면은 느끼하다. 와신상담하여 다음에는 자신있게 짬뽕을 주문하게 된다. 하지만 이때에도 다시 후회하게 된다. 앞 테이블에서 후루륵 소리를 내며 짜장면을 먹고 있는 사람을 보면 짜장면이 더 맛있어 보인다. 짬뽕은 어째 그냥... 맵기만 할 뿐이다. 두 번의 선택과 두 번의 실패 ! 하지만 여기서 끝날쏘냐 ! 다시 한 번 와신상담. 실패를 교훈 삼아 다음에는 영리하게 < 짬짜면 > 을 주문한다. 잘못된 선택에 따른 기회 손실을 최소화해서 자기 만족'을 극대화하려는 심리이다. 그렇다면 짬짜면'은 탁월한 선택이었을까 ? 그렇지 않다 ! 지금 내가 먹는 음식이 짜장면 맛인지 아니면 짬뽕 맛인지 알 수가 없다. 이 맛이야말로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웃기는 짬뽕 맛이 난다. 우리는 늘 중국집에 가면 햄릿'이 되어 선택에 따른 고민을 하게 된다.

 

그렇다면 잘못된 선택에 따른 기회 손실'을 최소화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 간단하다. 짜장면만 파는 음식점이나 짬뽕만 파는 음식점을 찾으면 된다. 아니면 두 음식 가격이 최소한 2배 이상 차이가 나는 중국집에 가면 된다. 우리가 항상 짜장면이냐 아니면 짬뽕이냐 를 놓고 고민하다가 후회하게 되는 이유는 두 음식의 조건이 엇비슷하기 때문에 그렇다. 짜장면 값이면 짬뽕을 먹을 수 있고, 짬뽕 값이면 짜장면을 먹을 수 있다. 만약에 짬뽕 가격이 짜장면보다 2배 정도 비싸다면 자신이 선택한 짜장면 맛에 대하여 적어도 후회는 하지 않을 것이다. " 짬뽕이 더 맛있겠지만 대신 짜장면은 저렴하잖아...... " 짜장면을 선택한 사람은 맛을 포기하는 대신 저렴한 가격으로 배를 채웠다고 생각하며 스스로 자위를 할 것이다. 짜장면을 주문한 것은 탁월한 선택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후회할 만한 선택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만약에 선택해야 될 메뉴가 두 가지'가 아니라 백 가지'라면 어떻게 될까 ? 배리 슈워츠의 < 선택의 심리학 > 에서는 이러한 상황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 우리는 늘 선택을 원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선택을 할 때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데 우리는 살아가면서 점점 더 많이 그리고 더 자주 선택을 해야 하기 때문에 생각보다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다 (P.120) " 이처럼 선택할 수 있는 자유'는 생각보다 유쾌한 것은 아니다. 러시아 사람들이 공산주의 국가였을 때에는 자유를 갈망하다가 정작 공산주의가 붕괴되자 그 옛날을 그리워하는 이유는 바로 선택의 자유가 주는 스트레스 때문일 것이다. " 박정희 향수 " 도 마찬가지 이유로 설명할 수가 있다. 인간은 겉으로는 자유, 자유, 자유를 외치지만 한편으로는 책임에서 자유로운 구속,구속,구속을 원하기도 한다.

 

자본주의 사회가 공산주의 사회'보다 눈에 띄게 많은 것은 수많은 구두와 정신병원 그리고 연쇄살인자의 머릿수'일 것이다. 대부분의 연쇄살인자는 자본주의가 발달한 사회에서 발생한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진 통설이 아니었던가.  선택의 폭이 넓을수록 자신이 원하는 상품을 골라서 자기 만족도가 높을 것 같지만 사실은 그 반대일 수가 있다. 선택할 수 있는 폭이 넓을수록 포기해야 될 상품'도 늘어나게 된다. 검정 고무신과 흰 고무신이 있을 때에는 두 가지 가운데 하나만 선택하면 되지만,  진열장에 놓인 수많은 하이힐'은 무엇을 고를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깊게 만든다. 여기에 힐 길이도 골라야 한다. 5센티, 7센티, 10센티... 여기에 가격도 따져야 한다. 지금 당신은 백여 개 정도 되는 구두 진열장 앞에 있다. 인간이란 기본적으로 밑지고는 못 참는 손실 혐오와 이 손실 혐오를 피하기 위한 만족 극대화 심리가 작동하게 된다.

 

당신이 100 개의 구두 가운데 선택한 1 개의 구두는 역설적이게도 99개의 근심을 줄 수도 있다. 내가 선택한 A보다는 B가 더 어울리지 않았을까 ? 빨간 구두는 너무 원색적이지 않을까 ? 10% 세일을 할 때 장만한 이 가격은 과연 합당한 것일까 ? 다음날 사장이 미쳐서 90% 세일을 하게 된다면 ? 이처럼 선택의 폭이 넓으면 넓을수록 실패에 따른 우울은 깊어진다. 현대적 감각으로 말하자면 우울증은 선택과 관계가 깊다. 선택은 반드시 후회'라는 값을 치뤄야 한다. 올림픽 경기 시상대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은 동메달을 딴 선수가 아니라 은메달을 딴 선수이다. 억지가 아니다. 시상대에 오른 선수들 얼굴을 보면 알 수 있다. 2등을 한 선수는 대부분 낯빛이 어둡다. 조금 더 힘을 냈다면 금메달을 딸 수도 있었을 것이란 아쉬움이 남기 때문이다. 2등이란 결국 기회 손실에 따른 결과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높다.

 

반면 동메달을 딴 선수들은 대부분 방긋 웃는다. 자칫 잘못했으면 동메달을 놓칠 수 있었는데 운이 좋아서 이 자리에 올랐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기회 손실 혐오는 인간을 불행하게 만든다. 그렇다면 이 문제를 풀 수 있는 답은 무엇일까 ? 선택할 수 있는 폭을 최대한 줄이는 것이다. 백여 가지'나 되는 하이힐 진열장 앞에 있는 것보다는 차라리 화개장터에서 파는 고무신 가게 앞에 있는 것이 당신의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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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3-10-23 17: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간 관계에서 수평적인 관계보다는 수직적인 관계가 더 보편적인데, 그 이유가 만약 수평적인 관계가 지속적으로 유지된다면 (또는 유지하려면) 관계에서 발생되는 사안마다 협상과 조율이 필요하기 때문에, 이에 대해 에너지 소모되고, 이것을 회피하려는 인간 성향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곰곰생각하는발 2013-10-24 01:32   좋아요 0 | URL
에너지 효율성 차원에서 보면 수직적 일처리가 신속하죠. 그래서 삼성 같은 대기업은 수직성을 기업 가훈으로 받아들이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보스주의자들이잖아. 이건희 한 사람을 위한....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수평적 관계가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는 건설적이란 생각은 합니다.
요즘 검찰 돌아가는 꼴을 보면 정말 수직적 관게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고는 하빈다.

새벽 2013-10-23 17: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어제 오늘 곰곰발님 포스팅이 흥미롭고 좋습니다.
바로 이런 거죠.. 이렇게 세밀한 사람 심리, 정치 권력.. 그런 걸 주류경제학에서 받아들여야 합니다.
모델링하기 어렵다고 그런 인간 심리 저변을 도외시하고 계속 합리적 인간 운운하며 수식 그래프로 장난만 치다간 주류경제학은 영영 헛소리만 해댈겁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10-24 01:35   좋아요 0 | URL
그래프는 정말 장난입니다. 상승 곡선 부분을 확대하면 가파르게 오르는 거 같지만
역으로 하향 곡선을 그을 때 포인트를 잡아 그걸 확대하면 가파르게 내려갑니다.
어느 것에 촛점에 맞추느냐에 따라...
그걸 이용하는 사람이 마낳아요.. 주류 경제학이 상아탑 책상에 앉아서 그래프 놀이만 할 때 엉망이 되죠.
얼마전에 사당동 25인가... 란 책이 나왔는데 이 사람은 한 사람의 25년을 추척한 책이었습니다.
직접 발로 뛴 사회학자가 쓴 책이죠. 전 아직 대기중인데 곧 읽을 생각입니다. 칭찬이 자자하더라고요...

루치아 2013-10-23 2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여전하군요 페루에...
한동안 개인사정 으로 블러그에 못들어 왔었는데..궁금했습니다
잘 지내고 계시죠...??

곰곰생각하는발 2013-10-24 01:36   좋아요 0 | URL
아, 루치아 님.... 반가워요. 요즘 뭐하시나 궁금했습니다.
그넣지 않아도 조만간 모임 함 가질까 하는데
시간이 아주 많이 남으시면 내방하여 소맥 한잔 드십셔 ~

루치아 2013-10-24 0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제인지 연락주세요~~
시간 되면 나들이 함하죠^^

2013-10-24 16: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엄동 2013-10-25 1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아.
우유부단하고
선결정+후후회하는 제 성격탓인줄 알았는데
그거슨 기회손실혐오"였군요.

무언가를 선택해서 얻는 결과보다
무언가를 선택할때 빠져나가는 에너지와
이후 선택하지 않아서 받는 스트레스가 더 크니.

나이를 먹어가며
점점 넓어지는 선택의 폭과 자유는 증말
. 싫어예

2013-10-25 15: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0-25 16: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0-25 16: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0-25 17: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0-25 19: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0-26 10: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0-26 13: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즐거운 인생 2013-10-29 14: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역시 잼나게 잘 읽었어요!

곰곰생각하는발 2013-10-29 18:49   좋아요 0 | URL
어, 즐거운인생 님 오셨군요. 갑자기 샌드위치 먹고 싶네요. 딸기잼 바른 식빵먹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