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노래자랑'은 왜
이 시대의 레지스탕스가 되었나 !
미스터 방긋에게서 배운 두 번째는 바로 이용복의 노래 < 줄리아 > 였다. 어느 날 이 친구는 노래방에서 줄리아'라는 노래를 10월에 핀 코스모스처럼 한들한들 불렀다. 듣도 보도 못한 노래'였다. 물어보니 어릴 때 자기 아버지가 운전하던 차 안에서 늘 듣던 노래라는 것이다. 이용복 핫 골든 베스트 테이프' 속에 이 노래가 있어서 아버지 차를 탈 때마다 듣는다는 것이다. 친구의 노래 실력은 < 전국노래자랑'> 에 나가면 최소한 인기상'은 따논 당상'이었다. 나는 이 노래를 듣자마자 사랑에 빠졌다. 친구들에게는 라디오헤드나 모비 혹은 레드 핫 칠리 페퍼스의 노래를 즐겨 듣는다고 말은 했으나 사실은 뽕짝의 피가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 줄리엣이 아니라 줄리아 中
각하 정권 때 유행하던 것이 바로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이었다. 그 시절, 대중으로부터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오디션 프로그램은 < 슈퍼스타 K > 였다. 각하는 단 한 명의 우승자가 모든 것을 독차지하는 승자 독식 방식'은 그가 평소에 생각했던 철학과 잘 맞아떨어져서 삼성에서 무료로 제공한 벽걸이 티븨'로 이 방송을 즐겨 보고는 했다. 그에 반해 < 전국노래자랑 > 은 흥미롭지가 않았다. 대상, 최우수상, 우수상 2명, 장려상 2명, 아차상 2명, 인기상 3명 그외 기타 등등'으로 상금을 골고루 나누는 방식을 각하는 체질적으로 혐오했다. 각하는 시대가 바뀌었다고 생각했다. 쌍팔년도처럼 일 잘하는 놈이나 못하는 놈이나 모두 끌어안고 나아가는 방식'은 현대적 경영 방식과 어울리지 않는 방식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는 된 놈'하고 될 놈'만 밀어주는 것이야말로 정글 자본주의'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이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열심히 < 슈퍼스타 K > 를 시청했다고 한다. 이 대회 우승자는 모두 승승장구했다. 서인국은 배우로써 크게 성공했고, 가난한 수리공이었던 허각 또한 대중으로부터 많은 사랑을 한몸에 받아서 한때는 허각에 대한 호감도가 각하'보다 높았던 적도 있었다. 여기저기서 " 각하보다 허각 ! " 이라는 우스개'가 통인동 거리에 떠돌았다고 한다. 이 소문을 알음알음 전해 들은 각하는 " 허걱 ! " 하며 쓰린 마음을 달랬다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암암리에 전해지기도 했다. 지금은 아무도 믿을 사람이 없겠지만 그에게도 잘나가던 시절이 있었으니 그가 " 믿습니까 ? " 라고 외치면 사람들은 " 믿습니다 !!!! " 라는 말하고는 했다. 하지만 지금은 < 믿습니까 ? > 라고 물으면 < 믿습니다 ! > 라는 대답 대신에 < 밉습니다 ! > 가 되어 돌아온다. 꾀죄죄한 몰락이었다.
하지만 익명을 요구한 최측근에 의하면 각하는 지금도 " 밉습니다 ! " 를 " 믿습니다 ! " 라고 잘못 알아듣는다고 한다. 낫 놓고 기역 자'를 모를 수는 있다. 그러나 믿음과 미움'을 혼동하면 아니 되옵니다. 퇴임 후 찾아온 각하의 꾀죄죄한 몰락과 함께 < 슈퍼스타 K > 도 옛 명성을 되찾지는 못하고 추락하는 모양새'다. 몰락은 아니지만 우려할 만한 하락이 지속되었다. < 슈퍼스타K > 는 < 전국노래자랑 > 를 벤치마킹해서 현대 감각에 맞는 세련된 디자인으로 새롭게 재탄생한 오락 프로그램'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두 프로그램은 사뭇 다르다. 슈퍼스타 K 는 < 도전 > 에 방점을 찍고, 전국노래자랑은 < 참가 > 에 방점을 찍는다. 그러니깐 < 슈퍼스타 K > 에는 도전자는 있으나 참가자'는 없다. 같은 이유로 < 전국노래자랑 > 에는 참가자가 있을 뿐 도전자'는 없다.
그리고 또 하나. 전국노래자랑 참가자는 꾀꼬리 같은 노래 실력을 자랑하기 위해 무대에 오르지만 슈퍼스타K 도전자들은 노래 실력을 인증 받고 싶기 때문에 무대에 오른다. 엇비슷해 보이지만 서로 다르다. 우리는 슈퍼스타 K에서 도전자들이 “ 도전 ! ” 이라며 손을 들어 외치는 순간, 숨을 죽이고 바라보게 된다. 몰입, 그렇다 ! 이상하게도 도전'이라고 외치고 나서 노래를 하는 순간, 우리는 뚫어지게 그들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 그것은 마치 천 원짜리 지폐 다발로 만들어진 십만 원짜리 돈 묶음'을 셀 때의 몰입과 같다. 세는 도중 누가 말이라도 걸어서 방심하면 처음부터 다시 세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우리는 일요일 아침이면 송해 할아버지가 진행하는 전국노래자랑'을 몰입에 가까운 몰아의 상태로 티븨를 시청하지는 않는다.
관심을 끌기 위해서 악기들이 빰빰빠 빠라빠빠, 빠빠라빠빠 빠빠' 라며 서영춘 성대모사로 호객행위'를 해도, 시작하기도 전에 텔레비젼 앞에 질펀하게 앉아서 기다리는 열혈 관객은 없다. 똥줄이 타는 것은 순번표를 받아든 대기자들과 그 가족들뿐 ! 볼만한 구경거리가 없어서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다가 문득 얻어걸리게 되거나, 그래도 일요일 아침에는 전국노래자랑'이라며 시청하게 되는 쓸데없는 의리'와 습관적인 노스텔지어'가 작동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전국노래자랑'을 < 읍내 대항전 > 수준이라거나 슈퍼인 척하는 구멍가게'라고 놀리면 송해 할아버지'가 서운해 하신다. 조곤조곤 따지고 들어가면, 이 프로그램에는 의외의 반전이 당신을 기다린다. 하아! 이거 심오하다. 궁금하신가 ? ( 이하 슈퍼스타 K는 슈퍼로, 전국노래자랑은 전국'으로 표기하겠다. 갑자기 급 귀차니즘이 발동. )
핵심은 < 땡의 미학' > 에 있다. 슈퍼와 전국의 공통점은 땡'을 친다는 것이다. 슈퍼가 뽀다구나게 또르르르 슬롯머신 흉내를 내는 디지털 점수판으로 바뀌었어도 결국은 “ 실로폰 손으로 톡 톡 프로그램 ”의 디지털 업그레이드 버전에 지나지 않는다. 땡 없는 오디션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 어쩌면 우리는 마지막까지 억척스럽게 살아남은 1등'을 보기 위해서 < 슈퍼스타K > 를 보는 것이 아니라 누가 떨어졌나를 보기 위해서 채널을 고정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너무 시니컬한 냉소인가 ? 좋다 ! < 슈퍼스타K' > 는 아니라고 치자. 하지만 < 전국노래자랑' > 은 정말 탈락자'를 놀리기 위한 고약한 프로그램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어설프게 노래 부르다가 땡, 하는 실로폰 소리'가 들리면 얼마나 즐거웠던가 ! 우리가 전국노래자랑'을 보게 되는 이유는 최후의 1등'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땡처리 꼴등'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었던가?
" 약자를 응원해주지는 못할 망정 깔깔거리며 놀리다니, 고약한 프로그램일세 ! " 그러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 이런 걸 두고 반전이라고 하는 거다. 그래, 그거였어. ) < 슈퍼스타K > 가 승자가 주인공인 뻔한 프로그램이라면 < 전국노래자랑' > 은 패자가 주인공'인 반전이 있는 프로그램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땡처리 탈락자들은 떨어져도 수퍼스타 탈락자처럼 찌질하게 울지 않는 것이다. 왜 ? 진짜 주연 배우'는 그들이니깐 ! 그렇다, 진짜 주인공은 그들이었다. 오히려 쟈니 리의 < 뜨거운 안녕 > 을 불러서 우승을 차지한 ' 김영화 ( 목포 양포리, 자영업 36 ) 씨는 주인공이 아니라 엑스트라'에 불과했다. 주인공인 줄 알았는데 가짜였고, 진짜는 어설픈 시늉을 흉내 낸 땡처리'였던 것이다.
의외의 반전이다. 유주얼서스팩트'에 나오는 찌질한 겁쟁이 절름발이 용의자처럼, 전국노래자랑 땡처리 탈락자'는 절뚝거리며 무대에서 내려오는 순간 느닷없이 정면을 응시하며 알 듯 모를 듯한 미소를 지으며 패션모델처럼 우아하게 걷는다. 아, 아아아아아. 그렇다. 전국노래자랑'은 수많은 루저'를 위해서 존재하는 빛나는 프로그램이었던 것이다. 지하실 십오 촉 알전구 밑에서 등사기로 각하 퇴진 구호가 박힌 찌라시를 만드는 지하조직이었던 셈이다. 1등만 알아주는 더러운 세상'에게 딴지를 걸기 위해서 꼴등도 주인공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이었던 것이다. 아, 이 깊은 뜻. 곰삭은 웅숭깊은 맛 ! 샤방샤방한 노래방 전투. 총칼 대신 노래'로 전복을 꾀하는 아마츄어 땡처리 딴따라들 ! 가는 길에 영광 있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