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루병 :
웃는 게 웃는 게 아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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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 미소'는 비대칭을 이루는 경향이 있다. 미소를 억지로 지으면 한쪽만 입꼬리가 비대칭적으로 올라간다. 이처럼 가짜 감정'을 연기할 때는 표정이 비대칭적인 구도가 된다. 예를 들면 가짜-분노'에서는 왼쪽 눈썹이 더 낮게 내려가고, 가짜-혐오 표정에서는 코주름을 잡을 때 더 왼쪽으로 기울어지는 경향이 있다. 모나리자의 미소가 가짜'라는 증거는 비대칭성 이론'을 제외하더라도 눈을 보면 알 수 있다. 진짜 웃음과 미소'가 사용하는 얼굴 근육은 눈 부위 근육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진짜 미소를 관장하는 근육이 작동되면 자연스럽게 눈 근육에 영향을 준다. 반면 가짜 미소'는 입꼬리를 움직이는 근육만을 사용할 뿐이기 때문에 눈' 근육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다. 모나리자는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 김치 ~ " 하라고 요구하니, 그저 " 김치 " 라고 했을 뿐이다.
- 얼굴에 대하여 中
이명박 각하는 < 광우병 > 으로 시작해서 < 사대강' > 으로 매조지했다. 공통점은 둘 다 환경 재앙'이었다는 점과 이에 대항하기 위해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촛불을 들었다는 점이었다. 각하와 한나라가 주장하는 작전 세력 개입'은 없었다. 든든한 빽그라운드라고는 쥐뿔도 없는 시민들이 촛불을 들었을 뿐이다. 청와대는 불똥이 어디로 튈지 몰라서 전전긍긍할 뿐이었다. 고작 한다는 짓이 인왕산에 올라 아침이슬'을 부르는 것이 고작이었다. 소통'을 원했으나 돌아온 것은 불통'뿐이어서 시민들은 원통'했을 뿐이다. 각하 집권 내내 촛불을 들어야 하는 일은 많았다. 누가 나에게 이명박 정권을 4자성어'로 요약하라고 부탁한다면 " 촛불잔치 " 라고 할 것이고, 길게 늘려서 40자 트위터 논평'을 부탁한다면 " 각하보다는 허각이 대세였던 요상한 시대 " 라고 회상하거나
" 각하는 상득이 하고는 놀아도 완득이 하고는 놀지 않는 로열 패밀리다운 상위 1% " 라고 비아냥거렸을 것이다. 각하의 불통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소의 꼴통'을 열어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를 알아야 했다. 막연히 미친소'라고만 외칠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그때 읽은 책이 바로 < 얼굴 없는 공포, 광우병 / 톰 켈러허 > 였다. 광우병을 이해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그 흔적을 찾아 역추적하는 것이다. 인간광우병 전에 알츠하이머'를, 미친 사슴 전에 스크래피에 걸린 양'을, 이런 식으로 역주행하다 보면 최종적으로 쿠루병'에 도착하게 된다. 톰 켈러허'는 인간 광우병을 설명하기 위해서 1950년대 파푸아 뉴기니아'에서 유행하던 쿠루병으로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는다. 몸을 부들부들 떨다가 죽는 병인데 얼굴은 항상 웃고 있는 모습이었다.
흥미로운 점은 쿠루'는 주로 여성과 아이들에게 집중적으로 발병한다는 점이다. 진상 조사를 위해 포레 족 마을을 방문한 가이듀섹 박사는 죽은 환자의 뇌에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고 곧바로 역학 조사에 들어간다. 발병 원인은 충격적이었다. 식인 풍습'이었다. 쿠루 병에 걸린 여성들은 병에 걸리기 전에 무덤을 파헤쳐서 시체의 살점과 뇌를 뜯어먹었던 것이다 ! 병에 걸려서 구멍이 숭숭 뚫린 뇌'를 뜯어먹은 사람들은 그대로 전염되어 뇌 신경세포가 파괴되기 시작한 것이었다. 무시무시한, 전염병이었다. 내가 이 지점에서 흥미로웠던 부분은 왜 남성'은 쿠루에 걸리지 않았는가, 라는 점이었다. ( 혹은 남성 환자 비율이 여성에 비해 적은 규모였는가 ! 라는 점 ) 의외로 간단했다. 성인 남성들은 여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죽은 시체의 살점과 뇌를 뜯어먹을 기회가 적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깐 여성과 아이들은 사람을 먹는 기회가 많았고 성인 남성은 기회가 적었던 것이다. 이상하다, 음식 섭취량이나 폭력성을 놓고 보자면 식인 습성은 여성이나 아이'보다는 성인 남성에게서 더 많이 나타나야 한다. 그러므로 쿠루 발병 또한 여성보다는 남성이 더 많이 걸려야 이치에 맞다. 그렇지 않은가 ? 가이듀섹 박사는 쿠루병의 발병 원인'을 발견해서 노벨상'을 수상했지만 왜 사회적 약자인 여성과 아이들이 동료의 시체를 뜯어먹었는가에 대한 속 시원한 해답을 내놓지는 못했다. 단순하게 < 그들만의 은밀한 리그 > 로 치부했을 뿐이다. 쿠루 ?! 이 단어'를 어디서 본 적이 있다. 곰곰 생각해 보니, 마빈 해리스가 쓴 < 음식 문화의 수수께끼 > 에서도 쿠루'에 대한 언급을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는 쿠루'에 대해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 다른 뉴기니의 고원지대에 사는 다른 부족들과 마찬가지로 포레족의 매장의식에 따르면 죽은 사람의 여자 친척이 얕은 무덤에다가 시체를 묻도록 되어 있다. 알려지지 않는 기간이 지나면 그 여자는 뼈를 파내어 깨끗이 씻지만 그 고기는 전혀 먹지 않는다. 1920년대에는 여자들이 이 관습을 바꾸었는데 아마도 인간 동료로부터 얻을 수 있는 고기 공급이 줄어드는 것을 보상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그들은 시체를 이틀이나 사흘 뒤에 꺼내어 뼈를 발라내고 고사리와 다른 푸른 채소들을 섞어 대나무통에 넣고 요리를 하여 시체 전부를 먹기 시작했다. "
- 음식문화의수수께끼, 241
마빈 해리스는 포어 족 여성이 사람을 먹은 이유로 성인 남성들이 고기'를 독점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성인 남성들이 배 터지게 먹고 나서 남은 것을 먹어야 했던 여성들이 배급받은 것이라고는 뼈에 붙은 살점이 전부였다. 그래서 여성과 아이들은 결국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된 것이라는 해석이다. 결국 < 음식에 대한 불평등 배분 > 이 쿠루병이 퍼지게 된 원인이라는 것. 그는 그 증거로 포레 족 여성의 단백질 섭취량이 권장 기준에 못 미치는 56%였다는 점을 들어 자신의 주장을 합리화한다. 그런데 이 주장에는 함정이 있다. 포레 족 남성에 대한 단백질 섭취량에 대해서는 아무런 제시가 없다. 만약에 포레 족 남성의 단백질 섭취량이 권장 기준을 웃돈다면 마빈 해리스는 이 값을 가지고 동물성 단백질 섭취량의 성별 불균형을 통해서 자신이 주장이 옳다는 것을 재차 확인시켰을 것이다.
그런데 아무런 언급이 없는 것으로 보아 포레 족 남성 또한 신통치 않은 단백질 섭취량'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모계사회 부족이 아닌 이상은, 남성은 여성에 비해 질 좋은 고기'를 먹을 기회가 많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사냥을 하는 성인 남성들은 질 좋은 고기를 자기들끼리만 먹었고, 여성들과 아이들은 개구리나 곤충 혹은 벌레로 동물성 단백질을 보충했다. 이처럼 옛날이나 지금이나 여성과 아이들은 언제나 성인 남성에 비해 사회적 약자였다. 여성이 살아가기에는 동정 없는 세상일 뿐이다. 이제는 시대가 변해서 좀비가 아닌 이상은 고기가 먹고 싶어서 사람을 뜯어먹는 일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힘이 약한 아이들은 법적으로 보호를 받는다. 배가 난파되면 제일 먼저 구조될 대상은 여성과 아이들이다. 우리가 여성을 먼저 배려해야 하는 이유는 명백하다. 지난 세월에 대한 반성'이다.
그런데 < 음식에 대한 불평등 배분 > 을 < 임금 (pay )에 대한 불평등 배분 > 으로 살짝 바꾸면 시대는 달라졌지만 구조적 모순은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옛날에는 일을 한 대가로 음식을 얻었고 지금은 일을 한 대가로 품삯을 받으니, 음식과 임금은 재화라는 측면에서 동일하다고 볼 수 있다. 현대 여성은 여성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남성에 비해 70% 수준의 임금 밖에 받지 못한다. 승진에도 제약이 따른다. 여전히 불평등 배분 사회'인 것이다. 그런데 남성들은 몇몇 최상위 엘리트 직업 여성의 진입에 좌불알석'이다. ( 오타가 아니라, 좌불안석 대신 좌불알석'이 입에 짝짝 붙는다. ) 된장남'보다는 된장녀가 많고, 김치남은 없는데 김치녀는 있다. 그리고 운전 못하는 김사장은 없는데 운전 못하는 김여사는 존재한다. 이 세상은 김태희 아니면 쌍년'이고, 성공한 여성은 보슬아치'로 격하시킨다.
쿠루병'은 < 웃는 병 > 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는데 안면근육이 마비가 되어서 죽을 때까지 웃는 표정을 짓게 된다. 웃는 게 웃는 게 아닌 병'인데도 말이다. 묘하게 현대 직장 여성과 닮은 구석이 있다. 언제부터 여성이 직장의 꽃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미소는 여성의 마스코트가 되었다. 특히 감정 노동자인 경우는 더욱 그렇다. 사회는 여성에게 친절을 이유로 미소를 강요한다. 무뚝뚝한 남성은 무뚝뚝하다는 이유만으로도 매력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무뚝뚝한 여성은 환영받지 못한다. 남성이 무뚝뚝한 성격인 경우에는 그것이 < 성실함 > 을 말해주는 징표가 되지만 여성이 무뚝뚝한 성격일 경우에는 < 노처녀 > 로 늙어 죽을 징표로 읽는다. " 아, 씨불알 ! 남성들이여, 도대체 어쩌란 말이냐. " 그래도 웃어야 한다. 사실은 웃는 게 웃는 게 아닌 데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