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밑 작업
가을에서 겨울로 계절이 바뀌는 시절이 오면, 나무는 모든 걸 내려놓는다. 한여름 울울했던 삼림의 기억'은 묻어 둔 채 추운 겨울을 맞이하기 위해서 나무는 옷을 벗어 벌거숭이'가 된다. 이 혹한의 겨울'을 견딜 수 있을까 ? 모두가 겨울잠을 잘 때 나무는 홀로 깨어서 황홀했던 여름 한때를 기억한다. 잊지 않기 위해서, 나무는 깨어 있는 것이다. 날카로운 촉보다 매서운 바람이 기생충보다 깊이 몸속을 파고들 때에도 나무는 오직 여름'만을 기억한다. 이파리 돋고 꽃 필 때까지 깨어 있으라, 다시 만나기 위해서 깨어 있으라. 나는 앙상한 것(들)을 사랑했다. 겨울나무와 섹스가 끝난 후 깃털처럼 가볍게 졸고 있는 애인의 마른 어깨를 사랑했다.
- 가을에서 겨울 中
리명박 각하께서 < 국민과의 대화 > 에서 로봇물고기'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었다. 사대강 수질 관리용 로봇 물고기'를 개발하여 한강'을 비롯한 대운하가 지나는 물길'에 로봇 물고기'를 풀어 넣겠다는 야심찬 계획이었다. 로봇의 임무는 수중 생태계 감시, 오염원 추적, 보호어종 감시'였다. 노무현이 집권 초기에 진행한 토크쇼 < 검사와의 대화 > 는 검사들이 개겨서 노무현이 이 정도면 막가자는 거지요 ? 라고 할 정도로 우중충하게 끝났지만 이명박이 진행한 토크쇼 < 국민과의 대화 > 는 처음부터 끝까지 화기애애했다. 각하가 내세운 비전에 의하면 하늘엔 조각구름 떠 있고, 강물에 유람선이 떠 있고, 강속엔 로봇 물고기가 떠 있는 구상이었다. 아아... 아름다운 우리 조국이로구나. 청사진은 화려했고 딴지를 거는 사람은 없었다. 각본대로 짜맞춘 티가 났다. 내 눈에는 이 화기'가 애애'하기보다는 애매'했다. ( 각하의 청사진이 뻥이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조각구름은커녕 뜬구름 잡는 소리가 팔 할이었고, 강물에는 유람선 대신에 굴착기로 강바닥이나 긁었으며, 강속에 녹조만 가득했다. )
그리고 얼마 후 청와대로부터 아름다운 미담이 흘러나왔고, 언론은 받아쓰기'를 했다. 리명박 각하'께서 강에 띄울 로봇 물고기의 크기가 크면 작은 어류들이 놀랄 테니 사이즈'를 줄이라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참모진들이 기술적인 이유를 들어 난색을 표하자, 리명박은 정색을 하며 각 기능별로 나누어 분리하면 크기'를 줄일 수 있지 않느냐며, 크기를 줄일 것을 요구했다는 내용이 담긴 미담'이었다. 쉽게 말해서, 다랑어 크기의 1인 로봇피쉬 감시체계에서 벗어나 연어급 5인 1조 편대유영'으로 감시하겠다는 발상이다. 이 미담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분명했다. " 대통령은 세심'하고 참모는 소심'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둘 다 한심'했다. 아, 이 촌스러운 손장난. 습관적인 자기 만족. 리버-월드'를 군대식 사열'로 재편하겠다는 놀라운 발상'에 난 두 손 두 발 다 든 적이 있다. " 니미럴, 물고기'가 기러기냐 ? 편대유영으로 돌진하게 ? 하여튼, 낚시하다가 내 눈에 띄면 밟아버린다. "
그런데 밟아버리기 전'에 한 가지 자문을 구하고 싶었다. 이 행위'가 범죄'라면 불법 수렵 채취에 의거한 민법 조항입니까? 아니면 군 시설 파괴 행위에 따른 군법 조항입니까 ? 당시에 거론되었던 물고기 5인조 편대 유영론'은 맨땅에 헤딩하는 꼴이나 다름없었다. ‘로봇 플랫폼 설계 제작’ ‘자율 유영 충전기술’ ‘수중 유영기술’ ‘수중 위치인식 및 통신기술’과 같은 원천 기술이 전무한 마당에 무슨 수중로봇 상용화'인가 말이다. 그것은 마치 인공위성을 쏘아올린 적도 없는 세력이 스타워즈 전략 운운하는 꼴과 다르지 않았다. 각하와 청와대'가 가지고 있는 초일류 원천기술이라고는 < 물밑 작업 > 이 유일했다. 유감스럽게도 이 물밑 작업은 그 물밑 작업이 아니었다. 물밑에서 해야 할 일을 뭍 위에서 하면 치사한 모략과 더러운 술책이 되는 법이다. 결국 리명박 4대강 SF 판타지아'는 말 그대로 판타지'에 불과했던 것으로 끝났다. 한 남자의 에스에프적 상상력'은 결국 환경 재앙으로 이어졌으니 강물은 악취를 풍기며 썩어가기 시작했다.
각하가 입만 열었다 하면 튀어나왔던 < 녹색 성장' > 은 알고 보니 < 녹조 현상 > 이었다. 물길을 막으면 유속이 느려지니 녹조가 발생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느리게 흐르는 물은 섞는다, 라는 상식은 환경 전문가'가 아니더라고 쉽게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사대강 정비 사업'이 홍수를 예방하기 위한 치수 정화'였다는 말도 새빨간 거짓말에 속한다. 강바닥을 파서 물을 담는 그릇을 넓히는 작업'은 수위를 높일 뿐이지 홍수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1리터 용량인 수조를 2리터 용량인 수조로 바꿨다고 해서 수조'에 물이 가득 차 있다면 효과가 없다. 물이 가득 찬 수조는 1리터 용량이나 2리터 용량이나 빗물을 받아 저장할 수 없다. 홍수 예방 효과를 얻기 위해서는 강물을 비워야 하는데 비우기는커녕 고여서 수위만 높아졌을 뿐이다. 대부분의 홍수 피해는 강이 범람하기 때문이 아니라 물이 빠질 수 있는 하수 시설이 제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하게 된다.
각하가 치수 정책에 신경을 썼다면 강바닥을 건드리는 것보다는 하수공사에 신경을 썼어야 옳다. 사대강 사업은 치수정책에서도 재앙이었고, 정화 사업 측면에서도 재앙이었다. 이래저래 걷잡을 수 없는 환경 재앙이었다. 하물며 환경과 생태 전문가'들은 이 위험성'을 일반인이 생각하는 우려보다 더욱 심각하게 받아들였을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각하 정권 때 국토해양부 4대강살리기추진본부 환경부본부장' 자리에 오른 인물은 차윤정'이라는 사람이었다. 혹시 그 사람 ?! 혹시는 역시나 였다. < 신갈나무투쟁기 > 로 환경 분야에서 명저로 이름을 날린 저자와 같은 사람'이었다. 개인적으로 이 책은 생태 환경을 다룬 < 현산어보를 찾아서 > , < 개미제국의 발견 > 과 더불어 가장 아끼는 책'이었다. 이 책을 읽고 나서부터 나무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기 시작한 나로써는 차윤정의 선택을 이해할 수 없었다. 최근에 " 4대강복원범국민대책위원회 " 가 이명박 전 대통령을 비롯한 4대강 사업 추진세력을 검찰에 고발키로 했는데,
4대강범대위'가 선정한 스페셜 급 찬동인사에는 이명박 전 대통령을 비롯해 권도엽 전 국토해양부 장관, 김건호 한국수자원공사 사장, 심명필 전 4대강 추진본부장, 박석순 국립환경과학원 원장, 박재광 미국 위스콘신대 교수, 이만의 전 환경부 장관, 이재오 새누리당 국회의원, 정종환 전 국토해양부 장관 그리고 차윤정 전 4대강 추진본부 환경부본부장'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녀는 환경부본부장을 임명받기 전에 한국일보 칼럼'에 이런 글을 기고하셨다고 한다. ‘흐르는 강물처럼’이라는 글에서 사대강 발상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한강 유역에 사는 식물종만 해도 대략 700여종, 수서곤충은 100여종, 민물고기 50여종, 그리고 새도 50여종이나 된다. 그러나 우리가 기술하는 강의 정보란 여울, 소(沼), 습지, 연못, 수충부, 모래 톳, 수로, 유속, 유량 등 많아야 20개 정도다. 그나마 이 속성들 사이의 생태적 관계는 미처 파악하지 않았을 뿐더러 통합적으로 논의하지도 않는다"며
한국일보 2009.10.11 사설 칼럼, 차윤정 < 흐르는 강물처럼 > 전문 ▼
약 4,700년 전 바빌로니아의 도시국가 우룩(Uruk)을 지배하고 있던 길가메시(Gilgamesh)는 제국을 건설하기 위해 남부 메소포타미아의 광활한 숲을 개간하기를 원했다. '숲으로의 여정(The Forest Journey)'으로 알려진 '길가메시 대서사시(Epic of Gilgamesh)'는 그가 숲을 점령해나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러나 문자로 기록된 인류 최초의 영웅 서사시에는 불행히도 인류를 향한 오랜 생태적 저주가 담겨 있다.
길가메시 이전에 한번도 인간이 들어가 본 적이 없는 어둡고 신성한 숲은 수메르의 신 엔릴(Enlil)이 지키고 있었다. 병사들은 이 신성한 정령들의 숲에 들어가기를 꺼렸으나 길가메시는 죽음으로 위협하며 병사들을 숲 안으로 내몰았다. 수많은 병사가 숲과의 싸움으로 목숨을 잃었으나 결국 숲은 인간에게 길과 대지를 내주었다. 이때 죽음에 임박한 엔릴은 길가메시와 그의 군대에게 다음과 같은 저주를 내린다.
'너희가 먹는 음식, 너희가 마시는 물 모두 불이 삼키리라 (May the food you eat be eaten by fire; may the water you drink be drunk by fire)'
지금의 이라크를 포함한 중동지역의 사막이나 준사막 지역은 아직까지 고대의 저주에 걸려있어 그 속의 인간은 고통스럽다. 우리에게 이런 저주의 역사가 전해지지 않았음이 얼마나 다행인지. 국토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산을 엎어 경작지를 만들고 도시를 만들어 짧은 혜택을 누릴 수 있었겠지만, 도전과 개척 정신이 부족했다는 비난이 있을지라도 지금의 남겨진 자연유산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오랜만에 김포공항을 나가기 위해 강을 따라 도로를 내달린다. 막 가을로 접어드는 유유한 강물과 강변의 사람들이 평화롭다. 늘어진 나무들과 가벼워진 갈대이삭들이 더 없이 사랑스러운 거대 도시의 한 조각. 서울, 너는 정말 아름다운 강을 가지고 있었구나.
산이 정적이라면 강은 동적이다. 물이 휘몰아치는 굽이에는 너른 모래 톳을 만들어 힘을 흩어버리고 땅을 파고드는 곳에서는 자갈을 쌓아 상처를 보듬는다. 강은 스스로를 통제하기 위해 이리저리 몸을 비틀어 지상에는 역동적이고 아름다운 선이 만들어진다. 그 구비마다 수많은 생물이 틈을 메우며 생존하다. 그 안에 사람도 있다.
한강 유역에 사는 식물종만 해도 대략 700여종, 수서곤충은 100여종, 민물고기 50여종, 그리고 새도 50여종이나 된다. 그러나 우리가 기술하는 강의 정보란 여울, 소(沼), 습지, 연못, 수충부, 모래 톳, 수로, 유속, 유량 등 많아야 20개 정도다. 그나마 이 속성들 사이의 생태적 관계는 미처 파악하지 않았을 뿐더러 통합적으로 논의하지도 않는다. 이제 강을 수로와 수심과 수변으로만 다듬는 '사업'을 한다고 예산까지 구체화하였다. 뭘 어떻게 해서 자연의 이름다운 강보다 더 아름다운 강을 만든단 말인가.
작은 샘에서 시작되는 강의 긴 여정과 그 여정이 다듬어 왔던 생물과 풍광의 역사가 어찌 4,700년보다 짧을까. 강의 의미가 단순히 사람의 풍광만으로 정의될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겠다. 그러나 강은 산보다 더 정교하고 엄격한 자연이요, 환경이다. 산의 파괴가 그토록 오랜 시간 저주를 풀지 않는데, 정복당한 물이 내릴 저주란 얼마나 끔찍할지, 좀 더 심각한 고민이 필요하지 않을까. 자연은 투자의 대상이 아니라 보호의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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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강을 수로와 수심과 수변으로만 다듬는 '사업'을 한다고 예산까지 구체화하였다. 뭘 어떻게 해서 자연의 아름다운 강보다 더 아름다운 강을 만든단 말인가" 라고 했던 그녀가 연봉 7천만 원짜리 1급 공무원이 되고 나서 한다는 소리가 늙은 강'을 젊은 강으로 복원하자, 였다. 내 귀를 의심했다. 어떻게 자연을 늙은 것과 젊은 것'으로 정의내릴 수 있으며, 설상가상 신이 선사한 자연'을 늙었으니 바꿉시다, 라고 주장할 수 있을까 ? 차윤정은 칼럼'에서 서울의 한강을 바라보며 " 너는 정말 아름다운 강 " 이라고 하던 찬탄은 관직을 얻자마자 " 늙은 강 " 이라는 탄식으로 바뀐다. 그사이 차윤정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 오염된 강은 있을 수 있어도 늙은 강'은 존재하지 않는다. 환경 생태학자'가 할 소리가 아니다. 밥벌이를 위해서 동태찌개와 생태찌개'를 팔 수는 있어도,
밥벌이를 위해서 숨탄것이 살아가야 하는 생태(지식')을 팔아서 관직을 얻는 것은 곤란하지 않을까 ? 잘못된 행정 결정은 단순히 전봇대'를 뽑으면 되돌릴 수 있지만 잘못된 환경 정책 결정은 숨탄것들에게는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재앙이 된다. < 땅 > 이 몸이라면 < 강 > 은 핏줄이자 젖줄이다. 강이 죽으면 숲도 죽는다. 숲에 대해 해박한 학자'가 그 사실을 모를 리 없다. 정복당한 물이 내릴 저주를 두려워했던 저자'가 물을 정복하기 위한 환경 재앙 사업에 앞장섰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