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방지는 조선 세조 때 인물로서 남성의 성기를 가지고 있으면서 상체는 여성 성을 띄고 있던 인물입니다. 그에 대한 기록은 <<패관잡기>>와 <<필원잡기>>에 상세합니다. 어숙권의 <<패관잡기>>에 의하면, 사방지는 천민으로서 어려서부터 부모가 여자의 옷을 입히고 바느질을 시켰는데, 장성하여서는 사대부 집에 드나들며 여종들과 함께 자는 일이 많았다. 진사 김구석의 아내 이씨는 과부로 있으면서 사방지에게 바느질을 시키며 밤낮으로 10여 년을 함께 거처하였다. 이 사실을 들은 사헌부에서는 1463년(세조9) 봄에 그를 국문하였는데, 확인해 보니 남경(男莖)이 매우 장대하였다고 한다. 이를 두고 세조는 웃으며 이씨의 아비인 판부사 이순지(李純之)의 가문을 더럽힐 염려가 있으니 따지지 말고 사방지를 이순지에게 넘겨 주어 처리하게 하였다. 이에 이순지는 곤장 10여 대만을 때리고 사방지를 경기도 내의 종으로 보내었다. 그러나 이순지가 죽고 이씨가 사방지와 다시 놀아나자 국왕 세조는 그를 신창현으로 귀양보내었다. 어숙권은 사방지를 두고 본인이 본 양성을 가진 암말을 떠올리며, 그 암말은 암·숫말과 정을 통하지 않는데 사방지는 여자와 정을 통하였으니 말보다 심한 자라 평했다. 그리고 양성인이라는 말은 사방지로부터 비롯되었다고 하였다. 한편, 서거정의 <<필원잡기>>에 의하면 국왕 세조가 사방지의 처리에 관해 서거정에게 물었다 한다. 이에 서거정은 <<강호기문>>이라는 책에서 어떤 양성인을 人道의 바른 것을 더럽힌 자라며 죽였던 일을 들어 처벌하기를 청하였으나, 세조는 억지로 일을 밝히지 말라고 명하였다 한다.

 

http://blog.aladin.co.kr/749915104/6586287 

 

- 욕망을 삼킨 말들, 네이버' 인물 사전에서 발췌 재인용

 

 

 

 


 

 

 

 

 

 

 

 

모임 후기. 

 

 

 

 

 

 

내 가족은 꽤나 독특한 구석이 있다. 어떻게 보면 쿨한 것이고 달리 보면 콩(가루 집안)'이라고 흉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좋게 좋게 생각하련다. 나는 군대 가기 3일 전에 아침 밥상에서 식구들에게 3일 후에 군대 간다고 알렸다. 식구들 반응은 무덤덤하게 " 어, 그래 ? 잘 다녀와 ! " 였다. 내 동생은 몇 년 전 차를 몰다가 차가 전복되어서 한 달 넘게 병원에 누워 있었으나 우리가 그 사실을 안 것은 3년이 지나서였다. 동생이 그 사실을 알리지 않은 까닭이다. 이유는 감동적이다. 가족들이 걱정할까  봐서 였다. 이러한 무심의 극치'는 모두 어머니에게서 배웠다. 2년 전에는 어머니에게 전화를 했더니 병원이란다. 수술 들어가기 1시간 전이란다. 화들짝 놀라서 물어보니 그냥 점 빼는 수준이란다. 하지만 거짓말이었다. 전신 마취를 해야 하는 수술이었으니 말이다. 어머니가 한 말도 동생이 한 말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 호들갑 떨 필요 없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 쿨 > 이고, 어찌 보면 < 콩 > 이다.

 

아슬아슬한 경계'다. 쿨이든 콩이든, 나는 이 무관심'이 좋다. 끈덕지게 달라붙어서 껌보다 끈끈하게 달라붙는 가족 혈맹에 대한 체질적 혐오를 가지고 있는 나는 이 적당한 무관심이 마음에 든다. 하지만 당신이 생각하는 것만큼 조용한 가족은 아니다. 일 년에 한두 번은 온가족이 모여서 꼭 가족 여행'을 떠난다. 가서 제대로 노느냐면 그것도 아니다. 가족은 물가 근처에서 고기를 구으며 물에 발을 담그는 짓을 한심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팬션 주인이 야외 바베큐 파티를 할 수 있도록 숯불을 준비한다고 해도 한사코 반대를 한다. 밖에서 고기 구우면 모기에게 물려요. 호호호. 가족은 팬션 안에서 고기를 구워먹고 강으로 가서 발을 담근다. 식구들은 각자 다른 가족이 물놀이 하는 것을 재미있게 볼 뿐 물속으로 들어가 놀 생각은 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저 구경만 할 뿐이다.

 

각자 살아가는 거'다. 별 볼 일 없는 집안이지만 딱히 불행하게 산 것 같지는 않다. 내가 직장을 때려치우고 한방에 대박날 소설을 쓰겠다고 했을 때에도 가족은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알아서 해라, 였다. 내 꿈은 백세주가 되는 것이었다. 내가 쓴 소설이 100쇄'를 찍는 것. 뭐, 지금은 가족'이 하는 가게에서 카운터나 보는 신세가 되었으나 별 볼 일 없는 인생에서 미끄러져 보았자 별 볼 일 없는 인생이니 그리 낙담할 처지도 아니었다. 작은 키에 얼굴만 커서 텔레토비 체형을 가지고 있으니 얼굴값도 못한다는 소리를 듣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찌질한 놈이다. 그 사실을 부정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어렸을 때는 정신병원에 들락날락거렸고, 한때는 여자의 촉촉하고 검은 동굴이 좋아서 하루에도 수차례 동굴 속을 들락날락거린 적도 있다.

 

또 언젠가는 치질에 걸린 나머지 억울하고 분통해서 자살 소동을 벌인 적도 있다. 하지만 나는 이 잉여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안도현이 말한다.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말라고. 너는 누구에게 단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으냐고 말이다. 내 비루한 잉여짓'은 누군가에게 희망을 준다. 당신이 행복한 이유는 내가 불행하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들이 행복하면 행복한 사람은 존재할 수 없다. 행복이란 불행이라는 녀석의 피를 쪽쪽 빨아서 생긴 결과이다. 불행한 자가 있으니 행복한 자가 태어나는 것이다. 천국은 행복이 가득한 곳이 아니라 행복한 인간 자체가 아예 없는 곳이다. 천국에 입주한 사람 중에 불행한 사람이 있을까 ? 아무도 없다. 하지만 불행한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은 역설적이게도 천국에는 행복한 사람도 없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예수는 화평을 주러 세상에 오셨지만  나는 만민에게 행복을 주기 위해 이 땅에 왔다. 피똥을 싸서 타인의 항문을 7년 동안 보아온 의사에게 내 항문을 보여준 적이 있으며, 작은 키에 얼굴만 큰 텔레토비가 되었고, 별 볼 일 없는 집에서 태어났다.

 

내가 천문학자가 되지 못했던 이유는 별 볼 일 없는 인생'이었기 때문이다. 이 글은 자기 비하'가 아니다. 당신을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서 내 몸을 태우고 있는 것일 뿐이다. 당신이 불행하다고 생각할 때마다 이 글을 떠올리며 용기를 얻기 바란다. " 곰곰생각하는발도 사는데 내가 못 살쏘냐 ! " 웃으면서 코 파도 좋다. 혹은 어색하면 코 파다가 웃어도 좋다. 개인적 취향으로는 코 파면서 웃는 게 좀더 엘리강스하며 로코코적'이다. 어제는 모임이 있었다. 술주정뱅이가 하는 짓은 만국이 다 똑같다. 술 마실 건덕지'를 만드는 것. 11월 22일은 절기상 소설이니 눈이 올지도 모른다고 속여서 5명을 모았다. 기타리스트 줄봉, 제2의 황장수를 꿈꾸는 중년남자, 세상의 모든 요리'를 가장 저렴한 가격으로 만들고 싶은, 마스터 쉐프가 아닌 마르크스 쉐프 타, 시니컬한 냉소주의자 편린 그리고 곰곰생각하는발 팬클럽 총무인 달빛가루'가 모였다.

 

달빛가루는 자신이 내 몸을 만지는 행위가 성추행이란 사실을 잘 모르는 것 같았다. 그는 여전히 내 옆에 붙어서 나를 계속 만졌으나 딱히 화를 내거나 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모임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따스한 연탄이 되기로 했으니 말이다. 질투 때문이었을까 ? 달빛가루의 스킨십을 지켜보던 편린이 한마디했다. 너무 고상해서 만질 엄두를 내지 못했는데 달빛가루가 자신이 흠모하던 우상을 너무 쉽게 조물딱거리니 화딱지가 난 것이리라. 하여튼 이 자리를 빌어 달빛가루에게 한마디하련다. " 달빛가루 님, 다음에 만나면 내 몸은 만지지 말아 주세요. 부탁입니다. 내가 아무리 탐스러운 과일처럼 먹고 싶어도 참으셔야 합니다. 사람에게는 사회적 거리가 있고 개인적 거리가 있습니다. 동의 없이 그 거리 안으로 들어오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입니다. 미술관에 가 보셨나요 ? 늘 이런 경고가 있죠. 손으로 만지지 말고 눈으로만 보아주세요. 마찬가지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이란 그림을 감상하기 위해서는 손으로 만지지 말고 눈으로만 보아주세요. " 아, 달빛가루가 여자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 그가 여자였다면 그 주점에서 빤스까지 내릴 용의도 있었다. 하여튼 술자리는 2차까지 이어졌고 자정 즈음에 각자 헤어졌다.

 

가는 길에 갑자기 줄봉이 기타 연주를 들려주고 싶다고 해서 그의 집으로 가서 연주를 들었다. 술에 취한 그는 연신 박자를 놓쳤다. 그는 자신이 만든 곡이라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 사랑한다는 그 말 / 차마 하지 못한 말 / 당신의 그윽한 눈동자와 / 낮은 목소리를 사랑하게 되었네 / 길게 땋은 머리 찰랑거리며 / 눈 감았다 천천히 뜨면 / 왜 내 페니스는 발기하는 것일까 / 한 남자가 한 남자를 사랑했네. " 나는 그가 자신이 만든 곡을 핑계로 내게 세레나데를 불렀다는 사실을 눈치챘지만 모른 척했다. 그는 큰 키에 잘생긴 얼굴을 가졌고 음악적 재능이 뛰어난 뮤지션이었으나 결정적으로 말주변이 떨어졌다. 어쩌는 그는 내가 쏟아내는 나릇나릇한 말에 사랑에 빠졌는지도 모른다. 그가 자고 가라고 했으나 밤새 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거절했다. " 줄봉님, 나 아무에게 막 주는 남자 아니야. " 마성의 게이로 산다는 것은 정말 피곤한 일'이었다. 여자들은 안 꼬이고 남자들만 꼬이니 내 매력은 지나가는 민들레에게나 줘야 할 판이었다. 사실 오쉬프가 내게 접근한 이유는 내 인기 때문이었다. 내 블로그엔 여성이 팔 할이니 내 모임에 참석하면 매력있는 여성들이 구더기처럼 바글바글거릴 것이라 지레짐작'을 한 모양이었다.

 

꼬이긴 꼬인다. 유감스럽게도 남자만 꼬인다. 오쉬프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몇 번을 더 참석했으나 결과는 금녀모임'이었다. 그는 결국 폭발해서 이번 모임에는 참석하지 않았다. 그는 스스로를 무성의 존재'라며 여자들을 안심시키지만 사실은 위장술이다. 그는 아귀와 같은 인간이었다. 먹이인 줄 알고 접근했다가는 먹이가 아니라 아귀의 촉수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는 호시탐탐 여자를 노리는 남자'다.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은 나를 < 마징가 > 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 마성의 짐승남 게이 " 를 줄인 말이었다. 그래서 오늘부터는 < 사방지 > 가 되기로 했다. 사람 놀리는 재미에 인생을 건 미술가 나탈야'가 c컵 가슴이 달렸으나 아랫도리는 거시기한 캐릭터를 만들어준다고 하니 기대를 해도 좋을 것 같다. 그는 나를 놀릴 생각이에 심장이 벌렁벌렁하리라.

 

이 또한 나턀야에게 행복을 주기 위한 나의 희생이었다. 이왕이면 가슴이 버선 모양에다가 유두가 유난히 길었으면 좋겠다. 당구 큐대 크기며 딱 좋다. 나탈야가 만든 그림 하나를 올린다. 생일 선물은 못해 줄망정 생일날 제삿밥을 만들어 선물한 이'다. 이 인간이 이런 인간이다. 하지만 이해한다. 초등학교 때, 사내아이'는 원래 좋아하는 여자아이를 못살게  구는 법이다. 그는 자신의 무의식적 동성애 욕망을 위장하기 위해서 결혼을 하여 유부남 행세를 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잘 영근 홍시처럼 보일 것이다. 따먹고 싶으나 따먹지 못하고 군침을 흘리니 삐딱해진 것이다. 그나저나 느닷없이 클레어'가 보고 싶다. 지랄 같은 성격이었으나 정이 꽤 들었다. 잘 살고 있으려나 모르겠다. 술에 취하면 이곳저곳에다가 사랑 고백을 하는 모양이다. 가장 당혹스러웠던 때는 처음 보는 이의 블로그에 쳐들어가서 결혼하자고 한 경우였다.

 

불행히도 그 블로그 주인은 50대 중년 남자'였다. 내가 즐거운인생'에게도 사랑한다고 고백한 모양이다. 이런 식으로 총 598명에게 사랑을 고백했으나 성공한 경우는 단 한번도 없었다. 쉽게 말해서 600번 가까이 차인 꼴이다.  여자들은 내 글을 좋아한 것이지 나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었다. 백한 번째 프로포즈에도 실패하신 노총각 여러분, 여자에게 차였다고 실망하지 마세요. 곰곰생각하는발을 보십시요. 600번이나 사랑 고백을 했으나 모두 퇴짜를 맞지 않습니까요. 희망을 가지세요. 이 글을 쓰고 나니 눈물이 앞을 가린다. 앞이 캄캄해서 눈물이 나는 것인지, 눈물 때문에 아른거려서 앞이 캄캄한 것이지는 모르겠으나 잠이 오지 않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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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인생 2013-11-24 14: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천문을 즐기는 사람들 말고 별 볼 일 있는 인생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눙. 돈, 명예, 정치 권력...돈이 많으면 인생이 편해지는 것은 사실이고, 명예와 정치 권력이 있으면 으시댈 수 있기는 하니 나름 장점을 가지고는 있으나, 다 하룻밤의 꿈 같은 일.

아무튼, 나도 별 볼 일 없는 인생이고, 콩가루를 기꺼워하는 가족 구성워들이 모여 알콩달콩한 콩가루 집안이 되었듯, 별 볼일 없는 인생들이 모여 페루 일당이 형성된 듯. ㅎㅎ 우리는 별 볼 일 없는 인생을 기꺼워하는 인간들이랄까. ^^

즐거운 인생 2013-11-24 14: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시인 김신용을 몰랐는데, 페루 님 소개로 찾아 몇 편 읽어보니, 시도 좋을 뿐더러, 거의 무학이네요. 시인이 된 경로도
자신의 말대로 운명에 가깝고...유명 시인의 시를 찻집에서 읽다가 그 시인이 말을 걸어 대화를 나누고, 습작시를 유명
시인에게 들려줘서...놀란 유명 시인이 더 유명 시인에게 추천을 하여 시인이 되었군요..과정도 깜놀.

게다가 시를 읽어보니 무학이라는 데 상당히 지적인 사람이군요. ㅎㅎ

재미나요..재미나.





곰곰생각하는발 2013-11-24 15:14   좋아요 0 | URL
제가 김신용 시를 처음 읽은 것도 좀 골때리는 상황이었습니다.
시인지망생이 있었는데 그는 항상 매년 각 신문사의 신춘문예 투고작을 모으는 사람이었습니다.
당선작은 물론이고 아깝게 최종심의에서 떨어진 시도 정리를 해서 모았어요.
그중에서 한편이 환상통이라는 시였습니다. 그 사람이 분류한 것을 보니
뭐 2009년 모신문사 신문문예 최종심의작 중 하나더군요.
그런데 시를 읽어보니 당선작들, 그 해의 모든 당선작들보다 단연 압권이더라고요
야, 이런 시가 떨어지면 닝기미 무슨 시가 좋은 시냐... 그랬거든요.

알고봤더니 결론은 그 사람이 잘못된 정보로 이 기성 시인의 시를 시인지망생의 습작시'라고 착각한 모양입니다. 왜 블로그에서 얻는 정보 중에는 가짜도 많잖아요.

제가 보기엔 환상통이란 시는 그냥 책상 앞에서 관념적으로 쓴 시가 아니었어요.

그리다가, 제가 살던 곳이 양동'이었으니 양동에 대한 글을 쓰다가 양동에 대한 정보를 얻으려고 검색창에
양동'치니 김신용이 나오더군요. 알고 보니 그 환상통 시인이었습니다. 확실히 이 시인은 피와 고름으로 시를 쓴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11-24 15:19   좋아요 0 | URL
원래는 출판사들이 좋은 소설가와 시인을 찾아나섭니다. 그런데 한국판은 좀 이상해서
시인들이 특정출판사에서 책을 못 내면 아예 안 내는 사람도 많다고 하네요.
특정출판사에서 나와야 시인 가오가 선다고 말이죠.
김신용 시'는 탁월한데 막상 출판사를 보면 그 특정출판사에서 나오지는 않았습니다.
문단과 거리를 두면 그리 되나 봅니다. 특정출판사에서 시집 낼려고 줄 서서 기다리는 심보나
출판사가 작가들 앞에서 왕 노릇하는 꼴이나... 별로 유쾌하지는 않습니다

만화애니비평 2013-11-25 0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빛가루의 건승을~!

곰곰생각하는발 2013-11-25 10:07   좋아요 0 | URL
왠 건승입니까 ? ㅎㅎ. 그나저나 만애비 님 그립군요. 서울 오면 함 봅시다요.
너무 만화만 애정하지 마십시요..

엄동 2013-11-25 1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쿨"이든 콩"이든
내가족에는 없는
적당한 무관심. 그것이 전 부럽네요

근데 어째.
생일경멸파티 후
좀 더 우울해진듯 보입니다만 ㅋ .

곰곰생각하는발 2013-11-25 14:32   좋아요 0 | URL
나 우울함... -_-

슈퍼고양이 2013-11-25 14: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방지 이야기 재미있네요. 어째 그 모임은 그리 남자들만 많을까요~!

곰곰생각하는발 2013-11-25 15:13   좋아요 0 | URL
마성의 매력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뭐 생일 경멸 파티 아니겠습니까.

나탈야 2013-11-25 16: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ㅋㅋㅋ 저는 페루애까는 재미로 사는 사람입니다.
근데 제가 세디스트 기질이 있는 건 사실이오만, 게이는 절대 아님을 분명히 밝힙니다. ㅋㅋㅋ

곰곰생각하는발 2013-11-25 16:38   좋아요 0 | URL
내가 없으면 재미가 없겠군요. 나탈야.... 그게 바로 사랑입니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탈야 2013-11-25 17: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네이버로 돌아와요 페루애.

곰곰생각하는발 2013-11-25 17:22   좋아요 0 | URL
몇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첫째, 페루애를 네이버에 모시기 위해서는 이웃들이 모여서 모금을 할 것.
둘째, 입성 기념 파티'를 성대하게 치루어줄 것 ! ( 양주는 아니더라도 소주에 곱창은 먹어야 함.. )
셋째, 바보라고 놀리지 말 것

이 세 가지'가 지켜지지 않을 경우 협상은 없음 !!!!!!!!!!!!!!!!!!!!!!!!!!!!!!!111

푸르푸르 2013-11-25 20:10   좋아요 0 | URL
첫째 둘째는 당장이라도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세번째가 너무 어렵군요

곰곰생각하는발 2013-11-25 20:19   좋아요 0 | URL
좋습니다. 그러면.... 셋째 조항은 없앨 터이니 모금액을 올려주십시요. 글을 쓸 수 있는 집필 공간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말벗도 필요하니 여성 한 분 소개해 주십시요. 참고로... 생수는 항상 에비앙'만 먹습니다.

슈퍼고양이 2013-11-26 15: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냥 조건 없이 돌아오시는 것은 아니 되겠소? 아~ 알라딘까지 오기 귀찮단 말입니다~! _ 나 슈퍼고양이!

곰곰생각하는발 2013-11-26 15:45   좋아요 0 | URL
명색이 구색이 있어야 돌아가지 어찌 그냥 돌아가오.
투쟁을 했으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해야 할 것 아니오.
그들이 나를 동네 바보 취급하는 이상 결단코 쟁취할 것이오...

 

이 착한 가족극은 몇몇 눈에 띄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단점이 많은 작품이다. 그녀가 내놓은  단편집에 비하면 이번 장편소설은 기대 이하’다 ! 소설 속 주인공은 모두 피터팬 증후군을 앓고 있는 환자‘처럼 보인다. 주인공 부모에게는 세월에 따른 자각의 과정이 없다. 17살 때 고속버스에 올라타서 34살 때 버스에서 내려온 인물 같다. 그뿐인가 ? 이웃집 할아버지는 항문기에 집착하는 꼬마 한스 같다. 공교롭게도 유일한 어른은 조로에 걸린 주인공 소년’이다. 그들은 모두 항문기로 퇴행 중인 노인이거나 질풍노도의 시기에 머문 철없는 부모이거나 혹은 너무 늙은 애어른‘이다. 자기 나이에 맞는 인물은 아무도 없다. 한 편의 명랑만화’를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심각할 때 심각할 줄 알아야 하는데 심각할 때도 주인공들은 웃는다. 으, 하하하하하 !  내가 보기엔, 김애란의 < 두근두근... > 은 3분 발성법으로 1시간짜리 창‘에 도전한 느낌’이 든다. 그것은 마치 3분짜리 콩트를 60분 분량으로 늘린 것 같은 느낌이라는 말이다.   뷰, 티블 마인드- 하다.

 

- 두근두근 내 인생, 지나치게 뷰티풀마인드하다.

 

 

 

 


 

 

 

 

붓으로 글씨를 쓰기 전에 하는 일은

먼저 먹물을 덜어내는 일'이다.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했던가. 책에 관심을 두기 시작하면서 이웃들을 만나다 보니 각 분야에서 책을 내신 분이 꽤 된다. 소설'을 쓰는 소설가도 있고, 시를 쓰는 시인도 있으며 전문 번역가들도 있다. 이런 표현이 어쩔지는 모르겠으나 내가 아는 사람들은 모두 문단이나 출판계를 휘어잡을 만한 거목들은 아니어서 한 톨의 낟알이라도 되고 싶은 마음에 리뷰'를 쓴다. 대부분은 기본기가 탄탄해서 주례사'를 위한 허튼 소리'를 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오, 이웃이여 ! 감사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 모두 > 가 아니라 < 대부분 > 이라는 데 있다. 가끔은 수준이 떨어져서 혹평을 해야 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혹평을 하자니 아는 척하며 보낸 살가운 얼굴이 눈에 밟히고, 그렇다고 칭찬을 하자니 수준이 떨어지는 거라. 이럴 때는 그냥 감상평을 쓰지 않는 게 최선책'이다.

 

그런데 반드시 써야 하는 입장에 놓인 사람들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 덕목'까지는 아니더라도 문학평론'은 달달한 칭찬과  인지상정에 끌린 격려'보다는 챙챙한 비판과 날 벼린 언어'가 날카로워야 한다. 나는 문학평론은 < 꽃 > 도 좋지만 < 칼 > 을 잘 다스릴 때 좋은 글이 된다고 믿는다.  내가 신형철 평론집 < 몰락의 에티카 > 를 지지하지 않는 이유는 그가 싫은 소리'를 낼 줄 모른다는 점 때문이었다. 칭찬은 후하고 비판은 야박하다. < 몰락의 에티카 > 는 마치  별 ★★★★★로  알라딘 리뷰 목록'을 모두 채운 서재 같다. 칼보다는 꽃만 보인다.  평론가에게 있어서 화려한 문장력은 장점 가운데 하나'가 될 수는 있지만 문장력"만"  뛰어나면 오히려 그것은 단점이 된다. 그는 왜 모든 작품에 꽃을 그렸을까 ? 그는 원래부터 착한 교회 오빠 스타일'이었을까 ? 구구절절 듣기 좋은 소리만 하는 평론가보다는 차라리 왕비호 같은 평론가가 낫다.  

 

나는 신형철 평론'보다는 글이 투박해서 쪼는 맛(읽는 맛)은 없지만 거대 문학권력에 대해 또라이'처럼 저돌적으로 밀어부치는 권성우와 이명원 그리고 김명인의 벼린 칼'이 더 마음에 든다. 눈치 안 보고 하고 싶은 말 다 하는 자세야말로 평론가에게는 중요하다. 평론가가 " 하고 싶은 말 " 을 " 차마 하지 못한 말 " 로 바꿔서 서랍 속에 넣어두면, 그것이 쌓일수록 평문(評文)은 뛰어난 작문 실력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말 그대로 평문(平文)이 되지 않을까 ? 눈치 안 보고 하고 싶은 말을 다 해서 차마 하지 못한 말'은 전혀 없었던 김수영'은 [ 히프레스 문학론 ] 이라는 글에서 이런 쓴소리를 하셨다고 한다. " 젊은 비평가들의 작품평을 보면서 이따금씩 느끼는 것은, 아무래도 그들의 비평이 눈치를 보면서 '적당히' 쓰고 있다는 미흡감이다. " 그가 이 글을 쓴 년도가 1964년이니 강산이 다섯 번은 바뀌고도 남을 지금도 여전히 젊은 비평가들이 눈치를 보면서 적당히 쓰고 있다니 오호, 통재'다.

 

김애란의 실패한 서사 < 두근두근내인생 > 을 두고 평론가나 동료 소설가들이 " 놀라서 다시 본다 " 따위'를 남발할 때 난감하다. 정말 이 소설은 놀라서 다시 볼 만큼 완성도가 높은 소설이었을까 ? 주인공 < 아름 > 은 에밀 아자르의 모모'와 권정생의 몽실'을 반반 섞어놓았지만 아름은 모모도 아니고 몽실도 아닌 어정쩡한 캐릭터가 되고 말았다. 서예가가 붓으로 글을 쓰기 전에 하는 일은 붓에 담긴 먹물의 양을 적당한 양으로 덜어내는 일'이다.  먹물이 넘치면 스며들지 못하고 결국에는 번지게 된다. 과유불급이란 소리가 있지 않은가 ?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 감정 조절을 하지 못해 감정이 과잉되면 유치한 글이 된다. 그러므로 깊은 밤에 슬픈 음악을 들으며 편지를 쓰다가는 망신을 당하는 수가 있다.  다음날 당신은 그 편지를 읽다가 얼굴이 홧홧해서 찢어버릴 것이 분명하다.

 

또한 먹물이 잔뜩 낀 문장은 말 그대로 꼰대스러운 글이 되기 쉽다. 평론가가 칭찬한답시고 지나치게 흥분하면 호들갑이 되고 반대로 비판한답시고 칼을 너무 천박하게 휘두르면 망나니'가 된다. 이 또한 과잉의 문제이다. 이래저래 소설가와 평론가 모두 글을 쓰기 전에 먹물을 덜어내는 것이 좋다. 화려한 수사의 범람은 결핍'보다 나쁘다. < 두근두근내인생 > 은 강약 조절'에 실패했다. 슬픈 서사를 명랑하게 끌고 나건 것은 좋으나 그 명랑은 지나쳤다. 김애란'은 먹물을 잔뜩 흡수한 붓으로 붓글씨'를 썼다. 이 소설이 형편없다는 소리가 아니다. 나에게 이 소설은 나쁘지도 좋지도 않았다. 다른 이라면 모를까, 김애란 소설이 나쁘지도 좋지도 않다는 것은 결국 나쁘다는 소리이다. 김애란이니깐 가능한 역설이다. 소설이 좋은가 나쁜가는 취향의 문제이니 상관없지만 이 소설이 좋다고 해도 놀라서 다시 볼 만큼 훌륭한 소설은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

 

평론'이 트위터 40자평'으로 변질되면 그것은 출판사를 위한 광고 멘트'처럼 들린다. 만약에 이문열에 대해 비판적 생각을 가지고 있는 이가 있다고 치자. 공교롭게도 그 평론가가 민음사에서 운영하는 문예지 편집위원이라고 한다면 과연 그는 이문열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가할 수 있을까 ? 꽃을 말할 수는 있으나 칼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기껏해야 꽃을 말하느니 차라리 침묵을 선택할 것이다. 같은 이유로 창작과비평 편집위원들이 과연 신경숙의 < 엄마를 부탁해 > 를 신랄하게 비판할 수 있을까 ? 이 소설이 벌어들인 수익을 감안하면 쓴소리는 엄두도 못낼 것이다. 설령, 용기를 내서 쓴다고 해도 출판사에서 너그럽게 볼 턱이 없다. 이처럼 문학평론가들이 출판사와 독자 사이에서 쇼핑호스트'가 되어 중간 마진을 챙기면 곤란하다.

 

소설가는 띄어쓰기를 무시한 채 모두 붙여서 문장을 완성하는 사람이고, 평론가는 소설가가 붙여 놓은 문장에 일일이 띄어쓰기 교정을 보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다. 무슨 말인가 하면 평론가는 띄어쓰기가 되지 않은 문장에서 오는 오해와 오독을 피하기 위해 친절하게 띄어쓰기를 해서 의미를 정확히 하는 것이다. 소설가는 " 아버지가방에들어갔다. " 라고 쓴다. 그러면 평론가는 이 텍스트를 가지고 " 아버지가 ^ 방에 ^ 들어갔다. " 고 띄어 쓰거나  " 아버지 ^ 가방'에 ^ 들어갔다 " 라고 띄어 쓰기를 할 것이다. 정답은 없다. < 틀리다 > 가 아니라 < 다르다 > 의 문제이니 말이다. 평론가가 작품을 어떤 식으로 해석하는냐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존 스타인벡'인지 존스타인 벡인지 헷갈려서 항상 찾아보게 되는 존 스타인벡의 소설이라면 아버지는 방에 들어갈 터이지만, 로날드 달'이라면 아버지가 가방 안으로 들어갈 수도 있다.

 

 리얼리티냐 판타지냐에 따라 아버지는 < 방 > 이나 < 가방 > 에 들어갈 것이다. 좋은 소설이란 소설가가 띄어쓰기'를 완벽하게 한 채 소설을 완성시키는 것'이 아니라 독자들이 띄어쓰기를 할 수 있도록 붙여서 완성한 소설이다. 띄어쓰기를 하지 않기로 유명한 사람이 바로 카프카'다.  띄어쓰기에 따라서 소설 속 아버지는 가방 속으로 들어가기도 하고, 기방, 심지어는 유방 속으로 들어갈 수도 있다. 유방 속이라... 맙소사. 이 얼마나 행복한가 ! 행간읽기란 결국 띄어쓰기가 되지 않은 텍스트'를 일일이 띄어쓰기 표기법으로 바꾸는 즐거움이다. 나는 평론가'라고 쓰고 띄어쓰기 교정자'라고 읽는다.

 

거대 출판사'들은 모두 자사 문예지'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많은 평론가들이 문예지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특정 출판사 문예지에 소속된 평론가들이 특정 출판사의 청탁을 받고 글을 쓴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한솥밥 먹는 사이란 말이다. < 식구 > 에 대한 사전적 정의가 끼니를 같이하는 사람'이라면 출판사와 그 출판사에 소속된 문예지 편집위원은 지구촌 가족'이다. 웃는 얼굴에 침 뱉으랴 ? 청탁 받은 소설이 후져도 리얼리즘적 서술에서 벗어났다 싶으면 " 작가의 전복적 상상이 재기발랄하다 " 고 쓰면서 어정쩡하게 물타기를 한다거나, 감정 조절이 되지 않아서 유치한 소설이라고 속으로 생각하지만 " 작가의 섬세한 감성이 빚은 빛나는 떨림 " 따위로 평론을 한다. 누누이 말하지만 한솥밥 먹는 식구끼리 웃는 얼굴에 침 뱉기란 쉬운 게 아니다.

 

문예지를 끼고 쏟아내는 문학평론'보다는 차라리 그 어떤 출판사 문예지에도 소속되지 않고 독립적으로 활동하는 문학평론가의 평론이 좋다. 평론가는 눈 덮인 킬리만자로의 표범이 되어야지 떼로 우르르 몰려다니는 하이에나가 되면 안된다는 소리이다. 채점 방식이 적용되는 스포츠'에서는 최고점과 최저점을 제외한 나머지 점수를 가지고 채점을 한다. 그 이유는 선수의 국적이 심판의 국적과 같을 경우 지나치게 후한 점수를 주거나 자국 선수를 위해 라이벌인 타국 선수에게 지나치게 낮은 점수를 줄 때 생기게 되는 병폐를 막기 위해서다. 그것이 공정한 심사'다. 결국 대형출판사에서 운영하는 문예지'에서 편집위원으로 활동하는 평론가가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책의 평론을 쓴다는 것은 한국 심판이 한국 선수에게 후한 점수를 주는 비슷하다. 페어플레이인가 ? 아니다, 더티플레이'다.

 

눈치 안 보고 할 말 안 할 말 다 해서, 변죽만 울리다가 어정쩡하게 매조지하는 속 보이는 심보 때문에 속(심중)이 안 보이는 평론'보다는 속이 시원하다. 평론가들이 하도 전복적상상, 전복적상상, 전복적상상, 전복적상상, 전복적상상, 전복적상상, 전복적상상' 이라고 말해서 전복 하면 일은 안 하고 상상만 하는 게으린 짐승이 되어버린 이 시점에서 이제는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당당하게 전복의 명예회복을 위해 싸워야 한다. 이제는 < 전복 > 을 항상 상상만 하는 동물이라고 호도하지 말자. 평론가들이 전복적 상상을 높게 평가한다면 전복 선생은 지금쯤이면 스티븐 킹'이나 베르나르에  버금가는 소설가가 되었을 것이 분명하다. 전복 선생은 그저 평범한 소시민으로 남고 싶어 한다. 나, 한마디 하련다.

 

" 전복 선생님은 한겨울 아랫목에 몸을 지지며 엉덩이나 긁으면서 생산적이지 않은 상상만 하는 분이 아니다. 바다 생태계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도 하며 이런저런 생각에 잠 못 드는 밤에 많다. 조개 속의 게'라는 인종차별적 속담'에 울분을 삼키며 조개와 게를 비롯한 동료의 인권 신장을 위해 싸우는 분이다. 평론하시는 분들, 제발 할 말 없다고 전복적 상상 운운하지 마시라. 우리가 보기엔 당신들이 전복적 상상'이라며 설레발을 친 소설치고 좋은 소설 본 적 없다. 당신들은 별것도 아니면서 툭하면 인간적 고뇌, 인간적 고뇌, 인간적 고뇌'를 씨부리던데 인간만 고뇌'가 있는 게 아니다. 뇌가 있으면 두뇌가 있는 법이고, 두뇌가 있으니 고뇌'가 있는 것이다. 고래처럼 큰 놈만 뇌가 있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전복이나 게도 뇌가 있다. 잠시 생각해 봐라, 그래 안 그래 ? 전복 선생님도 전복적 고뇌'에 빠지고는 한다. 전복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하자. 부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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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린 2013-11-23 2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두근두근 내 인생 홍보 글귀는 볼 때마다 얼굴이 후끈후끈.
거기에 홀려서 책을 샀더니 엄청 후회..

곰곰생각하는발 2013-11-23 22:36   좋아요 0 | URL
오셧구랴.. 그날 잘 들어가셨수 ? 차 있었나 모르겠군요.
진짜 두근두근 홍보 쪽팔리죠. 정도껏 해야지...
황구라도 나서서 설레발을 치기나 하고................
소설 깨나 써으면 이 소설이 별로 좋은 소설은 아니라는 거 뻔히 알면서 말이죠...

rtour 2013-11-23 2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루 생일 디스 모임은 재미있었수? 후기는 네이버 블로그에,모임 공지도 거기였으니.

곰곰생각하는발 2013-11-24 00:55   좋아요 0 | URL
나턀야와 오쉬프가 없으니 재미는 반감이 되었으나 작품의 질은 1000000000000배로 올랐습니다.
둘이 없으니 이야기 품격이 올라가더군요......

2013-11-24 03: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1-24 03: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rtour 2013-11-24 1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럴 줄 알았음 참석하는 것인데..아쉽.

곰곰생각하는발 2013-11-24 13:07   좋아요 0 | URL
사실 전 말했다시피 보쌈했잖아요. 그거 아무도 안 먹어서 제가 3일 동안 먹었는데
또 식당 가서 보쌈 먹으려니 영 안 땡기더라고요. 보쌈 하나 시키고 다른 테이블엔
닥복음탕 시킬려고 했는데 몇몇이 늦게 오는 바람에 보쌈만 먹고 1차는 종쳤습니다.
참석하셔서 빛나는 자리를 만드셔야 했습니다.

엄동 2013-11-25 1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야무진 단편에 비해 허술한 장편
꽉꽉 여문 단편에 비해 2프로 부족한 장편
빵빵터지는 단편에 비해 어색한조소가 터지는 장편


그래도 전
김애란을 애정합니다 ㅎ

곰곰생각하는발 2013-11-25 14:32   좋아요 0 | URL
저도 김애란 광팬입니다.
말씀대로 단편에 비해 완성도가 꽤 떨어졌다고나 할까요....
빵빵 터지는 단편에 비해 장편은 웃기지도 시니컬하지도 않았어요.
하여튼 김애란 만세...

윤스리 2013-11-26 1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함돈균 평론가도 신형철 평론가가 모든 작품을 최고라는 말하는 식의, 안 좋게 보면 '몸 사리는' 평론을 비판했던 적이 있었는데 보편성과 특수성이란 관점에서 평론의 맛은 자신이 지향하는 문학론, 그 '지향점'에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 그런데 예전에 조해진 소설가의 천사들의 도시에 신형철 평론가가 쓴 소리했던 게 갑자기 생각나네요 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3-11-26 13:03   좋아요 0 | URL
전 신형철 평론가가 김연수'에 대해서 " 그의 최고작은 항상 신작 " 이라고 말한 거 보고 웃었던 기억이 나네요.
개인적으로 김연수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일수도 있으나....
난 김연수 소설 좋은 거 모르겠더라고요.....

만사오케이... 요거 위험합니다.
차라리 시니컬한 평론가가 더 솔직해 보입니다.

yamoo 2013-11-26 17: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완전 동감! 제 생각과 똑같은 곰발님에게 추천 만개~
쓰신 논조가 완존 제 생각과 일치~^^

곰곰생각하는발 2013-11-26 17:50   좋아요 0 | URL
일치하니.. 우리 찌찌뽕이나 합시다. 찌찌뽕 !!!!!!!!!!!!
 
몰락의 에티카 - 신형철 평론집
신형철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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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형은 발끝이 아니라 손끝에서 나온다. 

 

김신용 시인은 시 < 공, 혹은 空 ? > 에서 누가 가지고 놀다 버린 바람 빠진 공'을 보는 순간 " 늙은 작부처럼 주름투성이의 쭈글쭈글한 얼굴 " 을 떠올린다. 이 쭈글쭈글한 얼굴'은 공기를 채우지 못한 데에서 비롯된 노화'다. 시인은 잠시 상념에 젖다가 내뱉는다. " 공의 내장이었던 공기, / 자신의 오장 육부를 이루고 있던 공기... " 시인이 < 공기 > 를 공의 내장'이라고 말할 때, 나는 무릎을 아, 쳤다 ! 그리 어려운 수사'는 아니다. 시인은 내부는 공(空)이면서 외부는 가까스로 외형만 구(球)인 쭈글쭈글한 공'을 본다. 시인은 空이면서 球인 척하는 공'을 보면서 회춘을 버리지 못한 늙은이의 욕망을 읽는다.

 

공은,

다시 한번 그 공기가 불어 넣어진다면

요가처럼, 허공에서도 머물 수 있다는 듯이

미확인 비행물체처럼, 무중력 속에서도 비행할 수 있다는 듯이

그 쭈글쭈글한 주름투성이의 얼굴로

온갖 쓰레기와 뒤섞인 덤불 속에 앉아

수로의, 흐르는 물을 바라보고 있다

스며드는 물에 쭈그러진 몸을 한껏 부풀리며

 

부정 축재로 감옥으로 끌려가는 그 독재자처럼

 

- < 공 혹은 空 > 중에서

 

이 심상은 고스란히 기형도의 < 노인들 > 이란 시와 겹쳐진다. " 그러나 부러지지 않고 죽어 있는 날렵한 가지들은 추악하다 " 김신용이 공이면서 구인 척하는 공'을 통해 쥐새끼 같은 욕망을 읽는다면 기형도는 고사목 가지'를 통해 늙은것의 욕망을 읽는다. 球인 척하는 空이나, 부러지지 않고 죽은 가지나, 죽은 척하는 생태'는 모두 다른 계열과 계통에 속하지만 결국은 한통속'이다. 이러한 행간 읽기는 소설과 시 읽기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평론가가 아니어도 이해 가능한 범위'이다. 시'란 본질적으로 서사를 압축하는 형식이기에 필연적으로 독해가 필요하지만 너무 해독 불가능한 자폐적 언어'로 시를 쓰면 나 같은 독자는 독해가 불가능하게 된다.  해독 불가능한 자폐적 언어'를 두고 평론가들이 시인의 귀족적 독백'이라며 설레발을 치면 독자는 한숨만 나온다.

 

시의 상징과 은유는 보편적 정서를 바탕으로 한 함의에서 울림'을 얻을 수 있는 것이지, 해독 불가능한 자폐적 언어'에서는 얻을 수 없다. 자폐적 언어로 시를 쓴다고 해서 모두 다 이상 같은 시인의 명성을 얻는 것은 아니다. 시인이 독자는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평론가를 위해, 그리고 < ●● > 출판사만을 위해 시를 쓴다면 그것이야말로 웃기는 짬뽕이 된다. 신형철은 < 몰락의 에티카 > 에서 남진우를 " 좋은 의미에서 시의 귀족주의자 " 라고 말했는데, 나는 이 표현에 대해  절반은 수긍하고 절반은 손사래'를 친다. 신형철이 남진우를 가리켜 " 시의 귀족주의자 " 라고 한 말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남진우는 좋은 의미에서가 아니라 " 나쁜 의미에서 시의 귀족주의자 " 이다. 남진우 시는 공허한 관념만 떠돌다가 죽도 밥도 아니요, 찌개인지 국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애매모호하게 되었다.

 

국이라고 하기에는 짜고, 찌개라고 하기에는 싱거워서 나는 남진우라는 음식을 냄비에 담아야 하는지 아니면 국 그릇에 담아야 하는지 잠시 망설이게 된다. 관념적 공허만 남발한 채 자기 상처와 환부는 철저하게 감추는 것은 시덥지 않으며 시시한 시'다. 밑바닥에 발 딛지 않고 계룡산 구름 위를 쳐다보는 관조는 곤조(根性 こんじょう ) 가 되기 쉽다. 자기만의 색깔을 가지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지나치면 색깔이 아니라 성깔이 된다. 살롱에서 캐비어를 안주 삼아 비어 한 잔 하기에는 좋지만 이 귀족성에 박수를 칠 만한 독자가 얼마나 있을지는 모르겠다. 누가 백로이고 누가 황새인지는 모르겠으나 신춘문예를 위해서 문학 지망생을 스파르티식 교육으로 가르치는 몇몇 국문과/문창과'를 보면 기이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동네마다 걸린 " ●● 고, 서울대 23명 합격  " 이라는 플래카드'처럼 " ●●● 사단 신문문예 등단 7명 배출 " 이라는 플래카드'에서 어떤 기이한 한통속이 읽힌다.

 

신형철은 < 몰락의 에티카 > 책머리에서 다음과 같이 적는다. " 4년 전에 첫 글을 발표한 지면이 문학동네다. 편집위원 여섯 분 선생님의 가르침과 격려 덕분에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써왔다. 마지막 글을 발표하는 지면도 문학동네가 되었으면 좋겠다. " 이 글을 읽다가 피식 웃었다. 감사를 표하는 것까지는 좋지만 마지막 글을 발표한 지면도 문학동네였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뭔가 대형출판사에 대한 아부처럼 느껴졌다. 굳이 그럴 필요까지 있었을까 ?  나는 신형철이 문학평론을 하면서 詩人도 겸하는 겸직은 하지 않으리라 믿는다. 평론을 하면서 시'까지 쓰는 것은 뭔가 불편하다.  나는 문학평론가와 소설가/시인'은 멀리 떨어질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문학평론가가 시인들과 가까우면 인정에 끌려서 균형잡힌 시각은커녕 주례사나 정실 비평만 남발할 것이 뻔하다.

 

내 식구 챙기는 것만큼 꼴사나운 것도 없다.  이 두 집단이 뭉쳐서 서로 " 우리 친구 아이가 ! " 라고 하면 안 된다. 죽은 척하는 생태'는 살기 위한 몸부림이니 안쓰럽기나 하지, 친하지도 않으면서 친한 척 어깨동무하는 꼴은 꽤나 우습다. 어깨동무하지 마라. "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둘이 친구 아닙니다 ! " 외줄을 탈 때 가장 신경 써야 할 곳은 줄을 딛는 발끝이 아니다. 손끝이다.  균형 감각은 줄과 맞닿은 발끝이 아니라 줄과 가장 멀리 떨어진 손끝에서 온다. 문단과 거리를 둘수록 좋은 문학이 탄생한다. 손창섭과 권정생이 그 사실을 증명한다. 다시 한 번 반복해서 말하자. 중요한 사실이니깐 말이다. 손창섭과 권정생이 그 사실을 증명한다. 손창섭과 권정생 그리고 김신용은 문단과 가장 멀리 떨어진 손끝이었다.

 

 

 

 

 

 

 

힙합 정신'으로 말하자면 라임을 지나치게 강조하게 되면 플로우(흐름)이 자연스럽지 못해서 촌스러운 랩이 된다. 하지만 플로우가 자연스러우면 라임이 무너져도 촌스럽지는 않다. 진정한 래퍼는 라임보다는 플로우에 신경을 쓴다. 라임이 형식미'라면 플로우는 아우라'다. 이처럼 기교가 지나치면 정신이 훼손되는 법이다. 문학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권정생은 기교 없는 문장을 선보이지만 플로우가 자연스럽다. 그러므로 무덤덤한 기교는 오히려 문장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만들어서 아름답다. 반면 지나치게 기교적인 문장은 촌스럽다. 온갖 기교가 나이트클럽 뺑뺑이 조명등처럼 현란하게 돌아가지만 부자연스럽다. 무교가 기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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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21 14:4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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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21 15:0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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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22 11:3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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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21 20:5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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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21 20:5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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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21 20:5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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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21 21:0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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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21 21:0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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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21 21:1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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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21 21:1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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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21 21:1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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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맨 2013-11-21 2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밑바닥에 발 딛지 않고 계룡산 구름 위를 쳐다보는 관조는 곤조가 되기 쉽다... 아, 이 구절은 루쉰의 산문 한 구절을 떠올리게 할 만큼 감동적이네요.
사실 아까 댓글을 달려고 했는데 글이 조금씩 수정되더라구요^^;;; 오늘 이 글을 네 번쯤 읽은 것 같네요.
이제는 이러한 지사적인 문인들을 찾기가 어려워진 듯싶습니다. 때문에 이들의 존재가 더욱 귀중하게 보이는 측면도 있구요. 시장과 문단에 눈치를 보는 글(혹은 문인)이 많아진다는 것도 참 멋 없는 노릇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손창섭. 권정생, 김신용...... 참으로 꿋꿋한 사람들입니다. 이런 문인들이 참으로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문인들은 자유를 사랑한다고 하던데, '문단으로부터의 자유를 꾀하는' 문인들도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11-22 08:30   좋아요 0 | URL
제가 성격이 불같이 급해서 글을 일단 올리고 봅니다....ㅎㅎ
댓글 구경하러 올 때마다 조금씩 첨가하는...... 성격이 급해서 문제예요.
컵라면 익을 때까지 도저히 못 기다려서 한 50초 후면 먹습니다...

사실, 신형철 평론이 나쁘지는 않습니다. 예리한 감수성과 감각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양대 두 산맥이었던 평론가들 *** 과 ***도 처음엔 정말 글 잘 썼죠.
그러다가 권력화되다보니 똥만 싸는 꼴을 보이더군요.

결국 좋은 평론가는 글 기교가 뛰어난 사람이 아니라 뚝심인 것 같습니다.
어떤 정파나 집단에 끼어들어서 대변인 노릇을 하지만 않으면 기본은 먹고 들어갈 터인데
왜 그러나 모르겠어요....

midal4177 2020-04-01 0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의 상징과 은유는 보편적 정서를 바탕으로 한 함의에서 울림‘을 얻을 수 있는 것이지, 해독 불가능한 자폐적 언어‘에서는 얻을 수 없다. 완전 공감이요^^
 
환상통 시작시인선 49
김신용 지음 / 천년의시작 / 2005년 4월
평점 :
절판


 

 


 

 

 

 

 

 

곳곳에 스며들지만 번지지 않는,

 

< 글 > 을 읽지만 < 글 > 을 믿지는 않는다. 무슨 말인가 하면 글쓴이가 쓴 글이 구구절절 옳다고 해서 그 사람 됨됨이'를 글로 평가하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말과 행동이 다른 경우'보다 글과 행동이 다른 경우가 더 많다. 글을 보고 사람 됨됨이'를 평가하느니 차라리 직접 목소리를 듣고 평가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 음량과 음성 그리고 수정과 검열이 배재된 목소리는 수정과 검열을 통해 만들어진 문장'보다 더 많은 정보를 제공한다. 노점상 자릿세나 받아먹는 건달 새끼들도 말을 할 때는 육두문자를 사용하지만 글을 쓸 때는 구구절절 옳은 소리만 한다. 팔뚝을 보면 알 수 있다. " 차카게 살자 ! " 이 얼마나 감동적인 글인가 ! 착하게 살자는데 감동 안 할 위인 없다.  원석은 가공을 해야지만 보석이 되듯이, 글 또한 행동과 일치할 때 가치를 얻는 법이다. 글보다 헛것인 것도 없다. 내가 독한 언니 김미경, 쓸데없는 오지랖 김난도, 뜬구름잡이 혜민'에게 " 너나 잘 하세요. " 라고 말하는 이유이다. 乙 에게 필요한 것은 위로도 아니고 조언도 아니다.

 

만약에 당신이 유명 인사가 던진 위로와 조언'에 돈오(頓悟) 를 얻었다면 당신은 줏대 없는 사람이다. 팔랑귀'다. 물론 이러한 위로와 조언'에 잠시 용기를 얻어 힘을 낼 수는 있지만 말 그대로 " 잠시 ~ " 일 뿐이다. 일주일이 지나면 긍정적 힘'은 다시 우울한 현실 앞에서 절망하게 된다. 부메랑처럼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 그렇다 !  힐링과 멘토링은 요요현상'이다. 乙에게 필요한 것은 위로와 조언이 아니라 甲에게 유리하게 적용도는 근로계약서'를 바꾸는 것이다. 그것 말고는 대안이 없다. 불행은 마음이 만들어낸 탐욕 때문에 발생한 것이 아니다. 체질적 우울이 인간을 불행하게 만들 수는 있으나 그 모든 불행의 원인을 유심/唯心 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무책임한 말이다. 사회 구조는 인간의 행복과 불행에 커다란 영향을 준다. 이처럼 구조적 모순을 외면한 채 유심'을 강조하는 힐링'은 지나가는 개나 줘라. 그것은 잠시 동안 얻을 수 있는 쾌'에 지나지 않는다.

 

감량을 통한 고통보다 더 힘든 것은 요요현상이다. 차라리 다이어트를 하지 않은 것만 못하다. 힐링 또한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 글 > 이란 매우 위험한 도구'이다. 문학은 기본적으로 글'을 가지고 노는 행위이지만 이 노는 행위의 화룡점정이 바로 < 시 > 다. 시는 시어를 고르고, 배치하고, 나누는 놀이'를 통해 통찰을 얻는 장르'이다. 시는 문학이 만들어낼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경지에 도달할 수 있지만 역설적이게도 글'은 지극히 위험한 도구이다. 도끼로 나무를 벨 때에는 유용한 연장이 되지만 사람을 향할 때에는 무기'가 되듯이, 좋은 시는 삶에 대한 통찰과 화두를 던지는 연장이 되지만 나쁜 시'는 좋은 명함을 얻기 위한 도구로 전락될 뿐이다. 나는 문창과나 국문과 교수이면서 문예지나 신춘문예 심사위원을 겸하면서 시인까지 겸직하는 시인은 시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저 좋은 명함을 얻기 위해 시인'이 되었을 뿐이다. 그들이 쓴 시는 대부분 글 장난'이었다. 겸직은 예의가 아니다. 정치평론가를 하면서 동시에 정치인이 될 수는 없는 노릇이고, 영화평론가를 하면서 영화감독도 겸하는 것 또한 예의가 아니지 않은가 ? 이것저것 다 해먹는 꼴을 보면 문학에 대한 열정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탐욕적이다. 그래서 나는 쓰리콤보 시인'이 쓴 시는 읽을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다. 김신용이라는 시인'이 있다. 그는 문창과나 국문과 교수는 아니다. 교수는커녕 대학문을 들어가 본 적도 없다. 그는 남대문에서 지게꾼으로 일한 사람이다. 쓰리콤보 지식인과 비교하자면 상대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내 판단에 의하면 그가 쓴 시는 쓰리콤보 욕심쟁이 지식인'이 쓴 시'보다는 10,000배는 뛰어나다. 이것은 비약'이 아니다.

 

그는 < 비문증 > 이라는 시에서 " 안질에 걸린 듯 누런 눈곱이 낀 고장 난 가로등 같은, 눈 " 을 " 흘러가야 할 것들이 흘러가지 않고 박혀 있는... " 것이라 진단하고 반성한다. 그래서 그는 < 흘러가는 것 > 에 대해 생각한다. 그리 생각하면 " 모기 한 마리가 날아가 " 는 것 또한 의미를 가진다. 모기는 날아가는 것이 아니라 흘러가는 존재'다. 이런 통찰은 쓰리콤보들이 얻을 수 있는 통찰이 아니다. 직업을 하나만 가지고 있어도 바쁜 세상에 세 가지나 겸직한 양반들이 과연 한곳에 오래 앉아서 어떤 사물을 오래 바라보며 상념을 젖을 수 있을까 ? 회의적이다. 새벽 3시에 깨어있지 않은 자는 시인이 아니다. 사유는커녕 촉새처럼 이곳저곳 중뿔나게 나서서 밤 9시만 되면 에이스 침대에서 단잠을 잘 것이 뻔한다. 그들이 쓰는 시는 시가 아니라 낙서'다. 피카소 같은 천재라면 낙서도 예술이 될 터이지만 별 볼 일 없는 양반들이 쓴 낙서를 가지고 호들갑을 떠는 것은 같잖다.

 

고통은 김신용 시를 관통하는 화두'다. < 물렁해, 슬픈것들 > 이라는 시에서 " 마당가의 / 작은 텃밭에 씨 뿌려 띄운 어린 배춧잎에 / 쬐그만 달팽이들이 기어 " 오르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문득 남대문 시장에서 지게꾼으로 일했던 자신의 가난한 누대를 떠올린다. 그는 " 상징은 / 무섭다. / 한때, 나도 은유의 달팽이였다. / 지게를, 달팽이의 집처럼 등에 얹고, 세상의 / 배춧잎을 기어오르던-. " 이라고 회상한다. 살기 위해서 물렁한 몸 위에 딱딱한 지게를 얹고 배춧잎을 오르던 힘든 하루가 눈에 선하게 다가온다. 그는 힘들었던 시절을 떠올리며 작은 달팽이를 바라본다. " 자신을 지킬 뼈 하나 없어, 등에 짊어진 패각까지 보호색을 띤 " 달팽이를 말이다. 김신용에게는 뜬구름 잡는 은유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겪은 것들만 보고, 느끼고, 쓴다. 좋은 화선지는 먹물이 빠르게 스며들지만 번지지는 않는다.

 

그래야 좋은 서체'가 그려진다. < 잉어 > 라는 시'에서는 온몸으로 글을 쓰는 잉어가 등장한다. 잉어가 물속을 헤엄치며 이러지러 돌아다니는 모습이 시인 눈에는 만년필로 글을 쓰는 것처럼 보인 까닭이다.  " 무슨 글자를 쓴 것 같은데 읽을 수가 없다 " 하지만 그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메시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온몸이 붓이 되는 몸부림이 중요한 것이다. 좋은 시'도 마찬가지'다. 시인의 서사가 고스란히 시에 스며들지만 구질구질하게 번지지는 않는 시가 좋은 시'다. 김신용은 가난과 고통을 시에 새기지만 구질구질하게 번지지 않는다. 비록 그가 쓴 시가 쉽게 다가오지 않더라도 상관없다. 김신용은 잉어처럼 붓이 되어서 자기가 살아온 고통과 무게를 몸부림으로 재현한다. 중요한 것은 진심을 담보로 한 진술이지 말 장난이 아니다. 그게 그가 가진 미덕이다. 내가 보기엔 당대  최고의 시인은 김신용'이다. 명불허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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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환상통 - 김신용
    from 봉인된 시간 2013-11-21 14:44 
    새가 앉았다 떠난 자리, 가지가 가늘게 흔들리고 있다나무도 환상통을 앓는 것일까?몸의 수족들 중 어느 한 부분이 떨어져 나간 듯한, 그 상처에서끊임없이 통증이 베어 나오는 그 환상통,살을 꼬집으면 멍이 들 듯 아픈 데도, 갑자기 없어져 버린 듯한 날 한때,지게는, 내 등에 접골된뼈였다木質의 단단한 이질감으로, 내 몸의 일부가 된등뼈.언젠가그 지게를 부수어
 
 
푸르푸르 2013-11-20 17: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말씀하신 맥락에서 강신주를 안좋아해요
이 색히 말 참 쉽게 하거든요
장애자보고 막 편하게 도와달라고 말하라고 한다던다
참 세상이 쉬워보이는 인간 같아요

곰곰생각하는발 2013-11-20 17:35   좋아요 0 | URL
오쉬프, 세상이 너무 험해 ~

수다맨 2013-11-20 2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여러 번 반복했던 말이지만, 김신용 선생님, 참으로 최고의 시인이죠!
곰곰발님께서 말씀해주신 '잉어'라는 시도 너무 좋게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메시지를 넘어 김신용 선생이 살아온 눈물겨운 인생 역정이 아프고도 아름답게 드러나서, 읽다가 저도 눈물을 흘렸던 적이 있어요.
이 훌륭한 시인이 문지나 창비 같은 곳에서 시집을 내기는 어려울 듯습니다(제가 만나본 몇 안 되는 시인들도 이런 얘기를 하더군요).하지만 그러면 어떻습니까. 이렇게 귀하고 든든한 시인이 있다는 것만으로 저는 독자로서 크나큰 보람과 감동을 느낍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11-20 21:11   좋아요 0 | URL
그러고 보니... 김신용 시집은 창비'나 문지에서 안 나왔군요. 그러네.. 그 생각은 못했네요.
하긴 대부분의시인들은 문지'완 연결을 하기 위해서 아예 기다렸다가 문지에서 오케이 사인을 하면 그때 낸다는 소릴 어디서 들었습니다. 뭐, 이것도 다 그 체면이겠죠. 시인이 출판사 따져가며 작전 펴는 거 보면 꼴사납죠...시덥지 않은 시 문지에서 졸라 나오던데... 잘 모르겠군요.

그냥 다른 바람은 없고 김신용 시집'이나 많이 사서 좀 읽었으면 하네요. 지금 이 글 쓰다ㅏ 참고할려고 다시 읽는데 ㅡ냥 계속 읽게 됩니다. 확실히 독보적이네요. 오 이런 시인이 제대로 된 평가를 못 받고 그러는지 이해가 안 갑니다. 반명 별 그지 같은 시인이 엄청 대접받고는 하던데...
젊은애들 프렌차이즈로 키워서 덕을 보려는 건지... 젊은 수혈을 통해서 모색을 하는 건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문지사 그 촌스러운 디자인 좀 바꿨으면 합니다.


저는 이해가 안 가는 게 왜 김신용에 대한 평가가 별로 이루어지지 않죠 ?
사실 전 김신용을그냥 우연히 알게 되었어요. 환상통 이란 시 읽다가 뭔가 뒤통수 맞는 기분이 들어서
찾아보니 기성작가더군요.. 그래서알게 되었지
문단이 조명해서 알게 된 작가가 아닙니다...

수다맨 2013-11-20 2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사실 평가가 아예 안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언젠가 시인들 추천에 힘입어 2007년(2008년?)최고의 시집으로 "도장골 시편"이 뽑힌 적이 있었구요. 올해는 (곰곰발님이 언급해주신) '잉어'가 올해의 시로 뽑히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김신용 선생님 스스로 문단과는 거리를 두신다고 들었어요(문장 웹진이라는 사이트에서도 나옵니다만). 김신용 선생님도 문단에 딱히 친한 사람도, 아는 사람도 많지 않다고 하시구요. 그래서 그런지 칩거에 가까운 생활을 하시면서 계속 시작을 하신다고 합니다.

언젠가 저도 시인들을 우연찮게 만나서 곰곰발님이 했던 질문(김신용은 왜 창비나 문지에서 시집을 못 내는가?)을 했던 적이 있어요.그 분들 말로는 김신용 선생이 어느 진영(창비 or 문지)과도 친하게 지내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는 얘기를 해주더군요-_-;;;

곰곰생각하는발 2013-11-20 21:49   좋아요 0 | URL
오호, 그렇군요. 친하지 않으면 낼 수 없다라...ㅎㅎㅎㅎㅎ 좀 재미있네요.
오히려 출판사들이 좋은 시인을 찾아서 삼고초려하는 시대는 지났나 봐요...
메이저리그도 좋은 선수를 찾아 스카우터가 일일이 발품을 파는데....
이건 친해야지만 하니....ㅎㅎㅎㅎㅎ하여튼 시인들이 좋아할 시인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가만 보면 함민복 시인도 시인들이 좋아할 시인이에요.


하긴 요즘은 평론가들이 출판사 눈치 열심히 보더군요. 몰락의 에팈를 쓴 신형철도
인사말에서 제 책은 마지막에도 문학동네에서 나왔으면 좋겠네요. 홍홍홍...

이런 공치사를 써서 속으로 존나 웃었습니다. 평론가로써 기본이 안 됐구나....
벌써부터 줄타기에 꽤나 익숙한 멘트를 남기다니 하면서 말입니다.

요즘은 평론가도 그렇고 시인도 ㄱ렇고 모두 출판사 눈치나 보고 있으니 한심합니다.

2013-11-21 09: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1-21 10: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1-21 14: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1-21 15: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1-22 09: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카운슬러 민음사 모던 클래식 64
코맥 매카시 지음, 김시현 옮김 / 민음사 / 2013년 11월
평점 :
절판


 

 

 

 


 

 

 

 

 

 

연민이 배제된 공정함 !

 

 

코맥 매카시 소설'은 온라인 서점'에서 구매한 적이 없다. 발품을 팔아서 직접 서점에 가서 샀다. 이유는 딱히 없다. 배송 기간을 느긋한 마음으로 견딜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기다리기로 했다. 영화를 보고 소설을 읽을 것인가, 아니면 소설을 읽고 나서 영화를 볼 것인가. 잠시 고민하다가 영화를 보고 소설'을 읽기로 했다. 그러니깐 이 글은 소설을 읽고 나서 쓴 리뷰가 아니라 영화를 보고 나서 쓴 리뷰'이다. 내가 이 소설을 아직 읽지 않았으면서도 별 5개를 자신있게 매긴 이유는 명확하다. 매카시'니깐 !  후카시' 아니다. 느낌 아니까 ~

 

시나리오'는 영화를 만든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그 아무리 뛰어난 시나리오'라고 해도 영화로 만들어지지 못한다면 < 디워 >보다 좋은 시나리오'라고 할 수는 없다. LA 다저스 중간 계투 요원인 벨리사리오 투수가 형편없는 구질로 구원은커녕 승리'를 날려먹는다고 해도 그는 뛰어난 실력을 가진 투수'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메이져리그'에서 선수로 뛸 수 있다는 것은 상위 1% 이내일 때에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시나리오도 마찬가지'이다. 수많은 시나리오가 쏟아져 나오지만 정작 영화로 만들어지는 작품은 1%다. " 디워 시나리오 " 도 알고 보면 " 벨리 시나리오 " 같은 상위 1% 실력에 포함되는 메이져리그 선수 급'이다. 사실 문자로 작성된 시나리오'는 재미가 없다. 숙련된 배우의 입말'이 붙어야 생기'가 나지,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밍숭맹숭하다.

 

시나리오를 재미있게 읽기 위해서는 훈련이 필요하다. 하지만 < 카운슬러 > 시나리오'에 대해서는 걱정할 필요는 없다. 내가 아는 한, 코맥 매카시'보다 대사'를 멋지게 치는 작가는 보지 못했다. 그가 쓴 소설 <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 는 서사'는 물론이고 대사'가 숨이 막힐 정도로 뛰어났다. 힙합 정신'으로 말하자면 라임과 플로우'가 좋았다. 호흡이 짧은 대사'는 압축미를 살린 잠언록 같았다. 그는 잔인한 대사'일수록 아름다운 문장을 뽑아내는 보기 드문 작가이다. 뛰어난 소설가가 헐리우드에 입성해서 시나리오를 썼다가 망신 당하는 꼴을 수없이 본 사람들은 코맥 매카시가 스릴러 영화 시나리오를 직접 쓴다고 했을 때 걱정을 했지만 나는 그가 성공하리라 생각했다. 대부분의 소설가들이 시나리오를 쓸 때 실패하게 되는 이유는 소설가는 기본적으로 대사보다는 서술에 강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시나리오 대사'를 쓴다고 했으나 사실은 " 서술 형태로 쓰여진 대사 " 를 선보인 것이다. 그러니 배우들이 대사를 칠 때 입에 짝짝 붙기는커녕 물 위에 뜬 기름처럼 겉도는 것이다. 하지만 코맥 매카시는 소설가이면서도 시나리오 작가'보다 대사를 잘 치는 보기 드문 소설가'이다. 그래서 나는 그가 시나리오를 직접 쓴다고 했을 때 환호를 보냈다. 어쩌면 이 시나리오 작업은 차기작으로 대사로만 이루어진 소설을 쓰기 위한 워밍업( 준비 작업' )일지도 모른다. 그는 단 한번도 자신이 이룩한 문학스타일'을 고집한 적이 없다. 하루키가 하루키 스타일을 가지고 죽을 때까지 우려먹는다면 코맥 매카시는 매 작품마다 전작과는 다른 형식을 선보였다. < 로드 > 를 읽고 나서 < 핏빛 자오선 > 을 읽은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내 말을 이해할 것이다.

 

두 거장이 만났다. 코맥 매카시가 시나리오를 쓰고 리들리 스코트 감독이 영화를 만들었다. 각 분야에서 최고'라는 평을 받고 있는 고집 쎈 두 노인'이 만났으니 수직적 관계는 아닐 것이다. 그것은 일종의 혐업이요, 통섭이지 한쪽이 군림하는 작업 스타일이 될 수는 없다. 이 혐업이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면 불후의 명작'이 탄생하겠지만 한쪽 기'가 세서 기울어지면 어설픈 결과를 얻게 될 수도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영화 < 카운슬러 > 는 리들리 스코트 감독이 만들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시나리오 작가인 코매 매카시'만 눈에 띄는 영화였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파스빈더도 아니고 리들리 스코트도 아닌 코맥 매카시였다. 코맥 매카시에 대한, 코맥 매카시에 의한, 코맥 매카시를 위한 영화'였다. 내 눈엔 당신만 보이더라.

 

영화가 나쁘다는 소리는 아니다. 그는 코맥 매카시와 작업하면서 <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 를 뛰어넘는 걸작 스릴러 영화를 만들고 싶어 했지만  코맥 매카시'가 워낙 강렬하다보니 연출에서 눌린 맛이 난다. 자기 스타일이 분명한 리들리 스코트 감독'이 자신이 내야 할 목소리를 죽였다는 것은 감이 떨어졌다기보다는 코맥 매카시에 대한 예의 때문인 것 같다. 리들리 스콧 감독도 코맥 매카시 앞에서는 얌전한 고양이가 된 듯 싶어 웃음이 났다. 나이가 드니 서로 의지한다고나 할까 ? 하지만 영화 내용은 무시무시하다. 코맥 매카시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악인은 사실은 운명을 결정하는 신'에 가깝다. 판사 ( 핏빛 자오선 ) , 시거 (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 ○○○○ ( 카운슬러 ) 는 악인이 아니라 인간이 행한 악덕을 심판하기 위해 다가오는  검은 상복을 입은 저승사자'와 같다.

 

< 카운슬러 > 는 탐욕이 부른 권선징악'을 다룬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 태어난 것에 대한 비참을 다룬다. 운명이라는 이름을 가진 신은 자비로운 존재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신에게 의지하기 위한 힐링'일 뿐이다. 신은 무자비한 존재도 그렇다고 자비로운 존재도 아니다. 세종대왕은 백성을 가여삐여겨 한글을 맹글었지만 신은 인간을 가여삐여기지 않는다. 연민이 배제된 공정함, 그것이야말로 운명이라는 이름의 신'을 규정할 수 있는 정의'다. " 카운슬러 " 라고 불리우는 타락한 변호사가 마약 운반 작전에 개입되는 순간, 운명'은 일사분란하게 진행된다. 이 진행 과정에서 연민과 변명 그리고 탄식과 반성 따위가 만들어내는 휴머니즘은 없다. 그것은 마치 스타트 버튼을 누르면 60초 후에 터지는 시계 폭탄과 같다. 누르는 순간 이미 60초 후의 결과는 정해져 있다. 

 

수열은 한치의 오차 범위 없이 진행된다. 1,2,3,4,5...... 그리고는 초침이 60초를 지날 때 예정대로 폭발할 것이다. 종이에 쓰여진 비문은 수정이 가능하지만 심장에 새겨진 비문'은 고칠 수 없다. 잘못 쓴 문장을 고칠 수 없다면, 가장 좋은 방법은 구겨서 버리고 다시 쓰는 것이다. 영화 속 ○○○○은 무자비하다기보다는 자신이 맡은 임무를 성실히 수행하는 자'이다. 영화 < 카운슬러 > 는 돌이킬 수 없는 것에 대한 냉정'을 다룬다. 가차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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