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착한 가족극은 몇몇 눈에 띄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단점이 많은 작품이다. 그녀가 내놓은  단편집에 비하면 이번 장편소설은 기대 이하’다 ! 소설 속 주인공은 모두 피터팬 증후군을 앓고 있는 환자‘처럼 보인다. 주인공 부모에게는 세월에 따른 자각의 과정이 없다. 17살 때 고속버스에 올라타서 34살 때 버스에서 내려온 인물 같다. 그뿐인가 ? 이웃집 할아버지는 항문기에 집착하는 꼬마 한스 같다. 공교롭게도 유일한 어른은 조로에 걸린 주인공 소년’이다. 그들은 모두 항문기로 퇴행 중인 노인이거나 질풍노도의 시기에 머문 철없는 부모이거나 혹은 너무 늙은 애어른‘이다. 자기 나이에 맞는 인물은 아무도 없다. 한 편의 명랑만화’를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심각할 때 심각할 줄 알아야 하는데 심각할 때도 주인공들은 웃는다. 으, 하하하하하 !  내가 보기엔, 김애란의 < 두근두근... > 은 3분 발성법으로 1시간짜리 창‘에 도전한 느낌’이 든다. 그것은 마치 3분짜리 콩트를 60분 분량으로 늘린 것 같은 느낌이라는 말이다.   뷰, 티블 마인드- 하다.

 

- 두근두근 내 인생, 지나치게 뷰티풀마인드하다.

 

 

 

 


 

 

 

 

붓으로 글씨를 쓰기 전에 하는 일은

먼저 먹물을 덜어내는 일'이다.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했던가. 책에 관심을 두기 시작하면서 이웃들을 만나다 보니 각 분야에서 책을 내신 분이 꽤 된다. 소설'을 쓰는 소설가도 있고, 시를 쓰는 시인도 있으며 전문 번역가들도 있다. 이런 표현이 어쩔지는 모르겠으나 내가 아는 사람들은 모두 문단이나 출판계를 휘어잡을 만한 거목들은 아니어서 한 톨의 낟알이라도 되고 싶은 마음에 리뷰'를 쓴다. 대부분은 기본기가 탄탄해서 주례사'를 위한 허튼 소리'를 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오, 이웃이여 ! 감사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 모두 > 가 아니라 < 대부분 > 이라는 데 있다. 가끔은 수준이 떨어져서 혹평을 해야 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혹평을 하자니 아는 척하며 보낸 살가운 얼굴이 눈에 밟히고, 그렇다고 칭찬을 하자니 수준이 떨어지는 거라. 이럴 때는 그냥 감상평을 쓰지 않는 게 최선책'이다.

 

그런데 반드시 써야 하는 입장에 놓인 사람들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 덕목'까지는 아니더라도 문학평론'은 달달한 칭찬과  인지상정에 끌린 격려'보다는 챙챙한 비판과 날 벼린 언어'가 날카로워야 한다. 나는 문학평론은 < 꽃 > 도 좋지만 < 칼 > 을 잘 다스릴 때 좋은 글이 된다고 믿는다.  내가 신형철 평론집 < 몰락의 에티카 > 를 지지하지 않는 이유는 그가 싫은 소리'를 낼 줄 모른다는 점 때문이었다. 칭찬은 후하고 비판은 야박하다. < 몰락의 에티카 > 는 마치  별 ★★★★★로  알라딘 리뷰 목록'을 모두 채운 서재 같다. 칼보다는 꽃만 보인다.  평론가에게 있어서 화려한 문장력은 장점 가운데 하나'가 될 수는 있지만 문장력"만"  뛰어나면 오히려 그것은 단점이 된다. 그는 왜 모든 작품에 꽃을 그렸을까 ? 그는 원래부터 착한 교회 오빠 스타일'이었을까 ? 구구절절 듣기 좋은 소리만 하는 평론가보다는 차라리 왕비호 같은 평론가가 낫다.  

 

나는 신형철 평론'보다는 글이 투박해서 쪼는 맛(읽는 맛)은 없지만 거대 문학권력에 대해 또라이'처럼 저돌적으로 밀어부치는 권성우와 이명원 그리고 김명인의 벼린 칼'이 더 마음에 든다. 눈치 안 보고 하고 싶은 말 다 하는 자세야말로 평론가에게는 중요하다. 평론가가 " 하고 싶은 말 " 을 " 차마 하지 못한 말 " 로 바꿔서 서랍 속에 넣어두면, 그것이 쌓일수록 평문(評文)은 뛰어난 작문 실력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말 그대로 평문(平文)이 되지 않을까 ? 눈치 안 보고 하고 싶은 말을 다 해서 차마 하지 못한 말'은 전혀 없었던 김수영'은 [ 히프레스 문학론 ] 이라는 글에서 이런 쓴소리를 하셨다고 한다. " 젊은 비평가들의 작품평을 보면서 이따금씩 느끼는 것은, 아무래도 그들의 비평이 눈치를 보면서 '적당히' 쓰고 있다는 미흡감이다. " 그가 이 글을 쓴 년도가 1964년이니 강산이 다섯 번은 바뀌고도 남을 지금도 여전히 젊은 비평가들이 눈치를 보면서 적당히 쓰고 있다니 오호, 통재'다.

 

김애란의 실패한 서사 < 두근두근내인생 > 을 두고 평론가나 동료 소설가들이 " 놀라서 다시 본다 " 따위'를 남발할 때 난감하다. 정말 이 소설은 놀라서 다시 볼 만큼 완성도가 높은 소설이었을까 ? 주인공 < 아름 > 은 에밀 아자르의 모모'와 권정생의 몽실'을 반반 섞어놓았지만 아름은 모모도 아니고 몽실도 아닌 어정쩡한 캐릭터가 되고 말았다. 서예가가 붓으로 글을 쓰기 전에 하는 일은 붓에 담긴 먹물의 양을 적당한 양으로 덜어내는 일'이다.  먹물이 넘치면 스며들지 못하고 결국에는 번지게 된다. 과유불급이란 소리가 있지 않은가 ?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 감정 조절을 하지 못해 감정이 과잉되면 유치한 글이 된다. 그러므로 깊은 밤에 슬픈 음악을 들으며 편지를 쓰다가는 망신을 당하는 수가 있다.  다음날 당신은 그 편지를 읽다가 얼굴이 홧홧해서 찢어버릴 것이 분명하다.

 

또한 먹물이 잔뜩 낀 문장은 말 그대로 꼰대스러운 글이 되기 쉽다. 평론가가 칭찬한답시고 지나치게 흥분하면 호들갑이 되고 반대로 비판한답시고 칼을 너무 천박하게 휘두르면 망나니'가 된다. 이 또한 과잉의 문제이다. 이래저래 소설가와 평론가 모두 글을 쓰기 전에 먹물을 덜어내는 것이 좋다. 화려한 수사의 범람은 결핍'보다 나쁘다. < 두근두근내인생 > 은 강약 조절'에 실패했다. 슬픈 서사를 명랑하게 끌고 나건 것은 좋으나 그 명랑은 지나쳤다. 김애란'은 먹물을 잔뜩 흡수한 붓으로 붓글씨'를 썼다. 이 소설이 형편없다는 소리가 아니다. 나에게 이 소설은 나쁘지도 좋지도 않았다. 다른 이라면 모를까, 김애란 소설이 나쁘지도 좋지도 않다는 것은 결국 나쁘다는 소리이다. 김애란이니깐 가능한 역설이다. 소설이 좋은가 나쁜가는 취향의 문제이니 상관없지만 이 소설이 좋다고 해도 놀라서 다시 볼 만큼 훌륭한 소설은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

 

평론'이 트위터 40자평'으로 변질되면 그것은 출판사를 위한 광고 멘트'처럼 들린다. 만약에 이문열에 대해 비판적 생각을 가지고 있는 이가 있다고 치자. 공교롭게도 그 평론가가 민음사에서 운영하는 문예지 편집위원이라고 한다면 과연 그는 이문열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가할 수 있을까 ? 꽃을 말할 수는 있으나 칼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기껏해야 꽃을 말하느니 차라리 침묵을 선택할 것이다. 같은 이유로 창작과비평 편집위원들이 과연 신경숙의 < 엄마를 부탁해 > 를 신랄하게 비판할 수 있을까 ? 이 소설이 벌어들인 수익을 감안하면 쓴소리는 엄두도 못낼 것이다. 설령, 용기를 내서 쓴다고 해도 출판사에서 너그럽게 볼 턱이 없다. 이처럼 문학평론가들이 출판사와 독자 사이에서 쇼핑호스트'가 되어 중간 마진을 챙기면 곤란하다.

 

소설가는 띄어쓰기를 무시한 채 모두 붙여서 문장을 완성하는 사람이고, 평론가는 소설가가 붙여 놓은 문장에 일일이 띄어쓰기 교정을 보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다. 무슨 말인가 하면 평론가는 띄어쓰기가 되지 않은 문장에서 오는 오해와 오독을 피하기 위해 친절하게 띄어쓰기를 해서 의미를 정확히 하는 것이다. 소설가는 " 아버지가방에들어갔다. " 라고 쓴다. 그러면 평론가는 이 텍스트를 가지고 " 아버지가 ^ 방에 ^ 들어갔다. " 고 띄어 쓰거나  " 아버지 ^ 가방'에 ^ 들어갔다 " 라고 띄어 쓰기를 할 것이다. 정답은 없다. < 틀리다 > 가 아니라 < 다르다 > 의 문제이니 말이다. 평론가가 작품을 어떤 식으로 해석하는냐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존 스타인벡'인지 존스타인 벡인지 헷갈려서 항상 찾아보게 되는 존 스타인벡의 소설이라면 아버지는 방에 들어갈 터이지만, 로날드 달'이라면 아버지가 가방 안으로 들어갈 수도 있다.

 

 리얼리티냐 판타지냐에 따라 아버지는 < 방 > 이나 < 가방 > 에 들어갈 것이다. 좋은 소설이란 소설가가 띄어쓰기'를 완벽하게 한 채 소설을 완성시키는 것'이 아니라 독자들이 띄어쓰기를 할 수 있도록 붙여서 완성한 소설이다. 띄어쓰기를 하지 않기로 유명한 사람이 바로 카프카'다.  띄어쓰기에 따라서 소설 속 아버지는 가방 속으로 들어가기도 하고, 기방, 심지어는 유방 속으로 들어갈 수도 있다. 유방 속이라... 맙소사. 이 얼마나 행복한가 ! 행간읽기란 결국 띄어쓰기가 되지 않은 텍스트'를 일일이 띄어쓰기 표기법으로 바꾸는 즐거움이다. 나는 평론가'라고 쓰고 띄어쓰기 교정자'라고 읽는다.

 

거대 출판사'들은 모두 자사 문예지'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많은 평론가들이 문예지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특정 출판사 문예지에 소속된 평론가들이 특정 출판사의 청탁을 받고 글을 쓴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한솥밥 먹는 사이란 말이다. < 식구 > 에 대한 사전적 정의가 끼니를 같이하는 사람'이라면 출판사와 그 출판사에 소속된 문예지 편집위원은 지구촌 가족'이다. 웃는 얼굴에 침 뱉으랴 ? 청탁 받은 소설이 후져도 리얼리즘적 서술에서 벗어났다 싶으면 " 작가의 전복적 상상이 재기발랄하다 " 고 쓰면서 어정쩡하게 물타기를 한다거나, 감정 조절이 되지 않아서 유치한 소설이라고 속으로 생각하지만 " 작가의 섬세한 감성이 빚은 빛나는 떨림 " 따위로 평론을 한다. 누누이 말하지만 한솥밥 먹는 식구끼리 웃는 얼굴에 침 뱉기란 쉬운 게 아니다.

 

문예지를 끼고 쏟아내는 문학평론'보다는 차라리 그 어떤 출판사 문예지에도 소속되지 않고 독립적으로 활동하는 문학평론가의 평론이 좋다. 평론가는 눈 덮인 킬리만자로의 표범이 되어야지 떼로 우르르 몰려다니는 하이에나가 되면 안된다는 소리이다. 채점 방식이 적용되는 스포츠'에서는 최고점과 최저점을 제외한 나머지 점수를 가지고 채점을 한다. 그 이유는 선수의 국적이 심판의 국적과 같을 경우 지나치게 후한 점수를 주거나 자국 선수를 위해 라이벌인 타국 선수에게 지나치게 낮은 점수를 줄 때 생기게 되는 병폐를 막기 위해서다. 그것이 공정한 심사'다. 결국 대형출판사에서 운영하는 문예지'에서 편집위원으로 활동하는 평론가가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책의 평론을 쓴다는 것은 한국 심판이 한국 선수에게 후한 점수를 주는 비슷하다. 페어플레이인가 ? 아니다, 더티플레이'다.

 

눈치 안 보고 할 말 안 할 말 다 해서, 변죽만 울리다가 어정쩡하게 매조지하는 속 보이는 심보 때문에 속(심중)이 안 보이는 평론'보다는 속이 시원하다. 평론가들이 하도 전복적상상, 전복적상상, 전복적상상, 전복적상상, 전복적상상, 전복적상상, 전복적상상' 이라고 말해서 전복 하면 일은 안 하고 상상만 하는 게으린 짐승이 되어버린 이 시점에서 이제는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당당하게 전복의 명예회복을 위해 싸워야 한다. 이제는 < 전복 > 을 항상 상상만 하는 동물이라고 호도하지 말자. 평론가들이 전복적 상상을 높게 평가한다면 전복 선생은 지금쯤이면 스티븐 킹'이나 베르나르에  버금가는 소설가가 되었을 것이 분명하다. 전복 선생은 그저 평범한 소시민으로 남고 싶어 한다. 나, 한마디 하련다.

 

" 전복 선생님은 한겨울 아랫목에 몸을 지지며 엉덩이나 긁으면서 생산적이지 않은 상상만 하는 분이 아니다. 바다 생태계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도 하며 이런저런 생각에 잠 못 드는 밤에 많다. 조개 속의 게'라는 인종차별적 속담'에 울분을 삼키며 조개와 게를 비롯한 동료의 인권 신장을 위해 싸우는 분이다. 평론하시는 분들, 제발 할 말 없다고 전복적 상상 운운하지 마시라. 우리가 보기엔 당신들이 전복적 상상'이라며 설레발을 친 소설치고 좋은 소설 본 적 없다. 당신들은 별것도 아니면서 툭하면 인간적 고뇌, 인간적 고뇌, 인간적 고뇌'를 씨부리던데 인간만 고뇌'가 있는 게 아니다. 뇌가 있으면 두뇌가 있는 법이고, 두뇌가 있으니 고뇌'가 있는 것이다. 고래처럼 큰 놈만 뇌가 있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전복이나 게도 뇌가 있다. 잠시 생각해 봐라, 그래 안 그래 ? 전복 선생님도 전복적 고뇌'에 빠지고는 한다. 전복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하자. 부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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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린 2013-11-23 2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두근두근 내 인생 홍보 글귀는 볼 때마다 얼굴이 후끈후끈.
거기에 홀려서 책을 샀더니 엄청 후회..

곰곰생각하는발 2013-11-23 22:36   좋아요 0 | URL
오셧구랴.. 그날 잘 들어가셨수 ? 차 있었나 모르겠군요.
진짜 두근두근 홍보 쪽팔리죠. 정도껏 해야지...
황구라도 나서서 설레발을 치기나 하고................
소설 깨나 써으면 이 소설이 별로 좋은 소설은 아니라는 거 뻔히 알면서 말이죠...

rtour 2013-11-23 2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루 생일 디스 모임은 재미있었수? 후기는 네이버 블로그에,모임 공지도 거기였으니.

곰곰생각하는발 2013-11-24 00:55   좋아요 0 | URL
나턀야와 오쉬프가 없으니 재미는 반감이 되었으나 작품의 질은 1000000000000배로 올랐습니다.
둘이 없으니 이야기 품격이 올라가더군요......

2013-11-24 03: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1-24 03: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rtour 2013-11-24 1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럴 줄 알았음 참석하는 것인데..아쉽.

곰곰생각하는발 2013-11-24 13:07   좋아요 0 | URL
사실 전 말했다시피 보쌈했잖아요. 그거 아무도 안 먹어서 제가 3일 동안 먹었는데
또 식당 가서 보쌈 먹으려니 영 안 땡기더라고요. 보쌈 하나 시키고 다른 테이블엔
닥복음탕 시킬려고 했는데 몇몇이 늦게 오는 바람에 보쌈만 먹고 1차는 종쳤습니다.
참석하셔서 빛나는 자리를 만드셔야 했습니다.

엄동 2013-11-25 1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야무진 단편에 비해 허술한 장편
꽉꽉 여문 단편에 비해 2프로 부족한 장편
빵빵터지는 단편에 비해 어색한조소가 터지는 장편


그래도 전
김애란을 애정합니다 ㅎ

곰곰생각하는발 2013-11-25 14:32   좋아요 0 | URL
저도 김애란 광팬입니다.
말씀대로 단편에 비해 완성도가 꽤 떨어졌다고나 할까요....
빵빵 터지는 단편에 비해 장편은 웃기지도 시니컬하지도 않았어요.
하여튼 김애란 만세...

윤스리 2013-11-26 1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함돈균 평론가도 신형철 평론가가 모든 작품을 최고라는 말하는 식의, 안 좋게 보면 '몸 사리는' 평론을 비판했던 적이 있었는데 보편성과 특수성이란 관점에서 평론의 맛은 자신이 지향하는 문학론, 그 '지향점'에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 그런데 예전에 조해진 소설가의 천사들의 도시에 신형철 평론가가 쓴 소리했던 게 갑자기 생각나네요 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3-11-26 13:03   좋아요 0 | URL
전 신형철 평론가가 김연수'에 대해서 " 그의 최고작은 항상 신작 " 이라고 말한 거 보고 웃었던 기억이 나네요.
개인적으로 김연수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일수도 있으나....
난 김연수 소설 좋은 거 모르겠더라고요.....

만사오케이... 요거 위험합니다.
차라리 시니컬한 평론가가 더 솔직해 보입니다.

yamoo 2013-11-26 17: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완전 동감! 제 생각과 똑같은 곰발님에게 추천 만개~
쓰신 논조가 완존 제 생각과 일치~^^

곰곰생각하는발 2013-11-26 17:50   좋아요 0 | URL
일치하니.. 우리 찌찌뽕이나 합시다. 찌찌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