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운슬러 민음사 모던 클래식 64
코맥 매카시 지음, 김시현 옮김 / 민음사 / 2013년 11월
평점 :
절판


 

 

 

 


 

 

 

 

 

 

연민이 배제된 공정함 !

 

 

코맥 매카시 소설'은 온라인 서점'에서 구매한 적이 없다. 발품을 팔아서 직접 서점에 가서 샀다. 이유는 딱히 없다. 배송 기간을 느긋한 마음으로 견딜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기다리기로 했다. 영화를 보고 소설을 읽을 것인가, 아니면 소설을 읽고 나서 영화를 볼 것인가. 잠시 고민하다가 영화를 보고 소설'을 읽기로 했다. 그러니깐 이 글은 소설을 읽고 나서 쓴 리뷰가 아니라 영화를 보고 나서 쓴 리뷰'이다. 내가 이 소설을 아직 읽지 않았으면서도 별 5개를 자신있게 매긴 이유는 명확하다. 매카시'니깐 !  후카시' 아니다. 느낌 아니까 ~

 

시나리오'는 영화를 만든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그 아무리 뛰어난 시나리오'라고 해도 영화로 만들어지지 못한다면 < 디워 >보다 좋은 시나리오'라고 할 수는 없다. LA 다저스 중간 계투 요원인 벨리사리오 투수가 형편없는 구질로 구원은커녕 승리'를 날려먹는다고 해도 그는 뛰어난 실력을 가진 투수'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메이져리그'에서 선수로 뛸 수 있다는 것은 상위 1% 이내일 때에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시나리오도 마찬가지'이다. 수많은 시나리오가 쏟아져 나오지만 정작 영화로 만들어지는 작품은 1%다. " 디워 시나리오 " 도 알고 보면 " 벨리 시나리오 " 같은 상위 1% 실력에 포함되는 메이져리그 선수 급'이다. 사실 문자로 작성된 시나리오'는 재미가 없다. 숙련된 배우의 입말'이 붙어야 생기'가 나지,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밍숭맹숭하다.

 

시나리오를 재미있게 읽기 위해서는 훈련이 필요하다. 하지만 < 카운슬러 > 시나리오'에 대해서는 걱정할 필요는 없다. 내가 아는 한, 코맥 매카시'보다 대사'를 멋지게 치는 작가는 보지 못했다. 그가 쓴 소설 <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 는 서사'는 물론이고 대사'가 숨이 막힐 정도로 뛰어났다. 힙합 정신'으로 말하자면 라임과 플로우'가 좋았다. 호흡이 짧은 대사'는 압축미를 살린 잠언록 같았다. 그는 잔인한 대사'일수록 아름다운 문장을 뽑아내는 보기 드문 작가이다. 뛰어난 소설가가 헐리우드에 입성해서 시나리오를 썼다가 망신 당하는 꼴을 수없이 본 사람들은 코맥 매카시가 스릴러 영화 시나리오를 직접 쓴다고 했을 때 걱정을 했지만 나는 그가 성공하리라 생각했다. 대부분의 소설가들이 시나리오를 쓸 때 실패하게 되는 이유는 소설가는 기본적으로 대사보다는 서술에 강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시나리오 대사'를 쓴다고 했으나 사실은 " 서술 형태로 쓰여진 대사 " 를 선보인 것이다. 그러니 배우들이 대사를 칠 때 입에 짝짝 붙기는커녕 물 위에 뜬 기름처럼 겉도는 것이다. 하지만 코맥 매카시는 소설가이면서도 시나리오 작가'보다 대사를 잘 치는 보기 드문 소설가'이다. 그래서 나는 그가 시나리오를 직접 쓴다고 했을 때 환호를 보냈다. 어쩌면 이 시나리오 작업은 차기작으로 대사로만 이루어진 소설을 쓰기 위한 워밍업( 준비 작업' )일지도 모른다. 그는 단 한번도 자신이 이룩한 문학스타일'을 고집한 적이 없다. 하루키가 하루키 스타일을 가지고 죽을 때까지 우려먹는다면 코맥 매카시는 매 작품마다 전작과는 다른 형식을 선보였다. < 로드 > 를 읽고 나서 < 핏빛 자오선 > 을 읽은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내 말을 이해할 것이다.

 

두 거장이 만났다. 코맥 매카시가 시나리오를 쓰고 리들리 스코트 감독이 영화를 만들었다. 각 분야에서 최고'라는 평을 받고 있는 고집 쎈 두 노인'이 만났으니 수직적 관계는 아닐 것이다. 그것은 일종의 혐업이요, 통섭이지 한쪽이 군림하는 작업 스타일이 될 수는 없다. 이 혐업이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면 불후의 명작'이 탄생하겠지만 한쪽 기'가 세서 기울어지면 어설픈 결과를 얻게 될 수도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영화 < 카운슬러 > 는 리들리 스코트 감독이 만들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시나리오 작가인 코매 매카시'만 눈에 띄는 영화였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파스빈더도 아니고 리들리 스코트도 아닌 코맥 매카시였다. 코맥 매카시에 대한, 코맥 매카시에 의한, 코맥 매카시를 위한 영화'였다. 내 눈엔 당신만 보이더라.

 

영화가 나쁘다는 소리는 아니다. 그는 코맥 매카시와 작업하면서 <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 를 뛰어넘는 걸작 스릴러 영화를 만들고 싶어 했지만  코맥 매카시'가 워낙 강렬하다보니 연출에서 눌린 맛이 난다. 자기 스타일이 분명한 리들리 스코트 감독'이 자신이 내야 할 목소리를 죽였다는 것은 감이 떨어졌다기보다는 코맥 매카시에 대한 예의 때문인 것 같다. 리들리 스콧 감독도 코맥 매카시 앞에서는 얌전한 고양이가 된 듯 싶어 웃음이 났다. 나이가 드니 서로 의지한다고나 할까 ? 하지만 영화 내용은 무시무시하다. 코맥 매카시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악인은 사실은 운명을 결정하는 신'에 가깝다. 판사 ( 핏빛 자오선 ) , 시거 (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 ○○○○ ( 카운슬러 ) 는 악인이 아니라 인간이 행한 악덕을 심판하기 위해 다가오는  검은 상복을 입은 저승사자'와 같다.

 

< 카운슬러 > 는 탐욕이 부른 권선징악'을 다룬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 태어난 것에 대한 비참을 다룬다. 운명이라는 이름을 가진 신은 자비로운 존재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신에게 의지하기 위한 힐링'일 뿐이다. 신은 무자비한 존재도 그렇다고 자비로운 존재도 아니다. 세종대왕은 백성을 가여삐여겨 한글을 맹글었지만 신은 인간을 가여삐여기지 않는다. 연민이 배제된 공정함, 그것이야말로 운명이라는 이름의 신'을 규정할 수 있는 정의'다. " 카운슬러 " 라고 불리우는 타락한 변호사가 마약 운반 작전에 개입되는 순간, 운명'은 일사분란하게 진행된다. 이 진행 과정에서 연민과 변명 그리고 탄식과 반성 따위가 만들어내는 휴머니즘은 없다. 그것은 마치 스타트 버튼을 누르면 60초 후에 터지는 시계 폭탄과 같다. 누르는 순간 이미 60초 후의 결과는 정해져 있다. 

 

수열은 한치의 오차 범위 없이 진행된다. 1,2,3,4,5...... 그리고는 초침이 60초를 지날 때 예정대로 폭발할 것이다. 종이에 쓰여진 비문은 수정이 가능하지만 심장에 새겨진 비문'은 고칠 수 없다. 잘못 쓴 문장을 고칠 수 없다면, 가장 좋은 방법은 구겨서 버리고 다시 쓰는 것이다. 영화 속 ○○○○은 무자비하다기보다는 자신이 맡은 임무를 성실히 수행하는 자'이다. 영화 < 카운슬러 > 는 돌이킬 수 없는 것에 대한 냉정'을 다룬다. 가차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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