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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한국사회 - 단지 공화국에 갇힌 도시와 일상
박인석 지음 / 현암사 / 2013년 7월
평점 :
절판
아, 불쌍한 내 비둘기 ! 고래 뱃속에 갇혔네 :
네 개의 의자, 세 개의 룸,
두 개의 화장실 그리고 단일 가족
" 네 개의 의자, 세 개의 룸, 두 개의 화장실, 단일 가족 " 은 한 가지 공통된 욕망을 소유하고 있다. 4인 가구로 구성된 가족이 꿈꾸는 이상적 주거 공간이라는 점이다(네 개의 의자는 4인용 식탁을 의미한다).
건설업자는 그동안 아버지, 어머니, 아들, 딸로 구성된 4인 주거 환경에 맞춰 방 3개짜리 아파트를 대량 건설했다. 숫자 4는 보통 시민이 꿈꾸는 욕망이다. 그렇다면 도발적 질문을 던져보자. 4인 가족 구성이 보편적이기에 아파트 주거 형태가 4인 가족을 기준으로 아파트가 건설된 것일까, 아니면 4인 주거 형태의 아파트에 맞춰 주거 소비자가 무의식적으로 가족 계획을 4인으로 구성한 것일까 ? 후자인 경우는 황당한 모순처럼 들리지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 덮어놓고 낳다 보면 거지꼴 못 면한다 " 는 60년대 표어는 아파트 건설 붐이 일었던 70년대 들어서면서 " 아들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 라는 계획으로 수정되었는데,
지금의 4인 가족 형태는 4인 주거 공간의 결과라는 점을 부정할 수 없다. 이처럼 아파트 공화국은 국가의 통제 아래 이루어진 결과'다. 사실 서구 사회에서 아파트'는 실패한 도시 행정의 표본이었다. 어느 유명한 프랑스 사회학자가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는 강남 아파트 단지를 보며 던진 " 여기가 한국의 할렘가입니까 ? " 라는 질문은 서구 사회에서 아파트라는 집단 주거 형태가 실패한 주거 공간이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근대 건축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르 코르뷔지에가 1952년에 건설한 " 유니테 다비타시옹 Unité d'Habitation1) " 는 현대 아파트의 효시라 할 수 있는데
수직 도시'라는 미학적 상상력은 당시에는 파격이라 할 수 있었다. 이 아파트는 17층 높이에 총 337채. 길이는 137미터였고 너비는 20미티 그리고 높이는 61미터나 됐다(한지붕 아래 수용할 수 있는 주거민은 1600명이었다). 5층 내부에는 각종 상점과 호텔이 있었고 옥상은 하늘 정원 광장으로 구성되었다. 또한 놀이터, 벤치, 수영장 따위의 체육 시설이 있었다. 무엇보다도 칸딘스키와 호앙 미로를 연상케 하는 아파트는 미학적으로도 가치가 높은 건축물이었다. 그런데 모든 것을 다 갖춘 것처럼 보이는 유니테 다비타시옹은 완공된 이후에도 미분양 상태로 남았다.
사람들은 그곳을 살기 좋은 집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그냥 기념 건축물 정도로만 인식한 것이다. 아파트가 부의 상징이 되어버린 대한민국 납득이-들'은 모든 편의시설을 갖췄고 미학적으로도 매우 뛰어난 이 건물이 실패한 주거 모델이 되었다는 사실에 납득이 안된다고, 납득이 안된다고, 납득이 안된다고 궁시렁거렸을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미학적 측면이나 건축학적 측면에서 보면 걸작에 가까운 유니테 다비타시옹은 왜 주거 공간으로써는 낙제 점수를 받았던 것일까 ? 르 코리뷔지에가 만들고 싶었던 것은 한지붕 아래 337채가 아니라 한지붕 아래 마을을 건설하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건물 안에 동네를 구성하는 모든 요소를 삽입해서 건물 내 마을을 건설하는 계획이었던 것이다. 입주민 여러분에게 알립니다 ! 옥상에 놀이터가 있으니 놀 때는 옥상에 가서 놀고, 세탁소는 7층에 있으니 7층으로 가시기 바랍니다아 ~ 다시 한번 알려드립니다아...... 하지만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자신의 일상 행위를 일상 생활 동선 안에서 해결하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퇴근길에 마을 초입에 있는 빵집에 들려 빵을 사기를 원했고, 빵을 사고 오는 골목길에 위치한 세탁소에서 세탁한 옷을 찾기를 원했다.
사람들은 아파트 내 근린 생활 시설을 이용하는 것이 마을 곳곳에 산재한 상점을 이용하는 것보다 속도, 편리성, 효율성 면에서 상대적으로 높다 해도 편리보다는 차라리 불편의 일상적 습속을 원했다. 다시 말해서 옛날 도시(마을)이 가지고 있는 느린 정감을 느끼고 싶었던 것이다. 유니테 다비타시옹의 실패는 근대주의에 대한 반성인 셈이다.


이 집단 주거 공간은 서구 주류 사회에 안착하지 못했지만 대한민국에서는 성공한 주거형 궤짝'으로 성장한다. 미래 라이프를 꿈 꾸십니까 ? 그렇다면 여기 코리안 스타일 주거형 궤짝으로 입주하십시오 ! 똥은 이 자리에서 싸셔야 합니다. 이 아파트의 규칙이거든요 ~ 그렇다면 실패한 주거형 궤짝이 대한민국에서는 부를 상징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 그 이유는 한국인 특유의 특성이라고 일컫는 " 고립 불안 " 에서 찾을 수 있다. 저잣거리 입말로 쉽게 풀자면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불안 심리요, 군집 본능이다. < 집단 ㅡ 속 > 이 가장 안전한 < 집 ㅡ 단속 > 이라고 판단하는 것이다. 아파트 단지는 단지 내 주민들에게는 공동체이자 결사체'이다. 이처럼 아파트 공화국은 가족주의의 주거적 변형인 셈이다.
위에서도 지적했듯이 아파트 단지가 건설하는 것은 비단 아파트만은 아니다. 아파트 단지는 저마다 완벽한 마을을 단지 안에 갖춰놓고 경쟁하고 있다. 단지 안에는 놀이터, 공원, 녹지, 휴게 공간, 운동 시설은 물론이고 육아시설까지 갖춰진 형태로 고급화를 선언하며 성장하고 있다. 당연히 마을의 요소-들'을 단지 안에 많이 만들수록 가격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아파트를 구매하는 소비자는 아파트와 함께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마을 이용권(회원권)도 구매하는 것이다. 그런데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마을을 이용할 수 있는 회원권을 돈을 주고 사는 것은 소비자 입장에서 보면 사기에 가깝다.
사실 놀이터, 공원, 녹지, 휴게 공간, 운동 시설 따위는 국가가 제공해야 할 공공재이기 때문이다. 유니테 타비타시옹이 실패한 이유이기도 하다. 프랑스 파리는 전체 면적 중 1/4이 녹지이며 공원이고, 각종 근린 생활 공간도 무상으로 제공된다. 굳이 돈을 주고 마을 시설 이용권을 살 필요가 없는 것이다. 아파트는 토종 마을을 파괴하는 외래어종'이다. 중요한 것은 살 만한 내 집이 아니라 살 만한 동네'이다. 그러니까 33평 아파트, 네 개의 의자, 세 개의 룸, 두 개의 화장실, 단일 가족에 해당되는 당신은 고래 뱃속에서 살아가는 요나이다. 그리하여 나는 말하노라. 아, 불쌍한 내 비둘기2) ! 캄캄한 고래 뱃속에 갇혔네 ■
1) Unité d'Habitation는 프랑스어로 " 주택 집합 " 이라는 뜻이다
2) 요나는 히브리어로 비둘기란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