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 명한다, 哭을 금하라 :
여 인 천 하
정희진은 어느 강연에서 " 나는 페미니스트가 아니다 " 라고 주장한 적이 있다. 아닌 게 아니라 그는 책 날개에 자신을 평화학 연구자라고 소개한다.
대한민국 1세대 페미니스트라는 유명세와는 어울리지 않는 알쏭달쏭한 포지션이다. 의중은 모르겠으나 분명한 것은 페미니스트란 테두리에 자신을 한정하는 것에 대하여 경계하는 눈치다. 하지만 이제는 그녀의 전략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 것도 같다. 여성학보다는 평화학이 두루두루 확장성이 높기 때문이 아닐까 ? 한국 사회에서 여성학은 비단 여성에 한정되는 문제가 아니라 한국 사회 전체에 던지는 화두이다. 여성에 대한 정당한 대우 없이는 그 어떤 문제도 해결될 수 없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된다. 여성학, 평화학, 경제학, 정치학 영역에서 중심이 되어야 할 것은 약자에 대한 이해와 배려 그리고 모색이다.
학문이 강자 중심의 서사가 될 때 여성학은 이대 나온 여자의 사치스러운 교양에 머물 것이고, 평화학은 제국주의에 대한 변명이 될 것이며, 경제학은 신자유주의를, 정치학은 처세술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술(術)이지 -학(學)이 아니다. 연예 오락 방송 프로그램에서 남성 패널들이 못생긴 여자에게는 실망하는 표정을 보이면서 아름다운 여자에 대한 지나친 환대를 보일 때마다 한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누누이 하는 말이지만 남성이 행복한 국가보다는 여성이 행복한 국가가 더 나은 세상이고, 비장애인이 편리한 시설보다는 장애인이 편리한 시설이 더 나은 세상이다.
같은 이유로 짐승의 생명을 천시하는 사회는 인간의 생명을 존중하지 않는 사회이다. 개를 끌고 거리를 산책할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도시 거리를 인간의 전유물로 생각하며 눈 훌긔는 사람을 볼 때마다 나는 속으로 점찮게 이렇게 말한다. " 개똥에 쌈 싸 드셔 ~ " 끝으로 박근혜를 볼 때마다 강자를 위한 여성학이, 경제학이, 정치학이 위험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했던 말 또 하게 되지만 약자를 배제한 강자 중심 서사는 學이 아니라 術이다. 박근혜는 정치인이 아니라 기술자'다. 정치와 권력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처럼 보이지만 곰곰이 따지고 들어가면 떼려야 뗄 수 있는 관계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정치를 이해한다는 것과 권력에 집착한다는 것은 다르다. 노무현은 바른 정치를 위해서라면 권력 의지를 포기할 의도가 있었던 정치인이었지만 박근혜는 정치에 대해서는 무지했던 반면 권력에 대한 욕망만 " 우주적 " 이었다. 비극은 바로 이 엇박자에 있다. 혹자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빗대어 여인천하'라거나 강남 아줌마 게이트라고 조롱하며 여자는 집에서 밥이나 해야 된다고 주장한다면 똑같은 방식으로 반응하는 미러렁으로 되돌려줄 수도 있다. 그동안 한국 정치는 남인천하였으니 말이다, 한국 남성이여, 징징거리지 말자. 연민이 타자를 향하지 않고 자신에게 향할 때 그보다 꼴보기 싫은 신파는 없다. 그리하여..... 나는 너에게 명한다. 곡(哭)을 금하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