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 유 하 는   자 의   슬 픔  :

 

 

 

 

 

 


맞지 않은 아이

  

                                                                                                          아라비아 숫자 < 4 > 는 동양에서는 불길한 수(數)이지만 가족 구성만 놓고 보면 " 4人 가정(아버지, 어머니, 아들, 딸로 구성된) " 가장 이상적인 수'이다, 모자라지도 않고 넘치지도 않는 구성이니까 !   그렇기에 < 4인용 식탁 > 이 식탁의 디폴트 값'인 이유이기도 하다.

여기 성비가 균형을 완벽하게 이룬 이상적인 4인 가족이 있다. 하지만 " 한집안 온 가족 " 이 모여 저녁 식탁'에 모인 적은 없었다. 이 가족에게 저녁이 있는 풍경은,   없었다. 그러니까 4인 가족이었지만 4인용 식탁은 사치에 불과했다.  2인용 식탁만으로도 충분했으니까. 아버지는 가정 폭력의 가해자'였고 어머니와 아들은 피해자'였다. 딸은 예외였다. 아버지는 유독 딸을 좋아했기에 딸에게 손지검을 한 적은 없었다고 한다. 가정 폭력에 시달렸던 아이들이 성인이 되면 으레 그렇듯이, 성인이 된 딸은 행복한 가정을 꾸리지 못한다. 행복한 결혼을 꿈꿨지만 1년만에 이혼으로 끝난다.

내 인생은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                           딸은 억울하다, 억울하다, 억울하다. 그녀가 자신을 불행으로 이끈 가해자로 지목한 사람은 때리는 아버지가 아니라 매 맞는 어머니와 매 맞는 남동생'이었다.  도대체 모녀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      < 딸 > 은 직접적인 폭력의 피해자는 아니었지만 폭력 가정에서 아버지의 보호 아래 유일하게 매를 맞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매 맞는 가족에 대한 부채 의식과 죄책감에 시달리게 된다. 어머니와 아들은 매 맞지 않은 딸이 부러웠던 모양이다. 너는 적어도 아버지에게 맞지는 않잖아 !                  때린 놈은 다릴 못 뻗고 자도 맞은 놈은 다릴 뻗고 잔다고 했던가.

가해자는 아니었지만 가해자처럼 느껴지고 피해자는 아니었으나 피해자와 동일한 고통을 느껴야 했던 딸에게 이 말이 원망처럼 들렸던 모양이다. 딸은 아버지가 짐승처럼 날뛸 때마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 중재자 역할을 해야 했다. 매 맞는 가족을 지켜야 했던 딸은 싸움을 끝내기 위해 아버지 앞에서 자해를 하기도 한다. 여기까지는 이비에스 솔루션 프로그램 << 달라졌어요 >> 에 나오는 사연이다.  이 방송을 보다가 나는 비로소 내가 세월호 참사의 가해자도 아니고 피해자도 아니지만 세월호 참사에 집착하는 이유를 발견하게 되었다. 내가, 그리고 당신이 느끼는 죄책감은 그녀가 느껴야 했던 죄의식과 연결된다.

피해자의 고통 못지 않게 방관자로서의 무능 또한 괴롭고, 괴롭고, 괴로웠으리라.우리 모두는 세월호가 침몰하는 과정을 생생하게 목격했지만(생방송으로 진행된 세월호 현장은 일종의 가정 폭력 현장'이었다. 우리는 가라앉는 자의 부모였으며 국가 폭력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지켜봐야 했던 아이였다. 그리고 방관자였다)  방관자일 수밖에 없었다. 맞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도 부채와 죄책감을 느껴야 했던 그녀처럼,  바다 밑으로 가라앉지 않았다는 이유로 우리는 죄책감을 느껴야 했다. 촛불 집회는 최순실로부터 시작되었지만 최초 발화점은 세월호 참사가 아니었을까 싶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집단 죄의식이 촛불의 지속성을 유지한 것이다. 

물론 나는 알고 있다. 오직 운이 좋았던 덕택에 나는 그 많은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남았다. 그러나 지난 밤 꿈속에서 이 친구들이 나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 왔다. " 강한 자는 가라앉지 않는다. " 그러자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1),   폐에 공기를 채우면 가벼워지고 물을 채우면 가라앉는다는 사실이 괴롭고, 괴롭고, 괴로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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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물론 나는 알고 있다. 오직 운이 좋았던 덕택에

    나는 그 많은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남았다.

    그러나 지난 밤 꿈속에서

    이 친구들이 나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 왔다.

   “강한 자는 살아남는다.”

    그러자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

                                         - 살아남은 자의 슬픔, 브레히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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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2 10: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1-12 15: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1-12 11: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1-12 15: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samadhi(眞我) 2017-01-14 06: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브레히트의 글귀에 마음이 무너집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7-01-14 10:52   좋아요 0 | URL
피를 흘리지 않고 자유를 얻을 수는 없다고 하죠... 오늘개 산책시키는데 무지 춥더군요... 옷 든든히 입ㅇ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