퉁퉁 부은 발
천 일이 흘렀다, 오늘 이야기는 퉁퉁 부은 발에 대한 이야기'다. 그리스 신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소재는 " 예언 " 이다. 예언을 다룬 에피소드에서 가장 유명한 이야기는 오이디푸스일 것이다. 오이디푸스는 퉁퉁 부은 발이란 고대 그리스어'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간략하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그리스 고대 도시 테베의 왕 라이오스와 이오카스테 왕비 사이에는 자식이 없었는데, 왕은 귀한 자식을 점지 받기 위해 신전을 찾는다. 그런데 신으로부터 신탁을 받은 사제의 예언은 오묘하다. " 왕비가 아들을 낳는다면 그 아이는 커서 왕을 살해할 것이오 ! ( 첫 번째 예언) " 신탁 예언이 틀렸던 적이 있던가. 왕이 근심에 쌓여 있는 사이, 왕비는 임신을 하고 옥동자를 낳는다. 걱정에 휩싸인 왕은 결국 아들을 죽이기로 결심하고 양치기 우두머리를 시켜 산에 갖다 버리라고 명령한다. 하지만 양치기는 왕의 명령을 어기고 이웃 나라 양치기에게 맡기게 되고, 이웃 나라 양치기는 아이를 코린토스 왕에게 맡긴다.
그리하야, 어린 오이디푸스는 왕실 보호 아래 쑥도 아니면서 쑥쑥 자란다. 성인이 된 오이디푸스는 우연히 델포이 신전을 찾았다고 사제로부터 무시무시한 예언을 듣게 되는데 그것은 자신이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할 것이라는 무시무시한 신탁( 두 번째 예언)이었다. 양아버지를 친아버지라 생각했던 오이디푸스는 가혹한 운명을 피하고자 고향인 코린토스를 떠나게 되는데 그곳이 하필...... 친아버지의 국가인 테베 땅인지라 ! 그 후 이야기는 다들 아시리라. 내가 주목한 것은 두 번째 예언이다. 오이디푸스가 델포이 신전에서 두 번째 신탁 예언을 듣지 않았다면 코린토스(양아버지 도시 국가)를 떠나 테베(친아버지 도시 국가)에 가지 않았을 것이 분명하다.
또한 그가 코린토스를 떠나지 않았다면 코린토스의 왕이 될 것이니 테베의 왕이 될 리도 없었을 것이다. 첫 번째 예언도 두 번째 예언과 맥락이 비슷하다. 라이오스 왕이 신탁 예언을 듣지 않았다면 아들을 유기할 일도 없었을 뿐더러 오이디푸스 또한 아버지인 줄도 모르고 아버지를 죽이거나 어머니인 줄 모르고 어머니와 동침을 하는, 아....... 그런 비극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예언에 대한 신뢰성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만약에 라이오스와 오이디푸스가 신탁 예언을 듣지 못했다면 예언은 실현될 수 있었을까 ? 첫 번째와 두 번째 예언은 한정된 범위 안에서만 예언의 힘을 발휘할 뿐이라는 점이다.
내가 보기에는 오이디프스 비극의 열쇳말은 < 신탁(예언) > 에 있는 것이 아니라 < 최면(암시) > 에 있다. 사회심리학 용어로 설명하자면 " 자기 충족 예언 " 이라는 점이다. 자기 충족 예언이란 어떤 예언이나 생각이 이루어질 거라고 강력하게 믿음으로써 그 믿음 자체에 의한 피드백을 통해 행동을 변화시켜 직간접적으로 그 믿음을 실제로 이루어지게 하는 예측 을 말하는데 일종의 피그말리온 효과이자 플라시보 효과인 셈이다. 물론 부정적 의미로써 말이다. 예언자의 입에서 발화되는 순간 비극은 운명의 수레바뀌 아래, 어쩔 수 없이 끌려갈 수밖에 없는 운명론적 수동성을 띠는 것이 아니라
비극의 주체인 당사자(라이오스,오이디푸스)가 능동적으로 서사에 개입함으로써 자신의 비극을 완성한다. 라이오스와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운명(미래)이 신에 의해 미리 정해져 있다고 착각했지만, 사실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사회학자 로버트 머튼은 <<사회이론과 사회구조 Social Theory and Social Structure, 1949 >> 에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다음과 같다.
평범하고 건실한 지역 은행에 어느 날 뚜렷하지 않은 이유로 많은 수의 고객이 방문한다. 그 장면을 목격한 다른 고객들은 은행의 재정에 어떤 문제가 생기지 않았는가를 불안해하고, 그 불안에 의해 자신의 계좌를 비우기 시작한다. 이 인출 행위는 은행 파산에 대한 소문을 확대하는 데 피드백을 주어 더 많은 고객이 계좌를 비워 결국 건실하던 은행이 갑작스럽게 부도를 맞는다는 시나리오였다. 머튼은 이 시나리오를 통해 상황에 대한 대중의 신념 자체가 그 상황을 통제하게 되어 예언이 스스로 이루어진다는 개념을 보여 준다1)
박근혜 게이트 서사를 작동시키는 힘은 " 자기 충족 예언 " 이다. 박근혜에게 있어서 최태민은 신전에서 신의 말을 전하는 사제'같은 존재'다. 박근혜가 " 우주의 기운 " 운운하는 것도 자신의 운명은 신탁에 의해 결정되었다는 운명론을 믿었기 때문이다. 그는 최태민이 자신의 미래를 예언했(다고 알려져)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그것은 예언이 아니라 최면'이었다. 오이디푸스 신화에서 알 수 있듯이, 예언을 피하기 위해 거스른 일들이 결국에는 자기 비극을 완성하는 행위였듯이 박근혜는 최태민의 예언( " 아비는 총에 맞아 죽을 것이요, 그 딸은 커서 왕이 될 것이오 ! " ) 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저지른 온갖 악행이 결국에는 자기 비극을 완성하는 행위라는 사실을 모른 듯하다.
맑고 차가운 공기 대신 팽목항 울돌목, 그 차가운 물을 폐에 채워야 했던 그 일 이후 천 일이 흘렀다. 어느 어머니는 퉁퉁 부은 어린 딸의 주름진 발'을 보고 울었다고 한다. 그 모습이 기억에서 오랫동안 지워지지 않는다고. 우리가 박근혜에게 배풀 수 있는 마지막 연민은 솜씨 좋은 망나니를 고용하는 일이다. 소문난 망나니는 죄수의 목을 고통 없이 단칼에 벤다고 한다 ■
1) [네이버 지식백과] 자기 충족 예언 [self-fulfillment prophecy] (심리학용어사전, 2014. 4., 한국심리학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