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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주정뱅이
권여선 지음 / 창비 / 2016년 5월
평점 :
취생몽사
얼마 후에 그녀는 죽었다. 죽기 전에 술을 주면서 그에게 전해 달라고 했다. 그녀는 구양봉이 자신을 잊어 주길 바랬다. 인간이 번뇌가 많은 까닭은 기억력 때문이라고 한다.
- 동사서독
소설가 권여선의 사진을 보았을 때 나는 그녀가 주정뱅이란 사실을 직감했다(최승자 시인을 보았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수분이 알코올처럼 휘발된 듯한, 마르고 푸석푸석한 얼굴이 내 아버지를 닮았기 때문이다.
핏줄은 속이지 못하는 법이라 나 또한 주정뱅이가 되었다(나는 뺑끼집 둘째 아들이었다. 미술 시간에 물감을 뺑끼라고 했다가 미술 선생에게 혼난 적도 있다. 핏줄은...... 속이지 못한다). 주정뱅이 삶은 복용 중이던 수면제를 중단하면서 시작되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시트는 항상 땀에 젖어 있었고 땀에서는 약 냄새가 났다. 숨을 쉴 때마다 따듯한 약 냄새 때문에 헛구역질이 났다. 숙취보다 견디기 힘든 악취여서 수면제를 중단하고 대신에 밤에 술을 마셨다. 술맛을 좌우하는 것은 안주가 아니라 공복이었다. 주정뱅이는 결핍의 본질을 누구보다도 잘안다. 공복일수록 알코올에서 단맛이 난다는 사실.
결핍의 시간이 늘어날수록 몸이 알코올을 쪽쪽 빨아들인다는 사실. 홀짝, 홀짝, 호오올짝 마시다 보니 어느덧 술 없이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물은 몸을 차갑게 만들고 술은 몸을 뜨겁게 만드는 법. 더운 여름에 술을 마신다는 것은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하는 꼴이어서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면 시트는 항상 땀에 젖어 있었고 흘린 땀에서 술 냄새가 났다. 숨을 쉴 때마다 미지근한 소주를 마실 때의 느낌이 들어 헛구역질이 났다. 귀신에게 홀린 나무꾼처럼 도돌이표가 되어 다시 시작하는 느낌. 비로소 깨달았다. 졸피뎀과 알코올은 동일하다는 것. 권여선의 단편 << 이모 >> 에서 이모는 혼자 살면서 일하지 않는 삶을 선택한다.
그동안 악착같이 모은 돈을 다 쓸 때까지만 살 계획이다. 나를 사로잡은 것은 이모의 규칙적인 음주 생활이었다. 그녀는 일주일에 한 번, 그녀에게는 사치이지만 우리가 보기에는 소박한 술상을 차린다. 공복 후에 첫 잔의 맛을 아는지라 나는 이 부분에서 침을 삼켰다. 정해진 날에 맞춰 규칙적으로 술상을 차리는 것이야말로 주정뱅이에게는 최고의 술맛이리라. 소설집 << 안녕, 주정뱅이 >> 가 나왔을 때 그녀를 아는 지인들은 올 것이 왔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권여선과 술은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인 셈이다. 다음은 권여선의 말이다 :
“술을 쓰지 않을까 생각도 하지만, 제게는 공기처럼 너무 자연스러운 존재라 술을 쓰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는 것이죠. 도대체 사람이 만나서 술을 안 마시고 뭘 할 수 있단 말인가요. 이상하게 차만 마실 수는 없잖아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두 사람을 이끌고 술집으로 들어갈 수밖에요. 그렇게 되니까 뜯어고치려 해도 속에서 너무 우러나와 가지고 (뜯어고치는 것이) 되지가 않는 거예요. 어떻게 하겠어요.”
평소 그녀의 소설에 관심을 보인 독자라면 단편집 << 안녕, 주정뱅이 >> 가 낯설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그전의 소설들이 독했다면 이번 소설집은 순한 소설에 가까우니깐 말이다. 하지만 나는 이 변절이 서운하지 않다. 무자비한 호러의 왕, 스티븐 킹도 나이가 들면서 점점 순해지는데 하물며 권여선이라고 이 세월을 이길 재간은 없었을 것이다. 이번 소설집에 수록된 소설들은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것은 없지만 예전처럼 차갑지는 않다. 쓸쓸하지만 따스하다. 동네에 단골 술집이 생긴다는 건 일상생활에는 재앙일지 몰라도, 기억에 대해서는 한없는 축복이다. 초기 단편 < 사랑을 믿다 > 의 첫 문장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