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보 마이 라이프





 


 


                                                                                                       나는 인생이 종종 거제도 권사님이 한 달 건너 한 달, 다달이 보내주는 택배라는 생각이 든다. 이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어머니와 거제도 권사님의 애틋한 시스터후드에 대해 말해야 한다.

어머니는 자식들을 강하게 키우셨다. 가을에 잡힌 전어는 어머니의 손맛을 거치면 봄에 잡힌, 아니 여름에 잡힌 전어 맛이 났고, 겨울에 잡힌 숭어는 달다 하는데 어머니가 요리를 하면 여름에 잡힌 숭어 맛이 나서 갯내가 진동했다. 그러다 보니 자식들은 어느새 모래도 씹어먹을 만큼 맛없는 음식에 대한 내성을 기르게 되었다. 바깥에서 먹는 음식은 여름 숭어도 겨울 숭어처럼 맛있었다. 이 모든 사실을 어머니도 알고 있다. 요리 솜씨가 형편없는 이에게 생선만큼 까탈스러운 재료도 없다. 그래서 어머니가 선택한 요리 방식은 물고기보다는 육고기 위주로 양념이 필요 없이 굽거나 맹물에 푹 삼아 익히는 백숙 요리였다.

삼겹살도 구워 먹고, 생선도 구워 먹고, 조개도 구워 먹고, 닭이나 오징어, 꼴뚜기 따위는 백숙으로 소비되었다. 그런데 같은 교회에서 자매처럼 지냈던 권사님이 고기 잡는 사위 따라 거제도로 이사를 가면서 어머니의 근심이 늘어났다. 거제도로부터 처음 도착한 택배는 살아 있는 문어였다. 비명 소리에 나가보니 거대한 문어가 거실을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오, 오오오옥토퍼스닷 !                           갓 태어난 갓난애 크기만 했다. 그 위용이 대단해서 펄럭이(리트리버)는 뒷다리를 바들바들 떨었다. 펄럭이는 몸무게가 34kg를 자랑하는 늑대의 후손이었으나 왕문어를 이길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우여곡절 끝에 물이 담긴 비닐봉지에 다시 넣었지만, 어머니는 살아 있는 문어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를 두고 시름에 빠졌다. 여러 경로를 통해 알아본 결과, 문어 머리를 뒤집어서 내장을 꺼낸 후 손질해야 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생선을 손질하는 것을 가장 싫어하셨던 어머니 입장에서 보면 곤혹스러운 결과인 셈이다. 더군다나 죽은 생선만 손질하던 어머니가 살아 있는 물고기를 손질해야 하다니(기억은 나지 않지만 문어를 손질해서 먹긴 먹었다). 다음날, 어머니는 감사 전화를 넣었다. 문제는 거제도 권사님이 다달이 택배를 보낸다는 데 있었다.

자연 그대로, 잡힌 그대로의 숭어, 방어, 대구 따위가 도착했고 그때마다 어머니의 시름도 하나둘 쌓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감사 전화만큼은 잊지 않으셨다. 권사님, 보내주신 숭어가 어쩜 그리 다디달아요.  이 귀한 생선을 이리 받기만 해도 되는지 모르겠어요. 네, 네네네. 아멘. 할렐루야. 주님의 은총이......       하지만 어머니의 물고기 간증과는 달리 가족은 숭어 요리를 먹어본 적이 없었다. 가족은 어머니가 거짓말을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나 내색은 하지 않았다. 그 사실을 눈치채신 것일까 ?  언제부터인가 어머니는 감사 전화를 넣을 때에는 항상 문을 닫고는 조용히 말씀하셨다. 

결국 생선들은 냉동고 속에서 얼어 죽을 동태가 되었다가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졌다. 이들의 실종에 대해서는 아무도 모른다. 나는 그것이 인생이란 생각이 든다. 누군가의 선의는 누군가에게는 골치 아픈 일이 되기도 하고, 따스한 관심은 근심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혼자서 세상을 살아갈 수는 없는 법이다. 사르트르는 타자는 지옥이라고 말했지만 나는 사르트르보다는 성정이 고와서 타자가 지옥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랭보는 나는 타인이다 _ 라고 말했지만 랭보보다는 삐뚤어져서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할 수는 없다. 사르트르와 랭보 사이, 그 어중간한 위치가 좋다.

세상과 소통하기 위해서는 귀찮더라도 달달이 거제도에서 올라오는 택배를 열어 생선을 손질해야 한다. 그리고 감사 전화도 잊지 말아야 한다. 보내주신 문어가 어쩜 그리 싱싱하답니까. 택배를 보니 어찌나 반갑던지 눈물이 다 납디다. 호호. 네, 네네네네. 브라보, 브라보, 마이 라이프 ! 아멘.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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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7-12-16 1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열라 귀여운 뒷모습 같으니라구요....

곰곰생각하는발 2017-12-17 12:04   좋아요 0 | URL
쇼 님이 걸을 때 꼬리를 살랑살랑 흔드는 이 녀석의 뒤태를 보셨어야 하는데..
 
미생 1~9 완간 박스 세트 - 전9권 - 아직 살아 있지 못한 자 미생
윤태호 글.그림 / 위즈덤하우스 / 2013년 9월
평점 :
품절


 

 

                                                        

 

우정은 도모하겠으나 총은 버리지 않겠다 :

 


 


 

 

 


 

미생이 기만적인 이유



                                                                                                      미생의 줄거리를 요약하자면   :  직장은 전쟁터'다. 이 웹툰은 징글징글한 직장의 정글, 나아가 경쟁을 부추기는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비판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기득권에 대한 찬사와 옹호'이다.

그러니까 일터 노동자 시선으로 자본 정글을 비판한다기보다는 자본가 시선(자본이라기보다는 자본에 세뇌된 익숙한 논리)으로 체제를 옹호하는 작품이다. 왜냐하면 " 직장은 전쟁터 " 라는 프레임은 자본-욕망'에 가깝기 때문이다. 즉, 프레임 설정 자체부터 글러먹었다는 뜻이다. 일터를 전쟁터로 환유하는 순간, 이 기본 설정 때문에 직장인은 총을 든 병사가 된 마음으로 일터를 향할 수밖에 없다. 자본가는 이렇게 말하리라. 노동자여 ! 보았는가. 직장은 전쟁터이니 총을 든 병사처럼 죽기살기로 일해라 !  이런 프레임으로 시작되는 작품이 많이 나올수록 좋아할 사람은 노동자가 아니라 이건희'다.

그가 아내와 자식 빼고 다 바꿔라_ 라고 주문한 것과도 일맥상통하는 대목이다. 재벌을 부정적으로 다루는 드라마도 마찬가지다. 재벌은 가족애를 찾아볼 수 없고 오로지 권력 투쟁에 함몰된 집단이라는, 흔해빠진 클리셰 덩어리로 포장된 드라마는 대중이 재벌을 부정적으로 보게 만드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정반대'다. 시청자는 재산을 놓고 서로 싸우는 재벌을 불행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들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불행하지 않다. 돈이 많다고 해서 그 돈으로 행복을 살 수는 없으나 행복을 대체할 수 있는 대체물로 살 수는 있다. 이처럼 재벌 집단을 불행한 부류로 묘사하는 드라마는

불알 두 쪽이 전부인 가난뱅이 시청자에게 가진 것은 없지만 마음만은 행복하다는 자위를 하게 만들지만, 이 자위는 허망에 가까운 기망이다. 이런 드라마는 재벌이나 기득권을 비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 집단을, 그 체제를 옹호하는 기능으로 작용한다. 직장은 전쟁터야 _ 라거나, 돈만 알고 가족의 소중함을 모르는 재벌은 얼마나 불쌍해 _ 라는 인식은 오히려 기득권에게 유리하게 작동한다. 그래서 가난한 자는 부자를 불쌍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공병 줍는 노인이 우리 박근혜, 불쌍해서 어쩌냐 _ 라고 말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 미생 >> 원작자인 윤태호에게는 미안한 소리이지만 이 작품은 자본 정글을 비판하는 작품이 아니라 자본 정글을 옹호하는 작품이다. 이 웹툰은 총을 버리고 잃어버린 인간애를 되찾아야 한다는 것에 방점이 찍힌 것이 아니라 여기는 전쟁터이니 총은 들되 우정을 쌓으면 된다는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폭력은 지양하고 평화는 지향하되 방어 차원에서 총기는 소지해야 된다는 총기 소지 옹호론자들이 주장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내가 미생을 비판하는 대목이다.

 

 

 

 

덧대기 ㅣ 본문이 짧아서 본문과는 상관없는 글을 첨부한다(어른이 된다는 것을 주제로 글을 하나 써야 하기 때문에 겸사겸사 생각의 큰 줄기를 엮는다). tvN 프리미엄 특강쇼 << 어쩌다 어른 >> 은 마음의 준비를 하지도 않았는데 어쩌다 어른이 된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특강쇼'다. 이 전제는 나이가 들면 본인 의지와는 상관없이 어른이 된다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어른이라는 자격 조건은 반드시 어린이'라는 상대적 계층이 존재할 때에만 발생할 수 있다. 만약에 어린이라는 개념이 없었다면 어른이라는 개념도 없었을 것이다. 어린이라는 말은17세기부터 써온 말인데 중세 국어에서 어리다는 의미는 " 나이가 적다 " 는 것이 " 어리석다 " 는 의미였다. 다시 말해서 옛날에는 나이가 많고 적음에 따라 어른과 어린이를 구별하지 않았다. 이러한 태도는 서구 사회도 마찬가지이다. 옛날에는 어린이를 작은 어른 대접을 했다고 한다. 필립 아리에스의 의하면 어린이는 근대의 발명품이다. 이 모든 사실을 종합하면 어른이라는 개념은 근대가 만든 발명품에 지나지 않는다. 어른이라는 개념은 허구'다. 나이 가지고 유세를 떠는 인간만큼 추잡한 인간도 없다. 그래서 나는 어쩌다 어른이 된 사람을 위로한답시고 어쩌다 어른이 된 강사가 어쩌다 어른이 된 사람을 위로하는 어쩌다 어른 특강쇼가 웃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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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손잡이 2017-12-21 18: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덧글 답니다. 저는 이 만화 정말 토나왔거든요. 직장인들이 미생 보면서 찬사하는 걸 보고 진짜 의아했습니다.
 

 

 

 

 

 

 

 

 

 

 

 

 

 

 

                                                   

 

촛불 이후,  이제 와서  고백하거니와   :





 


나는 친문보다는 비문이 좋다






 


                                                                                                          롤랑 바르트의 << 사랑의 단상 >> 에서 나를 사로잡은 문장은 " 나는 그 사람이 아프다 " 이다. 이 문장은 문법에 취약한 사람이 판단해도 뜻을 알 수 없는 어색한 문장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나는 그 사람이 아프다고 ?! 

바르트는 관용구처럼 사용하는 나는 (배)가 아프다, 나는 (팔)이 아프다나는 (다리)가 아프다 _ 같은 문장 구성에서 괄호부 안에 들어갈 대상으로 1인칭 화자의 신체 부위가 아닌 타자인 " 그 사람 " 을 넣는다. 나는 (그 사람)이 아프다. 바르트가 이 비문을 통해서 말하고 싶은 것은 사랑이라는 감정은 자아와 타자를 동일시해서 그 경계가 무너지는 증상'이라는 점을 강조하려는 것이다. 사랑에 빠진 자아는 그 사람이 아프면 내 팔이, 내 다리가, 내 배가 아픈 것처럼 느낀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은 내 오장육부이다.  < 흉터 > 가 과거가 진짜 있었던 일이라는 사실을 일깨우는 기호라면 < 눈물 > 은 내 고통이 환상이 아니라는 것을 자기 자신에게 증명하기 위한 기호이다.

 

그렇다면 사랑하는 사람 때문에 흘리는 눈물은 마음이 아프기 때문이 아니라 팔이 잘려나가는 아픔 때문에, 다리가 뽑히는 통증 때문에 흘리는 눈물이다. 그 통증은 마인드보다는 피지컬의 영역이다. 바르트가 사랑의 아픔은 본질적으로 환상통이라고 말하는 이유이다. 바르트는 비문의 힘으로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명징하게 설명한다. 그래서 나는 문장을 다루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강박적으로 비문을 경멸하며 기계적으로 정문(正文)을 강조할 때마다 쓸쓸한 생각이 든다. 언어는 순결할 때보다 오염될 때 생명력을 얻는다. 신춘문예 당선작들이 하나같이 히마리가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사실을 공교롭게도 문학을 다루는 사람들만 모르고 있다. 하여, 나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련다. 이런 빙딱 ~                 페르난도 페소아 또한 << 불안의 책 >> 에서 이 사실을 지적한다. 발췌문이 조금 길지만, 내 이웃들이 그 찰나의 따분함을 견디지 못할 정도로 돼먹지 않은 무뢰아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은, 그러니까, 에헴. 교양인이다.

 

나의 글쓰기 체계는 두 가지 원칙에 의거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훌륭한 고전주의 작가들의 전통을 좇아 나는 즉시 두 원칙을 좋은 글쓰기의 기반으로 삼는다. 첫째, 느끼는 것을 말할 때는 정확히 느낀 대로 쓴다. 분명하다면 분명하게, 모호하다면 모호하게, 혼란스럽다면 혼란스럽게 쓴다. 둘째, 문법은 도구일 뿐, 법칙이 아님을 명심한다......(중략) 문법은 언어 사용을 규정하면서 옳고 그름을 구분한다. 예를 들어 동사에는 자동사와 타동사가 있지만 현명한 사람들은 느낀 것을 사진처럼 남기기 위해 자동사와 타동사를 일부러 바꾸어 쓰는 경우가 많다.

 

평범한 사람들처럼 불분명하게 보는 대신 그렇게 한다. 내가 존재한다고 말하기 위해 " 나는 존재한다 " 고 말할 것이다. 내 영혼의 개별적인 실체성을 강조할 때는 " 나는 나로서 존재한다 " 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스스로 결정하고 자기 자신을 창조하는 성스러운 능력이 있는 존재임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 존재한다 " 는 자동사를 타동사로 바꾸어 " 나를 존재시킨다 " 고 말할 것이다. 이렇게 문법을 초월한 승리자로서 " 나는 존재시킨다 " 고 말하리라..... 자신이 느끼는 것을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는 사람들은 문법에 복종하라


불안의 책, 118쪽



페소아의 지적을 받아들인다면 롤랑 바르트는 자신이 느끼는 것을 정확하게 표현하기 위해 문법에 복종하는 대신 문법을 초월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판사에게는 헌법이 최고 권력이고 군인에게는 군법이 최고 권력이듯이, 글을 쓰는 사람에게는 문법이 최고 권력이지만 롤랑 바르트는 가운뎃손가락을 치켜들며 조까라마이싱을 외쳤던 것이다. 이처럼 위대한 문장은 종종 문법을 초월할 때 발생한다. 셰익스피어 문학이 지금에서야 위대한 문학이라는 소리를 듣지만 그 당시에는 평론가들로부터 비문투성이라는 조롱을 받았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내가 김애란의 << 바깥은 여름 >> 이라는 소설을 비판하는 대목은 김애란의 문장은 날것이 주는 비릿한 맛이 휘발되었다 _ 라는 점이다. 김애란 문장은 모양만 예쁜 쿠키 과자 같다. 그것은 발효된 숙성이 아니라 설익은 복종이다. 문장이 문법에 포섭되는 순간, 생명력은 상실된다. 위에서도 밝혔듯이 문단 마피아들이 권력을 얻는 이유는 문법도 법이기 때문이다. 법을 장악하는 자는 권력을 얻는다. 신춘문예를 목적으로 작품을 쓰는 문창과 졸업생들의 문체는 문법적으로 나무랄 데 하나 없지만 바로 그 점 때문에 서서 죽은, 딱딱한 나무 같다. 그들에게서는 날것이 주는 맛이 없다.

언제부터 문학이 커피 향이나 딸기 향만 나는 장르였나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냄새는 배제된 채 향기만 강조하는 문학은 살롱 문학이라는 비난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리고 냄새를 부끄러워한 나머지 독한 향수만 뿌려대는 작가는 작가가 아니라 풍각쟁이다. 요즘 유통되고 있는 한국 문학에서는 비린내 나는 냄새를 맡을 수 없다. 모두 다 방부제 처리가 된 모양이다. 문학은 위생학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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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12-14 17: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보들레르는 악취를 뿜어내는 글을 썼어요. 기성 권력과 독자들 모두 까는 보들레르의 패기가 대단해요.

곰곰생각하는발 2017-12-15 15:30   좋아요 0 | URL
제가 알기로는 그 당신 보드레르고 신랄하게 문단으로부터 조롱받았는데
그 중 하나가 비문과 오문이 많다는... 어디서 들었는데... 아닌가... ㅎㅎㅎㅎ 혹시 아시나요 >

transient-guest 2017-12-15 0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부하지 않고 사유하지 않는 작가들이 더 많이 나오는 것 같아요. 특정 문단이나 학연, 연줄을 통해 등단하는 경우도 많고 일단 천편일률적인 소설작법과 접근도 그런 면이 있구요. raw한 작품이 나오려면 그만큼의 연단과정이 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인생경험도, 준비도, 무엇도 다 작가가 되기 위한 길만 밟고 나오니 다양한 느낌의 이야기가 나오기 힘든 것 같습니다. 제 편견은 인정합니다만, 그런 면에서 문창과의 창궐에 대한 문제의식이 저에겐 늘 있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7-12-15 15:31   좋아요 1 | URL
전 요즘 작품들이 다 거기서 거기인 것 같아서 굳이 여러 작가의 작품을 찾아서 읽어야 하나, 라는 생각이 듭니다. 다양성이 없어요.주제도 거의 다 비슷하고... 서사의 개성도 없고, 치열함도 없고...
 

 

 

 

 

 

 

 

 

 

 

 

곁에 두고 두고두고 읽을 세 권의 책

 

 

                                                              

 

 

                                                                                            청하 출판사에서 출간된 << 두이노의 비가 / 오르페우스에게 바치는 소네트, 한기찬 번역 >> 를 읽었을 때 전율했다. 한글로 번역된 시집을 감동 깊게 읽었다는 것이 민망하기는 하지만 어쩌랴, 내가 외국어 까막눈인데 말이다.

과장을 조금 보태자면 << 두이노의 비가 >> 는 백 번 넘게 읽었다. 십 년 동안 이 책은 하루도 빠짐없이 내 가방 속에 들어 있어서 시도 때도 없이 읽은 기억이 난다. 종이가 바스러져서 가루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경험한 책이기도 하다. 우여곡절 끝에 청하에서 출판된 한기찬 번역본을 구해서 다시 읽고는 있으나 이 책도 가루가 되어 사라질 날이 오리라(아는 사람은 다들 아는 이야기이지만 나는 책을 읽을 때 아이보리 비누로 손을 씻는 버릇이 있다. 즉, 책을 험하게 보는 스타일이 아니지만 자주 읽다 보면 이렇게 그지 같은 책이 된다).

 

내가 릴케를 전공한 문학도도 아니니 릴케 시의 깊은 뜻을 어찌 알겠는가마는(변학도가 춘향의 깊은 뜻을 모르듯이) 그의 시를 소리 내어 읽다 보면 캄캄한 우주에 홀로 버려진 미아가 된 듯해서 << 그래티비 >> 의 주인공이 된 듯한 느낌을 받곤 했다. 두이노의 비가 9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 행복이란 다가오는 손실에 앞선 이득일 뿐이니 " 이 시집은 한 번도 안 읽은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읽은 사람은 없을 정도로 그 내용이 깊고 오묘하다. 만약에 당신이 이 시집을 아직 읽지 않았다면 그것은 신이 당신에게 내린 행운이다. 이처럼 곁에 두고 두고두고 읽는 책이 또 한 권 있다. 롤랑 바르트의 << 사랑의 단상 >> 이다.

동문선이라는 그지 같은 출판사에서 출간된 책이지만 진흙 속에서도 진주는 빛을 발하는 모양이다. 책을 읽으며 밑줄을 긋는 버릇이 있거나 종이를 접는 습관이 있는 이라면, 이 책을 읽을 때에는 그 모든, 그 모오오오든 버릇을 버려야 한다. 첫 행부터 페이지 마지막 끝 행까지 끊김 없이 줄을 긋는다는 것은 밑줄의 효용 측면에서 보자면 밑줄을 모욕하는 행위에 속하며 페이지마다 종이 끝을 접는 행위도 마찬가지이다. 독자인 당신은 밑줄과 종이접기를 모독할 권리가 없다. 두 작품은 모두 황홀할 만큼의 미문으로 작성된 문장이지만 처절하다는 점에서 겉만 번지르르한 문장과는 사뭇 다르다.

울 때에는 통곡할 줄 아는 촌스러운 신파도 겸비한 작가들이다. 웃을 때 예쁘게 웃는 사람을 싫어하는 이는 없겠지만, 나는 울 때마저도 예쁘게 우는 사람을 보면 징그럽다. 왜냐하면 울 때마저도 예쁘게 우는 얼굴은 가짜이기 때문이다. 연기자는 울 때에도 예쁘게 우는 법을 훈련받은 사람들이다. 그것은 가짜로 꾸며낸 격정일 뿐이다. 울 때에는 못생긴 얼굴로 쏟아내도 된다. 그런 얼굴처럼 그런 문장이 좋은 문장이라 생각된다. 페르난도 페소아의 << 불안의 책 >> 을 완독한 상태는 아니지만 곁에 두고 두고두고 읽은 가치가 있는 책이라는 데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을 것 같다.

문학이란 행복하지 않은 자가 누릴 수 있는 몇 안되는 특권이 아닐까 싶다. 릴케는 비가 9에서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어찌 삶이라는 시간은 시작부터

사라져 가는 걸까. 주위보다 좀 어두운 음영 드리우고

모든 잎새 가장자리마다 잔물결 일으키고 있는

월계수처럼(바람의 미소 같이). ㅡ 또 어찌하여

삶이 인간적이어야 한다는 것인가 ㅡ 운명을

피하면서 그리워한다는 말인가......


오오, 삶이 행복해서가 아니다,

행복이란 다가오는 손실에 앞선 이득일 뿐이니.


- 비가 9


페소아는 이렇게 고백한다. 나에게 행복하냐고 묻는다면, 그렇지 않다고 대답할 것이다. 그러니까 그들은 행복하지 않기 때문에 행복을 저주할 수 있는 글을 쓴다. 그것은 무죄다. 행복한 자가 행복을 저주하는 글을 쓰는 것은 오만이지만 불행한 자가 행복을 저주하는 것은 용서 가능한 독설이다. 올해의 끝은 << 불안의 책 >> 으로 마무리할까 한다. 문학적 표현을 빌리자면 : 좋은 책을 만난다는 것은 기분이, 그러니까, 음... 기분이 째지는 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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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13 18: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7-12-13 18:03   좋아요 1 | URL
오 그렇군요. 두이노의 비가는... 정말.. 뭐라 설명할 도리가 없습니다.
솔직히 원문도 아닌 번역된 시 좋다고 말하면 사람들이 무식하다고 말해서 꾹 참고 있었으나
번역된 시도 좋은데 어찌합니까.. 진짜루 읽다 보면 캄캄한 우주에 홀로 미아가 된 듯한 산드라 블룩처럼 처량한 신세가 됩니다..

2017-12-13 18: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13 20: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겨울호랑이 2017-12-13 2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위편삼절‘ 고사의 실사판을 봤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7-12-13 20:24   좋아요 1 | URL
사전찾아봤습니다. 위편삼절이 무슨 뜻인가 하고.. ㅎㅎ
새 책을 사고 싶으나 절판된 책이라 찾을 방도가 업습니다.
다른 출판사에서 다른 번역본이 나오긴 하는데
아.. 못 읽겠더라고요.
생각해 보세요. 닳고 닳을 때까지 읽어서 익숙한 문장이
다른 조사와 배열로 되면.. 그것은 정말 못 읽겠습니다.
 



​                                      


윤 종 신 은   죄 가   없 지  :











조은희, 그 사람 솔직히 견디기 버거워 !









                                                                                                      A는 괴롭다고 했다. 형, 괴로워 !  걸음을 멈춘 A는 귀를 막고 낮게 소리쳤다. 저 노래가 나를 미치게 만든다고...... 명동 패션몰 건물 야외 무대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는 요즘 뜨겁다는 윤종신의 << 좋니 >> 였다. 한 남자가 헤어진 여자를 그리며 부르는, 흔하디 흔한 유행가. A가 최근에 사귀던 애인과 헤어졌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이런 유행가에 마음이 무너질 녀석은 아니어서 내가 말했다. " 네가 언제부터 이런 감상적인 노래를 들으며 질질 짰니 ? " 나는 축 쳐진 녀석의 어깨를 토닥이며 날이 추우니 걸음을 재촉하자고 말했다. 그때 내 뒤통수 뒤에서 흘러나오는 노랫말을 흘려듣다가 그 녀석이 우울한 이유를 비로소 알 수 있었다. 조은희, 사랑해서 사랑을 시작할 때♪♩...... 조은희, 그 사람 솔직히 견디기 힘들어♬♪♩.... 조은희.... 조은희.... 조은희♬♪♩..... 나는 그가 최근에 사귄 애인의 이름이 조은희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A가 흐느끼면서 말했다. 윤종신, 씹때끼. 나는 어찌할 바를 모른 채 A에게 말했다. 윤종신이 무슨 죄니. 제발, 유난 좀 떨지 마......





- 손바닥 소설





이제 괜찮니 너무 힘들었잖아
우리 그 마무리가 고작 이별뿐인 건데
우린 참 어려웠어
잘 지낸다고 전해 들었어 가끔
벌써 참 좋은 사람
만나 잘 지내고 있어
굳이 내게 전하더라

잘했어 넌 못 참았을 거야
그 허전함을 견뎌 내기엔
좋으니 사랑해서 사랑을 시작할 때
네가 얼마나 예쁜지 모르지
그 모습을 아직도 못 잊어
헤어 나오지 못해
니 소식 들린 날은 더

좋으니 그 사람 솔직히 견디기 버거워
네가 조금 더 힘들면 좋겠어
진짜 조금 내 십 분의 일 만이라도
아프다 행복해줘

억울한가 봐 나만 힘든 것 같아
나만 무너진 건가
고작 사랑 한번 따위 나만 유난 떠는 건지
복잡해 분명 행복 바랬어
이렇게 빨리 보고 싶을 줄

좋으니 사랑해서 사랑을 시작할 때
니가 얼마나 예쁜지 모르지
그 모습을 아직도 못 잊어
헤어 나오지 못해
니 소식 들린 날은 더

좋으니 그 사람 솔직히 견디기 버거워
너도 조금 더 힘들면 좋겠어
진짜 조금 내 십 분의 일 만이라도
아프다 행복해줘
혹시 잠시라도 내가 떠오르면
걘 잘 지내 물어 봐줘

잘 지내라고 답할 걸 모두 다
내가 잘 사는 줄 다 아니까
그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너무 잘 사는 척
후련한 척 살아가

좋아 정말 좋으니
딱 잊기 좋은 추억 정도니
난 딱 알맞게 사랑하지 못한
뒤끝 있는 너의 예전 남자친구일 뿐
스쳤던 그저 그런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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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13 12: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13 12: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syo 2017-12-13 1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 이런 단순한 글자개그에 당하다니....

곰곰생각하는발 2017-12-13 13:06   좋아요 0 | URL
광화문 촛불집회 때 울려퍼진 게 박근혜는 태진아랑(퇴진하다) 이었잖아요. 같은 이치죠..ㅎㅎ

데미안 2017-12-13 1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재밌어서 재미있을 미!

데미안 2017-12-13 18:58   좋아요 0 | URL
요즘 유행하는 독서체.! 라고 하죠. ㅋㅋ

곰곰생각하는발 2017-12-13 20:26   좋아요 0 | URL
ㅎㅎㅎ 그런가요. 너무 흥미로워서 흥미로울 흥 ! 뭐.. 이런 뉘앙스인가요 ? ㅎㅎㅎㅎ

데미안 2017-12-13 2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흥미로울 흥이 있었군요. ㅋ

곰곰생각하는발 2017-12-13 21:30   좋아요 0 | URL
흥미로울 흥 ! 요거 많이 써먹어야 겠습니다..ㅎㅎ

시이소오 2017-12-13 2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윤종신 씹때기 ㅋㅋㅋㅋ

곰곰생각하는발 2017-12-13 21:29   좋아요 0 | URL
제 유머의 화룡점정을 정확히 찝어내시는군요. 소오 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