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보 마이 라이프

나는 인생이 종종 거제도 권사님이 한 달 건너 한 달, 다달이 보내주는 택배라는 생각이 든다. 이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어머니와 거제도 권사님의 애틋한 시스터후드에 대해 말해야 한다.
어머니는 자식들을 강하게 키우셨다. 가을에 잡힌 전어는 어머니의 손맛을 거치면 봄에 잡힌, 아니 여름에 잡힌 전어 맛이 났고, 겨울에 잡힌 숭어는 달다 하는데 어머니가 요리를 하면 여름에 잡힌 숭어 맛이 나서 갯내가 진동했다. 그러다 보니 자식들은 어느새 모래도 씹어먹을 만큼 맛없는 음식에 대한 내성을 기르게 되었다. 바깥에서 먹는 음식은 여름 숭어도 겨울 숭어처럼 맛있었다. 이 모든 사실을 어머니도 알고 있다. 요리 솜씨가 형편없는 이에게 생선만큼 까탈스러운 재료도 없다. 그래서 어머니가 선택한 요리 방식은 물고기보다는 육고기 위주로 양념이 필요 없이 굽거나 맹물에 푹 삼아 익히는 백숙 요리였다.
삼겹살도 구워 먹고, 생선도 구워 먹고, 조개도 구워 먹고, 닭이나 오징어, 꼴뚜기 따위는 백숙으로 소비되었다. 그런데 같은 교회에서 자매처럼 지냈던 권사님이 고기 잡는 사위 따라 거제도로 이사를 가면서 어머니의 근심이 늘어났다. 거제도로부터 처음 도착한 택배는 살아 있는 문어였다. 비명 소리에 나가보니 거대한 문어가 거실을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오, 오오오옥토퍼스닷 ! 갓 태어난 갓난애 크기만 했다. 그 위용이 대단해서 펄럭이(리트리버)는 뒷다리를 바들바들 떨었다. 펄럭이는 몸무게가 34kg를 자랑하는 늑대의 후손이었으나 왕문어를 이길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우여곡절 끝에 물이 담긴 비닐봉지에 다시 넣었지만, 어머니는 살아 있는 문어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를 두고 시름에 빠졌다. 여러 경로를 통해 알아본 결과, 문어 머리를 뒤집어서 내장을 꺼낸 후 손질해야 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생선을 손질하는 것을 가장 싫어하셨던 어머니 입장에서 보면 곤혹스러운 결과인 셈이다. 더군다나 죽은 생선만 손질하던 어머니가 살아 있는 물고기를 손질해야 하다니(기억은 나지 않지만 문어를 손질해서 먹긴 먹었다). 다음날, 어머니는 감사 전화를 넣었다. 문제는 거제도 권사님이 다달이 택배를 보낸다는 데 있었다.
자연 그대로, 잡힌 그대로의 숭어, 방어, 대구 따위가 도착했고 그때마다 어머니의 시름도 하나둘 쌓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감사 전화만큼은 잊지 않으셨다. 권사님, 보내주신 숭어가 어쩜 그리 다디달아요. 이 귀한 생선을 이리 받기만 해도 되는지 모르겠어요. 네, 네네네. 아멘. 할렐루야. 주님의 은총이...... 하지만 어머니의 물고기 간증과는 달리 가족은 숭어 요리를 먹어본 적이 없었다. 가족은 어머니가 거짓말을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나 내색은 하지 않았다. 그 사실을 눈치채신 것일까 ? 언제부터인가 어머니는 감사 전화를 넣을 때에는 항상 문을 닫고는 조용히 말씀하셨다.
결국 생선들은 냉동고 속에서 얼어 죽을 동태가 되었다가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졌다. 이들의 실종에 대해서는 아무도 모른다. 나는 그것이 인생이란 생각이 든다. 누군가의 선의는 누군가에게는 골치 아픈 일이 되기도 하고, 따스한 관심은 근심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혼자서 세상을 살아갈 수는 없는 법이다. 사르트르는 타자는 지옥이라고 말했지만 나는 사르트르보다는 성정이 고와서 타자가 지옥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랭보는 나는 타인이다 _ 라고 말했지만 랭보보다는 삐뚤어져서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할 수는 없다. 사르트르와 랭보 사이, 그 어중간한 위치가 좋다.
세상과 소통하기 위해서는 귀찮더라도 달달이 거제도에서 올라오는 택배를 열어 생선을 손질해야 한다. 그리고 감사 전화도 잊지 말아야 한다. 보내주신 문어가 어쩜 그리 싱싱하답니까. 택배를 보니 어찌나 반갑던지 눈물이 다 납디다. 호호. 네, 네네네네. 브라보, 브라보, 마이 라이프 ! 아멘. 할렐루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