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거 들 랑 ~ 혼 밥 없 어 예 :
인간과 넥타이
마음에 드는 디자인이 있고 가격 조건에 맞는다면 같은 옷을 색깔만 달리 해서 여러 벌 구매하는 버릇이 있다. 니트 넥타이 같은 경우는 동일 제품을 색깔만 달리 해서 일곱 개나 구입했다.
짚업 후드 같은 경우도 색깔만 달리 해서 다섯 벌이나 된다. 패션은 색의 조화가 으뜸이니 다양한 색을 구비해야 된다는 이유를 대지만, 사실 이보다 멍청한 소비 패턴은 없다. 내 논리가 맞다면 색깔별로 두루두루 착용해서 " 쓸모 " 를 다해야 하지만 낡고 해져서 버려지게 되는 것은 언제나 한 종류'다. 다시 말해서 죽어라 하고 입던 옷(색깔)만 입는 것이다. 다양한 색으로 때깔을 내보려는 내 욕심은 잘못된 소비 방식이었던 셈이다. 그렇다면 나는 왜 같은 옷을 색깔별로 구입했을까 ? 곰곰 생각해서 내린 결론은 결정(선택) 장애'이다. 특정 디자인이 마음에 들면 그때부터 고민이 시작된다. 빨간 넥타이를 고를까
아니면 파란 넥타이를 고를까. 빨간 넥타이를 고르자니 파란 넥타이를 선택하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짜장면을 먹는 순간 짬뽕이 더 맛있어 보이는 심리와 같다. 짬짜면은 현대인의 결정장애에서 아이디어를 얻어서 내놓은 상술이다. 마찬가지로 선택에 따른 후회가 두려워서 나는 빨간 넥타이와 함께 파란 넥타이도 장바구니에 담게 된다. 한 개(단수)만 사자는 내 다짐은 무너져서 두 개(복수)를 사게 되고 결국에는 두 개나 일곱 개나 다 같은 복수(複數)라는 황당한 이유를 들어 과소비를 정당화한다. 그러다 보니 노란 넥타이도 사게 된다. 맙소사, 노사모 모임'이 아니라면 노란 넥타이를 매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
이 세상에 이보다 멍청한 짓은 없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지만 막상 진열대 앞에 서면 판단 정지 상태가 된다. 나의 다선택 방식은 선택을 회피하고자 하는 심리가 반영된 것이다. 선택을 많이 해서 선택을 피한다 ??! 결말이 해피엔딩으로 끝날 리는 없다. 냉정과 열정이 들쑥날쑥거리는 나는 충동적으로 그동안 모았던 것들을 다 버리게 된다. 대청소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이 이상 심리'를 통해서 내가 깨달은 사실은 상품 진열대에 상품이 많다고 해서 소비자의 구매만족도가 높은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넥타이를 예로 들자면 색의 종류가 많을수록 소비자는 선택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데 빨간 넥타이를 고르자니 주황색 넥타이도 눈길이 가고,
주황색 넥타이를 선택하자니 분홍색 넥타이도 마음에 들고, 분홍색 넥타이를 고르자니 노란색 넥타이가 마음에 들고....... 하늘색 넥타이를 고르자니 파란색 넥타이가 눈에 들어온다. 일곱 가지 색깔의 넥타이를 모두 구매했으니 만족스러울까. 그것은 짬짜면과 비슷하다. 짜장도 먹고 싶고 짬뽕도 먹고 싶어서 짬짜면을 시키면 둘 다 맛이 없어지는 경우와 같다. 반면, 검은색 넥타이와 하얀색 넥타이가 전부일 때는 선택 과정이 비교적 단순하다. 1/7를 고르는 상황보다 1/2를 선택하는 것이 단순하니 말이다. 선택의 폭이 넓다는 것은 소비자에게 스트레스를 주게 된다. 공산주의 사회보다 자본주의 사회가 정신분열증이 압도적으로 높은 이유는 선택의 연속, 선택의 연속, 선택의 연속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불교에서 마음의 평안을 얻는 방법으로 최소주의적 삶(최소한의 세간살이)를 권유하는 까닭이다.
정신질환으로 간주되는 호더스(hoarders)의 집은 결정(선택) 장애와 함께 버리지 못하는 강박이 만든 쓰레기장'이다. 인간 관계도 마찬가지'다. 다음은 << 혼자의 사회학 >> 이라는 동아일보 칼럼이다. 상품 진열대에 상품이 많다고 해서 소비자의 만족도가 높아지는 것이 아니듯이 인간 관계도 마찬가지다. 싸구려 넥타이 백 개를 사는 것보다 명품 넥타이 한 개를 사는 것이 만족도가 높다. 인간 관계도 그렇다. 인간이 넥타이냐 _ 라고 딴지를 건다면 할 말은 없다만, 나는 아무래도 유물론자인 것이 확실하다. 황당하겠지만 내가 이 자리를 빌려 내놓은 결론은 인간은 곧 넥타이'다(내 결론에 딴지를 걸겠다면 : 인간이 넥타이가 아닌 이유를 댓글창에 총 A4 4장 분량으로 기술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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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영하의 산문집 ‘말하다’에는 일본 유명 작가 요시모토 바나나(52)와 시인 겸 평론가인 그의 부친 요시모토 다카아키의 일화가 나온다. 어린 시절의 바나나는 친구를 사귀지 않고 집에서 책만 읽었다. 주변에서 “아이가 이상하다”며 걱정하자 요시모토 씨는 이렇게 말했다. “친구라는 건 쓸데없는 거야. 인간에게는 어둠이 필요해.” 아리스토텔레스를 환생시켜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란 명제를 바꾸라고 하고 싶을 정도로 ‘혼자 ○○하기’가 대세다. 혼밥(혼자 밥 먹기) 혼술(혼자 술 마시기) 혼영(혼자 영화 보기) 혼행(혼자 여행 가기) 혼창(혼자 노래 부르기) 혼캠(혼자 캠핑 가기)…. TV를 틀면 ‘나 혼자 산다’ ‘혼술남녀’ ‘조용한 식사’ 등 나 홀로 삶을 소재로 한 프로그램이 넘쳐난다. 서점가를 점령한 책도 ‘혼자 산다는 것에 대하여’ ‘기대를 현실로 바꾸는 혼자 있는 시간의 힘’ ‘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 등이다. ‘혼○’ 열풍을 단순히 1인 가구 증가와 빠듯한 지갑 사정 때문이라고만 보긴 어렵다. 정보기술(IT)과 소셜미디어의 발달로 인간관계의 ‘질과 깊이’가 아니라 ‘양과 범위’만 극단적으로 늘어나자 피로감을 느낀 사람들이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려고 하는 것도 크다. 분초 단위로 울려대는 카카오톡 메시지, 수시로 ‘알 만한 친구’를 추천하며 더 많은 인간관계를 맺으라고 종용하는 페이스북, 밴드와 같은 그룹형 커뮤니티 서비스로 이뤄지는 각종 동창회와 소모임에 지친 사람들이 ‘자발적 아싸(아웃사이더)’가 되어 혼○를 즐긴다는 뜻이다. 타인과 관계를 맺고 유지하는 일은 상당한 에너지와 시간을 필요로 한다. 이로 얻는 기쁨도 물론 크지만 관계의 수가 늘어날수록 부담 갈등 긴장은 피할 수 없다. 이민아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논문 ‘사회적 연결망의 크기와 우울’을 통해 ‘사회적 연결망의 크기가 50명 이상이 되면 인간의 우울이 오히려 늘어난다. 모든 사회적 관계는 보상뿐 아니라 비용을 동반한다. 사회적 관계의 긍정성만을 강조하는 건 인간의 삶이 가진 복잡성을 간과하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8월 말 10년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서울 노원구에 요즘 핫하다는 동네 책방을 연 김종원 씨(36). “책을 좋아하기도 했지만 식당과 커피 전문점 등에 비해 손님들과 직접 부딪칠 일이 적다는 점에 특히 끌렸어요. 회사원 시절 인간관계로 스트레스를 받을 때가 많았거든요. 늘 조용한 분위기에서 혼자 일할 수 있어 만족합니다.”소유물 대부분을 버리고 의식주에 꼭 필요한 최소한의 물품만으로 사는 미니멀 라이프를 꿈꾸는 사람들이 많다. 물건보다 먼저 버려야 할 건 표피적이고 겉치레뿐인 인간관계가 아닐까. 삶에서 중요한 몇 명의 사람들과 진정한 인간관계를 맺기 위해서라도 ‘관계의 미니멀리즘’을 추구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관계는 ‘나 자신과의 관계’다.
하정민 디지털통합뉴스센터 차장 dew@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