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당신이 보고 있는 것은 귀두입니다.

- 지금 당신이 보고 있는 것은 얼굴이 아니라 귀두입니다
내가 처음부터 " 범성론자 " 였던 것은 아니다. 한때 실존주의이니 니힐리즘이니 떠들었던 적도 있었다. 담벼락에 오줌을 싸는 행위는 " 윤리적 애티튜드가 생리적 현상 앞에서 무너지는 사태 " 라고 고상하게 표현했던 적도 있으며, " 똥 싸고 자빠졌네 " 라는 말 대신 " 학문(항문)에 매진하는 열정 " 따위로 표현했던 적도 있다. 그 당시에 나는 좆이나 똥이라는 비속어를 입에 올린 적이 없다.
없는 놈이 있어보이려면 글만큼 좋은 장난감도 없다. 얼굴이 잘생긴 놈은 굳이 밤새워 연애편지를 쓸 필요가 없다. 잘생긴 얼굴은 그것 자체가 훌륭한 글감이요, 문장이 아닐까 ? 루저의 운명을 타고난 나는 연애에 성공하기 위해서 편지를 쓰고 글을 쓴다. 문학에 대해서, 정의에 대해서, 예술에 대해서 ! 야들야들한 목이버섯 같은 문장. A급 언어를 사용하여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신파를 당신에게 선사하리라. 하지만 어느 순간, 이런 문학적 감수성'이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운동권 출신이 새누리당에 투신하여 극우의 목소리를 내는, 그런 극적인 변절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내가 선택한 것은 " 범성론 " 이었다. 범성론적 시각으로 세상을 보니, 당연한 소리이겠지만, 세상이 좆같아 보였다.
또한 범성론적 시각으로 인간을 보니 인간이 좆같은 거라. 하, 이런 세상도 있구나. 거울에 반사된 내 얼굴을 보며 이런 생각을 한다. 좆같이 생겼네, 말하는 귀두라. 귀엽두라(귀엽더라). 껄껄. 그러니까, 귀두가 세상을 지배하는 꼴이구나. 일단, 범성론적 시각으로 보면 모든 일상과 예술이 좆같다. 이 표현은 비속한 표현이 아니다. 범성론 자체가 모든 현상을 좆 같은 것으로 이해하는 시선이니 말이다. 이 시선으로 헐크를 분석하니 헐크라는 캐릭터는 발기된 남근이라는 결론이 도출되었다. 솥도 아니면서 솥처럼 솟질 않나, 팽창하질 않나, 피가 한쪽으로 쏠리질 않나. 무릎 탁, 치고 아, 하게 된다.
아, 하고 나서 무릎 탁, 치면 어색하니까. 리차드 매드슨의 << 줄어드는 남자 >> 는 말 그대로 발기부전인 남자에 대한 이야기'로 해석이 가능하다. 그가 아내에게 반응하는 의기소침은 발기부전 탓이다. 황당한 해석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몸 크기가 줄어드는 판타지를 다룬 영화에서 줄어드는 대상이 대부분 남자인 이유를 곰곰 생각하면 일리 있는 분석이다. 범성론적 해석을 보다 극단적으로 밀어붙여 볼까 ? 영화 << 킹콩 >> 은 성기 사이즈가 서로 맞지 않는 데에서 오는 섹스 트러블을 다룬 영화'다. << 실미도 >> 도 마찬가지'다. 실미도 대원은 사회로부터 낙오된, 고개 숙인 남자들이다. 그들은 누구 주먹이 더 센가를 두고 주먹다짐을 하지만, 사실은 물렁살-들'이다.
훈련 목적은 단단한(딱딱한) 몸을 만드는 것이다. 배우 강성진이 울면서 출정을 앞둔 대원들을 향해 " 우린 죽지 않아 !!! " 라고 외칠 때, 나는 임포텐츠 환자의 결연한 의지를 읽으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것은 마치 발기 부전 치료 모임에 참석한 환자들이 모임을 끝마치면서 마지막에 외치는 구호 같았다. 그래요, 당신의 발기를 기원합니다 ! << 실미도 >> 가 천 만 관객을 동원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 당시, 많은 남성들이 IMF 사태로 일자리를 잃고 고개 숙인 남자가 되었으니 말이다. 단단한 귀두에 대한 열망은 온 국민의 바람이었다. 거리에는 온통 이 노래가 흘러나왔다.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 단단한 몸매에 팽팽한 피부. 그리고 커다란 얼굴.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
<< 블루클럽 >> 이라는 이상한 이발소가 등장하면서 탄생한 귀두컷도 이 대열에 동참했다. " 힘 있어 보이는 귀두로 깎아주세요. " 이발사는 가위손처럼 쓱쓱쓱쓱 ~ 다듬더니 강철 같은 귀두컷을 선보였다. 이발사는 손님에게 박카스 한 병을 내밀며 말하곤 했다. " 어때요, 우람해 보이죠 ? " 세상을 범성론적 시선으로 바라보는 일은 재미있다. 인간을 개 돼지로 보는 인간에 비하면 이 얼마나 성스러운 시선인가.
P.S 어제는 음주 관계로 글을 쓰지 못해서 점심 시간을 이용해 후딱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