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섯해서 생긴 오해
■ 형편없는 데뷔작으로 시작해서 나중에는 그럭저럭 좋은 영화를 만든 감독보다는 평단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은 데뷔작 이후 줄곧 형편없는 영화만 만드는 감독이 더 비극적이다. 허진호 감독이 대표적인 예이다. 허진호 감독은 << 8월의 크리스마스 >> 이후로 곤두박질쳤다. << 봄날은 간다 >> 에서 유지태가 이영애에게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_ 라고 물었을 때 나는 이토록 순진한 남성의 감성 고백에 폭발하고 말았다. " 아이구야, 이 순진한 아저씨 보소 ! 사랑이 변하니까 문학이 탄생한 것이고 영화라는 장르가 탄생한 거 아니오. 당신이 영화 찍으며 밥 먹고 사는 것도 다 사랑이 변하기 때문이라오. " 현재 개봉 중인 << 덕혜옹주 >> 를 보진 않았지만 역사 인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친일파에 속했던 조선 왕실이 독립운동을 했다는 황당한 이야기에 불쾌한 감정을 가질 것이다. 고종은 나라와 백성을 위한 사람이 아니라 오로지 가문의 안위만을 생각했던 이'다. 그는 나라를 판 대가로 일본 제국에게 매년 120만엔의 연금을 요구했던 인물이다. 픽션과 팩트를 섞은 팩션 영화를 만들 계획을 짰다면 적어도 역사 공부는 좀 해야 되는 것이 아닐까 ? 공화국의 시대에 파렴치했던 왕정 시대를 그리워하다니, 무능한 왕정의 몰락을 슬퍼하는 21세기 공화국의 감독이라니.
■ 내가 제일 싫어하는 애티튜드가 만찬 앞에서 가난을 이야기하는 자세다. 박근혜가 이정현을 청와대로 초대해서 걸죽하게 한상차림을 내놓은 모양이다. 상차림을 놓고 말이 많다. 미우면 그 사람이 내품는 숨소리조차 듣기 싫다지만은 그깟 송로 버섯이 상 위에 올랐다고 호들갑을 떠는 것은 우습다는 생각을 했다. 명색이 대통령의 만찬인데 이 정도 요리는 인정해야 되는 것 아닐까. 송로 버섯 안 먹은 사람이 어디 있나............... 라고 생각했다가 송로 버섯을 송이 버섯으로 착각하는 나를 발견했다. 아, 송이가 아니라 송로로구나. 송이나 송로나 형태가 버섯해서 생긴 오해'다. 이 문장을 읽고 나서 " 버섯해서 생긴 오해 " 가 아니라 " 비슷해서 생긴 오해 " 라고 지적하는 일은 없길 바란다. 의도적 오타'다. 버섯과 비슷, 이 두 무리는 비스무리하니까. < 버섯 > 의 유사어는 < 비슷 > 이다. 그러니깐, 그 귀한 송로 버섯 요리를 먹으면서 나라가 어려우니 힘을 모아 콩 한 조각도 나눠 먹자는 소리를 했다는 거지 ? 나는 박근혜가 그 귀하다는 송로 버섯 요리를 먹는 것에 대해 불만은 없다. 하지만 송로 버섯 요리를 먹으면서 콩 한 쪽을 이야기하는 것은 좆같다. 그냥 송로 버섯 요리 드실 때에는 서민 걱정 마시고 당일치기로 모히또 가서 몰디브 한 잔 하는 이야기만 하세요.
■ << 스토너 >> 를 2 / 3 정도 읽었다. 저자인 존 윌리엄즈는 담당 편집자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 스토너 >> 를 좋은 소설이라고 자평(自評)했지만 잘못된 평가'다. 좋은 소설이 아니라 훌륭한 소설이다. 이 소설이 가지고 있는 경제적 효율성은 놀랍다. 영화에 빗대서 설명하자면 적은 제작비로 만들어진, 가성비가 뛰어난 독립 영화 같다. 좋은 예가 코헨 형제의 장편 영화 데뷔작 << 블러드 심플 >> 이다. 형제는 적은 제작비를 가지고 훌륭한 스릴러를 만드는 데 성공하는데, 성공 요인의 팔 할은 아이디어'였다. 제작비가 적다는 것은 곧 서사의 크기가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하고 화면은 깊이가 없이 평면화되기 일쑤이지만 코헨 형제는 빈곤한 무대를 앵글과 편집의 리듬으로 극복해서 뛰어난 스릴러 효과를 얻는다. 이 소설도 마찬가지다. 소설은 별다른 사건이 없이 진행되지만 독자는 이 소설에서 지루함을 찾을 수 없다. 작가는 사건 없이 진행되는 스토너의 삶, 스케일 면에서 빈약한 서사'를 정교한 문장으로 극복한다. 읽는 내내 흥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