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가 오리무중이라니 :
닭이아니오리

<< 하워드 덕 >> 이란 괴상한 영화'가 있다. 명색이 마블 코믹스 출신'이니 슈퍼히어로 영화이기는 한데, 말하는 오리 " 하워드 " 가 주인공'이다. 악당들은 < 오리 > 를 납치해서 앵벌이를 시키려고 하워드'를 수소문하지만 행방이 묘연하다. 악당 두목이 부하에게 다그친다. " 그 오리 새끼(하워드 덕) 어딨어 ? " 부하'가 진지한 목소리로 대답한다. " 오리무중입니닷 ! " 이 자막을 읽는 순간 디비졌다. 오리가 오리무중이라니. 이 유쾌한 농담은 " 한국어의 힘 " 인 셈이다. 오리가 오리무중이라니.

기적'이었다. 야권 분열'로 200석을 노리던 새누리당은 과반석이 뭐임? 먹는거임?! 105석(비례 포함 122석)을 얻는 데 그쳤다. 더민주당'보다 못한 의석 수'다. 지역구 선거 결과'뿐만 아니라 비례 의석을 포함해도 더민주당에 밀리는 결과'다. 이 절묘한 반전. 시민은 합장하듯, 우주의 기운을 모아, 모아, 모아서 육덕진 엉덩이를 향해 똥침을 날렸다. 누군들 알았으랴, 저 거대한 짐승이 똥침 한 방에 무너질 줄은. 평소에 내 똥 굵다고 자랑하던 꼰대들의 몰락이어서 이 승리'는 더욱 통쾌하다. 그들이 새겨들었어야 할 사람은 박근혜 어록이 아니라 오판수(백윤식 分)' 어록'이었다. 영화 << 싸움의 기술 >> 에서 오판수가 말했다. " 너 그러다........ 피똥 싼다. "
20대 총선 결과가 주는 교훈은 명확하다. 천하무적 골리앗'이라 해도 항문은 연약하다는 거. 먹지 마세요 ~ 항문에게 양보하세요 ~ 항문은 소중하니까. 새누리당 백보드에는 이런 문장이 박혀 있을 것이다. " 항문에 힘씁시다, 쫌 ! " 선거를 이야기하는데 자꾸 항문 얘기'를 해서 미안한 소리이지만 : 항문 관리'에 소홀해지면 나중에는 땅을 치고 후회하게 된다. 당신들은 모른다. 치질 때문에 피똥 싸다 대장 항문과를 찾았을 때, 의사 앞에서 엉덩이를 내밀어야 했을 때, 더군다나 남성인 줄 알고 찾아간 정한율 항문 외과 의사'가 알고 보니 여성이었을 때 훅 ~ 들어오는 쪽팔림은 상상 그 이상'이라는 사실. 의사의 예쁜 손가락이 내 항문을 침범할 때 결심하게 된다. 평소...... 항문에 힘씁시다, 쫌.
이 불쾌한 경험. 겨드랑이에 끼워진 체온계처럼 내 항문에 타자의 손가락이 꽂힐 때 남자의 자존심은 무너지게 된다. 그래도 알량한 자존심은 남아서 침범하는 손가락에 저항하며 항문에 힘을 주지만 이 저항은 " 힘 빼세요. " 라는 의사의 지시에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아, 하세요, 라는 말에 아, 하는 아이처럼. 조였던 괄약근을 풀자 손가락이, 아아...... 문득, 스티븐 킹의 << 쇼생크 탈출 >> 에서 엘리스 레드 레딩의 독백이 생각났다.
" 1966년, 앤디 듀프레인'은 쇼생크 교도소를 탈옥했다. 찾아낸 것은 진흙투성이 죄수복과 비누 한 조각 그리고 암석 망치였다. 굴을 파는 데 600년은 걸릴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앤디는 20년 안에 해냈다. 앤디는 지질학을 좋아했다. 그의 세심한 성격과 잘 맞았나 보다. 빙하기와 수백만 년에 걸친 산맥의 생성. 지질학은 시간과 압력에 대한 연구이다. 사실 필요한 것은 그것뿐이다. 압력과 시간 그리고 입구를 감출 큰 포스터...... "
- 엘리스 레드 레딩의 독백 中
지질학과 치질학이 오버랩되었다. 치질도 따지고 보면 시간과 압력에 의해 생기는 병이 아니었던가. 20대 총선 이후, 새누리당이 처한 곤경도 내가 대장항문과 진찰대에서 겪었던 경험과 유사하리라. 내 똥 굵다는 자부심 하나로 살아온 무리가 엉덩이를 보여야 할 때의 당혹감. 힘 빼세요 ~ 지질학과 치질학 그리고 정치학은 글자 모양새뿐만 아니라 속에 담긴 내용도 닮았다. 정치학도 사회적 압력(요구)'에 대한 대안을 연구하는 항문인 것이다. 치킨 공화국 시대, 닭은 권력의 엠블럼emblem 이었다. 하지만 이번 총선 결과로 박근혜의 레임덕 lame duck 은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상황이 되었으니 이제는 엠블럼을 닭에서 오리'로 바꿔야 한다. 그 기세등등하던 권력은 어디 갔을까 ? ㅡ 오리새끼 어딨어 ? ㅡ 오리무중입니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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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일담 : 어제는 알라디너 A를 만났다. 새누리당의 몰락에 기뻐하지 않을 사람 뉘 있을까. 진탕 마시다가 그만 필름이 끊겼다. 잃어버린 기억은 내 주머니 속 구겨진 영수증'으로 남았다. P에 대한 기막힌 반전이 있지만 공개하지는 않으련다. 개인적으로 지지했던 정의당이 선전하지 못한 점과 녹색당이 원내 진입을 하지 못한 점은 아쉽지만 새누리당의 몰락이 궤멸 수준이어서 큰 낙담은 하지 않기로 했다. 진보 소수 정당에게도 살다 보면 쨍 하고 해뜰 날이 오겠지. 반가운 소식도 있다. 울산에서 무소속으로 당선된 윤종오, 김종훈은 모두 옛 민주노동당 당원이었다. 건투를 빈다.